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킬리만자로의 눈 ㅣ 원전으로 읽는 움라우트 세계문학
어니스트 헤밍웨이 지음, 이정서 옮김 / 새움 / 2022년 11월
평점 :
"신기한 건 통증이 사라졌다는 거야."
주인공 해리는 한때 글을 썼으나 어느 순간 작가로서 이미 끝나 있었고, 그 즈음 지금의 아내를 만나 결혼을 했다. 그는 아내의 많은 돈으로 최상의 곳에서 편안하고 안락하게 살았고, 이제 더 이상 글을 쓸 수 없음에도 언젠가는 자신이 어울리고 있는 매우 부유한 사람들의 세계에 관해 써보리라 마음먹었다.
그리고 다시 글을 쓰기 위해 아프리카를 택했던 그는 영양 떼의 사진을 찍기 위해 앞으로 나아가다 가시에 무릎이 긁혔고, 그 상처를 가볍게 생각하고 안이하게 넘겼던 탓에 상처는 감염되어 괴저를 일으켰다. 극심하던 통증이 공포심과 함께 사라진 지금, 해리에게 남은 것은 극심한 피로감과 그의 곁에 다가온 죽음에 대한 분노뿐이었다.
그렇게 통증이 사라지고 죽음을 예감한 그는 야전침대에 누워 자신의 과거를 회상한다.
그 기억들 속에서 그는 여태껏 내버려 두고 시작하기를 늦추었던 것들에 대해 떠올리고는 후회하고 아쉬워하지만 지금은 이미 늦어버렸다.
음식을 삼키는 것조차 힘겨운 그는 자신을 기진맥진하게 만들었던 지독한 상처의 고통이 멈춘 지금 다른 모든 것들처럼 죽어가는 것도 따분하다고 생각했다. 시간이 흘러 아침이 되어 그렇게 기다리던 비행기가 소리와 함께 드디어 모습을 드러내는데…….
<새움>에서 출판되는 '원전으로 읽는 움라우트 세계문학' 시리즈를 기다린 독자 중의 한 명으로, 『킬리만자로의 눈』의 발간은 가뭄에 단비처럼 설레고도 기쁜 소식이었다.
이 시리즈를 읽어본 독자라면 누구나 알고 있듯이, 이 책은 번역자의 개인적인 해석이 많이 반영된 의역을 지양하고, 원작자가 쓴 의도가 그대로 드러나게 문장 구조, 쉼표 하나조차 원문에 충실한 직역을 지향하고 있다.
이 책은 헤밍웨이의 단편 6개의 모음으로, 이 책의 제목이기도 한 「킬리만자로의 눈」 이외에 「킬러들」, 「흰 코끼리 같은 산등성이」, 「미시간 북부에서」, 「혁명가」, 「빗속의 고양이」가 들어있다.
3페이지에 불과한 짧은 단편 「혁명가」를 제외한 나머지 단편들은 이미 이전에 원서로 읽어 보았던 소설들인데, 직역에 가까운 번역의 책을 읽으니 원서로 읽었을 때의 영어 문장들이 머릿속에 되살아나는 듯했다.
「킬리만자로의 눈」에서는 첫 문장에서 해리가 "신기한 건 통증이 사라졌다는 거야."라고 말하며 죽음을 예감하는 모습을 보여주며 이 소설이 말하고자 하는 바를 처음부터 이야기하고 있다.
소설에서 주인공 해리는 현실에 안주하고 스스로와 타협해버렸기에 능력이 둔화되고 의지가 나약해져버려 글을 쓸 수가 없었다. 그런데 죽음을 마주하고 보니 자신의 지난 삶들이 주마등처럼 지나갔고, 다시는 자신이 원하는 바를 시도해 볼 기회조차 없음에 지난날을 후회하지만 더 이상 시간은 그를 기다려주지 않았다.
육체는 고통을 지웠지만 그의 정신은 삶에 대한 후회로 고통을 새겼다.
소설은 살아가면서 편안한 현실에 안주해서는 자신이 원하는 바를 성취할 수 없음을 경고한다. 우리의 목표는 그저 그것을 꿈꾸는 것만으로 실현되지는 않는다. 타성에 젖어 현실에 안주하여 오늘이 아니면 내일, 내일이 아니면 그다음을 기약하며 계획을 세우는 것에 그치는 것을 경계해야 할 것이다.
무언가를 이루고자 하는 열정과 그 과정에서 생겨나는 고통이 없는 성취는 없음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소설의 도입부에 나오는 눈 덮인 킬리만자로의 표범 시체는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아니, 눈 덮인 킬리만자로 정상이 해리에게 의미하는 바는 무엇일까?
소설을 읽고 고민해 보는 시간을 가졌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