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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양치기의 편지 - 대자연이 가르쳐준 것들
제임스 리뱅크스 지음, 이수경 옮김 / 북폴리오 / 2016년 10월
평점 :
품절
너무나도 유명한 책 "월든"에 버금가는 책이라 해서 무척이나 궁금했습니다. 하지만 흥미위주로 책을 읽는 저로서는 먼저 이 책을 다 읽을 수 있을까가 제일 관건이었죠. 사실, "월든"이란 책도 반 정도 읽다가 놓았거든요. (부끄러워라) 암튼, 음...이 책의 리뷰를 지금 쓰고 있다는건 다 읽었다는 겁니다. 네, 아주 쉽게 잘 읽었습니다. 대체 어떤 내용일까도 참 궁금했는데, 이 책은 제목 그대로 진짜 영국 양치기의 편지입니다. 한마디로 저자이자 이 책의 화자로 등장하는 작가가 자신이 살아왔던 양치기로서의 삶을 들려주는 내용입니다.
양치기나 양을 떠올리면 일단 한없이 넓고 푸른 들판에서 한가로이 풀 뜯어먹는 양과 그 옆에 팔베개하고 누워 하늘에 떠다니는 구름을 보며 풀피리 부는 양치기의 모습? 너무 만화를 많이 본걸까요. ㅋ 암튼 이런 목가적인 풍경이 떠오릅니다. 무척이나 여유롭고 평화로운 풍경이죠. 그러나 책 속에서 본 양치기와 양들의 모습은 그렇게 평화롭지가 않습니다. 겨우내 양들에게 먹일 건초를 보관하는 일이나 좋은 품종의 아기양들을 받아내기 위해 암양이나 숫양들을 관리하는 일들이나, 고지대에서 방목으로 키워지는 양들에게 눈이 내리는 겨울에는 위험을 무릅쓰고 건초를 짊어지고 양들을 찾아나서는 일들이나...뭐 하나 쉬운일이 없어 보입니다.
저자이자 화자인 제임스 리뱅크스는 영국의 북서부에 있는 레이크 디스트릭트라는 곳에서 목장집안의 장남으로 태어났습니다. 아버지도 할아버지도 양치기로 자라왔고 자신또한 양치기로서의 목장생활을 하고 있으며 앞으로도 그 생활을 이어가리라 믿어 의심치 않았죠. 그리고 그 생활이 좋았습니다. 그곳 사람들은 누구나 같은 생각이었죠. 그들은 그들 나름의 생각으로 똘똘 뭉쳐서 그곳을 발전시키지도, 더 나은 모습으로 거듭나는것도 바라지 않았습니다. 어찌보면 참으로 고지식한 모습이었고 또 다른 면으로는 외세의 변화에도 불구하고 꿋꿋이 옛것을 지키려는 고집스러움으로도 보였습니다. 영국의 유명한 시인 윌리엄 워즈워스가 쓴 [북부 잉글랜드의 레이크 디스트릭트 여행을 위한 안내서]를 보고 수만명의 관광객이 그곳을 찾을때도 그들은 탐탁치 않았습니다. 그들은 날씨 좋은날, 넓게 펼쳐진 양들이 노니는 목장의 풍경만을 좋아할 뿐입니다.
이 이야기를 읽는도중 대관령의 양떼목장이 떠올랐습니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그곳을 찾는지, 그저 평화로워 보이는 들판의 목가적인 풍경만을 보고 좋다고 얼마나 떠들어 대는지... 하지만 대관령의 양떼목장은 오히려 관광상품으로 개발을 한 사례이지요. 책 속의 목장은 그들의 삶이고 현실인데 많은 사람들이 찾아와 떠들어 대는건 사실 좀 많이 불편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서울의 북촌한옥마을이나 부산의 감천문화마을 같은 경우도 마찬가지지요. 관광상품으로 자리잡혀 수입원이 되어 도움이 될런지는 몰라도 사생활이고 뭐고 다 침해당하고 늘 시끄럼고, 불편하고...제가 두곳을 다 가봤는데 정말 나 같으면 못살것 같았습니다.
저자는 보통 다른 사람들보다 늦게 공부를 시작하게 됩니다. 할아버지가 오랫동안 지켜왔던, 목장과 가까웠던 집이 목장 경영의 어려움으로 인해 외지인에게 팔려나가는 모습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집이 팔림으로 인해 아버지와 저자는 먼길을 오가며 목장일을 힘들게 이어갑니다. 그렇지만 외지인들은 쉽게 돈을 벌고 쉽게 돈을 씁니다. 그것을 본 저자는 자신의 가치관과 타협하여 옥스퍼드 대학에 들어갔지만 생각과는 달리 훌륭한 학교에는 훌륭한 사람들만 있는게 아니란걸 알게됩니다. 그곳에 있는 학생들은 모두가 비슷한 생각에 개성이 없습니다. 그렇지만 좀 더 나은 삶을 살수도 있었을텐데 대학생활을 마치고 다시 목장으로 돌아온 저자의 삶에는 뚜렷한 목적이 있습니다.
책 속에는 저자가 말하는 레이크 디스트릭트의 모습이며 양들이 풀을 뜯는 모습, 힘들게 건초더미를 옮기는 모습등 아름답지만 힘들고 고단한 양치기의 삶이 그림처럼 펼쳐집니다. 누구나 한번쯤은 상상했을 푸른초원의 그런 모습과 겪어보지 않으면 알지못할 양치기의 고단하고 바쁜 일상이 대조적이지만 직접보는듯한 묘사에 그래도 그곳이 어떤곳인지 내눈으로 직접 한번 보고싶다라는 마음이 생기는 기도 했습니다. 그 유명한 옥스퍼드 대학을 졸업했지만 다시 양치기가 된 저자를 보며 역시 사람은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살아야 행복하구나 하는걸 느낍니다. 그는 자연의 순리대로 살아왔고 앞으로도 그렇게 살아갈 것입니다. 지금도 트위트를 통해 레이크 디스트릭트에서 양을 치는 자신의 모습과 아름다운 자연의 모습을 많은 분들과 나누고 있다고 하는데 저도 이분 계정을 한번 찾아봐야 할것 같습니다.
이것은 한 가족과 한 목장의 이야기이지만, 동시에 요즘 세상에서 잊혀가는 사람들에 대한 더 커다란 이야기이기도 하다. 우리는 눈을 크게 뜨고 그 잊혀가는 사람들을 바라볼 필요가 있다. 우리의 삶과 보이지 않게 얽혀 있는 그들을, 먼 과거에 뿌리를 두고 깊은 전통 속에서 살아가는 그들을. (본문중)
내가 학교에서 좋은 성적을 받으면 할아버지는 은근히 걱정하는 눈치였다. 당신의 목장을 이어받을 후계자를 바깥세상에 빼앗길지도 모른다는 경고 신호로 느낀 것이다. 할아버지가 보기에 글자들만 빽빽한 책에서 배울 것은 별로 없었다. 학교는 다녀야 하긴 하지만 그저 마지못한 의무감에 다니는 곳이었다. (본문중)
산과 언덕으로 둘러싸인 지역에서 양을 치는 지금 이 삶의 방식 그대로가 나는 좋다. 매서운 눈보라와 지독한 폭우가 가끔 우리를 괴롭히기는 해도 말이다. 하지만 그런 날들조차 나는 도시의 건물 유리창 안에서는 결코 느낄 수 없는 ‘살아 있는 기분’을 느낄 수 있다. 이곳에서는 시간의 흐름을 초월한 어떤 영원함의 품속에 들어와 있는 설렘이 있다. 나보다 더 커다란 무언가와, 나보다 먼저 이곳에서 산 수많은 이의 삶을 관통해 저 멀고먼 세월과 맞닿아 있는 더 커다란 무언가와 끊임없이 교감하는 기분이 언제나 나를 가득 채운다. (본문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