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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징의 악마
모 헤이더 지음, 최필원 옮김 / 펄스 / 2013년 11월
평점 :
절판
얼마전 같이 운동하던 언니가 일본여행을 다녀왔어요. 구마모토에 큰 지진이 있은후라 그런지 그곳이랑은 좀 떨어진 교토를 다녀왔는데도 관광객이 확 줄어서 정말 좋은 여행이었다고 얼마나 입에 침이 마르게 자랑을 하시던지...일본사람들 배려심 하나는 끝내준다고, 지하철에서도 큰소리로 말하는 사람을 볼수가 없을만큼 질서정연하고 사회의식이 몸에 밴 사람들이라고...아무튼 너무너무 좋은 여행이었다, 라는 결론이었습니다. 그.러.나! 전 조금전 <난징의 악마>라는 책을 읽었습니다. 그건 과오일뿐이다. 선조들의 잘못일뿐이다, 라며 여전히 역사를 부정하고 왜곡하고 있는 일본을 보면 정말 저 사람들이 배려심이 있긴 있는건가, 사회의식, 문화의식이 뛰어난 사람들이 맞는건가,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됩니다. 일부 사람들은 그렇게 말하기도 하죠. 일부 무능한 정부 인사들에 의해 모든 일본사람들이 싸잡혀 나쁜소리를 듣는거라고. 그것도 맞는 부분이 없지는 않을 겁니다. 그렇지만 그것을 인정해 버리기엔 너무 크나큰 악행을 저지른 과거가 있기에, 그 악행을 당한 민족이 바로 우리 선조들이기에 더 화가나고 참을 수 없는 분노가 치밀어 오릅니다.
얼마전 <귀향>이라는 영화를 보았고 <몽화>라는 책을 읽었습니다. 두 이야기 모두 일제강점기 당시 꽃다운 나이의 소녀들이 영문도 모른채 끌려가 일본군의 위안부가 된 소녀들의 이야기입니다. 이미 알고 있는 내용이었지만 영화를 통해, 책을 통해 다시 보게되니, 하...정말 일본의 악랄하고도 악랄함을 다시 한 번 뼈저리게 느낄 수 있었습니다. 어쩜 인간이라는 탈을 쓰고 그런 만행을 저지를 수 있는지...그러나 그 만행은 그 전에도 있었다는 사실에 더욱 치가 떨렸습니다. 1937년 7월 일본은 중일전쟁을 일으키고 그 해 11월 상하이를 점령하고 12월 수도인 난징까지 점령하게 됩니다. 그 12월부터 다음해인 1938년 2월까지 약 3개월에 걸쳐 "대학살"의 만행을 저질렀는데요, 탈취와 강간은 물론이고 수많은 사람들을 한꺼번에 모아놓고 기관총이나 수류탄으로 몰살을 시키기도 했고, 중국인을 대상으로 병사들의 총검술 훈련을 하기도 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총알을 아끼겠다고 산채로 묻거나 휘발유를 뿌려 불태워 죽이기도 했다고 하니...ㅠㅠ <귀향>에서도 그와 같은 장면이 나오기도 합니다만, 차마 상상조차 하기 싫을 따름입니다.
<난징의 악마>는 그 무시무시한 역사적 사실인 "난징대학살"의 일부분을 다룹니다. 이것이 픽션인지 논픽션인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나의 주관적인 생각으로는 분명히 논픽션이지 않나 싶습니다. 그레이는 어린시절 우연히 본 주황색 책에서 난징에 관한 내용을 보았습니다. 그러나 그 책은 어느새 사라져버렸고, 그녀가 읽은 책에 대해 부모님과 주변사람들에게 이야기를 하면 모두 그녀를 미친사람으로 몰아부칩니다. 그래서 그녀는 오랜시간 정신병원에 갇히게 됩니다. 그러나 뜻밖에 병원에서 보게된 한 학술지에서 그 책에 대한 진실을 말해 줄 수 있는 필름의 존재를 알게됩니다. 그 필름을 가지고 있는 사람을 찾아 일본으로 오게 된 그레이. 그 사람은 바로 도쿄대학의 스충밍교수입니다. 그레이는 그 필름에 난징에 대한 모든 비밀이 들어 있을거라 확신하며 보여주길 희망하지만 스충밍은 그레이에게 하나의 제안을 합니다. 그레이가 임시로 일하게 된 클럽에 손님으로 오는 야쿠자두목에게서 그가 먹는 약의 정체를 알아오면 필름을 보여주겠다고. 그 필름을 보기위한 일념으로 목숨을 건 그레이의 여정이 시작됩니다.
이야기는 그레이의 싯점에서 서술되는 현재의 이야기와 스충밍의 싯점에서 서술되는 1937년 당시 난징에서의 이야기가 서로 교차되며 전개가 되는데요. 와...뒤로 갈수록 두 시점의 절정단계가 서로 만나면서 아주 심장이 쫄깃해지면서 난징의 만행이 적나라하게 표현된 장면에서는 숨통이 조여오기도 합니다. 그리고 일본인 야쿠자두목의 정체와 그가 먹고있는 신비의 영약의 정체가 밝혀질땐 정말 헉...하고 숨을 들이쉬게 됩니다. 그 약이 난징으로부터 이어져 온 것을 안 순간은 내가 인간이라는 것이 두렵기도 했습니다. 과연 인간이라는 존재의 악랄함은 어디까지인지...이것은 비단 일본사람이라는 그 이유뿐만이 아니라 인간 그 자체가 죄악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습니다. 이런 책은 묵혀두면 안되는 건데...그동안 읽지 않고 책장에 꽂아준 내가 미울따름입니다. 많은 분들이 이 책을 읽어봤으면 좋겠습니다.
상하이에서는 모든 게 전리품이었다. 귀, 머릿가죽, 신장, 유방. 그렇게 뜯어낸 전리품은 벨트에 걸어놓거나 모자에 꽂아놓았다. 군인들은 머릿가죽이나 생식기를 자랑스레 매달고 다녔다. 그들은 서로 기념사진을 찍어주며 마냥 즐거워했다. 어떤 군인들은 만주식으로 시원하게 민 중국인들의 머릿가죽을 부대 휘장처럼 모자 뒤에 붙이고 다녔다고 한다. (398쪽)
인간의 마음은 소속감을 느끼기 위해 스스로를 뒤집기도 한다. 가까이 있는 온기를 붙잡으려 안간힘을 다한다. 아기의 마음이라고 다를까? 하지만 스충밍에게는 그렇게 대답하지 않았다. 그의 딸이 붙잡으려 안간힘을 다했던 사람, 아기가 사랑을 느낀 유일한 사람은 준조 후유키였을 것이다. (549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