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 마이너스
손아람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1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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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세대이든 투쟁의 시간들이 있었다. 저자가 태어난 80년도에도 최루탄 연기속을 뛰어다니던

학생들이 있었고 군사정권이 끝난 후에도 투쟁과 구금의 질곡을 겪었던 대통령이 정권을 잡은 후에도

투쟁의 역사는 존재했다. 주제는 다양했다. 이데올로기가 주류였지만 자본주의와 노동자들의 충돌이

있었고 사대주의에 대한 반발이 있었고 독재와 도시개발에 따른 반발까지 그 시대가 안고 있는 문제들이

있었다. 지금도 지방에서 전세버스를 타고 올라와 도심 한가운데에서 투쟁을 외치는 사람들이 존재한다.

아마 먼 미래의 어느 날에도 그런 사람들은 존재할 것이다. 다른 문제와 주제를 담아서.

이 책은 먹고사는 문제가 해결되었는데 도대체 뭐가 문제냐고 고개를 갸우뚱하는 베이비붐세대의 몰이해를 넘어 또 다른 문제와 고군분투한 젊은이들의 투쟁일지이다.

글쎄 왜 여전히 쇠파이프와 화염병이 유전되고 옛영화를 돌려보는 것 같은 기시감이 드는 것일까.

 

 

누군가는 고생도 모르고 자란 샌님같은 아이들의 허약함을 걱정했지만 그들은 결코 연약하지 않았다.

연약하게 늘어져 살기에는 여전히 세상은 개판이었고 색만 교묘하게 바뀐 권력의 부조리들이 난무했던 것일까.

책 속에 등장하는 태의, 즉 주인공은 투쟁의 최전선에서 쇠파이프와 야구방망이를 휘두르는 전사로 나온다.

그런 그가 아름다움을 지향하는 미학과 학생이었다는게 아이러니이다.

그가 그린 서울대 교정의 모습은 아마 거의 사실일 것이다. 어딘가로 끌려가는 걸 두려워하면서 온종일 중얼거리는 미친 남자도 있었을 것이고 교정을 어슬렁 거리는 '사람'이란 이름의 개도 있었을 것이다.

말미에 작가는 자전적인 회고록이 아니라고 했지만 나는 그 말을 믿지 않는다.

 

 

적어도 작중에 태의의 모습은 아니더라도 현승선배나 미쥬, 혹은 소신과 자신의 눈 하나를 맞바꾼 진우일 수도 있다.

소설이 아니고 일지라고 말한 것처럼 이 작품은 2000년대 즈음 서울대를 다니던 청춘들의 일지인 셈이다.

젊다는 건 부당함과 맞서는 투지가 있어서 좋다. 무모함이 더해서 어른들을 불안하게 하지만.

투지의 역사만 있었던 건 아니다. 선배이면서 연인이 되기도 했던 미쥬와의 미숙한 사랑도 존재했다. 전에는 선배의 여자이기도 했던. 젊은이들의 사랑이란게 다 그렇다. 뜨겁다고 생각하지만 정작 달뜨기만 하고 방향성은 엉망인.

'너희는 세상과 세상과 싸우는게 아냐. 세상이란 단어에는 아무 뜻도 없어. 너희는 선배들과 싸우고 있다. 너만 할 때는 딱 너랑 똑같은 눈빛을 가졌던 놈들. 그리고 언젠가 네 후배들이 너랑 똑같은 눈을 하고 너의 미래와 싸우게 될거야. 끝이 없는 윤회 같은거지.' -본문중에서

그랬다. 이 투쟁일지를 읽으면서 나는 내 젊은시절의 이야기를 그대로 들여다보는 것 같았으니까.

빨간 색과 검은 색으로 된 양면 패딩 점퍼가 등장하고 좀 더 자유로운 섹스를 즐기는 장면만 달라졌을 뿐.

막걸리와 순대국과 쇠파이프와 곤봉과 화염병과 깃발과 체포와...또 그러니까...거의 모든 것들이 똑같다.

 

 

밥같은 건 생전 할 것 같지 않았던 미쥬는 자유로운 연애를 즐기다 한 남자의 아내로 주저 앉고 쇠파이플 휘두르며 전국을 누비던 태의도 토끼같은 아내와 자식을 둔 평범한 남자가 되었다. 그게 인생이다. 내 젊은 날 최루탄 연기를 밥먹듯 마셨던 선배들도 심지어 호적에 빨간줄을 남겼던 선배들도 누군가의 남편으로 아내로 그렇게 살아가고 있다.

오히려 PC방에서 스타크래프트로 날밤을 세우던 진우는 진짜 전사가 되었고 예정된 수순처럼 더러운 정치판에 발을 디딘다. 보수든 진보든 어디에 속해있던 살아가는 모습을 비슷해진다. 그래서 인생은 재미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래도 죽음으로 삶을 돌이킬 수는 없는 것이다. 권력을 손에 쥔 통치자들이 가슴에 아로새겨야 할 잠언을 여기 내린다: 살아서 잘하라. 너희의 삶은 찰나일지라도, 너희의 죽음은 영원하다...'-본문중에서

나도 인생의 후배들에게 잠언을 내린다면, 과거의 시간들이 어떠했든 삶은 계속되어야 한다는 것.

다만 과거의 기억이 미래의 족쇄가 되어서는 안된다는 것. 그리고 과거의 시간에 부끄러움이 없었다면 삶은 비교적 성공했다는 것...혹시 부끄러움이 있었다 할지라도 삶은 여전히 계속되어야 하고 족쇄로 나를 얽매는 또 다른 부끄러운 일 같은건 만들지 말라는 것.

30년을 훌쩍 넘어서 최루탄 매캐한 교정으로 되돌아간 것 같은 추억의 책이 되었다. 아 내 날아간 학점은 떠올리기 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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