나는 나대로 혼자서 간다
와카타케 치사코 지음, 정수윤 옮김 / 토마토출판사 / 2018년 8월
평점 :
절판


인간은 어떤 삶을 살건 고독하다. p.56



가끔 최연소로 문학상을 수상한 작가가 화제가 되는 뉴스를 접하곤 했습니다. 아직 가능성이 무한한 젊은 나이에 문학상을 수상한 만큼 앞으로의 미래도 밝고 많은 작품도 기대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런데 일본에서 최고의 문학상이라는 아쿠타가와상의 수상자가 63세라는 사실에 깜짝 놀랐습니다.『나는 나대로 혼자서 간다』라는 당당한 제목, 책 소개에서 '중요한 것은 사랑보다 자유다, 자립이다. 더는 사랑에 무릎 꿇지 마라 그래. 사랑을 미화시켜선 안 돼. 인생 금방 옴짝달싹 못 하게 된다 p.92'는 생기 넘치고 도발적인 문장을 노년의 작가가 집필했다는 건 충격적이기까지 하네요. 인생의 마지막 단계만 남았다고 생각되는 노년에도 아직 해야할 것이 많다는 걸 느끼게 하는 작가의 작품 세계를 만나고 싶었습니다. 



앙상하게 뼈만 남은 큼직하고 가슬가슬한 손이었다. 그 손이 지금 눈앞에 있다. 

이런 날이 오리라곤 생각도 못했는데. 

목소리는 천장으로 흐르고 초점 없는 눈동자가 방 안을 한 바퀴 빙 훑는다. p.7


모모코는 16년을 함께 했던 개가 세상을 뜬 후로 천장과 마루 밑에 사는 쥐들의 소란을 느낍니다. 남편을 잃고 홀로 살아가는 그녀는 일상 속에서 혼자라는 걸 확인할 때마다 놀라곤 해요. 젊은 시절 활기차게 자전거에 아이들을 태우고 다니던 길을 걷다 자신의 나이를 깨닫습니다.


그 무렵 모모코 씨는 자신의 늙은 모습을 상상한 적이 있을까. 

하물며 혼자 늙어 갈 것임을, 한 번이라도 생각해 본 적이 있을까. p.31



모모코 씨는 자신의 늙음에는 익숙했다. 하지만 딸애가 늙는 모습은 보고 싶지 않았다. 

딸아이만큼은, 제발 그 아이만큼은 늙지 않게 해 달라고 손이 발이 되도록 빌고 싶은 심정이었다. p.39

과거는 자의적인 것이며 아름다운 장식으로 꾸며져 있다고. 

그럼에도 자기가 있을 곳은 과거밖에 없다는 생각이 든다. p.71


죽음 따위 두렵지 않다고 평소 호언장담해 왔다. 

하지만 한걸음 앞으로 다가온 쇠약함은 두렵다. 

스스로를 감당하지 못하게 되는 게 죽음보다 더 무서워. p.99


작가는 자신과 같은 연령대에 남편을 사별한 모모코 씨를 주인공으로 내세웠지만 결국 자기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 듯합니다. 그녀는 딸이 나이드는 모습을 슬퍼하고 딸을 조종하려 든 것과 자신이 동경하던 걸 강요한 걸 미안하게 느껴요. 오빠에 비해 차별받았다고 불평하는 딸에 대한 애틋함과 소식이 드문 아들에 대한 그리움이 느껴집니다.


남편과 관계에서 느낀 따뜻한 애정, 자신의 나약함에 대한 두려움 쓸쓸한 가을 분위기를 풍깁니다. 나이드는 것에 대한 솔직한 기분은 밝지 않습니다. 하지만 장지문 너머로 들이치는 햇살의 아름다움을 처음으로 느끼는 것처럼 아직도 새로운 감각들을 알아가는 흥분이 자리합니다. 늙음도 죽음도 하나의 과정이고 미지의 길이라는 생각이 철학처럼 다가오네요.



어쩌면 나 아직 죽지 않을지도 몰라. 늙음이라는 것도 하나의 문화가 아닌가.

 나이를 먹었으면 응당 이렇게 처신해야지, 라고 하는 암묵적인 합의가 인간을 늙게 만든다. p.144


이 책을 읽고 느낀 건 '강하다'는 거예요. 작가의 문장에서 느껴지는 힘과 생동감, 개성, 의지까지 어느 것 하나 약한 부분이 없습니다. 솔직히 나이를 미리 알지 못했다면 젊은 사람이 쓴 글이라는 생각마저 들 정도였어요. 소설을 본격적으로 쓰기 이전부터 상당한 문장가가 아니었나 싶습니다. 그렇지 않다면 원래 뛰어난 재능이 있었겠지요. 추리소설을 쓰기에도 어울리는 문체와 구성입니다. 

그리고 사투리가 많아서 번역에 무척 힘드셨겠어요. 신경을 많이 쓰신 덕분에 읽은데 도움이 되었습니다.


* 이 리뷰는 예스24 리뷰어클럽을 통해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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