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가 되고 살이 되는 500권, 피도 살도 안되는 100권
다치바나 다카시 지음, 박성관 옮김 / 청어람미디어 / 2008년 1월
평점 :
절판


얼마 전 지인으로부터 책 한 권을 소개받았다. 580쪽 정도 되는 이 책을 여러 번 반복해서 읽을 정도로 유익하고 훌륭하다고 열을 내며 추천을 했다. 나도 그 기세에 취해 즉시 책 제목을 검색하고 장바구니에 담아놓고 다음 날 잠깐 확인 후 망설임 없이 구매했다.

그 책을 기다리는 며칠은 기대감과 흥분으로 살짝 들떠 있었다. 그리고 책이 도착하고 허겁지겁 포장지를 뜯어낸 후 덤비듯이 페이지를 넘기기 시작했다. 처음 몇 장의 스토리는 살짝 황당했지만 기대감이 남아있어서 계속 읽어 나갔다. 절반까지 읽었을 때, 나는 중대한 결정을 내려야 하는 순간이 왔음을 느꼈다. 여기서 접어야 할까? 조금 더 가 볼까? 이 분기점에서 나는 그 지인을 떠올렸다. 그래도 그분이 추천했으니 뭔가 반드시 있을 것이다, 조금만 참고 더 가 보도록 하자. 그런 마음으로 계속 나아갔고 중간중간 새어 나오는 한숨을 연료 삼아 마지막 페이지에 도달했다. 그리고 결론적으로 반전은 없었다는 그런 슬픈 사연만 남게 되었다.

이 책을 읽고 나서 많은 생각이 들었다. 나는 이 책에서 무엇을 놓친 걸까? 내 눈에는 왜 좋은 점이 하나도 보이지 않는 걸까? 처음에는 나를 탓했고, 다음에는 그 지인을 의심하고 탓했다. 모든 책이 내게 감동을 줄 수 없다는 것은 알지만 너무 기대감이 커서인지 실망감도 정비례가 아닌 2배로 크게 느껴졌다. 새삼 상대방을 잘 모르는 상태에서 책을 추천하는 건 나의 돈과 타인의 시간을 강탈하는 행위라는 생각이 들었다.

시대가 바뀌어도 내 마음에 드는 책을 고르는 건 여전히 어렵다. 내가 직접 책을 펴서 살펴보지 않고는 확인하기가 쉽지 않은 일이다. 이런 상황에서 가장 합리적인 선택은 서평집이다. 내가 신뢰하는 작가의 서평집을 읽다 보면 그나마 대물을 만날 확률이 높아진다.
다치바나 다카시는 내가 신뢰하는 작가이다. 많이 읽고 많이 쓰는 사람답게 다방면에 관심을 가지고 있어서 어떤 책을 읽고 있는지 늘 궁금한 사람 중에 한 분이다.

이 책을 읽게 된 것은 `피가 되고 살이 되는 500권`이 아닌 `피도 살도 안 되는 100권`에 끌렸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서평은 본인이 읽은 책 중에 유익하고 흥미로운 책을 골라서 소개를 할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본인에게는 좋은 책이겠지만 다른 사람에게는 개떡 취급을 받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가치관과 관심사와 배움의 과정이 다르기에 한 권의 책에 대한 생각도 각기 다를 수밖에 없을 것이다.

나름 신뢰할 만한 사람이 강하게 추천하는 책을 기대하며 읽다가 이걸 끝까지 읽어야 하나 하는 회의를 느낄 때가 가끔 있다. 순간적으로 추천한 사람을 원망하고 싶지만, 이 세상에 모든 사람을 만족시켜 줄 책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상기하며 나와 인연이 아니라 여기고 책을 덮을 수밖에 없다.

그런데 `별로다, 시시하다, 읽을 필요 없다`라고 평가하는 책들은 정말로 그럴 때가 많은 것 같다. 온라인 서점에서 감상평들을 살피다가 칭찬 일색의 글 중 가끔 별점이 하나짜리 평이 있는데 막상 그 책을 읽어보면 그 별 하나를 준 평이 정확하게 나의 감상과 맞아 떨어지는 경험을 자주 했다. 그래서 열 개의 칭찬보다 한 개의 비판적 평가가 더 유익하게 느껴진다.

직접 읽어보지 않고 타인의 평가를 잣대 삼아 책을 선택하는 것은 최선의 방법이 될 수 없지만, 너무도 많은 출판물이 쏟아지는 상황에서, 삶을 낭비하지 않기 위해 나만의 방식으로 괜찮은 서적을 찾아 나설 수밖에 없다.

다만 서평집이라는 형식으로 ’피도 살도 안 된다‘는 비판적인 내용으로만 채워진다면 독자들이 선입견을 형성하여 접근을 막을 우려가 있다. 그런 의미에서 서평집은 지금처럼 브로커요 매치메이커의 역할도 수행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끝으로, 이 책을 읽으며 안타깝게 느낀 것은 읽어보고 싶다고 생각하는 서적 중 우리나라에서 출판이 안 된 것들이 매우 많다는 것이다. 아니 이런 것도 번역이 안 됐단 말이야? 하는 탄식을 여러 번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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