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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의 길 1 - 노몬한의 조선인
이재익 지음 / 황소북스 / 2011년 10월
평점 :
절판
한편의 전쟁영화를 본듯하다. 지금껏 내가 읽었던 이재익 작가의 책들 '압구정 소년들', '서울대 야구부의 영광', '싱크홀' 은 현대적 싯점의 공감가는 이야기들이었다. 그리고 쉽고 잘 읽혔다. 재난을 소재로한 '싱크홀'마저 가볍지는 않은 소재 였지만, 가볍게 읽었었다. 작가가 몇년에 걸쳐 심혈을 기울여 작업 했다는 이 책 '아버지의 길'도 물론 잘 읽혔지만 다른책에서는 느낄 수 없었던 상당히 묵직한 무언가가 느껴지는 책이었다. 역사적인 실화를 바탕으로 한국 근 현대사의 비극과 아픔을, 그리고 그 역사의 현장에서 겪은 김길수라는 한 남자의 파란만장한 삶과 슬프고 애절한 인생이야기가 펼쳐진다. 어쩌면 이렇게도 험난한 인생을 살아야 하는지, 그런 삶을 사는 사람들의 목숨은 또 어찌 이다지도 질긴 것인지. 역사의 수레바퀴는 꼭 이런 사람들에게는 왜 그리 또 가혹한지... 책을 읽는 내내 길수의 악몽같은 하루하루가 내것인양 가슴 아팠고, 이 고비를 넘기면 또 어떤 난관이 그의 앞을 막아설지 두려웠고, 그 두려움이 마치 거짓말처럼 그의 앞에 다시 나타남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이야기는 어느 탈북 할아버지의 증언으로 시작된다. 자신과 아버지를 두고 대의 명분을 쫓아 홀로 독립운동에 나선 엄마 월화. 집으로 향하던 길에서 붙잡혀 일순간 전쟁터로 강제 징집되어 떠나버린 아버지. 그 엄마와 아버지, 그리고 전쟁에 대한 아들 건우의 길고 긴 증언이었다. 아버지 길수는 노몬한 전투, 독소전쟁, 노르망디 상륙작전등에서 총알받이로, 몽골, 러시아, 독일등에서 포로수용소 생활로 무섭게도 험난한 생활을 견뎌낸다. 그 질긴 삶의 원인은 바로 아들 건우 때문이다. 아들을 만나기 위해 죽음을 무릅쓰고 살아남는 그 지난하고 험난한 길이 아버지의 길 이었을까. 머리통이 깨지는 사람을 눈앞에서 보고, 쏟아지는 내장을 부여잡고 뛰는 사람, 굶주림에 지친 사람들이 서로의 살을 뜯어먹는 전쟁터에서도 아들을 만나기 위한 일념으로 버텨나가는 길수의 삶. 목숨이 붙어있다 한들 그 삶이 살아있는 삶이라 할 수 있을까. 각각의 사연을 가지고 일본군으로 징집된 조선인들. 대부분은 타의로 강제 징집된 사람들이었다. 그 사람들이 바로 우리의 아버지였고, 할아버지였다.
43만대의 전투차량, 1만여대의 폭격기와 전투기들. 7천여척의 함정들. 309만 8259톤의 보급품이 동원된 전투. 1944년 6월부터 8월까지 100만명 이상의 독일군과 205만명 이상의 연합군이 서로를 괴멸하기 위해 모든것을 쏟아부은 지옥의 전투. 작전명 오버로드. 노르망디 상륙작전 (2권 304쪽)
일본군으로 징집되어 노몬한으로 왔습니다. 거기서 소련군과 전투를 벌이다가 포로로 잡혔습니다. 굴락에 갇혀 있다가 다시 소련군으로 끌려가서 스탈린그라드 전투에 참전했습니다. 거기서 독일군에게 잡혀 포로가 되었습니다. 나치 수용소에 있다가 동방부대로 차출이 되어 노르망디로 왔습니다. 그리고 연합군의 포로로 잡혔습니다. 고향에 보내 주십시오. 저는 이 전쟁과 아무 상관도 없습니다. 저는 어느 편도 아닙니다. 저는 아무것도 모릅니다. 아들이 저를 기다리고 있다는 것 밖에는요. 제발 고향에 보내주십시오. (2권 316쪽)
일제 강점기. 일본 장교의 청혼을 거절 했다는 이유만으로 전쟁터의 위안부로 끌려가 하루에도 몇십명씩 군인들을 받아야 했던 명선. 소설속의 명선을 보며 아직까지도 일본과의 관계에 껄끄러움을 가지는것이 어쩌면 당연한 일이 아닐까 생각했다. 그렇게 악랄하게 인권이 유린 되었던 전쟁. 도대체 전쟁은 누구를 위한 것일까. 독일의 나치와 소련의 스탈린, 이탈리아의 무솔리니, 일본의 제국주의까지 2차 세계대전의 주축을 이루었던 나라들. 몇몇 최고 권력자들의 한낱 허황된 욕심이 부른 이 어마어마한 대재앙으로 인해 얼마나 많은 무고한 생명이 희생 되었는지. 아직도 세계 곳곳에는 전쟁이 끊임없이 발발되고 있다. 이 책을 읽으면서 무감각 했었던 전쟁에 대해 잠시나마 경각심을 다시한번 일깨우게 된다. 그리고 길수와 같이 아버지의 길을 걸으며 전쟁터에서 희생된 수많은 아버지들이 편히 잠들었기를 기도해 본다. 책을 덮었지만 한동안은 묵직한 여운이 남아 있을듯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