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쉿! 어른들도 모르는 미술 신문 : 빈센트 반 고흐 편
다다 코리아 지음 / 다다코리아 / 2025년 11월
평점 :

누군가 내게 가장 좋아하는 그림이 무엇이냐고 물을 때마다 나는 늘 고흐의 그림을 좋아한다고 말해 왔다. 하지만 정작 고흐의 그림 앞에 오래 서 있었던 기억은 그리 많지 않다. 너무 익숙한 이름과 이미지 덕분에 고흐와 그의 그림에 대해서는 이미 잘 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쉿! 어른들도 모르는 미술 신문 : 빈센트 반 고흐』는 이미 너무 잘 안다고 믿어 왔던 고흐와 그의 작품에 대한 나의 태도를 돌아보게 만들었다.
이 책은 고흐를 새롭게 '알려주는' 책이라기보다, 고흐를 '다시 보게' 만드는 책이다. 형식은 '어린이를 위한 미술 신문'이라는 쉽고 재미있는 틀을 취하고 있지만, 내용은 단순히 어린이용으로 치부하기엔 고흐의 삶과 그림을 바라보는 시선이 넓고 깊다.
이 책은 고흐를 흔히들 말하는 ‘천재 화가’나 ‘비극적인 인물’로 설명하지 않는다. 끊임없이 배우고, 실패하고, 다시 시도하면서 자신만의 방식을 찾아가며 노력했던 한 인간으로 그리고 있다. 이 책을 읽는 동안 작품 해석을 외우려고 애쓰기보다, 고흐가 무엇을 보고 무엇을 표현하고자 했는지를 그의 시선을 따라가다 보면 그의 작품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게 된다.
이 책에서 인상 깊었던 점은 고흐의 삶과 작품을 시간 순서대로 나열하지 않고, 그것에 대한 시선과 태도가 분명하게 달라지는 의미 있는 순간들을 골라 묶어서 보여준다는 점이다.
그렇기에 한 장 한 장을 따로 읽어도 어색하지 않고, 책을 덮은 뒤에는 작품들이 서로 연결된 채로 기억에 오래 남았다.

1879년, 아직 화가가 아니었던 고흐는 전도사로서 보리나주 지역에 갔고, 그곳 광산 노동자들의 삶을 가까이에서 보고 이해하고 싶다는 마음으로 광산 깊은 곳까지 따라 내려갔다. 그러나 이러한 태도는 교회 어른들에게 받아들여지지 못했고 고흐는 쫓겨나듯 전도사를 그만두게 되었다.
그런데 이 책은 이러한 고흐의 좌절을 강조하기보다, 세상을 바라보는 그만의 시선의 시작에 초점을 맞춘다. 3장에 실린 <보리나주의 탄광> 그림 속 버려진 땅 한가운데 서 있는 작은 사람의 모습은, 설명이 없어도 당시 고흐의 감정을 짐작하게 만든다. 이후의 그의 작품들은 갑자기 등장한 것이 아니라, 이미 이 시기에 천천히 준비되고 있지 않았을까?
3장에서 또 하나 인상 깊었던 내용은 고흐가 스스로를 예술가라기보다 장인에 가깝다고 느꼈다는 설명이다. 1884년 베 짜는 사람들을 주제로 한 그림들을 통해 고흐는 자신을 노동자들과 겹쳐 보았다고 한다. 그의 붓질은 영감의 흔적이 아니라 반복되는 노동에 가깝다고 했다. 즉, 그의 작품의 위대함은 재능이나 영감의 결과만이 아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5장은 전부 〈아를의 침실〉에 대한 이야기다.
고흐는 이 그림에 평화와 고요를 담고 싶어 했다. 그래서 방은 아주 단순하다. 침대, 의자, 테이블, 벽에 걸린 그림 몇 점. 화려한 장식도, 복잡한 구도도 없다.
대신 색이 있다. 벽의 색, 침대의 색, 바닥의 색은 현실을 그대로 옮긴 것이 아니라 고흐가 느끼고 싶었던 상태에 가깝다. 책은 이 색들이 왜 이렇게 선택되었는지를 어린이의 눈높이에서 설명한다.
이 설명을 읽고 나니 이 그림은 더 이상 ‘편안해 보이는 그림’이 아니라, '편안해지고 싶었던 마음을 표현한 그림'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7장에서 다루는 밤의 그림들, 〈밤의 카페 테라스〉와 〈별이 빛나는 밤〉 역시 인상 깊다. 이 책은 밤을 낭만적으로만 말하지 않는다. 밤은 고흐에게 쉬는 시간이 아니라, 오히려 더 또렷하게 세상을 바라보는 시간이었다. 어둠 속에서도 색을 포기하지 않았고, 고요 속에서도 움직임을 놓지 않았다. 별이 소용돌이치듯 그려진 하늘을 보고 있으면, 평온함과 불안함이 동시에 느껴진다.
이 장을 읽고 나면, 밤의 그림들이 왜 그렇게 강렬한지 조금은 이해하게 된다.

10장은 시야를 고흐 이후로 넓힌다. 고흐가 죽은 뒤 그의 그림과 태도가 다른 예술가들에게 어떻게 이어졌는지를 보여준다.
앙드레 드랭과 모리스 드 블라맹크의 야수파 작품에서는 고흐에게서 비롯된 강렬한 색의 영향이 보이고, 샤임 수틴의 〈구부러진 나무〉에서는 느껴진 대로 세상을 그리려 했던 고흐의 태도가 떠오른다.
프랜시스 베이컨은 〈타라스콩으로 가는 길의 자화상〉을 통해 고흐에 대한 존경을 드러냈고, 모리무라 야스마사는 〈귀에 붕대를 감은 자화상〉으로 고흐의 이미지를 현대적으로 다시 불러냈다.
이 장을 통해 고흐는 한 시대에 머무르지 않고, 계속해서 다른 방식으로 시대를 뛰어넘어 살아 움직이는 존재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이 책에서 고흐가 무엇을 보고, 어떤 삶 앞에서 멈춰 섰으며, 그 경험이 어떻게 그림으로 이어졌는지를 보면서 고흐의 그림을 '알게 되었다'기 보다 '조금 더 가까이에서 보게 되었다'는 느낌을 받았다.
예술가를 안다는 것은 작품 해설을 외우는 것이 아닌, 예술가의 삶과 태도에 대한 이해가 중요하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게 되었다.
어쩌면 고흐의 그림은 특별해서가 아니라 진지했기 때문에 후세에 더욱 진가를 발휘하며 계속 남아 있는 것이 아닐까?
어린이는 물론 미술을 어렵게 느끼는 사람, 바쁜 일상 속에서 그림을 멀리하게 된 사람들 모두에게 이 책을 꼭 추천하고 싶다. 이 책은 누구나 부담 없이 읽을 수 있으며, 고흐가 세상을 보던 시선을 따라가며 그의 작품을 한층 더 깊이 이해하게 만들어 줄 뿐만 아니라 고흐의 삶을 통해 성실함과 끈기가 무엇인지도 자연스럽게 알게 해 주기 때문이다.
이 책은 부담 없이 펼쳤다가 어느새 고흐의 삶과 그림 앞에 다시 서게 만드는, 오래 곁에 두고 싶어지는 책이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지원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