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고 있는 새는 걱정할 틈이 없다
정채봉 지음, 김덕기 그림 / 샘터사 / 200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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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샘터'하면 먼저 정채봉작가가 떠오른다. 환하게 웃던 그의 얼굴이 먼저 다가오는 것이다.
평생 소년의 마음을 잃지 않고 맑게 살았던 그가 너무도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날 때까지
찡그리거나 심각한 얼굴을 한 것은 본 적이 없었던 것 같다.
늘 어린아이를 만나듯 저절로 닫혔던 마음의 문을 열게 되었던 그를 잠언집으로 다시 만나니
고향에 오빠를 만난 듯 반갑고 읽지 않아도 배부른 듯 하다.



돌담을 따라 핀 호박꽃처럼 소박하지만 환한 그의 잠언집 '날고 있는 새는 걱정한 틈이 없다'를 보노라니 올해 내내 바람잘날
없었던 마음이 스스르 진정되는 것만 같다.



섬에 내려와 닻을 내린지 어언 5년! 그래서 일까 '환상의 섬'이란 제목에 먼저 눈이 간다.
사철 내내 꽃이 피는 환상의 섬으로 날아간 일벌들이 왜 꼭 죽어서 나오는 괴이한 일이 생겼을까.
" 그 섬에는 겨울이 없습니다. 꽃이 내내 피고 지는 여름만 있으니 꿀을 따로 저장할 필요를 느끼지 않습니다.
그 날의 먹이는 그날로 족한 셈이지요. "
나태해진 벌들은 천재지변에 의한 겨울이 닥치면 저축해 둔 양식이 없어 굶어죽게 된다는 말에 정신이 번쩍든다.
우리 삶도 이와 다르지 않다. 노후를 위한 재물의 저축도 중요하지만 아직 감정의 여유가 있을 때 위기를 대비하는
감정의 저축도 중요하다는 뜻일게다.



결혼을 해도 후회, 안해도 후회라는 말이 있을 만큼 정의되지 않는 숙제이다.
그럼에도 우리들은 기어이 결혼을 하고 또 후회하고 원수가 되어 헤어지기도 한다.
"결혼은 함께 살아가는 것이다....함꼐 사는 데는 '사랑해'라는 말보다는 '미안해'라는 말이 더 중요하다."
사랑은 3년이 유효기간이라는 '미안해'라는 말은 유효기간이 없는 모양이다.
문득 결혼서약시 '검은 머리가 파뿌리가 될 때까지' 혹은 '건강할 때나 아플 때나'같은 말보다
'뚱뚱하고 대머리가 될 때까지'나 '방구소리나 잔소리도 세레나데로 들릴 때까지'라는 말이 더 현실적이지 않냐는 누군가의
말이 떠오른다. 우리는 가장 아름다운 시절에 만나 사랑하고 결혼을 한다.
그 때부터 서로에게는 조금씩 늙어가고 건강을 잃어가고 조금씩 무뎌져가는 시간들이 남아있다는 걸 미처 알지 못한다.
미운모습도 받아줄 각오가 없다면, 너무 무덤덤해져서 '사랑해'라는 말은 못해도 '미안해'라는 말은 할 줄 아는 각오가
없다면 결혼하지 말라는 말처럼 들려 후줄근한 내 지금 모습이 부끄럽다.

해마다 그의 고향에서는 그를 기리는 문학제가 열린다. 이렇게 라도 그를 기억하고 붙들어두고 싶은 이들에게는 소중한
시간이 될 것이다. 하루에 몇 십명씩 자살을 하고 하필이면 사건 사고도 끊이지 않는 요즘 마음이 가난하고 지친 사람들에게
선물하고픈 소중한 잠언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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