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신의 술래잡기 모삼과 무즈선의 사건파일
마옌난 지음, 류정정 옮김 / 몽실북스 / 201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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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처음으로 접해보는 중국 스릴러! 추리, 스릴러 장르는 뭐니뭐니해도 북유럽이다!라고 생각하는 일인입니다만, 제목부터 확 끌려서 읽게된 중국스릴러입니다. 내 기억속의 중국은 뭐든 빠방하게 부풀리는데는 일인자. 네 발 달린건 책상 빼고 다 먹고, 하늘을 나는건 비행기 빼고 다 먹는다는것. 그리고 그들이 만들어 내는건 뭐든 조잡하다는거. 그리고 짝퉁을 무지하게 잘 만든다는거ㅋㅋ 이렇게 나열해 놓고 보니 결코 좋은 인상은 아닙니다. 풉. 그렇지만 최근 중국에서 개발되어 나오는 휴대전화나 그 부속품들을 보면 아주 망작은 아닌듯. 그것 역시 기존 우월한 제품들을 많이 따라 만든 티가 좔좔 흐르지만 그 부분은 우리나라도 많이 그러기도 하니까요. 그렇지만 대륙의 스케일이라는것도 있으니 과연 책은 어떻게 썼을지 무척 궁금합니다.



그런데 이 책을 읽다보니, 수많은 선입견들로 부터 조금은 벗어난, 다른 눈으로 보게 되는것 같아요. 워낙에 그런 생각이 머리속에 박혀 있어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처음엔 책을 읽을때 조금 그런부분들이 방해요소가 되었던건 사실입니다만, 이야기가 전개될수록 나도 모르게 책속에 빠져서 읽었던것 같아요. 가독성이 워낙 좋다보니 다른 생각이 끼어들 틈도 없었구요. 역시나 대륙의 스케일답게 이야기속의 살인이 아주 잔인하면서 엽기적입니다. 윽.



이야기의 시작은 천재 탐정이라는 모삼이 잔인한 연쇄살인범에게 죽임을 당하기 직전의 상황입니다. L로 지칭되는 이 살인범은 모삼을 수십차례 칼로 찔렀지만 죽이지는 않습니다. 무척이나 지능적인 살인범이죠. 그저 모삼에게 참을 수 없는 고통을 주고 싶은 겁니다. 그 사건이후로 모삼은 기억을 잃게됩니다. 자신이 누구인지 무슨일을 당한건지 전혀 기억이 나지 않는 가운데 방문한 술집에서 살인사건에 휘말리게 되죠. 휘말렸다기 보단 모삼 자신이 스스로 그 사건에 뛰어든거죠. 자신이 했던 일을 몸이 기억하고 있었다고나 할까요. 그 사건을 계기로 서서히 기억을 되찾게 되는데요.



모삼과 무즈선은 중국의 셜록홈즈와 왓슨입니다. 무즈선은 법의학자인데요. 모삼과 단짝을 이루어 사건을 해결합니다. 그런데 이  인물은 좋은집안에 키 크고 잘생긴 외모, 늘 반듯한 옷차림. 더할 나위없이 여심을 자극하기 딱 좋은 인물입니다. 모삼과 무즈선이 나타나면 해결안되는 사건이 없다, 할 정도로 두 사람은 환상적인 콤비를 자랑하는데요, L은 이 두 사람에게 도전장을 내밉니다. 자신이 제시한 사건을 해결하면 한 사람이 살고 그렇지 못하면 죽을것이다.라는 전제하에 L이 주는 메세지를 따라 두 사람은 사건을 쫓기 시작합니다. 그 사건의 끝에는 반드시 L이 있을것이라고 생각한 모삼과 무즈선의 활약이 펼쳐집니다. 천재적인 두뇌와 예리한 추리력으로 사건을 하나, 둘 해결해 나가는데요. 와...이 사람들은 과연 천재였습니다. 뭐든 척척 알아내는 모삼에게서 조금 과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말입니다.



L은 암흑 속에서 악마의 신분으로 남몰래 발생하고 있는 살인 사건들을 모삼에게 넘겨주려 했다. 마치 '넌 사건 해결하는 걸 즐기지 않나? 그럼 해결해 봐. 하지만 네가 해결하지 못하면 지는 것이다!' 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151쪽)



이야기는 단순히 살인범을 쫓고, 잡고, 응징하는 내용이 아니었습니다. L이 주는 메세지를 따라가 마주한 범인들은 저마다의 사연이 있었습니다. 이 사회의 약자, 그리고 소외자들...사회에 적응 하지 못하고 늘 어두운 구석으로 숨어든 그들에게 남은건 악다구니 밖에 없었던거죠. 작가는 그들을 통해 현사회의 어두운 단면을 보여주고자 한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L은 어떻게 되었나. 과연 모삼과 무즈선은 그를 마주할 수 있었을까요. 안타깝게도 이 책은 이렇게 그냥 끝나버리네요. 허무허무...과연 L은 어떤 인물일까 궁금해서 책을 놓지 못하고 달려왔는데...이 책이 내 기억에서 잊혀질때쯤 다음 이야기가 나올까요? 얼른 다음편도 보고싶습니다. 아직까지는 우리나라에 중국 스릴러, 추리 소설이 많이 출간 된것 같지 않은데 이 책이 다음, 그 다음 중국 장르소설을 접할 수 있는 좋은 도화선이 되어 주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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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화 - 1940, 세 소녀 이야기
권비영 지음 / 북폴리오 / 201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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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우리 민족에게 있어 가장 치욕적이었고 그러면서도 가장 시련을 겪었던 시절이 바로 일제강점기죠. 학굣적 교과서에서부터 소설책이나 영화등 여러 미디어 매체를 통해서 다루어졌던 그 시절.  늘 그 시절의 이야기를 대할때면 숙연해지고 가슴이 아프지만 또 한편으론 정말 악독하고 지독했던 일본에 대한 반감이 동시에 생깁니다. 어쩜 그렇게 짐승같은 짓들을 했는지, 이건 분명 사람의 탈을 쓴 짐승이지 싶었습니다. 예전에 "마루타"라는 책을 읽었는데 그 섬뜩함이란 어떤 스릴러, 호러 소설보다 더 무서운 이야기였습니다. 그리고 그 사실들은 우리민족의 가슴엔 치유되지 않은 하나의 크나큰 상처로 깊히 박혀 있죠. 아직까지 그때 그 소녀들은 여전히 아픔을 호소하고 있지만 말입니다.



여기 그 시절의 세 소녀가 있습니다. 서로 살아온 환경과 현재의 환경이 달라도 너무 다른 소녀들. 그러나 그 소녀들은 살아온 환경이 다른만큼 각자 다른 아픔또한 갖고 있었기에 끈끈한 친구가 될 수 있었습니다. 주재소 순사를 때리고 만주로 도망간 아버지를 둔 영실. 엄마는 아버지를 찾아야겠다며 영실을 경성의 이모집으로 보냅니다. 듣던 바와는 달리 이모집 역시 궁핍했습니다. 개천 건너편의 집들은 으리으리해 보입니다. 그곳에는 일본 앞잡이 아버지를 둔 정인이 있습니다. 그런 아버지가 너무 싫은데 거기다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그녀를 멀리 보내려는 아버지. 그리고 화월각이라는 큰 기생집에서 길러진 은화. 그녀는 기생집에서 자신을 거두어주었으므로 자신은 기생이 된다는 기정사실이 죽기보다 싫습니다. 이렇게 세 소녀는 각자 큰 아픔을 갖고 있지만 서로의 아픔을 굳이 입밖으로 꺼내어 위로받지 않아도 친구라는, 우정이라는 울타리 자체가 그녀들에게 큰 힘이 되었던 거죠.



이 책은 아마 은화의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것 같습니다. 정인은 아버지의 뜻대로 환난의 시절을 피해 프랑스로 가서 미술공부를 합니다. 자신이 원치 않았지만 그럭저럭 살아가게 되죠. 그리고 영실은 이모와 같이 살게 된 일본인의 도움으로 일본에 가서 화과점에서 일하며 하고싶었던 공부를 시작하게 되죠. 그러나 은화는..? 기생집을 벗어나야 겠다고 생각한 은화는 "위안부 모집"이라는 광고를 보고 일본으로 가게 되는데요. 차라리 그냥 화월각에 남지..하는 맘이 절실하게 들었던 은화의 삶. 그나마 책 속에서는 많이 미화가 된듯 보이지만 실상은 그녀가 겪은 일의 몇십배는 더 험한 꼴을 당했으리라는 것은 누구보다 우리가 더 잘 알고 있죠.



얼마전 "귀향"이라는 영화가 개봉되었죠. 그 영화는 수익성이 보장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투자자를 찾지 못해 14년만에야 개봉을 했다고 합니다. 저도 딸아이가  선생님이 꼭 보라고 했다며 같이 보러 가자고 해서 가서 보았는데요. 이런 영화는 정말 요즘 아이들에게는 꼭 보여줘야 할 영화인것 같더라구요. 그런데 영화를 보기 몇일 전 운동하면서 어떤 아주머니 두분이 이야기를 나누시는걸 우연히 들었습니다. 두 분이 "귀향"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시더라구요. 한 분이 그 영화 봤냐며 물어보니 다른 한 분이 그 뻔한 영화를 왜 보냐고, 눈물이나 질질 짜겠지, 다 아는 이야기인데 우리는 다른영화 볼거라는 이야기를 아주 자랑스럽게 하는데 제가 다 낯이 뜨거워지는것 같더라구요. 물론, 개인적으로 그런거 안좋아 하시는 분들도 있겠지만 그런 얘기를 아주 스스럼없이 하는 것이 제가 보기엔 참 안타까웠습니다. 그렇지만 그런분들보다는 나와 같은 생각을 하시는분이 당연히 더 많다는걸 엔딩 크레딧 올라가는걸 보며 느꼈어요. 수백, 수만명의 이름이 좍 올라갈때 소름이 돋았습니다. 감동스럽기도 했구요.



그들의 고통은 끝나지 않았습니다. 그들에게나 우리 민족에게나 그 일은 그들이 사죄하지 않는 이상 영원한 아픔이자 가슴속 응어리인 것입니다. 하루빨리 그들이 모든 악몽에서 벗어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우리 또한 절대 우리의 기억속에서 그 일을 밀어내지 않고 따뜻한 시선으로 보듬어 주어야 할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우리에게 많은 생각을 하게하고, 다시 한 번 그들의 삶을 돌아보라는 의미인것 같습니다.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살아갈 자신이 없다. 다시 한 번 자살을 시도하려 한다. 지옥 같은 이곳을 빠져나갈 용기도 없고, 요시다의 배설물을 받아 내는 짓거리를 계속해야 하는 것도 견딜 수 없다. 이곳을 빠져나가다가 잡힌 여자들은 몽둥이로 얻어맞거나 구둣발에 짓이겨지기도 한다. 때로는 총살을 당하기도 한다. 이곳은 사람 사는 곳이 아니다. 짐승우리다. 전쟁의 공포를, 여자의 육체를 탐하는 일로 이겨 내려는 그들은 자신의 존재감을 여자들의 아랫도리를 훔치는 일로 증명하려는 듯이 틈만 나면 그 짓에 몰두했다. (22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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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부대 - 2015년 제3회 제주 4.3 평화문학상 수상작
장강명 지음 / 은행나무 / 201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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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픽션인가, 논픽션인가. 소설책이니 작가가 꾸며낸 이야기가 맞겠지. 하지만 책을 읽으면 읽을수록 왠지 이것은 이야기 같지 않은 이야기인것 같았습니다. 작가는 자신이 쓴 소설 중 가장 독하다고 했습니다. 네, 독했고, 또 무서웠습니다. 지금이야 많이 시들해지긴 했지만 한때는 일을 하며 틈틈이 이곳 저곳 카페를 다니며 댓글놀이 하던 때가 있었지요. 늘 컴퓨터를 끼고 일을 하다보니 그건 그냥 일상이었습니다. 그리고 내 기억속엔 엄청난 사건으로 남아있는 일도 있었고요. 오래전 일이라 기억이 가물가물 하긴 하지만 말입니다.



카페라는곳이 정말 같은 취미를 가진 사람들이 모인 곳이다 보니 대화도 잘 통하기도 하고 얼굴 한 번 못본 사람들이지만 유난히 똘똘 뭉치는 그런 경향도 있었죠. 이런 곳에서 말 한마디 잘못하면 그대로 수장되는건 일도 아닙니다. 일명 마녀사냥이라고 하죠. 내 기억속에 그 사건도 그 사람이 무얼 잘못했는지는 잘 기억이 나지 않지만 아무튼 수십 카페회원들의 질타에 그대로 수장이 되어버린 경우였습니다. 신상이 털리고 과거가 털리고 그 동안의 행적이 털리고...(정말 뭐 하나 찾아내는데는 일등인 사람들) 이래서는 더 이상 활동을 할 수가 없는거죠. 그만큼 온라인이라는곳이 무서운 곳입니다. 그렇지만 오늘 이 책을 읽고 보니 그때의 그 사건이 달리 생각이 들더라고요. 어쩌면 그 사람이 피해자는 아닐까 싶은. 아니겠지?  




세 명의 청년이 있습니다. 상품평과 후기등을 지어내어 카페나 블로그에 올려 쏠쏠하게 용돈을 벌던 청년들. 그들에게 한 업체로 부터 연락이 옵니다. 어느 회사의 노동실태를 고발한 영화가 개봉이 되었는데 여론을 조작하여 안좋은 입소문을 내라는 의뢰였죠. 그 의뢰를 받아 여론을 조작한 결과 그 영화는 보란듯이 흥행에 실패를 하고 자신들의 미약한 힘이 이렇게 엄청난 결과를 초래한다는걸 알게된 이들은 정식으로 "팀-알렙"이라는 조직을 결성하기에 이릅니다. 그리고 그들에게 큰 마수의 손길이 뻗쳐옵니다. 정체를 알 수 없는 인물로부터 진보성향의 한 커뮤니티를 박살내 달라는 의뢰를 받은거죠. 와...이 과정이 정말, 소설인줄 알고 읽으면서도 "이건 충분히 가능하겠구나" 싶었습니다. 한 두사람의 분탕질로인해 어마어마한 결속력으로 똘똘뭉친 한 단체가 정말 허무하게 무너지는 과정을 보며 사람의 말 한마디가 정말 무섭구나 싶었습니다.




사람들이 두려워하는 걸 건드려야 해. 두려움과 죄의식.
백만 명, 이백만 명을 한꺼번에 공략하는 방법은 그것뿐이야




이야기는 두 가지 관점에서 흘러가는데요. 팀-알렙의 멤버 중 한명이 진보성향 일간지 기자에게 자신들이 한 일을 폭로하는 인터뷰형식과 실제로 그 일을 해나가는 과정이 교차되면서 전개가 됩니다. 마지막에 이 인터뷰에 엄청난 반전이 숨어있는데 정말 장강명 작가, 이야기를 끌어가는 힘이 대단한것 같았습니다. 생각지도 못한 반전이었으니까요. 물론, 생각지도 못했다는건 [나]라서 그런걸수도 있지만. 아무튼 이 책은 저에게 있어 정말 충격적이었고 놀라움의 연속이었습니다. 이 소설은 2012년 국정원 불법 선거개입 사건이 모티프가 되었다고 하는데요, 그 당시 국정원소속 여직원이 3개월동안 상대진영 후보의 비방댓글을 필두로 여론조작을 했었다는 보도가 있었죠. 사실인지 어쨌는지는 모르지만 이 책이 그 부분에 대해 좀 더 화끈하게 다루어주었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인터넷이 사회 부조리를 고발하고 권위를 타파해서 민주화를 이끌 거라고도 믿었어. 거대 언론이 외면하는 문제를 작은 인터넷신문들이 취재하고, 인터넷신문조차 미처 못 보고 넘어간 어두운 틈새를 전문 지식과 양식을 갖춘 블로거들이 파고들어갈 줄 알았어. 독재 국가에서는 지금도 인터넷이 그런 고발자, 감시자 역할을 해. 그런데 한국어서도 그런가?..(중략)..거대 언론이 점잖게 기업에 겁을 주며 광고를 따냈다면 인터넷신문들은 대놓고 삥을 뜯지. 블로거들은 동네 식당을 상대로 협찬을 요구하고. 이것도 민주화라면 민주화지.(5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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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 낙엽
토머스 H. 쿡 지음, 장은재 옮김 / 고려원북스 / 201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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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가슴이 아픕니다. 스릴러 소설을 읽고 이렇게 가슴이 아파보긴 또 처음인듯 합니다. 가족으로 살아간다는건, 무엇보다 가족이라는 둘레의 안락함과 평온함이, 외부로 부터 나 자신에게 알게 모르게 가해지는 정신적이나 물리적인 압력들로부터 보호가 되고, 가족이라는 그 이름 하나만으로도 뭔가 안정감을 느낄 수 있는 그런 존재이지 않을까요. 그런 가족이 나를 믿지 못하고 무슨 일에든 의문의 눈초리로 바라본다면 그건 타인들로 부터 받는 느낌보다 몇 십배, 몇 백배는 더 큰 타격으로 다가올 것 입니다. 거기다 의심이라는 것이 한 번 시작이 되면 끝이 없이 커졌으면 커졌지 작아지지는 않는것 이잖아요. 그러고보니 의심이라는것 자체가 참 무서운 단어인것 같습니다.



에릭은 작은 사진관을 운영하며 주어진 현실에 만족하며 살아가는 소소한 가장입니다. 부인인 메러디스는 현명하고 아름다우며 대학에서 강사일을 하며 능력을 인정받은 멋진 여자이지요. 그리고 중학생인 아들 키이스는 흔한 10대의 갖은 특징을 다 보이는 소심하고 말이 없으며 만사에 의욕이 없어뵈는 소년입니다. 흔하다면 참 흔한 가정인거지요. 그들 나름은 그럭저럭 만족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이웃집 소녀 에이미가 실종이 됩니다. 키이스는 그 집에서 베이비시터로 아르바이트를 했었고 에이미가 실종되던 날 에이미를 마지막으로 본 키이스는 유력한 용의자가 되고 말죠. 그런데 문제는 아버지인 에릭입니다. 키이스를 믿고 힘을 북돋워줘야 할 아버지의 입장임에도 불구하고 에릭은 날이 갈수록 키이스가 의문스러워집니다. 그 의문은  점점 더 커지고 급기야는 키이스를 사지로 몰아가기에 이릅니다.



설명하기 어려운 불편한 기분이었다. 사물의 본성에 내재한  무엇인가가 암암리에 내게 적대적인 방향으로 바뀌고, 내 오랜 확신을 약화시카는 느낌. 마치 집의 튼튼한 기초 아래의 땅속 어딘가에서 미세한 떨림이 생겨난 듯했다. ( 32쪽)


나는 무엇을 알았던 걸까? 대답은 확실하다. 아무것도 몰랐다. 그리고 아무것도 모를때 너는 어떻게 하는가? 너는 무지 속에서 다음 발걸음을 떼어 놓는다. 앞으로 갈 수밖에 없기 때문에. 너는 그렇게 떼어놓는 발걸음이 얼마나 무모한 짓인지, 혹은 그 결과로 생겨나는 보이지 않는 일들이 얼마큼 심각한 것일지 도저히 알 수 없다. (45쪽)



휴...책을 읽는 내내 정말 가슴이 답답하고 에릭의 입장이 한편으론 이해가 되면서도 또 다른 한편으론 정말 정신차리라고 한대 후려치고 싶을 정도였습니다. 하지만 에릭에게도 아픈 과거가 있었기에, 그 아픈 과거로 인한 트라우마가 현재와 과거를 넘나들며 멀쩡한 한 남자를 이렇게나 피폐하게 만들어 버리는지 그 또한 가슴아픈 일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내가 만약 이런 상황에 처해 있다면, 나는 무조건 우리 아이를 믿을것이다 라고 생각하겠지만 혹시나...하는 생각이 정말 단 1%도 없을거란 장담은 하기 힘들것 같습니다. 아이를 못 믿어서가 아니라 어쨌든 우발적인 사고가 있을수도 있는것이고..라며 생각을 달리 해 보지만 역시나 아이에게 가해지는 상처는 키이스가 느끼는것과 다르지 않을거란 생각이 드네요.



차 사고로 돌아가신 어머니, 이것 저것 사업에 돈을 쏟아붓고 가족을 빚더미에 앉게 만든 아버지, 암에 걸려 죽어간 동생, 늘 자긍심이 부족해 하는일 마다 아버지의 호된 꾸지람을 들어야 했던 형. 이렇게 불안하고 위태로운 첫번째 가정에서 자란 에릭이 어쨌든 지금의 두번째 가정을 평탄하게 유지하기만을 바랬던 심정은 이해가 가지만 한 가정의 가장으로서 너무 현재를 지켜야지 하는 생각만으로 위험을 피하기만 하는 에릭이 참 안타깝기도 했습니다.  쿡의 작품은 얼마전 읽은 단편집 <뉴욕 미스터리>라는 책에서 처음 접했는데요. 단편임에도 불구하고 그 작품을 너무 재미있게 읽어서 그의 다른 작품을 찾던중 이웃님의 소개로 읽게된 이 책, 정말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장르소설이지만 장르소설 같지 않은, 한편의 고전을 읽는듯한 그의 문장이 저는 정말 좋았습니다. 이 책을 추천해주신 이웃님께 다시 한 번 감사함을 전하며 과연 어떤 결말이 전개될까 정말 단 한 순간도 책에서 눈을 뗄 수 없었는데요...그런데, 그런데 결말이...너무 가슴이 아팠습니다. 그 누구도 어찌 할 수 없었던 상황이었기에 더욱 안타까움이 컸었죠.



인간의 고통스런 문제 대부분은 사실에 의해서가 아니라, 그 사실에 대한 나름의 해석으로부터 온다 라고 역자님은 말씀을 하셨는데요. 그만큼 인간은 주변환경으로 인해, 그리고 생각하기에 따라 많은것이 달라질 수 있다는걸 단적으로 보여주는 이야기인것 같아요. 우리가 소중하다고 여기는 것들, 우리가 지키고 싶은 그 모든것들은 아주 사소한 말 한마디, 아주 잠깐 빗나간 한순간의 생각만으로도 허물어져 버릴만큼 취약하기 그지없습니다. 그저 우리 스스로 믿고 지킬 수 밖에요. 오늘은 우리가족에게 따뜻한 말 한마디라도 건네야겠습니다.



나는 다시 키이스를 바라보았다. 수줍음 많고 다정한 소년, 내성적이고 기묘하게 고독해 보이는 소년이 보일 따름이었다. 그 소년은 우리 모두 그럴 수밖에 없는 내면의 전투를 치르고 있었고, 우리들 누구나 그렇듯 자신의 한계를 배우는 중이었다. 부자연스러워 보이는 굴레로부터 자신을 해방시키기 위해 몸부림치는 소년, 인류 전체를 안달하게 만드는 본질인 이해할 수 없는 희망과 공포의 뒤엉킴 속의 자신을 발견하고 마는 소년이 그곳에 있었다. (33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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흉가 스토리콜렉터 40
미쓰다 신조 지음, 현정수 옮김 / 북로드 / 201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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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어린시절 외갓댁을 자주 갔어요. 옛날집치곤 꽤 큰 대가집 같은 분위기의 집이었어요. 마당도 무지 넓고, 대문 옆으론 헛간도 있었고 본채 뒤로는 바로 산이었는데 산과 집 뒷부분이 맞닿는 부분엔 약 1미터 넓이의 공간이라고 할까요. 아무튼 좀 넓은 통로가 있어요. 각 방엔 앞쪽으로 문이 나 있지만 산이 보이는 뒷쪽으로도 문이 나 있어요. 그래서 여름엔 앞,뒤 문을 활짝 열어놓으면 산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어찌나 시원하던지요. 그리고 마당에서 집을 넘어 산을 바라보면 큰 나무 하나가 보였는데 그 나무가 꼭 기린모양이라 바람불어 나무가 흔들흔들 거리면 기린이 움직이는것 같다고 언니랑 나는 늘 그 산을 바라보며 놀기도 했어요. 엄마는 한국전쟁이 발발했을 당시 10살정도의 어린나이였는데 남동생을 데리고 그 산으로 피신해서 숨어있었다고 하더라구요. 지금 이 글을 쓰면서 그때를 상상하니 왜 이렇게 맘이 몽글몽글 해지는지 그때가 너무 그리워집니다. 이젠 할머니, 할아버지 다 돌아가시고 그 집도 다른사람이 살고 있겠지만 언젠가 한번 찾아가 보고 싶어지네요.




미쓰다 신조... 저의 주관적인 생각입니다만, 이 작가분은 그 이름만으로도 왠지 소름이 오소소 돋는듯 합니다. 저는 이 작가분의 책을 "~~하는 것"으로 끝나는 일명 "도조겐야 시리즈"로 처음 만났는데요. 저는 이 시리즈도 처음 접할 때 무지무지 떨면서 읽었던 기억이 납니다. 도저히 밤에는 책을 가까이 조차 둘 수 없었지요. 그치만 이 시리즈를 두고 이웃분이 "제일 무섭지 않은 시리즈"라고 하더구만요. ㅋ 하지만 저도 이젠 그 대열에 합류할 수 있을듯 합니다. 오늘 읽은 책 <흉가>를 받기전 어마어마하게 무섭다고 다들 그러더라구요. 그래서 겁을 잔뜩 집어먹고 책을 펼쳤는데...무섭긴 무서워요. 꿈에 나올것 같아요. 그치만 가독성이 너무 좋아서 무섭지만 책장이 막 넘어가더라구요. 이런 묘한 경험 처음이야~



쇼타는 아버지의 전근으로 인해 지방 소도시로 이사를 하게 됩니다집은 산중턱에 자리잡은 단독주택인데요그곳으로 이사하며 쇼타는 가끔 안좋은 일이 생기기전 느꼈던 불길한 느낌을 계속 받게 됩니다. 그런데 또 집안 구석구석 어두운 곳에서 사람의 형체가 가끔 보이기도 합니다. 거기다 동생 모모미는 분명 혼자 방에서 놀았는데 정체모를 누군가가 자신을 찾아와서 같이 놀았다고 합니다. 이게 대체 무슨...그러던중 쇼타는 음침함으로 둘러싸여 있는 저택에 혼자 살고 있는 노파의 집을 우연히 들어갔다가 어느 소녀가 남긴 일기장을 발견하게 되는데요. 그 소녀는 바로 지금 쇼타가 살고있는 집에 살았던 소녀입니다. 일기장엔 쇼타와 쇼타의 동생이 경험한 그런일들을 그 소녀도 똑같이 경험을 했다는 이야기와 마지막엔 그 집에서 탈출하라는 절박한 메세지를 발견하게 되죠. 어둠에 가득 뒤덮인 노파의 저택에서 노파 또는 다른 무엇에게 쫓기는 장면이나 정말 좋은 친구같은 코헤이의 옆집에 살고 있는 뱀신에 빙의되어버린 여자에게 쫓기는 장면들이 아주 실감나게 표현이 되어 있습니다. 이 부분은 영화로 보면 정말 악 소리 날 정도일것 같아요. 영화는 절대 못보죠...ㅠ



<흉가>를 읽다보니 그 집이 꼭 우리 외갓댁같은 느낌이 들었습니다. 물론 쇼타의 집처럼 이 집만 외따로 떨어져 있진 않았고, 그 산이 도도산처럼 뭔가 영이 깃든 산처럼 보이지도 않았지만 말입니다. 그냥 그 집이 외갓집과 비슷한 모양새를 하고 있었는데 이 책을 읽고 보니 밤에는 우리 외갓집도 참 무서웠던 기억이 나네요. 산과 이어지는 집뒤의 그 공간은 낮에는 숨바꼭질 하는데 최적의 장소였지만 밤에는 그곳에서 바스락 소리라도 날라치면 잠이 싹 달아나기도 했으니까요. 아무튼 예전부터 집에 얽힌 이야기는 참 무서웠습니다. 더군다나 그 집이 흉가라면...



2층 베란다, 1층 복도 구석 뒷문, 1층 다다미방까지 세 곳에서 사람의 형체를 보았는데, 어쩌면 전부 다른 인물인지도 모른다. 그러고 보니 베란다와 다다미방은 어린아이, 뒷문 쪽은 어른 같기도 했다. 아니, 다다미방은 노인이라고 해야 할까? 게다가 거실에도 있다. 사람의 형체는 없었지만, 쇼타는 물론 토코도 괴이한 체험을 했다. 그곳에도 뭔가 있었던 것이다. 그렇다면....저 집에서 살해된 것은 한 사람이 아니다...(176, 177쪽)




<흉가>는 미쓰다 신조의 "집 3부작 시리즈"의 첫 번째 이야기입니다. 흉가<凶家>, 화가<禍家>, 재원<災苑>으로 이어지는 집 3부작 시리즈는 집에서 벌어지는 괴이한 사건들을 다루고 있는데요, 우리와는 뗄래야 뗄 수 없는 것이 집이라는 것인데 늘 함께하는 이 집에서의 괴이한 일들은 평상시 생활하면서도 문득문득 생각이 날것 같아 두렵긴 합니다. 실제로 흉가를 읽던 날 밤, 거의 새벽까지 잠을 못 이뤘는데 결국은 불켜고 음악까지 켜놓고나서야 잠을 잘 수 있었다는...방 구석 어두운곳에 뭔가 있는듯한 느낌이...으으..으악! 그럼에도 불구하고 심장 쫄깃한 느낌을 즐기고 싶어집니다. 자꾸 더 강한것을 찾게 되는 심리를 이제는 좀 알것 같아요. 올 여름 두번째 이야기가 나온다는데 무척 기다려지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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