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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른의 반격 - 2017년 제5회 제주 4.3 평화문학상 수상작
손원평 지음 / 은행나무 / 2017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난파된 젊음,
8090세대의 슬픈 자화상!
견디어 사는 삶에 익숙해진 청춘들에게 '반격'을
고하다!
어느 덧 내 나이가 서른 하고도 넷이나 더 먹었다. 100세 인생이라는 길어진 수명에 비하면 서른은 아직
'청춘'이고, '예쁘다'거나 '반짝반짝'이란 수식어를 앞에 놓아도 어색하지 않을 만큼 얼마든지 기회와 도약의 '가능성'을 품은 나이라고 믿었다.
적어도 무엇을 하든 결코 늦은 나이가 아니라는 것만은 분명하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대한민국에서 여자로, 아이 엄마로, 서른이라는 나이의 중반에
이르고 보니 좀처럼 변화를 꿈꿀 기회는 사라지고 쌓아온 커리어는 보류인지 포기인지 모를 애매한 지점에 위치해 있으며 팍팍한 현실에 수긍과
타협이라는 적정한 선을 유지하며 살아가는 것만으로도 벅차더라고 하소연한다면 과장된 것일까. 내 인생에 드라마 같은 반전은 없을 거라고,
속단하기에 이를지 모르겠으나 그렇다고 마냥 기대하기에는 세상 물정 모를 만큼 어리숙하지도 않은 나이가 되어버린 까닭에 '반격'이라는 단어가
이토록 생경하고 공격적으로 느껴질 줄은 몰랐다. 대체 무슨 방법으로 이 고단한 청춘사에 반격을 고할 수 있단 말인가. 힘껏 저항하다 결국 현실에
부딪치는 익숙한 그림이 펼쳐지는 건 아닐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모종의 행위에 가담이라도 하듯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서른의
반격>을 읽기 시작했다.
난파된 젊음, 일상에
균열을 가하다
내가 아는 건 그 정도다. 그전에 벌어진 피, 광장, 투쟁의 흔적은 사진과 다큐에서나
본 겪지 못한 옛날 얘기일 뿐이다. 세상은 몇 발자국쯤 앞으로 나아갔지만 그 몇 발자국이 전부인 것 같다. 여전히 부당함이 우위를 점령하고 있고
당연히 보통 사람의 시대는 오지 않았다. 대신 대세에 머리를 조아려 수긍하면서도 온갖 수단과 방법을 써서라도 나는 몹시 특별난 사람이라고,
그러니 제발 나를 좀 주목해달라고 온몸으로 외쳐야 하는 세상이 왔다. 나는 하필이면 이 시대에 청춘의 끝자락을 맞이한 숱한 여럿 중 하나이다.
/ 8p
1988년은 표현의 자유를 허용하고 보통 사람의 시대를 열어가겠다고 선언한 노태우 전 대통령이 취임한 해로, '손에
손잡고' 화합의 장을 마련한 서울올림픽이 개최되기도 하여 나라의 분위기가 상당히 고무되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서른의 반격> 속
주인공 김지혜는 새로운 변화와 기회의 시대로 도약을 꿈꾸던 나라 안팎의 분위기를 업고 이 땅에 태어났지만 여전히 보통 사람의 시대는 오지
않았고, 대세에 편승하여 자신이 매우 특별한 사람이라는 것을 아득바득 드러내야만 겨우 주목받을 수 있는 대한민국 청춘들의 현실을 자조한다.
자랑할 것이 많지 않은 삶일 바에야 차라리 김지혜라는 무수한 동명의 이름 속에 숨어 지낼 수 있는 삶이 다행일지도 모르겠다며 고백하기도 한다.
그녀는 시멘트 회사에서 출발해 대기업 성공신화를 일궈낸 DM그룹의 공식 채용에서 떨어졌지만 그룹 산하 문화사업의 한
일환으로 건립된 디아망 아카데미에서 의자 정리, 복사 등 각종 심부름을 도맡아야 하는 인턴사원으로 근무 중이다. 운이 좋아 여기서 정직원이 되어
일하다보면 경력을 인정받아 본사로 들어갈 기회도 있지 않을까, 스스로도 믿을 수 없지만 일말의 기대감이나마 가져볼 뿐이다. 그녀는 직장 내에서
자신의 역할은 복사기 토너나 나사 정도의 부품 정도가 아닐까 생각한다. 5층짜리 빌라의 쾌적하고 아담한 방에 사는 것으로 알고 계신 부모님과
달리 현실은 지상과 지하에 걸쳐진 반지하이고, 혜택이랍시고 인턴사원에게 강좌 하나를 무료로 들을 수 있도록 하는 대신 월급에서 매달 무료 강좌
수강료 명목으로 일정 금액이 빠져나가는 일에도 저항 한번 하지 못한다. 그렇게 9개월째 시간이 흘렀지만 정직원 채용의 기회는 좀처럼 보이지
않고, 고작 인턴 한 명 더 뽑겠다는 지시만 덜컥 내려온다. 이처럼 소설 속 김지혜가 바라보는, 그녀가 살고 있는 대한민국은 중심부에서 비켜나
주변인처럼 배회하고 적당히 순응하며 견디어 사는 삶에 익숙해진 청춘들이 만연한 세상이다.
모름지기 사람은 적당히 일을 해야 한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분수에 맞게. 주어진
시간과 급여에 맞게. 그러므로 최저임금을 간신히 넘는 비정규직인 우리에게 일이라는 건 꼼수, 눈치, 요령의 삼 요소가 적절히 균형을 이루는
최소한의 노동이어야만 한다. 그래야 헤프게 이용당하지 않고, 당연한 듯 착취당하지 않고, 적당히 치고 빠질 수 있다. 계속 못하다가 갑자기
잘하면 칭찬을 받지만 계속 잘하다가 한 번 실수하면 본전도 못 뽑고 신랄히 욕만 먹는다. 아슬아슬 선을 지키는 수준에서 일하고, 할 수 있는
일도 가끔은 못하는 척 피해하고, 귀찮더라도 가끔 핀잔을 듣는 상황을 만들어 상사를 우쭐하게 만들 줄도 알아야 한다. 당신에 대한 최종적인
평가는 '그럭저럭 보통은 해. 가끔 덤벙대기도 하지만 발전 가능성은 있어' 정도면 충분하다. 그게 자신을 지키며 일하는 방법이다. / 43p
그러던 어느 날 지혜는 아카데미에서 가장 인기 있는 강의 중 하나를 진행하고 있던 박교수가 두고 간 휴대폰을
가져다주려다, 한때 그의 연구 보조로 일했던 남자가 자신이 쓴 원고를 고스란히 출간한 박교수에게 항의하는 광경을 목격하게 된다. 이십 년 전에
미성년자와 성관계를 맺은 사건으로 인해 교수직을 박탈당한 박교수였지만 삶은 어떤 식으로든 계속된다고 했던가. 베스트셀러 작가가 되고 교수가
아닌데도 여전히 교수라고 불리며 스타 강사로 재기에 성공한 그에게 이는 모멸감 따위가 무슨 대수겠는가, 이 작은 소동 또한 세상은 금세
잊어버리고 말 것이다. 하지만 그녀는 박교수에게 일말의 부끄러움과 저항감을 심어준 이 낯선 남자의 일침이 유독 마음에 걸린다. 설상가상 새로운
인턴으로 온 남자가 다름 아닌 그, 규옥이다.
"꼭 이 강의실의 의자를 말하는 게 아니라 '의자의 마법'에 대해서 얘기하는 겁니다.
앞에 있는 의자에 앉으면 권위와 힘을 가진 줄 착각하는 마법에 걸리게 되죠. 그리고 수없이 깔린 의자에 앉으면 힘없는 대중이 되어 앞에 있는
사람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는 마법에 걸립니다. 의자는 의자일 뿐이라는 걸 다들 까먹어버린단 소리예요." / 49p
애써 외면해왔거나 당연하게 여기고 지냈던 지난한 현실에 균열을 가하듯 규옥은 가치의 전복을 꿈꾸고, 박교수에게
그러했듯 권위에 저항하고자 하는 의지를 지혜 앞에 차츰 드러내기 시작한다. 마침 그와 함께 듣게 된 우쿨렐레 강좌에서 만난 시나리오 작가 무인,
온라인으로 먹방을 진행하는 남은 아저씨의 억울한 사연은 그들에게 뜻밖의 의기투합을 불러일으키게 한다. 창작가의 권리와 아이디어를 무단으로 도용한
영화사, 애써 고생해서 개발한 장맛을 빼앗은 유명 식품업계 동업자, 친구임을 강조하면서 몸종 부리듯 제 이득만 챙긴 이들에게 한번쯤은 제
목소리를 내어 보자고, 우리 방식대로 '반격'을 가해보자고 뜻을 모은다. 마치 놀이를 하듯 부당한 곳에 일침을 가한다, 그러다보면 언젠가는
무언가가 변하거나 확산될 것이다. 그럴듯하면서도 곱씹으면 갸우뚱해지는, 영웅적인 반란이랄 것도 없이 다소 미미하고 대단한 반전을 기대하기에도
상당히 거리가 멀어 보이는 계획들이다. 하지만 거창하지 않아도 괜찮다고, 비록 보잘것없어 보일지라도 이렇게 세상을 향해 균열을 가하다보면 경직된
것들이 느슨해지고 부서지는 날이 언젠가 오지 않겠느냐는 듯한 규옥의 목소리는 작지만 깊은 울림을 준다.
"그렇게 생각하는 한 세상은 점점 더 나빠질걸요? 억울함에 대해 뒷 얘기만 하지 말고
뭐라도 해야죠. 내가 말하는 전복은 그런 겁니다. 내가 세상 전체는 못바꾸더라도, 작은 부당함 하나에 일침을 놓은 수는 있다고 믿는 것. 그런
가치의 전복이요." / 68p
부당한 권위를 이용해 세상을 경직되게 만드는 사람들이 대상들이었으며, 그들을 곤란하게
하고 면박을 주고 불편하게 만드는 것이 우리의 목적이었다. 우리에 대한 반응은 한결같았다. 물을 뿌려도 젖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던 것처럼 그들은
늘 깜짝 놀라면서 황당해했다. 그들의 마음속에 담긴 단어들은 이런 것들인 것 같았다.
누가, 감히, 나에게.
그래봤자, 너희들이, 어떻게. / 131p
소설은 현실을 영리하게 따를 것과 현실에 균열을 일으킬 용기를 가질 것 사이에서 고민하는 지혜의 모습을 통해 현실과
이상 사이에서 방황하는 보통 서른이들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사실 우리 모두는 늘 세상을 향한 반격을 꿈꾸지만 그럼에도 그 세상에 온
힘을 다해 편승하기 위해 몸부림치는 아이러니를 늘 겪고 있는 까닭이다. 그래서 이들이 세상에 던지는 '반격'이 마냥 반갑거나 흔쾌히 지지하고픈
류의 것들이 아니라는 생각이 불쑥불쑥 들곤 한다. '그래봤자, 우리 같이 힘없는 이들이, 어떻게', 고작 그걸로 세상이 바뀌겠느냐는 삐딱한
시선을 나도 모르게 던지게 되는 것이다. 그러다가도 처음 입사한 작은 출판사에서 착취당하듯 일을 하고, 직원들에게 온갖 욕설을 내뱉다가 금세
후회하며 달래기 바쁜 대표를 대표랍시고 따랐으며, 몇 달씩 밀리기 일쑤였던 임금 문제에 대해서도 강력하게 대응 한번 해보지 못했던 지난날이
떠오르면서 '너는 말이라도 해봤느냐고', 고작이라고 생각했던 것들조차 시도해본 적이 없는 내 자신에 대한 회한이 밀려들기도 했다. 말하지 않으면
마치 없는 사람처럼 취급하는 이 불온한 세상에 제 목소리 한번 내보는 용기 정도는 가져볼 수 있는 것 아니냐고 말하는 듯한 이 소설의 메시지에
우리 역시 반응해볼 일이 아니겠는가.
없는 사람. 가슴 깊은 곳에서부터 뜨거운 뭔가가 치밀어 올랐다. 그래. 없는
사람이다. 늘 소리치고 있는데도 없는 사람이다. 수면 위에 올라있지 않으면 없는 사람이다. 반지하방에 살면 없는 사람이고, 문밖으로 나오지
않으면 없는 사람이고, 인생과의 게임에서 지면 없는 사람이다. / 203p
감정을 느끼고 읽는 뇌의 기능이 고장 난 탓에 ‘공감 능력 장애’를 지고 살아가는 소년의 이야기를 다룬
<아몬드>의 손원평 작가가 쓴 작품인 만큼 가독성이 높고 서른 살이 겪어야 할 사회적, 심리적 무게를 밀도 있게 그려낸 점에서 이
역시 수작이라고 평가할 만하다. 다만 비현실적으로 보일지라도 가슴 통쾌하게 이 사회를 향해 한방을 날려줄 수 있을 만한 잽 하나가 보이지 않는
점은 아쉬움으로 남는다. 그래서 내내 현실적으로 그려지던 작품의 전개가 갑자기 마지막은 비현실적으로 느껴져 오히려 어설퍼진 느낌이다. 하지만
청소년문학상 수상에 이어 이 작품으로 제주4.3평화문학상까지 수상하며 문단과 대중에게 호응하는 괜찮은 작가가 등장했다는 점에서 다음 작품에 대한
기대감을 더욱 높이게 된다. 사회 내부에서 소리 죽여 있던 이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이에 응답할 수 있는 작가로 계속해서 성장해나가길
응원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