찰스 덱스터워드의 비밀
H. P. 러브크래프트 지음, 변용란 옮김 / 영언문화사 / 200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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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병원의 한 병실에서 환자가 감쪽같이 사라지는 사건이 발생한다. 환자의 이름은 찰스 덱스터 워드라는 26세의 젊은이. 탈출을 했다기 보다 사라졌다는 표현이 더 알맞은 정도로 그의 실종에는 의문이 많이 따른다. 그는 과연 어디로 사라졌을까? 그 비밀을 알기 위해 우리는 시간을 거슬러 찰스의 과거로 간다. 어린 시절부터 미술과 역사, 족보학에 관심이 많던 찰스는 조상에 대해 조사하는 과정에서 섬뜩하고도 흥미로운 사건 하나를 접하고 그 연구에 몰두하기 시작한다. 그런데 찰스가 연구에 몰두하면 몰두 할수록 그의 주위에서는 괴기스런 일들이 발생한다.
악마의 웃음 소리가 들리고 집 주위에 알 수 없는 연기가 피어 오르고 광체가 번쩍이는가 하면 코를 찌르는 지독한 악취가 풍겨나고 마을의 무덤이 파헤쳐지며, 흡혈귀가 출몰한다. 사람들은 찰스에 대해 두려움과 적개심을 드러내고, 그러는 사이 아무도 모르게 찰스의 집에서는 엄청난 일들이 진행되고 있었으며 찰스도 변해간다. 찰스가 몰두하는 연구는 과연 무엇이며, 찰스 그 자신과 마을 사람들을 두려움에 떨게 한 공포의 근원은 어디에서 시작된 것일까... 소설은 마지막 순간에 소름끼치는 반전을 드러내며, 공포의 끝은 소설의 시작과 기막히게 맞물린다.

러브 크래프트의 소설은 다소의 인내와 집중력을 요구한다. 문장은 각이져 있는듯 단단한 느낌이 들고, 서사는 자주 과거와 현재를 오가며 독자의 의식을 수시로 환기 시킨다. 그러나 천천히 성정을 다해 한글자, 한글자 꼼꼼히 읽어 나가며 서사의 흐름에 의식을 맞추게 된다면 어느 순간부터 굉장한 마력에 빠져들게 된다. 그것은 일시적인 쾌감이나 흥분이 아니라 인간의 심연을 오래 자극하는 근원적인 공포와 상상력의 힘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페이지가 많이 넘어 갈수록 읽는 이의 마음속에 공포는 누적되어 쌓이고, 마지막장이 다가오면 그 무게에 몸과 정신을 제대로 가누지 못할 정도로 소설 속에 몰입되는 경험을 할 수 있다. 정확히 어떤 느낌이냐면 작가의 머릿속에서 만들어져 종이 위에 쓰여진 허구의 한 이야기를 단순히 읽는 느낌이 아니라, 러브 크래프트라는 작가의 머리 뚜껑을 열고 그 질퍽거리는 뇌속으로 한 발자국씩 직접 들어가다가 어느 순간 머리 뚜껑이 닫히고 작가의 뇌속에 영원히 갇혀 버리는 듯한 느낌이다.
그래서 마지막 책장을 덮고 나서도 질식할 것 같은 무겁고 음습한 공포의 느낌은 쉬이 사라지지 않는다. 러브 크래프트의 뇌수가 내 정신의 일부분으로 흘러 들기라도 한것처럼 말이다. 찰스덱스터 워드의 비밀은 한편의 공포소설이 보여줄 수 있는 최대치의 공포와 재미를 독자의 눈꺼풀 속으로 직접 집어 넣듯 생생히 보여주는 소설이며, 허구의 이야기를 넘어 작가의 폭발할 것 같은 맹렬하고도 처절한 삶의 뜨거운 숨결과 천재적이고 광기어린 재능을 함께 느낄 수 있는 작품이다. 러브 크래프트를 왜 공포 소설의 대가라고 부르는지 이 한권의 소설만 읽어도 충분히 알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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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복의 랑데부 동서 미스터리 북스 54
코넬 울릿치 지음, 김종휘 옮김 / 동서문화동판(동서문화사) / 200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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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여인 도로시를 기다리는 남자, 조니 마. 불이 켜진 작은 잡화점 진열장 앞에서, 그는 매일 밤 연인을 기다린다.
그러나 연인은 오지 않는다. 도로시는 이미 죽었다. 하늘에서 떨어진 술병에 머리를 맞고, 어이없이, 너무도 허망하게 조니의 곁을 떠나 버렸다.
그러나 조니는 그 사실을 인정하지 않고 계속 기다린다. 그의 의식 속에서는 아직 연인이 예전의 아름다운 모습 그대로 살아 있다. 그리고 금방이라도 그녀가 자신을 찾아 올 것만 같다. 그래서 조니는 계속 기다린다. 한 경솔한 경관이 그를 그 자리, 오지 않는 도로시를 하염없이 기다리며 서 있던 그 잡화점 진열장 앞에서 내쫓기 전까지. 

어느날 갑자기,
조니는 사라진다. 
그리고 복수가 시작된다.
도로시의 머리 위로 떨어졌던 술병. 그 술병을 던진 범인이 누구인지는 알 수 없다. 단지 그 시각에 도로시의 머리 위로 한 대의 경비행기가 지나갔음을 알 뿐이다. 그 시각, 그 경비행기에 탑승해 있던 다섯 명의 승객들. 그들 모두에게 복수의 칼날이 날아간다. 그들은 차례차례 상복과 랑데뷰하게 된다.  

코넬 울리치는 특유의 서정적인 문체로 아름답고 잔혹한 복수극을 그려낸다.
조니가 벌이는 다섯 번의 살인극. 사랑하는 도로시를 죽였을 것이라 짐작되는 다섯 명의 용의자들 모두에게 자신이 당한 것과 똑같은 고통을 선사하는 조니의 끔찍하도록 집요한 복수극.
그러나 독자는 조니를 미워할 수 없다. 다섯 번의 끔찍한 살인을 저지르고도 이미 떠나간 연인을 잊지 못해 가슴아파하는 사나이의 뜨거운 사랑과 우수어린 뒷모습을 오히려 연민과 애정의 시선으로 바라보게 된다.
긴장감 넘치는 서스펜스와 가슴 떨리는 로망스의 절묘한 랑데뷰. 날카로운 추리와, 애틋한 감성의 아름다운 조화. 코넬 울리치 소설이 매혹적인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코넬 울리치의 추리 소설에는 항상 슬픈 드라마가 깔려 있다. 그래서 더욱 소설에 몰입될 수 밖에 없다.  

도로시를 향한 사랑의 열정과, 복수의 집념에 한꺼번에 사로잡힌 비운의 사나이, 조니의 운명은 과연 어떻게 될까...?
독자는 소설의 맨 마지막 페이지에서야 그 운명의 종극을 읽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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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리 망치 - 2005년 일본추리작가 협회상 수상작 블랙 캣(Black Cat) 10
기시 유스케 지음, 육은숙 옮김 / 영림카디널 / 200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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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초정밀 밀실 살인사건이 발생한다.

고층건물의 최상층, 이중강화 유리로 고정된 유리창, 고성능 센서 감지기와 보안 카메라가 설치된 복도, 비밀번호를 입력해야 올라올 수 있는 엘리베이터, 복도를 지키는 세 명의 비서, 옥상으로도, 계단으로도, 천장으로도, 배기구로도 도무지 침입할 수 없는 완전한 밀실!
일요일 한낮, 도심 한 복판의 완전한 밀실 속에서 간병 회사 사장이 살해당한다.

패기만만한 젊은 여자 변호사와 노련한 보안 전문가가 등장하고, 사건 당일 회사에 있었던 주요 간부들부터 세 명의 비서, 경비원들, 간병 원숭이, 간병 로봇까지... 작고 미비한 모든 존재들까지 용의의 대상에 오른다.
철저하게 현장을 재조사하고, 각고의 노력 끝에 가능한 몇 개의 가설들을 만들어가지만... 가설들은 모두 벽에 막히고 처참하게 무너진다. 도무지 이 살인은 불가능하다는 결과로밖에 귀결되지 않는다.
사건은 미궁 속으로 빠지고...

이 소설에서 주목해야 할 점은 누가, 살인을 저질렀나, 가 아니고, 어떻게, 살인이 가능했나, 하는 것이다. 어떻게 이중, 삼중의 철저한 감시망을 뚫고 완전하게 보였던 밀실을 무력화시킬 수 있었을까...

소설의 첫 장을 여는 순간부터 독자는 기시 유스케가 만들어 놓은 밀실의 마력에 완전히 빠져들고 만다. 기시 유스케는 그 명성에 걸맞게 근래에 볼 수 없었던 정통 밀실 추리의 진수를 유감 없이 보여주며, 라스트에는 독자들을 위해 작은 반전까지 준비해 둔다.
견고하게만 보였던 밀실이 무너지는 순간, 또 견고하게만 보였던 완전범죄가 무너지는 순간, 독자는 극적인 카타르시스와 감동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철저한 조사와 취재, 전문지식의 탐구를 바탕으로 4년 6개월이라는 긴 시간동안 원고와 씨름했을 기시 유스케에게 경의의 박수를 보낸다. 작가가 작가다우려면 모름지기 이 정도는 되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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셀 1 밀리언셀러 클럽 51
스티븐 킹 지음, 조영학 옮김 / 황금가지 / 200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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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대폰을 여는 순간 펄스가 시작되었다. 휴대폰에서 터져나온 웜 바이러스가 인간의 뇌파를 집어삼키고, 인간은 사이코로 돌변한다. 한가로운 한낮의 공원이 삽시간에 공포의 전장으로 바뀐다. 개의 귀를 물어뜯는 남자, 아이스크림을 사려던 여자의 목을 물어뜯는 아이, 자신이 누구인지 정체성을 상실한 또다른 아이, 그리고 서로를 물어뜯고 짓이겨버리는 아수라의 지옥 같은 세상...
휴대폰으로 통화를 하고 있던 모든 사람들이 폰사이코가 되어 인간을 공격한다. 아니 인간 뿐만 아니라 같은 종족을 공격하기도 한다.

출판사에 원고를 넘기고 트럭에서 파는 아이스크림을 사먹으려던 만화가 클레이는 순식간에 지옥이 되어버린 이 세계를 도무지 이해할 수 없고, 이해할 겨를도 없다.
미친 족속들을 피해 도망가다가 휴대폰을 사용하지 않아 운 좋게(혹은 운 나쁘게?) 사이코가 되지 않은 정상인들은 몇 만나고, 그들과 합세하여 살 길을 찾아 나선다.
그러나 폰사이코들의 수는 점점 늘어나고, 그들은 빠른 속도로 진화하기 시작한다. 더 짙은 공포와 절망이 몰려오고 그럴수록 클레이의 머리속에 뜨겁게 새겨지는 의지 하나가 있다. 아들 조니를 찾아야 한다는 것!
클레이는 아들 조니를 구하기 위해, 그 아이를 만나기 위해, 지옥처럼 변해 버린 세상 속에서 처절한 생존사투를 벌인다.
클레이는 과연 조니를 만날 수 있을까, 그 아이를 온전히 구해낼 수 있을까?

'셀'은 리처드 매드슨의 좀비소설 '나는 전설이다'와 조지 로메로 감독의 좀비영화 '살아있는 시체들의 새벽'에서 모티브를 가져온다. 휴대폰에 의해 미쳐버리는 폰사이코들의 모습은 바로 우리가 공포 영화 속에서 익히 보아온 좀비들의 모습인 것이다. 다만 일반적인 좀비에 비해 조금 진화된 모습을 보인다. 스티븐 킹만의 상상력이 가미된 것이다.
'셀'에 등장하는 폰사이코들은 인간처럼 생각하는 능력과 언어를 터득하게 된다. 그들은 음악을 즐기고 집단으로 모여 생활하며 인간의 육체가 아닌 일반적인 음식물들을 섭취할 줄도 안다. 심지어는 공중부양까지 할 줄 안다. 그들은 한낱 미치광이 사이코가 아니라 어쩌면 진화된 모습의 또다른 인류일 지도 모르는 것이다.
휴대폰 전자기파에 의해 뇌 구조가 새롭게 바뀌어 버린, 신 인류!
스티븐 킹은 이 소설을 마냥 공포스럽게만 그리고 있지 않다. 엄청난 재앙 앞에서 갈피를 잡지 못하는 인간의 나약함과 나약함의 끝에서 불현듯 발동되는 초인적인 강인함, 타자와의 갈등과 이해에 대한 철학적인 접근과 해석, 인류에 대한 근원적인 사랑과 경고의 메시지, 그리고 박진감 넘치는 액션까지 함께 담아내고 있다.
한마디로 '스티븐 킹 표 소설 진수성찬'인 것이다.

앞서 읽은 '톰 고든을 사랑한 소녀'과 비교하자면 캐릭터와 스타일은 '톰 고든...'이 더 좋고, 박진감과 장르적인 즐거움은 '셀'이 더 좋은 것 같다. 두 편 모두 이야기의 제왕 스티븐 킹 만의 매력이 한껏 담겨있는 대단한 작품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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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신이 쓴 책 1 - 영혼의 서
양국일 지음 / 명상 / 200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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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신이 쓴 책은 지금까지 출간된 한국 공포소설 가운데서 호러라는 장르적인 옷을 가장 잘 맞춰입은 공포소설이라 할 수 있다. 이만큼 장르적 특성을 제대로 살리면서 강한 내러티브로 읽는 이를 마지막까지 사로잡는 한국 공포소설은 지금껏 없었던 것 같다.

소설은 시작부터 강한 미스터리와 공포로 독자들의 시선을 잡아끈다. 그러다가 마지막 순간에 예상치 못한 반전을 드러내며 강렬한 여운과 묵직한 감동을 남긴다. 공포소설이 모름지기 갖춰야할 미덕들을 제대로 갖추고 있는 것이다.

 소설은 한 소녀가 눈을 뜨면서 시작된다. 소녀의 이름은 오정아. 그녀는 오랜 의식불명 상태에서 금방 깨어난 것이다. 그러나 의식을 되찾은 정아는 이상한 행동을 한다. 적어도 정아의 남동생 진규의 눈에 비친 누나의 모습은 정상이 아니다. 정아는 마치 귀신이라도 들린 사람처럼 낯선 변화를 보이며 기이한 행동들을 한다. 진규는 누나의 행동들을 조심스럽게 관찰하며 누나에게 나타나는 변화와 비밀들을 파헤치기 시작한다.  

한편 호러동호회의 일원인 대학생 강우민은 귀신이 출몰한다는 낡은 구도서관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끔찍하고 충격적인 경험을 하게 된다. 교복을 입은 여고생 모습의 귀신과 맞닥뜨리고, 그 과정에서 친구인 은정이 감쪽같이 사라져 버린 것이다. 

소설은 정아의 비밀을 파헤치려는 진규의 이야기와, 사라진 은정을 찾아 나서는 우민의 이야기가 번갈아가며 진행된다. 그 과정에서 진규와 우민은 공히 '귀신'이라는 미지의 공포와 맞서게 되고, 그것과 싸우거나 혹은 그것을 받아들이게 된다.  

귀신이 쓴 책의 최대 매력은 '이야기의 힘'에 있다.

두 개의 이야기가 제각각 예측불허의 방향으로 강력하게 굴러가며 그 안에서 수많은 에피소드들을 자아낸다. 에피소드들은 다시 두 개의 큰 기둥에 맞물리며 거대한 서사의 탑을 쌓아간다. 두 탑의 끝은 결국 하나로 맞닿고, 두 개의 거대한 서사가 맞부딪히는 순간 소설의 지축을 흔드는 거대한 반전이 터진다. 마지막 챕터를 읽는 순간 독자는 소설을 처음부터 빠르게 다시 상기하게 되고, 절묘하게 맞물린 서사의 힘에 다시금 감탄하게 된다.

국내 소설 가운데서 이정도 강력한 서사로 무장한 소설을 읽기란 쉽지 않다. 게다가 그 강력한 서사를 처음부터 끝까지 감싸고 있는 기운은 '공포'와 '미스터리'다. 그러니 첫 장을 여는 순간부터 소설에서 눈을 떼기가 쉽지 않는 것이다.  

교훈이니 감동이니 문학이니 하는 소리를 떠벌리며 빈약한 서사를 눈가림해보려는 소설들이 판을 치고 있는 것이 작금의 소설 현실이다. 그러나 진정 좋은 소설은 무엇보다도 서사의 힘이 역동적으로 살아있는 소설이며, 마지막 장까지 한 호흡에 곧장 읽을 수 있는 재미 있는 소설이다. 내가 '퇴마록'과 '어느날 갑자기' 시리즈를 좋아하는 이유가 바로 그 때문이다.  

귀신이 쓴 책은 한국 공포소설 가운데서는 '마지막 헤커' 이후 최고의 반전을 보여주는 소설이며, '마지막 헤커'를 능가하는 강력한 서사의 힘을 보여주는 소설로, 빈약하기 이를 데 없는 한국 공포문학에 나름의 큰 획을 그은 작품으로 오래 기억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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