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고반점 - 2005년 제29회 이상문학상 작품집 이상문학상 작품집
한강 외 지음 / 문학사상 / 200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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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문학상은 과연 최고의 단편 소설에게 주어지는 상인가?

과거 깊고 푸른밤,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 숨은 꽃, 하나코는 없다 등을 읽으면서 그런 생각을 했던 적이 있다. 정말 최고의 소설이구나, 라고 감탄을 하면서 이상 문학상 대상 수상작들을 읽었었다. 소설을 많이 읽던 시절이 아니었고, 아직 어린 나이였다.

그때는 과연 그런 작품들이 최고의 단편 소설들인 것 같았다. 참 어찌 이리 신기하게도 최고의 작품을 정확히 뽑아 상을 주고 많은 독자들에게 소개를 해 주는가... 심사위원들이 대단해 보였고, 소설가가 위대하게 보였던 시절이었다.

그러다가 언제부터인가 이상 문학상 수상작을 읽지 않게 되었다. 책을 많이 읽기 시작했던 시절부터였다. 포우와 알베르 카뮈의 소설을 읽기 시작했고, 요시모토 바나나와 하루키의 소설을 죄다 구입해서 읽고, 토머스 해리스와 스티븐 킹의 소설들을 탐독했으며, 엘러리 퀸과 애거스 크리스티의 추리소설들에 열광했었다. 위대한 개츠비와 호밀밭의 파수꾼, 생쥐와 인간 같은 소설들을 읽으며 과연, 이것이 최고의 소설들이구나, 찬사를 아끼지 않았었다. 대부분 외국 소설들을 읽었지만 젊은 날의 초상, 난쏘공 같은 국내 걸작 소설들도 읽었고, 김승옥과 손창섭, 양귀자, 신경숙, 은희경의 소설들을 읽으면서도 물론 감탄하고 만족을 했었다. 아무튼 그렇게 책을 읽으면서도 이상하게도 이상문학상 수상집에는 손이 가지 않았다. 은희경의 아내의 상자까지는 그래도 끝가지 읽었던 것 같다. 그러나 그 이후부터는 이상문학상 수상작을 끝까지 다 읽지 못 했다. 몇 번 그러다 보니 아예 관심을 끊게 되었다. 재미가 없었다. 감동도 없었다. 의심이 들었다. 이것이 과연 오늘날 최고의 단편 소설이 맞는가? 싶었다. 그렇다면 과거에도 그랬던 것인가? 책을 많이 읽지 않던 시절이라 무슨 소설이든 다 재미있고, 대단해 보였던 것일까? 그러나 그게 아니다. 아닌 것 같다. 과거의 이상문학상 수상작들,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이나 숨은 꽃, 하나코는 없다 등은 지금 읽어도 여전히 감탄을 금치 못하고, 또 과연, 최고였다. 

요컨데 과거의 명성을 따라가지 못 하고 있는 것 같다. 최근의 이상문학상 수상작들이... 

작년에 김훈의 화장을 읽으면서도, 언론과 비평가들이 너무 극성스럽게 칭찬을 해댔던 탓인지... 그리 대단해 보이지 않았다... 이게 그렇게 잘 된 소설인가... 의구심이 들었다. 그리고 올해는 정말 오래간만에 이상문학상 작품집을 돈을 주고 구입했고, 작정하고 거기에 실린 모든 소설들을 읽었다. 그리고, 역시... 몽고반점. 이것은 작년의 화장보다도 더 못 한것 같다... 형부와 처제의 불륜이다. 그러나 별로 충격적이지는 않다. 엇비슷한 설정을 이미 다른 장르, 다른 매체를 통해 여러 번 봐왔기 때문일까.... 심사위원들의 말처럼 읽히기는 잘 읽혔다. 설정이 설정이니 만큼... 그러나 그것말고는 심사위원들이 한 말에 별로 공감이 가지 않았다. 순수로의 회귀, 예술적 승화... 예술은 보이지 않았다. 예술가의 고뇌 같은 것도 느껴지지 않았다. 그저 본능을 주체하지 못 하는 이해할수 없는(혹은 이해하고 싶지 않은) 인간들만 보일 뿐이었다. 정말 소설 같고, 영화 같은 이야기였다. 잘 읽혔지만 읽는 내내 불편하고 불쾌했다. 뭐 이런 인간들이 다 있나, 싶었다. 몽고반점보다 한강의 자선 대표작인 아기부처가 훨씬 나았다. 내가 이상문학상 심사위원이고 한강에게 상을 줄 것 같았으면 아기부처로 일찌감치 주었을 것이다. 한강의 전작 중에서 내 여자의 열매 라는 작품도 몽고반점 보다는 좋았던 것 같다. 아무튼 나는 이상문학상 심사위원이 아니라서 그런지 몽고반점의 어디를 보고 그토록 극찬을 해야 할 지를 모르겠다. 그저, 역시... 과거의 명성에는 못 미치는 구나.... 하는 생각만 들었다. 이상문학상에 대한 내 기대가 또 한번 꺾였다. 이제는 과거처럼 심사위원들이 대단하게 보이는 일 따위는 없다. 역시, 아쉬울 뿐이다. 

하지만 다행히, 마냥 아쉽지만은 않았다. 한 줄기 희망이 있었다. 박민규의 소설 때문이다. 이번 작품집에 실린 소설 가운데 가장 빛나는 소설은 대상 수상작인 몽고반점이 아니라 박민규의 갑을고시원 체류기였다. 실망스러웠던 이 작품집에 별점을 네 개나 준 이유는 바로 박민규의 소설 때문이다. 그의 소설이 없었다면 나는 이 작품집을 사지도 않았을 것이다. 박민규는 작년에도 고마워 과연 너구리야 라는 작품으로 우수상에 이름을 올렸었다. 왜, 이 작가에게 상을 주지 않는지 알 수 없다. 물론 몇 년 후에는 분명 상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정해진 수순처럼 우수상에 몇 번 더 이름을 올리고 마침내는 대상을 수상하게 될 것이다. 따지고 보면 한강도 그런 과정을 거치고 대상을 받은 것이다. 그러나 꼭 그래야만 하는가... 몇 년이 지나면 과연 박민규의 소설은 지금보다 훨씬 더 완성도가 높고 좋아지는 것일까? 정말 시간이 흐를수록 더 좋아지는 것일까? 모르겠다. 한강의 경우 아기부처 이후 몽고반점까지 과연 어떤 발전을 보였기에 상을 준 것인지, 단적으로 몽고반점이 아기부처보다 얼마나 더 잘 된 작품이고 얼마나 더 이상 문학상에 부합하는 작품인지... 모르겠다. 아무튼 나는 이상문학상 심사위원이 아니니... 나에게는 과연 최고를 가려내고 평가할 수 있는 눈이 없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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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 귀고리 소녀
트레이시 슈발리에 지음, 양선아 옮김 / 강 / 200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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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덜란드의 천재 화가 요하네스 베르메르의 ‘진주 귀고리 소녀’는 ‘북구의 모나리자’라고 불릴 정도로 신비로움과 매혹적인 모습을 간직하고 있는 작품이다. 터번을 두르고 왼쪽 어깨 너머로 살짝 고개를 돌린 그림 속의 아름다운 소녀. 커다란 눈망울 속에는 놀라움과 기쁨, 수줍음과 떨림, 그리고 열정과 유혹의 그림자가 모두 담겨져 있는 듯 신비롭다.

그 아름다운 표정 속에 어떤 비밀이 담겨 있을까? 그녀의 머리 속에는 어떤 상념들이 있을까?

이렇게 아름다운 소녀가 그림 속에서만 존재하는 상상의 인물이라면 너무나 아쉽다. 그리하여 트레이시 슈발리에는 작가적인 상상력을 발휘하여 그림 속에 갇혀 있는 소녀를 캔버스 밖으로 끄집어낸다. 소녀의 삶을 입체적으로 채색하기 시작한다. 17세기 네덜란드 델프트의 풍경과 당시의 미술사에 대한 풍부하고 정확한 지식을 바탕으로 배경을 완성하고 상상력으로 생명을 불어 넣는다. 

 

작가는 스히강이 시내를 흐르는 네덜란드 델프트의 어느 마을로 독자를 안내한다.

그 마을에는 가난하지만 꿋꿋한 모습으로 삶을 살아가는 소녀가 있다. 소녀의 이름은 그리트. 훗날 주인이 되는 화가 베르메르는 그녀를 자신의 캔버스에 담아내고, 그녀는 그 그림 속의 주인이 된다.

그리트는 집안이 몰락하자 베르메르 저택의 하녀로 들어가게 되고 바쁘고 피곤한 일상에 지쳐간다. 그러나 그 바쁘고 피곤한 와중에도 그녀에게 유일한 기쁨이 있었는데 바로 주인의 화실을 청소하는 일이다. 주인의 화실을 청소하면서, 주인의 물건들에 묻은 먼지들을 세심하게 닦아 내면서, 아직 완성되지 않은 주인의 그림들을 보게 되고, 이해할 수는 없지만 이해하고 싶은 열망에 사로잡히게 된다. 그리트는 주인에게 연모의 정을 품게 된다. 그러나 그 사랑은 너무 힘들다. 베르메르는 이미 부인과 자식들이 있고, 그녀의 주인이다.

베르메르가 그리트에게 이루어 질 수 없는 이상의 사랑이라면 같은 마을에 사는 푸줏간 주인의 아들 피터는 현실의 사랑이 된다. 피터는 그리트를 좋아하고 두 사람이 사랑을 한다면 아무 것도 문제될 것이 없다. 오히려 두 사람은 물론 주위 사람들에게까지 좋은 일이 된다. 쉽고 순탄한 사랑인 것이다. 그러나 그리트는 선뜻 피터를 선택하지 못 한다. 그녀는 계속해서 힘들고 위태로운 사랑을 열망한다.

베르메르는 그리트를 자신의 그림 속에 담으려 하고 그녀에게 아내의 진주 귀고리를 건넨다. 그리트가 베르메르에게 이룰 수 없는 사랑을 갈망하듯 베르메르 역시 그리트에게 이룰 수 없는 이상을 갈구하고 있었다. 아내의 진주 귀고리를 한 그리트의 모습을 자신의 화폭에 담는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베르메르는 잘 알고 있다. 그것이 얼마나 위험하고 비난 받을 짓인지도 안다. 베르메르와 그리트 두 사람 모두 다 알고 있다.

그러나 그들은 마침내 그 일을 해낸다. 그리고 담담히 파국을 맞이한다.

 

이 소설은 영화 ‘세익스피어 인 러브’처럼 작가의 호기심어린 상상력에서 시작되는 소설이지만 슈발리에는 베르메르 그림 속의 신비한 소녀의 정체라는 구미 당기는 소재를 가져와 즉흥적인 재미만을 제공하는데 그치지 않는다. 소설의 바탕에는 사랑에 대한 깊은 고찰이 담겨 있다. 그것이 꼭 베르메르의 그림과 결부되지 않는다 하더라도 그 사랑은 충분히 아름답고 고귀한 것이다. 그래서 이 이야기는 훌륭한 소설이 될 수 있고, 슈발리에는 진정한 작가로 평가 받을 수 있는 것이다.

이 사랑 이야기는 도처에 깔려있는 수많은 3류 사랑 이야기들과는 비교될 수 없다. 진주 귀고리를 한 그림 속 소녀의 표정과 생각을 쉽게 읽을 수 없듯, 이 소설 속의 사랑 이야기도 쉽게 생각하고 결론지을 수 없는 것인 것 같다. 따지고 보면 모호한 것은 없지만 결코 단순하게 해석할 수도 없는 사랑 이야기다. 이것이 사랑의 속성인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이 소설의 가장 큰 장점은 사랑의 의미를 되짚고 고찰하는 뜻 깊은 기회를 제공해 준 것이 아니라 잘 읽힌다는 것이다. 잘 읽힌다. 이 한 마디로 이 소설은 충분히 읽을 가치가 있었고, 베스트셀러가 되기에 충분했고, 세계적인 명작이 될 수 있었다, 고 생각한다. 주인공 그리트의 남루한 일상과 절제된 감정의 흐름들을 손에 잡힐 듯 생생하게 묘사한 작가의 대단한 필력에도 감탄을 금치 못 했다.

책을 읽고나니 동명의 영화가 보고 싶어진다. 이제 그 매력적인 소녀를 문자가 아닌 영상으로 만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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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영웅전설 - 제8회 문학동네신인작가상 수상작
박민규 지음 / 문학동네 / 200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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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민규다. 박민규의 첫 소설에 대한 얘기를 하려고 한다.

 

펠리컨을 타고 몇 억 광년 은하계를 비행하여 개복치 같은 지구에 처음 발을 들여 놓은 암수 구분이 없는 괴이한 몰골의 외계인 같은 그의 첫 소설은, 자신들이 발을 붙이고 사는 땅덩어리가 감히 개복치를 닮았다고는 짐작조차 못할 수수한 상상력의 지구인들이 보기에는, 어느 날 아침 지하철 역 벤치에서 양복차림으로 묵묵히 쉬고 있는 기린을 보는 것만큼이나 충격적인 것, 이었을 것이다.

외계인보다 더 외계인 같은 외모라 할 수도 있을 것 같은(처음 작가의 사진을 보고 무언지 모를 무언가가 잘못 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잠깐 들었다) 박민규라는 신예 작가는 2003년 여름, 나름대로 잘 정돈되어 있던 한국의 문단(文壇)을 향해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투하되었던 원폭과도 같은 가공할 위력의 원, 투 스트레이트 펀치를 날렸는데 그 중 '투'에 해당하는 더 강력했던 펀치가 2003년 내내 문인들과 독자들의 입에 끊이지 않고 오르내렸던 한겨레문학상 수상작인 '삼미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이었다. 이 강펀치는 당시 문단과 도서계에 꽤나 큰 충격과 파장을 불러 일으켰으며 지금까지도 국내 문인들과 독자들은 그 휴유증에서 제대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다른 하나의 스트레이트, 즉 '투'보다 먼저 날렸지만 조금 약했던 '원'이 바로 오늘 소개 하고자 하는, 정녕 외계인만이 할 수 있을 것 같은 무지막지하고 기상천외한 상상력으로 무장된, 그냥 영웅도 아니고 바로 이 ‘지구’를 지킨다는 ‘영웅’들에 대한, '전설'적인 이야기,

이름하여,

‘지구영웅전설’

이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만화속의 영웅들이 대거 등장한다.

먼저 슈퍼맨,

그리고 배트맨,

으로 변신하기 전의 브루스 웨인,

로빈,

원더우먼,

아쿠아맨, 아쿠아맨, 아쿠아맨...

또 아쿠아맨,

그리고 특별출연 하는 헐크,

로 변하기 전의 브루스 배너 박사(이 자도 영웅인가? 소설을 읽어 보니 영웅이 맞더라...),

그리고 새로운 이름 바나나맨, 등등...

소설 속의 주인공은 포느로 잡지를 보다가 담임에게 들키고 얻어터진 후에, 부모님을 모셔 와야만 하는 절체절명의 위기에 놓인다. 주인공은 자살을 결심한다. 평소부터 슈퍼맨을 동경해 왔었기에 슈퍼맨처럼 빨간 망토를 두르고 계모가 계단 청소부로 일하는 빌딩의 옥상에서 마치 슈퍼맨 놀이를 하다가 죽은 것처럼 위장되기를 간절히 바라며, 뛰어 내린다. 그러나 그는 죽지 않는다. 마침 대한민국 상공을 순찰 중이던 진짜 슈퍼맨에 의해 운명적으로 구출된다. 그것은 꿈이 아니었고, 주인공은 꿈에 그리던 슈퍼맨을 실제로 만난 것이다. 슈퍼맨 뿐만 아니라, 슈퍼맨을 따라 영웅들이 모여 사는 ‘정의의 본부’로 까지 가게 된 주인공은 그 이름만 들어도 가슴 떨렸던 슈퍼특공대(80년대 초 인기리에 방영되었던 만화영화)의 핵심 멤버들을 모두 만나게 된다.

영웅들은 정말로 영웅다운 모습으로 지구 곳곳으로 날아다니며 영웅이 해야 할 일들을 영웅적으로 수행하고 있었다. 이에 탄복한 주인공은 자신도 영웅의 멤버가 되기를 갈망했고, 마침내 ‘바나나맨’이라는 새로운 이름을 얻고 새로운 영웅으로 거듭나게 된다.

 

그리고...

영웅들의 실체가 하나씩, 하나씩 드러난다.

챕터가 하나씩 바뀔 때마다 영웅들이 어떤 영웅적인 일들을 하는 지 (주로 바나나맨의 눈과 로빈의 입을 통하여)비밀스럽게 밝혀진다.

그 실체가 바로 소설의 주요 내용이 되고 주요 반전이 된다. 그러므로 아직 책을 읽지 않은 이들을 위해 그 실체를 여기서 밝힐 수는 없다. 영웅들은 나름대로 역할을 분담하여 체계적이면서도 위력적이면서도 제법 합리적인 방법으로 지구의 평화를 지켜 나가고 있었다.

그들의 절대적인 '힘'앞에서 우리의 바나나맨은 할 일이 없어진다. 고작해야 영웅들의 심부름이나 해 주면서 우스꽝스런 제스처만 꾸준히 연습한다.

 

소설 속의 주인공이 바나나맨이라는 영웅으로 재탄생되었듯 박민규라는 시인 지망생이자 전직 회사원이자, 전직 잡지사 편집장이자, 사진 찍기를 좋아했던 백수가 소설가로 재탄생해 주어서 감사하다. 그가 내지르는 문장들은 바나나맨의 제스쳐처럼 우스꽝스럽기도 하지만 슈퍼맨 못지 않게 힘이 넘치고, 배트맨처럼 참 정의롭기도 하며, 비행하는 원더우먼처럼 유혹적이며, 아쿠아맨처럼 끝없이 분열되기도 하며, 헐크처럼 변화무쌍한 모습이기도 하다. 작가에게 감사하다. 이런 문장, 이런 소설을 읽을 수 있게 해 주어서...

 

왜 슈퍼맨은 배트맨에게 대표의 자리를 넘겨주어야 했는지, 배트맨이 구사하는 마운틴이라는 기술은 무엇인지, 또 배트맨은 왜 배트맨 복장을 잘 입지 않는지, 왜 로빈은 배트맨을 싫어하는지, 원더우먼은 왜 투명 비행기를 타야만 하는지, 그리고 아쿠아맨은 왜 그리도 많은지, 또 브루스 배너 박사는 어떤 방법으로 협상을 원만히 타결짓는지 등등... 정의와 평화를 지키기 위한 영웅들의 대단한 활약상과 그 실체가 궁금하다면 이 소설을 읽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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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우는 아이 힘찬문고 23
손창섭 지음, 김호민 그림 / 우리교육 / 200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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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 저자가 손창섭이 아니었다면 이 나이에 내가 이런 동화 같은 소설을 읽을 일은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손창섭의 소설집을 탐독했던 나로서는 이 동화를 읽지 않을 수가 없었다. 이유는 단 하나다. 손창섭이 썼기 때문이다.
손창섭이 쓴 글이라면 잡문 하나라도 구해서 읽고 싶을 만큼 그의 소설들은 나에게 강렬한 인상을 남겨 주었다. 더 이상 언급할 필요도 없는 '혈서'와 '잉여인간' 등.... 그가 더 이상 한국에서 소설을 쓰지 않는다는 사실이 지금도 안타깝기만 하다.

손창섭은 의외로 소년소설도 여러 편 발표를 했었다. 암울했던 전후 사회를 짙은 절망과 패색으로부터 구원해 줄 수 있는 이들은 오직 아이들 뿐이라고 믿었던 것이다.
이 소설 싸우는 아이는 동화나 소년소설로 분류될 수 있지만, 역시 손창섭의 손을 거친 동화라 그리 말랑말랑한 모양 새는 아니다.
어려운 삶을 살아가는 주인공 강찬수라는 소년에게 미래에 대한 구체적인 전망이나, 새로운 희망의 활로를 모색해 주지도 않는다. 결말은 좀 뜬금없다는 생각까지 들게 했다. 물론 소설 전반을 통해 우회적인 대안과 희망은 제시해 주고 있었다. 또 손창섭이 말하고자 하는 바가 무엇인지도 파악할 수 있었다.

하지만 확실히 이 소설은 다른 소년소설들과는 차별화되어 있다. 납루한 일상을 여과없이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소년에게 가해지는 세상의 폭력과 부조리를 그대로 보여준다. 초등학생들이 읽기에는 좀 무서운 소설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손창섭의 소설이라는 사실만으로 충분히 읽을 가치가 있다고 본다. 아이들은 물론이고, 어른들이 읽기에도 좋은 소설이다.(다만 높임말로 쓰여진 문장이 다소 거슬린다는게 문제라면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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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 1
베르나르 베르베르 지음, 이세욱 옮김 / 열린책들 / 200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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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스피디하고 미스테리한 소설은 '바늘구멍', '모레' 의 계보를 잇는 수작이다. 최근의 '다빈치 코드' 가 다시 그 계보를 잇고 있다.
계보니 뭐니 하는 생각은 다만 내 생각일 뿐이다.
위의 소설들은 모두 전혀 다른 내용과 전혀 다른 주제를 다루고 있는 소설들이다.
물론 공통점도 있다.
바늘구멍, 모레, 뇌, 다빈치 코드의 공통점은,

1. 두 권 분량 이상의 긴 장편들(바늘구멍은 한 권짜리로 나왔지만 충분히 두 권 분량의 긴 내용이었다.)
2. 긴 분량임에도 불구하고 흡인력이 대단하여 금방 읽힌다.
3. 한 편의 영화를 보는 듯 역동적이다. (실제로 바늘구멍, 모레는 영화화 되었고, 다빈치 코드도 판권이 넘어간 상태다)
4. 챕터가 바뀔 때 마다 다른 사건, 다른 인물들의 이야기 번갈아 펼쳐지며 결국 하나로 맞물리는 구성을 택하고 있다.(이것이 가장 큰 공통점인듯...)
5. 모두 반전이 있다.(소설에 따라 강도의 차이는 있지만...)

뇌는 저명한 신경학 박사인 샤뮈엘 핀처가 세계 체스 챔피언의 왕좌에 오르면서 시작된다. 그리고 그는 그날 밤 사랑하는 연인의 품에 안긴 채 복상사를 당한다. 몸에는 어떤 타살의 흔적도 발견되지 않은 채.
이 의문의 죽음을 놓고 메스컴과 의학계는 결국 자연사라는 판명을 내리지만, 평소부터 인간 행동의 동기에 대해 지대한 관심을 두고 있던 이지도르라는 기자는 타살에 대한 의혹을 품고 수사에 나선다. 옛 파트너였던 미모의 여기자와 함께.

샤뮈엘 박사의 죽음이 타살이라면, 과연 누가 죽였단 말인가?
샤뮈엘이 죽는 순간에 그 방안에는 모델 출신의 아름다운 연인 뿐이었다. 물론 그 여자가 샤뮈엘을 죽인 것은 아니다. 그녀는 단지 그와 사랑을 나누고 있었을 뿐이다.

이지도르는 그 방에 있지 않았던 제 3의 인물에 의해 박사가 죽음을 당했다고 생각한다. 과연 누가, 왜, 어떤 방법으로 그를 죽였단 말인가?

이 놀라운 설정은 정말 놀랍게도 이 소설이 보여줄 놀라움의 시작에 불과하다.
베르베르는 그 특유의 지적 상상력과 유머 넘치는 필력을 자유자재로 발휘하며 독자의 뇌를 자극하는 한편, 이야기를 한 치 앞도 내다 볼 수 없게 만든다.

사건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두 주인공의 앞에는 수 많은 역경과 고비가 잇따른다. 그리고 그들은 마침내 '최후의 비밀'에 도달한다. 인간 행위의 모든 동기들을 지배하는 최 상위의 동기! '최후의 비밀' 이란 과연 무엇일까? 왜 사람들이 이 최후의 비밀에 도달하고자 했고, 또 죽어 갔는가...?

 '물 한 방울이 대양을 넘치게 할 수 있다!'

책장을 덮기 전에 읽은 이 문구가 오래동안 기억에 남는다. 더 이상 책 내용에 대한 언급은 회피해야겠다. 아직 이 책을 안 읽은 분들을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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