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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 아함경 - 재개정판
고익진 엮음 / 담마아카데미 / 2014년 7월
평점 :
불교 신자는 아니지만, 초기불교에 관심이 있어서 <아함경>을 읽게 되었다. <아함경>은 초기불교의 가르침을 담고 있는 경전이다. 이 경전은 다양한 판본이 존재하고 분량도 방대하므로 이 한 권을 읽었다고 해서 <아함경> 을 이해했다고 말할 수는 없다. <아함경>에는 석가모니의 탄생부터 열반에 들기까지의 전 생애와 깨달음을 얻고 부처가 되어 49년간 세상에서 설법한 말씀들을 기록하고 있다.
<중아함경 제60권 221경>에는 유명한 독화살 비유가 나온다.
말룬카풋타 존자는 편안하고 고요한 곳에서 홀로 조용히 앉아 생각하였다. ‘세존께서는 <세간은 영원한가, 덧없는가, 유한한가, 무한한가. 영혼과 육체는 하나인가, 둘인가. 여래는 사후에 있는가, 없는가, 사후에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한가, 사후에 있는 것도 아니고 없는 것도 아닌가>라는 이러한 견해들은 다 제쳐두신 채 아무 말씀도 하지 않으신다.’
이 질문들은 인간이 오랫동안 궁금해하던 물음이지만 지금까지도 답을 알 수 없는 문제이다. 이것이 인간의 지적인 한계이다. 그러나 깨달음을 얻은 세존께서는 보통의 인간이 아니기에 이에 대한 답을 알고 계실 것이라는 기대감으로 이러한 질문을 던진 것으로 볼 수 있겠지만, 말룬카풋타의 의도는 부처를 테스트하고 싶었던 마음이 더 컸던 것으로 보인다. 이에 대한 부처의 답을 들어보자.
먼저 비유가 시작된다. “어떤 사람이 몸에 독화살 때문에 매우 심한 고통을 받을 때, 그 친족들이 그를 가엾이 생각하여 의사를 불렀다. 그러나 그 사람이 ’아직 화살을 뽑아서는 안 된다. 나는 먼저 그 활이 산뽕나무로 되어 있는지, 뽕나무나 물푸레나무로 되어 있는지, 뿔로 되어 있는지를 알아야겠다.’라고 한다면, 그 사람은 마침내 그것을 알지 못한 채 그런 생각만 하다가 목숨을 마치고 마는 것과 같다. 그렇다면 나는 어떠한 법을 한결같이 말하는가. 나는 괴로움과 괴로움의 집기와 괴로움의 멸함과 괴로움을 멸하는 길을 한결같이 말한다. 이것이 ’말하지 않아야 할 것은 말하지 않고, 말하여야 할 것은 말한다‘라고 하는 것이다. 그대들은 마땅히 이렇게 지니고 배워야 한다.”
부처가 실존 인물인지는 확실치 않지만, 그가 설파했다는 말들은 꽤 의미가 있고 인간에 대한 통찰력이 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앞의 비유에서 부처는 삶에 영향을 줄 수 없는 지식보다는 인간의 본질을 아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인간의 몸은 고통의 주머니인데 그 고통은 외면한 채 왜 헛다리를 짚고 있냐고 질책하고 있다. 그 고통을 해결해야 인간은 행복해지는 것이지 사후세계는 있는가, 우주는 영원한가 등의 질문은 우리의 행복과는 무관하다는 것이다.
나는 한때 이러한 부처의 매력에 경도된 적이 있었다. 하지만 질문은 정확하게 던지지만, 그에 대한 답변은 기운이 빠지게 만든다. 답이 틀렸다는 것이 아니라 한마디로 도를 닦는 삶을 살아야 한다고 하니, 나같이 퇴폐적이고 쾌락주의적 삶을 살고 싶은 사람들에겐 절망이고 파국인 셈이다. 아마도 이게 어려우므로 사람들은 부처를 억지로 신으로 승격시켜서 불상 앞에서 108번, 3000번 절하면 고통에서 해방되고 사후세계도 보장받을 것이라 믿고 싶어졌을 것이다.
<아함경>은 초기 경전이라 그런지 허황하고 비현실적인 설화들이 남발되고 있어 중간중간 헛웃음 나오게 하는 장면들이 많이 등장한다. <아함경>이후 경전들이 점점 더 세련되어지고 정제되어 지금까지 전해지고 있지만, 그 내용과 개념들이 종교 경전 특유의 모호함으로 인해 마치 굉장한 깊이가 있는 것처럼 착시현상을 일으키는 것 같다. 이렇게 판단을 하는 근거는, 나는 어떤 사상이나 철학이 되었든 너무 많은 해석의 여지가 있는 개념은 나쁜 개념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 책을 덮으며 결국은 불교를 이해하려면 그 뿌리가 되는 힌두교를 알아야 한다는 것을 새삼 느끼게 되었다. 그리하야 언제 읽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마하바라따>를 책장에 꽂아두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