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내 죽음에 네가 들어왔다
세이카 료겐 지음, 김윤경 옮김 / 모모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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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양아 출신인 아이바 준은 어려서 입양되었을 때부터 양부모와 가까워지지 못하고 거리를 두고 살아온 결과 고등학생 무렵에는 특별한 이유 없이 서로 싫어하는 사이가 되었다. 원래 사람들을 싫어하는 성향을 가진 그는 이렇게 양부모에게도 정을 붙이지 못해 집에 있는 것조차 마음이 편치 않았다. 그래서 사람들과 거리를 두고 혼자 있는 시간을 즐기기 위해 동네에 있는 다리 위에 자주 갔다.


고등학교 시절의 마지막 크리스마스 날에도 아이바는 그 다리 위에서 날이 어두워질 때까지 혼자 시간을 보냈다. 모두가 사라진 세계인 것 같은 그 공간이 너무나 편하고 마음에 들었다. 하지만 멀리서 비치는 자동차 불빛에 현실로 돌아왔고 무거운 마음에 한숨을 쉬었다. 그때 그에게 긴 은발머리에 검은 옷을 입은 여자가 말을 걸어왔다.

"아이바 준 씨. 당신의 수명을 제게 넘겨주시겠어요?"


아이바에 대해 모든 것을 알고 있다는 그녀는 그의 성장과정을 이야기했고, 당황하며 놀란 그에게 자신을 사신死神이라고 소개했다. 그러면서 자신은 아이바를 이해하며 그가 죽고 싶어 하는 것을 안다며 그의 고민을 단번에 해결해 주겠다고 했다.

그녀는 3년 이후 아이바의 수명과 시간을 되돌릴 수 있는 우로보로스 은시계를 교환하자고 제안했다.

차마 용기가 없어 자살을 실행에 옮기지 못하고 무의미하고 의욕 없는 삶을 이어가고 있던 아이바는 망설이지 않고 사신과 거래했고, 그렇게 목숨을 대가로 시간을 되돌릴 수 있는 시계를 얻게 되었다. 그리고 사신은 헤어질 때 마지막 충고를 덧붙였다.

"수명을 내놓은 걸 절대 후회하지 마십시오."


아이바는 우로보로스 은시계를 사용하여 시간을 되돌려 돈을 벌고 양부모님의 집에서 나와 독립한다. 처음 몇 개월간은 자신의 뜻대로 하고, 혼자 있을 수 있어 수명을 넘긴 걸 후회하고 싶을 정도로 즐거웠지만 이내 똑같은 날이 반복되자 금세 삶이 지겨워졌다. 그 어떤 일에도 흥미가 생기지 않았고 사는 것이 따분하기 그지없었다. 그는 수명을 팔아넘긴 것을 정말 잘 했다고 생각했다.


그러던 어느 날 한밤중 뉴스에 중학생 소녀가 다리에서 떨어져 사망했다는 뉴스가 나왔고, 아이바는 그 다리가 자신이 사신과 거래했던 다리라는 것을 알고는 신경이 쓰였다. 그리고 자신과 같은 부류를 발견했다는 기쁨과 함께, 같은 다리에서 자신은 망설였던 것을 실제 행동으로 옮긴 소녀에 대한 호기심으로 다음날 그 다리에 가보게 된다. 거기에서 아이바는 자살한 소녀의 죽음을 조롱하고 기뻐하는 네 명의 소녀들을 맞닥뜨린다.

그리고 마침내 아이바는 시간을 되돌려 소녀의 자살을 방해하겠다라는 뜬금없는 결심을 하게 된다.


시간을 되돌려 만나 본 소녀 이치노세 쓰키미는 자살과는 거리가 멀어 보이는 아이였다. 그러나 그녀는 친구들의 괴롭힘으로 자살을 생각할 만큼 괴로워하고 있었고, 아이바는 그녀를 이해하는 듯 다가갔으나 잘못된 전략으로 그녀에게 자살 플래그를 꽂게 하는 실수를 범하고 만다.

이에 아이바는 자신의 남은 수명 2년 동안 죄책감 없이 평온하게 살기 위해 이치노세가 자살을 포기할 때까지 그녀의 자살을 방해하기로 마음먹는다.



아이바와 이치노세는 살면서 상처가 많았다.

아이바는 태어난 직후 보육원에 버려져 스스로 주변의 관심과 사랑을 철저하게 막고 벽을 쌓았다. 그러나 조금 나이가 들어 자신이 버려졌다는 것을 인정하고 주변을 둘러봤지만 이미 오랫동안 고립되어 있어 사람을 사귀기가 힘들었다.

이치노세는 아픈 아버지의 병문안을 가느라 친구들과 어울리지 못해 친구들에게 비난당하며 무시당하게 된다. 그 후 집단 괴롭힘을 당하게 되었고 그 괴로움은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엄마의 재혼으로 인해 더 심해졌다. 이치노세가 학교에서 괴롭힘당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새로운 가족들은 이치노세에게 심한 폭언과 폭력을 일삼았다. 심지어 친엄마조차도 이치노세에게 무관심하거나 비난을 가했다. 학교에서도 집에서도 괴롭고 정을 붙이지 못하는 소녀가 자신의 비참한 인생을 빨리 끝내고 싶어 하는 것은 당연한 것 같다.


그렇게 외롭고 삶에 애착이 없던 두 사람이 만나 서로의 삶의 일부를 공유하기 시작한다. 비록 한 사람은 다른 사람의 자살을 방해하는 입장이지만.

소설의 원래 제목처럼 아이바는 이치노세의 자살을 방해하고 그때마다 이치노세를 데리고 놀러 다닌다. 그리고 차츰 그것은 일상처럼 되어버려 이치노세의 자살과 아이바가 시간을 돌려 자살을 방해하는 것, 그 후 둘이 함께 놀러 가는 패턴이 반복된다.

자살을 방해 후 둘이 놀러 가는 일상이 너무 사랑스럽다. 아이바는 자살을 방해한 뒤 어디로 놀러 갈까 가이드북까지 사서 계획을 세우기까지 한다.

이런 일들이 반복되며 이치노세는 아이바에게 자연스럽게 마음을 열고 자신의 상처를 스스로 드러내 위로받게 된다. 그러는 사이 아이바 역시 이치노세를 통해 자신의 허무하고 고독한 삶에서 온기를 느끼게 된다.


이 소설은 자살을 소재로 하는 데다가 사신死神까지 등장하여 자칫 무겁고 우울할 것 같지만 그 무거운 소재를 치유와 로맨스로 풀어내며 감동을 주며 가슴 설레게 하고 있다.

사랑이라는 것이 결코 한쪽으로만 흐를 수 없는 것임을 다시금 알게 된 것이 이치노세를 보듬고 위로하는 과정에서 아이바 역시 타인에 대한 사랑이라는 감정을 배우고 느끼며 무의미하다고 생각되었던 자신의 인생을 뒤돌아보며 소중함을 느끼게 되었기 때문이다.


소설을 읽으면서 두 사람이 조금씩 자신의 상처를 치유해 나가는 모습과 서로가 모르는 사이 사랑이 싹트며 처음 시작하는 연인 같은 알콩달콩한 모습이 나와 흐뭇하면서도 한편으로 설레며 읽어 나갔다. 그러나 어느 순간 그 무엇도 막을 수 없는 두 사람의 진실한 사랑 이야기에 끅끅 소리 내며 폭풍 같은 눈물을 하염없이 흘리기도 했다.

근래 들어 읽은 로맨스 이야기 중 최고가 아닐까 생각한다.

책을 덮은 지금도 가슴 두근거리고 쿵쾅거리는 감동이 남아 있다.

로맨스 소설을 원하는 사람들에게 꼭 읽어보라고 강력 추천하고 싶은 책이다.





*출판사로부터 지원받고 주관적으로 작성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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헨치 2 - 악당 기지로 출근하는 여자
나탈리 지나 월쇼츠 지음, 진주 K. 가디너 옮김 / 시월이일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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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퍼콜라이더와 마주친 후에 탈출한 사람이 나 혼자일 리 없다. 히어로로 인해 다친, 나와 비슷한 상태에 처한 사람이 분명히 더 있을 것이다. 하필 그 시간에 그 장소에 있다가 슈퍼콜라이더에게 봉변을 당한 사람을 찾기로 했다.

p.52



애나는 자신이 알짱거리다가 다친 것에 대한 보복으로 슈퍼콜라이더를 무너뜨리기로 하고 그의 주변 히어로와 그와의 유대관계를 틀어버리는 것부터 시작한다. 먼저 노어를 슈퍼콜라이더의 북미 활동을 담당하는 홍보 기업에 인턴으로 위장 취직시켜 조연급 히어로 엑셀러레이터를 꼬드겨 그가 무적의 히어로라고 착각하게 만들었다.

엑셀러레이터는 노아에게 세뇌되어 혼자 멋대로 작전을 수행하기 시작했고 끝내는 독립 히어로를 선언했다. 그리고 어느 날 혼자 강도들을 저지하다가 애나에게 고용된 청부업자 몇 명에게 기습당해 복부에 병이 박혔고, 그 병이 그대로 산산조각 나 이후 어려운 수술을 했으나 패혈증으로 끝내는 죽고 만다.

하지만 애나는 여기서 멈추지 않고 슈퍼콜라이더와 아내인 퀀텀과의 사이를 이간질하며 슈퍼콜라이더를 무너뜨리는데 혈안이 되는데….


애나의 비열하고 더러운 짓거리에 할 말이 없다. 자신은 남의 목숨을 빼앗고 아무 잘못 없는 아이가 스스로 손가락을 자르는 현장 뒤에서 비열한 웃음이나 짓고 있는 주제에 실수로 밀쳐져 다쳤다는 이유로 히어로들을 분열시키고 죽이다니. 대체 이 소설이 말하고자 하는 바를 모르겠다. 분노가 치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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헨치 2 - 악당 기지로 출근하는 여자
나탈리 지나 월쇼츠 지음, 진주 K. 가디너 옮김 / 시월이일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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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놈의 모든 연결 고리를 잘라버리고, 모든 토대를 파괴하고, 모든 지지 세력을 갈기갈기 찢을 겁니다. 슈퍼콜라이더의 세상을 무너뜨리는 거예요. 슈퍼콜라이더를 필요로 하는 곳은 물론 슈퍼콜라이더가 의지하는 곳까지, 그놈을 히어로로 만들고 있는 모든 것을 빼앗을 거예요. 결국 전부 잃고 허허벌판에 혼자 남겨질 겁니다. 바로 그때 보스가 등장한다면, 결과가 어떨까요?"

p.25~26



애나는 히어로 측에 잡혀 가 슈퍼콜라이더의 판단에 의해 수술대에 올라 조금 덜 똑똑하고 조금 덜 예민하게 만드는 뇌 수술을 받게 된다. 그러나 수술 도중 레비아탄의 무리에 의해 구출되고, 애나의 손상된 부분은 빌런 측의 의사에 의해 업그레이드 '수리'를 받게 된다.

그리고 어느 정도 회복 과정을 거친 후 레비아탄의 명령에 의해 새로운 신체에 적응하며 능력을 개발하는 훈련을 베스퍼로부터 받는데….


히어로에게 잡혀가도 애나가 측은하거나 그녀에 대한 공감이 일지 않는다. 슈퍼콜라이더는 그렇게 당했음에도 애나에게 너무 관대한 것 같다. 감각을 무디게 하는 수술을 하지 말고 그냥 처단하면 되지 않나? 나는 이 책에 나오는 다른 어떤 빌런들보다 애나가 너무 짜증 난다.

앞으로 고구마 백만 개는 먹으며 소설을 읽어나갈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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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로마 신화 4 : 인간의 다섯 시대 프로메테우스 대홍수 - 정재승 추천, 뇌과학을 중심으로 인간을 이해하는 12가지 키워드로 신화읽기 그리스·로마 신화 4
메네라오스 스테파니데스 지음, 정재승 추천 / 파랑새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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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로마 신화 속에서 인류는 총합 다섯 번의 시대를 겪었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다섯 세대의 인류가 있었고, 그중 세 개의 세대는 신들의 분노, 더 정확히는 제우스를 중심으로 한 신들의 분노에 휩쓸려 사라져버렸고, 네 번째 세대인 영웅시대의 인류는 점차 사라져서 현재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시대인 철의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첫 번째 시대인 황금시대의 사람들은 어떻게 보면 정말 황금이라는 단어가 연상시키는 풍요로움을 제대로 보여준다고 할 수 있을 정도로 풍족한 삶을 살고 있었다. 단지 그들의 불행은 그들이 티탄족이 지배하는 세상 속에서 살았다는 것, 그래서 티탄족을 밀어내고 신들이 지배하게 되면서 이들은 말살되고 만다.

그 후 은 시대의 인류는 나타난 뒤 얼마 되지 않아 허무하게 신들의 분노를 사서 땅 위에서 사라지게 된다.

그렇게 두 시대가 사라진 후 나타난 것이 바로 청동 시대의 인류이다. 이들에게는 이전 시대와는 확연하게 다른 점이 하나 있었는데, 바로 그들을 위해 간이고 쓸개고 다 빼줄 기세인(실제로 간을 희생하기는 했지만) 프로메테우스의 존재였다.



프로메테우스는 인류를 사랑하였고, 인류를 더욱 풍족하게 살 수 있게 하기 위해서 갖가지 노력을 하였다. 그중 하나로는 그리스·로마 신화를 잘 모르는 사람들조차 알고 있을 정도로 유명한 일화인 신들로부터 불을 훔쳐내어 인류에게 전달한 것이다.

그리고 프로메테우스는 여기서 더 나아가 인류가 신들에게 제물로 바쳐야 하는 고기의 부분을 결정하는 자리에서 인류가 신들을 속여 더욱 좋은 부분을 가져갈 수 있도록 하기 위해 뼈 더미에는 먹음직스러워 보이도록 비계 덩어리를 얹었고, 다른 그릇에는 그저 살코기만을 담는 꾀를 전해주었다.

이러한 꾀에 신들의 왕으로서 인간들로부터 받을 제물을 선택하던 제우스는 최고신의 이름이 무색하게도 너무도 쉽게 속임수에 넘어가 버린다.


이에 분노한 제우스는 신들을 모아 판도라라는 이름의 여성을 만들어내어 프로메테우스의 동생 에피메테우스에게 보냈고, 판도라는 결국 제우스의 계획대로 온갖 인류에게 전해질 불행이 담긴 항아리를 호기심을 참지 못해 열어본다. 그 결과 수많은 고통들이 이 세상으로 퍼져 나오게 되었다.

이렇게 프로메테우스의 노력이 무색하게 인류는 고통을 받게 되었고, 이들은 결국 신들이 일으킨 대홍수에 휩쓸려 모두 사라지게 되었다.

그러나 살아남은 이들이 존재하였는데, 아버지인 프로메테우스의 경고에 따라 방주를 만들어 대피를 한 데우칼리온과 그의 아내 피라였다. 이들은 홍수가 끝난 후 신들에게 기도하였고, 결국 새로운 인류를 만들어내게 되었다. 그 결과 영웅시대의 인류는 결과적으로 프로메테우스의 후손과 다름없게 되었다.


그리스·로마 신화 속에서는 종종 호기심이라는 것에 대하여 상당히 부정적인 견해를 보이며, 호기심들은 대부분 판도라의 항아리처럼 인류 전체에게 막대한 피해를 주는 것이나, 작게는 개개인이 신들의 분노를 사게 되어 끔찍한 최후를 맞이하게 되는 것으로 마무리가 된다.

그러나 그리스·로마 신화를 계속 읽다 보면 과연 호기심이라는 것이 그토록 잘못된 것일까 싶은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리스·로마 신화는 신들이 허락하지 않은 호기심을 품는 것에 대한 경고를 하고 있지만, 이것은 신들이 인간들이 호기심을 가지며 계속 탐구하고 발전하여 더 나은 존재로 거듭나 자신들의 지배를 벗어나고 더 이상 자신들을 숭배하지 않을까 경계하고 두려워했기 때문은 아닐까?

그냥 그리스·로마 신화를 읽어 나가는 것도 재미있지만 정재승 박사님이 제시한 키워드에 유념하며 이야기를 읽어나가니 여러 가지 생각을 하게 되며 색다른 그리스·로마 신화를 즐길 수 있는 것 같다.

다음에 출간될 『그리스·로마 신화 5』는 어떤 키워드를 제시하며 어떤 이야기를 담고 있을지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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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로마 신화 3 : 헤파이스토스 아테나 포세이돈 헤스티아 - 정재승 추천, 뇌과학을 중심으로 인간을 이해하는 12가지 키워드로 신화읽기 그리스·로마 신화 3
메네라오스 스테파니데스 지음, 정재승 추천 / 파랑새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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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로마 신화 속 신들은 그 모습이 인간과 매우 유사한, 솔직히 말하자면 쓸데없는 부분에서 인간성이 있는 존재들이다. 그렇기에 그리스·로마 신들의 이야기는 대부분 신들끼리 싸우고, 신이 거인과 싸우고, 신이 인간과 싸우고, 신이 인간들 무더기와 싸우는 등, 옛날부터 전해져 내려오는 유서 깊은 이야기가 아니었다면 그냥 신이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놈들의 쌈박질하는 이야기투성이일 뿐이다 싶을 정도로 싸움, 다툼, 신경전, 산전, 수전, 공성전, 집단전 등의 각종 싸움 양식으로 점철되어 있다.

그리고 그 싸움, 다툼을 우아하고 고상하고 문학적으로 한층 미화하면 그게 바로 '갈등'인 것이니, 그리스·로마 신화는 갈등투성이인 셈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그리스·로마 신들 중 가장 고생을 많이 하고, 이리저리 치이고 다니고, 원치도 않는데 여러 신들과 갈등이 일어나게 되는 신을 꼽자면 단연코 헤파이스토스일 것이다.

태어날 때부터 드라마틱 하게 구름 위로부터 바다로 강제 다이빙 시켜져서 지상에 탄생 신고를 하는가 하면, 올림포스의 신들은 정작 그를 버려놓고는 나중에 필요하니 온갖 속임수를 동원해 올림포스로 끌어들여 이곳저곳에 부려먹으면서 그를 뼛속까지 우려먹는다.

아프로디테에게 된통 속기도 하지만, 헤파이스토스도 이에 대한 보복으로 아레스와 아프로디테에게 망신을 주기 위해 복수를 감행하기도 한다. 이외에도 기타 등등의 사건들이 일어나며 헤파이스토스는 파란만장한 신생(神生)을 보여준다.


그리스·로마 신화의 신들 중에서 올림포스의 신들로 한정을 지을 때 가장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신이 누구냐고 그리스·로마 신화를 읽어본 사람들에게 물어보면 절반 이상은 아테나를 선택할 것이다. 물론 나머지 절반 정도는 권력이나 명예, 그리고 각종 개인적으로 원하는 것에 꽂히면 멈출 줄을 모르는 다른 신들과는 달리 차분하고 배려심이 넘치는 것을 넘어서 상징인 화로처럼 따뜻하게 모두를 포용하는 헤스티아를 선택할 것이라 생각한다.



그러나 그리스·로마 신화 속 신들은 '완벽한 존재 따위는 없다'를 최선을 다해 보여주는 듯 쓸데없는 부분에서까지 인간미를 보여준다. 한없이 완벽하고 냉철하며 이성적 판단을 내리는 아테나조차도 감정적으로 행동한 것이 있었는데, 바로 그 유명한 아라크네와의 베짜기 시합이 그중 하나이다.

아라크네는 자신의 실력이 아테나보다 뛰어나다고 자신하며 이를 자랑하고 다녔고, 이에 아테나는 아라크네를 설득하여 여신에 대한 경의를 표하게 하려 했으나 아라크네가 듣지 않자 아라크네와 베짜기 시합을 벌이게 된다. 그 결과 아라크네는 흠잡을 데가 없는 수준의 베를 짜 내었다. 그러나 아테나는 아라크네가 짠 베가 신들의 부정적 모습을 담고 있다는 것에 분노하여 아라크네를 거미로 만들어 버렸다.

과연 신과 필적할 만한 실력을 가진 것을 자랑하는 것이 제재를 받고 벌을 받을만한 일일까?


이런 모습들을 보면 그리스·로마 신화 속의 신들이 완전무결하기 때문에 신이라 불린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그들은 단지 인간들보다 조금 더 오래 살고, 조금 더 강하고, 조금 더 특출난 능력을 가졌기에 신이라 불렸던 것이 아닐까?

그들은 같은 이야기 속에 나오는 인간들처럼 속기도 하고, 때로는 당하기도 하고 분노하고 실수하는 등 내적·외적으로 여러 갈등을 겪는다. 이러한 인간적인 모습들이 우리에게 그리스·로마 신화 속 신들을 더욱 친근하게 느껴지게 만들고, 이것이 그들의 이야기가 오랜 시간 동안 사랑받아온 이유일 것이다.


이 책에서는 헤파이스토스, 아레스, 아테나, 포세이돈, 헤스티아의 모습들을 통해 그 갈등의 여러 가지 양상들을 찾아볼 수 있다. 어린이와 청소년을 위한 책이니만큼 누가 읽어도 이해가 쉽고 재미있게 접근하고 있어 그리스·로마 신화를 처음 접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이 책을 권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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