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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고반점 - 2005년 제29회 이상문학상 작품집
한강 외 지음 / 문학사상 / 2005년 1월
평점 :
이상문학상은 과연 최고의 단편 소설에게 주어지는 상인가?
과거 깊고 푸른밤,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 숨은 꽃, 하나코는 없다 등을 읽으면서 그런 생각을 했던 적이 있다. 정말 최고의 소설이구나, 라고 감탄을 하면서 이상 문학상 대상 수상작들을 읽었었다. 소설을 많이 읽던 시절이 아니었고, 아직 어린 나이였다.
그때는 과연 그런 작품들이 최고의 단편 소설들인 것 같았다. 참 어찌 이리 신기하게도 최고의 작품을 정확히 뽑아 상을 주고 많은 독자들에게 소개를 해 주는가... 심사위원들이 대단해 보였고, 소설가가 위대하게 보였던 시절이었다.
그러다가 언제부터인가 이상 문학상 수상작을 읽지 않게 되었다. 책을 많이 읽기 시작했던 시절부터였다. 포우와 알베르 카뮈의 소설을 읽기 시작했고, 요시모토 바나나와 하루키의 소설을 죄다 구입해서 읽고, 토머스 해리스와 스티븐 킹의 소설들을 탐독했으며, 엘러리 퀸과 애거스 크리스티의 추리소설들에 열광했었다. 위대한 개츠비와 호밀밭의 파수꾼, 생쥐와 인간 같은 소설들을 읽으며 과연, 이것이 최고의 소설들이구나, 찬사를 아끼지 않았었다. 대부분 외국 소설들을 읽었지만 젊은 날의 초상, 난쏘공 같은 국내 걸작 소설들도 읽었고, 김승옥과 손창섭, 양귀자, 신경숙, 은희경의 소설들을 읽으면서도 물론 감탄하고 만족을 했었다. 아무튼 그렇게 책을 읽으면서도 이상하게도 이상문학상 수상집에는 손이 가지 않았다. 은희경의 아내의 상자까지는 그래도 끝가지 읽었던 것 같다. 그러나 그 이후부터는 이상문학상 수상작을 끝까지 다 읽지 못 했다. 몇 번 그러다 보니 아예 관심을 끊게 되었다. 재미가 없었다. 감동도 없었다. 의심이 들었다. 이것이 과연 오늘날 최고의 단편 소설이 맞는가? 싶었다. 그렇다면 과거에도 그랬던 것인가? 책을 많이 읽지 않던 시절이라 무슨 소설이든 다 재미있고, 대단해 보였던 것일까? 그러나 그게 아니다. 아닌 것 같다. 과거의 이상문학상 수상작들,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이나 숨은 꽃, 하나코는 없다 등은 지금 읽어도 여전히 감탄을 금치 못하고, 또 과연, 최고였다.
요컨데 과거의 명성을 따라가지 못 하고 있는 것 같다. 최근의 이상문학상 수상작들이...
작년에 김훈의 화장을 읽으면서도, 언론과 비평가들이 너무 극성스럽게 칭찬을 해댔던 탓인지... 그리 대단해 보이지 않았다... 이게 그렇게 잘 된 소설인가... 의구심이 들었다. 그리고 올해는 정말 오래간만에 이상문학상 작품집을 돈을 주고 구입했고, 작정하고 거기에 실린 모든 소설들을 읽었다. 그리고, 역시... 몽고반점. 이것은 작년의 화장보다도 더 못 한것 같다... 형부와 처제의 불륜이다. 그러나 별로 충격적이지는 않다. 엇비슷한 설정을 이미 다른 장르, 다른 매체를 통해 여러 번 봐왔기 때문일까.... 심사위원들의 말처럼 읽히기는 잘 읽혔다. 설정이 설정이니 만큼... 그러나 그것말고는 심사위원들이 한 말에 별로 공감이 가지 않았다. 순수로의 회귀, 예술적 승화... 예술은 보이지 않았다. 예술가의 고뇌 같은 것도 느껴지지 않았다. 그저 본능을 주체하지 못 하는 이해할수 없는(혹은 이해하고 싶지 않은) 인간들만 보일 뿐이었다. 정말 소설 같고, 영화 같은 이야기였다. 잘 읽혔지만 읽는 내내 불편하고 불쾌했다. 뭐 이런 인간들이 다 있나, 싶었다. 몽고반점보다 한강의 자선 대표작인 아기부처가 훨씬 나았다. 내가 이상문학상 심사위원이고 한강에게 상을 줄 것 같았으면 아기부처로 일찌감치 주었을 것이다. 한강의 전작 중에서 내 여자의 열매 라는 작품도 몽고반점 보다는 좋았던 것 같다. 아무튼 나는 이상문학상 심사위원이 아니라서 그런지 몽고반점의 어디를 보고 그토록 극찬을 해야 할 지를 모르겠다. 그저, 역시... 과거의 명성에는 못 미치는 구나.... 하는 생각만 들었다. 이상문학상에 대한 내 기대가 또 한번 꺾였다. 이제는 과거처럼 심사위원들이 대단하게 보이는 일 따위는 없다. 역시, 아쉬울 뿐이다.
하지만 다행히, 마냥 아쉽지만은 않았다. 한 줄기 희망이 있었다. 박민규의 소설 때문이다. 이번 작품집에 실린 소설 가운데 가장 빛나는 소설은 대상 수상작인 몽고반점이 아니라 박민규의 갑을고시원 체류기였다. 실망스러웠던 이 작품집에 별점을 네 개나 준 이유는 바로 박민규의 소설 때문이다. 그의 소설이 없었다면 나는 이 작품집을 사지도 않았을 것이다. 박민규는 작년에도 고마워 과연 너구리야 라는 작품으로 우수상에 이름을 올렸었다. 왜, 이 작가에게 상을 주지 않는지 알 수 없다. 물론 몇 년 후에는 분명 상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정해진 수순처럼 우수상에 몇 번 더 이름을 올리고 마침내는 대상을 수상하게 될 것이다. 따지고 보면 한강도 그런 과정을 거치고 대상을 받은 것이다. 그러나 꼭 그래야만 하는가... 몇 년이 지나면 과연 박민규의 소설은 지금보다 훨씬 더 완성도가 높고 좋아지는 것일까? 정말 시간이 흐를수록 더 좋아지는 것일까? 모르겠다. 한강의 경우 아기부처 이후 몽고반점까지 과연 어떤 발전을 보였기에 상을 준 것인지, 단적으로 몽고반점이 아기부처보다 얼마나 더 잘 된 작품이고 얼마나 더 이상 문학상에 부합하는 작품인지... 모르겠다. 아무튼 나는 이상문학상 심사위원이 아니니... 나에게는 과연 최고를 가려내고 평가할 수 있는 눈이 없나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