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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죄
김종길 지음 / 에세이스트사 / 2013년 1월
평점 :
품절
에세이의 정의를 보면 개인의 상념을 자유롭게 표현하거나 생각나는 대로 붓가는 대로 의견이나 감상을 적은 글이라고
나온다. 단순히 이런 정의로만 보면 문학의 많은 장르중에 가장 단순하고 쉬워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생각나는 대로 붓가는 대로 아무 구애없이 쓰는 에세이가 읽는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거라 공감을 주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를 알게된다.
우선 주관적인 글이라 다른 사람들이 공감하기가 쉽지 않고 말이 그렇지 붓가는 대로 술술 써진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그런점에서 나는 수필가이신 피천득 작가를 참 좋아한다.
얼마전 읽은 유인경 기자의 책속에도 말년의 피천득선생을 방문한 일화가 나온다.
아흔 다섯의 노인이 75년전 사랑했던 여인의 안부가 궁금하여 상하이를 다녀왔다고도 하고 가장 좋아한다는 여배우
잉글리드 버그만의 사진을 붙여놓고 지금도 아이처럼 수줍어 하더라는 일화는 작가의 아름다운 동심이 세월에게도
잠식당하지 않았다는 것을 보여준다.
때로는 시대의 깃발처럼 세찬 세류에 흔들리며 흩날리기도 해야겠지만 기본적으로 글을 쓴다는 이들은
어디에도 구속되지 않고 맑은 마음을 잠식 당하지 않았으면 하는게 내 소망이었다.
그런 점에서 의학박사이신 작가의 글이 짜지도 맵지도 않은 담백한 맛으로 다가와 개운한 느낌이다.
물론 정신의학이라는 자신의 전공답게 사람들의 심리를 읽기 위해 누구보다 많은 것을 보고 느껴야 하겠지만
글 사이 사이에 아름답게 자리잡은 자신의 그림들처럼 참으로 풍부한 감성을 지닌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된다.
'속죄'라는 제목만으로 신내림을 받은 모친을 추억하는 사모곡이 아닐까 짐작했었다.
물론 홀어머니의 지단한 세월에 대한 아픔과 그리움이 묻어있기도 했지만 대부분은 그가 지나온 세월과 사람에
대한 감상문이었다.
직업상 남다른 고통을 겪고 있는 환자들과의 만남이 많았던 만큼 그에게 위로받고 치유받는 사람들의 내밀한
아픔들이 전해져 오기도 하고 의사와 인간사이의 경계에 서서 자신을 다독거리느라 힘들었던 이야기가 진솔하게
다가온다.
성적으로 희롱해오는 여자 환자와의 지루한 다툼이나 피해망상에 시달리는 가여운 영혼들에게
가끔은 인간으로서 견디기 힘든 순간들이 있다는 고백에서는 정신과 의사로서 그가 극복해야 할 과제가
많음을 이해하게 된다. 예수님이나 부처님이 미처 돌보지 못하는 여린 인간들을 보살피는 사명이 어찌 숭고하지 않겠나.
하지만 그를 통해 어둠의 터널을 빠져나오는 환자들을 보며 느끼는 뿌듯한 보람 역시 크리라 생각된다.
여행간 아내의 부재에 달콤한 자유를 만끽하고 등산길에서 만난 묘령의 여인에게 잠시 마음을 흔들렸다는
장면에서는 아직도 젊은 그의 뜨거운 열정에 웃음이 절로 나오기도 한다.
그저 그가 느끼는 신변잡기의 수준의 글이라고 하기에는 그의 지식이 만만치 않음을 알게된다.
인용된 책이나 역사적인 지식은 예사로운 수준이 아니었다.
아마도 조그마한 호기심이라도 생기면 끝내 충족하고야 마는 끈기가 있었던 것은 아닐까.
아내를 위해 이제 100송이의 장미꽃을 사야할 지 한 송이의 장미꽃을 사야할 지 고민하게 될
저자의 곤혹스런 얼굴을 떠올리니 자꾸 웃음이 비어져 나온다.
'늙어도 여자는 여자'이니 장미꽃 대 여섯 송이에 안개꽃을 곁들이고 달콤한 편지 한 장이면 다 해결되지
않을까 조언해본다.
글도 그림도 읽는 사람의 마음을 편하게 해주는 예사롭지 않은 좋은 작품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