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란 집
가와카미 미에코 지음, 홍은주 옮김 / 책세상 / 202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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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형 슈퍼마켓에서 출점한 반찬가게의 판매 스태프로 일하고 있는 마흔 살의 이토 하나는 한 60대 여성의 재판 기사를 우연히 접하고는 의식적으로 잊고 지냈던 과거의 일을 떠올리게 된다.

인터넷 기사 속의 60대 여성은 20년 전 하나가 몇 년간 함께 살았던 요시카와 기미코라는 여성으로 당시 일련의 사건들을 겪으며 하나가 그녀와 같이 살던 집에서 나온 후 연락이 끊어진 상태였다. 하나는 기미코의 체포와 재판 기사를 읽으며 이번 일로 인해 20년 전에 있었던 모종의 일들이 다시 거론되며 자신이 수사의 대상이 될까 봐 불안해한다.

이에 20년 만에 당시 같이 살았던 또 다른 동거인 가토 란에게 연락해 자신이 느끼는 불안감에 대해 이야기하지만, 란은 기미코는 머리가 한참 이상했고 자신들은 당시 너무 어려 그녀에게 이용을 당했을 뿐이라며 선을 긋는다.


과거 열다섯 살의 하나는 엄마의 지인인 기미코를 처음 만나 잠깐 동안 같이 지내게 된다. 함께 지내는 동안 기미코로 인해 많이 웃고, 주눅 들었던 친구들과의 관계가 개선되는 등 하나의 삶은 이전과 달리 긍정적으로 변하는 것 같았다. 그래서 하나는 그대로 계속 기미코와 같이 지내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다른 곳에 다른 가족이 있어 하나를 떠나버린 아버지와 집 근처 스낵바에서 호스티스로 일하며 하나를 방치하는 엄마에게서 제대로 된 애정과 관심을 받지 못했던 하나에게 그제야 제대로 된 가족이자 이해자가 생긴 듯했던 것이다.


그렇지만 그런 행복은 오래가지 않았고 기미코는 하나의 삶에서 말없이 사라져버린다.

이에 하나는 잠시 침울한 나날들을 보내지만, 고교 졸업 후의 독립자금을 모은다는 새로운 목표를 정해 아르바이트에 매진하며 삶을 살아간다. 하지만 엄마의 전 남친 도로스케가 하나가 1년 반 동안 피나게 모은 돈을 훔쳐 가 하나의 꿈은 좌절되고 만다.

그로 인해 모든 의욕과 기력을 상실하여 별것 아닌 나날을 보내며 방황하는 하나 앞에 2년 전 갑자기 찾아왔다 갑자기 사라졌던 기미코가 나타나 자신과 같이 가자는 제안을 한다. 이에 하나는 아무런 망설임 없이 기미코를 따라나섰고, 하나를 데려간 기미코는 하나와 스낵바 '레몬'을 개업한다.

그러면서 하나의 삶에 깊숙이 얽히는 영수라는 사내와 기미코의 친구 고토미, 친구이자 가족이 되는 가토 란과 다마모리 모모코를 만나는데….


대체 20년 전 그들은 어떤 일을 했고 어떤 일을 겪었던 것일까?



이 소설은 부모와 사회로부터 철저하게 방치되었던 주인공 하나가 자신에게 관심을 기울이고 돌봐주는 기미코라는 어른을 만나 기미코를 중심으로 새로운 가족을 이루며 행복을 찾지만, 곧이어 다가오는 시련으로 새롭게 형성한 가족이 해체될 위기에 직면하면서 이를 지키기 위해 고군분투했던 과거의 이야기가 주를 이루고 있다.


소설에 나오는 인물 대부분은 각자만의 이유로 인생의 부조리함을 절감하고 그 부조리함 속에서 자신을 지켜내는 방법으로 돈을 좇는다. 결핍이 많았던 하나 역시 기미코와 영수 등을 만나며 보호받는 느낌을 받으며 잠시 동안 행복과 안정을 느끼기도 하지만, 그런 행복은 자신에게 돈을 바라 찾아온 엄마와 자신에게 안정감을 주고 미래를 꿈꾸게 했던 일터의 화재로 좌절되고 만다.

모든 것을 지켜내기 위해서는 결국 돈이 절대적이라는 생각에 결코 가서는 안 되는 길에 발을 들이고 마는 하나. 처음엔 돈이 행복을 위한 수단이었지만 종국에는 목적이 되어버리고 만 하나를 기다리고 있는 것은 무엇일까?


기미코가 자신의 이름에 들어 있는 노랑을 이야기할 때부터 하나에게 노란색은 특별한 색으로 다가왔고 서서히 하나의 삶에 영향을 주더니 결국엔 하나의 삶 전반을 지배해버렸다. 그리하여 책에서 노란색은 풍수의 금운뿐만이 아닌 하나의 집착과 광기를 보여주는 요소가 되기도 한다.

그렇다면 과연 '노란 집'은 하나가 진정 바랐던 꿈의 집이었을까? 아니면…?


소설 후반부로 가면서 란, 모모코, 하나를 보며 '검은 머리 짐승은 거두는 게 아니다'라는 옛말이 생각나면서 화가 났던 것은 나뿐이었을까? 기미코는 그들이 힘들고 어려울 때 손을 내밀어 줬건만 정신 이상자 취급이라니.

진실이 아닌 사실을 진실처럼 스스로에게 납득시키고 스스로를 피해자로 둔갑시켜 과거의 일을 완전히 잊고 잘 사는 그들의 모습을 보니 현재의 기미코의 모습과 너무나 대조적이라 불쾌감마저 들었다.


책을 덮고 나서도 영수와 기미코의 마지막 모습이 너무나 마음 아파 쉽사리 이야기를 보낼 수가 없었다.

삶에 대해 깊고 진중하게 생각하게 만드는 매력적이고 아련한 이야기 『노란 집』을 꼭 읽어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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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케치 쉽게 하기 : 풍경 드로잉 (리커버) - 그림 그리는 즐거움을 배운다! 스케치 쉽게 하기 4
김충원 지음 / 진선북스(진선출판사) / 200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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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은 다양한 형태의 스트레스를 겪으며 살아갑니다. 그 스트레스를 그대로 방치하면 신체적·정신적 건강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쳐 삶의 질이 현저하게 떨어질 수 있는데요. 그렇기에 행복한 삶을 영위하기 위한 가장 중요한 요소는 스트레스를 어떻게 다스리느냐는 것일 수도 있어요.

갑자기 왜 스트레스 이야기를 하느냐구요?

그 스트레스를 올바르게 다스리는 방법 중 하나가 바로 '그림 그리기'이기 때문입니다.


그림을 그리는 것은 재미있을 뿐만 아니라 그리는 동안엔 마음이 안정되고 일상의 스트레스를 잠시 잊을 수 있답니다. 특히 그림을 완성했을 때는 성취감을 느낄 수 있고, 그로 인해 자신감이 고취되죠.


그런데 제 경우 항상 그런 기분이 드는 것은 아니에요. 그림이 잘 그려지지 않을 때나 의도와는 다른 결과물이 나올 때면 오히려 스트레스가 가중되고 좌절감이 들어요. 특히 풍경을 그릴 때가 그래요.

분명 가만히 멈추어 있는 사물인데 왜 그렇게 어려운 걸까요? 나뭇잎을 표현하는 것은 너~무 어려워 항상 중도에 포기하고 말아요. 물론 그림을 제대로 배워본 적이 없어서 그렇겠지만, 그래도 요즘은 혼자 그림을 연습할 수 있는 환경이 잘 갖춰져서 인체나 정물을 그리는 것까지는 재미있게 할 수 있었단 말이죠. 🤔


그런데 그 어려운 '풍경 그리기'를 잘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았어요. 바로 <진선북스>의 『스케치 쉽게 하기 : 풍경 드로잉』을 통해서인데요. 이 책은 2007년에 1쇄를 시작으로 올해 10월 33쇄에 이를 정도로 인기가 많은 책이었어요. 저는 왜 이제야 만나게 되었을까요? 😢



이 책은 스케치를 위한 연필 선택부터 연필을 깎는 방법, 지우개 선택과 사용 방법, 스케치북 선택법 등 아주 기본적인 것부터 친절하게 설명하고 있답니다.



1장에서는 드로잉에 맞는 선긋기의 중요성과 선긋는 방법에 대한 설명부터 나와요.

책을 보며 따라 해보니 저는 정해지지 않은 곡선을 긋는 것이 정말 어려웠어요. 직선 긋기는 시키는 대로 쭉 긋기만 하면 되는 반면 곡선 긋기는 뭔가 자유로운 감성이 필요하단 말이죠. 아마 전 그런 자유로운 감성이 모자랐기 때문에 예술가가 될 수 없었나 봐요. 😅

곡선 긋기만 잘해도 위 사진과 같은 나무 한 그루를 금방 그려낼 수 있다고 하니 선긋기라는 기본을 게을리해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외에 1장에서는 구도와 비례, 드로잉의 리듬, 속도와 기법, 각기 다른 재료를 사용한 드로잉부터 어두운 바탕에 밝은 선을 사용하는 네거티브 드로잉에 이르기까지 드로잉의 상식과 기법에 대해 알려주고 있어요.


2장에서는 밑그림 즉, 다른 사람이 그린 그림이나 사진을 통해 구도를 파악하고 밑그림 스케치를 연습하는 방법에 대해 설명하고 있어요.



제가 가장 많이 봤던 것은 3장인데요. 바로 실전에 관한 장이기 때문이에요.

3장에서는 풍경 드로잉에 자주 등장하는 여러 소재들을 그리는 법을 집중적으로 보여주고 있어요.


저는 소나무를 따라 그려봤어요. 소나무 잎은 연필 끝을 세워 콕콕 찍듯 스트로크를 하라는 설명을 보고 그대로 하려고 했지만 몸과 마음이 따로 놀아서 제가 생각했던 것과는 다른 결과물이 나왔어요. 그래도 계속 반복해서 그리다 보면 언젠간 멋들어진 소나무를 그려낼 수 있겠죠?

지금 완성한 소나무 그림은 측면에 놓고 곁눈질로 흘깃 보면 얼추 비슷하게 보일 수도 있다는…. 😅


제주도 협재의 방파제에 정박한 어선 스케치도 따라 해 봤는데 책의 저자 김충원 님이 사용한 종이의 질감과 연필의 굵기가 제 것과는 다른지 아무리 지우고 수정해 봐도 책과 똑같은 느낌이 나오지는 않았어요.


4장에는 초보자들도 쉽게 따라 하고 익힐 수 있는 물감과 색연필 등을 이용한 채색의 기법에 관한 내용이 나와 있어요. 채색은 아직 따라 해 보지 않았지만 풍경 스케치를 어느 정도 익히고 나면 색연필로 제가 그린 그림들을 채색해 보고 싶어요.



이 책의 마지막에는 책 본문에 나와 있는 그림들을 쉽게 연습해 볼 수 있는 <풍경 드로잉 연습장>이 부록으로 들어 있어요. 선긋기 연습과 스트로크 연습부터 본문에 나와 있는 그림들의 밑그림 인쇄본까지, 스케치를 처음 접하더라도 겁먹지 않고 그림에 도전해 볼 수 있게 하고 있어요.



제가 어릴 때만 해도 그림을 그리는 성인들은 거의 그림을 전공한 사람들이었어요. 하지만 이젠 그림 전공자든 아니든, 학원·프로그램을 통한 배움이 있든 없든 누구나 자신이 원하는 그림을 그리고 즐기는 시대가 되었어요.

원하는 그림을 잘 그리기 위해 누군가에게 배움을 받는 것도 좋겠지만 현대인들은 그럴만한 시간적 여유가 없는 경우도 많잖아요? 그럴 때 잠깐의 시간을 활용해 그림 그리기의 기초를 확실히 잡아 주는 훌륭한 선생님 역할을 할 수 있는 것이 바로 이 『스케치 쉽게 하기 : 풍경 드로잉』입니다.


이 책으로 열심히 기본을 연습하여 여러 풍경 소재들을 그려본 다음엔 실제 풍경을 그려보고 싶어요. 카페에 앉아 거리를 보며 냅킨에 무심한 듯하지만 멋지게 풍경을 그려 본다든지, 강변을 산책하다 강변의 풍경과 함께 백로나 왜가리, 오리들을 가볍게 스케치할 제 모습을 상상하니 뭔가 낭만적이고 멋있는 것 같아 가슴이 두근거려요. 😆


이 책은 선긋기 방법조차 친절하게 설명되어 있기에 그림 초보자들에게 권하고 싶어요. 이 책을 따라 연습하다 보면 어느 순간엔가 '야나두'가 되어 있을 거예요.

아, 이 책은 인물과 복잡한 건물 드로잉에 관해서도 나와 있기에 어쩌면 그림을 취미로 그려온 분들에게 적합한 책일 수도 있겠네요.


이 책을 보고 저자 김충원 님의 노하우에 자신만의 개성을 곁들여 이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나만의 풍경 그림을 그려보는 건 어때요? 멋진 작품을 완성했다는 성취감은 물론 나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차오르는 것을 느낄 수 있을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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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더풀 랜드
더글라스 케네디 지음, 조동섭 옮김 / 밝은세상 / 202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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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차례의 세계대전과 유럽·아시아에서의 파시스트 정부 축출, 소비에트 연방에 맞서는 등 세계 평화와 민주주의의 수호자 역할을 자처하던 미국은 2016년 도널드 트럼프의 당선을 기점으로 내부 분열과 갈등이 심화되며 흔들렸다. 이후 대통령이 된 바이든에게 잠시나마 중산층과 소외된 노동자 계층을 위한 정책을 기대했지만 생각처럼 되지 않았다.

그런 상황에서 2024년, 트럼프가 이전에 각 요직에 꽂아놓았던 사람들이 선거구를 공화당에 유리하게 변경하고 유권자들을 억압하면서 새로운 대통령에 공화당의 제럴드 콤프턴이 당선되었다. 이후 미국은 하나의 정당이 지배하는 전체주의 국가로의 거침없는 행보를 보였다.


제럴드 콤프턴의 무능력함과 미숙함으로 국제사회에서의 미국의 영향력은 추락했고 경제는 궤멸 직전이 되어 지지율이 바닥을 찍었지만 공화당에게 유리하도록 재편된 선거구로 인해 제럴드 콤프턴은 재선에 무난히 성공했고, 2032년에는 제럴드 콤프턴보다 더 극단적 보수주의자이자 기독교 원리주의자인 호킨스가 미합중국 대통령에 당선된다.

선거후 호킨스는 그를 반대해 승리 자축 대회를 허가하지 않은 클리블랜드 시의회를 겨냥해 '좌파의 도발에 맞서 싸우자'는 선동적인 발언을 했고, 이에 KKK단을 계승한 '뉴 클랜'이 클리블랜드에서 사정없이 총을 쏘아 사람들을 죽이고 불을 지르는 등 전례 없는 잔혹한 학살을 감행했다.


클리블랜드 대학살 후 2033년, 미국 의회는 심각한 갈등과 논쟁 끝에 생체 이식 '채드윅 칩'을 개발해 대인 커뮤니케이션에 혁명을 몰고 온 모건 채드윅을 임시 대통령으로 추대한 연방공화국 탄생을 결정했다. 하지만 분리를 원하지 않는 이들은 12사도가 이끄는 공화국연맹을 출범시켜 연방공화국과 대립한다.

그 후 공포와 폭력이 난무하는 과정 끝에 연방공화국의 경제적 압박에 백기를 든 공화국연맹이 분리 협상에 동의하며 2036년 미국은 완전히 다른 두 나라로 분리된다.


연방공화국이 출범하고 12년 후인 2045년, 주인공인 연방공화국 정보국 요원 샘 스텐글에게 그녀의 정보원인 막심을 납치·고문 뒤 화형에 처하게 만든 공화국연맹 경찰국 요원을 제거하라는 임무가 맡겨진다. 타깃에게는 이미 샘을 제거하라는 임무가 주어진 상황이라고 했다.

죽임을 당하기 전에 먼저 죽여야 하는 상황에 처해진 샘에게 상관인 브레이머 부장은 더 큰 충격적인 진실을 알려준다. 바로 샘이 제거해야 하는 타깃이 그녀와 같은 성을 쓰는 이복동생 케이틀린 스텐글이며, 샘은 케이틀린의 존재를 알지 못했지만 케이틀린은 오래전부터 샘의 존재를 알고 그녀를 줄곧 철저하게 감시해 왔다는 것인데….



소설은 시작부터 화형식이라는 충격적 장면과 조금의 예측조차 불허하는 숨 막히도록 긴장감 넘치는 전개를 보여주며 단숨에 이야기에 몰입하게 만들었다.

이야기는 현재 상황에 기반해 충분히 상상 가능한 상황 중 하나이기에 소름 끼치도록 현실감 넘쳤다. 또한 한 나라가 이분되어 심각한 갈등과 대립을 보여주고 있다는 설정은 남과 북으로뿐만 아니라 내부적으로도 이분되어 심각한 갈등을 겪고 있는 우리나라 상황과도 유사하기에 더욱 몰입해서 읽을 수밖에 없었다.


소설에 그려진 다가올 미래는 생체 이식 칩이라는 획기적인 기술 혁명으로 편리하지만, 사상과 생활면에서는 오히려 중세 이전보다 자유가 억압되고 말살된 암울한 모습이었다.

세계 최강대국이라는 나라는 '신권정치를 펼치는 나라'와 그것에 반대해 겉으로는 인간 중심을 표방하지만 실제로는 모든 사람들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고 통제하여 국가 체제에 맞지 않으면 인간 개조를 서슴지 않는 '독재적인 민주 국가'로 나뉘어진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어느 것 하나 이상적인 국가의 모습은 존재하지 않고 오로지 국가의 안녕과 존립을 위해 국민이 존재하는 주객이 전도된 모습을 보여주고 있어 국가의 존재 목적과 이유가 무엇인지 다시 한번 생각해 보게 하는 소설이었다.


국가의 체제 유지를 위한 도구로 사용되는 스파이 자매들이 그들이 속한 국가를 위해, 그리고 약간의 개인적인 목적을 가지고 목숨을 건 쫓고 쫓기는 치열한 전쟁을 펼치는 이야기는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며 긴장감을 늦추지 못하게 했다. 찾고자 하는 자와 정체를 드러내지 않은 채 그러한 사람을 관찰하며 때때로 숨통을 조이는 엇갈린 두 이복자매의 이야기는 시대가 낳은 수많은 희생자 중의 한 모습이었다.


책을 읽는 내내 두 자매의 이야기뿐만 아니라 그 작전에 관여된 수많은 인물들의 음모와 배신, 죽음을 보며 충격과 때로는 분노, 안타까움을 느끼며 시간 가는 줄 몰랐다. 누구도 믿어서는 안되고 철저히 혼자가 되어야만 하는 미래의 삶이 너무나도 허무하게 느껴졌다.

샘과 케이틀린의 운명은 어떻게 될까? 그들의 원더풀 랜드는?

현재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국가 존재의 목적에 대한 고민을 던져주는 의미 있는 소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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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관에 간 의사 - 영화관에서 찾은 의학의 색다른 발견
유수연 지음 / 믹스커피 / 202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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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영화를 볼 때 영상과 줄거리, 주인공들의 멋짐 외의 부수적인 것에 그다지 큰 의미를 부여하지 않고 보는 편이에요. 의학이나 법률 같은 전문적인 분야를 다루는 영화는 직접적 언급이나 묘사가 되어 이슈가 되지 않는 이상 숨어있는 의미를 파고들어 감상하진 않아요. 대부분 그렇지 않나요? 😅


하지만 이 책의 저자는 의사라는 직업 특성상, 영화에서 질환이나 질병이 나오면 조금 더 집중해 볼 뿐만 아니라 굳이 질병이 아니더라도 영화 속에 등장하는 장면이나 상황을 보고 의학 지식과 관련지어 상상의 나래를 펼쳐 새로운 해석을 도출해 영화를 좀 더 확장하여 감상하고 즐긴다고 해요.

저자는 그러한 독특한 시선을 이 책을 통해 독자들과 나누고자 하고 있어요.

이 책에는 질병을 다루고 있는 영화 외에도 의학 소재 영화라고 특정 지어질 수 없는 수많은 영화들이 작가의 색다른 시각으로 소개되고 있어요.



《헤어질 결심》은 제가 좋아하는 배우들이 나오는 영화임에도 불구하고 이런저런 이유로 선뜻 보기가 망설여지는 영화였는데, 저자 역시 여러 편견과 불안으로 남들보다 늦게 이 영화를 봤다고 해요. 그런데 막상 보고 나니 영화를 보기 전 불안은 기우에 불과했던 아주 놀랍고도 흥미로운 작품이었다고 합니다.

저자는 이 영화가 단순한 범죄 스릴러 로맨스 영화가 아닌, 주인공 장해준의 불면증에 초점을 맞추어 '운디네의 저주'라고도 불리는 '호흡 중추 자동능 장애'를 재해석한 의학적 작품이라는 해석을 내놓았어요.


'운디네의 저주'는 16세기 활동했던 연금술사 파라켈수스에 의해 창조된 존재인 물의 정령 '운디네'에서 유래한 증상입니다. 이는 '잠들었을 때 숨쉬기 힘든 상태'를 말하며, 심하면 깨어 있을 때도 숨쉬기 어려워한다고 해요. 원인은 다리 뇌와 숨 뇌에 위치한 호흡 중추에 이상이 발생했기 때문이라고 해요.

'운디네의 저주'가 좀 더 명확하게 드러나는 것은 프랑스 작가 장 지로두의 <운디네>라는 연극을 통해서인데, 이 연극 속에서 운디네는 자신을 배신한 연인 한스에게 저주를 내렸고 이후 운디네는 자신을 배신한 남자에게 저주를 내리는 존재로 묘사되고 있다고 합니다.


저자는 바다 건너 중국에서 온 여주인공 송서래를 운디네와 같은 존재로 보았고, 남주 장해준은 그런 존재의 사랑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기에 그녀를 잃고 불면의 저주를 얻어 어떠한 의학적 도움도 소용없는, 영원한 불면의 고통이라는 비극적 결말을 맞이하는 존재가 된다고 보았어요.



다크 판타지 괴수물인 줄만 알았던 《진격의 거인》 또한 저자는 의학적 시선에서 새로운 해석을 내놓았어요. 저자는 주인공 '에렌 예거'가 거인에게 잡아먹히면서 거인 능력이 발현되는 부분에 흥미를 가지고 다음과 같은 견해를 내놓았습니다. 바로 같은 민족 안에서 '척수액' 섭취를 통해 거인으로 변신하고 힘을 이어받는다는 점에서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아슈케나지 유대인'에게서 나타났던 유전병인 진행성 퇴행성 뇌질환 '프리온병'의 전달과 비슷하다는 견해입니다.


그런데 역사상 유전이 아닌 '식인'으로 '프리온병'이 발병한 적이 있는데, 바로 파푸아뉴기니 섬에서 보고되었던 '쿠루병'이라고 합니다. 이에 팁을 얻은 저자는 《진격의 거인》의 작가가 작품 내의 거인 능력 전승 방법을 사체를 먹었던 '쿠루병'에 대한 내용을 참고해서 설정하지 않았을까 하는 견해 또한 내놓고 있어요.



제가 정말 재미있게 봤었던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도 이 책에 소개되고 있어요. 저는 이 영화를 보며 단순히 '조로병'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역으로 만든 젊어지는 가상의 병이 주인공의 평범하지 못한 인생과 안타까운 사랑을 극대화하는 장치로 사용되었다라고만 생각했었어요.


그런데 저자는 이 영화를 보며 현대의 의료진이 현실 속에서 벤자민을 만난다면 '시간이 거꾸로 가는 신비한 사람'이라는 결론보다는 적절한 진단명을 찾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할 것이고, 그리하여 초기에는 '조로병' 진단을 내리고 노인기에 어린아이의 외모로 치매 증상을 보이기 시작했을 무렵에는 '소아 치매'의 진단과 검사가 시행되었을 것이라는 의견을 말하고 있어요. 그러면서 조로증과 소아 치매에 대해 알기 쉽게 설명해 주고 있답니다.



이 외에도 작가는 《스틸 앨리스》같은 질병과 관련된 영화나 《듄》, 《기생충》, 《300》, 《탑건:매버릭》, 《토르》 등과 같은 의학과는 전혀 연관이 없거나 의학이 부각되어 나타나지 않은 영화들을 예리하고 날카로운 의사의 시선으로 의학과 흥미롭게 연관시켜 설명하고 있어요.

그 설명은 전문적인 지식을 이야기하고 있음에도 가십지를 읽듯이 쉽고 재미있게 풀이되어 있어 읽는 내내 '오호~!'라는 감탄사를 연발하며 순식간에 읽어 내려갈 수 있었어요.

물론 각 영화에 대한 설명이 10페이지 내외 정도이므로 잠깐의 시간이 날 때 한 편씩 부담 없이 읽을 수 있어 무척 좋았답니다.


개인적으로 한 가지 아쉬운 점이 있다면, 책에 수록된 영화 포스터나 참고 사진이 컬러였다면 훨씬 더 좋지 않았을까 하는 점이에요.


이 책에 실린 영화 중에 아직 보지 못한 작품들이 절반 정도 되더군요. 그래서 저는 그 영화들을 이 책의 저자의 시선으로 감상해 보려고 합니다. 분명 제가 여태껏 영화를 보면서 느꼈던 것과는 전혀 다른 감상과 즐거움을 얻을 수 있을 거라 확신해요.

여러분도 이 책을 읽고 의학적 관점에서 영화의 숨겨져있거나 드러나있는 이야기를 감상해 보는 건 어떠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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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자인이 한눈에 보이는 책방도감 - 공간 디자인으로 동네를 바꾼 일본의 로컬 서점 40곳
건축지식 편집부 지음, 정지영 옮김 / 현익출판 / 202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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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은 치안이 좋은 편이고 한국과 가까워 짧은 일정으로도 부담 없이 다녀오기 좋은 여행지라 자주 가는 곳인데요. 그렇게 일본에 갈 때면 저는 일정에 '현지 서점 구경'을 항상 넣어요. 책이나 잡지 같은 발행물에 드러나는 일본의 트렌드와 정서 같은 것들을 보는 것을 무척 좋아하기 때문이에요. 물론 제가 아는 책들을 일본 서점 책장에서 찾아내는 재미는 기본이구요.


제가 구경하는 서점은 주로 지도상에 표기되어 있는 접근이 용이한 대형 서점들이에요. 예전에 나고야에 갔을 때 나름 유명하다는 중고서점을 일정에 넣었었는데 막상 현지인들이 그 서점을 알지 못해 헤매기만 했던 적이 있었기에 때문이에요.

하지만 찾아갈 수만 있다면 영화 《노팅힐》에 나오는 작은 동네 서점이나 《해리 포터》의 모티브가 되었다는 [렐루 서점]같은 특유의 색다른 분위기를 가진 일본 서점을 구경하고 싶다는 바람은 여전히 갖고 있어요.


그러던 중 정말 귀한 책을 만나게 됐어요. 바로 『디자인이 한눈에 보이는 책방도감』이라는 책입니다.

이 책은 도쿄, 교토, 오사카, 요코하마, 히로시마 등 각지에 있는 개성 넘치는 로컬 서점 40곳을 소개하면서 그 서점들만이 가진 특색과 어디에 매장을 열 것인지, 방문객을 유인하는 진열 방식은 어떤 것인지, 매장을 알리는 광고는 어떻게 할 것인지, 매장의 분위기를 전달하는 조명과 음악과 향은 어떻게 할 것인지 등 서점을 운영하는 현실적인 팁을 보여주고 있어요.

또한 서점의 내외부 사진과 평면도를 같이 보여주며 설명하고 있기에, 이 책을 보고 있으면 서점들이 머릿속에 선명하게 그려지며 마치 내가 서점을 직접 둘러보고 있는 듯한 기분이 들어요.



1장에는 고객들의 원츠에 맞춰 서점의 콘셉트를 잡아 작은 공간을 최대한 활용하는 방법에 대한 모든 노하우가 들어 있어요.


1장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도쿄도 고다이라시에 위치한 [구사부네 안토스고]라는 식물 특화 서점에 관한 페이지였어요.

먼저 약 2.5평이라는 서점 크기에 놀랐고, 약 700권이라는 적은 보유 서적량에 두 번 놀랐어요. 이 서점은 식물에 관련된 책이라면 문학, 레시피, 원예, 미술 등의 모든 분야를 넘나들며 보유하고 있어 식물 관련 서적을 찾는 사람들의 원츠에 맞춘 서점이라고 해요.


이 서점은 식물 관련 서적을 원해 일부러 찾아오는 손님들 외에도 서점과 나란히 이어져 있는 꽃집과 수제 과자점에 기념일마다 들르는 많은 사람들이 그대로 서점의 손님이 되어 수익이 창출된다고 합니다.

이 서점은 크기가 작은 만큼 창고 면적이 거의 없어서 책을 적게 매입해서 다 판매하는 방식을 취한다고 해요.



2장에는 방문객을 유인하고 매출을 늘리는 책 진열 방식이나 조명, 행사 기획, 매장 운영 마케팅, 경영 지속을 위한 노력 등에 관한 방법들이 자세하게 나와 있어요.

요즘은 작은 로컬 서점도 온라인 매출이 전체 매출의 약 60%를 차지하기 때문에 매장을 운영하기 위해서는 SNS가 필수 도구라고 하는군요.



3장에서는 책의 부위별 명칭과 제본 형태, 책의 판형, 제본 종류, 책의 매입 루트, 도서 유통의 구조 등 책에 대한 기초 지식에 관해 말하고 있어요. 그렇기에 어찌 보면 3장이 모든 사람들에게 가장 유용한 장이라고 말할 수도 있겠네요.



마지막 부록에는 알아두면 좋은 업계 용어가 일러스트와 함께 이해하기 쉽게 설명, 정리되어 있어요.



이 외에도 책을 통해 서점과 갤러리를 같은 공간에 넣은 교토시의 [레티시아 책방], 길쭉한 상가주택 공간을 서점으로 멋지게 탈바꿈시킨 교토시의 [세이코샤], 연립주택 1층을 서점으로 사용하고 서점 내부의 책장을 나무상자로 퍼즐처럼 쌓아 올린 오사카의 [이루스 문고], 길거리 서점에서 생활 제안형 서점으로 탈바꿈한 마쓰에시의 [아르토스 북스토어], 설계 사무소 안에 서점을 운영하고 있는 도쿄의 [플래토 북스] 등 일본 로컬 서점 40곳 각각의 개성과 매력들을 들여다볼 수 있었습니다.


이 책을 읽고 난 후 다양하고 많은 책을 보유한 서점을 최고로 보던 제 시각이 확실하게 달라졌어요. 서점은 책을 구매하는 장소일 뿐만 아니라 특별한 체험을 기대할 수 있는 장소가 될 수 있다는 것을요.

다음번 일본에 갈 때는 이 책을 들고 책에 나와 있는 로컬 서점들을 꼭 방문해 즐기고 싶어요.


서점 구경을 즐기는 사람들이나 현재 작은 서점을 운영 중에 있거나 개업을 준비하고 있는 사람들 모두에게 이 책을 권하고 싶어요. 이 책은 보통 사람들에게는 서점을 즐길 수 있는 다양한 시선을 마련해 줄 수 있고, 개인 서점을 운영 중이거나 준비 중인 사람들에게는 관련 노하우들과 잘 운영할 수 있는 번뜩이는 아이디어를 제시해 줄 수 있을 거라 확신해요.

마지막으로 우리 집으로 향하는 길 중간에 시선과 발길을 붙잡는 매력적인 작은 서점이 생기기를 바라봅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지원받고 주관적으로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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