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마를 찾아서 - 인간의 기억에 대한 모든 것
윌바 외스트뷔.힐데 외스트뷔 지음, 안미란 옮김 / 민음사 / 2019년 6월
평점 :
절판


 

 

기억은 어디에 존재하고 어떻게 작용하는가?

우리가 미처 몰랐던 기억의 속성과 본질에 다가가기 위한 매우 특별한 실험들!

 

 

 

  위태위태하고 아슬아슬한 기억이 한 사람의 인생뿐만 아니라 그 자리에 있던 모두를 참혹하게 만든 적이 있다. 몇 해 전부터 치매 증상을 보이던 외할머니의 병세가 최근 들어 꽤 깊어졌다는 소식을 듣고 찾아갔을 때였다. 외할머니는 나와 나의 아이가 집에 들어서자마자 버럭 소리를 지르며 우리를 밖으로 내몰았다. 당장 나가라는 외침에 나는 참담해진 마음을 가눌 길이 없었고, 아이는 영문도 모르고 내내 울었다. “외할머니, 나 국화 화분 사야 해. 꼭. 응?” 유년 시절, 부모님을 대신해서 학교에서 열린 시화전에 참석해 내 시와 함께 놓여 있던 국화 화분을 사주셨던 분이었고 몰래 다른 손자손녀들보다 먹을 거 하나 용돈 하나 더 챙겨주시던 그 외할머니가 나를 못 알아보는 것도 모자라 문전박대를 하였으니 마치 당신의 인생에서 내가 뚝 떨어져나간 것만 같아 마음이 쓰라렸다. 기억이 흐려진다는 것, 기억을 잃는다는 것, 기억이 또 다른 기억으로 왜곡될 수 있다는 것, 그 모든 과정을 인생의 말미에 이르러서 한꺼번에 겪고 있는 외할머니를 보며 나는 비로소 기억이란 것이 참 얇디얇은 종이 한 장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다. 쓰이고, 찢어지고, 불완전하게나마 다시 이어붙일 수 있는 그런 종이 한 장 말이다.

 

 

 

뇌의 수많은 신비를 푸는 열쇠, 해마

 

 

   1564년, 이탈리아의 한 의사였던 율리우스 카이사르 아란티우스는 인간의 뇌 속에서 소시지처럼 생긴 작은 물체를 잘라 내고 분리했다. 머리가 앞으로 굽어졌고, 꼬리는 꼬부라진 것 같은 것이 꼭 해마를 닮았다. 하지만 당시에는 이 부위가 정확히 어떤 기능을 하는지 얼마나 중요한지를 알지 못했다. 그런데 450 여 년이 흐른 뒤, 외과 의사 윌리엄 비처 스코빌이 뇌전증을 앓고 있는 헨리 몰레이슨을 치료하기 위해 뇌 양쪽에서 해마를 제거하는 잘못된 수술을 하게 되면서 헨리는 기억력 연구에서 가장 중요한 인물이 되고 말았다. 수술 후 헨리는 지난 2~3년의 일을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했고 그보다 더 심각한 건 짧은 순간 바로 기억할 수 있는 범위를 초과하면 그 무엇도 회상할 수 없었던 것이다. 비록 한 개인에게는 가혹한 일이 아닐 수 없으나 이때부터 해마의 연구가 활발해졌고 이 작은 해마 하나가 뇌의 수많은 신비를 풀기 위한 열쇠가 되었다.

 

 

 

바다에 사는 생물과 우리 뇌 사이의 거리는 멀지만, 바다의 해마와 뇌의 해마 사이에는 공통점이 몇 가지 있다. 새끼들이 바다에서 헤엄치는 데 위험이 없고 그들이 스스로 헤쳐 나갈 수 있을 때까지 배에 알을 품는 해마 수컷처럼, 뇌의 해마 역시 무언가를 품는다. 그건 바로 우리의 ‘기억’이다. 해마는 기억이 크고 강해져서 스스로 헤쳐 나갈 수 있을 때까지 지키고 꼭 붙잡아 둔다. 해마는 말하자면 기억을 위한 인큐베이터이다. / 10p

 

 

 

   해마는 일종의 ‘기억 저장소’의 역할을 한다. 물론 이것이 유일한 저장소는 아니다. 인생의 모든 경험이 뇌 속 깊이 있는 그렇게 작고 이상한 조직 안에 다 저장된다는 생각은 비현실적일 테니 말이다. 우리가 경험하는 것은 뇌 깊은 곳으로 사라지고 피질로 분산된다. 하지만 해마의 도움으로 다시 꺼내 올 수 있다. 즉, 해마는 기억이 성숙해져서 뇌의 피질에 고착될 때까지 붙잡고 있거나, 내면의 눈이 생각 속에서 경험을 다시 체험할 수 있도록 재구성하는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이처럼 <해마를 찾아서>는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바다 생물 해마와 꼭 닮은 우리 뇌 속의 해마가 어떤 역할을 하는지 살펴보는 것과 동시에 기억이란 무엇이며, 어떤 과정으로 우리의 경험이 기억으로 저장되고 또 기억을 효과적으로 불러낼 수 있는지 기억의 작동 방법에 대해 알아본다.

 

 

 

하나의 신경세포는 서로 다른 다수의 기억에 관여할 수 있다. 기억은 뇌 안의 뉴런들 사이의 회로이다. 무언가가 기억으로 저장된다는 것은 켜지거나 꺼지는, 뇌에서 신호를 점화하거나 안 하는 뉴런들의 새로운 연결들이 생겨나는 것이다. 그럼으로써 어떤 무늬가 생겨난다. / 46p

 

 

“기억이 아주 새로울 때에는 접근이 아주 쉽지요. 하나하나의 사건이 그대로 눈앞에 보이고, 아직도 해마에 존재하지요. 기억이 점점 낡아 가면서, 즉 옛일이 되면서, 조각조각으로 나뉘어 뇌의 다른 곳에 저장됩니다. 그것들을 다시 꺼내 오려면 재구성이 더 많이 필요해지지요. 그리고 개별 요소들을 제자리에 배치하여 하나의 전체를 만들 때 해마가 큰 역할을 합니다.” / 54p

 

 

 

   책은 여러 장에 걸쳐 인간의 기억에 대해 이해해볼 수 있는 다양한 실험과 사례들을 소개한다. 2장, ‘해마를 찾아 2월에 잠수하기’ 편에서는 잠수부들을 대상으로 한 실험을 통해 기억이 상황이나 장소, 그리고 그때그때의 정서에 따라 영향을 받는다는 점을 알려준다. 이 실험에서 잠수부들은 물속에서 외운 단어는 물속에서 훨씬 더 잘 기억해내는 것을 볼 수 있는데, 이는 기억이 동일한 환경이나 상황에서 정보를 꺼내기가 수월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해마는 사건과 경험을 서로 다르고 구별되는 것들로 인식할 수 있도록 섬세하게 설정되어 있다. 거기에서야 진주목걸이의 반짝이는 진주가 생겨난다. 기억에 저장된 다른 모든 정보와 마찬가지로, 고유한 사건에 대해 여러 번 이야기를 하는 것도 개인적인 경험을 안정적으로 저장하는 데 영향을 미친다. 그래야 나중에 얼마나 많이, 얼마나 자주 어떤 기억에 대해 생각하고 말했는지가 영향을 미친다. / 82p

 

 

“기억은 우선 아주 기본적인 생존 도구이지요. 우리의 정체성과 관련이 있는 이야기들을 할 때 기억을 사용합니다. 우리는 우리의 이야기들이며, 우리의 연애 이야기는 배우자 관계의 아주 중요한 부분이에요. 온갖 집안일이나 행사에서는 우리가 누구였는지 이야기를 해요. 나 자신에 대해 이야기하고, 상대방에 대해 이야기하고, 미시적인 차원, 국가적인 차원, 세계적인 차원에서 ‘우리’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하지만 우리의 기억은 단편적이고 괴상하고 창조적이지요! 기억은 창조도 하고 보존도 합니다. 새로운 이야기들을 저장하는 동시에 우리 인생을 작은 타임캡슐에 보관하니까요. 작가에게는 흥미로우면서 신뢰할 수 없는 도구입니다. 기억은 정확하지 않을 때가 많으니까요.” / 93p

 

 

 

 

 

 

   개인적으로 허위 기억을 다룬 4장과 기억 훈련에 관한 주제를 다룬 5장의 내용이 상당히 흥미롭다. 우리는 경찰의 강압수사 혹은 한때 은밀하게 자행되기도 했던 고문들이 죄 없던 용의자에게 허위 기억을 덧씌워 거짓 자백을 이끌어냈던 사례들을 종종 듣곤 한다. 노르웨이 경찰 수사관이며 현재는 인권 연구가인 아스비외른 라클레프 역시 죄 없는 용의자로부터 거짓 살인을 자백 받은 사건을 통해 인간의 기억이 얼마나 왜곡에 약하며 또 쉽게 변할 수 있는지를 직시했다. 덕분에 현재 그는 새로운 형태의 심문을 위한 가이드라인을 형성하는데 기여함으로써 죄 없는 사람들이 유죄 선고를 받는 일이 없도록 노력하고 있다. 책에서는 이런 일련의 과정을 통해 기억은 압력이 있으면 잘 작동하지 않는다는 점과 우리가 경험했다고 믿는 게 언제나 사실인 건 아니라는 점을 여실히 보여준다.

 

 

 

진짜 기억은 사실 상상의 한 형태, 상상한 재구성에 지나지 않는다. 허위 기억은 그 법칙이 아무리 비이성적으로 보이더라도 기억의 자연법칙을 이용할 뿐이다. 허위 기억은 그러니까 환상에서 시작하여 기억을 거쳐 어느 순간 현실로 인식된다. ‘사실’이라고 쓰인 딱지를 자신에게 갖다 붙이고, 박새 새끼를 둥지에서 밀어내고는 크고 뚱뚱한 뻐꾸기로 자라난다. / 151p

 

 

마치 기억이 귀엣말을 전달하는 놀이를 하는 것 같다. 범인에 대한 기억은 점차로 혐의자에 대한 기억으로 대치되었다. 여자가 기억을 제대로 못 했거나 트라우마 경험이 어떻게든 판단력을 흐리게 했던 게 아니다. 그저 기억이 원래 그렇게 작동할 뿐이다. 기억은 생물이고 유기적이며, 이미지를 살아나게 한다. 새로운 요소들이 들어오면 원래의 기억과 하나로 엮여 들어가는데, 어찌나 자연스러운지 그렇게 할 수 있는 건 우리의 상상력뿐이리라. / 188p

 

 

 

 

 

 

   5장에서는 대규모 택시 실험과 특별한 체스 게임을 통해 기억은 얼마나 좋아질 수 있는지 기억 훈련법에 관한 연구를 살펴본다. 무대는 런던의 도로 위. 거미줄처럼 얽힌 이 복잡한 도시에서는 머릿속으로 도시의 지형을 그리며 정확한 장소에 도착하기란 여간 쉬운 일이 아니다. 이를 위해 훈련받은 런던의 택시 운전사들의 뇌를 검사해본 결과, 해마의 뒤쪽이 훨씬 커져 있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이는 해마 뒤쪽에 뇌를 구성하는 물질이 더 많은 것을 알게 해주었고, 훈련이 해마를 변화시킬 수 있음을 증명한 실험이었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훈련을 통해 기억력이 무한히 상승할 수 있다면 참 좋으련만, 기억에는 망각이 뒤따른다. 우리 뇌 속에서 기억 흔적은 시간이 흐르면서 희미해지는데, 이는 기억을 서로 간의 연결점들의 형태로 붙잡아 두는 뉴런들이 점차 원래 상태로 돌아가는 것처럼 보인다. 완전히 못이 박힐 때까지 지식을 암기하고 유지하지 않는다면 말이다. 저자는 이에 대해 사실 이것은 현명한 일이라고 말한다. 그럼으로써 뇌에는 공간이 생기고 중요한 걸 구분해냄으로써 새로운 기억들을 저장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렇듯 6장에서는 기억의 본성 중 하나인 망각을 들여다보며 우리 시대가 마주하고 있는 큰 과제인 알츠하이머에 대해서도 함께 살펴본다.

 

 

 

오늘날 장소법은 마법으로 여겨지지 않는다. 그래도 장소법은 아주 유용한 기억법이며, 그 바탕이 되는 것은 두 가지 중요한 원칙이다. 하나는 원래 알고 있는 무엇, 즉 알려진 여행 경로를 사용한다는 점이고, 다른 하나는 눈에 확 들어오는 환상적인 이미지들을 사용하여 기억할 내용과 함께 연상되게 한다는 점이다. 원래 알고 있던 여행 경로를 사용하면 기억에서 공간을 절약할 수 있고, 기억할 것에 자연스러운 순서가 정해진다. / 231p

 

 

퍼트리샤 바워는 부모가 어린이와 경험에 대해 이야기하는 방식과 기억이 얼마나 잘 정착하는지 사이에 분명히 상관관계가 있음을 확인하였다. 부모가 어린이들에게 경험에 대해 반복해서 이야기하면 어린이들이 자기 자신과 관련된 이야기에 흡수되며, 구성적인 기억의 도움으로 기억에는 생명이 생긴다.

“아이들이 기억을 했으면 싶은 일들에 대해서는 아이들하고 이야기를 해야 해요.” 뇌 연구자인 크리스티네 발호브드의 말이다.

“아이들의 긍정적인 경험을 부모들이 강조할 때가 많아요.”

그렇게 해서 부모는 아이들이 바람직한 인생사를 얻는 데 기여할 수 있다. / 268p

 

 

 

   스발바르의 한 국제종자저장고에는 기후 변화와 핵전쟁, 한발과 전염병을 생각하여 지구의 미래를 대비하고자 전 세계의 씨앗들을 깊은 건물 속에 보관하고 있다고 한다. 씨앗 박스는 심판 날까지 아껴 두려고 만든 것은 아니고, 저축을 한 모든 나라가 지구 전체를 위해 계속해서 백업을 해 두려는 의도이다. 저자는 기억 역시 마찬가지라고 말한다. 기억은 사용되기 위한 것이지 박물관의 유물이 아니다. 토머스 서든도프 역시 기억 체계가 어떻게 작용하는가 하는 질문의 답은 바로 진화에 있다고 말한다. 생존에 관해서라면 과거는 미래를 예측하는 데 도움이 되는 한 유용할 뿐이다. 오류투성이이고 유연하지만 살아 있는 우리의 기억은 살아 있고 유연한 미래의 비전을 만드는 기능을 가지기 위해서가 아니었더라면 인간에게 생겨나지 않았을 것이라는 것이다. 기억을 미래의 비전과 계획, 꿈과 환상을 위한 전제 조건으로 보는 이러한 관점은 더 좋은 세상을 만들고 새로운 곳으로 나아가기 위해 우리가 기억을 어떻게 대하고 이용해야 할 것인지를 생각하게 한다.

 

 

 

   이처럼 <해마를 찾아서>는 다양한 관점과 사례를 통해 기억이 우리 뇌에서 어떻게 작동하고 어떠한 속성을 지녔는지를 알려주는 매우 특별한 과학교양서다. 과학에 관한 전문 지식이 없어도 충분히 흥미를 가질 수 있는 책이다. 덕분에 최근 치매가 깊어진 외할머니를 바라보며 기억의 허망함에 사로잡혔던 나에게 우리는 모두 완벽하지 않다는 것을, 그것이 당연하다는 것을 새삼 위로받을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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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재가 노래하는 곳
델리아 오언스 지음, 김선형 옮김 / 살림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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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려한 문장과 경이로운 이야기로 감탄을 자아내는 소설!

편견과 외로움, 인간과 생태학이라는 거대한 주제를 생생하게 담아낸 최고의 소설!

 

 

   사람들이 육지다운 육지를 찾아 헤맬 무렵, 악명 높은 습지만이 반란 선원, 조난자, 빚쟁이, 전쟁이나 세금 혹은 법을 피해 도망친 떨거지들을 그물처럼 건져내던 시절이 있었다. 말라리아에 목숨을 잃지도, 늪에 잡아먹히지도 않은 사람들은 다인종 다문화의 나무꾼 부족을 이루었다. 이백 년 후 습지로 도망친 노예 마룬이 그들과 합류했고, 땡전 한 푼 없이 막다른 골목에 몰린 해방 노예 또한 습지 여기저기 흩어져 살게 되었다. 습지는 그런 곳이었다. 인간이 살아가기에는 가혹한 환경이나 낙인이 찍힌 성스러운 땅답게 인간의 비밀을 지켜주었다. 원하는 사람이 없는 땅이니 누가 차지하든 아무도 개의치 않았다. 다만 그들을 향한 근거 없는 뜬소문과 더러운 험담들, 지독한 편견들이 진흙탕의 그것처럼 질척거렸다. 그래서 이따금씩 소란이 일어나고 어디선가 울부짖는 소리가 들려왔으며, 늪의 소굴이 죽음을 소리 없이 삼켜버리는 일도 일어나곤 했다.

 

 

 

위대하고 경이로운 자연을 향한 찬가 그리고 성장

 

 

   미국 남부의 노스캐롤라이나주 아우터뱅크스의 해안 습지. 끈적끈적한 숲으로 위장한 늪이 진흙 목구멍으로 미처 다 삼켜버리기 전에 시체 하나가 발견된다. 마을의 인기 스타 쿼터백이자 공식 미남이며 웨스턴 오토를 운영하는 마을 유지의 하나뿐인 외동아들 체이스, 바로 그가 말구유보다 처참한 몰골로 죽음을 맞았다. 사망 추정 시각은 1969년 10월 29일에서 30일로 넘어가는 자정에서 새벽 2시 사이, 낡은 소방 망루에서 떨어진 것이 분명하나 어쩐 일인지 현장 주변으로 발자국은커녕 이렇다 할 증거들조차 보이지 않는다. 심지어 체이스 앤드루스 본인의 발자국도. 타살로 의심되는 정황은 있으나 뚜렷한 증거는 없는 가운데, 그나마 가장 유력할 것으로 의심되는 한 명이 용의선상에 오른다. 바로 카야다.

 

 

 

   일명 ‘마시 걸’ 혹은 ‘늪지 쓰레기’라고 불리는 카야는 습지 속 낡은 판잣집에서 홀로 살고 있었다. 그녀가 여섯 살이었을 때 엄마는 아버지의 잦은 폭력과 고함을 견디다 못해 집을 나갔고 큰 오빠와 언니 둘도 도망가 버렸다. 그녀에게 새들의 노래와 별들의 이름과 억새풀을 헤치고 나룻배 젓는 법을 가르쳐준 조디 오빠마저 끝끝내 집을 떠나자, 카야는 사나흘씩 집을 비우곤 하는 아버지 때문에 혼자서 살아남는 법을 익혀야 했다. 종종 카야를 학교로 데려가기 위해 공무원들이 찾아왔지만, 그곳에서 놀림과 상처만 받고 돌아온 카야는 살면서 단 하루도 학교로 돌아가지 않았다. 왜가리를 관찰하고 조가비를 모으는 생활만으로도 배움은 충분했다. 습지가 곧 카야의 어머니가 되어주었기 때문이다. 간혹 아버지와의 관계가 부드러워져서 낚시도 배우고 거위 사냥철, 물고기의 습성, 구름과 파도의 이안류를 보고 날씨를 읽는 법 등을 익히기도 했다. 하지만 엄마가 보내온 편지를 아버지가 불태워버린 사건 이후로 그는 영영 카야에게 돌아오지 않았고 언젠가 다들 돌아올 거라는 나지막한 희망을 품은 채 카야는 홀로 남은 두려움과 외로움을 얼싸안아야 했다.

 

 

가끔 술에 취하지 않을 때 제이크는 학업을 마치고 모두를 위해 더 나은 삶을 영위하는 꿈을 꾸곤 했지만, 참호의 그림자는 그의 마음속에서 영영 걷히지 않았다. 한때 자신만만하고 핸섬하고 늘씬했던 제이크는 이제 초라하게 전락한 자신의 진짜 모습을 감당할 수 없어 술을 마셨다. 습지에서 싸움판을 벌이고 술을 마시고 욕을 퍼붓는 도망자들과 어울리는 건, 이제까지 제이크가 했던 그 어떤 일보다 쉬웠다. / 136p

 

 

 

 

 

 

   마치 전염병이라도 되는 것처럼 마을의 그 누구도 카야에게 도움의 손길을 내밀지 않았다. 낡은 선박 주유소의 흑인 가족인 점핑과 메들리, 한 때 오빠의 친구였던 테이트만이 그녀에게 다가왔다. 테이트는 보트를 타고 폭풍우가 오기 전에 집으로 가는 길을 인도해주었고, 닳아빠진 등걸에 그녀를 위한 깃털 선물을 놓아두고 가기도 했으며 그녀에게 글을 가르쳐주기도 했다. 여자가 되는 첫 고비를 순조롭게 지나칠 수 있게 도와주고 처음으로 암컷의 욕정을 일깨워준 첫사랑 같은 존재였다. 그가 있어서 그녀는 더 이상 외롭지 않았다. 또 테이트 덕분에 글을 읽게 된 카야는 그가 가져다준 책을 읽으며 자연의 섭리를 익히고 점차 생태학에 대한 방대한 지식을 습득해나가는 기쁨으로 충만해졌다.

 

 

 

“여기 한적한 데 나와 있는 것도 좋고, 네가 습지에 흥미를 갖는 것도 참 보기 좋아, 카야. 사람들은 낚시할 때 말고는 습지를 제대로 보지도 않거든. 매립해서 개발해야 할 황무지라고 생각하지. 바다 생물한테 습지가 필요하다는 것도 몰라. 자기네들이 그것 때문에 먹고 살면서.” / 152p

 

 

시처럼 온화한 알도 레오폴드의 단어들로부터 생명이 응축된 토양은 무엇보다 풍요로운 지구의 자산이라는 사실도 배웠다. 습지의 물을 빼면 그 너머 수십 킬로미터에 걸친 땅이 메마르고 물길 따라 살아가는 식물과 동물이 죽어버린다는 것도 알았다. 어떤 씨앗들은 바짝 마른 흙 속에서 잠을 자며 수십 년을 기다리다가 마침내 물이 다시 집에 돌아오면 흙을 뚫고 힘차게 솟아올라 얼굴을 드러낸다는 것도 알았다. 학교에서 배울 수 없는 자연의 경이와 실제 삶의 지식, 누구나 알아야 하는데, 버젓이 주위에 노출되어 있는데 씨앗처럼 은밀하게 숨어 있는 진실들. / 141p

 

 

 

 

 

 

   하지만 테이트가 대학에 가게 되면서 그들은 잠시 이별을 맞이해야 했다. 그는 다시 찾아올 것을 약속했지만, 아니 몰래 그녀를 찾아온 적도 있지만 재회할 수 없었고, 카야는 자기가 무슨 짓을 했기에 모두가 떠나버리는 걸까 이내 자책에 빠지고 만다. 그렇게 몸서리치는 외로움에 넋을 잃은 그녀 앞에 나타난 이가 있었으니 바로 체이스였다. 마을의 인기남이자 바람둥이인 그는 마을의 여자들과 다른 신비한 매력을 발산하는 카야에게 빠져들었다. 하지만 그 정체가 오로지 욕정에 의한 것이었음을 눈치 채지 못한 카야는 그가 다른 여자와 결혼하게 될 거라는 기사를 보았을 때에야 비로소 이 관계마저도 그녀를 온전히 채우지 못한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거절로 점철된 삶, 그녀에게 있어 사랑이란 차라리 씨도 뿌리지 않고 그냥 두는 게 나은 휴경지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이른다. 오로지 자연만이 그녀에게 한결같을 뿐.

 

 

 

왜 상처받은 사람들이, 아직도 피흘리고 있는 사람들이, 용서의 부담까지 짊어져야 하는 걸까? / 247p

 

 

그 후로 책을 아주 많이 읽었어. 대자연에, 저기 가재들이 노래하는 곳에서는 이렇게 잔인무도해 보이는 행위 덕분에 실제로 어미가 평생 키울 수 있는 새끼의 수를 늘리고, 힘들 때 새끼를 버리는 유전자가 다음 세대로 전해져. 그렇게 계속 끝없이 이어지는 거야. 인간도 그래. 지금 우리한테 가혹해 보이는 일 덕분에 늪에 살던 태초의 인간이 생존할 수 있었던 거라고. 그런 짓을 하지 않았다면 우리는 지금 여기 없을 거야. 아직도 우리는 그런 유전자와 본능을 갖고 있어서 특정한 상황이 닥치면 발현되지. 우리의 일부는 언제까지나 과거의 그 모습 그대로일 거야. 생존하기 위해 해야만 했던 일들, 까마득하게 오랜 옛날에도 말이야. / 295p

 

 

그녀가 아는 것은 거의 다 야생에서 배웠다. 아무도 나서지 않을 때 자연이 그녀를 기르고 가르치고 보호해주었다. 그 결과 그녀의 행동이 달라졌다면, 그 역시 삶의 근본적인 핵심이 기능한 탓이리라.

테이트의 헌신으로 카야도 결국 인간의 사랑이 습지 생물들의 엽기적인 짝짓기 경쟁보다 훌륭하다는 사실을 믿게 되었지만, 삶은 또한 태고의 생존본능이 복잡하게 꼬인 인간의 유전자 어딘가에 여전히 바람직하지 못한 행태로 남아 있다는 가르침을 주었다. / 448p

 

 

 

 

 

 

   훗날 용서를 구하며 찾아온 테이트의 도움으로, 습지에 대한 카야의 사랑이 반영된 책 한 권이 세상 밖으로 나온다. 이제 그녀는 후속작을 준비하면서 더 이상 점핑의 구호물품으로부터 도움을 받지 않아도 되었고, 법적으로 토지 소유권도 인정받았다. 아직 테이트의 마음을 받아들일 준비는 되지 않았지만, 그는 그녀의 영원한 첫사랑이기에 언젠가 다시 마음이 기울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하지만 이러한 기쁨도 잠시, 체이스의 목에 항상 걸려 있던 카야의 조개껍질 목걸이가 사건 당일 밤에 사라졌다는 아주 결정적인 증언이 나온다. 카야가 소방 망루로 향하는 것을 보았다는 목격자까지 잇달아 나타난다. 습지 생태학자로 명성을 쌓아나가려는 아주 결정적인 순간에 카야는 체이스 사망사건의 유력한 용의자가 되고 만 것이다.

 

 

 

   과연 체이스를 죽인 범인은 누구일까? 카야가 정말 그를 살인했을까? 소설은 이제 날카로운 법적 공방의 장면으로 접어들어 한 편의 추리소설처럼 수수께끼 같은 살인 사건의 전말을 향해 나아간다. 이렇듯 소설은 카야가 습지에서 태어나 자라고 성장하는 과정을 과거부터 쫓아가는 한편, 체이스 사망사건의 실마리를 찾아가는 과정을 교차 구성하여 극적 긴장감을 고조시킨다. 그런 가운데 마치 한 편의 신화처럼 카야를 보듬고 유일한 안식처가 되어준 야생생물과 습지의 생태를 놀랍도록 사실적이면서도 아름다운 시적 공간으로 활용한 저자의 통찰력은 곳곳에서 빛을 발한다. 과연 일흔에 가깝도록 평생 야생동물만을 연구해온 과학자의 첫 데뷔작이 맞는지 의심스러울 정도로 유려하고 경이로운 작품이다.

 

 

 

   소설을 읽는 내내 다음 장면이 기다려져서 도저히 책을 내려놓을 수 없었다. 이런 기분은 참 오랜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만큼 카야의 굴곡진 삶과 외로움이 주는 정서가 큰 울림을 주었기 때문일 것이다. 마치 우리 모두는 누구의 발길도 닿지 않을 것 같은 저 깊은 곳에 “가재가 노래하는 곳”을 품고 살아야 한다고 말하는 것 같다. 그래야 종종 찾아드는 외로움과 상처로부터 우리 스스로를 지킬 수 있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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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정과 낭만으로 가득한 스페인 여행에 관한 모든 것!

로컬의 분위기가 고스란히 느껴지는 태양의 나라 스페인 여행가이드북!

 

 

   <스페인 셀프트래블>의 저자는 신기하게도 많은 여행자들이 스페인 여행에서 가장 좋았던 것은 ‘여유’를 꼽았다고 말한다. 여행 자체가 팍팍한 일상에서 벗어나는 것이기에 여행은 여유와 떼어 놓은 수 없는 게 어쩌면 당연한 얘기지만, 유독 스페인을 다녀온 이들이 입을 모아 ‘여유’를 꼽는 이유는 무엇일까? 바로 한낮의 시에스타로 문이 닫힌 상점, 아직도 건축 중인 사그라다 파밀리아, 햇살이 내리쬐는 구엘 공원에서 가우디가 만든 벤치에 앉아 잠이 들었던 때라고. 곳곳에 굴곡진 역사를 고스란히 품고 있는 나라에 어쩐지 여유라는 단어가 어색하게 느껴지기도 했으나 마치 태양이 마법이라도 부린 듯 예술과 낭만을 간직한 작은 골목과 따뜻하고 친근한 사람들, 아티스트의 감성을 느낄 수 있는 마켓, 집시의 영혼을 간직한 플라멩코 등 알면 알수록 스페인은 그 어느 나라보다 마음으로 통하는 여행을 할 수 있을 것 같다.

 

 

 

 

 

 

예술 도시의 아름다움, 지중해의 활기와 여유 속으로

 

 

  나에게 스페인은 ‘가우디의 나라’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건축과 인테리어를 업으로 삼고 있는 남편 덕분에 평범하지 않은 특별한 건축물에 관심이 많은 우리 부부는 유독 아이디어와 영감을 주는 여행이 좋다. 그래서 위대한 건축가인 가우디의 감성과 혼이 고스란히 담긴 스페인으로의 여행은 단연 1순위 중에서도 1순위다. 덕분에 나는 TV 여행 프로그램에서 스페인이 등장하면 넋을 놓고 바라본다. <스페인 셀프트래블> 역시 이런 나의 기대와 설렘을 충족시키는 최적의 여행가이드북이다. 그간 여러 여행 가이드북을 읽으면서 한 가지 느낀 것이 있다면 저자의 필력에 따라 가이드북의 이미지도 천차만별이라는 점인데, <스페인 셀프트래블>은 단순히 여행 정보를 제공하는 것 이상으로 깊이 있는 정보와 한 편의 에세이를 읽듯 로컬의 감성까지 독자의 니즈를 다채롭게 충족시키기 때문이다. 책은 드넓은 영토와 장엄한 자연환경을 갖춘 스페인의 지정학적인 매력을 비롯하여 뛰어난 예술가를 많이 배출해낸 문화와 예술의 품격, 강렬한 축제의 희열과 풍부한 농수산물을 바탕으로 한 미식의 향연 등 삶이 곧 문화인 현지인들의 모습까지 고스란히 담고 있다. 생각 이상으로 다양한 문화가 공존하는 스페인이라 어디를 가서 무엇을 보아야 할지 막막했다면, 이 책을 통해 일단 태양의 마법에 푹 빠져보자.

 

 

 

   <스페인 셀프트래블>은 크게 바르셀로나와 바르셀로나 외의 주요 도시를 다룬다. 「Hola! Barcelona」에서는 스페인 제1의 관광 도시 바르셀로나의 주요 관광 지역과 콜로니아 구엘, 시체스, 몬세라트 등 바르셀로나 근교 지역까지 다룬다. 또한 「Hola! Barcelona」에서는 수도 마드리드를 비롯해 세고비아, 톨레도, 세비야 등 15개 주요 도시는 물론 이 지역과 인접한 근교 소도시까지 다양하게 다루고 있다. 본격적인 내용으로 들어가기에 앞서 하이라이트로 모아놓은 ‘베스트 오브 스페인 11’, ‘스페인 추천 여행 루트’, ‘한눈에 보는 스페인 역사’, 일년 내내 축제가 끊이지 않는 ‘축제의 나라 스페인’, ‘카페테리아, 바 그리고 레스타우란테’, 스페인의 음식을 즐길 수 있는 ‘바모스 아 타페아르!’, 스페인 프로 축구 리즈 ‘프리메라 리가’ 등 스페인에서 놓치면 후회할 볼거리를 한눈에 보여준다.

 

 

 

 

 

 

   에스파냐 제 1의 도시 바르셀로나. 바르셀로나는 로마 시대부터 중세까지 지중해 해상무역의 중심지였던 만큼 경제적 부흥과 함께 뛰어난 모데르니스모 건축들이 꽃을 피웠다. 오늘날 가우디라는 천재 건축가의 유산으로 스페인 최고의 관광도시가 됐지만 피카소와 미로 같은 현대미술의 거장들이 활동하여 곳곳에 많은 유산들을 남겼기에, 가우디의 건축 여행 말고도 바르셀로나에서 할 수 있는, 아니 해야 하는 일들은 많다. 저자는 바르셀로나로의 여행을 꿈꾼다면, 반드시 가우디 건축물 보기, 보케리아 시장 구경하기, 구시가지 산책하기, 바르셀로네타 해변에서 시간 보내기, 현지 음식 최대한 먹어 보기를 추천한다. 적어도 3박 4일 이상 길게는 일주일의 일정을 제안하며 이에 따른 최적화된 여행 코스를 소개하기도 한다. 이 외에도 계절의 변화에 따른 여행법이나 주요 여행 팁, 언어와 문화, 드넓은 도시 전경 및 다양한 쇼핑 루트도 함께 제공한다.

 

 

 

구엘 공원 (1900-1914)

구엘 공원은 눈으로만 볼 때가 아닌 직접 앉아 보고 만져 보며 느낄 때, 비로소 구엘 공원이 된다. 광장의 긴 벤치에 앉아 낮잠을 자거나 악사의 음악에 빠져 여유로운 시간을 보내자. 멀리 지중해가 보이는 것도 잠시 햇살은 자연스럽게 눈을 감게 만들 것이다. (중략)

정문 양옆의 두 건물은 마치 『헨젤과 그레텔』에 나오는 동화 속 집 같다. 이 사랑스러운 건물은 관리인의 집과 공원 관리 사무실의 용도로 만들어졌다. 정문에서 직진해 계단을 오르면 색색으로 모자이크된 용이 나오는데 용의 입에서는 물이 흘러나온다. 관광객들과 기념사진을 찍는 것이 용의 가장 큰 일과다. 계속해서 계단을 오르면 도리스식(파르테논 신전이나 아폴론 신전에서 볼 수 있는 건축양식) 신전이 나온다. 이 신전은 시장으로 만들어졌는데 천장의 모자이크가 특히 아름답다. 신전 위에는 그리스식 극장과 함께 광장이 있는데 그곳에 구불구불하고 긴 벤치가 있다. / 178p

 

 

 

 

 

 

   바르셀로나 여행은 람블라스 거리에서 시작된다고 한다. 해변이나 항구로 향할 때도, 바리 고딕과 라발을 오갈 때도 이 길을 지나야 하기 때문이다. 대성당 주변에 조금 남아 있는 허물어진 중세의 성벽을 돌아, 왕의 광장으로 가서 탐험가 콜럼버스의 흔적을 더듬을 수 있는 바리 고딕으로의 시간 여행도 인상적이다. 70여 국의 다양한 이민자가 살고 있어 바르셀로나와는 사뭇 다른 풍경이 생경하게 펼쳐져있는 라발&산 안토니, 바르셀로나의 로컬 감성과 아티스트에게 무한한 영감을 주는 보른, 도시 전체가 거대한 가우디 박물관과도 같은 엑삼플레, 현지인들의 풍경을 제대로 느낄 수 있는 작은 로컬 동네 그라시아, 계절에 따라 다른 해변 풍경을 볼 수 있는 바르셀로네타, 우리나라 마라톤 선수 황영조의 기념물이 세워져 있는 몬주익&포블레 섹 등 바르셀로나의 매력과 정취를 고스란히 담은 책을 읽다보면 어느 새 내가 이곳에 와있는 듯한 기분이 든다.

 

 

 

 

 

 

   책은 지역 소개를 다룬 주요 내용 외에도 로컬 음악과 플라멩코의 라이브를 즐길 수 있는 클럽도 함께 소개한다. ‘바(Bar)’ 문화가 그 어느 나라보다 발달된 스페인인만큼 레스토랑 외에도 바와 카페, 베이커리 등 특색 있는 미식 문화를 즐길 수 있는 추천지도 흥미롭다. 또 호스텔, 오스탈, 호텔, 아파트 등 스페인에는 다양한 숙소가 전 지역에 마련되어 있으니 책에서 소개하는 정보를 따라 안전하고 편안한 장소를 찾는데 도움을 얻어 보자. 끝으로 미리 알아두면 좋은 스페인에 관한 일반 정보와 연중행사, 여행 준비에 필수인 입출국 정보, 교통, 여행 준비 등과 같은 가이드북에 있어서 필수 정보들도 상세히 다루고 있으니 유용할 것이다.

 

 

 

 

 

 

   책을 읽으며 가우디의 건축물들을 다 둘러보는 것은 물론이고, 얼마 전에 드라마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의 배경으로 나온 그라나다 거리를 거니는 모습을 몇 번이고 상상해보았다. 그래서 언젠가 아이들을 키우고 장시간 떨어져 있어도 괜찮을 때가 되면 꼭 남편과 단둘이 스페인으로 가고 싶다. 태양의 마법을 간직한, 열정과 낭만이 있는 그곳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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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태어나도 엄마 딸 다산책방 청소년문학 3
스즈키 루리카 지음, 이소담 옮김 / 놀(다산북스) / 2019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14세의 시선에서 바라본 삶에 대한 희망과 눈부신 통찰력!

한 아이가 자라는 데 필요한 건 무엇인지 부모가 꼭 읽어봐야 할 소설!

 

 

   5살이 된 아들이 어린이집에서 하원을 하며 오늘 짝꿍이 바뀌었다는 말을 꺼냈다. 달마다 짝꿍을 바꾸니 반 친구들과 다양하게 어울릴 수 있어서 참 좋겠다고 대답했다. 그러자 아들이 “그치요? 참 좋겠지요?” 라고 하기에 “응. 우리 아들, 친구가 많아서 참 좋겠네?” 한 번 더 말해주니 “엄마, 엄마한테는 짝꿍인 내가 있잖아요.” 하고 말해서 깜짝 놀랐다. 때로는 엄마랑 안 논다고 투정도 부리지만 엄마 곁에는 늘 자신이 있다고 어른스럽게 얘기해주는 아이의 말에 울컥 눈물이 밀려나왔다. 그래, 엄마는 다시 태어나도 우리 아들 엄마 할 거야, 라고 말해주고 싶었다. 『다시 태어나도 엄마 딸』의 다나카와 엄마처럼.

 

 

 

 

 

 

삶을 살게 하는 가치에 대하여

 

 

   이렇다 할 친척도, 남편도 없지만 힘든 막노동을 담담하게 해내면서 늘 긍정적인 마음으로 어린 딸을 키워나가는 엄마 다나카 마치코, 그런 엄마의 마음을 누구보다도 이해하며 가난한 사정에도 의연하게 성장해가는 딸 다나카 하나미. 이름에서 알 수 있다시피 이들은 모녀 가정을 이루며 살아가고 있다. 어느 날, 하나미는 친구들의 아빠를 보며 자신의 아빠는 어떤 사람일지 매우 궁금해졌다. 그도 그럴 것이 엄마와 하나미 사이에서 아빠 얘기는 자연스럽게 하면 안 되는 것으로 여겨졌고, 엄마가 워낙 얘기하기 싫어하니까 폭력을 쓰거나 술주정뱅이거나 도박을 좋아하는 구제 불능의 인간은 아닐까 짐작하기만 했다. 어쩌면 범죄자일지도.

 

 

 

   꽤 어른스러운 구석이 있는 하나미였지만 우연한 기회에 친구와 친구의 아빠를 만나 함께 시간을 보내면서 아빠의 존재를 그리워하기도 하고, 엄마에게 들어온 재혼 자리가 거절되었다는 소식에 그 이유가 자신 때문일까 싶어 아동 보호 시설에 들어가려는 고민까지 하기도 한다. 하지만 하나미는 겉으로 표현하지는 않아도 아빠의 빈자리를 느끼게 하지 않으려 최선을 다하는 엄마의 마음을 통해, 담임 선생님과 이웃인 겐토 오빠의 말을 통해 자신에게 진짜 소중한 게 무엇인지를 배워간다. 때로 가난 때문에 사립 중학교로의 진급은 엄두도 못내고, 친한 친구들과 드리밍랜드를 갈 형편이 안 되어 자판기 앞에 떨어진 동전을 주으러 다니기도 하며, 저렴한 물건을 파는 슈퍼마켓에서도 반값 스티커가 붙은 식료품을 사야 하는 처지였지만 살아간다는 건 결코 높은 학력이나 부에 있는 것이 아님을 깨달아간다.

 

 

“영국에는 ‘장식장 안의 해골’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어느 가정에나 비밀로 해두고 싶은 것이 있다는 의미지요.”

우리 집 장식장의 해골은 아빠였을까? / 19p

 

 

예전에 엄마랑 만약에 다시 태어난다면 뭐가 좋을지 얘기한 적이 있다. 부자가 좋다고 할 줄 알았는데 뜻밖에도 벌레가 좋겠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먹고 배설하고 그냥 사는 거야. 삶의 보람이니 의무니 과거니 장래니 일이니 돈이니 하는 것과 관계없이 단순하게 살다가 죽는 게 좋겠어.”

나는 하나도 안 좋을 것 같지만 벌레든 동물이든 괜찮으니까 다시 태어나도 엄마의 딸이었으면 좋겠다. / 23p

 

 

“사람은 누구나 남에게 말하고 싶지 않은 것이 있습니다. 그 사람이 하기 싫어하는 말을 억지로 끌어내는 것은 좋지 않아요. 진실을 전부 아는 것이 꼭 좋다고 할 수도 없고 그럴 필요도 없습니다. 그리고 알아버리면 알기 전으로 돌아가지 못하니까요.” / 66p

 

 

 

 

 

 

   하나미가 가난하지만 그것이 내 삶을 갉아먹는 일이 아니라는 것을, 또 그것이 부끄러운 일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던 건 역시 엄마의 역할이 컸기 때문일 것이다. 공사 현장에서 남자들과 섞여 일하기가 쉽지 않은 일인데, 딸을 위해 힘든 내색 없이 일을 하고 억척스럽게 가정을 일구어나가는 그녀의 모습은 이미 그 자체로 딸에겐 현재와 미래를 살아가게 하는 힘이 된다. 게다가 엄마가 원하는 대로 진학을 하지 못해 삶을 포기할까 망설이는 하나미의 친구 신야에게 ‘슬플 때는 배가 고프면 더 슬퍼져. 괴로워지지. 그럴 때는 밥을 먹어. 혹시 죽어버리고 싶을 만큼 슬픈 일이 생기면 일단 밥을 먹으렴. 한 끼를 먹었으면 그 한 끼만큼 살아. 또 배가 고파지만 또 한 끼를 먹고 그 한 끼만큼 사는 거야. 그렇게 어떻게든 견디면서 삶을 이어가는 거야’ 라고 말할 수 있는 그녀의 인생관은 끊임없이 하나미를 비추었을 것이다. 살아간다는 건 비루한 일들의 연속이지만, 인생은 그렇게 견뎌내는 자의 것이라는 가르침을 내내 딸에게 전하고 있었던 것이다.

 

 

 

“배가 고파서 죽는 거랑 은행을 먹고 죽는 것 중에 어느 게 좋니? 엄마는 배고파서 죽는 건 싫어.”

다른 음식을 먹는 선택지는 왜 없는데? 아무튼 엄마에게는 늘 ‘먹는 것’이 이긴다. 그래서 우리 모녀는 열심히 은행을 줍는다. 공원에서, 가로수 길에서, 신사에서, 모녀가 은행을 줍는 광경은 꽤나 서정적이어서 마치 한 계절의 풍경처럼 사랑스럽게 보일지 모르지만, 우리에게 은행은 그런 달콤한 것이 아니라 그야말로 살기 위해 구하는 절박한 식량이다. / 187p

 

 

 

   한 아이를 키우려면 온 마을이 필요하다는 말이 있지 않던가. 비록 모녀 가정이기는 하나 어디 하나 구김 없이, 타인의 놀림에도 의연하게, 때로는 놀림을 당하는 아이의 편에 서주기도 하는 하나미를 보면서 역시 아이를 단단하게 만드는 것은 엄마뿐만 아니라 담임인 기도 선생님이나 겐토 같은 오빠가 있었기에 가능한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덕분에 가난해도 늘 마음에 여유가 있고, 유쾌한 희망을 품고 사는 이 어린 소녀를 보며 우리 모두는 미래를 향한 기분 좋은 희망을 엿본다.

 

 

 

그러나 나는 그 의견에 순순히 고개를 끄덕이지 못한다. 기도 선생님이 사회 시간에 이렇게 말했다.

“신문도 때로는 틀리기도 합니다. 전부 곧이곧대로 믿으면 안 돼요. 신문을 의심하는 시선을 갖추고 자신만의 생각을 일궈나가는 것이 중요합니다.” / 85p

 

 

“사형수도 사형 집행하는 날 아침이나 집행실로 향하는 복도를 걸을 때, 그리고 전기의자에 앉는 순간까지 사형을 중단하라는 전화가 올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대. 다른 사람이 보기에 아무리 절망적이고 최악의 상황이라도 그 사람 나름의 희망이 있으니까 살아가는 것 아닐까? 비록 바늘 끝처럼 보잘것없는 희망이라도, 희미한 빛이라도, 환상이라도, 그게 있으면 어떻게든 매달려서 살 수 있어.” / 151p

 

 

 

 

 

 

   책을 덮으며 이 소설이 정말 14세의 나이에 쓰인 것이 맞는지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2003년에 태어나 2019년 현재 만 열다섯 살이고 일본의 출판사 쇼가 쿠칸에서 개최하는 ‘12세 문학상’ 대상을 무려 3년 연속 수상했다고 하니 그 이력도 참 놀랍다. 문학상의 도전한 동기가 상금을 받아 좋아하는 만화 잡지를 사고 싶어서라고 한 것을 보면 분명 또래 아이다운 귀여운 구석이 엿보이지만, 풍부한 상상력과 솔직함으로 담담하게 써내려간 소녀의 필력 앞에선 새삼 나를 반성하게 된다. 자칫 신파에 가까운 낡은 이야기가 아닐까했던 우려했던 게 미안할 정도니 말이다.

 

 

 

 

 

나 역시 초등학생 때부터 글쓰는 것을 좋아해서 소설을 지어 친구들에게 돌려 보게도 하고, 대학생 때까지 문학 전공을 했던 문학도였지만 어느 새부터 글쓰는 일을 놓고 지내게 되었다. 돈을 벌고 일을 해야 한다는 이유로 말이다. 문득 그것이 굉장히 부끄럽기도 하고 서글퍼지기도 한다. 그래서 이 책의 저자인 스즈키 루리카에게는 계속해서 하고 싶은 글을 쓰라고, 너를 응원한다고 얘기해주고 싶다. 또 이제는 엄마의 삶을 살고 있는 내가 과연 하나미의 엄마 같은 철학을 내 아이에게도 보여줄 수 있을까 다시 한번 되새겨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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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한다고 상처를 허락하지 마라 - 나를 아프게 하는 것들에 단호해지는 심리 수업
배르벨 바르데츠키 지음, 한윤진 옮김 / 다산초당(다산북스)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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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이상 나를 아프게 하는 사랑은 이제 그만!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허락되었던 관계의 상처로부터 벗어나기 위한 심리 수업!

 

 

   얼마 전에 베트남에서 폭력적인 남자친구에게 이별을 통보했다가 얼굴에 염산 테러를 당하고 만 여성의 충격적인 소식을 들은 적이 있다. 여성이 외출 할 때마다 극심한 질투심을 보이던 남자는 폭력을 하기 시작했고, 시간이 갈수록 잦아지는 폭력을 견디지 못한 여성은 이별을 고했다. 이전부터 이별을 직감한 남자는 몸속에 염산이 든 병을 하나 숨기고 있었다. 그리고 헤어지자는 말을 들은 순간 그대로 여성에게 염산을 투척했다. 비록 극단적인 사례이기는 하지만 우리는 심심치 않게 데이트 폭력이나 이별로 인한 파괴적인 결말들을 접하곤 한다. 사실 우리는 ‘사랑한다’는 이유로 너무도 많은 것을 허락한다. 사랑하니까 내가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있는지 또 누구를 만나는지 일일이 밝혀야 하고, 사랑하니까 바빠서 연락이 되지 않아도 이해해줘야 하고, 사랑하니까 원치 않는 스킨십까지도 감내하려 한다.

 

 

 

   독일을 대표하는 심리학자이자 심리 상담가인 배르벨 바르데츠키는 자신의 저서 <사랑한다고 상처를 허락하지 마라>를 통해 이런 관계는 상처만 남을 뿐이라고 말한다. 생각보다 많은 여성들이 언어폭력, 물리적인 폭행을 경험한다. 문제는 이런 경험을 한 여성들 중에는 자신이 망가질 때까지 수년간 심하게는 십여 년이 넘도록 관계를 유지하는 사람도 있다는 것이다. 헤어지려고 할 때마다 돌아오는 파트너의 위협이 그들의 발목을 붙잡기도 하지만, 예전처럼 사이가 다시 좋아질 수 있을 거라는 희망도 관계를 지속하는데 한몫하기 때문이다. 이때 누가 옳고 그른지를 논하고 잘잘못을 가려서 비난하는 것은 중요치 않다. 서로를 망가뜨리는 이 관계의 원인이 무엇인지 파악하고, 애써 그 상황을 부정하는데 시간을 허비하는 대신 부정적인 신호를 일찍 알아차려 보다 이성적인 생각과 행동을 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처럼 책은 40년간 풍부한 상담 경험을 바탕으로 상처뿐인 인간관계의 본질을 들여다보고, 불완전한 관계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가장 현실적인 조언들을 권한다. 무엇보다 자신이 모든 것을 스스로 결정하는 자유롭고 용기 있는 삶을 되찾을 수 있기를 응원한다.

 

 

 

이제껏 사랑이라고 믿었던 그 모든 것들이 진짜 사랑이 아니었다?

 

 

   소냐와 프랑크라는 한 연인이 있다. 소냐는 전남편인 헤르베르트와의 결혼 생활이 불행했다. 그는 출장이 잦았던 터라 집안일과 두 아이의 양육을 전적으로 소냐에게 맡겼고, 대화조차 자주 나누지 않았다. 그는 돈을 벌어오는 것으로 자기가 할 일을 다 했다고 믿는 사람이었으며 소냐의 감정과 가치관은 전혀 고려하지 않고 “다른 집도 다 이렇게 살아!”라는 말로 상황을 대처할 뿐이었다. 결국 그녀는 이혼을 결심하는데, 때마침 온라인 매칭 사이트를 통해 프랑크라는 남자를 만나게 된다. 프랑크는 헤르베르트와는 달리 부드러운 목소리, 친근하면서 다정한 말투, 매너 있는 태도로 그녀에게 다가왔고 달콤한 찬사와 스킨십도 아낌이 없다. 그녀는 마침내 사랑이 가득하고 조화로우며 성적으로도 정열적인 관계를 이룰 수 있는 이상형을 만났다고 생각한다.

 

 

 

 

 

 

   소냐는 프랑크와 함께 살 꿈에 푹 빠져 남편의 집을 나와 그와 함께 살 집을 구한다. 앞으로 무슨 일이 생길지 단 한 번도 부정적인 시각에서 고민해보지 않은 채 거침없는 행보를 이어간다. 그만큼 절박한 상태였고, 행복한 삶을 꿈꾸는 마음이 너무나 강렬했다. 심지어 그녀는 아직 프랑크의 실체를 잘 알지 못하면서도 이미 그를 ‘내 인생의 남자’라고 불렀다. 하지만 머지않아 그들의 관계는 삐걱거리기 시작한다. 소냐가 자신의 딸과 아들과 함께 있는 시간 동안 소외감을 느끼고, 자신이 아닌 다른 남자와 대화만 나눠도 질투를 하며 그녀가 직장을 구하지 않고 오로지 집에서 자신만을 바라보기를 원한다. 심지어 그는 아내가 있음에도 법적으로 갈라서는 것을 계속해서 미루고, 커플 매칭 광고를 통해 다른 이성과의 만남까지 나누는 등의 행동을 하면서 말이다. 이때마다 소냐와 프랑크는 서로를 헐뜯고 다투지만 소냐는 무려 7년이나 이 고통스러운 관계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금방이라도 헤어질 듯 하면서도 돌아서면 아이처럼 엉엉 울며 그녀에게 매달리고 한결같이 용서를 구하는 프랑크의 태도 때문이다.

 

 

 

소냐가 프랑크와의 관계를 끊지 못하는 이유는 여러 가지다.

- 사랑받고 싶어서

- 혼자가 되기 두려워서

- 유년 시절부터 이어진 외로움을 채우려고

- 관심받고 싶어서

- 존중받고 싶다는 희망을 품고

- 또다시 남녀 관계에서 실패했다는 수치심을 느끼고 싶지 않아서 / 143p

 

 

프랑크와 소냐의 행동에서 우리는 시계추처럼 이별과 재결합 사이를 이리저리 오가는 관계를 떠올린다. 이들은 안정적이면서도 불안정한 관계다. 이런 관계에 놓인 사람은 대부분 누군가와 관계 맺기를 힘들어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누군가가 옆에 없으면 살지 못한다. 그렇기에 두 사람 중 어느 누구도 부정적인 사고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 192p

 

 

 

 

 

 

   뭐지? 왜 소냐는 프랑크와 헤어지기를 숱하게 결심하면서도 다시 그를 받아들이고 또 다시 만날 수 있는 여지를 주는 거지? 그녀의 단호하지 못한 행동에 나는 이해를 할 수 없었다. 아마 이 책을 읽는 독자라면 누구나 그렇게 생각할 것이다. 책의 저자인 배르벨 바르데츠키는 이에 대한 원인을 살펴보기 위해 두 사람의 먼 과거를 되짚어본다. 소냐는 어린 나이에 엄마를 잃고 자신이 가족과 집을 보살펴야 한다는 책임감을 일찍이 가져야 했다. 당시 소냐는 보살핌을 받아야 하는 나이였지만 오히려 아빠를 챙겨야 했다. 누군가를 보살피기 위해 정작 자신의 욕구는 잠시 접어두거나 아예 부정하는 인생이 그렇게 시작됐다. 어른과 아이의 역할이 역전되면서 소냐는 더 이상 아이로 남을 수 없었기에 그만큼 빨리 어른이 됐다. 천천히 자라며 무언가를 느끼고 깨닫는 데 시간을 써야 할 시기에 주어진 역할과 책임을 다하는 데만 집중했다. 그렇게 하는 것만이 자신의 가치를 높이는 유일한 방법이자 자아를 구축하는 방식이 되어버렸다. 한편 프랑크는 자신을 돌봐줄 누군가가 필요했다. 어릴 때 혼자 방치됐거나 버려진 경험이 있어 트라우마가 생겼고, 결국 그 연령대로 자아 상태가 형성되어 다 큰 성인이 된 다음에도 헤어지거나 남겨지는 상황을 못 견디게 된 것이다.

 

 

 

현대 심리학은 나르시시즘을 어린 시절에 받은 상처를 극복하려는 시도로 본다. 유년 시절 겪은 상처를 치유하는 과정에서 자기애적 성향이 커지기 때문이다. 상처받은 자존감은 무의식적으로 두 가지 방어 수단을 활용한다. 하나는 악습, 과보호, 수용이고 다른 하나는 애정과 공감의 부족 그리고 거부다. 여기서 알아두어야 할 건 아이를 소유물처럼 대하는 것만큼이나 방치하는 것도 아이의 자존감에 나쁜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이다. / 276p

 

 

 

   책은 소냐와 프랑크의 과거와 현재를 통해 그들을 나르시시스트로 규정한다. 그렇다면 그들을 나르시시스트라고 하는 근거는 과연 무엇일까? 나르시시스트는 대체로 상대가 항상 내 말에 동의하기를 바란다. 또 언제나 자신이 옳다고 믿는다. 항상 자신의 욕구와 관심사만 생각하며 모든 일에서 자신을 최우선으로 둔다. 지나치게 질투를 하는 것은 물론, 상대가 뭘 하든 항상 잘못된 행동이라고 질책한다. 그리고 상대에게 영향력을 행사하고 싶어 하며, 상대가 독립적인 사람이 되는 걸 방지하기 위해 가능한 한 통제하려 한다. 뿐만 아니라 나르시시즘 관계에 빠진 사람들은 상대를 꿈에 그리던 사람이라고 착각하고, 성적 측면을 강조하거나 아예 섹스와 사랑을 혼동하기도 하며 경고 신호가 발동해도 그걸 제대로 보려 하지 않는다. 습관처럼 “당신 잘못이야”란 말을 반복하고 옛 애인에 대한 비난과 경멸을 서슴없이 표현하며 자신이 원하는 게 무엇인지 모른 채 상대가 원하는 방식에 맞추려고 한다. 또 자신의 말이 진리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이는 두 사람 사이의 대화를 차단하고 상대가 원하는 대로 따르지 않으면 몹시 예민해지고 분노한다.

 

 

 

 

 

 

   저자는 이 책을 읽고 자신이 나르시시즘에 빠진 관계를 맺고 있다고 깨달았다면 이제는 이별을 준비할 차례라고 말한다. 상대로부터 경제적, 정서적으로 벗어날 수 있는 다양하고 현실적인 조언과 함께 상처받은 마음의 치료를 위해 꼭 심리치료를 받아볼 것을 권한다. 심리 치료를 통해 자신의 의미를 찾는 법과 더불어 관계의 근본적인 문제가 꼭 자신에게만 있는 것이 아니라 그중 상당수가 연인의 행동에 있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맥락을 제대로 납득하는 순간 자신을 괴롭히던 죄책감에서 해방될 수 있고, 근본적인 원인이었던 트라우마와 대인 관계 장애를 치료할 기회가 생길 수 있다. 그것을 계기로 자신도 모르게 내면에 잠재해 있던 나르시시즘을 자주성과 높은 자존감으로 대체할 수도 있다.

 

 

 

서로에게 도움이 되고 활기 넘치는 관계는 각자의 다름을 인정하고 갈등을 두려워하지 않을 때 가능한 것이다. 그런 연인은 공통 관심사를 끊임없이 공유하고 비슷한 성향을 함께 찾는다. 다시 말해 굳이 무언가를 포기하지 않고 두 사람 사이에 생기는 긴장감을 그대로 받아들인다. 상대를 온전히 받아들이는 것이다. / 275p

 

 

 

   책을 갈무리하며 저자는 ‘나는 아무 감정이나 던져버려도 되는 쓰레기통이 아니다’, ‘나는 존중받아 마땅한 사람이다’, ‘무엇보다 내가 우선이다’, ‘실패한 관계는 빨리 인정하기’, ‘전문가에게는 연인의 속내까지 설명하기’, ‘새 인생을 제대로 준비하기’를 통해 우리가 무엇보다 자유로운 삶을 살 수 있기를 응원한다. 돌이켜보니 나 역시 ‘너가 원하는 대로’ 라는 말을 습관적으로 하며 내가 원하는 것보다 상대가 원하는 것을 더 생각했던 것 같다. 덕분에 이 책을 읽으며 그간 사랑이란 이름으로 나를 아프게 했던 것들이 무엇이었는지 되돌아보면서 나의 의지를 세우고 용기를 낼 수 있는 삶을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지금 어딘가에서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상처받고 있는 이들에게, 새로운 사랑을 찾고 있는 이들에게 꼭 한번 이 책을 읽어보고 자신을 제대로 들여다보는 연습을 할 수 있기를 추천한다. 보다 건강하고 나다운 삶을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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