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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순 씨는 나를 남편으로 착각한다 - 70대 소녀 엄마와 40대 늙은 아이의 동거 이야기
최정원 지음, 유별남 사진 / 베프북스 / 2015년 8월
평점 :
일흔을 넘긴 어머니와 마흔 중반의 아들의 동거기이다.
아버지가 세상을 떠난 후 그 자리까지 차지한 아들은 여전히 늙은 엄마가 차려준 열두첩 반상을 받으며 여전히 툴툴 거리며 살아가고
있단다.
나이가 들면 음식을 하는 일도 살림을 하는 일도 다 귀찮다고 하는데 중늙은이 노총각 아들 뒤치닥거리가 반갑지만은 않을 것 다. 그래도
하루에 국을 세가지씩이나 끓여 한 가지라도 더 입에 맞는 음식을 해먹이기 위해 애쓰는 어머니의 사랑이 눈에 선하다.
더구나 밥상 차리는 일도 지겨울텐데 술상이라니..
책을 읽는 내내 술이 등장하지 않는 꼭지를 찾아보기 힘들만큼 '매일 술이야~~'가 절로 나온다.
마흔 중반을 달리는 나이라 해도 건강이 아직 괜찮은 것일까. 늙은 에미가 차려주는 술상을 받는 아들을 부러워해야할지 걱정을 해야할지
모르겠다.
![](http://book.interpark.com/blog/blogfiles/userblogfile/2/2015/09/16/10/hyunho0305_3430704672.JPG)
오래전 여인네들은 무뚝뚝한 남편과 노동에 가까운 시집살이를 견디면서 어찌 살았는지..
말순씨도 부잣집 딸로 잘 살다가 남편 잘못만나 팔자가 제대로 뒤집어졌다. 더구나 바람이라니..
눈이 오는 날 그 하얀 눈을 보면서 서른 한 살 남편의 뒤를 쫓아가다가 무자비한 폭력을 당하고 맨발로 집에 돌아오는 장면에서는 눈물과
분노가 섞여 마음이 아팠다. 왜 그런 세월을 살았을꼬. 아마도 자식이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S자형 몸매는 O자가 되었고 제 몸을 키워주던 젖은 이미 축쳐져버렸지만 어머니의 사랑은 절대 노화되지 않는다.
![](http://book.interpark.com/blog/blogfiles/userblogfile/1/2015/09/16/10/hyunho0305_1970597973.JPG)
매일 새벽이면 천수경을 외고 절에 다녀오면서 챙긴 떡을 좋은 기 받으라고 기어이 먹이려는 어머니!
돈좀 꿔달라는 여자 후배에게 자신의 집 족보에 오를 각오라면 빌려주겠다고 했더니 한숨을 쉬며 포기했다는 에피소드를 보면서 어머니의 걱정처럼
몸에 하자가 있거나 동성애자가 아니라면 왜 결혼을 못하는지 자세히 알고 싶어졌다.
못생겼나...아주 잘생긴 얼굴은 아니지만 그정도는 아닌데...성격이 까칠할까?
시어머니가 될 가능성이 점점 희박해지는 상황을 보면서 언제까지 늙은 엄마의 뒷바라지를 받을지 걱정이 되기도 한다.
매일 술상 차려줄 여자가 없다는 것을 눈치챈 것이 분명하다. 나처럼 술 좋아하는 여자라면 모르지만.
![](http://book.interpark.com/blog/blogfiles/userblogfile/2/2015/09/16/10/hyunho0305_7825300712.JPG)
몇 백원을 아끼기 위해 특가 행사중인 마트까지 전사차림으로 나서는 어머니와 티격태격 하는 일상이 짠하면서도 감동스럽다. 사표를 수 차례
던지면서 가장의 무거움을 어머니에게 넘기기도 했던 이 아들, '우울증인 것 같아!'라는 아들의 말에 외출도 안하고 가끔 자는 아들의 얼굴에 귀를
대고 숨을 쉬고 있는지 확인하는 모습에 눈물이 핑돈다.
마흔이라도 쉰이라도 어머니의 눈에는 여전히 물가에 내어놓은 아이같았을 것이다.
뻑하면 사표를 던지고 실업자-엄마는 노숙자라고 표현하시는-신세다 되는 아들을 바라보며 혹시라도 낙담하여 무슨일이라도 저지르지 않을까 얼마나
마음을 쓰셨을까.
통장을 내밀며 굶어죽지 않으니 힘내라고 등을 두드려주는 어머니의 모습을 보면서 세상 모든 어머니의 마음은 이러하지 않을까...위대하게
다가온다. -물론 요즘에는 제자식을 죽이는 에미들도 있지만-
'나의 지킴이, 나의 사랑'
가난하고 고단한 삶을 살아오신 어머니가 이제는 친손주 재롱도 보고 술상 보는 일은 더 이상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이제 장가가서 아이를 낳아도 환갑에 겨우 중학생일테니 둘이서만 재미있게 살라고 당부하시는 모습에, 그래도 내 아들 심간 편하라고 대가
끊기는 불효는 저승가서 당신이 받겠다는 모습에, 그 사랑을 다 받고 살고 있는 작가가 부러웠다.
지금도 바람불면 바다에 나가지마라, 건강조심해라..노심초사하시는 어머니의 모습이 겹쳐온다.
뻐꾸기 우는 북한산 자락에서 며느리도 보시고 손주도 보시고 오랫동안 늙어가는 아들을 지켜보시길 기원해본다.
알콩달콩 티격태격, 매일 올라오는 술상에 같이 걸터앉아 술 한잔 사랑 한잔 잘 마신 느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