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과 바다 원전으로 읽는 움라우트 세계문학
어니스트 헤밍웨이 지음, 이정서 옮김 / 새움 / 202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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멕시코 만에 돛단배를 띄워 고기를 잡으며 살아가는 노인 산티아고는 84일 동안 한 마리의 고기도 잡지 못하고 있다. 앞서 40일간은 그가 고기잡이를 가르친 소년 마놀린과 함께였으나 40일이 지나자 소년의 부모의 지시로 소년은 다른 배로 옮겼다. 소년의 부모는 노인이 이제 확실히 '살라오'가 되었다고 생각했다.

매일 빈 배로 돌아오는 노인의 모습은 소년을 슬프게 했고, 소년은 노인이 고기잡이 도구들을 준비하거나 정리하는 것을 도왔다.

그날도 허탕친 노인을 위해 소년이 테라스에서 노인에게 맥주를 사 주었는데, 테라스에 앉아 있던 많은 어부들이 허탕친 노인을 비웃었다. 그러나 노인은 화내지 않고 소년에게 85는 행운의 숫자이고, 내일 자신이 손질을 하고도 천 파운드가 넘는 물고기를 잡아오는 걸 보면 어떨 거 같냐며 85일째인 내일은 큰 물고기를 잡을 거라는 의지를 보인다.


다음날 아침 일찍 어둠 속에서 소년의 도움을 받아 고기잡이 준비를 마친 노인은 바다로 나간다. 어둠 속에서 끊임없이 노를 저은 결과 날이 밝아 오기 시작했을 무렵에는 예상보다 훨씬 더 멀리 나가 있었다. 그는 실제로 날이 밝아지기 전 자신이 원하는 위치에 정확하게 낚싯줄을 드리웠고 물고기가 미끼를 물기를 기다렸다.

그렇게 정확하게 낚싯줄을 드리운 노인은 자신이 최근 물고기를 못 잡은 것은 단지 운이 없었을 뿐이라고 생각했다. 어쩌면 오늘은 다를 것이라 기대하며, 운이 찾아왔을 때를 대비하여 정확히 준비하고 있겠다고 생각했다.


노인은 오랜 기다림 속에 이런저런 생각들을 했다. 그리고 그냥 그렇게 떠다녀도 좋겠다는 생각도 했지만 85일째인 오늘 하루는 제대로 낚아야겠다고 생각하며 자신의 낚싯줄을 지켜보고 있던 바로 그때, 노인이 드리웠던 낚싯줄 중 녹색 찌가 격렬하게 잠기는 것을 보았다.

노인은 가볍게 줄을 잡아 100패덤 아래에서 아주 큰 청새치 한 마리가 갈고리에 달린 미끼를 먹고 있음을 느끼고는 그것이 완전하게 낚싯바늘의 정어리를 삼키기를 인내심 있게 기다리고 또 기다렸다.

드디어 물고기가 미끼를 완전히 삼켰을 때 노인은 양손으로 힘껏 낚싯줄을 낚아챘다. 그러나 물고기는 꿈쩍도 하지 않았고, 노인은 예인줄 말뚝 신세처럼 그 물고기에 의해 끌려가기 시작하는데….



노인은 수도가 없어 씻기 위해서는 소년이 두 블록 아래 길에서 물을 가져와야만 하는 오두막에서 살고, 다른 생필품이나 식사 한 끼 조차 소년의 도움을 받아 해결해야 할 만큼 어려운 생활을 하고 있지만 절대 비굴하지 않고 매사에 당당함을 유지한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은 노인이 '살라오'가 되었다고 하지만 그 자신은 절대 그렇지 않다고 생각하며 큰 물고기를 잡을 수 있다는 굳센 의지를 보여준다.


바다는 그런 노인에게 치열한 삶의 공간이자 친구였다. 다른 어부들이 바다를 엘 마르(el mar)라고 남성형으로 부르며 경쟁상대나 심지어 적이라고 말할 때, 노인은 그것을 라 마르(la mar)로 생각하며 여성으로 여겼다. 만약 바다가 거칠거나 심술궂은 일을 했다면 어쩔 수 없어서였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바다는 노인에게 고기를 잡지 못하더라도 다시 돌아올 수밖에 없는 어머니의 품 같은 자신의 삶 그 자체였다.


그런 바다에서 노인은 부상으로 인해 힘든 상황에서도 물러서지 않는 불굴의 의지로 큰 청새치를 잡는데 성공하며 자부심을 느낀다. 그러나 그렇게 모든 힘과 의지를 그러모아 잡은 청새치를 상어떼가 공격하였을 때는 마치 노인 자신이 공격당하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러므로 노인의 물고기를 공격하는 상어떼는 노인의 적들이었다. 노인은 자신의 자부심을 공격하는 적들에 맞서 죽기 전까지 그들과 싸울 것을 다짐한다.

인간은 패배를 위해 만들어지지 않았어. 인간은 파멸당할 수는 있을지언정 패배하지는 않아.


비록 마지막에는 잡은 물고기를 상어떼에게 전부 뜯기고 배 손잡이가 상처를 입었지만 노인은 더 이상 신경 쓰지 않았다. 포기하지 않고 상어떼라는 또 다른 자신의 운명의 시련에 맞서 최선을 다해 싸웠기에 패배한 것이 아니었다.

육체적 한계를 느끼면서도 결코 굴하지 않는 노인의 모습에서 인간의 꺾이지 않는 불굴의 의지를 확인하며 노인이야말로 진정한 승리자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노인이 마지막에 꾸는 힘과 용맹의 상징인 사자 꿈을 통해 노인은 다시 한번 불굴의 의지를 다져 내일을 준비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사자는 바로 미래에 대한 노인의 희망과 의지의 표상일 것이다.

우리는 삶이 아무리 힘들고 고달프더라도 『노인과 바다』의 노인 산티아고처럼 이겨낼 수 있다는 의지와 확신을 가지고 세상의 고난에 맞서며 앞을 향해 두려움 없이 나아가도록 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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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방인 원전으로 읽는 움라우트 세계문학
알베르 카뮈 지음, 이정서 옮김 / 새움 / 202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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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엄마가 죽었다. 아니 어제였는지도 모르겠다.

뫼르소는 양로원으로부터 어머니 사망과 장례식에 대한 전보를 받았다. 이에 알제에서 멀리 떨어진 마랭고에 있는 양로원에 가기 위해 사장에게 이틀간의 휴가를 요청했지만 사장의 표정은 좋지 않았다.

"제 잘못이 아닙니다."


뫼르소는 양로원으로 가 원장을 만난 뒤 어머니의 관을 모셔둔 작은 영안실로 갔지만, 어머니를 마지막으로 볼 수 있도록 관의 뚜껑을 열어 주겠다는 관리인의 제안은 거절한다. 그러고는 밀크 커피를 가져다주겠다는 관리인의 제안에 커피를 마시고 담배를 피웠다.

다음날 장례식에 참석했지만 슬픔으로 울면서 실신하는 토마 페레와는 달리 슬픔을 느끼지도 슬픈 척하지도 않았다. 버스를 타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이제 열두 시간을 잘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하며 기쁨을 느낄 뿐이었다.


잠에서 깨어나 그날이 바로 토요일인 것을 깨달은 뫼르소는 전날의 피로에도 불구하고 수영을 하러 가기로 결정했다. 항구의 해수욕장에서 뫼르소는 같은 사무실에서 타이피스트로 일했던 마리 카르도나를 만난다. 그들은 함께 수영을 즐긴 뒤 저녁에 페르낭델이 나오는 코미디 영화를 보고 뫼르소의 집으로 가 함께 밤을 보낸다.

다음날 뫼르소가 일어났을 때 마리는 집에 가고 없었고 뫼르소는 여느 일요일과 똑같은 하루를 보낸다.

어머니는 땅속에 묻혔고 뫼르소는 일상을 이어갈 것이고 바뀐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뫼르소는 같은 층의 레몽 생테스와 어울리게 된다. 동네에서 레몽의 평판은 좋지 않았지만 뫼르소는 그와 말을 하지 않을 하등의 이유를 못 느끼며 그의 초대에 응한다. 레몽은 뫼르소에게 자신에게 시비를 걸어온 레몽의 정부의 오빠와의 싸움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는 자신의 무어인 정부와의 일을 이야기해 주며 그녀를 혼내주기 위한 방법으로 그녀에게 편지를 보내고 싶어 했고 뫼르소에게 대신 써달라고 부탁했다. 뫼르소는 레몽을 만족스럽게 하지 않을 이유가 없었으므로 그가 만족하는 편지를 쓰기 위해 애썼다.

다음 일요일 레몽은 자신의 집을 찾은 정부와 다툼 끝에 폭력을 행사했고 주민의 신고로 출동한 경찰관에게 제지당하며 경찰서로 소환 명령을 받는다. 이에 레몽은 뫼르소에게 증인이 되어줄 것을 요청했다.


그다음 토요일 뫼르소가 무어인 정부가 레몽을 그리워했다는 증언을 함으로써 레몽은 주의 조치만 받고 경찰서를 나왔다.

그리고 다음날 뫼르소와 마리, 레몽은 레몽의 친구 중 한 명인 마송의 초대를 받아 해변가 작은 별장으로 간다. 집을 나섰을 때 길 맞은편 담배 가게 근처에 무리 지어 있는 아랍인들을 보았고 그 무리들 중에 레몽의 정부의 오빠를 발견한다.

그들을 피해 서둘러 버스를 타고 해변의 별장에 도착한 뫼르소 일행은 즐거운 시간을 보냈고, 점심을 먹고 난 후 마리와 마송 부인은 남겨두고 남자들만 해변을 산책했다. 그때 레몽을 쫓아온 아랍인들과 마주쳤고 시비 끝에 레몽이 칼에 찔린다. 그 후 아랍인들은 재빨리 달아났고, 뫼르소와 마송은 레몽을 부축하여 별장으로 돌아온 뒤 의사의 치료를 받게 한다.


상처를 치료한 레몽은 침울해하며 해변으로 홀로 산책을 나갔다. 그런 레몽을 뒤따라간 뫼르소는 해변가 끝에서 레몽을 찔렀던 아랍인들을 다시 발견한다. 레몽은 주머니에 손을 넣어 총을 만지며 쏘고 싶어 했으나 뫼르소가 이를 저지하며 총을 받아둔다. 대치 상황 속에서 아랍인들은 뒷걸음질 쳐서 사라졌고 레몽은 기분이 한결 좋아져 마송의 별장으로 돌아간다.

레몽과 달리 별장 안으로 들어가지 않고 다시 혼자 산책에 나선 뫼르소는 레몽을 노렸던 아랍인과 다시 마주친다. 뫼르소는 아랍인이 꺼내든 칼에 반사된 햇볕이 눈을 파고들자 레몽의 권총을 움켜쥐고 아랍인을 향해 방아쇠를 당기는데….



소설에서 보여지는 뫼르소의 태도는 한마디로 무관심이다.

그는 자신의 일을 포함한 주변의 일과 사람들에게 이래도 좋고 저래도 좋다는 식으로 큰 의미를 두지 않고 무관심으로 일관한다. 나중에 재판에서조차 이런 뫼르소의 무관심과 비정함이 판결의 원인이 된다.


뫼르소의 이런 모습은 보통 사람들의 눈에는 비정상적으로 보이고 거부감을 일으킨다.

뫼르소가 어머니의 나이를 정확히 모르더라는 양로원 원장의 진술, 어머니의 마지막 모습을 보고 싶어 하지 않았고 어머니의 시신 앞에서 밀크 커피를 마시고 담배를 피우며 잠을 잤다는 관리인의 증언들은 뫼르소를 인정없고 비윤리적인 사람으로 몰고 간다.

하지만 뫼르소는 이러한 것들에 무관심으로 일관한다. 이런 것들은 살인 사건과는 관련이 없는 진술들이므로 무의미했기 때문이다. 오죽하면 변호사가 뫼르소가 어머니의 장례를 치러서 기소된 것인가 아니면 한 사내를 죽여서 기소된 것인가를 물었을 정도다.


뫼르소는 자신의 재판에서조차 방관자였다. 뫼르소 자신을 제외하고 그 사건이 다뤄지는 것처럼 보였고 모든 일이 뫼르소의 발언 없이 진행되었다. 누구 하나 뫼르소의 의견은 구하지 않은 채 뫼르소의 운명을 정했다. 뫼르소는 그저 공판과 공판을 보러 온 사람들과 기자들을 지켜볼 뿐이었다. 그는 철저한 이방인이었다.


뫼르소는 사회가 요구하는 모습을 당연하게 여기지 않고 의문을 품고 끊임없이 저항했다. 그리하여 그는 세상과 타협하지 못하고 세상으로부터 이해받지 못한 부조리한 인물이 된다.

그리고 그는 끝까지 이 세상의 무의미함에 대한 자신의 신념을 꺾지 않는다.

과연 뫼르소가 생각한 것처럼 우리의 삶이 무의미한 것일까?


카뮈는 비록 우리가 무의미한 세상 속에 던져져 있을지라도 어딘가에 분명 의미를 가진 무언가가 존재할 것이라고 했다. 그리하여 부조리한 세상 속에서 가치를 찾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방인』은 읽을 때마다 현실의 부조리를 의식하며 진정한 나 자신으로 사는 것에 대한 삶을 곱씹어 보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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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코마코스 윤리학 (그리스어 원전 완역본) 현대지성 클래식 42
아리스토텔레스 지음, 박문재 옮김 / 현대지성 / 202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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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라서 정의는 법을 지키는 것과 공평한 것이고, 불의는 법을 어기는 것과 공평하지 않은 것이다.

p.173



아리스토텔레스는 일반적으로 정의란 법과 관련된 의미로 법을 잘 지킴으로써 공동체를 행복하게 만드는 것이라고 했다. 이것은 모든 사람들에게 요구되는 정의이다.

이에 비해 분배 정의, 바로잡는 정의, 교환 정의는 개인이 생활하는 데 있어 특수한 상황에 적용되는 정의를 말한다. 분배 정의는 각자의 가치에 따라 기하학적 비례에 따른 것이고, 바로잡는 정의는 기여도에 따른 즉, 이익을 주었으면 이익을 준 만큼, 피해를 입혔으면 피해를 입힌 만큼의 차이를 고려한 산술적 비례에 따른다. 교환 정의는 동일한 가치를 지닌 물건이나 행위가 교환되면 올바르다고 했다.


이 모든 정의와 불의는 그것을 행한 사람의 자발성 내지는 비자발성에 의해 그것이 정해진다고 하니 복잡하고 심오할 따름이다. 불의한 행위를 자발적으로 행했을 때 그 행위는 비난을 받고 동시에 불의한 행위가 되지만, 비자발적이라면 그 행위는 불의 하긴 하지만 불의한 행위는 아닌 무엇이라고 하니 정의를 논할 때 초점을 맞추는 것은 결과가 아닌 의도인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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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미의 이름 - 하 열린책들 세계문학 81
움베르토 에코 지음, 이윤기 옮김 / 열린책들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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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세 명이나, 그것도 첫 번째 죽음인 아델모에 대하여 조사하던 과정 속에서 마주치고 연관이 되었던 베난티오와 베렝가리오가 죽게 되면서 윌리엄과 아드소는 더욱 경각심을 가지게 되었다. 그러던 중 세베리노가 시약소에서 자신의 것이 아닌 이상한 책을 발견했고, 그 책이 아무래도 베렝가리오가 모종의 이유로 숨겨두고 간 책으로 보인다며 윌리엄이 와서 확인해 줄 것을 부탁하였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세베리노는 시약소에서 천구의에 뒤통수를 얻어맞아 죽은 상태로 발견되었다. 이에 세베리노가 발견하였다던 책을 그의 도움 없이 수많은 책들 속에서 찾기란 매우 힘든 일이었다. 미약하게나마 단서를 가지기는 했으나 이마저도 잠시의 실수로 인해 기회를 놓치고 뒤늦게 돌아가 보았을 때에는 누군가가 이미 그 책을 가져간 뒤였다.

윌리엄은 자신들과 함께 책들을 확인했던 베노를 의심하였고 이는 정확했다. 베노는 평상시에 지식에 대한 갈증을 가진 사람이었고, 그렇기에 장서관 사서 수도사가 그 책을 가져다주는 대가로 보조 사서로 임명하겠다는 약조를 하자 이에 흔쾌히 동의하였던 것이다.


이로 인해 세베리노가 시약소에서 발견하였던 베렝가리오가 남겨두고 간 것으로 추정되는 책은 말라키아의 손에 들어가게 되었다. 그러나 이보다도 더 충격적이었던 것은 여태껏 일어났던 일련의 죽음들이 단순한 우발적 사건들이 아닌 매우 치밀한 계획이 동반된 것일지도 모른다는 사실이었다.

윌리엄과 아드소는 일전에, 수도원의 최연장자인 알리나르도 수도사가 의미 없어 보이는 말들을 하던 중, 죽음들이 <요한의 묵시록>의 일들이 현실이 되고 있는 것이라고 하는 말을 들었었다. 그 당시에는 이 또한 의미 없다 여겼지만 세베리노의 죽음에서 알리나르도의 말이 맞았을 수 있다는 가정을 배제할 수 없게 되었다.

그렇게 이해를 하면 이 죽음들의 범인은 모든 사건들을 치밀하게 준비했었다는 결론이 나오게 된다.


비록 세베리노가 발견하였던 책은 말라키아가 가져간 것이 확실하였지만, 그가 어째서 이에 그토록 집착하였는지 윌리엄은 추측하기 어려웠다. 만일 말라키아가 사건들의 범인이라면 증거가 될 책을 숨기기 위해서였을 것이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이는 아니라는 것을 윌리엄은 깨달을 수밖에 없었다. 많은 사람들이 모인 일정에서 말라키아는 조금 늦게 도착하였고,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 죽어가는 몰골이 되며 이해하기 어려운 몇 마디 말을 하다 이내 끝마치지 못하고 숨을 거둔 것이다. 그래도 윌리엄이 한 가지를 추측해낸 바로는 말라키아의 죽음이 바로 <요한의 묵시록>의 내용 중 다섯 번째에 관련된 것이라는 누군가의 경고를 전하려던 것이었는데….



드소의 수기 속의 이야기 중 후반부 4일의 이야기는 베렝가리오의 죽음에 대한 조사로 시작됐다. 이때까지만 해도 윌리엄이 추측해낸 바는 어떠한 의문의 독이 이용된 것일지 모른다는 정도였다. 그러나 윌리엄의 조사를 도와주었던 세베리노의 죽음에서 한 가지 가설을 세우게 되었고, 얼마 뒤 말라키아의 죽음에서 확신으로 이어졌다.

하지만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상상하기 어려운 것은, 어떻게 <요한의 묵시록>이라는 한 권의 책의 내용을 바탕으로 여러 죽음들을 계획하고 또 이를 철저하게 실행할 수가 있었을까? 살인 자체만으로도 끔찍한 일인데 이를 이토록 상세하면서도 참혹하게 계획하여 진행한다는 것은 정말 범인이 사람이긴 한 건지 의문이 들 정도였다.


게다가 하는 행동들이 음험해 보이고 베노와 정당하지 못한 거래를 통해서라도 베렝가리오가 얻게 된 책을 손에 넣으려고 했던 집착의 수준을 본다면 말라키아가 범인이라는 심증이 99.9999…% 확실한데, 말라키아가 아니었다고?

윌리엄이 조사하기 시작한 첫날부터 윌리엄을 대하는 태도와 장서관에 숨겨져 있던 이상한 장치와 비밀들까지, 이 모든 게 다 말라키아와 일절 관련이 없는 일들이었다니….

그런데 말라키아가 범인이 아니고 관련도 없다면, 자신이 관리해야 하고 또 자신만 있을 수 있는 곳인 장서관을 다른 사람들이 자기 집 앞마당처럼 돌아다니는데 꿈에도 모르고 세상 편하게 지냈다는 말인데…. 그렇다면 도대체 말라키아는 얼마나 무능했단 말인가? 그렇게 할 일도 제대로 못 해 놓고서는 쓸데없이 주인공 앞에서 무게나 잡아서 괜히 독자들을 헷갈리게나 만들고…, 민폐 캐릭터가 따로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나저나 의심스러운 인물들은 하나같이 죽거나 뭘 할 수 없는 상황에 놓이게 되는데, 그렇다면 도대체 누가 범인인 것일까? 그리고 도대체 무엇 때문에 <요한의 묵시록>의 내용을 참고해서 이렇게 참혹한 일들을 벌이고 다니는 것일까?

꼭 책을 읽고 이 모든 사건의 전말을 직접 알아보길 강력 추천한다.


『장미의 이름』을 읽는 내내 미스터리한 사건의 실마리라도 잡아보겠다는 일념으로 소설의 글자 하나하나를 허투루 읽을 수가 없었다.

그리고 이야기는 당시 수도원의 부패, 수도사들 간의 암투, 인간의 욕망 등을 보여줌으써 성스러워야 했던 수도원이 얼마나 세속에 물들어 있는지도 알게 해 주었다. 또한 마지막에 인간의 본성인 웃음을 인정하지 않고 서책이 공개되는 것을 거부하는 모습에서 당시 교회의 폐쇄적인 분위기도 알 수 있었다.


우리에게 다소 생소한 중세 수도원을 배경으로 진행되는 긴장감 넘치는 사건과 음모 이야기에 논리학과 신학, 기호학 등이 전부 녹아들어 간 빈틈없는 이야기는 『장미의 이름』이 현대적 고전이라는 명성을 얻을만한 가치가 있음을 충분히 보여주는 소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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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과 바다 원전으로 읽는 움라우트 세계문학
어니스트 헤밍웨이 지음, 이정서 옮김 / 새움 / 202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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낚싯줄은 느리지만 꾸준하게 올라왔고 대양의 표면이 배 앞쪽에서 불거지더니 물고기가 나타났다. 면면히 모습을 드러낸 그것의 양옆에서 물이 마구 쏟아졌다. 그는 햇볕을 받아 밝게 빛났고 머리와 등은 짙은 자줏빛이었으며 햇볕을 받은 그의 양옆 줄무늬는 넓고 밝은 연보랏빛을 띠었다.

p.66



물고기를 낚았으나 1인치도 끌어올릴 수 없었던 노인은 물고기에게 끌려다니며 바다에서 밤을 보내게 된다. 다음날 낚싯줄을 잡고 버티고 있던 노인은 물고기의 갑작스러운 요동으로 고물 위로 쓰러지며 오른손을 다치게 되었고, 노인은 기운을 잃지 않기 위해 고물 아래 다랑어를 찾아서 토막 내어 먹는다.

그 와중에 왼손에 쥐가 났고, 쥐가 난 손을 풀려고 노력하던 중 오른손으로 잡고 있던 낚싯줄을 통해 물고기가 올라오고 있음을 직감하는데….


상황이 낙관적이지 않음에도 노인은 결코 좌절하거나 두려워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고 다가올 자신의 운명을 적극적이고 담대하게 받아들이는 모습을 보여준다.

노인의 외로운 싸움은 어떻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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