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사소한 일에 화를 냈습니다 - 자존감이 높아지고, 인간관계가 술술 풀리는 감정 정리법
와다 히데키 지음, 정지영 옮김 / 상상출판 / 2018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오늘도 욱하고 후회하는 이들을 위한 감정 대처법!

어떤 상황에서도 나를 잃지 않고 현명하게 부정적인 감정에서 벗어나는 노하우!

 

 

 

   어지간해서는 감정의 동요가 없는 편인 나도 한 번씩 울컥할 때가 있다. 바로 4살이 된 아들과 시간을 보낼 때다. 웬만하면 아이의 감정과 의사를 존중하고 타고난 천성을 내가 원하는 방식으로 바꾸지 않으려고 노력하지만 한 번씩 이유를 알 수 없는 생떼를 부릴 때는 화가 머리끝까지 차올라 나도 모르게 목소리가 높아지고 만다. 돌이켜보면 정말 사소한 일이었는데, 쿨하게 넘어가줘도 되는 일이었는데 왜 그리 얼굴을 붉혀가며 서로의 마음을 할퀴고 마는 것인지.

 

 

 

   주위를 둘러보면 작은 일에도 기분이 나빠지는 사람이 있는가하면, 감정의 동요가 크지 않은 사람이 있다. 기분이 나빠졌다가도 바로 풀리는 사람은 일상생활에 지장이 없겠지만 언짢은 기분이 다른 일을 할 때도 계속 이어지는 사람은 일은 물론 인간관계까지 나빠지는 경우가 흔하다. 불쾌한 감정을 쉽게 털어내는 사람과 감정이 오래 지속되는 사람 중에 어느 쪽이 이득을 보고 어느 쪽이 손해를 보는 지는 누가 봐도 명백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쉽게 기분이 나빠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쉽게 화내고 뒤늦게 후회하지 않으려면?

 

 

   작은 일로 기분 상하지 않고, 울컥해도 쿨하게 털어내는 비법을 담은 책 <오늘도 사소한 일에 화를 냈습니다>의 저자 와다 히데키는 우리가 쉽게 기분이 나빠지는 이유를 크게 세 가지로 꼽는다. 첫째는 남이 나를 소중히 대하지 않는다는 느낌이 들어서, 둘째는 쉽게 상처받는 자신을 지키려고, 셋째는 어려운 일을 무리해서 하고나 하는 일이 제대로 되지 않아서라고 말한다. 특히 자기애와 기분의 상관관계는 떼려야 뗄 수 없는데, 이에 대해 정신분석학자인 하인즈 코헛은 "사람은 자기애가 충족되지 않았을 때 불쾌함을 느낀다"고 하였다. 어린 시절에 부모로부터 충분한 사랑을 받지 못한 사람은 자기애가 쉽게 충족되지 않는 경향이 있다. 부모에게 충분한 애정을 받지 않으면 성인이 되어서도 매사에 불만족스러운 기분이 들고, 타인의 사소한 말실수에도 바보 취급을 당했다거나 모욕당했다고 느껴서 불쾌해진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자기애를 충족시키면서 작은 일로 기분 상하지 않고, 인간관계까지 술술 풀리는 감정 정리법이 있다면 무엇일까. 저자는 이를 위해 6장에 걸쳐 어떤 상황에서도 나를 잃지 않고 현명하게 부정적인 감정에서 벗어나는 노하우를 소개한다. 첫 번째는 '마음의 부담을 확실히 줄이는 방법'이다. 여기서는 바꿀 수 있는 일은 고민하다 보면 적절한 돌파구가 나오지만, 바꿀 수 없는 일은 아무리 고민해봤자 해결책이 나올 리 없다고 말하면서 바꿀 수 없는 지나간 일에 미련을 두지 말고 지금 당장 시작할 수 있는 일을 생각하라고 조언한다. 또한 어려운 일을 마주쳤을 때는 무리하게 나를 밀어붙이기보다는 세상에는 내가 할 수 없는 일도 많다고 솔직하게 인정하는 것이 마음 편하다고 덧붙이다.

 

 

 

   두 번째는 '중요한 일에 집중하는 연습'을 하는 법에 대해 소개한다. 지금 당장의 실패에 조바심내지 말고 느긋하게 멀리 내다보는 법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자신이 할 수 있는 적당한 수준으로 기준을 정하고, 그 이상의 일은 깨끗이 포기하는 것도 현명한 방법이며, 자잘한 실패에 얽매이지 말라고 한다. 인간관계에 있어서도 평생 상대방의 기호에 나를 맞출 수 없다면 차라리 내 그대로를 보여주는 편이 낫다고 말하며 타인의 가치관에 휘둘리지 않기를 조언한다.

 

 

 

무언가를 달성하는 사람은 한 번도 실패하지 않는 사람이 아니라, 실패해도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실패하면 안 돼' '실패하면 어쩌지' '창피당하고 싶지 않아'라고 생각하면 어떤 일에도 도전하지 못합니다. 그런 사람은 결국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 시간만 흘려보내게 됩니다. / 97p

 

 

 

 

 

 

   세 번째는 '무의미한 경쟁에서 벗어나는 방법'이다. 경쟁에 있어서 상대의 평가를 떨어뜨린다고 해서 자신이 성장하지는 않으므로, 무슨 일이든 상대와 관계없이 자신을 갈고닦아야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는 법이라고 말한다. 이어 네 번째로는 '누구에게나 관대해지는 마음 단련법'을 소개하는데, 여기에서는 우리가 타인을 험담하고 싶어지는 이유는 심리학적으로 자기 내면에 욕구불만이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하며 근본 원인을 해결하는 일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심리 요법 중 가족 전체를 치료 대상으로 하는 '가족 요법'의 접근법은 두 가지로 나뉩니다. 하나는 조작적인 가족 요법으로 부모의 접근법을 바꾸면 아이가 바뀐다는 사고방식을 기초로 합니다. 다른 하나는 아이에 대한 고민과 괴로움을 들어주는 동시에 아이는 부모가 바꿀 수 있는 대상이 아니라고 전달하는 것입니다. 아이를 바꾸는 일을 포기하고, 자신의 노후나 취미를 생각하도록 제안하죠. / 140p

 

 

 

 

 

 

   다섯 번째로는 '인간관계가 놀랍도록 술술 풀리는 요령'에 대해 설명한다. 여기에서 가장 인상적인 부분은 미움받고 싶지 않은 마음을 버리면 편해진다는 것이었는데, 나를 싫어하는 사람이 단 한 명이라도 있어서는 안 된다는 생각과 예측 불가능한 타인의 마음에 신경을 쓰기보다 내 사람과 내 편에 더 마음을 쓰는 일의 중요성을 다시 생각해보게 되었다. 마지막여섯 번째 감정 정리법은 '사소하지만 강력한 기분 전환법'으로 웃음이 얼마나 기분 전환에 도움이 되는지 강조하는 대목이다. 여기에서 '표정은 오랜 세월에 걸쳐 만들어집니다. 웃는 표정을 자주 지으면 웃는 근육이 단련되고 그 이외의 근육은 약해져서 웃는 게 습관이 됩니다. 시간이 걸릴지도 모르지만 일단 웃는 버릇이 생기면 그 후로는 어려움 없이 항상 그 상태를 유지할 수' 있다던 저자의 말을 새겨볼 일이다.

 

 

 

   이렇듯 <오늘도 사소한 일에 화를 냈습니다>는 일본 최고의 자기 심리학 전문가이자 정신과 전문의인 저자가 자존감을 높이면서 어떤 상황에서든 부정적인 감정에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는 방법을 알려주는 처세서다. 읽다보면 우리가 사소한 일에도 화를 내지 않는 방법이란 것은 나의 기분에 충실하고, 눈앞의 실패나 상처에 연연하지 않고 멀리 내다보는 유연한 자세에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아이가 내 마음을 울컥하게 하고, 욱하게 할 때에도 아이가 내 뜻대로 따라주지 않는다고 속상해하기보다 '어쩌겠나, 그럴 수도 있지. 아직 어린 아이인데.' 하고 생각을 달리 해보면 욱하는 횟수도 줄어들겠지?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아직 사랑이 남았으니까 - 처음과 끝의 계절이 모두 지나도
동그라미(김동현) 지음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8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70만 팔로워로부터 사랑받는 작가 동그라미의 감성에세이!

사랑과 이별, 그리움을 담아 오늘도 그대의 안녕을 기원하며 보내는 공감 편지!

 

 

   처음이자 마지막이 될 편지. 그를 무척이나 좋아했지만 그들은 연인이 될 수 없으리라는 사실을 너무도 잘 알아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써 보내는 편지가 내 손에 쥐어졌다. 직접 건네는 건 어쩐지 미련을 남길 것 같아서 나에게 대신 전해달라고 말하던 그녀의 목소리가 가늘게 떨렸다. 참 많이 좋아했을 텐데, 조금이라도 욕심을 내보지 그랬느냐고 말하려다가 두툼한 편지지의 두께를 써나가기 위해 설치고 눈물을 훔쳤을 시간들이 떠올라서 나는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그녀가 쓴 편지는 그에게 잘 전달되었다. 두 사람은 그렇게 담담하게 서로의 마음을 받아들였다. 마지막일 줄 알고 편지를 쓴 그녀의 마음과, 마음을 보여준 상대에게 자신의 마음을 줄 수 없는 그 마음이란 건 또 어떤 것이었을까. 문득, 그 날 두 사람의 표정에서 엿본 서로의 마음이 생각나는 밤이다.

 

 

 

나를 구원할 문장 하나쯤은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SNS를 보다보면 유독 사람들의 마음들을 울리고 공감을 이끄는 작가들이 있다. 그 중에서도 70만 팔로워수를 기록하며 사랑하고, 이별하고, 그리워하는 그 모든 순간들에 대한 기록을 담은 동그라미 작가의 글이 눈에 띈다. 사랑하는 당신을 혹은 사랑했던 당신을 떠올리며 썼던 수많은 감정들, 때로는 미련으로 허우적대고 이제는 안녕하고 놓아주리라 몇 번이나 다짐했던 긴긴밤들. 하지만 결국 부치지 못할 편지들. 그 모든 찰나의 감정과 기록들을 모아서 쓴 글들이 책 한 권으로 탄생되었다.

 

 

 

 

 

 

   그런 날이 있다. 시처럼 다정한, 애써 채우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넘치는 그런 밤. 작은 조명 아래 테라스에 앉아 아주 살짝 스치는 바람에도 마음이 신선해졌던 우리는 그 소소한 순간이 그렇게도 좋았다. 그 어떤 이벤트하나 없어도, 뭐 대단한 거 하나 없어도 좋았던 그 순간을 나는 아직까지도 잊지 못한다. 그래서일까. '크림 아메리카노'라는 제목의 글을 읽으며 나는 문득 그 순간이 떠올라 내내 마음이 설레었다. '정체는 잘 모르겠지만 너는 도전해보겠다며 주문했고 먹던 아메리카노에 휘핑크림을 올린 듯한 커피가 나왔다 한 모금 마시던 너는 실패했다는 표정으로 인상을 찌푸렸고 그 순간 눈이 마주쳤다 이유 없이 서로 미소를 터뜨렸고 나는 지금 순간을 사랑하며 살기로 했다 평범한 연인처럼 평범한 시간을 보낸 그날을 사랑하며 살기로 했다'던 그의 글처럼, 평범한 시간과 순간마저도 아름다운 것은 역시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할 때 느낄 수 있는 마법 같은 일이 아닐까.

 

 

 

비례

꽤 많은 아픔이 지나갔다 죽을 것 같던 시간이 흐르고 죽지 않은 채로 죽은 듯이 살아가고 있다. 죽을 듯이 힘든 시간이 좀 더 이어졌으면 했다 조금 괜찮아졌다고 느낄 때마다 내 곁에 남은 네 잔상도 사라지는 것을 테니까 결국 너를 잊는 일은 너를 사랑했던 내 모습을 지워야 하는 일이니까 미련하지만 그게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이라 믿는다

나는 사라져도 좋지만 너를 사랑했던 내가 사라지는 건 싫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는 것과 네가 멀어지는 일이

비례한다는 사실은 별수 없이 인정해야만 하겠지. / 78p

 

 

 

 

 

 

   이별은 사랑하는 그대가 내 곁에 없이 맞이하는 지독한 환절기 같다. 반점은 찍었지만, 온점은 어디다 두어야 할지 모르겠는 기나긴 문장 같다. 이 이별을 모두 감내할 수 있을 때까진 아직 더 많은 종이가 필요하겠지. <아직 사랑이 남았으니까> 속의 여러 글들은 대체로 떠나간 사람을 그리워하며 상대를 향한 안부를 전하다가도 돌이킬 수 없는 후회와 미련으로 몸부림치는 감정들로 가득하다. 그래서 유독 헤어짐에 아파하고 오늘도 돌이킬 수 없는 감정으로 잠을 설치는 이들의 마음과 공감한다.

 

 

 

연소

 

내가 당신을 잊는 일에 앞으로 더 애타야 한다면 얼마나 더 타들어가야 비로소 당신을 추억이라 당당히 말할 수 있을까 스스로에게도 당당하지 못할 구차한 변명으로 얼마나 더 당신을 그리워해야 할까 몇 개의 문장들로 기록하고 싶었던 일이 셀 수 없이 많은 문장을 만든다 내게도 이리 부담인데 당신이라고 오죽할까. / 142p

 

 

 

 

  그리움으로 너절해진 마음을 쓸어 담을 길이 없는 이들에게 이 책이 짧지만 다정하고 공감어린 위로가 되어주길. 다음 사랑은 더 이상 아파하지 않길.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브루투스의 심장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민경욱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8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전대미문의 릴레이 살인, 진범은 대체 누구인가!

히가시노 게이고 미스터리의 정수를 보여주는 완전범죄를 향한 도전!

 

 

   이제는 거장의 반열에 올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우리에게 잘 알려진 히가시노 게이고. 그의 1989년 초기작 <브루투스의 심장>이 다시 새롭게 재판되어 출간되었다. 무려 세월이 30년 전에 쓰인 작품이라고는 믿어지지 않을 만큼 독자들의 뒤통수를 치는 거듭된 반전은 놀랍다 못해 신선하기까지 하다. 완전범죄를 꿈꾸는 세 명의 인물 뒤에 숨겨진 음험한 비밀과 그 누구도 믿을 수 없는 날선 긴장감은 이미 첫 장을 넘기는 순간 마지막까지 독자들을 숨 가쁘게 밀어붙인다. 속도감 있는 전개와 완벽할 것 같았던 트릭의 붕괴, 예상치 못한 반전의 연속으로 그의 초기작 중에도 압권이라 할 만하니, 꼭 읽어보시라!

 

 

 

완벽할 것 같았던 살인의 바통, 모두의 예상을 뒤엎는 시체의 정체는?!

 

 

   중견 산업기기 메이커 MM중공에서 9년 째 연구개발2과 소속으로 근무 중인 스에나가 다쿠야는 인공지능 로봇의 개발과 응용 업무를 담당하고 있다. 어릴 때 어머니를 잃고 미장공인 아버지 밑에서 불운한 청소년 시절을 보낸 그는 더 이상 인생의 패배자가 되지 않기 위해, 도쿄의 일류 국립대를 목표로 모든 욕망을 억제해가며 실력을 쌓았다. 이후 MM중공에 입사한 그는 시각인식 로봇의 새로운 방식을 만들어 국내 학회는 물론 국제 학회에서도 주목을 받으며 회사 내에서 가장 유능한 인재가 되고자 노력했다. 원하는 것은 성공. 차기 사장이 될 게 분명한 니시나 전무와 연줄이 닿아 더 높은 자리로 오르려는 욕망을 품고 있었던 그는 전무의 업무를 보좌하는 아마미야 야스코에게 접근한다.

 

 

 

인간이 모두 평등하다는 건 환상일 뿐이라는 게 그의 오랜 철학이었다. 이 세상은 불공평과 차별로 가득 차 있다. 누구나 태어난 그 순간부터 다양한 계층으로 나눠진다.

언젠가 반드시 최상층의 인간이 된다, 지배자가 된다……. 그것이 다쿠야의 최종 목표였다. / 26p

 

 

 

   처음에는 전무에 대한 정보를 빼내려는 목적으로 다가갔던 그는 아마미야 야스코와 잠자리를 갖는 사이로 발전하게 되고, 어느 날 그녀로부터 전무의 딸인 호시코가 미국 유학을 마치고 돌아온다는 소식을 듣게 된다. 마침 니시나가 호시코의 남편감을 물색 중이라는 정보까지 얻게 된 다쿠야는 기회 좋게도 전무에 눈에 든 몇몇 후보감 중 한 명으로 선택된다. 마침내 파티에 초대되어 간 자리에서 호시코에게 접근한 다쿠야는 그녀와 가까워질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한 가운데, 뜻밖의 소식으로 충격을 받는다. 바로 야스코가 아이를 가졌다는 것! 성공을 눈앞에 두고 있는 마당에 자신의 아이를 가졌을지도 모른다는 야스코의 말은 그를 궁지로 몰아넣는다.

 

 

 

   한편, 니시나 전무의 아들이자 실장인 나오키가 그의 방으로 다쿠야와 호시코의 또 다른 남편감 후보로 거론된 하시모토를 함께 호출한다. 호시코에 관한 말을 하려는가 싶었던 찰나, 나오키의 입에서 뜻밖의 말이 흘러나온다. 바로 여기에 모인 세 명 모두가 야스코의 남자라는 사실이었다. 다시 말해 야스코의 뱃속에 있는 아이의 아빠가 이 세 사람 중에 한 명일 것이라는 뜻이었다. 이들에게 골치 아픈 존재가 되어버린 야스코와 뱃속의 아이를 결국 죽여야 되지 않겠느냐는 단도직입적인 나오키의 말에 다쿠야와 호시코는 동조하지 않을 수 없었고, 이때부터 절대로 들킬 리 없을법한 완전범죄를 공모하기 시작한다. 그것은 바로 야스코의 시체를 바통처럼 세 사람이 이어받아 옮기는 것으로, 그 사이 무너지지 않을 완벽한 알리바이를 만드는 것을 목표로 하는 것이었다. 마침내 이들 일당의 계획이 착착 실행에 옮겨지고 다쿠야가 시체를 호시코에게 넘기려는 순간, 믿을 수 없는 일이 벌어지고 만다. 어라, 야스코의 시체가 아.니.다. 어째서 나오키가 여기 있는 거지?

 

 

 

다쿠야 일당의 계획대로라면, 오늘 MM중공을 뒤흔든 뉴스는 아마미야 야스코의 시체여야 했다.

하지만 그 야스코는 살아 있고, 죽은 것은 나오키였다. 야스코를 죽이자고 말을 떠낸 사람이. / 111p

 

 

 

 

 

 

   죽음을 공모한 자가 죽음을 맞이하게 되어버린 이 놀라운 반전에 숨이 멎을 것 같은 것도 잠시, 다쿠야와 하시모토 앞에 그들의 목숨을 위협할 만년필이 하나씩 배달된다. 야스코의 목숨을 노리려다 도리어 자신의 목숨이 위험하게 된 다쿠야는 이때부터 진범을 찾기 위한 기묘한 추적과 사건을 은폐하려는 시도에 돌입한다. 나오키의 비서인 유미에가 발견한 1974년도 업무 계획과 하시모토의 차에서 발견한 고속도로 영수증 조각, 니시나 가문의 알력, 나오키의 성장과정이 한 꺼풀씩 벗겨지면서 경찰 역시 다쿠야의 숨통을 조여 오는 가운데 은밀하게 숨어있던 진범의 정체가 드러난다.

 

 

 

결국 로봇은 인간에 필적할 수 없다……. 다쿠야는 이런 식의 얘기가 제일 싫었다. 그런 식으로 말하는 인간일수록 능력도 없기 마련이라 더 불쾌했다. 인간이 도대체 뭘 할 수 있단 말인가. 아무것도 할 수 없다. 거짓말을 하고, 게으름을 부리고, 겁을 먹고, 질투나 할 뿐이다. 뭔가를 이루려는 사람이 이 세상에 몇이나 되겠는가. 대체로 인간은 누군가의 지시에 따라 살 뿐이다. 지시가 없으면 불안해서 아무것도 못한다. 프로그램에 따라 하는 일이라면 로봇이 훨씬 우수하다. / 165p 

 

 

 

 

 

 

   이처럼 <브루투스의 심장>은 욕망을 쫓던 여러 인물들이 뒤엉켜 배신과 음모를 서슴지 않는 과정을 보여줌으로써 인간 내면의 처절함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추리소설이다. 과학과 기술적 요소를 작품에 녹여내 무서운 흉기로 돌변하는 과정을 보여줌으로써 '인간성'과 '정체성'에 관한 질문을 끊임없이 제기하는 히가시노 게이고 특유의 소재 또한 잘 드러나는 작품이다. 무엇보다 유년시절, 가족으로부터 받은 상처를 극복하기 위한 몸부림이 낳은 비극이지만 살인은 그 무엇으로도 정당화될 수 없음을 마지막까지 차갑고 냉정하게 끌고 가는 히가시노 게이고의 서술 방식에 또 한번 더 놀라게 되는 작품이니 꼭 읽어보시길 추천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하룻밤에 읽는 근현대 세계사 - 18세기 산업혁명에서 20세기 민족분쟁까지 하룻밤에 읽는 세계사
미야자키 마사카츠 지음, 오근영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8년 11월
평점 :
품절


 

 

 

 

 

핵심 키워드로 근현대의 맥을 한눈에 알아보는 역사서!

18세기 후반부터 현대로 이어지는 역사의 흐름을 한 권의 책으로 만나다!

 

 

   오늘날에도 계속되는 중동 분쟁의 불씨는 어디에서 비롯된 건인가. 제주 예멘 난민 사태를 우리는 어떻게 해결해야 할 것인가. 시사 프로그램을 보다보면 자주 마주치는 문제이지만 세계사의 흐름을 이해하고 기민하게 받아들일 만큼 해박하지 못해서 번번이 채널을 돌리곤 했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그러고 보니 고대 및 중세 세계사에 관련해서는 중, 고교 시절에나 책을 통해서도 여러 번 접할 기회가 많았지만 정작 근현대사는 상당히 무지했던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때문에 <하룻밤에 읽는 근현대 세계사>라는 제목의 책을 보고 한 권으로 근현대 세계사의 흐름을 접할 수 있는 좋은 책인 듯해 단번에 끌렸다. 마치 고등학교 시절에 세계사 공부를 하던 때가 떠올라서 나도 모르게 노트에 기록하고 부족한 부분은 인터넷에 검색도 해가며 읽다보니 하룻밤에 읽기에는 어쩐지 역부족이었지만, 근현대 세계사의 흐름을 쫓아가는 여정은 목말랐던 역사에 대한 지식을 채우는 재미로 즐거운 시간이었다.

 

 

 

현대사의 문을 여는 열쇠, 근현대 세계사

 

 

   <하룻밤에 읽는 근현대 세계사>의 저자 미야자키 마사카츠는 책의 서두에서 현대사회란 '우리가 참가하고 있는 심포니의 전주곡 같은 것이고 2, 3세대 혹은 여러 세대 전에 살았던 사람들이 보내는 메시지‘라고 말한다. 즉, 우리가 근현대사를 알아야 하는 이유는 '어떤 발상으로 다음 세대를 맞이할 것인가, 지구 규모로 확대된 시스템을 어떻게 운영할 것인가' 하는 과제들 앞에서 우리가 다음 세대로 이어 줄 메시지는 무엇인가 등을 이해하기 위한 열쇠라는 것이다.

 

 

 

   19, 20세기의 역사는 여러 요인들이 서로 뒤엉켜 여러 가지 마찰을 낳음으로써 많은 사건과 함께 움직여왔다. 이에 저자는 현대사의 구조는 잇따른 사건의 전개에만 관심을 기울이지 않고 많은 사건을 연결하는 여러 개의 '끈'을 시야에 넣음으로써 더욱 분명하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한다. 특히, 자본주의 경제 시스템, 국민국가 시스템, 도시의 팽창, 다양한 인공적 네트워크의 성장, 기술 체계의 변화에 수반되는 사회 시스템의 변모는 18세기 후반 이후 현대까지 이어지고 있는 인류사회의 저변을 흐르고 있는 저음부다. 그것을 알아두지 않으면 최근의 민족분쟁 같은 건 이해할 수 없다. 다시 말해 중동 분쟁, 난민 문제 등 어려운 과제들이 산적해 있는 21세기의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19, 20세기 사람들의 메시지에 귀를 기울이고 역사와 대화해 보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저자는 근대를 가리켜 1760년대 산업혁명에서부터 1870년대 제국주의 시대의 시작까지로, 현대는 1870년대 제2차 산업혁명 때부터 현재까지로 구분한다. 1장에서는 핵심 키워드라고 할 수 있는 산업혁명을 중심으로, 철도와 증기선의 등장으로 인한 새로운 네트워크 형성, 급격한 인구 증가와 콜레라 창궐로 인한 근대 도시의 형성 과정과 무력 정복에서 자본에 의한 지배로 세계의 유럽화가 진행되는 과정을 보여준다. 이어 2장에서는 국민 국가라는 효율적인 정치 체제를 탄생시킨 프랑스 혁명을 기치로 하여 국민주의의 불길에 붕괴하는 빈체제, 철과 피로 추진된 독일 통일 과정을 살펴본다. 3장에서는 거대 국가인 미국의 탄생과정을 보여준다. 나아가 그들이 원주민을 강제로 열악한 땅으로 이주시키고, 서쪽의 광활한 땅을 섭렵해 대륙 국가를 형성해가는 과정, 링컨의 주도로 4년간 계속된 비참한 내전에 막을 내린 뒤 북부가 주도하는 통일국가론의 형태를 갖춰가는 모습을 담아낸다.

 

 

 

 

 

 

   4장에서는 압도적인 힘을 가진 유럽 세계가 우수한 무기의 힘을 빌려 아시아와 아프리카의 여러 지역을 식민지 세력으로 집어삼키기 시작하는 과정을 통해 아시아와 아프리카에 초래한 혼란의 역사를 살펴본다. 이어 5장에서는 20세기로 접어들어 전 세계가 제국주의로 좌충우돌하는 과정을 따라간다. 나아가 6장과 7장에서는 발칸반도에서 벌어진 오스트리아와 세르비아의 분쟁이 원인이 되어 발발한 제1차 세계대전과 그것으로 유발된 국제 정세의 변화를 함께 살펴본다. 이 무렵 오스만 제국은 해체되고 이슬람 세계는 분열하는데, 바로 여기에서 '중동 분쟁의 불씨'가 발생하니 오늘날까지 이어지는 분쟁의 원인을 살펴볼 수 있는 대목이다. 8장과 9장에서는 경제 위기로 시작된 제2차 세계대전의 양상과 이어지는 냉전, 현대에 들어 완성된 새로운 국가의 탄생과정을 쫓아간다. 마지막으로 10장에서는 소련의 붕괴와 성장하는 중국의 모습을 통해 재편되는 세계사의 흐름과 핵시대의 돌입, 누적되는 환경오염으로 악화되는 지구 환경에 대한 우려로 마무리한다.

 

 

 

 

 

 

   이처럼 <하룻밤에 읽는 근현대 세계사>는 세계사를 공부하다보면 흔히 접하게 되는 핵심 키워드를 비롯하여 전체적인 흐름을 조망할 수 있다는 점에서 장점이 많은 책이다. 다만 복잡하게 얽혀 있는 세계사를 단 한 권으로 집약하려다보니 세세한 접근이 아쉽지만 이해를 돕기 위해 실어놓은 각종 도표와 지도들 덕분에 간략하게나마 핵심에 다가갈 수 있어 좋았다. 근현대 세계사 외에도 일본사, 유럽사, 중국사, 세계사 책도 출간되어 있으니 이 기회에 함께 읽어보는 것도 좋은 방법이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세트] 땅의 역사 1~2 세트 - 전2권 땅의 역사
박종인 지음 / 상상출판 / 2018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 땅이 고스란히 기억하고 있는 대한민국의 역사를 오롯이 들여다보다!

역사란 영웅 한 사람이 만드는 게 아니라 모두가 함께 만드는 것임을 증명하는 책!

 

 

 

  저 이름 없는 무덤은, 저 황량한 터에 남아 있는 흔적은 우리에게 무엇을 알려주는가.

   조선일보 기자로 활동하며 기록되지 않은 역사, 잘못 기록된 역사를 땅에 남은 흔적을 통해 확인하는 TV시리즈 '박종인의 땅의 역사'를 진행한 바 있는 <땅의 역사>의 저자 박종인은 이렇게 말한다. 왜 임진왜란 때 권력층은 백성을 팽개치고 자기 목숨 구걸에 매진했는가. 왜 천재 과학자이자 기술자 장영실은 아무런 후학을 기르지 못하고 사라졌는가. 왜 일제 강점기 그 숱한 사람들은 나라를 팔아먹었는가. 이러한 의문들에 대해 해답은 주지 못해도, 그런 일들이 이 땅 역사에 수많은 중증 내·외상을 남겼고 우리가 미처 기록으로 알 수 없었거나 혹은 잘못 남겨진 흔적들을 새겨놓았노라고. 하여 큰사람들을 핍박하고 공을 가로채고 스스로를 대인이라 우긴 소인배들의 흔적을 보면 답답한 가슴을 짓누를 길이 없지만, 이순신이 그랬고 장영실이 그랬고 남자현이 그러했듯 황무지에 폐허가 됐을 이 세상을 구원한 큰사람들이 있었기에 지금 우리가 멀쩡하게 살고 있는 게 기적이 아니라는 사실 또한 알게 되었다고.

 

 

 

역사는 영웅 한 사람이 만드는 게 아니라 모두가 함께 만드는 것이다

 

 

   두 권으로 구성된 <땅의 역사>는 저자 박종인이 전국을 떠돌며 우리 땅 구석구석에서 발견한 역사의 명암을 살펴보고, 역사와 현실에 대한 통찰력 있는 삶을 살아갈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출간된 교양서이자 기행서다. 1권에서는 비겁 혹은 무능으로 일관했던 소인배들과 고집 혹은 지조로 이 땅을 일으킨 대인배들을 집중 조명한다. 또한 변화와 개혁에 무지했던 막힌 자들과 연오랑과 세오녀 이야기 및 서동요 등 잘못 배운 고대사 이야기도 함께 살펴본다. 여기에서는 '위대한 배달민족이 남긴 찬란한 역사만을 알고 있는 분들은 심호흡을 하고 페이지를 넘기기 바란다'던 저자의 당부에 유의하길 바란다. 그간 제대로 알지 못했던 소인배들의 행각들 혹은 기록으로 제대로 알려지지 않았던 무지한 자들의 악행으로 인해 우리 역사가 얼마나 짓밟히고 더럽혀져 왔는지를 차마 두 눈으로 보기 어려울 지경이니 말이다.

 

 

 

   첫 장에서부터 벌써 숨이 막힌다. 임진왜란이 터지자 1년하고도 여섯 달 만에 도피처에서 내놓은 선조의 시국 담화문 내용하며 자신을 의주까지 무사히 수행한 이들에게 내린 호성공신은 무려 86명이었으나, 전쟁터에 나가 목숨 걸고 싸운 이들에게 내린 선무공신은 고작 18명에 불과했던 이 졸렬한 자가 임금이었다니 참으로 통탄할 일이다. 전시비상연락체계가 제대로 가동되지 않은 탓에 일본군 70여 명을 사살하여 육전 첫 승리를 이끈 신각을 죽음으로 내몬 비극은 부실한 국가 시스템의 허실을 여지없이 보여준다. 동아시아 3국 고대사를 두고 세 나라가 첨예하게 대립 중인 현실을 일러주는 광개토왕릉 속 석실의 그 폐잔함은 처참하기까지 하다. 무지한 자들로 인해 몇 년을 걸려도 모자랐을 무령왕릉 발굴 작업이 열 두 시간 만에 끝난, 대한민국 고고학 사상 최고 최대의 발견이었으나 최악의 발굴 사건이 되어버린 일들 역시 안타깝기 그지없다.

 

 

 

강화도 병영 연무당에서 신헌과 모리야마는 8년을 끈 교섭 현상을 사흘 만에 끝냈다. 모리야마는 신헌에게 13조로 된 조약 초안을 내밀었다. 황제라는 명칭을 쓰되, 이름은 쓰지 않는다는 조건을 일본이 받아들였다. 신헌이 이렇게 기록했다. '대(大)'자와 '황제 폐하'와 '국왕 전하'를 지웠다. 일이 타당하게 되었다.(신헌, 『심행일기』) 나머지 조항은 모조리 통과됐다.

이로써 조선은 일본을 황제라 부르지 않게 되었다. 조선 내 일본인 범죄자는 일본 관리가 관할하는 치외법권을 누리게 되었고(10조) 해안을 마음대로 항해하며 지도를 작성하게 되었다(7조). 13개 조항에 분명하게 적혀 있는 이들 불평등 내용에 대해 조선 정부는 전혀 개의치 않았다. 황제라 부르지 않게 됐으니까. 그날이 1876년 2월 27일이었다. 명분이 눈이 가려, 모든 것을 잃은 날이었다. / <땅의 역사> 1권 87p

 

 

 

  우리 조선 사람은 매양 이해 이외에서 진리를 찾으려 하므로 석가가 들어오면 조선의 석가가 되지 않고 석가의 조선이 되며, 공자가 들어오면 조선의 공자가 되지 않고 공자의 조선이 되며, 무슨 주의가 들어와도 조선의 주의가 되지 않고 주의의 조선이 되려 한다. 그리하여 도덕과 주의를 위하는 조선은 있고, 조선을 위하는 도덕과 주의는 없다.

아! 이것이 조선의 특색이냐, 특색이라면 특색이나 노예의 특색이다. 나는 조선의 도덕과 조선의 주의를 위하여 곡하려 한다. - 1925년 1월 2일 [동아일보], 신채호 <낭객의 신년만필> / <땅의 역사> 1권 142p

 

 

 

 

 

 

   그러는 와중에도 자신의 재산 가치 600억 원에 달하는 돈을 수습하여 만주로 간 이회영 형제와 같은 대인배들이 보여준 용기는 마음을 뭉클하게 한다. 그들은 자신들의 안위보다 독립운동조직에게 자금을 대어 신흥무관학교와 같은 만주 항일투쟁의 불꽃을 지핀 운동 기지를 설치했다. 이곳에서 한국 독립운동 인물사, 한국독립운동 노선사가 갈라져 나간 것과 다름없음이다. 하지만 가난을 피해, 대의를 좇아 곳곳으로 흩어진 형제들은 고단하게 살고 고단하게 죽었다. 그 많던 재산을 나라의 독립을 위해 다 바쳤던 이들의 말로는 처참했다고 생각하니 내 목이 메인다. "당연히 그 당시에 독립운동 안 한 사람 있겠어요? 나라 찾기 위해서 누구든지, 말하자면, 나라를 찾는다는 가치는 지금이라도 마찬가지죠…(중략)…어쩌다 자기 개인 영달을 한 사람들도 있겠지만, 저는 그냥 그분들이 그 시대를 사시면서 당연히 그러셨을 것이라고 생각해요. 예를 들어서 어떤 조그마한 선행이다, 그런 것들 뭐, 그렇잖아요." 마찬가지로 독립자금을 대었던 조병순의 증손자 조동현의 말은 우리 모두를 숙연하게 만든다. 대인이 한 일을 어떤 조그마한 선행 같은 것으로 에두르는 그 마음이 얼마나 큰 가 말이다.

 

 

 

 

 

 

   이어 <땅의 역사> 2권에서는 사람이었으나 사람이 아니었던 민족의 배신자들, 사람이었으되 사람 취급을 받지 못했던 여인들, 빛나는 의협심을 보여준 사내들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또한 조선시대의 왕조 스캔들, 식민 시대의 흔적들, 민초들의 위대한 이야기도 함께 다룬다. 여기에서 눈에 띄는 사진 하나가 등장하는데, 바로 경성 주요 시설을 소개한 일제 강점기 관광엽서에 남겨진 '남산총독관저'다. 바로 이 자리, 이 총독 관저에서 1910년 8월 22일 대한제국 총리대신 이완용과 일본국 3대 조선통감 데라우치 마사타케가 조선을 일본에 넘기는 병탄 조약에 서명했다. 이른바 경술국치가 공식적으로 조인된 현장이다.

 

 

 

   이 와중에도 이권 다툼을 벌이는 친일파 사이의 대립은 가관이다. 특히 "러시아 전성시대에는 친러, 미국 전성시대에는 친미, 러일전쟁 후에는 친일을 한 지조 없이 교묘하게 처세하는 자"를 가리키는 이완용은 그 이름 석 자만 들어도 이가 갈릴 정도다. 삼다도라 불리는 제주에 여자가 많은 이유도 알고 보니 서글픈 역사가 녹아들어 있었다. 과거, 전복을 진상하라는 무리한 요구에 제주민은 백성이 아니라 그저 공물 생산 혹은 채집인에 불과했고, 그 결과 남자들은 떠나고 땅 살림과 바다 살림은 여자가 맡게 되어 그리되었다는 것이다. 오늘날 이를 아는 이가 과연 몇 있을까.

 

 

 

 

 

 

21세기 한개마을 방문객에 남인과 노론은 없다. 그냥 대한민국 사람이다. 그런데 오는 사람들 저마다 자기네 가문을 이야기한다. 그러면 북비 이석문과 응와 이원조가 살았던 그 집, 응와고택을 지키는 북비공 8대손 이수학(2018년 여든 살이다)이 이리 말하곤 한다. "머리에 든 지식 많다고 양반이 아니고 무식하다고 상놈이 아니다. 할아버지를 들먹이며 자기네가 양반이라고 하는데, 정치를 잘한다고 하여, 권력을 오래 잡았다고 하여 양반이 아니다. 염치와 도리를 지키고 할 바를 하면 그게 양반이다." 입 발린 수가를 신념이라 하고, 낡은 족보에 적힌 조상 덕을 자기 것인 양 떠드는 21세기 양반들은 고개 숙여 북쪽으로 난 싸리문을 들어가 볼 일이다. / <땅의 역사> 2권 143p

 

 

그래서 문득 삼척을 보았다. 솔섬 사라진 월천리에서, 507년 동안 정통성을 찾아 헤매다 11년 만에 망한 나라를 보았다. 월천리 농부가 내뱉은 배신감을 보았다. 경술국치 그날, 나라를 넘기는 데 간여한 내각서기관장 한창수는 순종으로부터 훈장을 받았다. 한창수는 일본 정부로부터 남작 작위와 은사채 2만 5000원을 받았다. 삼척 여행, 여기까지다. 흥망한 신라, 흥망한 고려, 흥망한 조선 왕조 흔적이 모두 한나절 거리에 흩어져 있다. / 189p

 

 

 

 

 

 

   박종인의<땅의 역사>는 땅에 남겨진 역사의 흔적을 통해 기록으로 증명할 수 없는 혹은 숨겨진 이야기들을 살펴볼 수 있는 좋은 역사서와 다름없다. 책의 마지막 페이지에는 각 장의 내용에 소개된 국내의 유적과 흔적 주소가 남겨져 있으니 이를 참고해 여행을 기획해보거나 자녀와 함께 다녀와 보는 것도 좋을 듯하다. 끝으로 관광 사업을 목적으로 각 시, 도청에서 제멋대로 각색하거나 만들어진 도시의 전설들을 경계했던 저자의 우려처럼 우리 모두 역사 앞에서는 보다 진정성 있는 접근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역사 앞에 지우개란 없다는 말을 깊게 생각해볼 일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