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노해 사진에세이 3
박노해 지음 / 느린걸음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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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노해 시인은 '길은 걷는 자의 것'이라고 했다.

인간은 누구나 인생이라는 길을 걸어간다.

그 길은 다른 어느 누구도 걷지 않은 자신만의 길이다. 그러나 그 길이 자신만의 길임에도 불구하고 그 길이 어떠할지는 본인도 알지 못한다. 멀지 않은 바로 한 걸음 앞의 길도 보이지 않고 알 수 없는 것이 우리가 걸어가는 인생이라는 길이다.

하지만 그 길이 어떤지 알지 못한다고 해서 그 길을 가는 것을 멈출 수가 없고 결코 멈추어서도 안된다. 인생이란 되돌아가지 못하는 길임을 알기에 우리는 그 길에서 만나는 고난과 역경을 인내하고 행복에 감사하며 묵묵히 걸어갈 뿐이다.



우리의 인생의 길은 현실에서의 길처럼 갈라지기도 하고 다시 원래의 길과 만나기도 하며 각자의 목적지를 향해 펼쳐져 있다.

우리는 자신 앞에 펼쳐진 갈림길에서 고뇌하고 결단을 내려 가야할 길을 선택하지만, 그 길이 올바른 길인지 잘못된 길인지 알지 못한다. 그것이 어떤 선택이었든 간에 최선을 다해 우리가 선택한 길을 하루하루 쉼 없이 걸어갈 뿐이다.


때로는 나의 길 주위에 아무것도 보이지 않아 외롭고 힘들게 홀로 길을 걸어가지만, 어느 순간 다른 누군가의 인생의 길과 만나 그 길에 있는 이와 서로를 위로하고 다독여주며 다시 인생의 길을 걸어갈 용기를 얻는다.

그들은 나의 인생의 길과 잠시 교차하는 길을 걷고 있는 이들일 수도 있고, 같은 목적지를 바라보며 나의 길과 나란한 길을 걸어가는 동반자일 수도 있다.



우리가 살아가는 길은 서두른다고 해서 서둘러지지 않고 늦추고 싶다고 해서 늦춰지지 않는다. 목적지를 향해 빠르게 가는 지름길도 없다. 그저 굽이굽이 돌아가는 기나긴 여정을 거친 후에야 비로소 우리가 가야 할 곳에 도달하게 된다. 그 여정이 너무 멀고 힘들지만 지치지 않고 인내하며 그 길을 묵묵히 가야 하는 것이 우리의 인생이다.



이 세상에 나의 존재가 하나이듯 나의 인생의 길 또한 하나이다. 다른 이들과 경험을 공유하고 함께 나란히 걸어간다 할지라도 나의 발걸음을 디딜 곳은 오직 나의 길뿐이니.

걸음을 잘못 내딛을까 결코 걱정할 필요는 없다. 인생에서 잘못 내딛고 들어서는 길이란 없으며 내가 내딛는 한 걸음으로 그곳에 내가 가야 할 길이 펼쳐질 테니.

내가 갈 수 있고 가야 하는 길이 존재함에 감사하며, 길을 잃지 않는다는 믿음을 가지고 용기 내어 오늘의 걸음을 내디뎌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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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랑은 왜 말이 안 통할까? - 뇌과학자와 함께하는 십대 : 부모 소통 프로젝트 마음이 튼튼한 청소년
딘 버넷 지음, 김인경 옮김 / 뜨인돌 / 202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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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집이 무슨 호텔인 줄 알지!"

p.25


정리하라는 말을 듣지 않고 아이들이 젖은 수건이나 옷 따위를 바닥이나 침대에 널브러뜨려 놓았을 때, 집이 호텔이냐며 아이들에게 소리를 질러본 경험이 있는 부모들이 있을 것이다. 부모들은 화가 나서 소리치지만 정작 아이들은 대수롭지 않게 여기거나 혹은 치우려고 했다는 변명을 하려고만 한다. 그것도 한두 번이지….

그런데 아이들은 왜 부모들이 그런 일에 화를 내는지 이해를 못 하고 도리어 적반하장으로 화를 내는 경우가 있다. 의견 차이로 인한 언쟁은 비단 이러한 일들에만 그치지 않고 모든 일에서 생겨난다.

대체 왜 이런 의견 차이로 인한 언쟁이 계속되는 걸까?

작가는 부모와 십대 사이에서 일어나는 수많은 갈등의 원인을 뇌가 학습하고 기억하는 방식 때문이라고 밝히고 있다. 정확히 말하자면 부모의 뇌가 아닌 지금 변화가 한창 일어나고 있는 십대들의 뇌 때문이다.


십대들이 감정을 조절하는 뇌의 능력치가 부족하다는 건 이해 가지만 문제는 젖은 수건이나 옷 따위를 치우면 되는 것 아닌가? 치우는 것과 뇌의 성숙과는 연관이 없는 거 같은데….

제발 좀 치우라고~. 나이가 몇 살인데 엄마들이 일일이 쫓아다니며 뒤치다꺼리를 해 줘야 하느냔 말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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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순하게 단단하게 단아하게 박노해 사진에세이 2
박노해 지음 / 느린걸음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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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야의 사람들은 침략자들에게는 결사항전하지만

길손은 누구라도 불러들여 따뜻이 환대한다.

온 가족이 웃음 지며 달콤한 샤이를 내오고

갓 구운 빵과 직접 기른 올리브를 대접한다."

『단순하게 단단하게 단아하게』 p.62


중동의 폼페이 요르단의 제라쉬.

분쟁, 테러가 빈번한 주변국에 비해 안정적이고 평화로운 곳이고 사람들도 많이 찾는다.

그래서인지 그들은 낯선 이들을 경계하지 않고 그들을 환대한다. 문을 두드리는 낯선 이는 멀리서 찾아온 안내자이고 신이 보낸 이라는 단단한 믿음을 가지고.

그런 단단한 믿음이 그들의 푸르른 삶을 더욱 풍요롭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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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작은 방 박노해 사진에세이 4
박노해 지음 / 느린걸음 / 202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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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현란한 세계 속에서 길이 보이지 않을 때는

더 깊은 어둠 속으로 걸어 들어갈 일이다.

어둠 속에서 빛을 찾는 눈동자가 길이 되리니.

내가 삼켜낸 어둠이 빛의 통로를 열어 줄지니."

『내 작은 방』 p.28


바쁘게 살아가는 현실에서 잠시 길을 잃고 헤매게 될 때, 결코 당황하여 좌절하지 말고 마음속 자신의 방에서 잠시 쉬면 된다. 마음속 나의 공간, 나의 작은 방에서 휴식을 취하고 나를 들여다보고 치유하고 사유하면 내가 나아가야 할 곳이 보일 것이다. 어둠이 있기에 빛은 더욱 밝아 보이니.

나는 매일을 나의 작은 방에서 나의 길을 찾아 떠날 준비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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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레스타인 100년 전쟁 - 정착민 식민주의와 저항의 역사, 1917-2017
라시드 할리디 지음, 유강은 옮김 / 열린책들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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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저자 라시드 할리디는 지난 100년 동안 이어진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유혈 충돌은 동등한 두 당사자 사이의 충돌이 아니라고 이야기하고 있다. 즉 영국과 미국 등의 지지와 지원을 받고 있는 시온주의가 팔레스타인을 비롯한 아랍 영토에서 팔레스타인인을 쫓아내고 그곳을 자신들의 민족적 고국 즉 유대 국가로 바꾸는 정착민 식민주의에 그 기원을 두고 있다고 했다.


할리디는 팔레스타인 100년 전쟁의 역사를 1917년 밸푸어 선언부터 2014년 이스라엘의 가자 지구 폭격까지 크게 여섯 단계의 선전포고로 나누어 설명하면서 팔레스타인인들이 어떻게 야만적이고 비인도적으로 민족적, 정치적으로 말살을 당해오고 있는지 이야기하고 있다.


1917년 11월 2일 당시 세계 최강의 영국이 팔레스타인에 유대 국가를 세워 주권을 확보한다는 시온주의 운동을 지지하는 밸푸어 선언을 발표한다. 이는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간의 100년 전쟁의 시작을 알림과 동시에 팔레스타인의 가혹한 운명을 알리는 선언이었다.

이 선언은 <팔레스타인에 유대인의 민족적 본거지를 수립하는데 찬성한다>는 모호한 구절을 담고 있는데 이것은 사실상 팔레스타인 전체에 유대 국가를 세워 주권을 확보하고 이민을 통제한다는 시온주의의 목표를 지지한다고 약속한 것이었다.

이 선언은 당시 팔레스타인에 거주하고 있던 94퍼센트에 달하는 압도적 다수의 아랍 주민들에 대해서는 애매하게 언급하며 그들을 한 민족이나 집단으로 거론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그들의 어떠한 민족적 권리에 대해서도 인정하지 않았고, 6퍼센트에 해당하는 극소수 사람들을 '유대인'이라 지칭하며 민족적 권리를 부여했다.

그러나 이 밸푸어 선언은 영국군의 군정 당국에 의한 뉴스 공개 금지와 검열, 연합군의 해상 봉쇄 등으로 알려지지 않다가 입에서 입으로 소식이 전해지고 외국 신문을 통해 팔레스타인인들에게 알려진다.


1922년 새롭게 구성된 국제연맹은 팔레스타인 위임통치령을 반포하여 영국의 통치를 공식화하면서 밸푸어 선언을 그대로 받아들였을 뿐만 아니라 약속을 크게 확대했다. 위임통치령에는 오직 유대인만이 팔레스타인과 역사적 연관성이 있는 것으로 서술되어 있다. 즉 팔레스타인에서 지난 2000년에 걸쳐 축조된 한 민족의 역사를 고스란히 지워버린 것이다.

또한 위임통치령은 민족적 본거지 정책을 실행하기 위해 시온주의 운동에 특권과 편의를 확대했고, <공적 기구>로서 유대인 기구에 준정부 지위를 부여했다. 이 위임통치 권력이 이민 유입을 촉진하고 장려했으며, 유대인이 팔레스타인 시민권을 쉽게 획득할 수 있도록 하는 국적법도 마련했다.


팔레스타인의 종족 청소는 1948년 5월 15일 이스라엘 국가 선포 한참 이전에 시작되었는데, 1949년에 이르면 신생 이스라엘 국가가 된 지역에 사는 아랍 주민의 80퍼센트가 자기 집에서 쫓겨나고 토지와 재산을 잃었으며, 130만 팔레스타인인 가운데 최소 72만 명이 난민 신세가 되었다.



할리디는 이제 100년을 이어온 분쟁을 종식하기를 바라며 팔레스타인인들 또한 그들의 방법을 신중하게 재평가할 필요성을 재기했다.

그렇다면 팔레스타인의 민족적 목표를 어떻게 규정해야 할까?

점령을 종식하고 팔레스타인 식민화를 번복하는 것, 팔레스타인 위임통치령에서 이스라엘에 빼앗기고 남은 22퍼센트 땅에 아랍권 동예루살렘을 수도로 해서 팔레스타인 국가를 수립하는 것, 현재 국외에서 사는 나머지 절반의 팔레스타인인을 고국으로 귀환시키는 것, 팔레스타인 땅 전역에서 모두가 동등한 권리를 누리는 민주적이고 주권적인 두-민족국가를 창설하는 것, 또는 이 선택지들을 일부 조합하거나 변형하는 것 등 여러 가지 방안을 제안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것에 이스라엘이 동의를 할까?

앞으로 팔레스타인은 이스라엘에 맞서 새로운 이미지를 만들고 주변 아랍 국가와 미국은 물론 세계 여론과 이스라엘 여론에도 호소하며 정당성을 확보해 나가야 할 것이다.


아직도 이들의 전쟁은 끝나지 않고 계속되고 있다. 팔레스타인인들은 다시 고향으로 돌아가 살기를 원하지만 이스라엘은 난민 문제나 팔레스타인인들의 귀환 요구를 재고의 가치도 없는 것으로 여긴다.

유대인들도 제2차 세계대전 중에 엄청난 학살을 당하고 고통을 겪었음에도 그들이 나치에 의해 고통받은 것 이상으로 팔레스타인인들에게 만행을 일삼고 있다는 사실에 분개를 하면서 책장을 넘길 수밖에 없었다.

어서 빨리 평화적 공존의 방안이 제시되어 더 이상 고통받는 이들이 없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팔레스타인 분쟁을 역사적 사실에 기인하여 좀 더 객관적인 시선에서 바라보고 싶은 사람들에게 이 책을 꼭 읽어보라고 추천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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