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백한 언덕 풍경 민음사 모던 클래식 61
가즈오 이시구로 지음, 김남주 옮김 / 민음사 / 2012년 11월
평점 :
품절


전후 일본의 암울한 시대를 배경으로 꿈과 생존 사이에서 갈등하고 방황하는 인간들의 서글픈 운명을 그리고 있다. 일본에서 나고 자랐지만 훗날 영국인 남편을 따라 영국으로 이주한 여주인공 에츠코의 눈을 통해 전후 나가사키 마을의 암울한 풍경과 자살로 생을 마감한 딸의 그림자가 떠도는 영국에서의 삭막한 삶이 교차된다. 어디의 풍경이나 쓸쓸하긴 마찬가지다. 그래도 지나온 시간이 조금은 더 가볍고 환하게 보이는 법이다. 현재의 삶이 쓸쓸하고 암울할수록 과거를 추억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힘겨웠으나 지나왔기에, 그 시절을 조금은 추억할 수 있다. 힘겨웠지만 그래도 멀어진 거리감만큼 아득하고 아련한 향수가 느껴진다. 그때는 보지 못했던, 희미하게 반짝이는 빛도 이제는 보인다. 현재에서는 굳건히 잠겨 있는 감정의 문도 과거로 향하면 저도 모르게 헐거워지고 슬쩍 쿵 열리기도 하는 법이다. 현재를 직시하는 눈은 냉혹해도 과거를 향하는 눈은 조금은 더 관대해질 수 있는 것이다. 

에츠코는 그렇게 과거를 추억한다. 나가사키 시절을 떠올리면 그녀의 기억 속으로 제일 먼저 뛰어드는 인물이 사치코다. 에츠코는 사치코를 추억하며, 그 시절 자신의 모습도 함께 추억한다. 어린 딸을 데리고 홀연히 마을로 나타난 사치코는 가진 건 없어도 기품이 흘렀고 도도했다. 그녀는 일본의 명문 귀족 가문의 자손이었지만 전쟁이 모든 것을 앗아갔다. 빈털터리 신세에도 버리지 못하는 도도함은 주위의 눈총을 사고 현실의 걸림돌만 될 뿐이다. 가난에 못 이겨 에츠코에게 일자리를 부탁하기도 하지만 사치코는 허드렛일을 해내지 못한다. 그녀는 도도함을 못 버린다. 비참한 현실을 단번에 벗어날 수 있는 도약을 꿈꾼다. 도약의 길이 미국에 있다고 믿는다. 사치코는 미국인 남자를 만나고 그를 따라 미국에서의 풍요로운 삶을 꿈꾼다. 그러는 사이에 사치코의 어린 딸은 소외되고 상처받고 자기 세계에 갇혀 버린다. 사치코에게 어린 딸은 안중에도 없는 듯하다. 자신의 꿈이 딸의 꿈이고, 자신의 성공이 딸의 성공과 이어질 거라 믿는다. 

에츠코는 근심 어린 눈으로 사치코 모녀를 응시한다. 그 근심은 자신을 향한 것이기도 했다. 종잡을 수 없는 사치코의 꿈과 미래만큼이나 에츠코의 꿈과 미래도 종잡을 수 없었다. 누구에게나 그런 시절이었다. 에츠코는 나가사키에서 아이를 낳고 행복한 삶을 살 수 있기를 바라지만 생이 뜻한 바대로 흘러가지 않을 것 같은 불안에 잠기곤 한다. 사치코의 거듭된 실패와 방황을 지켜보면서 불안과 근심은 짙어진다. 닮고 싶지 않은 사치코의 생과 자신의 생이 겹쳐지지 않을까 에츠코는 두렵다. 사치코가 끝내 꿈을 이루지 못하거나 그 대가로 큰 희생을 치를 것만 같고, 그것이 사치코만의 인생이 아니라 자신의 운명이 될 수도 있다는 예감을 가진다. 사치코와 어린 딸을 걱정하면서도 그들과 자신의 삶을 분리시키고, 그들과 함께하는 시간이 적지 않았음에도 그들과 진정한 소통을 이루지는 못한다. 그 시절 나가사키는 그런 곳이었다. 모두가 상처에 갇혀 있던, 미래와 꿈이 짜부라져 있던, 운명을 종잡을 수 없던, 그래서 바로 곁의 사람과도 심지어 가족과도 진정한 소통이 이뤄지지 않았던.   


전쟁과 원폭이 휩쓸고 간 것은 물질만이 아니었다. 정신까지 앗아갔다. 반쯤 넋이 나간 사람들이 그래도 살아가려, 자신을 놓지 않고, 생을 놓지 않고 살아가려 저마다의 방식으로 안간힘을 쓴다. 에츠코와 사치코의 생을 들여다보며 나는 생각한다. 크나큰 시련이 휩쓸고 간 후의 생존법에 대해서. 운명을 받아들이는 자세에 대해서.

인생은 거의 대부분 뜻하는 대로 흘러가지 않는다. 개인의 삶이란 언제나 어긋나기 마련이다. 크고 작은 시련이 도처에서 파도처럼 밀려와 운명의 조각배를 뒤흔든다. 처음의 항로를 벗어나 운명은 내 뜻과는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곤 한다. 잡을 수 없는 것과 잡고 싶지 않은 것이 우리 생을 지배한다. 원하는 것은 얻을 수 없지만 원치 않는 운명의 굴레는 종종 어깨에 덧씌어지곤 한다. 그러니 잡을 수 없는 것에 애달프게 매달려봐야 소용없고, 내 몫의 운명을 애써 외면하는 것도 소용없는 일이다. 

나가사키에서 살아가던 시절만 해도 에츠코는 먼 훗날 일본을 떠나 영국인으로 살아가는 삶을 예상치 못했고, 바라지도 않았을 것이다. 일본을 떠나고 싶었던 이는 에츠코가 아니라 사치코였던 것이다. 그런데 이들 개개의 바람과는 상관없이 거대한 시련은 무정하게도 두 사람의 운명을 엉뚱한 방향으로 옮겨놓고 말았다. 피할 수 없는 시련과 운명의 굴레 속에서 우리가 보다 나은 삶을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은 관심과 소통뿐이다. 가까이 있는 사람의 말에 더 귀를 기울이고, 그들을 더 유심히 바라보는 것. 일상을 소중히 지키는 것. 단 한 번 에츠코와 사치코, 그리고 사치코의 어린 딸이 함께 언덕으로 소풍을 떠난 적이 있는데 그때 보았던 빛나던 풍경 같은 것. 함께 했던 시간 속에서 향기처럼 은은히 감돌던 여유와 연대,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을 것 같은 소통의 감정들. 그런 것을 놓치지 않는 것이다. 내 곁에 있는 사람들과 작지만 단단한 우주를 만들 수 있다면 운명의 굴레를 견뎌내는 일이 조금은 덜 외롭고, 덜 쓸쓸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방금 떠나온 세계
김초엽 지음 / 한겨레출판 / 2021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수록작 가운데 ‘최후의 라이오니‘과 ‘오래된 협약‘이 무척 좋았다. 나머지 수록작 전부를 합쳐도 이 두 작품에 못 미칠 것 같다. 이런 작품을 쓸 줄 아는 작가이니 차기작을 또 기대하지 않을 도리가 없는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지구 끝의 온실
김초엽 지음 / 자이언트북스 / 2021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으로 이미 신뢰하는 작가가 되어 버린 김초엽의 신작 장편소설. 더스트로 오염되어버린 미래 지구를 배경으로 세상에 단 하나뿐인 안전지대를 찾아 나서는 소녀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이 작품은 어딘지 미야자키 하야오를 연상케하는 부분이 있는데 크나큰 재앙으로 인해 전체주의로 변해버린 세상의 폭력과 차별에서 밀려나고 도망 나온 사람들의 연대로 이룩한 작은 온실 세상은 '미래 소년 코난'의 하이 하버나 '천공의 성 라퓨타'의 라퓨타를 떠올리게 했다. 

최후의 희망이 될 줄 알았던 보금자리가 파괴되는 과정이나 인간을 향한 기계의 기나긴 밀애는 안타까움과 연민을 불러일으킨다. 아마도 작가의 이성적 사고 회로 기저에는 세상을 향한 연민이 자리하고 있지 않나 싶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 - 2019 제43회 오늘의 작가상 수상작
김초엽 지음 / 허블 / 2019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우리가 

현실에서 

답을 

찾을 수 

없다면....




켄 리우는 자신이 SF를 쓰는 이유에 대해 현실에서 도무지 답을 찾을 수 없을 때라고 말한 적 있다. 

아무리 고민해도 현실 세계에서는 찾을 수 없는 답이 있다. 현실, 바로 지금 이 순간에는 보이지 않는 답. 답을 찾을 수 없는 문제. 살아가면서 우리는 그런 문제에 종종 직면한다. 벽처럼 앞을 가로막고 있는 단호한 질문들. 조금도 옮겨놓을 수 없을 만큼 육중한 하중을 자랑하며 우리 앞을 가로막고 선 문제들. 

상상력이 필요한 순간은 바로 그런 때다. 저 단호하고 육중한 현실의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조금 더 시간이 지난 후라면 어떨까, 하고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좀 더 미래라면.

지금 당장은 해결할 수 없지만 먼 훗날이면 해결이 가능해지기도 한다. 문제가 문제가 되지 않는 때가 올 수 있다. 지난 시간을 돌이켜보면 알 수 있다. 얼마나 많은 문제들이 시간이 지나며 해결됐는지. 그때는 크나큰 문제였던 것이 지금은 아무 문제도 되지 않는 것들이 얼마나 많은지. 비단 과학기술의 발전으로 해결된 것만은 아니다. 시간의 흐름에 따른 인식의 변화가 오히려 더 많은 문제들을 해결했다. 

지금 당장은 지독히 슬픈 일도 시간이 지나고 나면 대수롭지 않게 흘려 넘길 수 있는, 심지어 더 많은 시간이 흐르고 돌아볼 때면 어느새 슬픔은 사라지고 그때의 모든 감정과 기억들이 아련한 추억이 되기도 하는 것이다. 당장은 꼼짝할 수 없을 만큼 암담한 문제 같지만, 조금만 시간이 지나면, 조금만 인식이 바뀌면, 그렇게 나와 나를 둘러싼 세계가 변화하면 문제는 문제 아닌 것이 되고, 문제였던 게 오히려 그리움이 되고, 대립했던 적이 끌어안는 동지가 되기도 한다. 


SF를 쓴다는 것도 이와 비슷한 일일지 모른다. 상상력을 통해 인식의 변화를 촉구하는 것. 변화의 여지를 마련하는 것. 당장은 '안 돼'라고 외치며 절망하고 싶은 마음도, 도무지 답이 보이지 않는 질문에도 좌절하지 않고 여유를 가지고 조금 더 긴 시간이 흐른 후를 상정하여 보는 것. 더 시간이 흐른 후, 더 미래에는 어떨까를 생각해 보는 것. 

당장 답이 안 보이는 문제이고, 당장 절망적인 현실이라고 해도 미래를 상상하면 마음이 바뀔 수 있다. 풀리지 않던 게 풀리기도 하고, 적어도 풀 수 있을 것 같은 희망은 가질 수 있다. 지금 당장 달에서, 화성에서 지구인이 살 수는 없지만 상상해 볼 수는 있다. 먼 미래, 그곳에서 살아가는 우리를. 당장 빛의 속도로 갈 수는 없지만 상상해 볼 수는 있다. 먼 훗날, 빛보다 빠른 속도로 우주를 날아가는 우리를. 

아니 꼭 달에서, 화성에서 살아갈 필요도 없다. 빛의 속도로 가야만 할 이유가 없을 수도 있다. 인식이 바뀌면 현실에서도 만족하고, 답을 찾을 수 있다. 상상력을 통해 우리가 얻을 수 있는 것은 시간의 힘일 수도 있다. 한참 시간이 흐른다면 지금의 문제, 지금의 현실, 지금의 나에서 보다 거리감을 두고 더 객관적인 시선으로 더 이성적인 사고로 바라볼 수 있는 것이다. 달에 가지 않으면, 화성에 가지 않으면, 빛의 속도로 움직일 수 없으면 도통 보이지 않을 것 같았던 문제도 답을 찾을 수 있을지 모른다. 답에 근접해 가고, 정답이 아닌 해답은 찾을 수 있고, 최선은 아니더라도 차선은 찾을 수 있고, 성공은 아니더라도 만족과 행복은 찾을 수 있을 것이다. SF가 현실에 작용할 수 있는 미덕은 바로 이 지점에 있지 않을까 싶다.     


김초엽의 소설에서 이런 미덕이 드러났다. 사실 생각지도 못했던 발견이었다. 유감스럽게도 한국 작가의 SF를 읽고 만족스러웠던 적이 거의 없었다. 김희선의 '골든에이지' 같은 작품 말고는 SF만의 미덕을 찾을 수 있는 것도 드물었다. 충분히 현실에서도 답을 찾을 수 있는 이야기, 혹은 현실과 유리된 이야기가 대부분이었고 그나마도 '읽히는 재미'가 없었다. 작년에 출간되어 큰 화제를 모았던 이 작품집을 이제야 읽었던 이유도 여기에 있다. 김초엽의 작품은 그동안 한국 SF 소설에 가졌던 내 시들한 감정을 일소시키기에 충분했다. 일전에 읽었던 이영도의 '오버 더 호라이즌'이 한국 판타지 소설에 가졌던 숱한 실망감을 상쇄시켜줬던 것처럼.  

첫 번째 수록작 '순례자들은 왜 돌아오지 않는가'를 읽으면서 벌써 등줄기로 긴장감이 흐르며 뭔가 새로운 것을 발견했다는 환희에 젖어들기 시작했다. 그리고 '스펙트럼', '공생가설'을 읽으면서 점점 더 이야기에 매료되고, 작가의 세계관에 이끌리는 것을 느꼈다. 네 번째 수록작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에서 마침내 이 작가를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수록작 모두가 고르게 좋은 편이었지만 특히 표제작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이 가장 마음에 들었다. 이것이야말로 현실에서는 도무지 찾을 수 없는 답을 얻기 위해 쓰인 소설이었다. 잃어버린 소중한 것을 되찾고 싶으나 당장은 그럴 수 없어 미래로, 미래로. 시간의 흐름에 몸을 맡기며 먼 훗날을 끊임없이 기약하는 한 노인의 이야기에서 김희선의 '골든에이지'에서 느꼈던 애잔하고 아련한 감동을 다시 느낄 수 있었다. 어쩌면 먼 미래에서 과거를 바라보는 것, 시간의 간극에서 밀려오는 그리움과 추억을 상기하는 것. 여기에 SF의 진면목이 드러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시간은 그렇게, 많은 것을 용서하고, 잊게 하고, 변화시키고, 답을 찾게 하고 또 많은 것을 끌어안게도 하니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7)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마당 깊은 집 문지클래식 2
김원일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8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내 마음을 송두리째 뒤흔든 작품이다. 근자에 이 정도로 감명을 준 책은 없었던 것 같다. 별점을 매기자면 국내 작가의 작품집 가운데서 실로 오랜만에 별 다섯을 서슴없이 줄 수 있는 작품이다. 사실 이 책이 훌륭할 것이라는 건 이미 짐작하고 있었지만 이상하리만큼 읽을 기회를 찾지 못하고 있었다. 과거 느낌표 도서로 선정되어 화제를 불러모았을 때는 일부 책의 홍보수단으로 전락해버린 미디어에 대한 반발심리로 일부러 읽지 않았고, 이후에는 읽어야지 읽어야지 하면서도 다른 일을 하는 중에 책의 존재 자체를 잊어버리곤 했던 것이다.

 

'마당 깊은 집'이란 작품은 지금으로부터 20여 년 전, 1 때 국어 선생님을 통해 처음 알게 되었다. 당시 시인을 꿈꾸던 국어 선생님은 수업에 앞서 '추천 도서' 목록을 칠판 한 구석에 판서해 놓곤 했다. , 소설을 가리지 않고, 고등학생이 읽을 만한, 근자의 문학 작품들을 소개했던 것인데, 시인 지망생답게 주로 시집이 많았다. 기형도의 '입 속의 검은 잎', 장석주의 '붕붕거리는 추억의 한 때', 이갑수의 '신은 망했다', 장정일의 '길안에서 택시잡기' 등의 시집 제목은 지금까지도 기억에 남아 있고, 이창동의 '녹천에는 똥이 많다' 같은 소설집도 기억이 난다. 그때 김원일의 '마당 깊은 집'도 소개되어 내용까지도 간단히 들을 수 있었다. 당시 그 국어 선생님이 추천해주는 책들은 어린 내 마음에 큰 동요를 일으켰다. 우선 제목만으로도 마음에 파문을 일으켰고, 발췌해서 낭독해주는 시 한 편이나, 짧게 들려주는 책 내용이 또 한 번 가슴에 격랑을 일으켰다. 그 시절 나는 무척 예민한 상태였고, 은연중에 '영화''문학'이 내 예민한 감정을 다스려줄 거라 믿고 있었던 것 같다. 국어 선생님이 소개한 책들은 모두 읽고 싶었고, 섭렵하고 싶은 기분에 금방 사로잡히고 만 것이다. 하지만 주머니 사정이 불우했던 당시의 나로서는 책 제목을 곱씹고 기억해두는 것만으로 아쉬움을 삼켜야 했고, 그 책들을 읽거나 구입한 것은 대학생이 된 이후부터였다. 하나씩 읽어나간 작품들은 모두 감탄을 불러일으켰고, 당시 선생님이 왜 어린 제자들에게 굳이 추천하고자 했던지 그 이유를 알게 했다. 그 때의 리스트 가운데 거의 마지막으로 읽게 된 작품이 바로 '마당 깊은 집'이 되는 것이다.

 

 

이호철과 더불어 김원일은 분단 문학의 대표 주자로 손꼽힌다. 수많은 문학 작품을 통해 한국전쟁과 분단 현실이 사람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를 고찰했고, 또 이념의 대립 앞에 갈등하고 고뇌하는 인간 내면을 해부해 왔다. 거기엔 당연히 그 시절을 겪어온 작가의 체험이 녹아 있다. 김원일의 소설이 다루는 주제의 중압감과는 별개로 소설이 재미있게 잘 읽히는 데는 작가의 경험에서 비롯된 생생한 기억의 복원이 한몫하기 때문이라고 본다. 그 시절을 살아온 사람이라면 더 크게 공감하고 실감나는 재미와 감동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그 시절을 겪지 못한 사람이라도 작가의 경험이 담긴 생생한 언어 속에서 보편적인 감동과 재미를 충분히 얻을 수 있다. '마당 깊은 집'은 특히나 작가의 어린 시절 체험담이 고스란히 담긴 자전적 소설의 형태를 띠고 있다. '전쟁' 그 자체 보다는 그 이후의 '가난''갈등'에 대해 그리고 있다.

 

한국전쟁이 끝난 직후인 1954년 봄부터 이듬해 봄까지, 화자가 '마당 깊은 집'에서 보낸 한 시절을 이야기한다. 일 년이라는 시간은 짧을 수도 있지만 배고픈 유년기를 보내야 했던 화자에게는 무척이나 긴 시간이었을 수도 있다. 마당 깊은 집이라 불린 그곳에는 각자의 사연을 안고 모여든 다섯 식구들이 있다. 사람도 많고, 말도 많고, 그래서 사연도 많고, 문제도 많았던 그들의 이야기. 저마다 껴안고 있던 그들의 걱정들. 그들이 안고 있던 걱정은 그들만의 걱정이 아니었고, 그들이 해결할 수 있는 문제도 아니었다. 그 시절을 살아가던 대다수의 사람들이 짊어지고 있던 문제였고, 등이 휠 것처럼 무거워도 내려놓을 수 없는 문제였던 것이다. 전쟁이 휩쓸고 간 땅 위엔 거대한 가난이 내려앉아 있었다. 가난은 어른들의 가슴을 피멍들게 하고, 아이들의 가냘픈 어깨마저 짓눌렀다. 그 와중에 끝나지 않은 이념의 대립으로 고뇌하고 갈등하는 이들도 있었다. 전쟁이 남긴 그림자는 가난만이 아니었던 것이다. 마당 깊은 집에서 한 시절을 보내야만 했던 사람들도 전쟁이 남긴 그림자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다. 그 누구도. 그럼에도 사람들은 살기 위해 아등바등거리고, 목숨이 붙어 있는 한 어쨌거나 살아갔다. 14살의 소년은 삯바늘질로 생계를 꾸려가는 홀어머니를 도와 학교에도 가지 못하고 생업 전선에 뛰어들어야만 했다. 피로와 허기, 추위와 불안감으로 소년의 심신은 나날이 지쳐갔지만 그래도 다음날이 되면 다시 일어나 하루를 시작해야만 한다. 삶을, 어쨌거나 살아가야만 했던 것이다. 그 시절 마당 깊은 집에서 셋방살이를 하던 다른 모든 사람들이 그랬던 것처럼.

 

돌아보면 아득한 그 시절. 나는 겪어보지도 않았던 그 시절이 마치 내 이야기라도 되는 양 무척이나 몰입해서 책을 읽었다.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누구라도 이 책을 읽으며 공감하거나 감동하지 않을 수는 없을 것 같다. 특정한 시절을 다루고 있다지만 가난은 지금도 도처에 그늘처럼 드리워져 있고, 팍팍한 삶을 살아가는 인간들은 어디에나 있는 것이다.

 

작가는 체험에서 비롯된 그 시절의 이야기를 생생히 복원하면서도 인간에 대한 연민과 문학적 서정성을 놓치지 않고 있다. 개인적으로는 화자의 막내동생 길수에게 가장 연민이 갔는데, 그럼에도 작가는 그 아이의 이야기를 신파처럼 그리지 않고, 유머와 서정미를 가미해 아름다운 동화처럼, 꿈처럼 그려냈다. 사람살이란게 그렇듯 아무리 현실이 각박해도 그 안에 희로애락이 존재하는 법. 현실을 꿋꿋이 버티고, 이겨나가는 사람과 사람들 사이의 애처로운 여백을 작가는 따뜻한 웃음과 서정미로 채워간 것이다. 드라마가 살아 있고, 감동이 살아 있는 작품이다. 역시나 잘 쓴 소설임이 분명하고, 읽고나면 시인 지망생 선생님뿐만 아니라 누구라도 타인에게 추천하고 싶은 마음이 생겨날 것 같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7)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