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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신이 쓴 책 1 - 영혼의 서
양국일 지음 / 명상 / 2006년 10월
평점 :
절판
귀신이 쓴 책은 지금까지 출간된 한국 공포소설 가운데서 호러라는 장르적인 옷을 가장 잘 맞춰입은 공포소설이라 할 수 있다. 이만큼 장르적 특성을 제대로 살리면서 강한 내러티브로 읽는 이를 마지막까지 사로잡는 한국 공포소설은 지금껏 없었던 것 같다.
소설은 시작부터 강한 미스터리와 공포로 독자들의 시선을 잡아끈다. 그러다가 마지막 순간에 예상치 못한 반전을 드러내며 강렬한 여운과 묵직한 감동을 남긴다. 공포소설이 모름지기 갖춰야할 미덕들을 제대로 갖추고 있는 것이다.
소설은 한 소녀가 눈을 뜨면서 시작된다. 소녀의 이름은 오정아. 그녀는 오랜 의식불명 상태에서 금방 깨어난 것이다. 그러나 의식을 되찾은 정아는 이상한 행동을 한다. 적어도 정아의 남동생 진규의 눈에 비친 누나의 모습은 정상이 아니다. 정아는 마치 귀신이라도 들린 사람처럼 낯선 변화를 보이며 기이한 행동들을 한다. 진규는 누나의 행동들을 조심스럽게 관찰하며 누나에게 나타나는 변화와 비밀들을 파헤치기 시작한다.
한편 호러동호회의 일원인 대학생 강우민은 귀신이 출몰한다는 낡은 구도서관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끔찍하고 충격적인 경험을 하게 된다. 교복을 입은 여고생 모습의 귀신과 맞닥뜨리고, 그 과정에서 친구인 은정이 감쪽같이 사라져 버린 것이다.
소설은 정아의 비밀을 파헤치려는 진규의 이야기와, 사라진 은정을 찾아 나서는 우민의 이야기가 번갈아가며 진행된다. 그 과정에서 진규와 우민은 공히 '귀신'이라는 미지의 공포와 맞서게 되고, 그것과 싸우거나 혹은 그것을 받아들이게 된다.
귀신이 쓴 책의 최대 매력은 '이야기의 힘'에 있다.
두 개의 이야기가 제각각 예측불허의 방향으로 강력하게 굴러가며 그 안에서 수많은 에피소드들을 자아낸다. 에피소드들은 다시 두 개의 큰 기둥에 맞물리며 거대한 서사의 탑을 쌓아간다. 두 탑의 끝은 결국 하나로 맞닿고, 두 개의 거대한 서사가 맞부딪히는 순간 소설의 지축을 흔드는 거대한 반전이 터진다. 마지막 챕터를 읽는 순간 독자는 소설을 처음부터 빠르게 다시 상기하게 되고, 절묘하게 맞물린 서사의 힘에 다시금 감탄하게 된다.
국내 소설 가운데서 이정도 강력한 서사로 무장한 소설을 읽기란 쉽지 않다. 게다가 그 강력한 서사를 처음부터 끝까지 감싸고 있는 기운은 '공포'와 '미스터리'다. 그러니 첫 장을 여는 순간부터 소설에서 눈을 떼기가 쉽지 않는 것이다.
교훈이니 감동이니 문학이니 하는 소리를 떠벌리며 빈약한 서사를 눈가림해보려는 소설들이 판을 치고 있는 것이 작금의 소설 현실이다. 그러나 진정 좋은 소설은 무엇보다도 서사의 힘이 역동적으로 살아있는 소설이며, 마지막 장까지 한 호흡에 곧장 읽을 수 있는 재미 있는 소설이다. 내가 '퇴마록'과 '어느날 갑자기' 시리즈를 좋아하는 이유가 바로 그 때문이다.
귀신이 쓴 책은 한국 공포소설 가운데서는 '마지막 헤커' 이후 최고의 반전을 보여주는 소설이며, '마지막 헤커'를 능가하는 강력한 서사의 힘을 보여주는 소설로, 빈약하기 이를 데 없는 한국 공포문학에 나름의 큰 획을 그은 작품으로 오래 기억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