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인격전이의 살인 ㅣ 스토리콜렉터 42
니시자와 야스히코 지음, 이하윤 옮김 / 북로드 / 2016년 5월
평점 :
절판
오래전 "체인지"라는 영화를 본 적이 있습니다. 정준과 김소연이 고등학생으로 등장하는 영화인데 두 사람이 번개맞고 몸이 바뀌거든요. 남자인 정준의 몸에 여자인 김소연의 인격이 들어가고, 여자인 김소연의 몸에 남자인 정준의 인격이 들어간거죠. 그와는 또 좀 다른 영화인 "수상한 그녀"도 있습니다. 70대 할머니가 어느날 20대의 몸이 되어버려서 벌어지는 에피소드를 담은 영화인데요. 오늘 읽은 책인 <인격전이의 살인>은 아무래도 서로의 인격이 뒤바뀌는 "체인지"라는 영화와 좀 더 닮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영화에서 정준과 김소연은 처음엔 서로를 싫어하지만 인격이 뒤바뀐 자신들의 육체를 보며 서로를 이해하게 되고 연민을 느끼게 되는 과정들로 전개가 되는데요. 그 당시 참 소재가 참신하다 생각하며 정말 재미있게 본 영화입니다. 오늘 이 책을 읽으며 그때 그 영화가 떠올라 몇장면 뒤져보기도 했습니다.
캘리포니아의 한 쇼핑몰에 위치한 조그만 패스트푸드점에서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헤어진 여자친구를 쫓아 이곳까지 날아오게된 일본인 에리오는 우연히 들른 패스트푸드점에서 여러사람을 만나게 됩니다. 미모의 배우 지망생인 재클린, 프랑스인 알랭과 일본인 아야커플, 마초스타일인 미국인 랜디, 아랍계 유학생인 하니, 그리고 패스트푸드점의 종업원인 흑인 바비. 이렇게 7명은 작은 패스트푸드점에서 각자의 이야기를 하며 시간을 보내다 큰 지진을 만납니다. 쇼핑몰이 붕괴되기 직전 그들은 패스트푸드점의 한 공간을 차지하고 있던 (대피소라고 여기고 있던) 큰 통 속으로 피신을 하게 됩니다. 그 통속에 들어선 순간 그들은 각자 서 있었던 위치에서 시계방향으로 각자의 몸에 그 옆사람의 인격이 전이되는 일이 벌어지고 맙니다. 대피소라고 여겼던 그 통은 30여년전 사람의 인격을 교체하는 ‘매스커레이드’ 현상을 연구하는 미국 정부의 은밀한 연구 시설이었던 것입니다.
인격이라는 것이 실체가 있는것이 아닌데 어떻게 전이가 될까, 참으로 신기한 간접경험이 아닐 수 없습니다. 서로의 몸에 전이가 되어버린 인격은 때와 장소, 주기와는 상관없이 어떤때는 몇일에 한 번, 어떤때는 몇개월에 한 번, 또 어떤때는 하루에 서너번이라도 시계방향으로 계속 전이가 됩니다. 나를 포함한 세사람(나, A, B)이 있다고 가정했을때 나는 내가 되었다가 A가 되었다가 B가 되는 과정이 수없이 반복이 된다는 거죠. 죽을때까지. 누군가 한 사람이 죽으면 그 사람의 몸속에 있는 인격이 죽는겁니다. 나의 몸에 A의 인격이 있는 상태에서 죽게되면 내 몸과 A의 인격 둘 다 죽는셈이 되는거죠. 그래서 에리오를 비롯한 나머지 사람들은 자신의 몸에 자신의 인격이 있는 상태에서 살기 위해선(원래의 자신이 되기 위해선) 상대방이 죽어야만 한다는걸 깨닫게 됩니다. 그리고 이어지는 살인들...
책을 읽을수록 수없이 전이되는 인격들에 처음에는 한사람 한사람 따져가며 읽다가 도저히 정리가 안되어 포기. 다행스럽게도 책속에는 내 몸속에 A라는 인격이 들어갔을때 괄호속에 "나(A)" 라는 표기를 해 줍니다. 그래서 전 그냥 몸인 "나"는 포기하고 인격(실체)인 "A"만 생각하며 읽었습니다. 아무튼 작가가 천재가 아닐까 싶었습니다. 그건 그렇고, 누구나 한번쯤은 이런생각 해보지 않나요? "내가 저 사람의 얼굴과 몸매를 가졌다면 어떨까"싶은..저는 사실 남자가 한 번 되어보고 싶기는 합니다만. 너무 편할것 같아. 남자는.
이 작가분은 <인격전이의 살인>으로 처음 접하는데 이미 북로드에서도 두 권의 책이 나왔더군요. 이렇게 또 새로운 작가를 알게되었습니다. 다른 책들도 꼭 한 번 읽어봐야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