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Book] [BL] 서로 다른 위치에서
까만고래 / BLYNUE 블리뉴 / 201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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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채로운 눈동자 색과 머리 색을 가진 다색인과, 까만 머리에 까만 눈을 가진 무색인.

둘은 사이 좋은 관계였지만 욕심 많은 다색인이 무색인의 영역까지 침범하려 전쟁을 일으키고,

오랜 핍박을 견디다 못한 무색인이 반기를 들어 무색인이 모든 것을 지배하는 사회가 되는데...


힘이 있는 무색인 가정에서 태어나, 어려울 것 없이 행복하게 자란 강여름과 여름에게 주어진 모르모트 단. 단을 자신과 마찬가지의 동등한 인격체로 존중하고 싶은 여름이지만 둘은 서로 다른 위치에 존재했기에 여름의 의도와는 상관 없이 단을 배려해서 하는 행동들은 단에게 서로의 위치가 얼마나 다른가를 확인하는 결과만을 가져옵니다.


자신을 위해 주어진 다색인을 소중히 아끼는 여름과, 세상을 살아가는 유일한 이유가 여름인 단인지만 둘만의 세계에 갇혀 있고자 하지 않는 이상 세상과 접촉해야 했고 세상은 그런 둘을 용납하지 않을 것을 둘은 알고 있기에 자신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고자 합니다.


내용이 긴 편이고 꽤나 집중해서 읽었으나 다 읽은 후에는 가슴에 무언가 얹힌듯 답답한 느낌과, 둘 앞에 놓인 시련이 생각나 먹먹하네요. 여름만 있으면 되는 단과 단을 지킬 수 있으면 무슨짓이든 하겠다는 여름이 서로를 그렇게나 사랑하는데, 꽉 막힌 사회가 그걸 방해하는데다 탈출구도 보이지 않는 느낌이랄까요. 그래서 나름 해피하게 끝났지만 마음은 가벼워지지 않았습니다.


소설로 적기 위해 세계관 및 다색인과 무색인의 관계가 과장되게 표현되는 감이 없지 않아 있지만, 참 낯설지 않은 설정이네요. 우리 사회의 과거부터 현재까지를 현미경으로 확대해서 보면 이런 느낌일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역사는 승자의 논리로 작성되고, 진실이 어떤지 알 수 없지만 과거의 잘못을 근거로 현재의 다색인에게 세뇌교육 및 폭력을 일삼는 무색인은 객관적인 시각으로 보자면 과거의 다색인과 무엇이 다른가 묻고 싶었어요. 이런 질문을 하는 사람은 작품에 잠깐 나온 교수 뿐이고 그나마도 영향력이 없다는 사실이 더 우울하게 느껴졌습니다. 교수님이나 윤재현은 흥미로운 캐릭터였는데 비중이 얼마 없어서 아쉬웠어요.


본편 뒤에 호불호가 갈릴 두 편의 외전이 있는데 저는 둘 다 너무 만족했어요.

외전 1은 약간의 리버스 요소(?)가 있었는데 리버스가 왜 문제가 되는지 잘 이해를 못해서(...) 그냥 즐겁게 읽었습니다. 여름이와 단이의 성격이 아주 잘 드러나 있어서 더 좋았습니다.


외전 2는 제가 참말로 좋아하는, 그래서 기대를 많이 했던 루트네요. 본편의 여름은 성자의 화신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착하기만 해서 잠깐 실망도 했는데 외전의 여름은 제 마음에 쏙 들었습니다. 본편의 여름이 결정이 여름이 성격과 내용 전개 상 맞는 것이지만, 취향은 아무래도 외전쪽이라서 인상깊었네요. 단이 처음으로 체벌받을 때 여름이 아버지 옆의 다색인이 단과 무척 닮았다는 이야기를 하는데, 그 둘의 관계도 단과 여름의 관계랑 비슷하지 않았을까 싶었거든요. 여름의 성격을 파악하고 훈육 한 여름의 아버지 성격을 생각하면 불가능은 아니지 않을까 싶었는데, 외전 2의 여름이라면 가능할 것 같았습니다. 단은 제 핏줄이라도 여름의 명령이면 절대복종 가능할 것 같았고요.


생각할 것이 많은 소설은 장르 불문 환영인데,BL에서 만나니 더욱 뜻깊고 좋았습니다. 비록 제 기준 미묘한 해피엔드였지만 짱쎈먼치킨 뭐든 다 해결하는 주인공이 나오는 것 보다 훨씬 현실성 있고, 더 여운이 남는 결말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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