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eBook] [BL] 나무의 도시락 1 ㅣ [BL] 나무의 도시락 1
천이향 지음 / 블랑시아 / 2018년 1월
평점 :
대학시절 만난 첫사랑인 학교 후배 이진우를 끊어내지 못해 군대로 도망간 황보호림은 군대에서 휴가차 나와 처음으로 들른 게이바에서 만난 정유석과 친구 이상 연인 미만의 관계를 수년간 이어왔습니다. 그런 그들 앞에 사실은 황보호림을 사랑하던 이진우가 나타나는데...
첫 페이지 침대에서 눈을 뜬 유석 시점 부분이 너무 좋아서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유석이가 마음에 들었습니다. 차라리 시작이 호림시점이었다면 책 읽으면서 마음은 편했을 것 같아요. '나무'라는 호칭에 집착하고, 그릇 수집이 취미면서도 투박하고 볼품없는 나무컵을 애지중지하는 호림을 곁에서 지켜보면서 유석이 받는 상처가 너무 와닿아서 힘들었습니다. 유석은 직선적인 성격인데도 눈치가 좋고 배려심이 깊어 첫 만남때부터 호림을 잘 보듬어 주려고 노력합니다. 그런게 읽는 사람에게도 보여서 더 가슴이 아팠어요.
호림은 동성연애가 사회통념상 받아지기 힘든 것인데, 사랑하는 사람에게 자기 감정을 몰아붙일 수 없다는 이유로 도피해놓고 첫사랑을 잊지 못하는 상태에서 유석에게도 감정이 생겨 둘 사이에 괴로워합니다. 그걸 보는 제 마음속 삐딱이가 '넌 양손에 쥐고 고르기만 하면 되니, 좋냐?' 하고 호림에게 자꾸 시비를 걸어서 읽는데 시간이 좀 걸렸네요.
이진우는 가장 불쌍한 등장인물인데 제가 유석을 너무 좋아하게 되어버려서 측은지심이 일어나지 않아 슬펐습니다. 대학 선배를 사랑했을 뿐인데, 심지어 (유석이는 모르지만)선배도 자신을 좋아했는데 둘이 여행갔다 온 다음날 말도 없이 군대에 가버렸으니 얼마나 슬펐을까요. 힘들게 찾아내서 면회를 갔더니 유석과 묘한 기류를 풍기는 호림의 모습을 본 진우의 마음은 또 얼마나 아팠을까요. 지금은 유지환이라는 파트너가 있지만 그래도 마음 준 사람은 나무형 하나뿐인데, 그 형이 자신을 묘하게 피하니 얼마나 서러울까요.
전 이 책 읽으면서 작가님 바짓가랑이 붙들고 제발 호림이랑 진우 이어주시고 유석이는 빼면 안되나 사정하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유석이가 호림이 좋다는데 어쩌겠어요. 독자도 호림이에게 정 붙여야겠죠. 어떤 진상짓을 하는 주인공이 나와도 애정주려 노력하는데, 호림이는 그게 쉽지 않아서 힘들었습니다. 너만 마음 정하면 되는데 그게 안되니 셋 모두 힘들지 않냐고 소리치고 싶었어요. 책 전개도 잔잔하고 감정도 휘몰아치지 않는데, 읽는 제 마음속에만 태풍이 일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