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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자베스가 사라졌다
엠마 힐리 지음, 이영아 옮김 / 북폴리오 / 2016년 9월
평점 :
절판
할머니가 돌아가신지 20년이 다 되어 갑니다. 늘 이곳저곳 다니시며 쓸고 닦으시던 할머니. 할머니는 막내인 저를 무척이나 이뻐라 하셨어요. 그러던 할머니가 어느날 치매 진단을 받으시고 삼년동안 치매를 앓으시다 돌아가셨습니다. 그 당시 저는 직장생활을 하느라 타지로 나와 있어서 치매에 걸린 할머니를 옆에서 지켜보진 못했지만 가끔씩 집에 갈때면 치매때문에 그렇게 이뻐라 하던 나를 못 알아보시고 꾸벅 인사를 하시던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합니다. 그런 할머니 수발을 삼년동안 했던 엄마는 내가 올때만 되면 할머니가 갑자기 온순해 지신다고 하셨어요. 실제로 제가 머무르는 이틀동안 할머니는 단지 저를 못 알아볼 뿐이었지 크게 사고를 일으키는 일이 없으셨어요. 내 옆에 앉으셔서 중얼중얼 뭔가 말을 많이 하시긴 하셨어요. 거의 대부분 저는 모르는 얘기들이지만 가끔 아버지는 옛날 얘기를 하신다고, 저거 옛날 아버지 어릴때 얘기라고 하신적도 있었어요. 그런데 엄마말씀을 듣다보면 여느 치매 환자들 처럼 엄마를 많이 괴롭히셨다고 하더라구요. 고생하신 엄마께는 죄송하지만 저는 늘 정갈하신 할머니보다 치매를 앓고 계실때의 할머니가 더 귀여우셨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오늘 읽은 <엘리자베스가 사라졌다>에 등장하는 모드 할머니를 보니 우리 할머니 생각이 많이 났습니다. 했던말을 또 하고 또 하고, 무언가를 사러 나갔지만 결국 사가지고 오는건 늘 복숭아통조림입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딸도, 손녀도 알아보지 못하고...하지만 한가지 만은 절대 잊어먹지 않습니다. 바로 할머니의 절친이셨던 엘리자베스할머니가 실종되었다는 사실입니다. 엘리자베스가 실종되었다는 말과 더불어 모드할머니가 잊어먹지 않고 늘 입에 달고 사는 말이 있는데 틈만나면 딸인 헬런에게 물어봅니다. "호박을 키우려면 어디가 좋을까?", "호박은 어떻게 심지?"라고. 과연 이 호박이 무엇이길래 이렇게 끈질기게 등장할까 궁금했습니다. 그것이 그렇게 크나큰 복선이었을줄이야.
이야기는 현재 치매의 병세가 짙어지고 있는 모드 할머니 싯점과 모드가 어렸을때의 두 싯점이 계속 교차되며 진행이됩니다. 현재는 모드할머니의 절친인 엘리자베스가 사라졌고, 과거에는 모드의 언니인 수키가 어느날 갑자기 실종이 되었습니다. 모드할머니의 기억의 흐름을 쫓아가며 이 두사람의 실종사이에 무슨 연관관계가 있는 것일까 너무 궁금하여 책을 놓지를 못했습니다. 깜쪽같이 사라져 버린 언니. 형부인 프랭크도, 모드의 집 하숙생인 더글러스도, 우산을 들고다니며 모드와 수키 주위를 배회했던 미친여자도, 모두를 의심의 눈초리로 지켜보게 됩니다. 모드할머니는 늘 깜빡하고, 같은 실수를 반복하는 자신을 위해 항상 메모지를 준비해 둡니다. 주머니엔 항상 "엘리자베스가 사라졌다"라는 메모지가 있습니다. 그래서 모드는 엘리자베스가 사라진 사실을 잊을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정말 엘리자베스할머니는 사라진걸까요. 엘리자베스의 실종을 통해 과거 수키언니의 실종도 보여지며 모드는 과거와 현재를 넘나들며 그녀 머릿속의 기억들을 헤집어놓습니다.
이 책은 생각보다 참 재미나게 읽었습니다. 할머니의 기억도 떠오르고 멀지않은 훗날에 우리엄마에게도 이런일이 닥치면 난 모드의 딸 헬런처럼 엄마를 돌볼 수 있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짜증이 많은 나는 아마 폭발해 버리고 말것 같거든요.흑... 모드할머니의 말과 행동이 참 깜찍하면서 귀엽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참 슬프기도 했습니다. 작가님이 어쩜 치매환자의 심리를 이렇게 잘 아시는지 완전 몰입이 되더라구요. 이야기가 거의 끝으로 치달을즈음 마구 흩어져 있는 모드의 기억이 하나로 합쳐지며 그 속에 수많은 사건의 실마리가 묻혀 있었음을 깨닫게 됩니다. 왜 그렇게 호박에 대해 언급을 했었는지, 어째서 그렇게 엘리자베스가 사라졌다고 외치고 다녔는지...70년전 수키언니가 실종된 실마리를 모드할머니의 엉킨 기억이 되살려낼때의 그 기분. 이 책을 스릴러라고 표현하기는 좀 그렇지만 어쨌던 장르는 모드할머니의 심리를 잘파헤친 심리스릴러라고 합니다. 선선한 가을날씨에 읽기 좋은 책인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