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언 블루
오승호 지음, 이연승 옮김 / 블루홀식스(블루홀6)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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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시오이군의 시시오이 파출소 소속 나가하라 순경은 약 4개월 전 근무를 마치고 장비를 반납하러 시시오이 경찰서로 향하던 중 모든 장비를 그대로 가지고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당시 그가 들고 있던 무전기만 시시강 하류에서 발견되었을 뿐 나가하라 본인과 경찰수첩, 권총 어느 것 하나 발견된 것이 없었다.

모든 면에서 우수했던 나가하라가 잠적할 만한 동기를 찾지 못하자, 사람들은 그가 모종의 이유로 자살했을 가능성을 제기했다. 그러나 경찰 학교의 같은 아쓰미 교장 동기로서 나가하라의 성품과 성격을 잘 아는 사와노보리 요지 순경은 절대 그 소문을 믿지 않았고, 그의 실종에 대해 의문을 품었다.

그러던 중 갑자기 쓰러진 아버지 병간호를 핑계로 요지는 고향 시시오이초의 시시오이 파출소로 근무지 이동을 신청했다. 그는 나가하라 실종의 진실을 꼭 밝혀내리라 결심했다.


시시오이 파출소의 순경들은 시골 마을의 순경들답게 정감 있고 친절한 듯했다. 그러나 요지가 자연스럽게 실종된 나가하라의 이름을 꺼내면 이내 그들은 얼굴을 굳히고 분위기가 싸늘해지며 화제를 전환했다. 심지어 파출소의 이인자 아키미쓰는 나가하라를 근성 없는 놈이라고 폄하하며 조롱하는 말까지 했다.

대체 나가하라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부임한 시시오이는 살인도 강도 사건도 거의 없고, 교통사고가 중대 사건일 정도로 한적하고 평화로운 전형적인 시골 마을이었다. 일은 수월하다 못해 지루할 정도였다.

시시오이로 온 지 일주일 정도 지났을 무렵, 요지가 후배 순경 요코오와 낮 순찰을 마치고 파출소로 돌아가니 얼굴에 멍이 든 채 울부짖는 노파 모리 세쓰코를 고스게가 달래고 있었다. 고스게는 파출소로 들어오는 두 사람에게 여동생 집에 가려는 세쓰코를 바래다 주겠다며 파출소를 나섰다.

그날 저녁 요코오와 다시 순찰을 나간 요지는 세쓰코의 집 근처를 지나며 그 집에 들르려고 했으나 요코오의 반대로 그냥 지나쳐 버렸다.

그리고 다음날 새벽, 파출소로 모리의 집에서 화재가 발생했다는 연락이 들어왔다. 요코오와 현장에 도착한 요지는 불길이 이미 모리의 집을 집어삼키고 있음을 보게 되었다. 그리고 그곳에서 생각지도 못한 인물 아키미쓰가 있는 것을 발견하는데…….




이 소설은 두 번째로 읽는 오승호 작가님의 작품이다. 가볍지 않은 주제를 다룬다는 점에서는 전작 『히나구치 요리코의 최악의 낙하와 자포자기 캐논볼』과 비슷했지만, 이번 작품에서는 전작에서 간혹 보여줬던 위트는 쏙 빼고 진지함만을 보여주고 있다.

소설은 처음부터 전소되는 한 가옥의 모습을 묘사하며 긴장감의 끈을 바짝 조이며 시작한다.


큰 사건 없이 평화롭기만 하던 시골 마을 시시오이에서 발생한 순경 나가하라의 실종이라는 평화의 작은 균열.

그의 실종과 관련 있어 보이는 자들은 그 균열을 들키지 않으려고 그런 것은 존재조차 하지 않았던 것처럼 넘기려 하지만, 주인공 요지가 그 틈을 비집고 들어와 점점 넓혀가 결국은 평화로 위장한 모습 속에 감춰진 추악함과 위선이 전부 흘러나와 세상에 드러나게 한다.


이웃집 숟가락 개수도 알만큼 좁고 친밀한 시골 마을에서, 권력자들은 대의라는 가면 아래 그저 자신들의 기득권 유지를 위해 쓰레기 같은 규범과 체계로 사람들을 옥죄며 왕좌를 지켜나가는 것에만 관심이 있을 뿐이었다. 그곳에서는 경찰도 조폭도 그저 권력자를 위한 똑같은 도구에 지나지 않았다.

그러나 그곳에는 그 왕좌를 뛰어넘어 진정한 대의와 평화를 쟁취하여 시시오이가 진정한 자신이 되는 곳이 되기를 바라며 자신을 버리고 몸을 낮추고 웅크려 기회를 노리고 있는 사람들 또한 존재했다.

그런 곳에서 나가하라는 무엇을 생각을 하고, 무엇을 기대하며 살았을까.


고등학교 시절 고시엔에서의 어이없는 실수로 인생 내리막을, 아니 자신이 죽는 것을 경험한 요지는 나가하라의 실종을 확실히 매듭짓는 것으로 고시엔 마운드에서 잃어버린 자신이 살아갈 의미를 되찾으려고 했다.

그런 요지가 부임해 온 뒤로 조용한 시골 마을은 하루가 멀다 하고 사망 사건이 발생한다. 과연 그들은 무엇 때문에 죽임을 당했으며 그들을 죽인 범인은 누구일까?

모두가 의심되는 상황 속에서 밝혀지는 소름 끼치는 범인의 정체……, 그리고 나가하라는…….

과연 요지는 자신이 원하던 바를 이룰 수 있을까?


단지 몇 줄의 감상평만으로 이 소설의 매력과 재미를 표현하는 것은 불가능한 것 같다. 이 소설의 진정한 재미를 느끼기 위해서는 소설 속에 등장하는 많은 인물들의 서사와 그것이 서로 정교하게 얽히면서 어떤 이해관계를 낳게 되었는지를 파악하는 것이 우선되어야 할 것이다.

그러고 나면 우리가 보고 제대로 파악했다고 자신했던 모습들이 진실이 아니었음을 깨닫는 순간, 참된 진실이 가져오는 짜릿함과 흥분을 배로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소설을 덮고 난 지금 할 말이 많은 동시에 할 말은 하나밖에 없다.


백문이 불여일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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킬리만자로의 눈 원전으로 읽는 움라우트 세계문학
어니스트 헤밍웨이 지음, 이정서 옮김 / 새움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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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기한 건 통증이 사라졌다는 거야."

주인공 해리는 한때 글을 썼으나 어느 순간 작가로서 이미 끝나 있었고, 그 즈음 지금의 아내를 만나 결혼을 했다. 그는 아내의 많은 돈으로 최상의 곳에서 편안하고 안락하게 살았고, 이제 더 이상 글을 쓸 수 없음에도 언젠가는 자신이 어울리고 있는 매우 부유한 사람들의 세계에 관해 써보리라 마음먹었다.

그리고 다시 글을 쓰기 위해 아프리카를 택했던 그는 영양 떼의 사진을 찍기 위해 앞으로 나아가다 가시에 무릎이 긁혔고, 그 상처를 가볍게 생각하고 안이하게 넘겼던 탓에 상처는 감염되어 괴저를 일으켰다. 극심하던 통증이 공포심과 함께 사라진 지금, 해리에게 남은 것은 극심한 피로감과 그의 곁에 다가온 죽음에 대한 분노뿐이었다.


그렇게 통증이 사라지고 죽음을 예감한 그는 야전침대에 누워 자신의 과거를 회상한다.

그 기억들 속에서 그는 여태껏 내버려 두고 시작하기를 늦추었던 것들에 대해 떠올리고는 후회하고 아쉬워하지만 지금은 이미 늦어버렸다.


음식을 삼키는 것조차 힘겨운 그는 자신을 기진맥진하게 만들었던 지독한 상처의 고통이 멈춘 지금 다른 모든 것들처럼 죽어가는 것도 따분하다고 생각했다. 시간이 흘러 아침이 되어 그렇게 기다리던 비행기가 소리와 함께 드디어 모습을 드러내는데…….



<새움>에서 출판되는 '원전으로 읽는 움라우트 세계문학' 시리즈를 기다린 독자 중의 한 명으로, 『킬리만자로의 눈』의 발간은 가뭄에 단비처럼 설레고도 기쁜 소식이었다.

이 시리즈를 읽어본 독자라면 누구나 알고 있듯이, 이 책은 번역자의 개인적인 해석이 많이 반영된 의역을 지양하고, 원작자가 쓴 의도가 그대로 드러나게 문장 구조, 쉼표 하나조차 원문에 충실한 직역을 지향하고 있다.


이 책은 헤밍웨이의 단편 6개의 모음으로, 이 책의 제목이기도 한 「킬리만자로의 눈」 이외에 「킬러들」, 「흰 코끼리 같은 산등성이」, 「미시간 북부에서」, 「혁명가」, 「빗속의 고양이」가 들어있다.

3페이지에 불과한 짧은 단편 「혁명가」를 제외한 나머지 단편들은 이미 이전에 원서로 읽어 보았던 소설들인데, 직역에 가까운 번역의 책을 읽으니 원서로 읽었을 때의 영어 문장들이 머릿속에 되살아나는 듯했다.


「킬리만자로의 눈」에서는 첫 문장에서 해리가 "신기한 건 통증이 사라졌다는 거야."라고 말하며 죽음을 예감하는 모습을 보여주며 이 소설이 말하고자 하는 바를 처음부터 이야기하고 있다.

소설에서 주인공 해리는 현실에 안주하고 스스로와 타협해버렸기에 능력이 둔화되고 의지가 나약해져버려 글을 쓸 수가 없었다. 그런데 죽음을 마주하고 보니 자신의 지난 삶들이 주마등처럼 지나갔고, 다시는 자신이 원하는 바를 시도해 볼 기회조차 없음에 지난날을 후회하지만 더 이상 시간은 그를 기다려주지 않았다.

육체는 고통을 지웠지만 그의 정신은 삶에 대한 후회로 고통을 새겼다.


소설은 살아가면서 편안한 현실에 안주해서는 자신이 원하는 바를 성취할 수 없음을 경고한다. 우리의 목표는 그저 그것을 꿈꾸는 것만으로 실현되지는 않는다. 타성에 젖어 현실에 안주하여 오늘이 아니면 내일, 내일이 아니면 그다음을 기약하며 계획을 세우는 것에 그치는 것을 경계해야 할 것이다.

무언가를 이루고자 하는 열정과 그 과정에서 생겨나는 고통이 없는 성취는 없음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소설의 도입부에 나오는 눈 덮인 킬리만자로의 표범 시체는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아니, 눈 덮인 킬리만자로 정상이 해리에게 의미하는 바는 무엇일까?

소설을 읽고 고민해 보는 시간을 가졌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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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피쿠로스 쾌락 (그리스어 원전 완역본) 현대지성 클래식 47
에피쿠로스 지음, 박문재 옮김 / 현대지성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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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현대지성>에서 출간한 『에피쿠로스 쾌락』은 그리스어 원전 완역본으로 국내 최초로 에피쿠로스의 현존 원고 8편 전체를 수록하고 있다.

흔히 쾌락주의자라고 알려져 있는 그리스 철학자 에피쿠로스는 쾌락을 매우 중요하게 생각하며 쾌락을 좇는 삶을 주장했다. 쾌락이라고 하면 우리는 흔히 본능과 육체적인 욕구 충족, 방탕 같은 퇴폐적인 것에 가까운 것을 떠올린다. 그러나 에피쿠로스가 말하는 쾌락은 일차원적인 단순한 기쁨이나 행복이 아닌 모든 마음과 몸의 고통과 괴로움에서 벗어나 평정심을 누리는 것에서 찾는 행복에 있다. 다시 말해 에피쿠로스는 육체보다는 정신적인 쾌락을 추구했고, 더 나아가 쾌락 그 자체보다는 고통과 괴로움을 벗어나는 것을 추구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에피쿠로스의 쾌락에 있어서 빠질 수 없는 것이 사랑과 우정일 것이다. 에피쿠로스는 사랑과 우정이 이득에서 시작된다고 할지라도 모든 사랑과 우정은 그 자체로 선택할 만한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일반인의 경우엔 사랑과 우정 모두 이기적 동기에서 나오기 때문에 진정한 것이 아니나 현자의 경우는 이것들이 '아타락시아'에서 나오기 때문에 진정한 것들이라고 했다.

'아타락시아'란 몸의 고통과 마음의 괴로움이 없는 평화로운 상태, 즉 '평정'을 의미한다. 에피쿠로스는 아타락시아야말로 궁극적으로 추구해야 하는 것이며 아타락시아(평정심)에 도달했을 때 비로소 거기로부터 사람들을 사랑하는 마음인 '필리아'가 생긴다고 하였다.



그러면 어떻게 하면 마음의 고통과 불안을 극복하고 평정에 도달할 수 있을까?

먼저 우리가 느끼는 불안의 원인을 알아야 하며, 그런 다음 그 불안이 아무런 근거가 없음을 밝혀내면 된다. 세상을 살아가는 동안 즐겁게 살려고 노력하고 불필요한 고통과 괴로움에 자신을 맡기지 않는 것, 아무리 힘들고 어렵더라도 항상 즐거움을 찾으면서 친구들과 즐겁게 지내는 것, 그것이 바로 이 세상을 아름답게 사는 것이라고 했다.

그리하여 에피쿠로스는 아테네 교외에 '정원'을 만들어 친구들과 공동생활을 하며 함께 토론하며 그 사상을 실천하며 행복하게 지냈다.


『에피쿠로스 쾌락』을 읽다 보면 행복한 삶이란 자신이 즐길 수 있는 가장 단순한 삶의 형태를 찾아 즐기고, 자신의 생각과 사상을 나눌 수 있는 친구들과 우정을 나누는 것임을 알게 된다. 가질 수 없는 것을 욕심내어 바라지 않고, 지금 자신이 가지고 있는 것을 소중하게 생각하고 만족해야 할 것이다.

요즘 현대인이 추구하는 미니멀리즘처럼 단순하게 사는 것이 바로 미덕인 것이다.


이 책은 길지 않은 내용을 담고 있지만 깊은 내용을 다루고 있다. 고대 아테네의 정원에서 논했던 주제와 사상들이 현대에서 추구하는 세계와 너무나도 잘 들어 맞는 것 같아 읽으면서 감탄을 금치 못했다.

『에피쿠로스 쾌락』은 불안한 현대에서 평정심을 얻는 방법을 조언하며 단순한 삶의 의미를 철학적으로 숙고하게 하여 바람직한 삶의 길을 보여준다. 그리하여 우리는 단순한 삶과 부의 추구라는 상반된 가치 사이에서 치열한 고민을 거듭하게 되는 것이다.

또한 삭막한 현실에서 사랑과 우정의 가치를 일깨워주기도 한다.

에피쿠로스의 사상에 동의하든 동의하지 않든 누구나 한 번쯤은 꼭 읽어보고 삶의 지혜와 교훈을 꼭 얻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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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14일
에리크 뷔야르 지음, 이재룡 옮김 / 열린책들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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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에리크 뷔야르는 소설에서 프랑스 대혁명의 날 『7월 14일』을 그려내며 단지 혁명 그 자체만이 아닌 혁명이 어떻게 시작되어 전개되고 발발했는지 급박한 전개를 보여주며 혁명에 대한 모든 것을 말하고 있다.


책에서 혁명의 전조가 보이기 시작한 것은 1789년 4월 23일.

유럽 전역을 강타한 마리 앙투아네트의 채색 벽지를 생산하는 왕립 채색 벽지 제조 공장의 소유주 레베용은 인건비를 줄이고자 직공들의 급여를 낮추겠다고 공표하였고, 뒤이어 초석 공장 소유주 앙리오도 임금 인하를 예고했다. 그들은 그저 목구멍이 포도청인 못 배운 노동자들은 싸구려 술과 빵 한 조각만으로 충분히 불만을 삼키리라 예상했었다. 하지만 그들이 간과했던 것이 당시 프랑스는 대기근으로 많은 이들이 굶어 죽어 나가고 있었으며 사람들은 구걸로 연명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굶어 죽지 않기 위해 약탈하고 관료와 군인들을 공격했다.

그들의 분노는 들불같이 번져나가 4월 27일, <부자들에게 죽음을!>이라는 구호를 내걸고 빵값 인하를 요구하며 레베용과 앙리오의 인형을 불태웠다. 그러고는 그들의 해산을 요구하는 군인들을 뒤로하고 레베용과 앙리오의 저택을 습격한다. 굶주린 군중들의 약탈과 파괴는 군인들의 무차별 사격이 가해질 때까지 계속되었고, 그제야 겁에 질린 군중들은 목숨을 구걸하며 군인들은 총알을 피해 도망갔다. 하지만 총칼을 꺼낸 군인들에 의한 시신은 거리에 쌓여갔다.


폭동 진압 후, 사람들은 습격 받은 티통 별장의 파괴되거나 소실된 물건들과 그것의 가격은 꼼꼼히 장부에 기록했으나 죽은 사람의 숫자는 명확하지 않았다. 그들은 단지 살해된 이름 없는 열여덟 구의 시신에 대한 기록을 했고, 그것 또한 그들에게 씌워진 절도 혐의를 증명하기 위함이었다. 그렇게 18번 시체에 도달하기까지 그들은 시체의 호주머니에서 절도의 흔적을 발견하지 못했다.


5월 4일 왕은 베르사유에서 모든 신분을 모아 삼부회를 소집했다. 그러나 삼부회는 원활하게 이어지지 않았고, 사태는 점점 긴박하게 돌아갔다. 마침내 농민과 부르주아 등 대다수 프랑스인이 속한 제3신분은 자신들이 전체 국민의 대표임을 자처하며 국민 의회를 선포한다. 그리고 그들은 헌법이 제정되기 전까지 절대 해산하지 않겠다는 결의를 표했다.


그들의 의지에 왕은 물러서는 듯 보였으나 아르투아 백작은 왕에게 무력을 사용하라고 계속 압력을 가했고, 왕은 제3신분에게 화해의 말을 건네는 한편 뒤로는 용병들을 불러 모았다.

그리고 7월 12일, 튀일리 궁에 이른 시위자들에게 군대가 달려들었지만 간단히 진압될 것 같았던 시위대에 레베용 사건 이후 불평의 목소리를 내던 국가 근위대들이 합류하면서 브장발 남작이 이끄는 군대는 후퇴하게 된다.

군대가 다시 돌아올까 걱정된 파리 시민들은 무기로 무장을 하게 되었고, 7월 14일 바스티유는 그 누구도 아닌 파리에 포위당하는데…….



『7월 14일』은 어느 한 선구자에 의한 것이 아닌 스스로의 생존권을 지키고 평등한 권리를 갖기 위해 국민 모두가 들고일어난 대표적인 시민 혁명인 프랑스 대혁명에 관한 이야기이다. 그렇기에 이 소설의 주인공은 정해진 특정 인물이 아닌 이름 없이 스러져간 시민들이다.

프랑스 대혁명이 일어나기 몇 달 전부터 7월 14일을 배경으로 한 이 작품은 프랑스 대혁명의 전개 과정은 물론 프랑스 대혁명이 일어날 수밖에 없었던 사회적 배경, 프랑스 시민들의 활약상, 그리고 프랑스 대혁명의 의의까지 자연스럽게 말하고 있다.


군중들은 프랑스 대혁명을 통해 주체적인 인간으로서 자유와 평등을 누릴 권리를 스스로 쟁취했으나, 후일의 보복이 두려워 그들의 이름을 밝히길 꺼렸다. 그리하여 승리자임에도 역사는 그들을 기억하지 못한다.

그렇게 이름 한 줄 남겨지지 않고 역사의 무대 뒤에 있던 역사의 참된 주역들을 작가 에리크 뷔야르는 덤덤히 그들의 이름을 불러줌으로써 그들에게 생명을 불어넣었다. 그들은 허상이나 통계 숫자가 아닌 역사를 만들어 낸 실재하는 주체들이었다.


소설을 읽다 보면 무자비하게 과격한 모습이 강조되는 프랑스 대혁명이 어쩌면 폭동에 가깝게도 느껴졌다. 과연 원하는 바를 이루는 과정에서 그들이 폭력의 광기에 물들지 않았었다고 말할 수 있을까?

그러면서도 우리는 그들이 내세운 '자유, 평등, 박애'의 이념이 전 세계에 영향을 끼쳐 현대 민주주의 국가로의 기반을 마련해 주었다는 점은 부정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렇게 무자비한 폭력과 공포로 목적을 쟁취한 그들에게 평화가 찾아왔을까?

이름을 남기지 않고 역사책의 기록 밖으로 도망친 그들의 뒷이야기도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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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케일의 법칙 - 작은 아이디어를 빅 비즈니스로 만드는 5가지 절대 법칙
존 리스트 지음, 이경식 옮김 / 리더스북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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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를 보면 꼭 잘 되고 있던 사업을 확장했다가 성과가 지지부진하거나 오히려 마이너스인 경우들을 찾아볼 수 있다. 예를 들면 잘만 팔리다 못해 없어서 못 파는 수준이었던 '허니버터칩'의 경우, 소비자들의 수요를 따라가기 위해 생산 라인을 증설했으나, 증설 이후 허니버터칩에 대한 수요는 오히려 감소했다. 그런 사례들을 접할 때면 항상 궁금해했었다.

"좋은 성과를 내던 것들이 왜 규모를 늘리기만 하면 기다렸다는 듯이 성과가 감소하는 거지?"


만약 접하는 사례들이 모두 이렇게 규모를 확장하면 결과가 예상 이하인 것이었다면 그냥 "아, 원래 그런 거구나"라고 생각하고 넘어갔을 수도 있다. 그러나 그건 또 아닌 것이, 어떤 사례들에서는 규모를 확장하니까 그 성과는 확장한 규모를 넘어설 정도로 증가한 경우도 있다.

경제학의 개념 중에는 '규모의 경제'라는 개념이 존재하는데, 간단하게 요약하자면 똑같은 물품이나 서비스를 생산할 때, 그 양을 늘리면 평균 생산 비용이 감소하게 되므로 더 많은 이익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규모의 경제가 실현된다면 생산자들은 더 싸게 생산할 수 있고, 그렇다면 더 많은 소비자들이 구매를 하도록 유도하기 위해 가격을 낮추는 등의 행위를 할 수 있는 여유도 더 많이 생기게 된다.

이러한 경제학 개념에 비추어 보았을 때, 이론상으로는 규모를 확장하는 것이 부정적인 결과를 가져오는 것은 이해가 안 되는 내용이었다.


『스케일의 법칙』에서는 이러한 현상을 '전압 강하'라고 칭하며, 그 원인을 다섯 가지로 나누어 분석하고 있다. 그리고 단순히 원인 분석으로 끝나는 게 아니라, 규모 확장으로 인한 '전압 강하'를 예방하고, 어쩌면 오히려 '전압 상승'을 유도할 수 있는 방법들 네 가지를 제시하고 있다.

그중 가장 관심이 가는 주제들을 고르자면 4장에서 설명하는 '파급 효과'가 있다.






파급 효과라는 것은 어떻게 보면 사회과학 연구에 있어서 매우 큰 영향력을 가지고 있으나, 그 덩치에 비해 신출귀몰할 정도로 은밀해서 표본 집단을 통해 실험을 진행할 때에는 잘 숨어 있다가 실험자들이 실험 결과에 만족하고 그 내용을 더 큰 크기의 집단에 적용했을 때 비로소 기지개를 켜며 일어나 그 무시무시한 영향을 마음껏 펼치는 괴물 같은 존재이다.

이러한 파급 효과에 대하여 『스케일의 법칙』의 저자는 직관적으로 이해하기 쉬운 예를 들고 있다.


만약 어느 해 모든 대학교 2학년 전체 중 50%가 전공을 경제학으로 바꾼다면 어떻게 될까? 아마 이 학생들이 졸업할 때에는 경제학 전공자들이 너무 많아서 관련 직업의 임금이 대폭 떨어지게 될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영향은 실험을 통해서는 알 수 없다. 저자가 백 명의 학생들을 무작위로 뽑아 그중 50%인 오십 명을 경제학 전공으로 바꾸게 한다면? 이들이 졸업할 때 경제학 전공자가 다른 해보다는 조금 더 많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관련 직업의 임금에 영향을 미칠 정도로 중요한 변화는 아닐 것이다.


이처럼 어떤 행위가 작은 집단에서는 별다른 영향을 미치지 않지만, 집단의 크기가 커지면 예상치 못했던 파급 효과가 발생해 의도했던 바가 이루어지지 않는 경우가 많다. 표본 집단이 완전히 전체 집단을 대표하지 못할 수 있다는 내용은 앞서 2장에서 더 자세히 다루는 내용이지만, 표본 집단을 제대로 뽑더라도 그 집단이 전체보다 크기가 작은 이상 파급 효과가 일어날 가능성은 항상 존재하는 것이다.

파급 효과의 예시로 저자가 제시한 것 중 하나로 펠츠만 효과를 비롯한 여러 논문들의 배경이 된 자동차의 안전장치 설계 의무화이다. 요점은 자동차에 안전장치를 의무적으로 장착하면 개별적인 사고에서 탑승자는 더욱 안전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상황이 한 나라의 규모로 확장되었을 때, 사람들이 안전장치의 존재로 인해 안전 운전에 덜 주의하게 되고, 그로 인해 사고 자체가 더 증가해 전반적인 피해는 전과 다를 바가 없거나, 오히려 더해지기도 한다는 것이다.


『스케일의 법칙』을 보며 여러 번 통감한 것이 있다면, 사람 자체, 정확히는 뛰어난 기술을 가진 사람 자체는 대체가 어렵거나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물론 『스케일의 법칙』에서 말하고자 하는 바인 규모를 성공적으로 확장하는 과정에 있어서 이렇게 뛰어난 능력을 가진 사람은 오히려 독이 되기도 한다. 뛰어난 음식을 자랑하는 식당들이 체인점으로 성공하기가 어려운 이유 중 하나가 바로 그 식당의 성공의 핵심에 요리사의 능력이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제이미 올리버의 사례에서도 볼 수 있듯이, 전체적인 음식에서 요리사의 비중을 낮추고 재료의 비중을 높이는 등의 방법이 성공을 위한 방법 중 하나인 것이다. 그렇지만 그만큼 뛰어난 능력을 가지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장점이라고 생각한다.


『스케일의 법칙』은 사람들이 흔히 생각하지 못하는 방식으로의 접근을 통해, 규모를 확장하면 왜 경제학 이론과는 다르게 부정적인 결과를 가져오는 경우를 많이 접할 수 있는가에 대한 통찰을 제시한다. 이러한 통찰은 스타트업을 운영하는 창업자들에게도 중요하지만, 이미 큰 덩치를 가진 사업을 운영하는 CEO들에게도 필수적으로 알아야 할 내용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비단 사업가뿐만 아닌 일반인들 또한 이 책의 내용들을 통해 뉴스에서 접하는 사례들을 분석함으로써 재미를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또한 단순히 읽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신선함과 흥미로움을 제공할 수 있는 책이라고 단언할 수 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지원받고 주관적으로 작성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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