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공한 사람들에게 특별한 것이 있다. 특별한 것이라고만 표현하기에는 모자랄만큼 이승한회장에게는 창조 바이러스를 만들어내는 숙주이기도 하다. 삶 속에서 창의의 싸앗을 뿌리는 긍정바이러스, 매순간 자기 자신을 불태우는 열정바이러스, 남들이 보지 못하는 저 너머를 바라보는 비전바이러스.. 이런 바이러스라면 나는 기꺼이 감염되고 싶다. 어떤 치료약에도 정복되지 않는다는 바이러스의 특징대로라면 나는 영원히 이 바이러스에 사로잡혀 내 남은 목숨을 저당잡힐터이니..스스로 그들의 숙주가 되리라. 칠곡의 정미소와 솜틀집을 운영하는 선비경영인의 일곱번째 아들로 태어난 저자는 참 운도 좋은 사람이다. 높은산같은 아버지와 깊은 바다와 같았던 어머니...수재이고 원칙주의자인 큰형에게 바르게 사는법을 배우고 둘째형에게는 편안함과 감수성을, 셋째 형님에게 '정확성'과 '신뢰'를, 넷째형님에게 '희생정신'을 다섯째 형님에게는 옳다고 생각되는 일에는 물러섬이 없는 '고집'을, 여섯째 형님에게는 '한다'하면 끝까지 해내는 집념을 배웠으니 가족은 그의 인생에 진정한'멘토'였고 삶의 지혜를 멀리 찾을 필요가 없었느니 말이다. 보고 듣고 부딪끼며 살아온 어린시절이 바로 지금의 그를 있게한 초석이 되었음은 정말 부럽기만 하다. "얘야, 절대 혼자 가지 말아라. 주저 앉은 사람까지 함께 데리고 가라. 네가 가진 모든힘을 다해라." 밤새 멸치국물을 우려내고 밀가루를 반죽하여 많은 사람들에게 정성껏 칼국수를게 대접했던 그의 어머니의 이 말씀에 나는 눈물이 핑돌았다. 절대 혼자가지 말아라..주저 앉은 사람까지 일으켜세워 함께 데리고 가자.. 부로 성공하는 사람들은 많이 있다. 하지만 어려운 주변을 돌아보고 나눔을 실천하는 사람들은 많지 않다. 그의 성공뒤에는 이렇듯 어려운 사람들을 돌아보게한 그의 어머니의 힘이 있었음에..그의 성공이, 나누는 삶이 더 특별하게 느껴진다. 아무도 상상할수 없었던 일..혹은 도전할 수 없었던 일들을 하나하나 정복하고 성을 쌓았던 그가 이제는 유유히 성위에서 자신의 업적을 돌아보아도 좋으련만 영국의 국회의사당인 빅벤을 모티브로한 홈플러스의 시계탑위에서서 늘 고객의 소리를 담아내겠다고 귀를 쫑긋하고 서있다. 그는 '고객의회'의 의장이다. 독단도 없이 군림도 없이 그저 우리 고객의 소리를 듣고 쉬고 싶고 들르고 싶고 아이들을 데려오고 싶은 '우리 모두의 城' 을 만들기 위해 지금도 겸손하게 우리의 소리를 기다린다. 그곳이 바로 '고객의회'이다. 그의 이런 귀기울임은때로 공원이 되고 거리미술관이 되고 풍력발전기와 태양집광판이 달린 친환경의 점포로 탄생된다. 기업은 이익을 추구하는 집단임에도 파격적인 그의 이런 엉뚱하고 기발한 발상들은 우리를 행복하게 한다. 단순히 물건을 사고파는 점포가 아닌 마음과 마음을 나누고 소통하고 지친 삶을 잠시 내려놓는 쉼터로 다가올수 있도록 끊임없이 우리를 놀라게 하는 그는 건조한 사막속의 숨어있는 깊고 시원한 우물같은 그런 가슴을 가진 사람임을 알게된다. 1등을 향해..최고를 향해 부딪히고 도전하고 결국 성공하는 그의 행보가 욕심많은 CEO란 느낌보다 이루고자 하는 한인간의 열정과 도무지 넘을 수 없는 산을 넘는 알피니스트의 도전정신이 아름답게만 느껴진다. 냉혹하게 독식하고 약자를 누르는 경영인이 아닌 최고를 지향하면서 더 많은것들을 나누려는 합리적인 사고에 고개를 숙이게 된다. 그의 머리속에 그려진 미래의 그림은 무엇일까. 종로에 UFO를 띄우고 세계적인 건축가들의 작품인 리움이 탄생되었지만 아직 지하에서 빛을 못보고 있는 상상속의 도시, '지오네스 시티'는 정말 실현 불가능한 소망일까? 지하깊숙한곳까지 태양빛을 끌어들여 도시를 세우고 싶다는 그의 소망은 아직도 읍습하고 어둔곳에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 희망을 선물하고 싶은 그의 잠재가 아닐까 생각해보았다. 영화속에서만 그려진 도시가 아닌 그의 이 희망도시가 결국에 이루어져 나역시 향좋은 커피를 마시고 지하 미술관 로비에서 작품을 감상하는 행복을 누릴수 있을거라고 믿어본다. 사랑하는 아들을 잃고 암을 앓게된 아내를 일으켜 세우며 자신도 쓰러질법 하건만 겨울의 찬바람을 뚫고 솟아오른 보릿대 처럼 그는 씩씩하다. 고난을 겪어본 사람만이 타인의 고난을 이해할 수 있다며 자신의 고난을 세상사는 삶의 가치로 돌려놓는 그에게 어찌 박수를 보내지 않을 수 있겠는가. 어둠의 세계를 모르는 사람은 빛의 고마움을 모르듯이 그의 고난의 시간들이 미래를 비추는 햇살이 되기를 빌며 그의 다음 작품은 무엇이 될지 벌써부터 궁금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