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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순 씨는 나를 남편으로 착각한다 - 70대 소녀 엄마와 40대 늙은 아이의 동거 이야기
최정원 지음, 유별남 사진 / 베프북스 / 2015년 8월
평점 :
일흔을 넘긴 어머니와 마흔 중반의 아들의 동거기이다.
아버지가 세상을 떠난 후 그 자리까지 차지한 아들은 여전히 늙은 엄마가 차려준 열두첩 반상을 받으며 여전히 툴툴 거리며 살아가고
있단다.
나이가 들면 음식을 하는 일도 살림을 하는 일도 다 귀찮다고 하는데 중늙은이 노총각 아들 뒤치닥거리가 반갑지만은 않을 것 다. 그래도
하루에 국을 세가지씩이나 끓여 한 가지라도 더 입에 맞는 음식을 해먹이기 위해 애쓰는 어머니의 사랑이 눈에 선하다.
더구나 밥상 차리는 일도 지겨울텐데 술상이라니..
책을 읽는 내내 술이 등장하지 않는 꼭지를 찾아보기 힘들만큼 '매일 술이야~~'가 절로 나온다.
마흔 중반을 달리는 나이라 해도 건강이 아직 괜찮은 것일까. 늙은 에미가 차려주는 술상을 받는 아들을 부러워해야할지 걱정을 해야할지
모르겠다.
오래전 여인네들은 무뚝뚝한 남편과 노동에 가까운 시집살이를 견디면서 어찌 살았는지..
말순씨도 부잣집 딸로 잘 살다가 남편 잘못만나 팔자가 제대로 뒤집어졌다. 더구나 바람이라니..
눈이 오는 날 그 하얀 눈을 보면서 서른 한 살 남편의 뒤를 쫓아가다가 무자비한 폭력을 당하고 맨발로 집에 돌아오는 장면에서는 눈물과
분노가 섞여 마음이 아팠다. 왜 그런 세월을 살았을꼬. 아마도 자식이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S자형 몸매는 O자가 되었고 제 몸을 키워주던 젖은 이미 축쳐져버렸지만 어머니의 사랑은 절대 노화되지 않는다.
매일 새벽이면 천수경을 외고 절에 다녀오면서 챙긴 떡을 좋은 기 받으라고 기어이 먹이려는 어머니!
돈좀 꿔달라는 여자 후배에게 자신의 집 족보에 오를 각오라면 빌려주겠다고 했더니 한숨을 쉬며 포기했다는 에피소드를 보면서 어머니의 걱정처럼
몸에 하자가 있거나 동성애자가 아니라면 왜 결혼을 못하는지 자세히 알고 싶어졌다.
못생겼나...아주 잘생긴 얼굴은 아니지만 그정도는 아닌데...성격이 까칠할까?
시어머니가 될 가능성이 점점 희박해지는 상황을 보면서 언제까지 늙은 엄마의 뒷바라지를 받을지 걱정이 되기도 한다.
매일 술상 차려줄 여자가 없다는 것을 눈치챈 것이 분명하다. 나처럼 술 좋아하는 여자라면 모르지만.
몇 백원을 아끼기 위해 특가 행사중인 마트까지 전사차림으로 나서는 어머니와 티격태격 하는 일상이 짠하면서도 감동스럽다. 사표를 수 차례
던지면서 가장의 무거움을 어머니에게 넘기기도 했던 이 아들, '우울증인 것 같아!'라는 아들의 말에 외출도 안하고 가끔 자는 아들의 얼굴에 귀를
대고 숨을 쉬고 있는지 확인하는 모습에 눈물이 핑돈다.
마흔이라도 쉰이라도 어머니의 눈에는 여전히 물가에 내어놓은 아이같았을 것이다.
뻑하면 사표를 던지고 실업자-엄마는 노숙자라고 표현하시는-신세다 되는 아들을 바라보며 혹시라도 낙담하여 무슨일이라도 저지르지 않을까 얼마나
마음을 쓰셨을까.
통장을 내밀며 굶어죽지 않으니 힘내라고 등을 두드려주는 어머니의 모습을 보면서 세상 모든 어머니의 마음은 이러하지 않을까...위대하게
다가온다. -물론 요즘에는 제자식을 죽이는 에미들도 있지만-
'나의 지킴이, 나의 사랑'
가난하고 고단한 삶을 살아오신 어머니가 이제는 친손주 재롱도 보고 술상 보는 일은 더 이상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이제 장가가서 아이를 낳아도 환갑에 겨우 중학생일테니 둘이서만 재미있게 살라고 당부하시는 모습에, 그래도 내 아들 심간 편하라고 대가
끊기는 불효는 저승가서 당신이 받겠다는 모습에, 그 사랑을 다 받고 살고 있는 작가가 부러웠다.
지금도 바람불면 바다에 나가지마라, 건강조심해라..노심초사하시는 어머니의 모습이 겹쳐온다.
뻐꾸기 우는 북한산 자락에서 며느리도 보시고 손주도 보시고 오랫동안 늙어가는 아들을 지켜보시길 기원해본다.
알콩달콩 티격태격, 매일 올라오는 술상에 같이 걸터앉아 술 한잔 사랑 한잔 잘 마신 느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