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의 공부지능 - 3세부터 13세 부모가 꼭 알아야 할 공부 잘하는 머리의 비밀
민성원 지음 / 다산지식하우스(다산북스) / 201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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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 잘하는 아이로 키우고 싶은 부모들을 위한 공부지능 개발 실천서!

우리 아이의 잠재된 공부지능을 끌어내는 자녀교육 필독서! 

 

 

   몇 주 전에 SBS에서 방영한 '사교육의 딜레마'편을 시청한 적이 있다. 사교육을 시켜야 하는 것인지, 시킨다면 구체적으로 언제부터 얼마의 비용으로 최고의 공부 효율을 이끌 수 있을 건인지를 고민하고 있는 대한민국의 많은 부모들의 입장을 살펴볼 수 있던 기획이었다. 많은 부모들이 머릿속으로는 사교육 하면 부정적인 감정이 앞서지만 우리 아이만 뒤쳐지는 것은 아닌지, 뒤늦게야 진작 시키지 않은 걸 후회하게 되는 것은 아닌지 끊임없이 불안해하며 사교육 시장을 배회할 수밖에 없는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그 와중에도 사교육 없이 아이를 명문대에 보내 뚜렷한 교육 철학으로 소신껏 아이들을 키워낸 사례도 있어 눈에 띈다. 이들은 아이들에게 공부를 하라고 강요하지 않고 아이 스스로의 삶을 선택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사교육을 시키지 않거나 시키더라도 필요에 따라 제한적으로 하고 있을 뿐이었다. 여기에는 부모 나름의 교육 소신과 객관적 지식이 선행되어 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막연히 공부하지 말라는 것이 아니라 아이의 지능과 재능을 끌어올릴 수 있는 역할은 '가정환경'과 '부모의 역할'에 달려 있음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명확하게 실천하고 있었던 것이다.

 

 

 

   나 역시 과도한 사교육 시장에 우리 아이를 들이밀고 싶지 않고, 그럴 형편도 되지 않는 까닭에 이왕이면 효율적으로 교육시스템을 활용할 수 있는 방법과 부모인 내가 먼저 지도해줄 수 있도록 효과적인 공부 방법에 대해 알아두는 게 현명하겠다는 판단이 들었다. 때문에 아이가 세 살이 될 무렵부터 공부학습법 관련된 책들을 통해 다양한 의견과 도움을 구해보고자 하는 시도들을 하게 되었다. 마침 여러 방송 매체에서 교육전문가로 정평이 난 민성원의 <아이의 공부지능>이 유독 관심을 끌었다. 전작인 <민성원의 공부원리 패턴학습법>이 초등학생부터 고등학생이 이르기까지 최적의 학습 전략과 공부 효율을 이끄는 다양한 방법들에 대해 소개한다면, <아이의 공부지능>은 공부지능을 이끄는 뇌의 비밀과 어떻게 하면 공부 잘하는 아이로 이끌 수 있을 것인지 보다 원리적인 차원에 집중한 자녀교육서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책의 제목이자 핵심이라 할 수 있는 '공부지능'이란 과연 무엇일까. 이는 지금까지 우리가 흔히 들어왔던 '공부'의 개념과 학업성취나 성공을 예언하는 지수인 IQ를 융합한 새로운 개념이다. 즉, IQ가 낮은 데도 공부를 잘 하는 아이들을 보면 IQ 외에 공부를 잘 하는데 영향을 미치는 다른 무언가가 있지 않을까 생각해보게 되는데, 이것이 공부지능에서 비롯된다는 것이다. 저자는 공부지능을 가리켜 IQ, EQ, 집중력, 창의력을 아우르는 것으로 이것이 고루 발달한 아이들이 공부를 잘 할 것으로 기대되며 부모의 관심과 노력이 만든 공부지능은 타고난 머리를 뛰어넘을 것이라 말한다. 각 요소들은 유전적 요인만큼이나 환경적 요인만으로도 얼마든지 좌우될 수 있다는 것을 구체적인 연구와 사례로 설명하며 부모의 역할이 공부지능 개발에 있어서 매우 중요함을 시사한다.

 

 

 

 

 

 

생체연령이 아닌 정신연령에 맞는 적기의 조기교육

 

 

   부모의 역할이라고 하니, 우리 아이의 나이를 고려했을 때 가장 알맞은 교육과 이에 해당하는 교육 방법이 무엇일까 궁금해진다. 너무 이른 조기교육도, 그렇다고 뒤쳐지는 것도 원치 않는 부모의 입장에서는 이와 같은 것이 가장 고민되기 마련이다. 이에 대해 저자는 초등학교 2학년이라고 해서 똑같은 교육을 시키는 것은 맞지 않다고 말한다. 다시 말해 신체연령이 초등학교 2학년이지만 정신연령이 초등학교 6학년이라면 6학년 수준의 공부를 하는 것이 맞다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정신연령에 따른 '적기'의 교육이다. 능력은 아무 때나 지속적으로 발전하는 것이 아니고, 각각의 능력마다 적은 노력으로 최대의 효과를 얻을 수 있는 적기가 있다. 흔히들 조기 교육을 많이 시키는데, 적기이면서 조기일 때에야 교육의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다. 이를 테면 외국어 교육의 경우는 정신연령이 8세가 되기 이전에 배우면 좀 더 쉽게 익힐 수 있고, 초등 6년은 공부 잘하는 아이로 만드는 최적의 시기로 최소의 노력으로 최대의 효과를 얻을 수 있는 때이다. 이때는 어떤 지능이 강점이고 약점이라고 섣불리 단정 짓지 말고 '공부는 즐거운 일'이란 인식을 심어주며 다양한 영역에서 개발 가능성을 열어주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지적한다.

 

 

 

아이들의 공부지능을 효과적으로 개발할 수 있는 적기에는 어느 한두 가지 두각을 나타내는 능력에만 집중해서는 곤란하다. 여러 공부지능 중 강점 지능은 더욱 강화하고, 약점 지능은 보완하려는 노력을 병행해 각 부분별 지능 간에 균형을 잡는 것이 중요하다. 공부지능 개발 적기는 충분히 긴 시간이므로 당장 결과가 나오지 않는다고 해서 조급하게 생각할 필요가 없다. 이 시기에는 오히려 IQ, EQ, 집중력, 창의력 이 4가지 영영역을 골고루 개발시키는 데 방점을 두어야 한다. / 72p

 

 

사고력 수학을 하면 머리가 좋아진다는 얘기를 많이 하는데, 그것은 중학교 이상인 아이들에게나 가능한 얘기다. 적어도 초등학교 때까지는 뇌를 발달시키는 데 사고력 수학보다는 연산이 효과적이다. 언어도 마찬가지다. 초등학교 때까지는 단어를 많이 외우는 것이 지능을 개발하는 데 도움이 된다. 글쓰기와 같이 표현하는 훈련은 중고등학교 이후에 하는 것이 좋다. 그런 관점에서 본다면 논술 교육 역시 중학교 이후에 하는 편이 더 효과적이다. / 77p

 

 

 

 

 

 

공부지능 개발의 4단계

 

 

   저자는 공부지능을 개발하는 원칙을 크게 4단계로 나눈다. 발견, 반복, 강화, 실현이다. 공부지능을 개발하는 첫 번째 원칙이 '발견'인 것은 공부지능 영역을 효과적으로 개발할 수 있는 적기 내에서 가능한 일찍 개발을 시작해야 충분한 시간을 두고 체계적으로 공부지능을 높일 수 있기 때문이다. 보통 아이의 재능을 가장 잘 발견할 수 있는 사람은 늘 가까이서 관심을 갖고 아이를 지켜볼 수 있는 부모다. 또한 아이의 재능과 강점 지능을 발견하는 것은 부모가 해야 할 중요한 역할이자 의무이기도 하다. 짚고 넘어가야 할 점은 이때 부모가 있는 그대로의 아이를 보는 객관적인 평가가 중요하다는 것이다. 반대로 필요 이상으로 비관적으로 보는 것도 지양해야 한다.

 

 

 

   아이의 강점 지능을 발견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종류의 자극이 필요하다. 다시 말해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며 관심 있게 지켜보다 보면, 각 분야에 따른 아이의 재능이나 강점 지능을 보다 빨리 확연하게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언어 자극, 피아노 치기와 같은 음악 자극, 그림 그리기나 블록, 찰흙 같은 장난감 외에도 오감을 동원해가며 읽는 독서, 나이가 들면 들수록 개발하기 어렵다는 공간지각능력의 경우는 충분한 야외활동과 프뢰벨의 '가베'와 같이 기하학적인 도구를 활용한 놀이가 좋은 자극이 될 것이다.

 

 

 

   두 번째 원칙인 '반복'은 공부지능을 높일 수 있는 궁극적인 방법이다. 뇌를 발달시키는 시냅스의 경우 그 수가 무한정 늘어나는 것이 아니라, 사용하지 않는 시냅스는 없어지고 자주 반복해서 쓰면 더욱 발달하는 특성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저자는 반복이야말로 더 높은 수준의 성취를 위해 창의적인 사고를 가능케 하고 후천적인 노력으로 타고난 것보다 훨씬 높은 수준까지 공부지능을 끌어올릴 수 있다고 확신한다. 이때는 단순 반복이 아니라 '신중하게 계획된 연습'이 중요하다. 연산의 경우 학습지를 통해 유사한 문제를 무조건 많이 풀게 하는 경향이 있는데, 하루에 단 10분만이라도 집중해서 정확하게 빨리 풀려고 노력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저자는 말한다.

 

 

 

   이제 아이의 정확성과 속도가 향상되었다면 늦은 수준의 연산 학습지는 밀어두고 과감하게 다음 수준의 연산 교재를 선택해야 한다. 이처럼 다음 단계로 넘어가 아이가 오를 수 있는 최고 단계까지 올라가는 것을 목표로 하는 것을 '강화'라고 한다. 강화 단계에서는 반복을 하면서 점차 난이도를 높이고 반복이 끝난 후에는 꼭 얼마만큼 좋아졌는지 살펴보고, 아직도 계속 안 좋은 점이 무엇인지 찾아서 또다시 반복하는 피드백이 중요하다. 끝으로 '실현'을 통해서는 즐거운 경쟁과, 흉내 내기, 아이의 수준보다 조금 어려운 과제를 통한 관심 유도, 인정받고 싶다는 아이의 욕구를 채워줌으로써 의욕이라는 스위치를 켜주는 방법들을 제시한다.

 

 

 

현재 수준보다 1정도 높은 수준이 중요한 이유는, 그 정도 수준이어야 도전 의식이 생기고 지속적으로 반복하면서 능력을 더 높은 수준으로 개발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것이 '승수 효과'다. 승수 효과는 작은 성취에서 작은 차이를 만들어내고, 작은 성공 경험들이 모이고 모여 커다란 성취를 만들어내는 원리다. 작은 성취를 통해 "너는 수학을 참 잘하는구나!", "너는 수영을 잘하는구나!", "너 참 달리기를 잘하는구나!"라는 칭찬을 들으면 아이는 자신감이 붙고, 더 잘하고 싶은 마음이 생기면서 스스로 반복과 강화를 한다. / 131p

 

 

 

   다음으로 IQ, EQ, 집중력, 창의력과 같은 공부지능 요소들을 강화하는 방법들에 대해 알아본다. IQ의 경우, 암기력과 어휘력, 연산력, 공간지각력, 사회적 이해력으로 세분화하여 이를 강화하는 방법들을 살펴볼 수 있다. 반면, EQ란 과정 속에서 결과를 만들어내는 힘으로 정서지능이라 불리며 IQ를 보완하고 더욱 끌어올리는 역할을 한다. 이는 자신의 정서를 감지하고 통제하고 평가하는 능력, 다른 사람의 마음을 인지하고 공감하는 능력, 자신을 잘 이해하고 현실적인 목표를 세우고 도전하는 것을 통해 공부지능을 높일 수 있게 한다. EQ에 가장 강력한 영향을 미치는 사람은 다름 아닌 부모다. 특히 유아기의 경험은 대부분 부모와 함께 하기 때문에 부모의 말이나 행동, 선택이 아이들에게 긍정적인 계기를 제공할 수도 있지만 부정적인 계기를 제공할 수도 있다는 점을 잊어버리지 말고 세심한 노력과 관심을 기울일 필요가 있음을 일러준다.

 

 

 

부모들은 아이의 결정지능과 유동지능을 함께 개발해주어야 한다. 글을 일찍 가르치고 책을 읽게 하는 것이 결정지능 즉, 언어성 지능발달에 도움이 되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각종 교구재와 야외활동, 친밀한 사랑(특히 엄마의 따뜻한 포옹은 아이의 심리를 안정시켜 유동지능을 높여준다)으로 아이의 유동지능을 높여주면 언어성 지능이 더 발달할 수 있다. 한쪽으로 편향된 자극을 주기보다는 다양한 자극을 통하여 유동지능과 결정지능을 함께 개발하여 서로 시너지 효과를 내도록 해야 하는데, 이것이 바로 내가 아이들을 교육할 때 실시하는 '지능기반 학습'이다. / 172p

 

 

책을 읽을 때도 엄마가 권하는 책을 읽는 것도 좋지만 아이 스스로 책을 골라서 읽는 것도 좋다. 아이를 정기적으로 도서관이나 서점에 데리고 가서 세상에는 여러 가지 종류의 책이 있다는 사실만 알게 해도 성공이다. 단, 일단 서점에 가면 절대로 아이와 함께 책을 고르러 다니지 말아야 한다. 아이가 책을 고를 때 엄마의 견해가 반영되기 때문이다. 2시간 정도 시간을 주고 아이와 부모가 서로 다른 분야의 책을 각각 5권씩 골라 약속된 장소에서 만나기로 하자. 아이는 서로 다른 분야의 5권의 책을 고르기 위해서 50권 혹은 100권 이상의 책을 훑어보고 그중에서 자신이 사야 할 책을 고를 것이다. 이러한 과정이 창의성을 개발하는 과정이다. / 312p

 

 

 

 

 

 

   이처럼 <아이의 공부지능>은 적기에 우리 아이의 공부지능을 끌어올릴 수 있는 다양한 방법들을 설명하면서 비록 타고난 머리가 좋지는 않더라도 얼마든지 노력을 통해서 향상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다양한 경험을 통해 적기이자 조기에 강점지능을 발견해 키워주고, 약점지능을 계속 보완해줄 수 있다면 후에 어마어마한 사교육비를 들이지 않고도 충분히 제 능력을 발휘할 수 있을 거라는 믿음이 든다. 여전히 우리 아이에 대한 교육관을 제대로 정비하지 못한 것은 사실이고, 끊임없이 불어오는 사교육 바람에 흔들리지 않을 것이라는 보장도 없는 것 또한 마찬가지이나, 이 책을 통해 내 아이를 믿고 함께 응원해줄 수 있는 부모가 된다면 적어도 대한민국의 교육 현실을 고통스럽게 마주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나처럼 오늘도 아이의 교육 문제로 고민하고 있는 이 땅의 많은 부모들에게 이 책을 통해 위로와 비전을 가져보길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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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아이를 위한 자존감 수업 - 아이의 자존감을 키우는 엄마의 대화법
임영주 지음 / 원앤원에듀 / 201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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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와의 관계로부터 비롯되는 우리 아이 자존감!

아이의 자존감을 키워주는 사소하지만 중요한 맞춤형 대화 실천법!

 

 

   언제부턴가 '자존감'이란 말이 많은 육아서 속에서 공통으로 등장하는 필수 화두인 듯하다. '자아존중감'이라고도 하는 이 자존감은 자신이 사랑받을 만한 가치가 있는 소중한 존재임을 깨닫게 하고, 이를 통해 확립된 정체성으로 자신과 타인을 함께 존중하며, 실패와 좌절 속에서도 쉽게 회복탄력성을 발휘해 도전과 위기를 슬기롭게 극복할 수 있는 힘이 되어준다. 이것이 공부, 인성, 창의성, 리더십 등 아이의 성장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요소임을 부모들은 이제 더 이상 설명하지 않아도 될 만큼 잘 알고 있다. 또한 부모의 양육 태도가 아이의 자존감을 결정짓는다는 것도 모르는 바는 아니다.

 

 

 

   이런 중요성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기에 오히려 부모에게는 부담으로 다가온다. 한 가정에 하나 혹은 둘 뿐인 자녀들을 누구보다도 잘 키워야 한다는 부담감에, 잘못된 양육 태도가 아이에게 부정적인 영향을 끼치는 것은 아닐지 늘 불안해하며 '이렇게 해야 한다, 저렇게 해야 한다' 넘쳐나는 다양한 정보 속에 중심을 잡기란 어지간해서 쉬운 일이 아니다. 나의 주변에서만 하더라도 "자존감이 대체 뭔지, 아이 자존감 높여주려다 내 자존감은 바닥으로 떨어졌다"며 하소연하는 부모들이 많다. 나 역시 세 살 된 남자 아이를 키우고 있다 보니 감정 기복이 잦아지는 것은 물론, 하루하루가 늘 시험을 치르는 기분이다. 결국엔 부모와 자녀 모두가 행복해지는 것이 궁극적인 목표일 텐데 뭐가 이렇게 어려운건지 모르겠다.

 

 

 

   아이는 나날이 커 가는데 부모의 역할만큼이나 혼란은 더욱 가중되는 이 현실을 어떻게 하면 의연하고 현명하게 대처할 수 있을까. 이미 시중에는 다양한 육아서를 통해 훌륭한 육아비법들이 소개되고 있지만 현실에 적용 가능하고 우리 아이의 기질에 맞는 육아서를 찾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던 중에 다양한 저서와 매체 활동을 통해 부모교육 전문가로 익히 알려진 저자 임영주의 <우리 아이를 위한 자존감 수업>이란 책이 눈길을 끈다. <우리 아이를 위한 자존감 수업>은 홍수처럼 넘쳐나는 다양한 육아서를 통해 막연히 알고 있었던 자존감과 그것이 우리 아이와 부모 모두에게 미치는 영향을 비롯하여, 아이의 자존감을 키우는 대화법에 대해 기술한 육아서다.

 

 

 

부모와의 관계에서 시작되는 우리 아이 자존감

 

 

   저자는 우리 아이를 행복하게 만드는 것은 결국 '자존감'이라고 말한다. 아이의 행복을 위해 부모가 해야 할 중요한 과업은, 아이가 이미 가진 자존감을 북돋워주는 것이다. 아직은 엄마의 눈길 하나, 말 몇 마디에도 쉽게 무너져 내릴 수 있을 만큼 아이의 자존감은 아직 연약한 상태이기 때문에 엄마와의 관계가 그 시작점이며 엄마의 자존감이 아이의 자존감의 모태가 된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가장 중요한 점은 엄마의 자존감이 높아야 아이의 자존감도 함께 높아진다는 것이다.

 

 

 

   저자는 아이의 자존감을 높이기 위해 선행되어야 할 부모의 마음가짐으로 아이에 대한 기대 목표를 낮출 것을 권장한다. 쉽게 말해서 기대치를 낮추면 아이의 웬만한 행동과 말들이 거슬리지 않게 되고, 아이를 지적하는 일이 줄어든다. 아이가 부모의 기대치에 도달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다보면 오히려 열등감만 부추기고 주눅이 들면서 오히려 자존감이 떨어지는 역효과가 난다는 것이다. 아이는 해낼 수 있는 것들을 목표로 삼을 때 엄마와 아이의 자존감이 함께 올라간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

 

 

 

 

 

 

 

무언가를 열심히 하는 아이의 뒷모습을 보자. 진지하고 믿음직스럽지 않은가. 떼쟁이, 고집쟁이 내 아이도 묵묵히 지켜봐주자. 이때 후생가외를 떠올린다면 도움이 된다. 아이의 고집이 아이 안의 의지와 욕구를 성취하겠다는 표현으로 보여 대견할 수도 있다. 무언가를 이루어낼 아이로 보일 것이다. 이렇게 보이게 하는 힘이 모성이다. 이제 그 모성이 이끄는 대로 표현하면 된다. / 52p

 

 

 

   그렇다면 아이의 자존감을 높이는 대화법에는 무엇이 있을까. 저자는 이에 대해 '아이를 동등하게 대할 것', '아이의 이야기를 잘 들어줄 것', '아이의 이야기에 공감해줄 것', '아이의 감정을 이해해줄 것', '아이의 부정적인 감정도 이해해줄 것' 등 크게 다섯 가지로 설명한다. 동등하게 대한다는 것은 현재 아이에게 바라는 점이 있다면 부모가 먼저 바라는 점을 행동으로 보이고, 아이가 엄마를 예측할 수 있도록 일관되게 행동해야 하며, 엄마의 표정과 눈길로 자신을 어떻게 바라보느냐에 따라 아이는 자신의 정체성을 형성함으로 아이가 바라보고 싶은 거울이 되는 것이고 말한다. 또한 위험하거나 절대 안 되는 원칙 몇 가지를 제외하면 아이 스스로에게 선택과 결정권을 주도록 하고, 엄마 스스로가 아이의 욕구를 대하면서 어떻게 반응하는지, 혹 아이를 무시하고 위협하고 소리치지는 않았는지 돌이켜보면서 아이와 엄마의 공통점과 차이점을 인정하고 동등한 인격체로 대할 것을 권장한다.

 

 

 

   가장 중요한 점은 아이의 이야기를 잘 들어주는 '경청'과 감정을 이해해주는 ‘공감’의 자세이다. 이때 아이가 말 하는 중간에 알아들었다는 듯 이해한다는 듯 섣불리 끼어들지 않고, 엄마가 마음대로 다른 주제로 말을 돌리지 말 것이며, 아이의 말은 듣는 둥 마는 둥하며 마무리를 훈계조로 맺지 말고 용기, 격려, 위로가 담긴 알맞은 피드백과 엄마의 도움이 필요하면 언제든지 말할 수 있도록 마음을 열게 하는 말 한 마디 정도만 해주어도 아이의 자존감은 높아진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아이가 울고 있을 때는 "슬프구나"라는 단정보다 포근히 감싸 안아 몸으로 먼저 공감해주고, 그다음 "왜 우는지 엄마한테 말해줄래?" 하고 마음을 담아 묻는 공감대화법을 실천해보면 어떨까.

 

 

 

 

 

 

자신의 감정을 제대로 표현하기 어려워하는 영유아기 아이라면 엄마가 아이의 감정을 정리하는 말을 자주 들려주는 게 좋다. "화내지 마."라는 말보다 "화났어?"로 표현하는 것이다. 화를 내지 말라는 말은 아이의 감정을 조종하려는 의도를 담고 있는 반면 "화났어?" "아, 그래서 화가 났구나."라는 말은 아이의 감정을 엄마가 궁금해하고, 어루만지는 말이기 때문이다.

"화났어?" "많이 슬펐어?" "무서웠니?" 등 이렇게 감정에 '화' '슬픔' '무서움' 등의 이름을 붙여 표현하게 하면 아이가 자신을 표현하는 도구로써 언어를 제대로 사용하게 된다는 장점이 있다. 아이가 자신의 감정을 언어로 표현하는 방법을 알게 되면 바람직하지 않은 행동 대신 언어로 감정을 표현하게 되기 때문이다. / 91p

 

 

 

   이 외에 정확한 지시어로 대화하는 법, 엄마의 감정을 표현하는 법, 구체적인 사실과 병행해 칭찬하는 법, 솔직한 사과를 통해 아이에게 이해를 구하는 법 등 나도 모르는 사이 아이의 자존감을 깎았던 나쁜 말 습관들을 되돌아보게 하고 이에 대한 해결점을 모색해본다. 이어 "안 해" "싫어"를 늘상 입에 달며 고집부리는 아이, 내성적인 아이, 거칠고 공격적인 아이, 지적하거나 이르는 아이와 같이 저마다 다른 아이의 타고난 기질을 인정하고 이에 맞는 맞춤형 대화 실천법도 함께 소개한다. 또한 서로의 감정이 상하지 않게 덜 화내면서 훈육을 하는 법을 일러주는데 실제 여기에서 일러준 대로 몇 번 해보니 아이가 생각보다 빨리 수긍하고 엄마의 감정을 이해하는 모습까지 보여줘서 깜짝 놀라기도 했다. 특히 반항심을 줄이는 '긍정 조건부' 화법은 습관처럼 몸에 익혀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먼저 엄마가 '자신의 감정을 알아차리는 것'이 필요하다. 엄마가 화났으면 "화났다."라고 말하면 된다. 이 말의 효과는 크다. 엄마가 스스로에게 '지금 화났으니 조심하자.' 하고 이성뇌에게 주지시키게 된다. 엄마의 감정을 스스로 인정하고 아이에게 '화났다.'라는 사실을 알리면, 아이가 알아듣도록 차분하고 구체적으로 말할 수 있게 된다. 이성뇌가 가동하기 때문이다. / 118p

 

 

 

   책의 마지막 장에서는 자존감과 밀접한 부분이라 할 수 있는 독립심, 자조능력, 결정력, 문제해결력을 키워주는 방법에 대해 알아본다. 이때 의존형 아이로 키우지 않기 위해 아이를 방치하거나 두려움을 키우면 아이의 마음속에 독립심 대신 좌절감만이 자리하게 된다는 것을 유념해야 한다. 아이의 발달 상태와 발달 단계를 고려해 부모가 적절히 개입하는 것이 무조건적인 격려 "넌 잘할 수 있어."라는 말보다 훨씬 유효하다는 것이다. 또한 엄마가 무엇이든 대신해주는 사랑의 표현이 아이에게 독이 될 수 있으므로, "열심히 했네. 이 정도도 잘한 거야. 한두 번에 안 될 수도 있어. 지난번보다 훨씬 좋아졌는걸." 하며 아이의 시도를 인정하고 아이의 어제보다 오늘이 더 향상된 점을 알아주는 부모의 반응이 아이를 키운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겠다.

 

 

 

아이가 열심히 무언가를 시도하면 꾸물거리는 것처럼 느껴지더라도 기다려야 한다는 것이다. 답답하거나 잘 못하는 것 같아도 기다려주면 스스로 할 수 있는 일이 많아진다는 것을 믿어야 한다. 이 믿음이 아이를 키운다. 엄마가 대신해주는 아이는 대신해줄 엄마가 없는 곳에서는 총체적 무능아가 된다. 자신감이 없어 또래와 학교에서도 위축되어 자신의 능력이나 리더십을 발휘할 수 없음은 물론이다. 엄마가 '대신해주는' 사랑이 독이 된다는 말을 한 이유다. / 249p

 

 

아이에게 어른의 해결책을 따르라고 강요하지 말고 스스로 문제해결방법을 찾게 해주자. 방법은 엄마의 '질문'에 있다. 중요한 건 질문을 하는 엄마의 마음에 '아이는 문제해결방법을 잘 찾을 거야.'라는 믿음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사안에 따라 긴 대화가 필요할지도 모른다. 편식이 이미 습관화 되었을 수도 있다. 습관이라는 문제를 해결하는 데 1~2분 대화로 고쳐지겠는가? 아울러 아이 문제는 아이가 해결할 수 있다. 문제를 가진 아이에게 해결의 열쇠가 있음을 인정해주자. 그리고 아이가 해결을 위한 노력을 시도할 때 따뜻한 시선과 격려로 용기를 북돋아주자. / 265p

 

 

 

   무엇보다도 가장 중요한 점은 '엄마의 자존감이 아이에게 직결되므로 먼저 엄마 스스로를 잘 살피고, 엄마부터 자존감을 높여야 진정으로 아이와 눈맞춤, 마음맞춤의 자존감을 높이는 대화가 가능'해진다는 사실이다. 아이의 기질도 중요하지만 엄마의 기질이 어떤지 이해하는 과정을 통해서 아이의 자존감도 함께 높아진다는 것이다. 그간 '아이의 자존감을 높이느라 내 자존감은 바닥'이 되는 기분을 빈번하게 느끼곤 했던 일상을 되돌아보며 이제부터라도 나의 자존감을 키우는데도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편으로는 어른이라는 점을 이용해 말 뿐만 아니라 몸짓, 눈짓을 통해 아이를 비난하거나 책망하는 모습을 보이지는 않았는지 반성해보는 계기도 되었다.

 

 

 

   최근에 읽은 여느 육아서보다 가장 현실적이고 우리 아이와 나에게 도움이 될 만한 유용한 정보가 많아서 주위의 많은 엄마들에게 꼭 권장하고 싶다. 사실 오늘만 하더라도 아이에게 불쑥불쑥 터져 나올 뻔했던 감정의 응어리들을 마저 다독이지 못해서 후회가 들곤 했지만 어쩌겠나, 조금씩 실천하다보면 어제보다 더 나은 오늘과 내일이 되지 않을까 싶다. 어쩌면 억지로 육아서에 나오는 각종 비법들을 다 흡수하려고 노력하면서 아이의 자존감을 높여주겠다는 생각에 사로잡히기보다, 아이의 타고난 자존감을 망치지 않는 것이야말로 아이의 자존감을 키워주는 일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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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른의 반격 - 2017년 제5회 제주 4.3 평화문학상 수상작
손원평 지음 / 은행나무 / 201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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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파된 젊음, 8090세대의 슬픈 자화상!

견디어 사는 삶에 익숙해진 청춘들에게 '반격'을 고하다!

 

 

 

   어느 덧 내 나이가 서른 하고도 넷이나 더 먹었다. 100세 인생이라는 길어진 수명에 비하면 서른은 아직 '청춘'이고, '예쁘다'거나 '반짝반짝'이란 수식어를 앞에 놓아도 어색하지 않을 만큼 얼마든지 기회와 도약의 '가능성'을 품은 나이라고 믿었다. 적어도 무엇을 하든 결코 늦은 나이가 아니라는 것만은 분명하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대한민국에서 여자로, 아이 엄마로, 서른이라는 나이의 중반에 이르고 보니 좀처럼 변화를 꿈꿀 기회는 사라지고 쌓아온 커리어는 보류인지 포기인지 모를 애매한 지점에 위치해 있으며 팍팍한 현실에 수긍과 타협이라는 적정한 선을 유지하며 살아가는 것만으로도 벅차더라고 하소연한다면 과장된 것일까. 내 인생에 드라마 같은 반전은 없을 거라고, 속단하기에 이를지 모르겠으나 그렇다고 마냥 기대하기에는 세상 물정 모를 만큼 어리숙하지도 않은 나이가 되어버린 까닭에 '반격'이라는 단어가 이토록 생경하고 공격적으로 느껴질 줄은 몰랐다. 대체 무슨 방법으로 이 고단한 청춘사에 반격을 고할 수 있단 말인가. 힘껏 저항하다 결국 현실에 부딪치는 익숙한 그림이 펼쳐지는 건 아닐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모종의 행위에 가담이라도 하듯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서른의 반격>을 읽기 시작했다.

 

 

 

난파된 젊음, 일상에 균열을 가하다

 

 

내가 아는 건 그 정도다. 그전에 벌어진 피, 광장, 투쟁의 흔적은 사진과 다큐에서나 본 겪지 못한 옛날 얘기일 뿐이다. 세상은 몇 발자국쯤 앞으로 나아갔지만 그 몇 발자국이 전부인 것 같다. 여전히 부당함이 우위를 점령하고 있고 당연히 보통 사람의 시대는 오지 않았다. 대신 대세에 머리를 조아려 수긍하면서도 온갖 수단과 방법을 써서라도 나는 몹시 특별난 사람이라고, 그러니 제발 나를 좀 주목해달라고 온몸으로 외쳐야 하는 세상이 왔다. 나는 하필이면 이 시대에 청춘의 끝자락을 맞이한 숱한 여럿 중 하나이다. / 8p 

 

 

 

   1988년은 표현의 자유를 허용하고 보통 사람의 시대를 열어가겠다고 선언한 노태우 전 대통령이 취임한 해로, '손에 손잡고' 화합의 장을 마련한 서울올림픽이 개최되기도 하여 나라의 분위기가 상당히 고무되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서른의 반격> 속 주인공 김지혜는 새로운 변화와 기회의 시대로 도약을 꿈꾸던 나라 안팎의 분위기를 업고 이 땅에 태어났지만 여전히 보통 사람의 시대는 오지 않았고, 대세에 편승하여 자신이 매우 특별한 사람이라는 것을 아득바득 드러내야만 겨우 주목받을 수 있는 대한민국 청춘들의 현실을 자조한다. 자랑할 것이 많지 않은 삶일 바에야 차라리 김지혜라는 무수한 동명의 이름 속에 숨어 지낼 수 있는 삶이 다행일지도 모르겠다며 고백하기도 한다.

 

 

 

   그녀는 시멘트 회사에서 출발해 대기업 성공신화를 일궈낸 DM그룹의 공식 채용에서 떨어졌지만 그룹 산하 문화사업의 한 일환으로 건립된 디아망 아카데미에서 의자 정리, 복사 등 각종 심부름을 도맡아야 하는 인턴사원으로 근무 중이다. 운이 좋아 여기서 정직원이 되어 일하다보면 경력을 인정받아 본사로 들어갈 기회도 있지 않을까, 스스로도 믿을 수 없지만 일말의 기대감이나마 가져볼 뿐이다. 그녀는 직장 내에서 자신의 역할은 복사기 토너나 나사 정도의 부품 정도가 아닐까 생각한다. 5층짜리 빌라의 쾌적하고 아담한 방에 사는 것으로 알고 계신 부모님과 달리 현실은 지상과 지하에 걸쳐진 반지하이고, 혜택이랍시고 인턴사원에게 강좌 하나를 무료로 들을 수 있도록 하는 대신 월급에서 매달 무료 강좌 수강료 명목으로 일정 금액이 빠져나가는 일에도 저항 한번 하지 못한다. 그렇게 9개월째 시간이 흘렀지만 정직원 채용의 기회는 좀처럼 보이지 않고, 고작 인턴 한 명 더 뽑겠다는 지시만 덜컥 내려온다. 이처럼 소설 속 김지혜가 바라보는, 그녀가 살고 있는 대한민국은 중심부에서 비켜나 주변인처럼 배회하고 적당히 순응하며 견디어 사는 삶에 익숙해진 청춘들이 만연한 세상이다.

 

 

 

모름지기 사람은 적당히 일을 해야 한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분수에 맞게. 주어진 시간과 급여에 맞게. 그러므로 최저임금을 간신히 넘는 비정규직인 우리에게 일이라는 건 꼼수, 눈치, 요령의 삼 요소가 적절히 균형을 이루는 최소한의 노동이어야만 한다. 그래야 헤프게 이용당하지 않고, 당연한 듯 착취당하지 않고, 적당히 치고 빠질 수 있다. 계속 못하다가 갑자기 잘하면 칭찬을 받지만 계속 잘하다가 한 번 실수하면 본전도 못 뽑고 신랄히 욕만 먹는다. 아슬아슬 선을 지키는 수준에서 일하고, 할 수 있는 일도 가끔은 못하는 척 피해하고, 귀찮더라도 가끔 핀잔을 듣는 상황을 만들어 상사를 우쭐하게 만들 줄도 알아야 한다. 당신에 대한 최종적인 평가는 '그럭저럭 보통은 해. 가끔 덤벙대기도 하지만 발전 가능성은 있어' 정도면 충분하다. 그게 자신을 지키며 일하는 방법이다. / 43p

 

 

 

   그러던 어느 날 지혜는 아카데미에서 가장 인기 있는 강의 중 하나를 진행하고 있던 박교수가 두고 간 휴대폰을 가져다주려다, 한때 그의 연구 보조로 일했던 남자가 자신이 쓴 원고를 고스란히 출간한 박교수에게 항의하는 광경을 목격하게 된다. 이십 년 전에 미성년자와 성관계를 맺은 사건으로 인해 교수직을 박탈당한 박교수였지만 삶은 어떤 식으로든 계속된다고 했던가. 베스트셀러 작가가 되고 교수가 아닌데도 여전히 교수라고 불리며 스타 강사로 재기에 성공한 그에게 이는 모멸감 따위가 무슨 대수겠는가, 이 작은 소동 또한 세상은 금세 잊어버리고 말 것이다. 하지만 그녀는 박교수에게 일말의 부끄러움과 저항감을 심어준 이 낯선 남자의 일침이 유독 마음에 걸린다. 설상가상 새로운 인턴으로 온 남자가 다름 아닌 그, 규옥이다.

 

 

 

"꼭 이 강의실의 의자를 말하는 게 아니라 '의자의 마법'에 대해서 얘기하는 겁니다. 앞에 있는 의자에 앉으면 권위와 힘을 가진 줄 착각하는 마법에 걸리게 되죠. 그리고 수없이 깔린 의자에 앉으면 힘없는 대중이 되어 앞에 있는 사람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는 마법에 걸립니다. 의자는 의자일 뿐이라는 걸 다들 까먹어버린단 소리예요." / 49p

 

 

 

 

 

   애써 외면해왔거나 당연하게 여기고 지냈던 지난한 현실에 균열을 가하듯 규옥은 가치의 전복을 꿈꾸고, 박교수에게 그러했듯 권위에 저항하고자 하는 의지를 지혜 앞에 차츰 드러내기 시작한다. 마침 그와 함께 듣게 된 우쿨렐레 강좌에서 만난 시나리오 작가 무인, 온라인으로 먹방을 진행하는 남은 아저씨의 억울한 사연은 그들에게 뜻밖의 의기투합을 불러일으키게 한다. 창작가의 권리와 아이디어를 무단으로 도용한 영화사, 애써 고생해서 개발한 장맛을 빼앗은 유명 식품업계 동업자, 친구임을 강조하면서 몸종 부리듯 제 이득만 챙긴 이들에게 한번쯤은 제 목소리를 내어 보자고, 우리 방식대로 '반격'을 가해보자고 뜻을 모은다. 마치 놀이를 하듯 부당한 곳에 일침을 가한다, 그러다보면 언젠가는 무언가가 변하거나 확산될 것이다. 그럴듯하면서도 곱씹으면 갸우뚱해지는, 영웅적인 반란이랄 것도 없이 다소 미미하고 대단한 반전을 기대하기에도 상당히 거리가 멀어 보이는 계획들이다. 하지만 거창하지 않아도 괜찮다고, 비록 보잘것없어 보일지라도 이렇게 세상을 향해 균열을 가하다보면 경직된 것들이 느슨해지고 부서지는 날이 언젠가 오지 않겠느냐는 듯한 규옥의 목소리는 작지만 깊은 울림을 준다.

 

 

 

"그렇게 생각하는 한 세상은 점점 더 나빠질걸요? 억울함에 대해 뒷 얘기만 하지 말고 뭐라도 해야죠. 내가 말하는 전복은 그런 겁니다. 내가 세상 전체는 못바꾸더라도, 작은 부당함 하나에 일침을 놓은 수는 있다고 믿는 것. 그런 가치의 전복이요." / 68p

 

부당한 권위를 이용해 세상을 경직되게 만드는 사람들이 대상들이었으며, 그들을 곤란하게 하고 면박을 주고 불편하게 만드는 것이 우리의 목적이었다. 우리에 대한 반응은 한결같았다. 물을 뿌려도 젖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던 것처럼 그들은 늘 깜짝 놀라면서 황당해했다. 그들의 마음속에 담긴 단어들은 이런 것들인 것 같았다.

누가, 감히, 나에게.

그래봤자, 너희들이, 어떻게. / 131p

 

 

 

 

 

   소설은 현실을 영리하게 따를 것과 현실에 균열을 일으킬 용기를 가질 것 사이에서 고민하는 지혜의 모습을 통해 현실과 이상 사이에서 방황하는 보통 서른이들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사실 우리 모두는 늘 세상을 향한 반격을 꿈꾸지만 그럼에도 그 세상에 온 힘을 다해 편승하기 위해 몸부림치는 아이러니를 늘 겪고 있는 까닭이다. 그래서 이들이 세상에 던지는 '반격'이 마냥 반갑거나 흔쾌히 지지하고픈 류의 것들이 아니라는 생각이 불쑥불쑥 들곤 한다. '그래봤자, 우리 같이 힘없는 이들이, 어떻게', 고작 그걸로 세상이 바뀌겠느냐는 삐딱한 시선을 나도 모르게 던지게 되는 것이다. 그러다가도 처음 입사한 작은 출판사에서 착취당하듯 일을 하고, 직원들에게 온갖 욕설을 내뱉다가 금세 후회하며 달래기 바쁜 대표를 대표랍시고 따랐으며, 몇 달씩 밀리기 일쑤였던 임금 문제에 대해서도 강력하게 대응 한번 해보지 못했던 지난날이 떠오르면서 '너는 말이라도 해봤느냐고', 고작이라고 생각했던 것들조차 시도해본 적이 없는 내 자신에 대한 회한이 밀려들기도 했다. 말하지 않으면 마치 없는 사람처럼 취급하는 이 불온한 세상에 제 목소리 한번 내보는 용기 정도는 가져볼 수 있는 것 아니냐고 말하는 듯한 이 소설의 메시지에 우리 역시 반응해볼 일이 아니겠는가.

 

 

 

없는 사람. 가슴 깊은 곳에서부터 뜨거운 뭔가가 치밀어 올랐다. 그래. 없는 사람이다. 늘 소리치고 있는데도 없는 사람이다. 수면 위에 올라있지 않으면 없는 사람이다. 반지하방에 살면 없는 사람이고, 문밖으로 나오지 않으면 없는 사람이고, 인생과의 게임에서 지면 없는 사람이다. / 203p 

 

 

 

   감정을 느끼고 읽는 뇌의 기능이 고장 난 탓에 ‘공감 능력 장애’를 지고 살아가는 소년의 이야기를 다룬 <아몬드>의 손원평 작가가 쓴 작품인 만큼 가독성이 높고 서른 살이 겪어야 할 사회적, 심리적 무게를 밀도 있게 그려낸 점에서 이 역시 수작이라고 평가할 만하다. 다만 비현실적으로 보일지라도 가슴 통쾌하게 이 사회를 향해 한방을 날려줄 수 있을 만한 잽 하나가 보이지 않는 점은 아쉬움으로 남는다. 그래서 내내 현실적으로 그려지던 작품의 전개가 갑자기 마지막은 비현실적으로 느껴져 오히려 어설퍼진 느낌이다. 하지만 청소년문학상 수상에 이어 이 작품으로 제주4.3평화문학상까지 수상하며 문단과 대중에게 호응하는 괜찮은 작가가 등장했다는 점에서 다음 작품에 대한 기대감을 더욱 높이게 된다. 사회 내부에서 소리 죽여 있던 이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이에 응답할 수 있는 작가로 계속해서 성장해나가길 응원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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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즈니스 여행 코스 가이드북 - 바쁜 비즈니스맨을 위한 맞춤형 여행 가이드북
김충식 지음 / 상상출판 / 201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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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출장을 떠나는 비즈니스 여행자들을 위한 맞춤형 필수 여행 가이드북!

아시아 주요 출장지를 엄선하여 비즈니스와 관광을 동시에 만족시키는 핵심 가이드북!

 

 

 

  항상 사무실에서 근무를 하다가 외근이나 출장 업무가 생기는 날에는 업무가 끝나고 남는 시간에 무엇을 하지, 하고 설레는 마음으로 출장지 인근 정보를 검색할 때가 있다. 업무에 지친 마음과 부담감을 내려놓을 수 있는 그 짤막한 시간의 소중함이란 출장지가 주는 커다란 낭만 중에 하나가 아닐까. 하물며 해외 출장 시 운좋게 귀국 전에 주요 관광지를 둘러보고 맛집에서 즐거운 식사까지 함께 누릴 수 있는 기회가 있다면 더욱 반가운 일이다. 하지만 출장자가 업무에 집중하면서 현지 정보와 관광 코스까지 모두 파악하기란 좀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이럴 때 참고할 수 있을 만한 정보를 한 눈에 파악하기 쉬운 가이드북이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이에 좀처럼 볼 수 없었던 비즈니스 여행자들만을 위한 맞춤 가이드북이 있어 상당히 흥미를 끈다. 제목 그대로, 두껍지 않지만 주요 비즈니스 여행지에 관한 알찬 정보로 가득차 있는 <비즈니스 여행 코스 가이드북>이다. 

 

 

도쿄, 타이베이, 홍콩, 상하이, 베이징에 관한 현지 정보와 관광 가이드를 한번에!  

 

 

  <비즈니스 여행 코스 가이드북>은 약 20년 정도 회사생활을 하면서 해외 마케팅 업무를 담당했던 저자가 잦은 해외 출장을 통해 경험한 생생한 정보들을 기획하여 출간한 여행 서적이다. 이제껏 해외출장자를 위한 여행서적은 볼 수 없었기에 이 책만의 남다른 기획력이 유독 돋보인다. 그도 그럴 것이 세계적인 비즈니스 도시 중 해외전시와 비즈니스 출장이 잦은 도쿄, 타이베이, 홍콩, 상하이, 베이징과 같은 아시아 주요 도시를 선별하여 이 중 비즈니스 업무에 필수라 할 수 있는 출장 준비, 교통, 숙박, 관광, 맛집, 쇼핑 등 최적화된 정보만을 제공함으로써 간편함과 효율성을 높인 가이드북이라는 생각이 앞서는 까닭이다.

 

 

  본격적으로 들어가기에 앞서 저자는 각 도시에 따른 필수 미션을 통해 어느 것을 선택해도 아깝지 않을 만한 특별한 경험들을 간략히 압축해 소개한다. 효율적인 이동에 중점을 두고 지하철, 버스, 도보 이용 중 어느 것을 선택하는 것이 편리한지 간단한 기호로 그려놓음으로써 독자들에게 이동에 적절한 교통편을 알려주는 것은 물론, 체크 리스트를 통해 각 미션지에서 경험해보면 좋을 만한 내용들을 간략하게 추천한다. 이를 테면 '오다이바 해변공원에서 레인보우 브리지를 배경으로 <자유의 여신상> 인증샷 남기기', '영강가 딘타이펑 본점에서 소룡포 즐기기, 망고빙수와 우육면, 펑리수 맛집 탐방하기', '경건한 마음으로 대한민국 임시정부청사를 방문하고, 유럽풍의 신천지 카페와 레스토랑 즐기기' 등이다.

 

 

 

 

 

  본격적인 내용으로 들어가면 각 도시별로 6~7가지 구성으로 나뉘는데, Part1에서는 '항공편 예약하기', '비즈니스 호텔 예약하기', 비자 필요여부와 환전, 화폐, 시차 등 세부적으로 꼭 확인해야 할 '비즈니스 여행 사전 확인사항'이 수록되어 있다. 숙박의 경우 비즈니스 출장자가 선호할 만한 호텔 및 이동에 편리한 역 주변을 중심으로 활용도가 높은 호텔을 중점적으로 추천한다. 영어가 잘 통하지 않는 나라인 타이베이의 경우 상황별 필수회화 문장까지 엄선해 수록해놓았다. 다음으로 Part2에서는 각 도시의 도심으로 들어가는 방법을 소개하는데, 도시별 국제공항에서 도심에 들어가는 다양한 방법들을 가격과 함께 알려줌으로써 여행자가 교통편을 선택하는 편리성을 높인다.

 

 

  여느 관광 가이드북과 다른 것이 있다면 비즈니스 여행자들을 위한 책이다보니 Part3에서는 국제전시장을 찾아가는 길까지 수록해놓았다는 점이다. 국제 행사와 전시로 해당 도시의 국제전시장을 찾는 일이 잦은 여행자들을 배려한 구성이라고 할 수 있겠다. Part4에서는 지하철 노선도를 비롯하여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다양한 방법들을 소개하고, 현금만 지불해야 하는 경우 및 현금의 경우 거스름 돈을 주지 않는 교통편의 주의해야 할 점까지 비즈니스 여행자들에게 가장 필수라고 할 수 있는 정보들을 잊지 않고 다루고 있다.

 

 

 

 

 

  이어 Part5에서는 도시별 주요 관광코스를 소개한다. 간단한 지역 소개와 함께 다채롭게 해당 지역을 즐길 수 있는 방법과 매력 포인트를 수록하면서 핵심코스, 추천코스, 선택코스로 세분화한 점 또한 인상적이다. 여기에는 해당 코스의 생생한 사진과 지도, 오픈 시간 및 가격과 주소와 같은 필수 정보도 간략하게 적혀있으니 참고하기 좋다. 다음으로 Part6에서는 가장 큰 관심거리라고 할 수 있는 먹거리와 맛집을 소개하는데, 지역을 상징하는 대표음식인만큼 책에서 소개하는 먹거리는 꼭 즐겨보면 좋을 듯하다. 

 

 

 

 

 

  마지막으로 Part6에서는 쇼핑거리를 다루고 있다. 자의든 타의든 해외출장 후 귀국하는 길이면 선물을 꼭 사야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것이 쉽지 않은 비즈니스 여행자들을 위해 마련된 구성이 아닐까 싶다. 면세 지역으로 쇼핑의 천국이라 불리는 홍콩의 경우 다양한 테마의 쇼핑몰이 가득하고, 베이징에서는 아기자기한 소품 및 다양한 아이디어 제품, 재래시장의 재미를 느낄 수 있는 등 쇼핑만으로도 저마다 다른 지역의 매력을 느낄 수 있으니 참 흥미롭다.

 

 

  이렇듯 <비즈니스 여행 코스 가이드북>은 해외 출장자들을 위해 간편하게 각 지역의 알짜정보만을 모아 비즈니스와 관광을 모두 만족시킬 수 있도록 구성한 점이 특색인 가이드북이다. 해당 지역에 관해 속속들이 자세한 정보를 수록한 가이드북을 찾는 이들에게는 비교적 정보가 단순한 아쉬움이 있겠지만, 그만큼 효율성을 강조한 책이라고 할 수 있다. 해외 출장자들을 위한, 해외 출장자들만의 핵심 가이드북을 찾는 이들이라면 이 책을 꼭 지닌 채 가볍고 즐거운 마음으로 출장을 다녀와보시기를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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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 파이 이야기 (특별판)
얀 마텔 지음, 공경희 옮김, 토미슬라프 토르야나크 그림 / 작가정신 / 201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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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평양에 난파된 인도 소년과 벵골 호랑이의 기묘한 동거와 치열한 사투를 다룬 감동적인 소설!

끝없는 공포와 절망 앞에서 생존의 의미와 가치를 깨달을 수 있는 명작 중에 명작!

 

 

 

   π=3.14......

   끝없이 이어지는 원주율 값에 마침표가 없듯 삶과 이야기라는 이 유한한 존재값에도 역시 마침표란 없다. 삶은 어떤 식으로든 나아가고 또 다른 삶으로 끊임없이 이어지며 더 이상 새로울 것이 없어 보이는 이야기라는 창작의 세계 역시 늘 자신의 존재값을 넓혀간다. 피신 몰리토 파텔이라는 이름 철자를 간단히 '파이(π) 파텔'이라 고쳐 자신을 소개했던 한 소년의 이야기는 이미 그 시작부터 '파이'가 지닌 어떤 숙명 같은 것을 예고하는 듯했다. 자신의 삶이 끝 모를 원주의 중심에 놓이고 말 것이라는 운명, 삶은 계속해서 이어지고 이어져서 새로운 이야기가 끊임없이 생산될 것이라는 어떤 운명 말이다. 누구나 태평양 한가운데에서 227일간 표류해야 할 만큼 거대한 운명에 사로잡히는 것은 아니지만 우리 모두는 어쩌면 그런 연속된 삶에 붙들린 채 살아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조난객이 되는 것은 계속 원의 중심점이 되는 것과 같다. 아무리 많은 것이 변하는 것 같아도-바다가 속삭임에서 분노로 변하고, 상큼한 하늘이 앞이 보이지 않는 흰색이 되었다 칠흑같이 까맣게 변해도-원점은 변하지 않는다. 당신의 시선은 언제가 반지름이다. 원주는 대단히 크다. 사실 원들이 겹쳐 있다. 조난객이 되는 것은 춤추듯 겹쳐지는 원들 사이에 붙들리는 것이다. 당신은 한 원의 중심이며, 당신 위에서 두 개의 반대되는 원이 휘휘 돌아간다. / 327p 

 

 

 

태평양에 난파된 인도 소년과 벵골 호랑이의 227일간의 표류기

 

 

  <일러스트 파이 이야기>는 작가가 남부 인도를 탐험하러 갔다가 자신을 작가라고 소개하자 한 노신사가 들려주는 기이한 이야기에서부터 비롯된다. 이제는 그 주인공이 어른이 되었을 만큼 오래된 이야기로, 작가는 사실인지 지어낸 이야기인지 알 수 없는 놀라운 사연에 이끌리듯 주인공을 찾아 나서게 된다. 소설의 1부는 주인공이 소년일 적 경험했던 일들을 회상하면서 들려주는 이야기와 작가가 취재하면서 주인공을 관찰하는 시점이 교차 반복된다. 주인공의 이름은 피신 몰리토 파텔로 자신의 이름을 잘못 발음해 '소변을 보는 이'로 놀려대는 친구들과 인기 많은 형 라비로 인해 그림자 신세를 면치 못했던 열여섯 살의 평범한 한 인도 소년이었다. 그러나 피신은 계속해서 고통 받고 있는 자신의 이름을 새로운 친구들 앞에서 당당하게 파이(π) 파텔로 고쳐서 부르게 할 만큼 자신의 삶을 스스로 영위할 수 있는 소년이었다.

 

 

 

 

   파이는 동물원을 경영하는 아버지, 다정한 어머니, 운동을 좋아하는 형, 오래전 남인도 수영 챔피언으로 소년에게 수영을 가르쳐준 마마지 곁에서 소박하지만 따뜻한 유년 시절을 보낸다. 이 무렵 그의 운명을 이끌 두 명의 선지자를 만나게 되는데 그들이 바로 생물 선생님, 이슬람교를 가르쳐준 빵 굽는 아저씨다. 이들은 훗날 파이가 토론토 대학에서 동물학과 종교학이라는 학문에 전념하는데 큰 영향을 끼치며 이 두 개념은 이 소설의 기본이 되는 가장 큰 축이 된다. 소설의 전반부에는 동물원을 경영하는 아버지로 인해 파이가 직접 관찰하여 깨달은 동물원의 운영 원리 및 동물과 인간의 관계, 생태계의 원리 등이 흥미롭게 쓰여 있다. 이때 알게 된 동물학적 지식은 태평양에 벵골 호랑이와 난파된 위기의 순간을 이성과 기지로 극복해나갈 수 있게 하는 원천이 된다.

 

 

 

아버지는 매표소 바로 뒤 벽에 선홍색 글씨로 '동물원에서 가장 위험한 건 뭘까요?'라고 적고, 작은 커튼이 있는 곳으로 화살표를 해놓았다. 호기심 많은 사람들이 답을 보느라 커튼을 걷는 바람에, 정기적으로 커튼을 바꿔야 했다. 커튼 안에는 거울이 있었다. / 58p

 

 

달아나고 싶은 이유가 뭐든, 마쳤든 아니든, 동물원을 곱지 않게 보는 사람들이 알아야 할 점이 있다. 동물은 '다른 곳으로'가 아니라 '뭔가로부터' 달아난다는 사실이다. 자기 영역 안에 두려움을 주는 게 있으면-적의 침입, 우두머리인 동물의 공격, 놀라게 하는 소음-도망칠 태세를 취한다...(중략)...도망치는 동물들을 아는 곳에서 미지의 세계로 간다-동물이 무엇보다 꺼리는 게 있다면 바로 '미지의 세계'다. 달아난 동물은 처음으로 안전하다는 느낌을 받은 곳에 숨게 마련이다. 그 동물들은 그들과 안전지대로 여기는 곳 사이에 끼어드는 대상에게만 위험할 뿐, 다른 것은 해치지 않는다. / 73p 

 

 

 

   동물학이 합리와 이성을 이끄는 축이 된다면 종교학은 믿음과 사랑으로 고난을 극복하게 하는 또 다른 축이 된다. 독특하게도 파이는 힌두교, 이슬람교, 기독교에 이르는 세 종교의 신을 아울러 섬기는 소년이었다. 우연히 부모님과 함께 세 종교인을 동시에 만나 자신들이 믿는 신의 우월성을 강조하며 하나의 종교를 선택할 것을 강요받는 곤란한 상황 속에서도 파이는 '간디께서는 모든 종교는 진실하다고 말씀하셨어요. 저는 신을 사랑하고 싶을 뿐이에요'라고 말한다. 이와 같은 파이의 종교적 신념은 후에 태평양에서 난파되는 고통스러운 상황에서도 흔히들 종교를 통해 구하게 되는 기적이라는 힘에 기대기보다, 합리와 이성으로 명확히 이해될 수 없는 이 고난과 역경을 이해하고 이겨내, 다시 삶을 사랑하고 궁극적으로는 인간의 존엄을 떠받치는 존재로써 승화된다. 개인적으로 종교에 있어서는 상당히 아둔한 탓에 '신을 사랑하고자 하는' 파이의 신념과 이 소설이 궁극적으로 다가가고자 하는 어떠한 뜻을 확실하게 나의 글로 표현하지 못하는 점이 애석하기만 하다.

 

 

 

신은 '궁극적인 실체'이자 존재를 떠받치는 틀이건만, 마치 신의 힘이 약해서 자기가 도와야 된다는 듯 나서서 옹호하는 자들이 있게 마련이다...(중략)...이런 자들은 겉이 아니라 마음속으로 신을 옹호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한다. 분노의 방향을 자신에게 돌려야 한다는 걸 모른다. 바깥의 악은 내면에서 풀려나간 악인 것을……. 선을 위한 싸움터는 공개적인 싸움장이 아니라 각자의 마음에 있는 작은 공터인 것을……. / 117p

 

 

신을 믿는 것은 마음을 여는 것이고, 마음을 풀어놓는 것이고, 깊은 신뢰를 갖는 것이고, 자유로운 사랑의 행위다. 하지만 때로는 사랑하기가 너무도 힘들었다. 때로는 내 마음이 분노와 절망과 약함으로 급속히 가라앉아서, 태평양 바닥에 처박일 것 같았다. 거기서 다시 올라오지 못할까 두려웠다. / 317p  

 

 

 

 

   1부에 이어 2부에서는 인도에서의 생활을 정리하고 캐나다로 이민을 가게 된 파이와 가족이 탄 침춤 호가 엔진 고장으로 추측되는 어떠한 사건으로 인해 침몰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배가 가라앉을 시각에 깨어난 파이는 손쓰지도 못할 만큼 빠른 시간 안에 화물선이 거품을 내고 트림을 하면서 물속으로 사라지는 광경을 구명보트 속에서 황망히 지켜봐야만 했다. 물에 떠 있는 것들 중에서 희망을 주는 것은 없었다던 그의 고백은 태평양이라는 거대한 존재 앞에 무력하게 남겨진 파이의 고통과 상실감을 여실히 전한다. 그런데 놀랍게도 구명보트에 오른 뜻밖의 생존자들이 있었다. 얼마 되지 않는 구명보트 안에서는 한없이 연약한 존재일 뿐인 얼룩말, 멀미하는 오랑우탄, 굶주린 욕망을 끊임없이 드러내는 하이에나, 방수포 안에서 언제 살육의 공포를 드러낼지 모른 채 은밀하게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내는 벵골 호랑이, 마찬가지로 언제 죽음을 맞이할지 앞길을 알 수 없는 또 다른 동물의 나까지. 이 다섯 동물의 기묘한 동거는 태평양이라는 거대한 공포와 함께 소년을 시시각각 위험으로 몰아넣는다.

 

 

 

 

 

   구명보트라는 이 협소한 생태계는 당연한 수순처럼 얼마가지 않아 곧 정리되고, 결국 리처드 파커와 단둘이 남게 된 파이는 자신이 살아남기 위해서는 이 벵골 호랑이를 길들여야만 한다는 것을 깨닫는다. 파이는 자신이 죽지 않기 위해 필사적인 마음으로 리처드 파커를 조련하는 동시에 둘이 함께 살아남을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한다. 그가 끝까지 리처드 파커를 놓지 않은 것은 혼자 남겨질지 모르는 절망 보다 리처드 파커와의 공존이 오히려 생의 의지를 부추긴다는 점에서 더 큰 의미를 지닌 까닭이다. 그는 채식주의자였던 자신의 소신 마저 버리고 바다 거북과 날치, 상어, 가마우지까지 자신과 리처드 파커의 배를 채울 수 있는 것이라면 무엇이든 잡아먹었다. 어마어마한 갈증, 극한으로 내모는 파도와 환경, 그 와중에도 눈부시도록 아름답게 펼쳐지는 바닷 속 풍경, 그러나 여지없이 이어지는 권태와 공포의 무한한 반복. 젖은 걸레가 말랐다는 어떤 시간의 변화, 현재의 순간이 이전의 순간과 다르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너무나 소중하다던 그의 고백이 뭉클해질 지경이다. 이렇듯 소설은 한 소년이 거대한 자연 앞에서 본능에 휘둘리고, 이성으로 통제하는 일련의 과정과 삶을 포기하지 않게 해준 영성들의 조화를 경이롭게 펼쳐나간다.

 

 

 

살면서 고통을 많이 겪으면, 더해가는 아픔은 참기 힘들기도 하지만 사소해지기도 한다. 내 인생은 유럽 그림에 나오는 해골과 비슷하다. 옆에는 늘 씩 웃는 해골이 있어, 야망의 아둔함을 일깨워준다...(중략)...죽음은 생물학적인 필요 때문에 삶에 꼭 달라붙는 것이 아니다-시기심 때문에 달라붙는다. 삶이 워낙 아름다워서 죽음은 삶과 사랑에 빠졌다. / 21p

 

 

 

 

 

   무려 227일만에 파이는 구조된다. 마지막 3부에서는 멕시코 해안에 닿아 살아남은 파이로부터 침춤 호의 사고 진상을 듣기 위해 온 일본 화물선 회사 직원과의 대화가 그려진다. '리처드 파커는 해안에 닿자마자 사라졌고 나는 살아남았다'. 하지만 이 기막히고 믿을 수 없는 이야기가 어디서부터 사실이고 어디까지가 거짓인지 합리적으로 받아들일 수 없는 직원들은 내내 어리둥절하기만 하다. 자신들이 원하는 이야기만 듣고 싶어 하는 직원들을 향해 파이는 그간에 했던 이야기를 뒤집는 어마어마한 반전의 또 다른 이야기를 들려준다. 그리고는 이야기 한다. 어떤 이야기가 더 나은가요? 믿기 어려운 부분이 있나요? 바꾸면 좋을 대목이라도 있어요? 라고. 세상은 있는 그대로의 모습이 아니라 우리가 이해하는 대로, 믿고 싶은 대로 만들어가는 것이어서 그것이 이야기이자 곧 인생이라고 담담하게 말하는 파이의 대사는 이 소설이 단순히 227일 만에 태평양에서 살아남은 소년의 모험 소설로만 생각할 수 없는 깊은 함의를 느낄 수 있다. 3.15를 향해 끝없이 나아가기 위한 수학 기호 파이의 운명처럼.

 

 

 

"세상은 있는 모습 그대로가 아니에요. 우리가 이해하는 대로죠, 안 그래요? 그리고 뭔가를 이해한다고 할 때, 우리는 뭔가를 갖다 붙이지요. 아닌가요? 그게 인생을 이야기로 만드는 게 아닌가요?" / 459p 

 

 

 

   이 책은 기존의 <파이 이야기>가 갖고 있지 않은 풍성한 일러스트의 감성을 느낄 수 있는 작품이어서 더욱 마음을 끈다. 크로아티아의 일러스트 작가 토미슬라프 토르야나크가 그린 40여 점의 일러스트는 가볍지 않은 터치와 질감, 컬러의 조합으로 <파이 이야기> 속 세계관을 밀도 있게 담아내고 있다. 무엇보다 소설이 도달하고자 하는 상징과 은유의 지점을 잘 형상화하여 또 다른 색채감 있는 이야기를 부여한다는 점이 인상적이다. 이 때문에 영화 <파이 이야기>는 또 어떤 식으로 이 소설을 구현해냈을지 기대가 된다. 듣기로는 영상미가 무척이나 뛰어나나 소설이 지닌 철학까지 모두 담아내지는 못하고 있다는 설을 듣기는 했지만 그것은 그것대로의 재미가 있지 않을까 싶다. 3살짜리 나의 아들이 책의 속표지에 유독 관심을 보인다. 훗날 나의 아들 역시 이 책을 읽고 용기와 삶의 의지, 생의 희망을 얻을 수 있기를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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