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설픔 - 한 번도 제대로 쉬어보지 못한 이들에게
이기웅 지음 / 조화로운삶(위즈덤하우스) / 2011년 3월
평점 :
품절


밥퍼주는 최일도 목사님은 문턱이 높은 병원이 야속해서 누구든지 언제든지 찾아올 수 있는 병원을

지었다고 했다. 실제로 그 병원은 가난하고 소외되고 아픈 사람들이 이용하고 있다고 한다.

그리고 적은 월급과 열악한 환경에서도 묵묵히 참 의사와 의료인의 자세로 봉사하는 많은 사람들이

있어 가능한 일이라고도 했다. 나는 그 병원이 아픈 몸을 치유하는 곳이라기 보다는 지치고 아무도

돌보는 없는 사람들의 영혼을 치유하고 따뜻한 온기를 나누어 주는 진정한 병원이라고 생각했다.

 

언제부터인지 병원이란 곳은 정말 단순히 병을 치료하는 곳이 되어 버렸고 성적순으로 뽑힌 의사들은

아픈 몸만 열심히 치료하는 전문가가 되어 버렸다.

물론 병원과 의사의 존재 목적이 그러하므로 그건 당연한 일일것이다.

하지만 여기 그 의사로서의 단순한 소임을 벗어나 엉뚱한 치료에 힘을 쏟는 사람이 있다.

심지어 "나는 사람들이 아프기를 바라는 한의사입니다."라고 돌에 맞아 죽을 소리까지 서슴치 않는다.

어려서 부터 삶에 대한 끊임없는 질문에 시달리더니..결국 혜안이 열린 것인지 남들이 보지 못하는

영혼의 질병까지 들여다 보기 시작하더니 급기야 침도 놓지 않고 약도 처방하지 않는 이상한 치료법을

개발하기에 이른다. 이 쯤되면 이 사람..한의사라기 보다는 나수자 같은 철학자에 더 가까운 사람이 아닐까.

 



 

한치의 빈틈도 허용하지 않고 모범만을 강요받는 시대에 제목자체가 허술하기 이를 데 없다.

'어설픔'이라니...하긴 한의사라는 전문직업인으로는 상당히 어설퍼 보이긴 한다.

의학공부 열심히 해서 병고치는 명의가 되나 했더니..인도로 히말라야로..맥 놓고 떠돈 시간이

더 많아 보이기까지 한다. 얼핏 스님이 되거나 명상가가 되었더라면 더 어울릴 법한 남자!

천지에 부처가 가득하니 산에 들어가야만 수행할 수 있는 것도 아니라는 어느 스님의 말마따나

산속보다는 이 속세에서 그가 할일이 더 많아 보이니 어쩌면 그가 도시에서 벗어나긴 했지만

숨어 버리지 않은 것이 천만다행이기도 하다.

 



 

'세상을 깊이 들여다 보는 법'을 알아야 만 시를 쓸 수 있다고 했던 시인의 말도

생각났다. 바람소리, 나무소리, 사람들의 발자국 소리를 듣다보니 시가 되었다는..

저만치 떨어져 나를 보고 세상을 보고 우주를 보는 법을 꾸준히 익히더니

이제 이 사람 앞에서는 어떤 것도 숨길 수 없을 만큼 혜안이 밝아진 모양이다.

어수선한 도시의 생활을 접고 논산에 쉼터라는 병원을 열고 진료를 시작한 그를

찾아온 사람들은 몸의 병보다 마음의 병이 더 깊은 사람들이었다.

사랑에 굶주리고 무관심에 병들고 혹독한 삶에 여정에 지쳐버린 사람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 영혼을 어루만지며 자연의 품으로 인도하는 그를 너무나 만나고 싶어졌다.

나도 완벽한 삶을 이루기 위해 한시도 나를 내려놓은 적이 없으며 불면의 밤들이 길어지고

시름시름 시들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화타같은 명의가 아니면 도저히 고칠 것 같지 않은

이 병도 그 곳에 이르면 말끔히 회복될 수 있을 것 같기 때문이다.

침도 약도 고칠 수 없는 병일지도 모르겠지만 적어도 내 존재가 이 우주에서 이곳에

이르기까지 얼마나 많은 인연과 집중과 사랑이 필요했는지...그렇기에 지금 비록 너덜너덜한

몸뚱이에 헐벗은 영혼을 가진 존재이지만 한 없이 소중하다는 자각은 충분히 느낄 수 있을 것만 같다.

이 세상을 살아가는 일이 자신과 맞지 않는다고 절망한 여인을 구원하여 아내를 삼았다는 사람이니..

적어도 같은 시대를 살아가는 친구라도 삼아주지 않겠는가. 그런 바람으로 그를 찾아 이 봄..

햇살 가득한 그의 쉼터로 찾아갈 것이란 예감으로 벌써부터 마음이 편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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