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임수의 섬
히가시가와 도쿠야 지음, 김은모 옮김 / 북다 / 202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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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5년 3월, 남자 중학생 3명은 약간의 용돈을 벌기 위해 작은 배를 타고 세토내해의 작은 섬 근처에서 밤낚시를 했다. 그들은 점프대 모양과 딱 들어맞는 이름을 가진 사이다이지 가문 소유의 섬인 '비탈섬' 벼랑 밑에서 해수면에 불빛을 비추어 물고기들을 정신없이 낚아 올렸다. 한참 동안의 낚시 후 휴식을 취하고 있을 때 느닷없이 그들 뒤에서 커다란 물소리가 들렸고, 이에 아이들이 깜짝 놀라 뒤돌아봤지만 아무것도 발견하지 못했다.


그러나 다음 순간 바닷속에서 커다란 무언가가 튀어 올라 배 위쪽으로 포물선을 그렸고, 아이들이 그것이 무엇인지 알아채기도 전에 갑자기 배 위로 떨어졌다. 그 충격에 배는 뒤집혔고 아이들은 바다로 내던져졌다.

아이들 중 한 명인 사기누마는 자신의 근처에 떠 있는 흰색 물체를 보고 배 위로 떨어졌던 것이 흰옷을 입은 사람이었다는 것을 알게 됐다. 사기누마는 그 사람을 구하고자 붙들었지만 높은 물결에 그를 놓쳐버렸고, 자신은 구불거리는 무언가에 발목이 잡혀 물속으로 끌려들어 갔다.


2018년 8월 『모모타로』로 유명한 사이다이지 출판의 사장 사이다이지 고로가 병으로 죽었지만, 그의 유언장 공개에 필요한 참석인 중 조카 쓰루오카 가즈야가 없고 장소가 비탈섬의 별장이 아닌 관계로 유언장 공개가 미뤄진다. 이에 그의 여동생 마사에는 20여 년간 소식이 끊겼던 쓰루오카를 찾기 위해 사립탐정을 고용했고, 사십구재 법사에 맞춰 쓰루오카를 찾아 비탈섬으로 데려오는데 성공한다.

사십구재 법사가 끝난 뒤 개봉된 유언장에서 고로는 자신의 여동생을 비롯해 아내와 세 명의 자식들, 그리고 조카인 쓰루오카 가즈야는 물론이고 오랫동안 사이다이지 가문을 위해 일해 온 주치의와 집사 부부에게 유산을 분배한다고 밝혔다.

전부 자신들이 상속받은 유산에 만족한 듯 보였지만 저녁 식사 도중 쓰루오카가 유산을 받게 된 것에 대한 불만스러운 반응들이 나왔다. 이에 쓰루오카는 언성을 높이며 자신이 사이다이지 가문의 비밀을 알고 있고 그것을 까발리면 큰일 날 것이라는 말을 내뱉으며 분위기를 어색하게 만들었다.


다음 날, 일기예보대로 태풍으로 인한 폭우가 몰아쳐 모두가 비탈섬에 발이 묶인 상황에서 아침 식사 시간이 끝나도 모습을 드러내지 않던 쓰루오카가 집단 폭행이라도 당한 듯한 피투성이 시체로 발견된다.

이에 쓰루오카를 찾아 비탈섬으로 데려왔던 탐정 다카오가 유언장 집행을 맡았던 변호사 사야카를 조수로 삼아 사건 해결을 위한 실마리를 찾아 나서는데….



표지를 보고 음습하고 음울하고 기괴하며 외로운 이야기일 것이라 추측했다. 하지만 추측과는 정반대로 너무나 허무한 인생을 살다간 1인에 대한 연민과 동정을 제외하고는 전체적으로 미스터리한 분위기를 유지하지만 가벼운 분위기의 소설이었다.


미스터리 추리 소설답게 작은 섬이라는 폐쇄된 공간에서 벌어지는 살인 사건과 절묘한 트릭, 갑자기 나타났다 사라지는 건물과 빨간 도깨비 같은 초자연적으로 보이는 기괴한 상황, 비밀과 사연을 품고 있는 듯한 인물과 장소 등 단순하고 평범한 것은 하나도 없었다. 그렇기에 작가가 군데군데 던져놓은 미스터리의 퍼즐 조각들을 찾아내 끼워 맞추며 진실을 알아내는 과정이 짜릿할 정도의 쾌감을 주었다.

동시에 너무나 억울한 죽음이었지만 그것조차, 아니 존재조차 비밀이 되어야만 했던 인물과 그 인물의 죽음에 대한 슬픔을 삼켜야만 했던 이들에 대해서는 안타까움에 먹먹한 기분이 들었다.


그렇게 이야기 자체는 무척 매력적이면서도 재미있었지만, 주인공인 탐정과 변호사가 개인적으로는 덜 매력적이라 아쉬움이 남았다. 소설의 유머 또한 호불호가 갈릴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소설은 살인사건을 다룸에도 불구하고 밝고 가벼운 분위기와 뛰어난 가독성 때문에 미스터리 추리 소설 마니아는 물론 입문자들, 쉽고 재미있게 읽히는 소설을 찾는 사람들 모두를 만족시킬 수 있는 소설이라 생각된다.





*출판사 선물 도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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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락가 1
사노 유토 지음 / 대원씨아이(만화)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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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국내외 신작 만화들이 홍수처럼 쏟아지고 있는데요. 그중에는 소문을 듣고 1권 시작을 했지만 실망을 느껴 2권 구매로 이어지지 않는 만화들이 있는가 하면, 별 기대 없이 시작했다가 '심봤다~'라는 기분을 느끼게 하는 만화가 있어요. 그런가 하면 재미있다는 소문처럼 '역시!!'라고 생각되는 작품도 있습니다.

『극락가』는 세 번째에 해당되는 작품이에요.


저는 주인공 알마가 익살스럽고 앙증맞은 표정을 짓고 있지만 왠지 모를 다크한 분위기의 표지 때문에 구매를 망설였다가, 재미있다는 소문이 자꾸자꾸 들려서 1권을 구매했었어요.

그 결과… 대박이었습니다. 😍

그래서 2권은 출간 소식이 들리자마자 바로 예약 구매를 했어요.



이야기는 무켄구미가 좌지우지하는 치외 법권 거리인 '극락가'가 배경입니다.

타오와 알마는 극락가의 보래 반점 2층의 옛 마작 가게에서 해결 사무소를 차려놓고 사람들이 해결하지 못해 곤란해하는 일을 해결해 주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간판을 새로 만들 돈이 아까워서 마작 가게 간판을 그대로 달고 영업하고 있지만, 알마가 나눠주는 티슈에 붙은 해결 사무소 홍보 스티커나 어찌 알음알음으로 의뢰를 받아 살아가고 있답니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 극락가에서 동물 변사체가 발견되면 그 근처에서 사람이 행방불명되는 사건이 연달아 계속 발생됩니다. 타오와 알마의 단골가게인 보래 반점 집 딸 야야는 타오와 알마에게 사건 해결을 부탁하지만, 둘은 정식으로 의뢰가 들어온 사건이 아니라며 사건에 대해 큰 관심을 보이지는 않습니다.


그러던 중 알마는 사무소 건물 벽에 갑자기 사라진 수인 친구 유키를 발견하면 500만 엔의 사례금을 주겠다는 전단지를 붙이고 그 옆에 유키가 좋아했던 자신의 그림을 그리고 있던 루카라는 소년과 마주치게 됩니다. 벽면의 원상 복구를 위해 루카를 사무소에 데리고 가지만 루카는 자신이 가진 돈은 친구 유키를 구하기 위해 쓸 돈이라며 복구비 지불을 거부합니다. 무슨 일이 있더라도 소중한 친구를 꼭 구하겠다는 루카의 말을 들은 타오와 알마는 자신들이 도와주겠다고 하지만 그들을 수상하게 본 루카는 그대로 사무소에서 도망쳐 나와 버립니다.


그러고는 어두워지기 전에 거리 구석구석에 포스터를 전부 붙이려고 뒷골목으로 향하던 중 동물의 사체와 심하게 다친 유키를 발견하게 됩니다. 드디어 찾게 되어 기쁜 마음에 루카가 유키에게로 달려가는 순간 갑자기 나타난 이형의 괴물에게 유키가 잡혀 먹히게 되는 상황에 처하게 됩니다.

그 모습을 보고 절규하는 루카 역시 괴물에게 먹히려는 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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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선가 나타난 알마에 의해 유키와 루카는 무사히 구출되는데요.

그 후 알마는 타오의 '해(解)'라는 말과 함께 가슴에서 칼을 해제시키며 괴물을 손쉽게 없애 버립니다.



그렇게 알마가 강한 이유는 바로 알마가 반은 사람이고 반은 '마가'인 반화(半禍)인 존재였기 때문이에요.


타오의 설명에 의하면 유키와 루카를 잡아먹으려던 괴물은 인간이나 동물의 사체를 부활시켜서 만든 '마가'라고 하는 괴물이었습니다. 그것들은 사람의 피를 마시고 그 살을 먹어야 살아갈 수 있는 존재라고 합니다.

타오와 알마는 표면적으로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한 문제 해결사였지만, 실제로는 이면에서 '마가'가 관련된 괴기 사건을 해결하는 사람들이었기 때문에 그 사실을 잘 알고 있었던 거예요.


그리고 그 마가에 대항하는 기관 '사라기' 본부.

과연 그들은 아무런 희생 없이 마가를 멸하고자 하는 그들의 목적을 달성할 수 있을까요?



2권에서는 '사라기'본부의 귀염둥이이자 엄청 강한 소녀 네이가 등장하고, 천하무적일 것 같았던 알마의 약점이 드러나게 됩니다.

그리고 계속해서 사람들을 위협하는 존재들이 등장하는데요.


흥미로운 스토리와 시원하고 거침없는 액션과 흠잡을 데 없는 작화 때문에 헤어 나올 수가 없어요. 만화의 인체 표현 하나하나가 전부 너무 자연스러워요. 특히 알마의 발차기 장면은 너무 자연스러워 마치 실사를 보는 것만 같았어요.

또한 이 작품이 그냥 액션 작품이라고 생각하면 안 돼요.

중간중간 나오는 인물들의 이야기들에는 분명한 감동과 웃음 포인트가 존재합니다. 저는 이 만화를 보면서 웃기도 하고 눈물을 흘리기도 했어요.


과연 '마가'라는 이형의 괴물은 누가 만들어 낸 존재일까요?

그리고 마가 이외에 사람들을 공격하는 인물들도 자꾸 등장하는데요. 과연 그들은 왜, 무엇을 위해 같은 사람들을 공격하는 걸까요?

그리고 알마와 타오는 어떤 연유로 서로를 의지해서 살아가게 되었을까요?

궁금한 게 너무너무 많네요. 그래서 3권이 더욱 기다려집니다.


마지막으로 예약 구매하면서 같이 구매했던 알라딘 굿즈 '극락가 마우스패드 사진' 올려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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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셰프들 - 프랑스 미슐랭 스타 셰프들의 요리 이야기
크리스티앙 르구비.엠마뉴엘 들라콩테 지음, 파니 브리앙 그림, 박지민 옮김 / 동글디자인 / 202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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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쉐린'이나 '미슐랭'이라는 이름은 몰라도 온몸이 하얗고 볼록볼록하게 생긴 타이어 회사의 마스코트는 누구나 한 번쯤은 봤을 것이다. 아니, 어쩌면 미쉐린은 본업보다 맛집과 최고의 셰프를 인증하는 대명사인 '미슐랭 가이드'로 우리나라 대중들에게 더 친숙하고 유명할지도 모르겠다.


원래 '미슐랭 가이드'는 미쉐린에서 자동차 여행에 도움이 되는 실용적 정보를 담아 무료로 배포되었으나, 의도와는 다르게 타이어 가게 작업대 받침으로 쓰이는 등 함부로 다뤄지자 유료 판매로 전환되었고, 그것이 '미슐랭 가이드'가 영향력을 발휘하는 계기가 되었다. 그중에서도 레스토랑 섹션의 영향력이 커지자 미쉐린 형제는 '미스터리 다이너'로 훌륭한 식당을 선정해 별을 주는 방식을 채택했고, 이로써 오늘날 맛집과 셰프의 명예에 절대적인 영향력을 끼치는 '미슐랭 가이드'가 탄생한다.

그 영향력이 어느 정도냐면 이 책에 나오는 질 구종의 식당은 외진 마을에 위치해 찾아오는 손님이 거의 없어 파산 직전이었지만, 질 구종이 미슐랭의 별을 받고 나서부터는 먼 거리임에도 사람들이 일부러 찾아와 일 년 365일 문전성시를 이루는 유명한 레스토랑이 되었다고 한다.



이 책은 요리나 먹는 것에 큰 의미를 두지 않던 평범한 사회 초년생 기욤이 요리에 확고한 철학을 가지고 있는 할아버지의 제안으로 프랑스 각 지역의 미식 문화를 소개하는 프랑스 방송의 인턴 기자가 되어 미슐랭 스타 셰프들을 만나 인터뷰를 하면서 맛과 요리에 대한 인식이 바뀌어 그가 계획하던 것과는 전혀 다른 인생을 설계하게 되는 이야기이다.

각각의 다른 인생 스토리와 요리 철학을 가진 8명의 스타 셰프들의 이야기와 그들이 펼치는 요리 향연과 새로운 미각 세계로의 안내는 기욤의 인생관에 서서히 스며들어 인생 자체를 변화시키기에 충분했다.



제일 처음 소개되는 알랭 뒤카스(Alain Ducasse)는 스물일곱 살 때 겪은 비행기 충돌사고로 13번의 대수술을 받은 뒤 인생이 바뀐다. 그날 이후 그는 단 한 번도 냄비에 손을 댄 적이 없고, 오로지 머릿속에서 요리를 완성했다고 한다. 그는 자신이 만들어낸 요리의 아티스틱 디렉터를 자청했고, 지금 그의 가장 큰 자긍심은 동료들을 양성하는 것이라고 한다.

그는 아무리 맛있는 요리라도 다시 먹으려고 애쓰지 않고, 항상 새로운 맛을 발견하고자 자신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이용해 메뉴를 개발하고자 하는 노력을 게을리하지 않는다.


그의 철학은 어찌 보면 당연한 것이지만 우리가 항상 간과하고 넘어가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비단 음식에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어서 성공하고 싶은 많은 사람들이 삶의 교훈으로 삼고 살아가도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세계로 눈을 돌려라. 미래는 차별화에 있다.

주위 사람이 뭘 해서 성공했는지 잘 보고, 그것과는 다른 걸 하라."



책에 나오는 유일한 여성 셰프인 안소피 피크(Anne-Sophie Pic)는 오감에 충실한 요리를 하여 그녀의 요리는 유니크하면서도 어떤 틀로도 규정할 수 없다. 그녀는 피아노를 치듯 미각을 연주하여 각자의 입안에 스타인웨이 피아노가 한 대씩은 있다는 걸 깨닫게 한다고 한다.

모든 감각을 일깨우고 지휘하는 요리의 맛이란 어떤 것일까?


요리사였던 그녀의 아버지는 그녀가 어렸을 때 여러 맛을 시험해 보게 했고, 그 결과 그녀는 미각에 의존하여 요리를 깨우쳐 지금처럼 '향의 요리사'가 되었다고 한다.

우리는 음식의 냄새를 맡고 눈으로 보기도 한다. 그렇기에 안소피 피크는 음식을 먹는다는 것은 그냥 배를 채우는 행위를 넘어선 몸의 모든 감각, 즉 오감을 일깨우는 행위라고 말한다.



이 외에도 책은 알랭 뒤투르니에, 미셸 게라르, 로랑 프티, 질 구종, 아르노 동켈레, 기 사부아 등의 미슐랭 스타 셰프들의 개인적인 이야기는 물론 그들이 가진 요리에 대한 철학과 신념, 그들이 펼치는 마법 같은 요리의 향연들을 보여주고 있다.

그것을 통해 우리는 그들만의 요리와 맛에 대한 환상적인 간접 체험은 물론이고, 그들의 철학이나 신념이 결코 요리에 국한된 것만이 아닌 우리 인생 자체를 통틀어 관통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이 책은 그들의 이야기나 실제 모습을 직관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아닌, 만화라는 매체의 장점을 잘 활용하여 그들의 요리에서 받은 무한한 영감을 만화 특유의 상상력을 가미하여 보여줌으로써 8인의 스타 셰프들이 요리를 통해 대중들에게 진실로 전달하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지 보여주고 있다.

그들의 요리는 셰프들 각각의 철학에 따라 개성적이다. 하지만 그것들이 단순히 요리에, 아니면 더 나아가 예술로 승화된 것에 국한된 것이 아닌 인생의 근원적인 모습을 담고 있다는 점에서는 일맥상통하다고 봐도 된다고 생각한다.


처음엔 평범한 요리 만화로 생각하고 책을 펼쳤었는데 그 예상을 완전히 비껴나갔다. 이것은 요리의 이야기가 아닌 우리가 살아왔고 우리가 살아갈 인생의 이야기이다.

나와 사랑하는 이들의 인생이 이 책에 나오는 셰프들의 따뜻하고 굳건히 빛나는 아름답고도 매력적인 요리와 같기를 바라본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지원받고 주관적으로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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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 예술의 역사 4 : 바로크 예술 만화 예술의 역사 4
페드로 시푸엔테스 지음, 강민지 옮김 / 원더박스 / 202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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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바로크'라는 단어를 들으면 어릴 때 영화에서 보았던 고풍스러우면서 화려하고 웅장한 유럽 왕궁의 내부 장면이 떠오른다. 그곳은 벽에 걸린 액자 틀뿐만 아니라 내부를 채운 가구들, 심지어 촛대 같은 작은 소품조차 구불구불하고 화려하게 조각되어 있었다.

그런 장면과 함께 머릿속에서 장엄하게 울려 퍼지는 바흐의 토카타와 푸가 라단조 파이프 오르간 소리.

이것이 바로 내가 가진 바로크의 스테레오타입이다. 딱 여기까지다.


분명 학창 시절 나름 열심히 수업을 들었었지만 지금은 바로크 시대의 예술가가 누가 있는지 헷갈리고 기억이 나지 않는다. 필요에 의해 관련 자료를 찾아보거나 전시회에 가기도 하지만 그때뿐이다. 뭔가 기억에 오래 남을 임팩트 강한 무언가가 없을까?

그러던 중 『만화 예술의 역사 4 : 바로크 예술』을 접하게 되었다. 이 책은 누구나 좋아하는 만화로 되어 있어 읽기 쉬운 데다가, 내용 또한 꼼꼼하고 자세하면서도 한눈에 보기 쉽도록 간단하게 정리되어 있다.


'바로크'는 '찌그러진 진주'라는 뜻의 포르투갈어 '바로코(barroco)'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바로크 미술은 이전의 르네상스 양식에서 요구하는 원칙과 규범의 틀에서 벗어나 표현하고자 하는 것을 자유롭고도 다양하게 표현했다. 하지만 그것은 무분별한 자유분방함이 아닌 최소한의 질서와 원칙은 유지한, 생명력으로 살아 역동하는 이상화된 자유로움이다.

그러고 보니 '바로크'하면 떠오르는, 틀에 박히지 않고 예상 불가능한 구불구불한 문양들이, 정형화된 동그란 진주가 아닌 모양이 예측 불가능한 '찌그러진 진주'의 실루엣 같기도 하다.



정치, 경제, 사회 등 모든 곳에 영향을 미쳤던 종교가 16세기에 이르러 종교개혁으로 구교와 신교로 나뉘게 되었고, 신교에 맞서 다시 세력을 결집하려는 구교의 저항에서 바로크 미술이 탄생했다.

그리하여 바로크 미술은 이성과 관념에 의한 표현의 한계를 극복하고, 감정과 감각에 호소하며, 감성 자극을 극대화하는 표현이 두드러지게 되었다.



프란체스코 보로미니는 바로크 시대를 대표하는 건축가이다. 그는 예술 전 분야에 정통한 천재 잔 로렌초 베르니니의 조수를 거쳐 독립한 뒤에는 베르니니와 평생 라이벌 관계로 경쟁을 펼쳤다.

그는 복잡하고 기하학적인 요소를 가미해 자신만의 특색이 있는 독창적인 바로크 건축물을 설계했다. 책에 나와 있는 ‘산티보 알라 사피엔차’의 경우 성당의 돔과 나선형의 첨탑에 보로미니만의 독창적인 건축 방식 특징이 잘 나타나 있다. 보로미니가 선보인 역동적이면서도 기하학적인 요소를 활용하는 건축 방식은 바로크 건축을 한 단계 발전시켰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고 한다.



카라바조는 본명이 '미켈란젤로 메리시'지만 본명보다 출신지에서 따온 카라바조로 잘 알려져 있다. 그는 17세기 가장 큰 영향력을 미친 이탈리아 화가로 르네상스 회화 양식을 마치고 바로크 회화 시대를 개척한 거장으로 평가받고 있다.

카라바조는 다채롭고 화려한 르네상스 회화들과는 달리, 어두컴컴한 배경 속에서 중심이 되는 인물들에게 빛을 비추어 명암이 뚜렷하게 대비되는 기법을 창시했다. 이 기법은 루벤스, 렘브란트 등 후대 바로크 화가들에게 큰 영향을 끼치게 된다.

책에 나오는 그의 대표작 중 하나인 <메두사의 머리>는 이후 수많은 호러 매체에 영향을 끼치게 된다.



페테르 파울 루벤스는 플랑드르의 화가로 이탈리아 만토바 공의 궁정화가로 일하면서 익힌 이탈리아를 중심으로 한 남유럽 미술 전통과 모국 플랑드르로 대표되는 북유럽 미술 전통을 종합하여 빛나는 색채와 생동하는 에너지와 웅장한 구도가 어울린 독자적인 바로크 양식을 확립한 17세기 유럽의 대표 화가이다.

루벤스의 작품을 들여다보면 18세기에 유행하는 로코코 양식과 신고전주의의 형성을 엿볼 수 있다.



우리에게 <시녀들>로 잘 알려진 디에고 벨라스케스는 스페인 바로크를 대표하는 화가이자 세계적 거장이다.

당시에는 루벤스와 고전주의 화가들이 미적 취향의 기준이었기에 벨라스케스의 작품이 항상 인정받았던 것은 아니지만 그의 작품이 다른 인상주의 화가들과 사실주의 화가들에게 끼친 영향은 부정할 수 없다. 마네는 벨라스케스가 '화가들의 화가'라고 말했다고 한다.



이 외에도 이 책에는 잔 로렌초 베르니니, 아르테미시아 젠틸레스키, 후세페 데 리베라, 바르톨로메 에스테반 무리요 등 수많은 바로크 예술가들과 그들의 작품들이 선생님이 시간 여행을 떠난 학생들에게 설명하는 형식으로 소개되고 있다. 작품들 또한 실제 작품 사진이 아닌 작가의 그림체로 재탄생한 그림들이기에 익살스럽게 보여 무척 인상적이고 신선했다.

마지막으로 맨 뒷부분에는 책에 나오는 바로크 예술가들의 작품들의 이름과 정보가 일목요연하게 정리되어 있어 작품을 정리해 보는데 유용했다.


책을 덮고 난 후에도 예술 작품에 대한 장면과 그 옆에 적혀있던 일목요연한 설명이 굳이 외우려고 하지 않았는데도 한 컷의 그림으로 머릿속에 떠올랐다.

각 잡고 시작해야 되는 예술사 공부가 아닌, 즐기면서 은근슬쩍 스며드는 예술사 공부 시간이었다. 특히 분명 똑같이 그렸는데 아방가르드해 보이기까지 하는 명화들의 만화 컷이 압권이었다는….😆


웃으면서 즐기는 사이에 예술사 개요와 작품이 정리되니 교양을 위해서라고 다른 것은 제쳐 두고라고 『만화 예술의 역사』 시리즈들은 꼭 챙겨 봐야겠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지원받고 주관적으로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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멸망한 세계에서 우리가 나비를 쫓는 이유
조나단 케이스 지음, 조은영 옮김 / 원더박스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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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49년 갑작스런 태양의 복사선 변화에 지구상의 모든 생명체 중 유일하게 포유류의 전기 시스템만 엉망이 된다. 이로 인해 포유류는 햇빛을 보면 몇 시간 안에 죽게 되는 일광병에 걸리게 되며 거의 모든 포유류가 멸종을 맞이한다.

태양 대격변이 일어났을 당시 지하에 있었던 극소수 사람들은 운 좋게 살아남아 지하주민이 된다. 그러나 그들은 더 이상 태양 아래 생활할 수 없었고 태양이 사라진 밤에 지상으로 나와 먹을 것을 구해야만 했다.


주인공 엘비는 태양 대격변이 일어난 지 약 40여 년 후 과학자들이 모여 살던 산타모니카 기술 연구소 지하벙커에서 태어났다. 다행히도 엘비가 태어났을 무렵엔 그곳 주민인 생물학자 플로라의 일광병약 제조 성공으로 그 약을 복용한 그곳 주민들에 한해 낮에도 지상 생활이 가능해졌다. 그러나 연구는 절반의 성공으로 한 번 먹으면 36시간 약효가 지속될 뿐이었다.

이에 플로라는 약효가 영구적일 백신 개발 연구를 계속했고, 엘비의 부모님은 플로라의 연구를 열정적으로 도왔다.


하지만 일광병약의 주재료인 제왕나비 비늘의 절대적 부족으로 엘비의 부모님은 엘비를 할아버지 할머니에게 맡겨놓고 제왕나비 떼를 찾아 멕시코 미초아칸으로 호기롭게 떠난다. 그 길은 예상보다 멀고도 험난했으며, 고생 끝에 겨우 목적지에 도착하지만 집으로 돌아오는 날을 기약할 수 없게 된다.



시간이 흘러 2101년 여름, 플로라는 10살이 된 엘비를 데리고 제왕나비의 이동경로를 따라 엘비의 부모님이 있을지도 모르는 멕시코 미초아칸으로 향하며 백신 연구를 계속한다.

아무도 없는 낮의 지상을 여행하는 것은 순탄한 듯했지만 갑작스런 지진과 해일을 만나며 발이 묶이게 된다. 그곳에서 우연히 엘비가 지진으로 무너진 벙커 앞 트럭 안에 혼자 있던 사내아이 시토를 발견하고는 야영지로 데려온다.


시토에게 일광병 응급조치를 마친 플로라는 시토가 발견된 곳으로 가 생존자를 찾지만 발견하지 못하자 시토를 데리고 여행길에 오르기로 한다. 이에 엘비는 시토를 발견했던 장소에 혹시 생존해 있을지 모를 시토의 부모를 위해 메모와 일광병약, 생필품 등을 놓고 떠난다.

그리고 얼마 후 시토의 보호자를 자처하는 의문의 무리가 시토를 찾아 엘비가 메모에 남겨놓은 장소에 나타나는데….



이야기는 누구도 가르쳐 주지 않았지만 정확하게 자신들이 가야 할 곳으로 나아가 미래를 이어가는 4세대에 걸친 제왕나비의 이주를 통해, 비록 현실이 암울하더라도 인류도 분명 나아갈 곳이 있고 그렇게 함으로써 세대를 이어 삶을 이어갈 수 있다는 미래에 대한 희망을 보여주고 있다. 또한 우리가 너무나 당연한 것처럼 누리고 있는 주위 환경들이 사실은 당연한 것이 아님을 말하며 그것에 대한 소중함도 일깨우고 있다.


엘비와 플로라를 찾아온 무리들은 정말 시토의 보호자가 맞을까? 그리고 그들은 순수하게 시토를 찾으러 온 것일까?

인류 멸종의 위기 상황에서도 이야기는 상황들이나 여러 인간 군상들을 미화시키지 않고 너무나 적나라하게 직관적으로 보여주어 생동적이고도 사실적으로 다가왔다. 특히 자신들의 안위를 위해 타인을 이용하고 배신하는 일부 등장인물들의 모습에서는 '인간은 배신하는 존재'라는 인간 본성이 뼈저리게 다가오기도 했다.

무엇보다 인간은 결코 자연 위에 군림하는 것이 아닌 자연 속에서 더불어 살아가야 비로소 완벽한 존재가 될 수 있다는 이야기를 통해 인류 발전의 방향성을 볼 수 있었다.


멸망한 세계에서 엘비와 플로라는 왜 제왕나비를 쫓아가야만 했을까? 이 책을 읽어보고 그것이 의미하는 바를 한 번쯤 고민해 보았으면 한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고 주관적으로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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