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14일
에리크 뷔야르 지음, 이재룡 옮김 / 열린책들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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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에리크 뷔야르는 소설에서 프랑스 대혁명의 날 『7월 14일』을 그려내며 단지 혁명 그 자체만이 아닌 혁명이 어떻게 시작되어 전개되고 발발했는지 급박한 전개를 보여주며 혁명에 대한 모든 것을 말하고 있다.


책에서 혁명의 전조가 보이기 시작한 것은 1789년 4월 23일.

유럽 전역을 강타한 마리 앙투아네트의 채색 벽지를 생산하는 왕립 채색 벽지 제조 공장의 소유주 레베용은 인건비를 줄이고자 직공들의 급여를 낮추겠다고 공표하였고, 뒤이어 초석 공장 소유주 앙리오도 임금 인하를 예고했다. 그들은 그저 목구멍이 포도청인 못 배운 노동자들은 싸구려 술과 빵 한 조각만으로 충분히 불만을 삼키리라 예상했었다. 하지만 그들이 간과했던 것이 당시 프랑스는 대기근으로 많은 이들이 굶어 죽어 나가고 있었으며 사람들은 구걸로 연명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굶어 죽지 않기 위해 약탈하고 관료와 군인들을 공격했다.

그들의 분노는 들불같이 번져나가 4월 27일, <부자들에게 죽음을!>이라는 구호를 내걸고 빵값 인하를 요구하며 레베용과 앙리오의 인형을 불태웠다. 그러고는 그들의 해산을 요구하는 군인들을 뒤로하고 레베용과 앙리오의 저택을 습격한다. 굶주린 군중들의 약탈과 파괴는 군인들의 무차별 사격이 가해질 때까지 계속되었고, 그제야 겁에 질린 군중들은 목숨을 구걸하며 군인들은 총알을 피해 도망갔다. 하지만 총칼을 꺼낸 군인들에 의한 시신은 거리에 쌓여갔다.


폭동 진압 후, 사람들은 습격 받은 티통 별장의 파괴되거나 소실된 물건들과 그것의 가격은 꼼꼼히 장부에 기록했으나 죽은 사람의 숫자는 명확하지 않았다. 그들은 단지 살해된 이름 없는 열여덟 구의 시신에 대한 기록을 했고, 그것 또한 그들에게 씌워진 절도 혐의를 증명하기 위함이었다. 그렇게 18번 시체에 도달하기까지 그들은 시체의 호주머니에서 절도의 흔적을 발견하지 못했다.


5월 4일 왕은 베르사유에서 모든 신분을 모아 삼부회를 소집했다. 그러나 삼부회는 원활하게 이어지지 않았고, 사태는 점점 긴박하게 돌아갔다. 마침내 농민과 부르주아 등 대다수 프랑스인이 속한 제3신분은 자신들이 전체 국민의 대표임을 자처하며 국민 의회를 선포한다. 그리고 그들은 헌법이 제정되기 전까지 절대 해산하지 않겠다는 결의를 표했다.


그들의 의지에 왕은 물러서는 듯 보였으나 아르투아 백작은 왕에게 무력을 사용하라고 계속 압력을 가했고, 왕은 제3신분에게 화해의 말을 건네는 한편 뒤로는 용병들을 불러 모았다.

그리고 7월 12일, 튀일리 궁에 이른 시위자들에게 군대가 달려들었지만 간단히 진압될 것 같았던 시위대에 레베용 사건 이후 불평의 목소리를 내던 국가 근위대들이 합류하면서 브장발 남작이 이끄는 군대는 후퇴하게 된다.

군대가 다시 돌아올까 걱정된 파리 시민들은 무기로 무장을 하게 되었고, 7월 14일 바스티유는 그 누구도 아닌 파리에 포위당하는데…….



『7월 14일』은 어느 한 선구자에 의한 것이 아닌 스스로의 생존권을 지키고 평등한 권리를 갖기 위해 국민 모두가 들고일어난 대표적인 시민 혁명인 프랑스 대혁명에 관한 이야기이다. 그렇기에 이 소설의 주인공은 정해진 특정 인물이 아닌 이름 없이 스러져간 시민들이다.

프랑스 대혁명이 일어나기 몇 달 전부터 7월 14일을 배경으로 한 이 작품은 프랑스 대혁명의 전개 과정은 물론 프랑스 대혁명이 일어날 수밖에 없었던 사회적 배경, 프랑스 시민들의 활약상, 그리고 프랑스 대혁명의 의의까지 자연스럽게 말하고 있다.


군중들은 프랑스 대혁명을 통해 주체적인 인간으로서 자유와 평등을 누릴 권리를 스스로 쟁취했으나, 후일의 보복이 두려워 그들의 이름을 밝히길 꺼렸다. 그리하여 승리자임에도 역사는 그들을 기억하지 못한다.

그렇게 이름 한 줄 남겨지지 않고 역사의 무대 뒤에 있던 역사의 참된 주역들을 작가 에리크 뷔야르는 덤덤히 그들의 이름을 불러줌으로써 그들에게 생명을 불어넣었다. 그들은 허상이나 통계 숫자가 아닌 역사를 만들어 낸 실재하는 주체들이었다.


소설을 읽다 보면 무자비하게 과격한 모습이 강조되는 프랑스 대혁명이 어쩌면 폭동에 가깝게도 느껴졌다. 과연 원하는 바를 이루는 과정에서 그들이 폭력의 광기에 물들지 않았었다고 말할 수 있을까?

그러면서도 우리는 그들이 내세운 '자유, 평등, 박애'의 이념이 전 세계에 영향을 끼쳐 현대 민주주의 국가로의 기반을 마련해 주었다는 점은 부정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렇게 무자비한 폭력과 공포로 목적을 쟁취한 그들에게 평화가 찾아왔을까?

이름을 남기지 않고 역사책의 기록 밖으로 도망친 그들의 뒷이야기도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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