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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랑자
정찬 지음 / 문학동네 / 201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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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믿고 보는 작가 중 한 명이다.  워낙 믿고 보는 작가가 많기는 하나 복된 일이다.

  이 작가에게 처음 끌린 건, 별들의 침묵, 이라는 단편에서였나. 유태인들이 학살당하고

  있을 때 하느님은 울고 계셨다, 는 눈물론을 알려 준 작가이기도 하다. 후에 나는 그 책의

  서평을 쓴 교수님의 수업을 들었고 눈물론을 언급하는 기회를 갖기도 했다. 내게는 이렇듯

  촘촘히 기억으로 얽혀져 있던 작가이고, 애잔하고 아릿한 작품. 천천히 더디 읽는 작품의

  저자로도 각인되어 있다. 내게 이건 좀 중요하다. 나는 엄청 빨리 읽는 편이므로.

 

 100장까지는 일단 간다..가 나의 목표이다. 더군다나 정찬인데. 그만큼 처음에는 설었다는

 이야기다. 전생과 그보다 앞서의 생, 현생이 겹친다. 환생 뿐 아니라 무당까지 등장한다.

 그녀였거나, 그인 화자는 예수님의 여인이었다. 이 부분은 좀 놀라웠다. 소설적 상상력이

 얼마만큼 허용 가능한가의 문제를 고려하게도 하는. 어쩌면 내가 보수적인 독자인지도 모르

 겠지만, 이 아름답고 숙연한 소설에서는 보수적인 천주교 신자까지도 고개를 끄덕이고 되게

 만다.

 

 

 마음이 또 시큰댄다. 유랑, 에서는 가장 놀라운 기적 중의 하나로 타인이 나의 아픔을

 똑같이 느끼고 아파하는 일을 꼽는다. 그리고 의심의 여지 없이, 예수님은 그런 분이시다.

 그런 기적을 기대하고, 또 행하기를 바라던 시절이 있었다. 그 시절의 기도는 간절했다.

 그리고 내게 지금이 있다. 기억만으로, 또 회상으로. 소설은 기억을 들춘다. 지난날을.

 그리고 상상하게 한다. 내게 전생이 있었을까를, 만약 그렇다면 어떤 모습일까를.

 

 이 소설을 선택한 건, 정찬, 이라는 이름 때문이지만 또 편혜영, 신형철, 이 두 사람의

 강력한 추천사 때문이기도 했다. 빨려들 듯 책장이 빨리 넘어가는 느낌도 좋지만,

 천천히 조심스레 책장을 넘길 때의 느낌도 좋고, 그런 느낌은 드물기에 어쩌면 더

 오래 강렬하게 여운이 남을 듯도 하다. 역시, 정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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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日 몸가짐 - 삶의 품격을 두 배로 높이는
마스노 슌묘 지음, 최수정 옮김 / 21세기북스 / 201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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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몸가짐을 바로잡음으로써 마음가짐을 정돈할 수 있다고 선승인 저자는 말한다.

  선에 기저한 이 책은 담담하고 차분하다. 때로는 이런 것까지 생각해야 하나 싶을

  정도로 하나하나 예절이나 양식을 따지기도 한다. 느릿느릿, 조용조용, 이런 것들이

  빠르고 분주하게 움직이는 현대에 가당키나 하는 생각도 들 수 있지만 모든 것이 바쁜

  생활에서 몸가짐을 천천히 가다듬으려는 노력이야말로, 중심을 잃지 않으려는 노력이야말로

  더욱 중요한 게 아닐까.

 

  태양이 밝아올 때 자리에서 일어나고, 날이 저물 때면 고요하게 하루를 마무리하는 준비를

  하는 것처럼 태양의 움직임과 하루의 리듬을 맞추는 게 가장 자연스러운 일상이다, 와 같은

  문장은 고리타분한 것 같지만 이상스레 마음을 편안하게 만든다. 노스님이 지루하면서도

  지긋하게 하나하나 세상을 살아가는 지혜를 넘겨다주는 것 같은 느낌을 받는다. 그러면서

  올바른 자세가 , 사소한 예의가 나를 지키고 세상을 아름답게 하는 데 어떻게 기여하는지를

  배운다. 빠르게 변하는 트렌드에도 관심을 기울이지만, 잔잔하고 차분한 인간의 덕에 대해서도

  한편으로 잊지 않는 것이다. 그것이 어쩌면 균형 잡기의 일환인지도 모르겠다. 나에게 필요한

  것, 내가 취할 수 있는 것을 따르면, 적어도 따르는 게 좋겠다고 담아두는 것이 감응받은 책에

  대한 예의인지도 모르겠다.

 

 

  선에서 비롯한 책이라는 것은 몰랐고 기대했던 바와는 그래서 조금 달랐다. 앞에서도

  트렌드 운운했지만 좀 더 현대적인 책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실망했다거나

  아 예상이 빗나갔구나 했다는 건 아니다. 오히려 더 좋았다. 이런 가르침은 쉽사리 접하기

  힘이 들고, 그래서 책을 빌리는 게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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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양억관 옮김 / 민음사 / 201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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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7 월에 나왔다면 꽤 신간이라고 해야 하나. 신간, 에 가까운 책을 읽는 게 오랜만인 듯

 싶다. 소금, 에 이어 오빠 덕분. 하루키의 책이라면 비교적 최근에 읽은 언더 그라운드가

 있고 이하 생략...

 

 그렇지만 이 책은 꽤 재미있었다. 느닷없이 견고하고 온화하고 완벽한 모임에서 퇴출당한

 채 그 상실의 상처로 전혀 다른 사람처럼 되어버리고 마는, 하지만 정말로 그와 가까워 지려고

 하는 사람에게는 왠지 닿지 못하게 하는 벽을 혹은 짐을 떠안고 사는 화자의 이야기이다.

 후에 모임에서 퇴출당한 연원을 알게 되고 자신이 스스로를 느꼈던 바와 친구들이 바라봤던

 자신에 대한 괴리감, 같은 시절을 한 모임에서 가깝게 지냈으면서도 서로 말하지 못하고

 밝히지 못했던 사연들을 가진 사람들이 제법 먼 거리에서 서로를, 과거를 바라보는 후반부의

 이야기는 색채가 없다고 느껴졌던 쓰쿠루에게 사실은 색채가 가득했음을, 혹은 다른 사람의

 색채를 더욱 활기 있고 생기 있게 만들어 주는 무엇이 있었음을 깨닫게 한다. 혹은 다른 사람들의

 색을 소화하는 도화지 같은 존재였는지도 모르겠다, 쓰쿠루는.

 

 다소 신비롭고 뒷 이야기를 궁금하게 만든다. 한 장 한 장 뒤로 넘어가면서 하루키의 힘이

 무엇인가를 고민해 보았다. 혹은 유명한 소설가나 어떤 작가의 힘에 대해서도. 우선은 당장

 손에 잡은 그의 책을 읽게 만드는 힘일 것이고, 다른 책을 찾아나서게 만드는 힘일 것이다.

 고유한 색채로, 혹은 독자들의 고유한 색채를 인식하게 하는 능력으로 말이다. 그런 것들을

 느꼈다. 제목이 뭐가 이렇게 길어? 이게 무슨 뜻이야? 했던 것과는 달리 막상 읽어보니 재미

 있더라 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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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금 - 박범신 장편소설
박범신 지음 / 한겨레출판 / 201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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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번씩 소설이 읽고 싶다. 이유는 모른다. 습관의 힘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촘촘하고 구체적인 어떤 일상의 모습을 읽고 싶은 건지도.  그래서 도서관을 휘적거리다 마땅히 당기는 게 없어 우    선  집에 있는 책부터. 오빠가 보라고 가져다 준 책들 중의 하나이다.

 

 그러고 보니 박범신의 소설을 제대로 읽은 것이 왠지 처음 같다. 그럴 리가, 라고 생각하면서도

 막상 아니라면 무얼? 이라는 질문에 쉽게 답이 나오지 않는다. 그저 여러 제목을 알고 여러 말들이

 낯익어, 기사며 에세이 등을 읽어서 익숙해지지 않았나. 그런 의미에서 어쩌면 소금은 내게 첫

 만남과도 같다. 떠도는 풍문을 처음으로 접하는.

 

 

 남성 작가들의 진한 책이라. 진하고 거칠면서도 섬세하다. 서정과 순정까지 곁들였다.

 묘령의 여인을 만나 연인이 되고, 신비롭거나 애수에 찬 한 남자를 만나 그의 인생을 듣는다.

 그러면서 그들과 화자의 인생이 포개어진다. 소금을 짓는 갈팍한 삶과 인생의 쓴맛, 단맛,

 신맛, 매운 맛까지 엿보고 맛보는 걸음이 이어진다. 그리고 빨대론이라고 했던가. 힘없는

 타인의 삶을 착취하는, 그들의 고혈을 빨아마시는 행위를 작가는 빨대에 들이대는 것에

 비유한다. 한 걸음 더 나아가 깔대기로 빨아들이는 사람들까지 있다. 빨거나 빨리거나.

 자본주의의 삶은 그런 것일까.

 

 

 그렇지만 무엇보다도 아버지. 치사해, 치사해 라고 하면서도 아이들을 위해 치사해질

 수 밖에 없는 아버지. 배롱나무처럼 아이들을 튼튼하고 환하게 받쳐주고 비춰주는 아버지.

 아버지를 조명한 책이 드물었겠느냐만은, 이 소설의 아버지는 함께 있을 때 추억하는

 존재가 아니라 더 안타깝다. 항상 떠나가고 나서야 알게 되는 것일까. 그런 의미에서

 아버지가 떠나간 뒤에 아버지에게 못다한 빚을 낯선 사내에게 헌신적으로 갚아나가는

 선명우의 보은이 눈물겹다. 이것이 내리갚음이고 내리사랑인가 하고 생각한다. 이런 마음들.

 

 

 작가의 말을 보니 막상 작가에게 첫사랑 같은 존재는 선명우의 첫사랑이기도 했던, 자신의

 첫 마음을 지켜나갔던 세희 누나였던 듯하다. 세희도 못다한 인연을 이어나가기 위함인지

 낯 모르는 아이를 데려다 자신과 선명우의 이름을 한자씩 붙여 키운다. 다하지 못한 마음이

 타인에 대한 헌신으로 이어진다. 타인들을 빨대처럼 빨아마시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술술 읽혔다. 한 장만 더, 하면서 책장을 넘겨가며 읽었다. 그러면서 생각한다. 소설이 좋다고.

 어쩌면 세상을 살리고 있는지 모른다고. 알음알음 우리가 알지도 못하는 사이에 알지도 못하는

 곳에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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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 가지 행동 - 김형경 심리훈습 에세이
김형경 지음 / 사람풍경 / 201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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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형경 작가는 고등학교 때부터 좋아하던 작가인데 개인적으로는 좀 더 소설을 써주었으면

  하는 치기어린  바람도 있던 터라 만가지 행동도  딱히 기대하지는 않고 읽었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의리! 하는 마음도 혼자서 갖기도 했다. 이 책을 읽고 나니 작가님은 나의 이런 바람이 

  나 마음도 혼자 다스리라고 냉정하게 보실 것 같기도 하지만.

 

  이 책이 좋았던 건 마치 기행문처럼 읽히기도 하고, 좀 더 진솔한 내면의 고백이 담겨져

  있기도 했던 것 같아서였다.. 라고 하면 지나치게 식상한 평이 되려나. 그저 좀 더 가깝게

  저자 옆에 있는 기분이었다. 끊임없이 마음을 다스리고 이해하려는 노력도 그만큼 더

  절실하게 다가왔고, 소설과 심리 상담 에세이를 사이에 둔 고민도 솔직하게 느껴졌다.

  더 어려운 말로 하기보다 조금이라도 더 쉬운 말로 풀어내려 했던 건 그만큼 독자들과

  눈높이를 맞추고 싶어함이 아니었겠는가. 그 시선이 좋았던 것 같다.

 

  무엇보다도 누구를 만나 무엇을 느끼고, 어떤 상황에 처했든 그 상황에 대한 해석과

  사람에 대한 느낌은 온전히 나로부터 온, 내 안에 있는 점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라는

  가르침이 제일 와닿았다. 책을 읽을 당시 마음을 불편하게 하던 일도 여러 모로

  되돌아보게 되었고, 어색하고 난감해 하는 상황 자체나 그 상황을 어색해하고 난감해하는

  나라는 사람도 대해서도 조금은 다른 시각을 적용하려고도 보았다. 이런 노력이 언제까지일지는

  모르겠으나 시도 자체에 의미 있으리.

 

  해야 할 행동, 하지 말아야 할 행동, 사람과 세상을 접하고 나를 닦는 일, 모두 마음을 이해하고

  마음 공부를 하려는 행동에 속하지 않을까 하는 의미에서 위와 같은 제목을 붙여보았다. 때로는 

  해야 함보다 하지 말아야 함이 날 더 가르치는 법이니까. 그리고 흥미롭게 읽었던 사랑을 선택하

  는 특별한 기준의 뒷이야기도 인상적이었다. 내가 보지 않았던, 저자가 직접 들려주는 배면이라.

  이것은 이 책을 펼친 하나의 작은 보너스처럼 여겨보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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