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네 재원 아트북 42
재원 편집부 엮음 / 재원 / 200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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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인상파라는 단어를 만들게 한 사람, 바로 에두아르 마네다. 인상파는 관상쟁이나 뭐 이런것을 뜻하는 것이 아니다. 빛에 따라서 시시각각 변화하는 자연을, 그 상태 그대로 표현하고자 하는 기법이다. 마네는 부르주아다. 그가 활동하던 당시의 프랑스는 살롱전이라고 해서, 돈 많은 사람들이 저택을 장식하기 위해서 살롱에 전시된 그림을 구입하던 시절이다. 그런데 마네의 작품은 살롱에서 그리 인기가 없었다고 한다. 이에 화가난 마네는 더이상 살롱에 작품을 내지 않고 자기 혼자만의 회화전을 열었다. 이것이 바로 역사상 기록된 최조의 개인전이다. 참고로, 우리는 살롱하면 술집을 떠올리지만 --미국의 서부영화에도 보면 매춘과 술집의 이미지로 그려짐-- 당시는 프랑스에서 살롱은 문화와 지성의 산실이었으며, 나중에 프랑스 혁명의 사상적 기반이 이 장소에서 탄생이 된다.


한편, 마네하면 '풀반 위의 식가' 를 제일 먼저 떠올리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이 작품은 까만 옷을 입은 2명의 남자가 풀밭에 앉아있고 그 옆에 전라의 여인네가 옆으로 앉아 시선을 화가에게 돌리고 있으며 조금 떨어진 또 한명의 여인이 속옷차림으로 등장하는 그림이다. 이 그림은 당시로서는 매우 파격적이 것이었기 때문에, 구경꾼들이 갖고간 우산으로 작품을 훼손하려고 했다고 한다. 그리하여 사람 키가 닿지 않도록 높이 걸어서 전시를 했다고 한다. ㅎㅎㅎ, 이러한 경력이 있는 이 작품은 현대에 와서도 공격의 대상이 되고 있는데, 페미니즘 운동에 의해서 남성 우월사상을 그대로 반영한 것이라는 주장이다. 독자 여러분의 생각은 어떠하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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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NOIR - 피에르 오귀스뜨 르느와르 위대한 미술가의 얼굴 7
소피 모네레 지음, 문봉섭 옮김 / 열화당 / 199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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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가 좋아하는 화가 중의 한 명이 바로 인상주의를 살다간 피에르 오귀스트 르누아르이다. 화사한 그림체와 풍만하고 아름다운 여성이 그의 전매특허이며, 결코 심각하거나 우울한 작품은 남기지를 않았다. 그것도 주로 상류층 여인을 모델로 삼았는데, 그는 공공연히 다음과 같이 밝히고 있다. [여자의 가슴이 없었다면 결코 화가가 되지 않았을 것이다]. ㅎㅎ 정말 솔직한 말이다. 그렇다면 르누아르가 부유안 집안의 자제였던가? 천만의 말씀. 그 웬수같은 놈의 돈이 없어서 그는 제대로 된 교육도 받지 못했다. 게다가 미술재료를 살 돈이 없어서 때로는 그림을 그릴 수조차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항상 아름답고 밝은 면만을 보고자 했다. 그렇게 해서 그의 걸작들이 세상에 남겨지게 된다. 어떤 이는 자신이 처한 환경에 좌절하여 잘못된 길로 가기도 하지만, 르누아르는 항상 빛을 향해 나아갔다. 그리하여 글래머스런 여성들을 자신만의 해석을 닮아 아름답게 그려냈다.


고단한 삶, 미래가 암울한 현실에서도 그는 결코 좌절하지 않았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삐뚤어지는 길을 택하거나 거기서 멈춰버리는 것을 볼때 르누아르 일생은 정말로 본받을 만 하다. 하지만 한 편으로는 이렇게 긍정적인 면만을 보고자 하는 것은 어쩌면 타고난 것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의 유명세나 걸작을 떠나서 필자가 닮고 싶은 부분이 바로 이것이다. 인간은 가능성의 동물이다. 자신이 되고자 하는 바를 명확히 알고 좌절하지만 않는다면, 대중적으로 성공하지 못하더라도 행복한 삶을 살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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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가.춤.데생
폴 발레리 지음, 김현 옮김 / 열화당 / 200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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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평생 외길만 파는 사람이 있다. 드가가 그렇다. 그는 오로지 발레리나만을 그렸다. 그것도 화려한 무대에서의 발레리나가 아니라, 무대 뒤편의 연습실을 주로 그렸다. 왜 그랬을까? 아마도 그의 기질 때문이 아니었을까 짐작해본다. 그는 평생을 독신으로 보냈는데, 주된 이유는 인간에 대한 환멸 때문이다. 아마도 발레리나만을 그리려했던 것은 그의 이런 성격때문이 아니었을까 싶다. 필자는 이제 좋은 면만을 바라보고자 한다. 드가에 대한 해석을 달리 해 보자. 그가 발레리나를 주려 그렸던 것은 인간에 대한 혐오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 반대되는 것에 대한 동경 때문은 아니었을까? 예를  들어, 아마도 그가 경험해보지 못한 --드가는 부유한 집안을 가졌음-- 서민들의 삶 때문이 아니었을까? 자신이 가지 못한 길, 자신이 경험하지 못한 것은 항상 동경으로 남을 수 밖에 없으니까 말이다.

사실 필자는 이렇게 외길을 가는 사람이 부럽다. 자신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고 있으면 목표가 생기고 거기에 집중할 수 있으니까 말이다. 나는 아직까지 정말로 뭔가 해보고 싶은 일을 발견하지 못했다. 내 정신과 에너지를 쏟아부을 대상이 있었으면 좀더 행복한 삶을 살수 있지 않을까? 나 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러할 것이다.


하지만, 필자는 에드가 드가의 작품을 볼 때마다 발레리나가 생각나지는 않는다. 내 연상기억의 프로세스에는 미국의 영화배우 더스틴 호프만이 떠오른다? 왜냐고? 그가 출연한 영화 빠삐용에서의 이름이 바로 드가이기 때문이다. ㅎㅎ 머리가 히끗희끗해서 삶이 얼마 남지 않은 빠삐용은 코코넛 열매로 얽기섥기 엮은 엉성한 구조물을 험한 파도가 몰아치는 바닷속에 던진다. 그리고 절벽에서 다이빙하여 거기에 올라타고 자유를 향해 헤엄쳐 간다. 아마도 주인공 빠삐용은 스티브 매퀸이었던가? 이젠 기억도 안나네. 주연이 아닌 조연으로 나온 더스티 호프만(드가 역)은 한쪽 다리가 부서지고 한쪽 알에는 금이 간 안경을 끼고 그를 향해 마지막 인사를 건넨다. 난 이제 삶이 얼마 남지 않았기에 더 이상 탈출하려고 애를 쓰고 싶지 않다네. 그저 이 평화로운 감옥(섬)에서 일생을 마치길 원할 뿐이야~.
그리고 이 장면이 흐른뒤에 나레이션으로, 빠삐용은 얼마 남지 않은 삶을 자유인으로 살았다고 나온다. 어떻게 하다보니 드가에 대한 서평이 아니고 영화의 줄거리 소개가 되어버렸군.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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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 세잔 - 색채와 형태의 미학 마로니에북스 Art Book 2
실비아 보르게시 지음, 김희진 옮김 / 마로니에북스 / 200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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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기 인상파를 이끈 세잔은 당대의 예술가들에게 그다지 인정받지는 못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만의 외길을 꿋꿋히 걸었으며, 후대의 입체파와 추상화에 큰 영향을 끼쳤다. 그래서 사후에야 인정 받았던 화가 중의 한 사람이 되었다. 이 책은 그런 세잔에 대해서 말하고 있는데, 전반부는 그의 지인들이 나와서 세잔에 대해 추억하는 내용이다. 그리고 후반은 그의 친구였던 에밀 졸라와의 에피소드와 함께, 나중에 그와 결별하는 이야기로 꾸며져있다. 왜 헤어졌을까? 졸라가 그의 소설에서 세잔을 실패한 화가로 그렸기 때문에, 마음이 무척이나 상했기 때문이다. 친구나 동료, 가족들이 주는 상처는 매우 큰 상실감을 가져온다.


한편, 필자가 기억하는 세잔의 걸작은 목욕하는 남자들이다. 이와 쌍을 이루는 목욕하는 여인들도 있지만 자꾸만 눈길이 가는 것은 전자다. 세잔 스타일을 보여주는 평범한 그림이다. 정면의 두 남자는 뒷모습으로 그려지고 한 남자는 완전한 나체, 다른 사람은 흰팬츠만 입고 있다. 그 양 옆으로 한쪽 다리를 구부린 남자가 정면을 응시하며 --이 인물은 다른 사람에 비해 푸른색조가 상당히 짙게 드리워져 있음-- 흰 팬츠의 우측에는 이제 막 물속으로 들어가려는 남자의 엉덩이와 발걸음이 경쾌하게 표현되어 있다. 그리고 약간 멀리 있는 여러명의 사람들이 각각의 포즈를 취하고 있다. 배경으로는 하늘색과 흰구름, 인체의 피부색과 녹색의 나무들이 있다. 왜 이렇게 이 그림에 시선이 가는줄 모르겠다. 흠. 아마도 한쪽 무릎을 기울인 남자의 바로 아래에 물속에서 얼굴만 드러낸 한 남자가 관찰자를 뚫어져라 쳐다보는 그 장면에서 뭔가 코믹함을 느꼈기 때문일까? 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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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견과 몽유도원도
안휘준 지음 / 사회평론 / 200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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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견을 대표하는 작품이 바로 몽유도원도다. 원래 이 작품은 안평대군이 꿈속에서 이상향을 걸으면서 풍경에 취했는데, 깨고 나니 그 아쉬움이 커서 안견에게 청하여 그림을 그렸다고 한다. 필자는 이 일화를 볼때마다 놀랍기 그지없다. 보지도 못한 상태에서 안평대군의 말 만을 듣고 이러한 걸작을 만들어낼 수 있다니말이다. 완성된 작품을 보고 크게 만족하였는데 --어떤 경로로 그리되었는지는 불분명하고-- 현재는 일본에 그 진품이 있다. 아뭏든 이 책은 안견의 일대기와 여러 산수화 작품을 소개하고는 있는데, 그림이 품질이 썩 좋지는 않다. 도판도 작아서 상당히 아쉬움이 남는다. 아마도 원본을 보는 것이 제한적이라서  그런것이 아닐까 한다.


한편, 충남 서산에는 안견 박물관이 있다. 여기에서 그의 모든 작품을 감상할 수 있으니 시간이 되면 한번 찾아가 볼 일이다. 아다시피 안평대군은 세종의 셋째 아들이며, 오늘날로 치자면 예술계를 후원하는 왕족이라서 그 주위에 여러 문인과 예술가들이 넘쳐났다고 한다. 그 또한 이름난 명필가로 유명한데, 안타깝게도 세조(수양대군)가 왕위를 찬탈하면서 목숨을 잃게된다. 이때 성상문과 박팽년, 정인지 등의 문인이 몽유도원도에 시를 적었는데 이들도 함께 저세상으로 가게된다. 이들의 위패를 모신 곳이 바로 서울 노량진에 있는 사육신묘와 사육신 공원이다. 한편, 안견과 신숙주는 살아남는데 전자의 이후 기록은 남아 있지 않고, 후자는 숙주나물 이라는 비아냥을 받으면서 오늘날에도 조롱거리가 되고 있다. 아마도 안견은 수양대군에게 협조했다는 양심의 가책 때문에 은둔의 삶을 산 것이 아닐까? 이러한 비운 때문인지 그의 진품이 일본 천리대학교에 소장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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