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금 - 박범신 장편소설
박범신 지음 / 한겨레출판 / 2013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한번씩 소설이 읽고 싶다. 이유는 모른다. 습관의 힘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촘촘하고 구체적인 어떤 일상의 모습을 읽고 싶은 건지도.  그래서 도서관을 휘적거리다 마땅히 당기는 게 없어 우    선  집에 있는 책부터. 오빠가 보라고 가져다 준 책들 중의 하나이다.

 

 그러고 보니 박범신의 소설을 제대로 읽은 것이 왠지 처음 같다. 그럴 리가, 라고 생각하면서도

 막상 아니라면 무얼? 이라는 질문에 쉽게 답이 나오지 않는다. 그저 여러 제목을 알고 여러 말들이

 낯익어, 기사며 에세이 등을 읽어서 익숙해지지 않았나. 그런 의미에서 어쩌면 소금은 내게 첫

 만남과도 같다. 떠도는 풍문을 처음으로 접하는.

 

 

 남성 작가들의 진한 책이라. 진하고 거칠면서도 섬세하다. 서정과 순정까지 곁들였다.

 묘령의 여인을 만나 연인이 되고, 신비롭거나 애수에 찬 한 남자를 만나 그의 인생을 듣는다.

 그러면서 그들과 화자의 인생이 포개어진다. 소금을 짓는 갈팍한 삶과 인생의 쓴맛, 단맛,

 신맛, 매운 맛까지 엿보고 맛보는 걸음이 이어진다. 그리고 빨대론이라고 했던가. 힘없는

 타인의 삶을 착취하는, 그들의 고혈을 빨아마시는 행위를 작가는 빨대에 들이대는 것에

 비유한다. 한 걸음 더 나아가 깔대기로 빨아들이는 사람들까지 있다. 빨거나 빨리거나.

 자본주의의 삶은 그런 것일까.

 

 

 그렇지만 무엇보다도 아버지. 치사해, 치사해 라고 하면서도 아이들을 위해 치사해질

 수 밖에 없는 아버지. 배롱나무처럼 아이들을 튼튼하고 환하게 받쳐주고 비춰주는 아버지.

 아버지를 조명한 책이 드물었겠느냐만은, 이 소설의 아버지는 함께 있을 때 추억하는

 존재가 아니라 더 안타깝다. 항상 떠나가고 나서야 알게 되는 것일까. 그런 의미에서

 아버지가 떠나간 뒤에 아버지에게 못다한 빚을 낯선 사내에게 헌신적으로 갚아나가는

 선명우의 보은이 눈물겹다. 이것이 내리갚음이고 내리사랑인가 하고 생각한다. 이런 마음들.

 

 

 작가의 말을 보니 막상 작가에게 첫사랑 같은 존재는 선명우의 첫사랑이기도 했던, 자신의

 첫 마음을 지켜나갔던 세희 누나였던 듯하다. 세희도 못다한 인연을 이어나가기 위함인지

 낯 모르는 아이를 데려다 자신과 선명우의 이름을 한자씩 붙여 키운다. 다하지 못한 마음이

 타인에 대한 헌신으로 이어진다. 타인들을 빨대처럼 빨아마시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술술 읽혔다. 한 장만 더, 하면서 책장을 넘겨가며 읽었다. 그러면서 생각한다. 소설이 좋다고.

 어쩌면 세상을 살리고 있는지 모른다고. 알음알음 우리가 알지도 못하는 사이에 알지도 못하는

 곳에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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