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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희의 영감 - 포토그래퍼 조선희 사진 에세이
조선희 지음 / 민음인 / 2013년 12월
평점 :
사진작가 조선희를 떠올리면 우선 거칠다는 생각.
언제던가 그녀를 TV에서 본적이 있다. 사진작가로 성공하여 밥을 먹고 산다는 일은 참으로 어렵다는
이야기를 들은터라 그 거친 세계에서 여자 사진작가로 우뚝섰다는 것 자체가 멋진 일이었다.
화장끼없는 얼굴에 편한 옷차림을 하고서 마치 전투를 치르듯 사진을 찍는 모습에서 저런 열정이
있었기에 성공할 수 있었겠구나 짐작했다.
그리고 얼마 후에 아이엄마가 된 그녀의 모습을 보고 또 한번 놀랐었다.
왜 놀랐었는지 딱 집어 낼 수 없는 묘한 배신감(?)이랄까. 문득 거친 그녀를 휘어잡은 남편은 누구일까 궁금해졌다.
그녀가 쓴 책은 처음이다. 어느 새 4번째라는데 명문인 연세대 의생활학과를 나왔다는 것도 의외였다.
대체로 글을 쓰는 사람이던 그림을 그리는 사람이던 음악을 하는 사람이던 공통적으로 흐르는 예술적인 기질이 있다.
모든 사물에 무심하지 않은 감성이 있고 그 것들에 깃든 혼을 볼줄 안다는 것이다.
자칭 '왜관 촌년'이란 표현도 그녀 자체를 보여주는 것같아 정감있다.
그 왜진 곳 가난한 집 딸이었던 그녀를 사로잡은 것은 가난을 이기는 돈도 명예도 아닌 '사진'이라니.
어느새 마흔을 훌쩍 넘은 그녀가 어렸을 적에 '사진'은 사진관에 가서 찍는 증명용 정도였을 것이다.
역시 스타 사진가인 김중만의 제자였다는 것은 그녀에게 행운이었던 것같다.
그역시 조금 별난 작가로 대중들에게 다가오기까지 많은 시간이 걸렸던 것으로 기억한다.
지금이야 CF에서 '사진 좀 찍으시나봐요'를 들으며 뚱한 표정을 짓는 귀여운 모습으로 친근해졌지만.
여성들의 우상 '정우성'을 친구라 부르고 세계 곳곳을 누비며 사람들의 삶과 풍경을 찍는 멋진 사진작가 조선희.
이제 그 나이 정도면 자신을 돌아볼 줄 아는 여유가 생긴 것일까. 스스로 자신을 돌아보는 글이 마음에 와 닿는다.
'무섭다', '카리스마 넘친다', '괴팍하다', '자기주장이 강하다'.
내가 그녀에게 느꼈던 생각과 다르지 않다.
TV에서 일을 하는 그녀의 모습이 딱 그러했었다. 물론 곁에 있는 스텝들은 늘 긴장해야 할 것이다.
'완벽'을 추구하는 예술가들은 대체로 그녀와 비슷한 모습들이었다.
이런 대중들의 생각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여전히 '조선희'다운 모습으로 살기를 원한다.
'남들에게 보이기 위해 살아온 조선희로 죽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돌려서 말하는 법을 배우지 못하고 솔직한 감정을 숨기는 법을 배우지 못한 그녀다운 생활철학이다.
'보그'지에서 원했다던 '자화상'을 찍는 그녀 모습은 생각보다 '아름답다'였다.
그것도 자신의 늙은 모습을 연출한 것이라는데 꾸밈없이 화알짝 웃는 모습에서 소탈과 천진이 느껴지다니.
하긴 '삶'에서 '진실'과 '혼'을 건져내는 샤먼이라면 이 정도의 살아있는 순수는 분명 잠재하고 있을 것이다.
딸아이가 사진작가가 되고 싶다는 말을 했을 때,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었다.
젊은 시절 한 때 나역시 연극배우가 되고 싶었던 적이 있었다. 하지만 배고픈 쟁이가 되어 남루하게 살아갈
자신이 없었다. 딸아이를 설득해 취미로만 하자고 했다. 먼 훗날 혹시 딸아이가 원망스럽게 물어올지도 모르겠다.
"엄마, 그 때 내가 사진작가의 길을 고집했다면 제 2의 '조선희'가 되지 않았을까?"
아마도 난 내 배 아파 낳은 딸아이에게서 '조선희'같은 열정을 읽어내지 못했는지도 모른다.
멋진 그녀의 용기있는 선택에 찬사를 보내고 싶다. 마치 화보집처럼 아름답고 감동스런 사진들을 보지 못할 뻔
했으니 그녀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택해준 길이 얼마나 위안인가 말이다.
2013년 말미에 이 세상 어디선가 또 파르르 떠 다니는 '영감'을 놓치지 않기 위해 그녀는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