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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처럼 싸우고 꽃처럼 아끼고
디안 지음, 허유영 옮김 / 자음과모음(이룸) / 2015년 5월
평점 :
절판
문학의 힘을 다시 한번 느끼게 된 작품이었다. 100년도 채 살지 못하는 인생에서 다른나라의 문화를
다양하게 접한다는 것은 부럽기도 하고 어려운 일이기도 하다.
나에게 중국은 중공이라는 것으로 더 각인된 나라이다. 공산국가였던 중국이(지금도 공산국가인지는
잘 모르겠다)급격한 발전을 이루고 개방되었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내밀한 그들의 삶을 들여다 보는
것은 쉽지 않았다. 그런면에서 디안의 이 소설은 '시끄러운 우리 가족 사용설명서'라는 부제에서처럼
한 가정의 가족사를 들여다보는 일이가도 하고 전형적인 중국가정의 일면을 들여다보는 일이기도 했다.
서른 살의 둥니는 장애를 지닌 한 살이 채못된 아들을 둔 엄마이고 이혼을 앞둔 유부녀이다.
이제 막 개발이 된 지역에서 꽤 큰 아파트를 소유하고 있고 얼마전 카페까지 구입하여 개업을 앞두고 있다.
미국에서 함께 살았던 남편 팡징후이에게 도망쳐 고향인 룽청에서 작은아버지 내외와 그들의 딸 난인 그리고 둘째 작은아버지의 아들인 시줴의 보살핌을 받으며 살아간다.
여고시절부터 가장 친한 친구였던 장은 한 때 팡징후이의 여자친구였고 지금은 자신의 사촌남동생은 시줴를 사랑하고 있다. 흠..일단 복잡하게 얽힌 사이가 분명하다.
둥니는 집안에서도 자기 주장이 확실하고 드센 여자로 정평이 나있고 실제로 그녀의 생활을 보면 장애를 지닌 아들 정청궁을 제대로 보살펴주지도 못하고 자기 멋대로 구는 천방지축 철이 덜 든 여자라고 느껴진다.
그녀에게는 엄마에게 폭력을 행사하던 아버지와 자기애가 강한 엄마에 대한 상처가 깃들여있다.
심지어 어쩌면 친아버지가 아닐지도 모른다는 의심으로 친자확인까지 하게된다.
그러던 어느 날 미국에서 남편 팡징후이가 아들인 정청궁을 데려가기 위해 그녀을 찾아오고 둥니는 아들을 데려가려면 재산의 반을 내 놓으라고 윽박지른다.
열 여덟살 대학입학을 미루고 싱가포르로 날아가 가수생활을 했고 옷가게를 하다가 우연히 가게앞을 지나던 지금의 남편을 만나 결혼했고 한때는 그를 정말 사랑한다고 믿었지만 그녀는 자신의 미천한 신분과는 다른 식물학박사인 남자를 만나 신분상승을 꿈꿨는지도 모르겠다. 결혼생활은 결코 화려하고 아름다운 것이 아니었다.
평범한 여자였다면 남편의 곁을 떠나지 않았을지도 몰랐겠지만 이기적이고 드센 둥니는 아이를 데리고 그의 곁을 떠난 것이다.
이 부분에서 그녀가 왜 결국 남편의 곁을 떠나야했는지 좀 의아스럽긴 하다. 부부사이에 불화는 늘 있기 마련이었고 견딜수 없을 정도의 결함이 남편에게 있다고는 생각되지 않았다. 어쩌면 너무도 강한 둥니의 성격이 더 문제가 있다고 생각했다. 어쨋든 둘은 서로 아이를 차지하기 위해 협박과 타협을 하지만 돈을 받기전에는 결코 아이를 내어줄수 없다는 둥니의 고집때문에 무산되고 만다.
둥니의 얼핏 자유분망한 삶을 사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그녀는 끊임없이 상대의 눈치를 보고 자신의 처지를 비교하기도 하면서 스스로 불행을 자초한다. 그런 그녀에게 스물 두살의 청년 렁산이 나타난다. 잘생기고 스마트한 그는 한 눈에 둥니에게 반하여 그녀에게 사랑고백을 한다. 산전수전 다 겪은 둥니는 그의 사랑이 한 때 지나가는 것임을 알지만 열정적인 그의 태도에 굴복하고
만다. 그렇게 시작된 사랑은 그녀의 독기를 녹여 남편에게 아이를 돌려주고 새로운 사랑을 시작하겠다는 결심을 하게한다.
'행복한 사람들은 수시로 불행한 사람의 처량한 신세를 곱씹고 되새겨야 할 필요가 있다. 그렇게 해서 자신의 행복에 또 한 번 완벽하게 도취되는 것이다.' -본문중에서-
나는 둥니의 이 생각에 동의하게 된다. 흔히 우리가 남의 불행이 나의 행복이라는 말과 같은 뜻이다.
둥니는 상처받고 거친 여자이지만 섬세한 감각을 지닌 사람이다. 상대를 꿰뚫어보고 어떻게하면 가장 아픈곳을 찌를지를 안다.
하지만 둥니가 친구인 장이나 남편 그리고 남동생인 시줴와 난인등..자신을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거친 악담을 퍼붓고 상처를 주는 장면에서 그녀의 포악함이 경악스럽다. 어쩌면 그렇게 함으로써 자신이 상처받을 것을 미리 땜질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사실 내 가슴속에는 불덩이 하나가 줄곧 이들대며 타오르고 있다. 그걸 남에게 말할 수도 없다.'
팡징후이처럼 가슴속에 불덩이가 없는 사람도, 렁산처럼 불덩이를 지닌 남자도 그녀는 온전히 받아들이지 못한다.
사랑받지 못하고 자란 트라우마때문이 아니었을까.
중국은 한 자녀만 갖는 것이 허락된다고 알고 있다. 그래서인지 둥니나 난인같은 인물들은 조금 제멋대로같은 느낌이 든다. 그리고 사랑을 따를 것인가 출세를 따를 것인가로 고민하는 장이나 시줴를 보면서 금전주의에 물들어 가는 젊은이들의 모습이 지금 중국의 모습을 잘 대변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아들선호주의로 시줴에게만 재산을 물려준 할아버지의 모습이나 그런 할아버지와 평생을 살았지만 정씨 집안의 선산에 묻히기를 거부했던 할머니. 그리고 시줴와 쉐비(외할머니가 요양원에 가면서 맡아야 했던 외삼촌의 딸)의 출생의 비밀이 드러나면서 한 가정의 다양한 삶이 어느나라나 다를 것이 없구나 싶었다.
제목이 참 제대로였다. 가장 으르렁거리면서 누구와도 싸울듯이 덤비는 둥니의 모습과 사랑으로 가족을 감싸안았던 작은 어머니와 시줴의 모습이 제목과 딱 맞아떨어진다.
번역이 잘 된건지 모르지만 둥니와 친구인 장, 그리고 사촌끼리의 욕지거리가 중국에서는 별 것 아닌 모양이다.
아들선호사상이 있다고는 하지만 여성우위의 나라 중국에서 싸움꾼 둥니의 설전이 참으로 볼만했다.
중국의 젊은 여성작가의 시각이 신선했고 한 가정의 리얼한 모습과 상처를 지닌 여성의 절박한 삶이 잘 그려진 작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