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혹한 이야기 아르망 가마슈 경감 시리즈
루이즈 페니 지음, 김보은 옮김 / 피니스아프리카에 / 201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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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작 "가장 잔인한 달" 을 지배하는 감정이 질투였다면, 가마슈 시리즈 5편인 "냉혹한 이야기" 의 가장 핵심적인 감정은 바로 혼돈이다. 평화롭고 안온해보이기만 하는 마을에 살인 사건이 번번이 일어난다는 설정 자체가 실은 혼돈에 닿아 있다. 하지만 이번 사건은 좀 더 혼란스럽다. 범인과 살해 동기는 물론이고 시체가 발견된 장소, 시체의 신원마저 모두 혼돈 손에서 출발한다.

 

이 작품은 스리 파인즈에서 멀지 않은 오두막에서 시작한다. 두 사람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낯선 인물인 은둔자와 우리가 잘 아는 올리비에다. 학살. 학살보다 더욱 끔찍한 침묵. 무시무시한 것. 불안하고 광기 어린 눈. 냉혹한 이야기는 이와 같은 분위기에서 그 첫모습을 드러낸다. 이건 그냥 이야기에 불과해, 아무런 해를 끼치지 않아. 하지만 작품의 서두를 여는 이 냉혹한 이야기는 단순한 이야기 그 이상이었다. 아무런 해를 끼치지 않는 정도가 아니라 마을 전체에 커다란 혼돈을 몰고 온다.

 

 

가마슈 시리즈 세 권을 읽어본 경험에 따르면, 5편은 긴박하게 진행된다. 숨돌릴 틈도 없이 사람이 주고, 가마슈는 휴가를 취할 새도 없이 스리 파인즈에 도착한다. 낯익은 사람들이 또 한 번의 살인사건에 당혹해하며 하나 둘 씩 등장한다. 우리의 클라라는 전시회를 열려 하고 있다. 피터는 점점 커가는 아내의 성공을 불안해한다. 사려 깊은 머나는 커다랗고 따뜻한 플란넬 공의 모습으로 형상화된다. 루스는 가마슈 뒤를 따라다니는 키 작은 남자, 그러니까 보부아르에게 자꾸만 의미심장한 싯구가 적힌 쪽지를 건네준다. 루스의 살아남은 오리 로사는 이번에는 원피스를 입고 나타난다. 부활절 나무 달걀을 조각하던 체코 출신 파라 부부의 비중도 커지고, 부활한 "옛 해들리 저택" 은 새주인을 만나 스파 전용 리조트가 되어간다. 스리 파인즈에 새로운 바람이 분다. 활기차고 분주하지만, 그 바람 속에 혼돈과 살의와 불안이 섞여 있다.

 

 

냉혹한 이야기에서 우리는 비스트로의 커플을 둘러싼 비밀을 만난다. 정확히 말하면 올리비에의 비밀을. 두 사람이 왜 비스트로에 왔으며, 어떻게 비앤비를 키워갔는지가 좀 더 뚜렷해진다. 그런가 하면 또 한 커플, 클라라와 피터의 사이에서도 위태로운 기운이 감지된다. 클라라는 성공을 눈 앞에 두고 양심의 문제와 부딪힌다. 피터는 그녀를 지지하는 것 같으면서도 한편으로 그녀를 뒤흔든다. 서로를 지켜주고 존중하면서 지내려는, "우리" 안의 규칙, 스리 파인즈의 조화가 다른 이들에게는 폭력으로 다가가기도 한다. 그리고 새로운 인물들의 이야기 역시 흘러들어온다. 옛 해들리 저택을 바꾸려는 사람들, 그리고 스리 파인즈를 지키려는 사람들의 갈등이 맞부딪힌다. 수많은 기운과 갈등의 중심에 가마슈 경감이 있다. 증거가 묘연하고 사건이 암흑 속에 파묻혀 있어도, 그는 흔들리지 않는다. 이야기를 듣고 하나씩 감정을 모으고, 감정이 생겨가게 된 원인을 신중하게 추적하며 단 하나의 단서도 놓치지 않는다. 사람들을 만나고 모든 단서가 만나는 지점, 그리고 잉태된 지점을 향해 분연히 나아간다.

 

 

스리 파인즈에는 수많은 이야기가 숨겨져 있다. 아직도 들려줄 이야기가 많다 라고 저자가 넌지시 말을 건네오는 느낌이다. 사람을 죽이기도 하는 냉혹한 이야기일 수도 있고, 한 사람의 운명을 바꿔놓을 강렬한 이야기일 수도 있고, 누군가를 멀리 떠나 보내야 하는 애틋한 이야기일 수도 있다. 냉혹한 이야기에서 발아한 혼돈은 아직은 그 정체를 숨긴 채, 스리 파인즈에 웅크리고 있다.  그 웅크림을 마주하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이 다음 편으로 옮겨가는 수밖에 없겠다. 다른 계절과 풍경에서 또다시 천사처럼 쓰고 악마처럼 구성한다는 페니 여사의 또 다른 이야기를 기다려야 할 터이다. 그 이야기가 너무 잔혹하지만은  않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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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제5회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
황정은 외 지음 / 문학동네 / 201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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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층 그리고 지하 1층에서 시작한 이 시리즈는 물 속의 골리앗을 만나게 해주었다가,

폭우를 맞게 했고 거리의 마술사를 알게 해주었다. 그리고 이제 상류에 맹금류가

도사리고 있다. 맹금류만큼이나 날카로운 시선과, 어딘지 모르게 담담하면서도 서릿한

말투로 몸을 서리게 하는 단편들이 차곡차곡. 우리가 살아가는 이 불안과 혼돈의 시대는

저 먼 상류에서 맹금류가 지켜보고 있는 시기인지도 모른다. 그리고 알 듯 모를 듯한

맹금류의 위협 속에 우리는 저마다 질환을 겪고 있다. 자신만의 질환을. 그 질환은

신체적인 것일 수도, 정신적인 것일 수도, 상황적인 것일 수도, 관계적인 것일 수도

있을 터이다.

 

황정은. 믿고 보는 작가. 그녀의 작품은 저도 모르게 숨을 죽이게 한다. 숨을 고르고...

언제 터져나올지 모르는 펀치에 대비하여 읽어주어야 한다. 이번에도 역시. 조금은 낮고

비껴간 듯한 시선으로 우리가 보지 못한, 어쩌면 보지 않은 것을 일깨운다. 이 시선의 고도.

내가 생각하는 황정은의 힘이다. 따듯한 위로였다가 통렬한 비난이 되기도 하는.

 

조해진의 빛의 호위. 이 작품 역시 아득한 기분으로 읽었다. 작품의 출발지점은 "전쟁을, 학살을, 혹은 그와 비슷한 무게의 고통을 겪었거나 겪고 있는 사람들에게 우리는 무엇을 해줄 수 있는지" 라는저자의 나직하면서도 단호한 질문이다. 저자는 흩어진 자, 라는 의미의 디아스포라를 빛으로 감싸는 놀라운 능력을 선보인다. 우리는 고통을 겪는 이들을 기억한다. 외면하지 않는다. 그리고 쓴다. 박노해는 "문학이 약이라면, 그것은 정녕 아픈 사람에게 필요한 것" 이라는 취지의 말을 했다. 빛의 호위는, 우리 시대의 젊은 작가가 써 낸 한편의 처방전으로 읽힌다.

 

 

쿤의 여행. 쿤이 뭐지? 하고 처음에는 당황스러웠지만 이제는 쿤이 무엇인가는 결국 중요하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쿤 역시 개개인의 질환이며 삶의 무게로 읽을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저마다의 쿤을 짊어진 채, 혹은 쿤에게 엉겨붙은 채 삶을 이동한다. 살아있는 나라는 존재가 아니라

나에게 들러붙은 질환이 때로는 더 큰 생생함으로 삶을 증거한다. 그 무게감에 허덕거릴 때, 작가는 이렇게 속삭인다. 자라지 않아도 괜찮아, 라고. 함께 살아가는 것만으로도 어쩌면 충분한 것인지도 모른다. 그 이상의 다른 어떤 노력도 더 이상 필요하지 않을 수 있다고. 한번쯤 쿤에게 시달릴 때, 이 단편을 기억해 봄직하다.

 

 

그런가 하면 창 너머 겨울, 에서는 질환은 이제 좀 더 구체적이고 일상적인 형태로 드러난다.

사타구니 가려움증이라는, 한 사내를 변태환자이자 잠재적 아동 성학대범으로 몰고 가는 질환이다. 누구에게 섣불리 밝힐 수도 그렇다고 숨길 수도 없이, 손에 든 밤톨마냥 이리 저리 찔리며 들지도 못하고 내려놓지도 못한 채 함께 살아가는 일상의 질환들. 사내의 질환 내력이 밝혀질수록, 질환과의 사투가 고조될수록 가혹하리만큼 냉정한 저자의 서술이 오히려 더욱 가슴에 밟힌다.

성공적인 첫만남.

 

 

기준영이라는 작가도 처음이다. 이상한 정열. 이상한, 과 정열, 이라는 단어를 나란히 배치해 두고 난 후의 저자의 망설임이 조금은 와닿는다. 한순간 건너뛴 듯한 과정에, 감정에 다시 심지를 붙여보려는 화자의 노력이 이상한 정열의 형태로 타오른다. 역시나 정열의 온도가 높아갈수록, 그만하면 됐다, 라고 다독거려주고라도 싶은 기분이 된다. 하지만 저자는 작품을 "생이 덧없다는 말은 무용했다" 라는 문장으로 마감한다.  생이 덧없다는 말은 무용했다. 이 문장만으로, 이 작품을 읽는 일은 무용하지 않게 되었다.

 

 

가장 친숙한 작가 손보미. 첫 단편집을 이렇게 기다려 본 작가도 처음이었고, 그녀는 내 기다림을 값진 것으로 만들어주었다. 그리고 이 작품집에서는 아버지의 산책을 따라나선다. 의혹과 두려움과 걱정과, 저 밑바닥에는 자신의 결혼생활에 대한 회의를 짊어진 어느 딸의 발걸음이다. 손보미의 작품 역시 서늘하다. 아버지를 의심하고, 남편을 의심하는 여자 역시 불안정하고 위태롭다. 서로를 믿지 못함이, 믿지 못하고 있어 라고 말할 수 없음도, 말하지 못하면서도 그런 감정에 지배당함이, 하나 하나 서릿하게 다가온다. 하지만 작가는 다음 날에도, 또 다음날에도, 그리고 그 다음날에도 쓸 것이다. 그 다음날에도 또 쓰고 있을 작가를 믿는다. 저버리지 않을 것이라고.

 

 

마지막 단편은 미뤄두었다. 어느새 오년. 젊은 작가들의, 현재를 살아가는 작품들. 작품을 고뇌했던 흔적이 담긴 노트, 그리고 답장이라도 하듯 이어지는 젊은 평론가의 젊은 해석. 이 젊음에 희망을 건다. 문학의 미래와 같은 거창한 희망이 아니다. 다음 날에도, 또 다음날에도, 그리고 그 다음날에도 읽을 수 있다는, 읽으며 느끼고 생각하고 무언가를 적을 수 있으리라는 희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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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를 살아가게 하는 것들 - 삶의 한가운데 있는 당신에게 건네는 위로와 격려
앤 라모트 지음, 김승욱 옮김 / 청림출판 / 201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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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제는 grace, eventually이다.  동화적 감성이 남아있기라도 한 탓인지 이런 결말을 좋아한다.

모든 것은 신이 주신다. 당시에는 고통스럽게 느껴질지라도. 그렇게 생각하면 내게는 원인모를

아픔에도 조금은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지나온 시절을 되돌아 보면 당시에는 힘들었지만 지금에

이르러 은총으로 둔갑한 일들이 많았다. 그러므로 지금의 부족함도, 어려움도 언젠가는 은총의

얼굴로 내게 웃어줄지도 모른다고 살짝 기대해본다. 물론 섣불리 은총이라거나 깨달음이라거나

하고 말할 수 없는 일도 있을 것이다. 그런 일들에 대해서는......  섣불리 말을 보태지 않겠다.

 

 

아무튼 앤 라모트를 좋아한다. 마음 가는 대로 산다는 것, 이라는 책을 읽고나서부터다. 그 책은 집에 잘 모셔두고 있으니까. 언젠가부터 많은 책을 소장한다는 데 큰 의미를 두지 않게 되었다. 바꾸어 말하면 집에 데리고 있는 책들은 그만큼 아끼는 책이라는 의미이다. 앤 라모트가 좋은 이유는 간단하다.

앤 라모트는 현존하는 브리짓 존스와도 같은 사람이다, 라고 나는 느낀다. 베스트셀러 작가이자 수필가에 굵직한 문학상도 받았으니 사실은 어느 정도의 입지를 구축한 사람일 것이다. 하지만 그녀의 수필에서는 그런 입지적인 면모가 거의 보이지 않는다. 그녀는 솔직하고, 당당하고, 때로는 어처구니없는 실수를 하고, 무모한 일을 꿈꾸고, 사소한 문제에 시달리고, 끊임없이 갈등과 문제 속을 헤메 다닌다. 한마디로 우리 주변에서 얼마든지 볼 수 있는 사람이다. 옆집에 가면 이런 아줌마(죄송합니다) 가 있을 것만 같다. 빨간 머리 앤에 나오는 린다 아주머니 같은 분이라고나 할까. 말이 많고 고집을 피우고, 어딘지 수선스럽기도 하고. 하지만 웃음을 잃지 않는다. 사회와 종교를 위해, 특히 어린 아이들을 위해, 작가의 글쓸 권리와 책을 위해 분연히 투쟁하고 노력한다. 그리고 자신이 춤을 추며 다른 사람들을 도와주는 사람으로 비춰진다는 데에 기뻐한다.

 

 

어머니가 되고, 주일학교 교사가 된다.  소란과 소동 속에 깃든 은총을 발견한다. 계획했던 일은 수포로 돌아간다. 하지만 물러서지 않는다. 지금 이 자리에서 그녀가 할 수 있는 일을 한다.  흔히 생각하는 소설가의 이미지란 조용히 말없이 집에서, 고적한 곳에서 글을 쓰고 산책을 하며 영감을 떠올리고 차를 마시고 혼자만의 생각에 잠겨 있는 모습이라고 오해하기 쉽다. 하지만 그녀는 다르다. 엄연히 멋진 글들을 쓰는 작가이긴 하지만, 사람들 틈에 섞여 우스꽝스런 몸짓과 동작으로 함께 춤을 추고, 자신이 원하는 바를 달성하기 위해 거리를 오가며 시위를 하고, 거침없이 웃고 떠드는 모습이다.  생생하고 강렬한 생명력과 의지로 거리에서, 자연에서, 일상에서 우리들 눈에 쉽사리 들어오지 않는 은총을 한 움큼씩 집어드는 작가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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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인생을 바꾼 스무살 여행
브라이언 트레이시 지음, 강주헌 옮김 / 작가정신 / 200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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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브라이언 트레이시 하면 자기계발의 고전 중에 속하는 글들을 써 온 작가로 알고 있다.

자기계발서 분야를 어른대다 보면 접하게 되는 이름인 것이다.  익숙치 않은 편두통에

시달리는 즈음에도, 분연히 도서관에 들러 책들을 집어든다. 결과는 일주일 연장하고도

이틀 연체. 하지만 지금은 조금씩 일상의 감이 붙었고, 책들을 읽어가고 있다. 이제 나다,

나로 돌아왔다, 라는 느낌이 든다.

 

 

자기계발서에는 여러가지 형식이 있을 것이다. 자서전 형식으로 쓰기도 하고, 소설이나

우화의 형식을 빌리기도 한다. 평범한 서술도 물론 있다. 젊은이들에게 보내는 편지나

강의의 형식을 빌리는 경우도 있다. 사실은 우리 모두가 다 아는 내용을 조금이라도 더

신선하게 전달하려는 노력인지도 모르겠다. 나는 자기계발서를 자주 읽는다. 행복처방전이라고.

의욕 백신을 맞는 거라고 친구와 장난삼아 말하기도 했다. 나라는 인간은 가만히 놔두면 아래로

치닫는 인간이다. 그러니 억지로라도 끌어올려 주는 것이다. 그렇게 해야 조금이라도 중간

비슷한 곳을 얼마쯤 비켜갈 수 있다. 어쩌면 정당성을 담보하려는 이런 말이 구차한 건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나는 문득 말하고 싶은 것이다. 세상에 여러 가지 책이 있고, 수많은 사람이

있는 것처럼 다양한 책들을 읽는 사람이 있다는 것. 나에게도 납득하기 힘든 타인의 취향이라는

것이 있는데, 어쩌면 역지사지를 해 볼 계기가 될지도 모른다. 도대체 그런 건 왜 보는 거야?

왜 읽는 거야? 왜 사는 거야? 하는 설익은 의문들.

 

 

어쨌든 브라이언 트레이시의 이 자기계발서는 일단 여행기의 형식을 빌리고 있다. 자못

독특하다. 이책을 빌린 이유에는 저자의 이름이 약간의 몫, 사실은 역자의 이름이 더 큰

몫을 차지하고 있다. 수업 시간에 이 책의 한 대목으로 강의를 들은 적이 있는 것이다.

원전이 자못 궁금해졌다.  제목이 솔직하게 말해주고 있다. 무슨 내용인지. 주인공은

스무살에 여행을 떠났고, 그게 인생을 바꾸었다. 이 친구는 스무살에 아프리카로 무작정

떠날 목표를 세우는데, 모험에의 욕구라는 점 말고는 그 동기가 내게는 잘 와닿지 않았다.

그렇기 때문에 자금에 시달리고, 굶주림과 피로와 이질의 고통까지 겪는 이 여정이 잘

이해가 되지 않기도 했다.  도대체 왜 이런 고생을 사서 하고 있는 거야? 집에 가!

타인의 취향에 이어, 타인의 욕구마저 존중해야 하는 모양이다. 어떤 책을 몰입해서

불편하지 않게 읽으려면. 아니면 내가 벌써 무작정 여행을 떠나기에는 너무 늙어버렸는지도

모르지. 하긴 스무살에도 훌쩍 여행을 떠나거나 하는 걸 즐기지는 않았다. 그러니

사막을 건너고, 싸우고, 자전거를 탔다가 걷다가 기차를 탔다가 아르바이트를 해서 돈을

벌어서까지 여행을 가는 모습들이, 낯설고 어처구니없게 느껴졌는지도. 왜 이러고 있는

거야? 라는 나의 질문은, 어쩌면 책의 제목을 까맣게 잊은 질문이었는지도.

 

 

저자는 이 여행을 감행함으로써 인생이 바뀌었다고 말한다. 도전한다는 것. 불확실하고

어렵기만 한 목표를 밀어붙인다는 것. 그 과정에서 목표를 수정하고, 모험의 속살을

체험하고, 마침내 성취감을 느끼게 되었다는 것. 무언가를 성취할 수 있는 인간이 된다는 것.

누구에게나 저마다의 장애물이, 십자가가, 고난이, 어려움이 있는 법이다. 그것이 바로 인생이다.

문제는 이 어려움에, 난간에 어떻게 대처하느냐 하는 점이다. 말하자면 태도의 문제. 실수와

혼란 속에서 배우는 것, 한 걸음 더 나아가는 힘을 얻는 것, 때로는 애초의 목표에 무리가 있음을

깨닫는 것, 무엇보다도 뜨겁고 험난한 사하라 사막을 건너가는 것. 이 책은 그런 것에 대한 이야기다. 인생이라는 사막을 건너가는 여정에 대한 이야기. 자, 나는 어디쯤 있지? 이미 나의 사막을 건너왔던가? 또 다른 사막이 나를 기다리고 있을까? 그렇다면 사막 어느 구석에쯤 오아시스도 있을까?  문득 이런 생각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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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명적인 은총 아르망 가마슈 경감 시리즈
루이즈 페니 지음, 이동윤 옮김 / 피니스아프리카에 / 201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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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웰컴 백 투 스리 파인즈. 도무지 범상한 살인사건이라고는 일어나지 않은 스리 파인즈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평화로운 마을에서 사람이 죽고, 또 가마슈가 사건을 해결하러 등장.

  가장 어처구니없고 멍청한 방식으로, 마을 사람들이 모두 싫어하는 한 여성이 죽었다.

  수많은 사람들이 지켜보는 앞, 그러니까 컬링 대회에서였다. 그 자리에는 죽은 사람을

  전문으로 담당하는 사진기자까지 있었다. 스틸 라이프, 조용하고도 고요하게 삶은

  흘러가는 것일까, 라는 의문을 던진 전작에서와 같이 이 작품에서도 아이러니는 계속된다.

  우선 제목..제목이 또 그렇다. fatal grace. 크리스마스를 배경으로 한 치명적인 은총이란다.

  은총이 치명적이라니. 그 치명적인 은총을 관통하는 소재가 살인 사건이라니. 그리고

  이 작품에서 반복되는 화두이자 코드가 바로 be calm이다. 사람이 죽고 온 마을이

  뒤숭숭하고 사건은 온갖 미심쩍음 투성이언데, 차분하라고? 진정하라고? 어쩌면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냉정을 찾으라고?

 

 

  작품의 서두에서 중점적으로 내 눈길을 끈 사건은 이렇다. 다정하고 섬세해 보이는,

  하지만 명민한 무명화가 클라라가 백화점에서 이 기분나쁜 여성, 그러니까

  살해당한 여자에게서 모욕을 당한다.

  니 작품은 형편없다는, 그야말로 화가에게는 치명적인 모욕이다.

  이 치명적인 모욕을 당한 클라라는 하지만 백화점을 벗어나기도 전에 절실한 구원이자

  은총을 입는다. 나는 니 작품을 사랑한단다, 라는 아름다운 한마디였다. 이 말은

  백화점 앞의 노숙자가 한 말이다. 클라라는 어쩌면 신은 우리에게 찾아온다면

  이런 모습이 아닐까 라고 생각한다.  아니 신이 자신을 위로하러 온 거라고 믿고

  싶어한다. 그리고 이 두 여자가 무관한 듯 죽는다. 한 사람은 클라라에게 치명적인 상처를,

  다른 한 사람은 그녀에게 아름다운 은총을 선물했다. 이 두 죽음의 보고서가 가마슈의

  손에 들어간다. 가마슈는 별개인 것 같은 두 사건을 동시적으로 조사해 나간다.

  그리고 그 유사성을 찾아낸다. 두 사람은 바로.....이 중 한 여자를 죽인 사람은...

 

 

  루이즈 페니라는 저자의 미스터리를 읽는 건 이런 느낌이다. 모닥불이 있어야 한다.

  따듯한 차와 음식도 있으면 좋다. 꼭 필요한 건 따듯함이다. 그런 다음에 들려오는

  건 담담하고도 차분한 목소리, 평화롭게 일상을 이야기해나간다. 일상 속에서 조금씩

  움직임이 일어난다. 무관한 사건들이 서서히 다가온다. 움직임은 살인을 기점으로

  폭발하고, 별개인 듯한 일들은 하나로 얽혀진다. 처음에는 텔레비젼 화면을 돌려보는

  듯한 장면이 이어지지만, 아 꿰어맞추면 하나의 정교한 작품을 이루는 퍼즐 같은

  느낌이라고나 할까. 그것이 이 작가의 놀라움이다. 아무렇지도 않은 일상, 아무

  상관도 없이 각기 진행되어 가는 사건들을 어느 순간 하나로 만들어 우리 앞에

  펼친다. 자, 이거야, 봐. 짠! 좀 헷갈렸지? 이 사람이 범인인가? 그렇다면 좀 시시한데?

  아니었구나, 앗.... !! 마음을 늦추었다가 당기는 작업이 반복된다. 아, 혹시 지금

  이 작가가 우리한테 밀당이라도 하는 건 아닐까? 자, 이쪽으로 와... 아니.. 그쪽

  말고 저쪽...안심시켰다 싶으면, 어느 순간 쾅 하고 뒷통수를 친다. 방심은 금물이다.

  이런 게 사실은 삶이야 라고 말하고 싶었던 걸까. 

  무엇에도 흔들리지 말라고, 방심하지 말라고, 한쪽으로 마음을

  몰아가지 말라고, 조금 더 차분한 시선으로 주변을 돌아보라고.

 

  왜 그 아이는 상처받았 을까, 그녀는 하필이면 왜 거기에 있었을까,

  그녀는 왜 그토록 자신을 위장하려  했을까, 세 사람은 왜 그리도 절실히 뭉쳐 다녔을까.

  무엇을 그렇게도 열심히 보호하려고 했던 걸까. 그리고 다른 한쪽 편에는

  자신이 뭘 그리는지도  모르는 채 치명적인 은총의 장면을 그려가는 화가 클라라가 있다.

   저자가 한 단어 단어 고르며 심어가고, 한 장면 한 장면을 배열하고 글을 펼쳐나가는

  동안, 저자의 분신과도 같은 클라라는 그림을 그린다.   조심스럽고도 사려깊은 붓질.

  그녀가 그리는 작품의 주제는 치명적인 은총 앞에서도  "Be calm" 하라는 건지도 모른다. 

  누구나의 앞에 놓인 삶은 결국은 치명적일 수도 있고, 결국은 은총일 수 있는 것이니까.

  어느날엔가 들었던 "삶은 소중하고도 힘든 거에요" 라는 말처럼, 이 책은 

  그렇게 삶의 두 얼굴을 동시에 우리에게 일깨워주려고 했던 건 아닐까.

  그리고 삶이라는 치명적인 은총 앞에  담담하고 차분한 태도를 유지하라고도. 

  삶을 이야기하는 죽음. 묵묵하면서도 저 깊은  편에 따듯함이 배어 있는 이 소설은 

  서로를 죽이고 또 살리는 어머니와 친구들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누군가에게는 은총이 되고 누군가에게는 상처가 될지 모를 삶이 흘러가는 동안,

  스리 파인즈 마을을 감싸는 세 그루 소나무는  이 모든 사연을 묵묵히 지켜보면서

  이 잊혀진 마을의 기억을 옹이 하나하나에마다 새겨넣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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