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이 죽었다
론 커리 주니어 지음, 이근애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1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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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너 챕터를 읽을때 까지 이 책이 단편인줄 몰랐었다.  챕터마다 새로운 등장인물과 새로운 이야기들이 마지막에 줄줄이 꿰어지는 그런 장편소설인 줄 알았다.   그런면에서 보자면 굳이 이 책도 단편이라고 꼬집어 말하지는 못하겠다.   수단의 딩카족 여자의 몸으로 땅에 내려온 신이 인간세상에서 죽어 버린다는 모티브를 잡고 신의 죽음으로 인해 나타나는 인간 군상들의 이야기가 챕터마다 펼쳐지기 때문이다.   신이 죽는다는 자체가 말도 안되는 소리이긴 하지만 작가가 이 책을 통해 이야기 하고자 하는 바가 무엇일지 책을 다 읽고 나서야 어렴풋이 알 것도 같다.   우상화 되고 숭배화 되는 신이라는 존재가 결국은 자신의 내면에 내재되어 있는 또다른 자신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사건.사고가 끊이지 않는 현시대를 살면서 누구나 한번쯤은 "오!신이시여"라며 하느님이건 부처님이건 신의 가호를 바라는 기도를 해 본적이 있을것이다.   신이 있는지 확신하진 못하지만 기도가 위로가 되고 마음의 상처를 치유받는 경험을 한 사람도  있을 것이다.   무차별적인 종교의 난립(?)으로 때론 많은 사람들이 종교를 맹신하다  위험에 빠지는 경우도 보긴 했지만, 아무튼 난 무신론자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독실한 신자도 아니므로 자신안의 믿음이 곧 신이라는 존재로 나타나는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지배적이다.
 

 

 

      중.단편이 실려있는 이 책 "신이 죽었다" 는 첫번째 이야기인 수단의 딩카족 여자의 몸으로 땅에 내려와 내전에 휘말려 죽음을 맞은 신의 짤막한 이야기 <신이 죽었다>를 비롯해, 신이 죽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열명의 청소년들이 모여 총으로 서로를 쏘아 죽이는 자살극을 다룬 <인디언 서머>, 신이 죽자 숭배할 대상이 없어진 사람들이 아이들을 숭배하게 되는 현상을 그린 <거짓우상>, 죽은 신의 육신을 뜯어 먹은 개가 신격화 되어 말을 하고 미래를 내다보는 이야기를 그린 <신의 시신을 먹은 들개 무리 중 마지막 남은 들개와의 인터뷰>등 9가지의 이야기가 실려있다.   이 모든 이야기들은 신의 죽음을 알게 된 사람들에게서 나타나는 반응과 현상들 이라고나 할까?  하지만 책을 읽다보면 이 모든 이야기들이 지금 현실에서도 똑같이 일어나고 있는 이야기들이다.   다시 말해 우리가 살고 있는 지금, "더 이상 신은 존재하지 않는다" 라는 말과 일맥상통하는 것이 아닐까 싶다.

 

 

 



맞다. 그 답이라는 건, 내게 답이 없다는 것이다. 나는 어떤 위안도 어떤 혜안도 줄 수 없다. 나는 당신의 신이 아니다. 아니 그렇다고 할지라도, 나는 구원이나 설명을 얻기 위해 당신이 찾아 헤맬 만한 그런 신이 아니다. 나는 배가 고프면 아무 거리낌 없이 당신을 잡아먹을 그런 신이다. 나를 찾기 이전과 마찬가지로, 당신은 이 세계에 벌거벗은 채 홀로 서 있다. 그러므로 이제 문제는 이것이다. 당신은 이런 진실을 견디며 살아갈 수 있는가? 아니면 이러한 진실이 당신을 파멸시키고, 공허하게 하며, 쭉정이들 속에 또 하나의 쭉정이가 되게 만들어버릴 것인가? (206쪽)

 

 

 

      무겁다면 무거운 주제의 책이었다.   하지만 작가는 단순히 '재미'로 이 책을 썼다고 한다.   신의 존재 여부와 같은 신학적 논쟁이나 권선징악, 인과응보와 같은 윤리적인 문제 보다는 인간의 본성에 촛점을 맞춘 다양한 인간상을 보라고 한다.   <거짓 우상>이라는 단편을 읽을 때는 나 자신이 아이를 키우는 엄마의 입장이다 보니 주변의 여러 엄마들을 비교하며 읽었었던것 같다.  어느 엄마 할것 없이 애지중지 키우는 우리 아이들.  그들이 바로 지금 우리 어른들의 우상이 되어 버린 웃지못할 현실.   나 역시도 그러고 있지 않나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되고 반성하게 된다.   이 책에 실린 9가지 이야기들이 요즘 우리의 현실을 대변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이야기들이었다.   작가는 자신의 단편소설이 세상에 영향을 주리라고 기대하진 않는다고 했다.  하지만 론커리 작가의 이 단편소설이 적어도 나에게는 영향을 준 것 같다고 말하고 싶다.  이제는 좀 달라져야 할 때가 되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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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드러운 양상추
에쿠니 가오리 지음, 김난주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1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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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입 베어물면 초록물이 들것같은 연초록의 속표지가 나를 잡아 끌었다.   에쿠니가오리의 책은 지금까지 단 세 편밖에 읽지를 못했다.   하지만 세 편다 나에게는 너무 좋은 책으로 기억된다.   냉정과 열정사이, 소란한 보통날, 그리고 반짝반짝 빛나는.   에쿠니가오리 특유의 잔잔하고 감성적인 문체와 작품속 여주인공들의 시크한(냉정하다면 냉정한) 성격이 절묘하게 조화를 이루며 감정표현의 끝을 보여줬다고나 할까.   아무튼 난 그렇게 느꼈었다.   간간히 에세이도 나왔었던거 같은데 나는 이 책으로 처음 그녀의 에세이를 접하게 되었다.   그 소설스러운 문체(아니 어쩌면 정말 에세이스런 문체일지도 모르는)로 어떻게 에세이를 썼을까 무척 궁금했었다.   가끔 소설작가들의 에세이집을 읽다보면 이것이 소설인지, 에세이인지 헷갈리기도 한다.  이 책을 읽으면서도  "아...에쿠니 작가는 이렇구나,  이런 음식과 과일을 좋아하는구나" 하다가도  "소설 속 이야기는 아니겠지?" 하며 약간의 의구심을 갖는 부분이 있기도 했었다.  
 

 

     푸드에세이 라는 타이틀이 굉장히 생소하면서도 상큼함을 느끼게 했던 책 '부드러운 양상추'는 작가의 일상을 엿볼 수 있는 에세이라는 특성에 한가지를 더해 작가의 일상과 함께 작가가 좋아하는 음식에 얽힌 사연과 추억, 풍경 그리고 그때 함께했던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까지 읽을꺼리(?)가 다양했다고나 할까.   40여개의 짤막짤막한 이야기들이 그녀 옆에서 그녀의 일상을 지켜보고 같이 이야기하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책 속 본문의 내용에도 잠깐 언급을  했었지만 일본 최고의 인기 여성작가 4인이 공동집필한  "치즈랑 소금이랑 콩이랑" 이라는 소설집도 급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2010년 10월에 방송된 일본 기행프로그램에 출연하여 각각 유럽의 슬로푸드와 소울 푸드를 찾아 여행을 하고 그곳을 배경으로 쓴 이야기를 엮었다고 한다.   여기서 에쿠니작가는 포르투갈의 알렌테주 지방을 여행했다는데, 그녀의 섬세하고 감성적인 묘사가 더욱 돋보이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화창한 맛이 나는 음식 필라프, 친절한 비파, 고요한 포타주, 으스대지 않는 컵라면등 음식하나에도 참 다양한 표현을 해주는 에쿠니가오리의 책 '부드러운 양상추'.  책을 읽으면서 내가 모르는 음식들이 참 많다는걸 알게 되고, 한번씩 다 먹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

 

 

물고기에는 각각의 이미지가 있다.  예를 들면, 내 느낌에 연어는 친절할 것 같다.  송어는 조금 칠칠치 못할 것 같고, 정어리는 느긋하고 명랑하고, 꼬치고기는 빈틈이 없고.  청어는 비관적이고, 넙치는 낙관적이고,  쑤기미는 신중할 것 같고, 도미는 심술궂을 것 같다.  참치는 순진하면서도 냉담한 면이 있을 것 같다.  전갱이는 성실하지만 다소 자기중심 적이고, 쥐치는 자기애가 강하고. (29쪽)


 

     혹자는 그녀의 문체가 책마다 비슷비슷해서 그 밥에 그 나물이라는 표현을 쓰기도 하지만 그래도 신간이 나오면 궁금해서 읽게 되는 마성의 작가라는 표현을 쓰기도 한다.  나 역시 에쿠니의 책들을 많이 읽지는 않았지만 소설 세권은 느낌이 참 많이 닮았던거 같다.  심지어 이 에세이 마저 소설스럽다고 해야 할까.   그렇게 서로 닮아 있는 속에서도 다른점을 확연히 집어낼 수 있는 그녀의 글들.   소설과 에세이를 가리지 않는 그녀만의 글들이 그녀의 책들에 대해 읽고싶은 욕구를 자아내게 만드는 지도 모르겠다. (물론 이건 나의 주관적인 생각이지만)  예전 표지의 단아한 모습과는 달리 이번 띠지에 실린 그녀의 사진은 책 제목 때문인지도 모르겠지만 한결 더 상큼해 보이고 도시적으로 보인다.  이 책을 읽고나니 왠지 그녀에 대해 많은 것을 알아버린 듯한 기분이다.  역시 에세이는 저자 자신에게 독자들의 발걸음을 한발짝 다가서게 만드는것 같다.  으스대지 않는 소박한 컵라면이라도 한개 먹어야 하려나..? 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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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의 길 1 - 노몬한의 조선인
이재익 지음 / 황소북스 / 201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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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편의 전쟁영화를 본듯하다.   지금껏 내가 읽었던 이재익 작가의 책들 '압구정 소년들', '서울대 야구부의 영광', '싱크홀' 은 현대적 싯점의 공감가는 이야기들이었다.   그리고 쉽고 잘 읽혔다.   재난을 소재로한 '싱크홀'마저 가볍지는 않은 소재 였지만, 가볍게 읽었었다.   작가가 몇년에 걸쳐 심혈을 기울여 작업 했다는 이 책 '아버지의 길'도 물론 잘 읽혔지만 다른책에서는 느낄 수 없었던 상당히 묵직한 무언가가 느껴지는 책이었다.   역사적인 실화를 바탕으로 한국 근 현대사의 비극과 아픔을,  그리고 그 역사의 현장에서 겪은 김길수라는 한 남자의 파란만장한 삶과 슬프고 애절한 인생이야기가 펼쳐진다.   어쩌면 이렇게도 험난한 인생을 살아야 하는지, 그런 삶을 사는 사람들의 목숨은 또 어찌 이다지도 질긴 것인지.  역사의 수레바퀴는 꼭 이런 사람들에게는 왜 그리 또 가혹한지... 책을 읽는 내내 길수의 악몽같은 하루하루가 내것인양 가슴 아팠고, 이 고비를 넘기면 또 어떤 난관이 그의 앞을 막아설지 두려웠고, 그 두려움이 마치 거짓말처럼 그의 앞에 다시 나타남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이야기는 어느 탈북 할아버지의 증언으로 시작된다.   자신과 아버지를 두고 대의 명분을 쫓아 홀로 독립운동에 나선 엄마 월화.   집으로 향하던 길에서 붙잡혀 일순간 전쟁터로 강제 징집되어 떠나버린 아버지.   그 엄마와 아버지, 그리고 전쟁에 대한 아들 건우의 길고 긴 증언이었다.   아버지 길수는 노몬한 전투, 독소전쟁, 노르망디 상륙작전등에서 총알받이로,  몽골, 러시아, 독일등에서 포로수용소 생활로 무섭게도 험난한 생활을 견뎌낸다.   그 질긴 삶의 원인은 바로 아들 건우 때문이다.   아들을 만나기 위해 죽음을 무릅쓰고 살아남는 그 지난하고 험난한 길이 아버지의 길 이었을까.   머리통이 깨지는 사람을 눈앞에서 보고, 쏟아지는 내장을 부여잡고 뛰는 사람, 굶주림에 지친 사람들이 서로의 살을 뜯어먹는 전쟁터에서도 아들을 만나기 위한 일념으로 버텨나가는  길수의 삶.   목숨이 붙어있다 한들 그 삶이 살아있는 삶이라 할 수 있을까.   각각의 사연을 가지고 일본군으로 징집된 조선인들.   대부분은 타의로 강제 징집된 사람들이었다.   그 사람들이 바로 우리의 아버지였고, 할아버지였다.

 

 

43만대의 전투차량,  1만여대의 폭격기와 전투기들.   7천여척의 함정들.   309만 8259톤의 보급품이 동원된 전투.   1944년 6월부터 8월까지 100만명 이상의 독일군과 205만명 이상의 연합군이 서로를 괴멸하기 위해 모든것을 쏟아부은 지옥의 전투.   작전명 오버로드.  노르망디 상륙작전 (2권 304쪽)

 

일본군으로 징집되어 노몬한으로 왔습니다.   거기서 소련군과 전투를 벌이다가 포로로 잡혔습니다.  굴락에 갇혀 있다가 다시 소련군으로 끌려가서 스탈린그라드 전투에 참전했습니다.  거기서 독일군에게 잡혀 포로가 되었습니다.  나치 수용소에 있다가 동방부대로 차출이 되어 노르망디로 왔습니다.  그리고 연합군의 포로로 잡혔습니다.  고향에 보내 주십시오.  저는 이 전쟁과 아무 상관도 없습니다.  저는 어느 편도 아닙니다.  저는 아무것도 모릅니다.  아들이 저를 기다리고 있다는 것 밖에는요.  제발 고향에 보내주십시오.  (2권 316쪽)

 

 

      일제 강점기.  일본 장교의 청혼을 거절 했다는 이유만으로 전쟁터의 위안부로 끌려가 하루에도 몇십명씩 군인들을 받아야 했던 명선.  소설속의 명선을 보며 아직까지도 일본과의 관계에 껄끄러움을 가지는것이 어쩌면 당연한 일이 아닐까 생각했다.  그렇게 악랄하게 인권이 유린 되었던 전쟁.  도대체 전쟁은 누구를 위한 것일까.  독일의 나치와 소련의 스탈린, 이탈리아의 무솔리니, 일본의 제국주의까지 2차 세계대전의 주축을 이루었던 나라들.  몇몇 최고 권력자들의 한낱 허황된 욕심이 부른 이 어마어마한 대재앙으로 인해 얼마나 많은 무고한 생명이 희생 되었는지.  아직도 세계 곳곳에는 전쟁이 끊임없이 발발되고 있다.  이 책을 읽으면서 무감각 했었던 전쟁에 대해 잠시나마 경각심을 다시한번 일깨우게 된다.  그리고 길수와 같이 아버지의 길을 걸으며 전쟁터에서 희생된 수많은 아버지들이 편히 잠들었기를 기도해 본다.  책을 덮었지만 한동안은 묵직한 여운이 남아 있을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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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물아홉
아데나 할펀 지음, 이진 옮김 / 비채 / 201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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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한번쯤은 자신의 옛시절을 그리워 해 본적이 있을 것이다.   나 역시 그랬고, 지금도 그렇다.   오롯한 혼자만의 여자에서 아이들의 엄마로, 한 남자의 아내로 살고 있는 지금, 언제나 항상 그립고 되돌리고 싶은것이 있다면 그건 바로 '나이'이리라.   이십대도 좋고 십대도 좋다.   소설속 할머니처럼 그 시절로 돌아가 단 하루를 살아 볼 수 있다는 생각 만으로도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짜릿함이 느껴진다.   자신이 살아온 과거를 백프로 만족하는 사람이 과연 있을까.   내 과거를 바꾸고 싶다, 뭐, 그런건 아니지만 그냥...내 젊었었던 시절을, 그때는 소중한 줄 몰랐었던 그 젊음을 다시한번 느껴보고 만끽하고 싶은 그런마음?  아무튼 이 소설속 할머니 엘리는 스물아홉살로 돌아가 하루를 살고 자신이 가져보지 못했던 불타는 사랑까지 그 하루에 이루어 냈으니 무엇이 더 필요하리오!

 

 

칠십다섯번째  생일을 맞은 엘리.   거하게 치러지는 그녀의 생일파티에서 그녀는 촛불을 끄며 소원을 빌었다.   하루만이라도 스물아홉살의 엘리가 되어 보고 싶다고... 소설속 엘리 할머니는 보통의 할머니와는 다르다.   늙는것을 죽기보다 싫어하는 할머니.  스물다섯 손녀의 찬란한 젊음을 질투하는 할머니.  주름제거에 보톡스에 젊어진다면 각종 시술도 마다않는 할머니.   그런 할머니가 다음날 아침 정말 스물아홉의 몸이 되어 깨어났다.   정신은 칠십다섯이지만 조금만 걸으면 아프던 다리도, 허리통증도 없어진 가뿐한 스물아홉의 몸으로!!!   소설은 손녀 루시와 함께 스물아홉의 젊음을 제대로 즐기는 엘리의 하루를 그려내고 있다.   루시의 친구인 재커리라는 남자와 빠져버린 단 하루의 열정적인 사랑.   남편 하워드와의 관계에서 물질적인 부족함은 모르고 살았지만 단 한가지, 사랑이 없었던 삶을 살았던 엘리는 단 하루였지만 재커리와의 사랑은 자신의 삶에 잊을 수 없는 추억과 길지않은 남은 여생을 행복한 기억으로 살아갈 수 있으리라.

 

 

이제야 알 것 같았다.   젊음은 젊은이들에 의해 낭비되고 있다는 조지 버나드 쇼의 말이 무슨 뜻인지를.  나처럼 모두가 잠깐만이라도 젊은 시절로 돌아갈 수 있다면 얼마나 멋질까?  젊음을 잃어보지 않으면 그것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짐작조차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젊음은 오직 그 가치를 아는 사람에게만 주어져야 하는 보물이다.  그것으로 무얼 해야 좋을지 모르는 사람들에게 낭비되어서는 안 된다. (55쪽)

 

문득 자신이 늙었음을 깨닫는 순간은 누구에게나 찾아온다.  처음 흰머리를 발견했을 때나 눈가의 주름을 발견했을 때를 두고 하는 말이 아니다.  더 이상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지 못한다는 사실을 깨닫는 순간을 말한는 것이다.  (218쪽)

 

 

몇개월전 구병모 작가의 "위저드 베이커리"라는 책을 읽었다.   주인공 소년이 마법의 빵집 주인에게 '타임리와인더빵'이라는걸 건네 받는걸 보며 나에게 그 빵이 있다면 어디쯤으로 돌아가고 싶은지 혼자 생각하며 행복해하던 기억이 난다.   그 시절로 돌아갈 수 있다는 생각만으로도 행복감에 젖어하던 내 모습을 다시 생각하니 우습기도 하고....아무튼 이러저러해도 난 결국 지금이 좋다.   누구도 알 수 없는 일이지만 그 시절로 다시 돌아간다 한들 지금보다 더 나아질 자신이 없기 때문일지도...그래도 하루쯤은 이십대로 돌아가 보고 싶기도 하다.  엘리할머니 완전 부럽다.  엘리의 스물아홉 어느 하루를 그려낸 이 소설은 엘리 할머니와 손녀 루시, 그리고 할머니의 딸 바바라와 할머니의 절친 프리다, 이 네사람의 이야기가 어우러지며 길지않은 하루에 일어난 여러 에피소드들이 때로는 정겹게, 때로는 슬프게, 또 때로는 지나온 삶에대해 한번쯤 다시 생각해보고 질문을 던질 수 있는 '꺼리'를 던져 주기도 한다.  책보다 영화로 보면 더 흥미로울것 같은 이야기!  영화화가 결정 되었다고 하니 개봉하면 달려가보아야 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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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백 - 존 그리샴
존 그리샴 지음, 신윤경 옮김 / 문학수첩 / 201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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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정스릴러 하면 떠오르는 작가, 존 그리샴.   작가 본인이 변호사 생활을 했기 때문인지 그의 작품은 항상 법에 대한 전문지식을 바탕으로 한 치밀하고 탄탄한 구성이 돋보인다.   사회 질서와 인간의 존엄을 지키기 위해 만들어진 법이 시간이 지남에 따라 인간에게는 위압적인 존재가 되고, 때론 돈과 권력이 법을 지배하는 경우도 보게되는 요즘.   법에 얽힌 인간문제를 고발하고 따끔한 일침을 놓아주는 그의 소설이 있었으니, 독자들의 시선을 휘어잡을수 있는 법정스릴러라는 장르를 확고히 구축한 데에는 그 만큼의 이유가 되지 않았나 싶다.   그의 책을 읽고나면 항상 생각하게 되는, 조금은 진부하지만 변하지 않는 진실.  정의는 승리하고 진실은 밝혀진다.   <고백>은 인종 차별적 살인죄 조작을 소재로 하고 있다.   꼬이고 꼬인 살인죄의 조작으로 인해 무고한 한 생명이 희생되는 사건은 빠른 전개와 강한 흡인력으로 무장되어 있다.  

 

 

텍사스주의 작은 마을 슬론.   그곳에서 일어난 열일곱살 치어리더 니콜의 실종.   증거도, 시체도, 증인도 없이 감쪽같이 사라져 버린 니콜.  시민들의 불안과 성토를 잠재우기 위해 경찰과 검찰은 전직 미식축구 선수였던 돈테드럼이라는 흑인을 범인으로 지목하고 사형선고를 내린다.   그가 사형을 선고 받기까지 진행된 소송은 정말 말도 안되는 음모와 돈테의 거짓자백을 받기위한 부패한 경찰과 검찰의 유도심문, 백인들로만 이루어진 배심원단, 거기에 시장과 주지사까지 개입되어 있다.   그로부터 9년 후, 돈테의 사형집행 4일전.   텍사스주에서 450킬로미터나 떨어져 있는 캔자스주 어느교회에서는 이 사건의 진범이라며 나타난 트래비스 보이엇이라는 사람이 키이스 목사에게 고해를 하고 있었다.   가석방 상태인 보이엇은 수차례 강간범으로 형을 살아온 무시무시한 범죄자였다.   누명을 쓰고 사형집행을 기다리는 돈테드럼,  니콜을 수차례 강간한 후 살해하고 깊은 산속에 시체를 묻어버린 트래비스 보이엇,  자신도 모르게 사건에 얽혀버린 키이스목사,  돈테의 무죄석방을 위해 9년간 싸우고 있는 로비변호사,  그리고 정당하지 않은 판결에 반감을 품은 흑인들의 폭동까지.   이 소설은 독자들에게 한 순간도 다른 생각을 허용하지 않는 몰입도를 선사한다.

 

 

"충격이었어요.  경찰과 검찰이 어떻게 증거를 일부러 감출 수 있죠?  하지만 판사들은 별로 신경쓰지 않는것 같더군요.  나는 로비의 열정적인 모습에서 눈을 뗄 수가 없었어요.  부족할 것 없이 부유하게 살아온 백인 변호사가 우리 오빠의 무죄를 마음 속 깊이 굳게 믿고 그것을 많은 사람들 앞에서 거침없이 내보이고 있었어요.  바로 그 순간 마음이 바뀐거에요.  오빠를 다시 믿게 됐죠.  그동안 오빠를 의심했던 내 자신이 부끄러웠어요." (247쪽)

 

 

인종차별적 살인죄 논란으로 미국을 떠들석하게 만들었던 O.J심슨 사건과 닮아있는 이 이야기는 다시 한번 그 사건을 떠올리게 만드는 의미심장한 메세지를 던지기도 한다.   철저하게 인권을 유린하는 비극을 세세히 느껴볼 수 있는 이야기였다.   권력의 희생양이 될 수 밖에 없었던 돈테드럼.   비록, 이 이야기가 소설일지라도 그가 사형집행전 했던 마지막 진술은 책을 읽는 내가슴에 큰 파장을 일으키는것 같았다.  "그는 두 눈을 질끈 감은 뒤, 큰 소리로 외쳤다.   저는 결백합니다.  제가 저지르지도 않은 죄 때문에 텍사스주는 저를 9년동안 감옥에 가두었습니다.  저는 니콜에게 손 한번 댄 적 없었고, 누가 그녀를 죽였는지도 모릅니다.  머지않아 당신들도 심판을 받게 될 겁니다.  진범이 밝혀지는 순간부터 당신들은 남은 평생 내 생각에 괴로워하게 될 겁니다. " (38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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