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자 마법사들 2 - 마르세유의 비밀 조직
정채연 지음 / 문학수첩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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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 수 없는 이유로 제론과 몸이 바뀐 후 자신의 몸을 되찾으려는 제론에 의해 죽음 직전까지 갔었던 리안은 섀드가더들에 의해 구조된 후 새드가더들의 비밀 기지에 머무르게 되었다. 그곳에서 생활하며 제론의 행적에 대한 단서를 찾기 위해 유란섀드학교로 돌아간 리안은 전혀 뜻밖의 수업에서 제론의 행적에 대한 정보를 발견하고 더 깊이 조사한 결과, 제론이 추구하는 진짜 목표에 한걸음 다가서게 된다.


한편 다른 방향으로 제론 일당을 뒤쫓던 섀드가더 세린은 리안을 제론 일당에게서 구출하던 당시 입수했던 제론의 수하 케인의 그림자 조각을 통해 그가 '마르세유의 비밀 조직'의 조직원이었다는 사실을 밝혀낸다. '마르세유의 비밀 조직'은 10여 년 전 명망 높은 섀드들을 연쇄적으로 납치했던 반체제적 조직으로 납치 현장에는 검은 정사면체를 제외하고는 어떠한 단서도 남기지 않았다고 한다.

그 정보를 들은 리안은 케인이라는 연결고리 외에 조사를 통해 추측한 제론의 목표와 '마르세유의 비밀 조직'이 목표로 했던 지향점이 동일한 것 같다는 자신의 생각을 세린과 공유했다. 이에 세린은 제론과 '마르세유의 비밀 조직'간의 연관성을 염두에 두고 수사의 초점을 좀 더 넓히기로 했다.


그렇게 한걸음 한걸음 진실에 다가가던 중 제론이 자주 방문했던 여러 장소들 중에서 섀드와 아무런 연관성을 찾지 못했던 솔즈베리 근처 저택을 탐문하던 조사원이 목숨을 잃는 사건이 발생한다. 조사원은 마지막 순간 자신의 그림자에 기억을 주입해 섀드 범죄 수사국에 자신이 알아낸 사실을 남겼다.

그 기억을 받아본 세린과 리안은 섀드와 아무런 연관이 없다고 생각했던 그 저택이 실은 섀드뿐만이 아닌 제론, 더 나아가 '마르세유의 비밀 조직'과 아주 깊이 관련되어 있다는 결론에 다다르고는 그 저택에 직접 잠입해 조사할 계획을 세우는데….



『그림자 마법사들』이 약 1년여 만에 두 번째 이야기로 독자들에게 돌아왔다.

이 책은 판타지적인 요소로 인한 무한한 상상력과 고도의 두뇌회전과 상황 판단 등을 요구하는 추리력을 기본으로 1권에서 보여준 것보다 좀 더 촘촘하고 짜임새 있는 탄탄한 스토리와 더욱 긴장감 넘치는 이야기를 보여주고 있다.


1권에서 이미 많은 판타지적 요소를 보여주었기에 2권에서는 더 이상 신기하거나 새로울 것이 없을 거라는 예상이 책을 펼치자마자 빗나가버렸다. 거기에 더해 시작부터 흐르는 긴장감과 예상을 뛰어넘는 스토리에 완전히 압도되어 '어메이징'을 연발하며 책을 읽어 나갔다.


2권의 세상은 1권보다 더욱 기발하고 신기한 마법적 요소가 가득한 세상이었고, 그러한 세상 속에서 주인공 리안은 판타지 소설의 주인공답게 한층 더 성장하고 각성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이 책에서 제론이 꿈꾸는 '소수의 지도자가 대중의 자유의지를 통제하여 다수를 지배하는 사회'는 현실의 어딘가에서도 일어나고 있는 이야기이기에 현실과의 괴리감 없이, 아니 오히려 현실과 비교하며 더 몰입해서 읽을 수 있었다.

거기에 예측할 수 없는 신기한 판타지적 요소는 신선한 충격과 함께 묘한 흥분감을 가져다주며 자칫 무거울 수 있는 이야기에 침잠되지 않도록 적절하게 주위를 환기시켜주는 기능을 하며 이야기를 한껏 쫄깃하게 만들어 주고 있다.


이야기는 승패를 예측할 수 없는 제론과 리안의 숨 막히는 대결과 그들의 새로운 각성을 보여주며 끝까지 긴장감을 놓칠 수 없게 만들고 있다.

야심을 이루고자 하는 제론과 그런 제론을 막고자 하는 리안. 과연 마지막에 웃는 사람은 누가 될까?


독특하고 참신한 판타지적 장치와 인물을 보여주는 『그림자 마법사들』을 꼭 읽어보길 바란다. 판타지 소설에 대한 호불호를 상쇄시키며 모두에게 매혹적으로 어필될 수 있는 소설이라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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셰익스피어, 인간심리 속 문장의 기억 Shakespeare, Memory of Sentences (양장) - 한 권으로 보는 셰익스피어 심리학 Memory of Sentences Series 3
윌리엄 셰익스피어 원작, 박예진 편역 / 센텐스 / 202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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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녀노소, 국적을 불문하고 영국 최고의 극작가이자 시인인 셰익스피어와 그의 작품을 한편도 모르는 사람은 아마 아무도 없을 것이다. 그는 당대 다른 작가들과는 달리 고등 교육을 받진 못했지만 영국인들이 '셰익스피어는 인도와도 바꾸지 않겠다'라고 말할 정도로 독보적인 작품을 남겼고 영국의 자존심 그 자체가 되었다.


셰익스피어는 희곡과 소네트, 장시 등 여러 분야에서 다양한 작품들을 집필했다. 특히 희곡을 집필할 때 사용한 2만 단어 중 2천 가지는 새로운 단어였으며 이는 '셰익스피어의 신조어'라고 불린다.


이 책의 저자는 그러한 셰익스피어의 작품에 감탄하여 그의 주옥같은 문장을 모아 일기 대신 적었다고 한다. 그렇게 적은 일기가 한 권이 되었을 때 그 아름다운 문장을 좀 더 많은 사람들과 공유하고 싶어 이 책을 출간하기로 마음먹었다고 한다.


이 책은 크게 <마법 같은 사랑과 운명>, <로맨스 코미디>, <정의에 대한 딜레마>, <인간의 욕망과 권력>이라는 4가지 주제로 나뉘어 구성되어 있고, 영문학에 관심이 정말 많거나 전공자가 아닌 이상 접할 기회가 거의 없는 셰익스피어의 소네트의 문장을 <부록>에 담고 있다.



O, swear not by the moon, th'inconstant moon, that monthly changes in her circle orb, lest that thy love prove likewise variable.

달에 맹세하지 마세요. 달은 계속 변하니까요. 그러면 당신의 사랑도 변할 거예요.


If love be rough with you, be rough with love.

사랑이 너에게 거칠게 대한다면, 너도 사랑에게 거칠게 대하라.


1장 <마법 같은 사랑과 운명>에 속한 작품에는 『십이야』, 『템페스트』, 『로미오와 줄리엣』, 『한여름 밤의 꿈』이 있다.

그중 『로미오와 줄리엣』은 서로 원수인 가문에서 태어났기에 이루어질 수 없었던 로미오와 줄리엣이 운명의 장난처럼 사랑에 빠져들었지만 비극적 죽음을 맞이하게 되고, 그들의 죽음은 종국에 두 원수 가문의 화해를 이끌어낸다는 낭만적인 비극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이 희곡은 『햄릿』과 함께 가장 많이 공연된 작품으로 오늘날까지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작품이다.



There is nothing either good or bad, but thinking makes it so.

좋은 것도 나쁜 것도 본래는 없다. 모든 것은 생각하기에 달렸다.


Give every man thy ear, but few thy voice. Take each man's censure, but reserve thy judgment.

모든 사람의 말에 귀를 기울이되, 적게 말하라. 모든 사람의 비판을 받아들이되, 너의 판단은 유보하라.


앞에서 언급했던 『햄릿』은 3장 <정의에 대한 딜레마>에서 다뤄지고 있다.

이 작품은 후대가 분류한 소위 4대 비극에 속하는 작품으로, 덴마크의 국왕이었던 햄릿의 아버지를 죽이고 왕이 된 뒤 햄릿의 어머니인 거트루드 왕비와 결혼한 숙부 클로디어스에게 햄릿이 복수하는 과정에서 일어나는 비극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이 작품은 우울과 이성 사이에서 괴로워하는 햄릿의 도덕적 딜레마와 운명에 맞서고자 하는 햄릿의 끊임없는 투쟁과 의지를 극명하게 보여주며 지금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우리가 느끼는 불안과 경험을 투사하여 보여주고 있다.



이 외에도 2장 <로맨스 코미디> 작품들이나 4장 <인간의 욕망과 권력>의 『햄릿』을 제외한 4대 비극에 속하는 작품들의 주옥같은 구절과 작품 해설들은 원어 자체에서만 느낄 수 있는 감성을 부담 없이 즐기게 해주며 작품에 대한 이해도를 높여주고 있다.

또한 문장들을 암송하고 있자니 낭만을 좋아하던 문학소녀였던 시절로 되돌아간 듯한 기분이 들기도 했다.

<부록>에 실려있는 소네트를 암송할 때는 더욱 그러한 기분이 들었다.


Those hours, that with gentle work did frame

The lovely gaze where every eye doth dwell.

그 시간들은, 부드러운 손길로 만들어냈네

모든 시선이 머무는 그 아름다운 모습을.


셰익스피어 작품의 원작을 읽고 싶지만 부담스러운 사람들이나 원서의 감성을 부분적으로나마 느껴보고 싶은 사람들에게 이 책을 권한다. 이 책은 어렵지 않게 역사상 가장 뛰어난 셰익스피어 작품의 원래 감성을 느끼며 작품을 이해하는 또 다른 기준을 마련하는 데 도움을 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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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슨트처럼 미술관 걷기 - 세상에서 가장 쉬운 미술 기초 체력 수업
노아 차니 지음, 이선주 옮김 / 현대지성 / 202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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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과 달리 요즘은 해외 유명 작가들의 작품을 국내에서 실제로 볼 기회가 많아졌다. 하지만 대부분의 미술 비전공자들은 무엇을 어떻게 감상해야 할지 막막해 미술관에 갔다가 그저 진짜로 작품만 보고 돌아오는 경우가 많을 것이다. '와, 인터넷이나 책에서 보던 거랑 똑같네!'라는 생각을 하면서.

그런데 우리가 미술관에 가는 것은 시간과 돈을 투자해 인터넷이랑 책에서 보던 것과 똑같은지 비교하기 위한 것은 아니지 않나? 그렇다면 예술은 무엇이며, 우리는 예술 작품들에서 무엇을 봐야 하는 것일까?

바로 그것에 대한 안내서가 될 책이 『도슨트처럼 미술관 걷기』이다.


이 책의 저자 노아 차니는 미술 전공자든 비전공자든 상관없이 많은 사람들이 열린 마음으로 예술을 통해 소통할 수 있도록 이 책을 저술했다고 한다. 그렇기에 이 책은 우리가 정말 알아야 하고 알면 도움이 되는 작품들 위주로, 어린 독자들부터 성인에 이르기까지 누구나 이해하기 쉽도록 간결하면서도 명확하게 미술의 주요 개념과 작품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저자는 마르셀 뒤샹의 <샘>을 예술의 분기점으로 거론하고 있다. <샘> 등장 이전의 예술은 아리스토텔레스의 '훌륭하고 아름답고 흥미로운가'라는 세 가지 조건을 충족해야 했다. 하지만 <샘>이 전시되고 나서는 굳이 아름답거나 훌륭할 필요는 없으며 오직 흥미진진하기만 해도 예술이 되었다.


그렇게 흥미성을 내세워 대중의 뇌리에 깊이 박힌 예술의 정점은 마우리치오 카텔란의 황금으로 만든 변기 <아메리카>와 바나나와 덕트 테이프를 사용한 <코미디언>이 아닐까 생각한다. '예술적 소양이 부족하다'라는 말을 들을 수도 있겠지만 나는 여전히 그것들이 예술 같지는 않다. 황금 변기를 보고는 예술작품이 아닌 '저게 얼마짜리야'라며 사용된 황금의 가치부터 생각하게 되고, 620만 달러에 판매된 <코미디언>을 보고는 '장난하나, 이게 뭐야'라는 생각만 드니….


책에서는 미술품을 설명할 때 가장 빈번하게 사용되는 미술 관련 용어와 다양한 매체와 기법에 대해서도 나와 있다. 그 용어들을 익히는 것만으로도 미술에 관해 이야기를 할 때 80퍼센트 이상을 알아들을 수 있다고 하니 꽤 매력적이지 않은가.



책에서 가장 유용하게 읽었던 부분은 예술 작품을 설명할 때 많이 등장하는 미술 사조를 시대 순으로 간략하고도 이해하기 쉽게 정리해 놓은 부분이었다.

'- 주의'라는 말이 나오면 이해했지만 이해하지 못한 듯한 어정쩡한 상태로 선뜻 정확하고 자신 있게 구분하지 못하며 침묵할 수밖에 없는 경우가 있곤 했다. 하지만 이 책에서 작품 30점으로 쉽고 간결하게 설명된 미술 사조를 읽고는 그 용어와 개념들을 확실하게 정리하고 외울 수 있었다.


그 사조들 중 '테네브리즘'이 있는데, 이것은 그림에 별로 관심이 없는 사람일지라도 알고 있는 <메두사>를 그린 바로크 회화의 카라바조의 기법을 따라 한 사조로 극도의 명암 대비로 시선을 집중시키는 기법이다.

그런데 카라바조는 테네브리즘을 좋아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는 유일무이한 존재가 되고 싶었었기에 자신의 기법을 따라 하는 이들을 싫어해 위협하고 두들겨 패기까지 했다고 한다.



그리고 '절대주의'라는 사조는 이 책에서 처음 본 것 같다. 이것은 러시아에서 유행한 사조로 전통적이고 공식적인 기존 미술에 반대해 기하학적이고 미니멀리즘적인 형태에 초점을 맞춘 것이라고 한다.


이 책을 통해 이러한 사조들만이라도 확실하게 정리할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이 책을 읽을만한 가치가 충분히 있지 않을까?



더 나아가 책은 미술 작품과 관련해 손상이나 도난, 위조, 불법 판매 등의 나쁜 일이 생겼을 때와 첨단 장비를 활용한 미술사 연구, 정신분석과 신경 과학을 통해 새롭게 보는 예술, 미술품과 그 경제적 가치 등 미술사 전반에 대한 필수적인 내용뿐만 아니라 상식으로 알고 있으면 좋은 다양한 정보들을 쉽게 설명하고 있다.



단편적인 미술 지식이 아닌 미술사라는 거대한 줄기를 이해하고 부차적으로 여러 관련 정보들을 습득한다면 분명 미술 작품들을 더욱 폭넓고 심도 있게 감상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기 위해 이 책을 읽기를 추천한다. 이 책은 읽는 이의 예술에 관한 소양을 쉽게 함양시켜 미술 작품들을 더 잘 감상할 수 있게 하는 안내자의 역할을 톡톡히 할 것이라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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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한다는 착각 - 나는 왜 어떤 것은 기억하고 어떤 것은 잊어버릴까
차란 란가나스 지음, 김승욱 옮김 / 김영사 / 202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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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번 본 것이나 경험한 것은 잊어버리지 않고 전부 기억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누구나 한 번쯤은 해봤을 것이다. 그런 생각은 한 적이 없다는 사람들은 학창 시절 영어 단어나 수학 공식 등을 암기했을 때를 떠올려보면 수긍할 수 있지 않을까?

'인간은 망각의 동물'이라는 말에서 알 수 있듯 무언가를 잊어버리지 않는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기에 인류는 기억력을 향상시키기 위한 방법을 찾기 위한 연구와 노력을 아끼지 않아 왔다.

망각 속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우리는 왜 자꾸 잊어버리는 걸까?


그런데 이 책의 저자 차란 란가나스는 기억에 대한 우리의 고정관념을 깨고 있다. 저자는 '왜 자꾸 잊어버리는가?'를 묻지 말고 "왜 기억하는가?"를 물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우리는 우리가 기억하고자 하면 무엇이든 기억할 수 있다고 믿지만, 사실은 우리의 뇌는 변화하는 세상을 헤쳐나갈 수 있게 기억을 잊어버리게 설계되어 있다는 것이다. 뇌는 필요한 정보를 신속히 활용할 수 있도록 기억의 중요도에 따라 우선순위를 매기기 때문에 기억은 변형되기 쉽고 때로는 부정확하며 망각을 통해 불필요한 정보는 정리하고 중요한 정보만을 기억에 남겨둔다.


우리의 뇌에서 기억을 담당하는 역할을 하는 것은 뇌의 측두엽에 위치한 '해마'라는 부분이다. 해마는 기억과 학습에 중요한 역할을 하며 새로운 정보를 저장하고 오래된 기억을 회상하는데 중추적인 역할을 한다. 그렇기에 어떤 학자들은 해마는 만능 기억장치이며 기억을 의미기억(지식)과 일화기억(일상, 사건)으로 구분한 엔델 툴빙 교수의 연구가 적용되지 않는다고 했다.

하지만 파라네 바가-카뎀 박사는 해마에 국한된 손상을 입은 사람들을 대상으로 한 연구를 통해 툴빙 교수의 연구가 옳았음을 밝혀낸다. 그는 해마가 손상된 사람들은 일화기억이 거의 없는 반면 해마가 온전한 사람에 비해 속도는 좀 느렸지만 학습을 통해 의미기억을 획득하는 것이 가능하다는 연구 결과를 내놓았다.

그 후 저자는 기억 실험을 통해 해마가 일어난 일이 아닌 어떤 일이 일어난 시기와 장소를 기준으로 여러 사건에 대한 기억을 '색인'으로 정리해 주게 한다는 연구 결과를 얻는다.


이 책에서 가장 흥미롭게 읽었던 부분 중 하나는 기억 변형 가능성에 대한 연구였다.

누구나 한 번쯤은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과거를 바꾸면 그것이 나비효과를 일으켜 현재가 누구도 예상 못 한 방향으로 바뀌어버리는 내용의 영화를 본 적이 있을 것이다. 그러한 영화처럼 우리가 과거 사건을 회상할 때 비슷한 원칙이 적용된다는 것이다. 좀 더 명확히 말하자면 이미 벌어진 과거 사건과 현재를 바꾼다는 것이 아니라, 과거의 기억을 떠올릴 때 새로운 요소를 첨가하면 자신이 인식하는 과거의 기억이 바뀔 수 있다는 뜻이다. 그렇게 하면 뇌는 실제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과거를 바꾼 것과 거의 똑같이 받아들이게 된다고 한다.


저자는 그 예로 실제로는 살인을 저지르지 않았고 수많은 알리바이가 그가 살인자가 될 수 없음을 가리켰지만 경찰 심문 과정에서 담당 형사들에 의해 강제 주입된 정보에 의한 기억의 왜곡으로 범행을 자백했던 리처드 아이븐스 사건을 들었다. 아이븐스는 강제된 정보에 의해 부실하기 짝이 없는 살인 자백을 한 것을 시작으로 진술을 거듭함에 따라 여전히 범죄의 핵심적인 정황과 모순되지만 점점 그럴싸한 형태를 갖춘 짜 맞춰진 자백을 했다. 그리하여 결국 자신이 저지르지 않은 살인사건의 범인이 되어 속전속결로 교수형을 당하고 만다.

이처럼 사람은 특정 기억에 반복적으로 접근하다 보면 현재의 정보가 함께 따라가 미묘하게 기억이 갱신되거나 아이븐스의 경우처럼 엄청나게 바뀌어 버리는 경우가 왕왕 있다. 이를 두고 한 학자는 회상을 '상상력이 가미된 재구축'이라 표현했다.



이외에 이 책은 친숙함이 기억의 존재를 암시할 수 있는 점, 예측 오류 즉 뇌에서 작동된 어떤 사이클에 기억이 미처 예측하지 못한 뜻밖의 상황으로 우리를 유도하는 점, 건망증, 기억과 탐구 간의 순환적 관계, 기억 억압 등 기억에 관한 뇌 연구를 단순히 학문적 접근으로만 풀어 나가지 않고 그것을 실제 있었던 다양한 사건이나 연구 결과와 유기적으로 보여주며 흥미롭게 풀어나가고 있다.

그리하여 저자는 종국에는 기억과 뇌에 대한 통찰을 통해 과거와 현재 우리의 삶을 좀 더 근원적으로 들여다보며 자신과 타인에 대한 진정한 이해로 더 나은 미래를 맞이할 수 있기를 바라고 있다.


현실을 살아가는 모두에게 이 책을 추천한다. 이 책은 기억에 대한 개념을 재정립시켜주는 동시에 결코 홀로 존재할 수 없는 시간의 흐름 속에서 현재의 우리가 과거의 기억을 통해 불확실하고 불안한 미래에 대비해 어떻게 행동해야 되는지 그 길을 보여주는 길잡이 역할을 톡톡히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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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거사 크리스티 코드 - 다섯 가지 코드로 크리스티를 읽다
오오야 히로코 지음, 이희재 옮김 / 애플북스 / 202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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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거사 크리스티의 소설은 출간된 지 오랜 시간이 지났음에도 여전히 전 세계적으로 많이 읽히고 있습니다. 현대의 시선으로 보기에는 올드하고 약간 부자연스럽게 느껴지는 부분들이 있음에도 독자들은 왜 여전히 애거사 크리스티를 사랑하고 그녀의 작품을 찾는 걸까요?

그것은 그녀의 작품들이 미스터리 추리 소설의 정석을 보여주는 소설들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그녀의 소설들은 이해하기 어렵지 않은 데다 질질 끌지 않고 속도감 있는 전개 방식을 보여준다는 큰 장점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구요.


일본 나고야의 한 문화센터에서 매달 1권씩 애거사 크리스티의 작품을 연구·분석하여 해설해 주는 강의를 7년 동안 해오고 있는 저자는 좀 더 많은 사람들이 이러한 애거사 크리스티의 작품을 즐길 수 있기를 바라며 이 책을 썼다고 합니다. 바꾸어 말하면 이 책에는 저자의 7년간의 강의의 진수가 담겨있다는 말이 되는 거죠.



이 책에서는 애거사 크리스티의 작품에 접근하는 방식을 크게 5가지로 나누어 설명하고 있습니다.


1장은 '탐정으로 읽다'로 푸아로나 제인 마플, 배틀 총경 등, 같은 탐정이 등장하는 작품끼리 묶어서 접근하여 분석·설명하고 있어요.

2장은 작품의 배경이 되는 장소와 시대가 비슷한 작품끼리 분류하여 접근한 '무대와 시대로 읽다', 3장은 탐정 소설임에도 애거사 크리스티의 작품에 심심찮게 등장하는 여러 형태의 로맨스와 다양한 형태의 가족의 모습이라는 기준으로 분류하여 작품을 감상하고 이해하도록 돕는 '인간관계로 읽다'입니다.


4장은 미스터리 추리 소설의 묘미인 트릭의 방법으로 분류하여 비슷한 트릭을 사용한 작품끼리 묶어서 작품 속에서 그것이 사용된 구절을 보여주며 설명하는 '속임수 기술로 읽다'입니다.



마지막 5장은 우리가 흔히 미스터리 추리 소설을 읽을 때 뒤통수 맞았다 혹은 소름 끼친다는 느낌이 들게 하는 기술, 즉 거짓말을 하진 않지만 중요한 정보도 쓰지 않거나, 중요한 힌트를 독자들이 잘못 해석하게 하거나 사소하다고 생각하여 신경 쓰지 않고 넘어가도록 하게 하고, 힌트를 적었지만 바로 다른 대화나 장면으로 전환시켜 독자의 관심을 돌리는 등 독자들을 속이는 방법을 분석하여 설명하고 있어요.



이렇게 저자가 애거사 크리스티의 작품을 분석한 것을 읽은 뒤 본문에 소개된 그녀의 작품 속 구절들을 읽으니, 알고 있어서 흥미가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 아니까 비로소 미처 모르고 지나갔던 부분들이 선명하게 보이며 미스터리 추리 소설의 진정한 매력을 느낄 수 있었어요.


애거사 크리스티의 소설들은 변주 없는 미스터리 추리 소설의 정석이기에 그녀의 작품들을 분석·설명하고 있는 이 책은 애거사 크리스티 작품들에 대한 단순한 설명서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녀의 작품들을 진정으로 즐기게 하고 더 나아가 다른 미스터리 추리 소설들을 심도 있게 이해하고 즐기게 하는 지침서 내지는 비법서의 역할을 할 거라 생각합니다.


미스터리 추리 소설의 입문자나 마니아, 더 나아가 추리 소설가를 꿈꾸는 사람들 모두에게 이 책을 강력 추천합니다. 분명 미스터리 추리 소설을 보는 시각이 다양해지고 넓어져 전반적인 흐름과 깊이를 이해하게 되어 자신이 원하는 것 그 이상의 결과를 얻을 수 있을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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