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혹한 이야기 아르망 가마슈 경감 시리즈
루이즈 페니 지음, 김보은 옮김 / 피니스아프리카에 / 201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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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작 "가장 잔인한 달" 을 지배하는 감정이 질투였다면, 가마슈 시리즈 5편인 "냉혹한 이야기" 의 가장 핵심적인 감정은 바로 혼돈이다. 평화롭고 안온해보이기만 하는 마을에 살인 사건이 번번이 일어난다는 설정 자체가 실은 혼돈에 닿아 있다. 하지만 이번 사건은 좀 더 혼란스럽다. 범인과 살해 동기는 물론이고 시체가 발견된 장소, 시체의 신원마저 모두 혼돈 손에서 출발한다.

 

이 작품은 스리 파인즈에서 멀지 않은 오두막에서 시작한다. 두 사람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낯선 인물인 은둔자와 우리가 잘 아는 올리비에다. 학살. 학살보다 더욱 끔찍한 침묵. 무시무시한 것. 불안하고 광기 어린 눈. 냉혹한 이야기는 이와 같은 분위기에서 그 첫모습을 드러낸다. 이건 그냥 이야기에 불과해, 아무런 해를 끼치지 않아. 하지만 작품의 서두를 여는 이 냉혹한 이야기는 단순한 이야기 그 이상이었다. 아무런 해를 끼치지 않는 정도가 아니라 마을 전체에 커다란 혼돈을 몰고 온다.

 

 

가마슈 시리즈 세 권을 읽어본 경험에 따르면, 5편은 긴박하게 진행된다. 숨돌릴 틈도 없이 사람이 주고, 가마슈는 휴가를 취할 새도 없이 스리 파인즈에 도착한다. 낯익은 사람들이 또 한 번의 살인사건에 당혹해하며 하나 둘 씩 등장한다. 우리의 클라라는 전시회를 열려 하고 있다. 피터는 점점 커가는 아내의 성공을 불안해한다. 사려 깊은 머나는 커다랗고 따뜻한 플란넬 공의 모습으로 형상화된다. 루스는 가마슈 뒤를 따라다니는 키 작은 남자, 그러니까 보부아르에게 자꾸만 의미심장한 싯구가 적힌 쪽지를 건네준다. 루스의 살아남은 오리 로사는 이번에는 원피스를 입고 나타난다. 부활절 나무 달걀을 조각하던 체코 출신 파라 부부의 비중도 커지고, 부활한 "옛 해들리 저택" 은 새주인을 만나 스파 전용 리조트가 되어간다. 스리 파인즈에 새로운 바람이 분다. 활기차고 분주하지만, 그 바람 속에 혼돈과 살의와 불안이 섞여 있다.

 

 

냉혹한 이야기에서 우리는 비스트로의 커플을 둘러싼 비밀을 만난다. 정확히 말하면 올리비에의 비밀을. 두 사람이 왜 비스트로에 왔으며, 어떻게 비앤비를 키워갔는지가 좀 더 뚜렷해진다. 그런가 하면 또 한 커플, 클라라와 피터의 사이에서도 위태로운 기운이 감지된다. 클라라는 성공을 눈 앞에 두고 양심의 문제와 부딪힌다. 피터는 그녀를 지지하는 것 같으면서도 한편으로 그녀를 뒤흔든다. 서로를 지켜주고 존중하면서 지내려는, "우리" 안의 규칙, 스리 파인즈의 조화가 다른 이들에게는 폭력으로 다가가기도 한다. 그리고 새로운 인물들의 이야기 역시 흘러들어온다. 옛 해들리 저택을 바꾸려는 사람들, 그리고 스리 파인즈를 지키려는 사람들의 갈등이 맞부딪힌다. 수많은 기운과 갈등의 중심에 가마슈 경감이 있다. 증거가 묘연하고 사건이 암흑 속에 파묻혀 있어도, 그는 흔들리지 않는다. 이야기를 듣고 하나씩 감정을 모으고, 감정이 생겨가게 된 원인을 신중하게 추적하며 단 하나의 단서도 놓치지 않는다. 사람들을 만나고 모든 단서가 만나는 지점, 그리고 잉태된 지점을 향해 분연히 나아간다.

 

 

스리 파인즈에는 수많은 이야기가 숨겨져 있다. 아직도 들려줄 이야기가 많다 라고 저자가 넌지시 말을 건네오는 느낌이다. 사람을 죽이기도 하는 냉혹한 이야기일 수도 있고, 한 사람의 운명을 바꿔놓을 강렬한 이야기일 수도 있고, 누군가를 멀리 떠나 보내야 하는 애틋한 이야기일 수도 있다. 냉혹한 이야기에서 발아한 혼돈은 아직은 그 정체를 숨긴 채, 스리 파인즈에 웅크리고 있다.  그 웅크림을 마주하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이 다음 편으로 옮겨가는 수밖에 없겠다. 다른 계절과 풍경에서 또다시 천사처럼 쓰고 악마처럼 구성한다는 페니 여사의 또 다른 이야기를 기다려야 할 터이다. 그 이야기가 너무 잔혹하지만은  않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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