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일이 일어난 방 - 존 볼턴의 백악관 회고록
존 볼턴 지음, 박산호.김도유.황선영 옮김 / 시사저널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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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표지를 살펴보면 특이한 점이 눈에 들어온다. 이 책의 번역자가 세 명이라는 것이다. 그 이유는 너무 뻔하다. 이번 번역은 시간 싸움이라는 것을 명백히 의식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나는 온라인서점에서 처음으로 예약주문을 했는데 그 첫 경험의 대상이 바로 이 책이었다. 그렇기에 출판사에서 그토록 치열하게 달려든 이유를 나는 충분히 이해한다.

미국은 우리나라에 강력하게 영향을 미치는 나라이다. 심지어 미국의 군대가 우리나라의 중심부에 자리를 펴고 드러누워 있다. 미국의 군대가 한반도에 주둔함으로써 평화가 유지되는 건지 아니면 긴장을 지속시키는 것인지 헛갈리지만, 어쨌든 세계의 경찰을 자처하는 글로벌 골목대장인 미국의 눈치를 살피며 살아야 하는 시대인지라 자석에 끌리듯이 이 책을 읽게 되었다.

고위 관리들의 회고록은 완벽하게 통제된 곳에서 어떻게 중요한 결정들이 이루어지는지 살펴볼 중요한 기회를 제공한다. 특히, 임기가 남아 있는 행정부에 관해서 내부자가 회고록을 쓰는 것은 흔치 않은 경우이다. 마치 마술사의 호주머니에 손을 넣어볼 기회를 얻은 것 같은 짜릿함을 기대케 한다.

저자인 존 볼턴은 법에 위반되는 국가기밀이 포함되지 않았다고 주장하고 있고, 트럼프 행정부는 이 책이 출판되기 전에 미리 이 책에 대한 검토 과정을 거쳤다. 말인즉슨, 이 책에서 어마어마한 비밀 문건이나 흥미롭고 놀랄만한 비하인드 스토리 따위는 기대하지 말아야 한다는 뜻이다. 이 책의 출판을 통해 존 볼턴에게 얼마만 한 이익이 생길지는 가늠이 되는데 미국의 국익에 얼마만 한 (부정적인)영향을 미칠지는 잘 모르겠다.

<이코노미스트>에서 이 책에 대해 “꼼꼼한 디테일이 가득한 책”이라고 평했는데, 이 문장의 진짜 의미는 책을 덮고 나면 알게 된다. 무슨 말인고 하니 ‘무진장 지루한 책’이라는 뜻이다. 누군가에게는 그 꼼꼼한 디테일이 흥미로웠을 수도 있겠지만 나에게는 인내력을 시험하기 위한 테스트처럼 느껴졌다. 시시콜콜함과 꼼꼼함의 차이가 무엇인지 시간이 나면 한번 생각해 보고 싶다.

이 책은 760쪽짜리 자화자찬서 혹은 자기변명서처럼 보인다. 처음부터 끝까지 나는 좋은 방향으로 가고자 하는데 항상 트럼프가 안 좋게 끌고 가 버렸다는 식이다. ‘나는 옳고 트럼프는 틀렸다’가 이 책의 핵심이다. 이런 점이 회고록의 장점이다. 이 이야기는 주인공이 가장 애국자이고 항상 이기는 스토리이다. 이 책을 읽고 가장 의외였던 것은 존 볼턴이 생각보다 글을 잘 쓴다는 것이다.

존 볼턴이 평가한 트럼프는 어떤 사람일까?
트럼프는 공사를 구분할 줄 모르며 국가를 회사 운영 하듯이 한다. 트럼프는 트윗을 올릴 때마다 자주 바보 같은 글을 올린다. 트럼프는 철학, 전략이나 외교 정책, 방위에 관한 이유보다는 정치적인 이유에 따라 국가 안보 결정을 내리는 경우가 많았다고 회고한다.
트럼프의 이러한 모습들은 익히 알고 있는 모습들이긴 한데 내부자의 증언을 통해 그의 캐릭터가 더욱 분명하게 드러난 것 같다. 결론적으로, 충동적이고 대중의 관심에 집착한다는 것이 볼턴이 생각하는 트럼프의 모습이다.

“그 편지는 쥐똥같이 작은 나라의 독재자가 쓴 겁니다.”
이 말은 김정은이 보낸 친서 때문에 우쭐해진 트럼프에게 한 말이다.
프랑스의 마크롱 대통령에 대해서는 ‘교묘한 족제비 같다’라고 평하고 있고, 문재인 대통령의 북한을 대하는 태도에 대해 ‘조현병 환자 같다’라고 투덜거리기도 한다.

한미 방위비 분담금에 대해 트럼프는 한국이 분담금을 원하는 만큼 올리지 않으면 주한미군을 철수하겠다고 소리칠 때마다 보좌관들은 당황스러워한다. 이것은 전형적인 기업가적인 협상 방식이다. 자기계발서에 자주 나오는 그런 익숙한 협상 방법이 아니던가. 물론 나로서는 제발 미군이 철수해 주었으면 좋겠지만 그런 일은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볼턴이 지적하고 있듯이 미국의 국무부와 국방부의 관점에서 주한미군 철수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볼턴의 자기변명서는 대체로 지루했지만, 미국행정부가 한반도를 바라보는 방식, 세계를 대하는 태도에 대해 조금은 엿볼 수 있었다.

국방비에만 천조억을 쓴다고 해서 ‘천조국’이라는 별칭으로도 불리는 미국. 지금은 확실히 ‘팍스 아메리카나’의 시대인 건 맞는 것 같다. 미국이 이전 시대의 제국들과 다른 점은 드러내고 침략하는 것은 자제하지만, 자국의 이익을 위해-다양한 방법으로-타국의 경제를 봉쇄하고 정치를 조정하며 분란을 일으키는 일을 끊임없이 하고 있다.

아무리 어릿광대 같은 인물이 대통령이 된다고 해도 미국은 흔들리지 않을 것이다. 그것이 미국의 힘이며 자신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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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달 2022-08-08 03: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