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트] 땅의 역사 1~2 세트 - 전2권 땅의 역사
박종인 지음 / 상상출판 / 201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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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땅이 고스란히 기억하고 있는 대한민국의 역사를 오롯이 들여다보다!

역사란 영웅 한 사람이 만드는 게 아니라 모두가 함께 만드는 것임을 증명하는 책!

 

 

 

  저 이름 없는 무덤은, 저 황량한 터에 남아 있는 흔적은 우리에게 무엇을 알려주는가.

   조선일보 기자로 활동하며 기록되지 않은 역사, 잘못 기록된 역사를 땅에 남은 흔적을 통해 확인하는 TV시리즈 '박종인의 땅의 역사'를 진행한 바 있는 <땅의 역사>의 저자 박종인은 이렇게 말한다. 왜 임진왜란 때 권력층은 백성을 팽개치고 자기 목숨 구걸에 매진했는가. 왜 천재 과학자이자 기술자 장영실은 아무런 후학을 기르지 못하고 사라졌는가. 왜 일제 강점기 그 숱한 사람들은 나라를 팔아먹었는가. 이러한 의문들에 대해 해답은 주지 못해도, 그런 일들이 이 땅 역사에 수많은 중증 내·외상을 남겼고 우리가 미처 기록으로 알 수 없었거나 혹은 잘못 남겨진 흔적들을 새겨놓았노라고. 하여 큰사람들을 핍박하고 공을 가로채고 스스로를 대인이라 우긴 소인배들의 흔적을 보면 답답한 가슴을 짓누를 길이 없지만, 이순신이 그랬고 장영실이 그랬고 남자현이 그러했듯 황무지에 폐허가 됐을 이 세상을 구원한 큰사람들이 있었기에 지금 우리가 멀쩡하게 살고 있는 게 기적이 아니라는 사실 또한 알게 되었다고.

 

 

 

역사는 영웅 한 사람이 만드는 게 아니라 모두가 함께 만드는 것이다

 

 

   두 권으로 구성된 <땅의 역사>는 저자 박종인이 전국을 떠돌며 우리 땅 구석구석에서 발견한 역사의 명암을 살펴보고, 역사와 현실에 대한 통찰력 있는 삶을 살아갈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출간된 교양서이자 기행서다. 1권에서는 비겁 혹은 무능으로 일관했던 소인배들과 고집 혹은 지조로 이 땅을 일으킨 대인배들을 집중 조명한다. 또한 변화와 개혁에 무지했던 막힌 자들과 연오랑과 세오녀 이야기 및 서동요 등 잘못 배운 고대사 이야기도 함께 살펴본다. 여기에서는 '위대한 배달민족이 남긴 찬란한 역사만을 알고 있는 분들은 심호흡을 하고 페이지를 넘기기 바란다'던 저자의 당부에 유의하길 바란다. 그간 제대로 알지 못했던 소인배들의 행각들 혹은 기록으로 제대로 알려지지 않았던 무지한 자들의 악행으로 인해 우리 역사가 얼마나 짓밟히고 더럽혀져 왔는지를 차마 두 눈으로 보기 어려울 지경이니 말이다.

 

 

 

   첫 장에서부터 벌써 숨이 막힌다. 임진왜란이 터지자 1년하고도 여섯 달 만에 도피처에서 내놓은 선조의 시국 담화문 내용하며 자신을 의주까지 무사히 수행한 이들에게 내린 호성공신은 무려 86명이었으나, 전쟁터에 나가 목숨 걸고 싸운 이들에게 내린 선무공신은 고작 18명에 불과했던 이 졸렬한 자가 임금이었다니 참으로 통탄할 일이다. 전시비상연락체계가 제대로 가동되지 않은 탓에 일본군 70여 명을 사살하여 육전 첫 승리를 이끈 신각을 죽음으로 내몬 비극은 부실한 국가 시스템의 허실을 여지없이 보여준다. 동아시아 3국 고대사를 두고 세 나라가 첨예하게 대립 중인 현실을 일러주는 광개토왕릉 속 석실의 그 폐잔함은 처참하기까지 하다. 무지한 자들로 인해 몇 년을 걸려도 모자랐을 무령왕릉 발굴 작업이 열 두 시간 만에 끝난, 대한민국 고고학 사상 최고 최대의 발견이었으나 최악의 발굴 사건이 되어버린 일들 역시 안타깝기 그지없다.

 

 

 

강화도 병영 연무당에서 신헌과 모리야마는 8년을 끈 교섭 현상을 사흘 만에 끝냈다. 모리야마는 신헌에게 13조로 된 조약 초안을 내밀었다. 황제라는 명칭을 쓰되, 이름은 쓰지 않는다는 조건을 일본이 받아들였다. 신헌이 이렇게 기록했다. '대(大)'자와 '황제 폐하'와 '국왕 전하'를 지웠다. 일이 타당하게 되었다.(신헌, 『심행일기』) 나머지 조항은 모조리 통과됐다.

이로써 조선은 일본을 황제라 부르지 않게 되었다. 조선 내 일본인 범죄자는 일본 관리가 관할하는 치외법권을 누리게 되었고(10조) 해안을 마음대로 항해하며 지도를 작성하게 되었다(7조). 13개 조항에 분명하게 적혀 있는 이들 불평등 내용에 대해 조선 정부는 전혀 개의치 않았다. 황제라 부르지 않게 됐으니까. 그날이 1876년 2월 27일이었다. 명분이 눈이 가려, 모든 것을 잃은 날이었다. / <땅의 역사> 1권 87p

 

 

 

  우리 조선 사람은 매양 이해 이외에서 진리를 찾으려 하므로 석가가 들어오면 조선의 석가가 되지 않고 석가의 조선이 되며, 공자가 들어오면 조선의 공자가 되지 않고 공자의 조선이 되며, 무슨 주의가 들어와도 조선의 주의가 되지 않고 주의의 조선이 되려 한다. 그리하여 도덕과 주의를 위하는 조선은 있고, 조선을 위하는 도덕과 주의는 없다.

아! 이것이 조선의 특색이냐, 특색이라면 특색이나 노예의 특색이다. 나는 조선의 도덕과 조선의 주의를 위하여 곡하려 한다. - 1925년 1월 2일 [동아일보], 신채호 <낭객의 신년만필> / <땅의 역사> 1권 142p

 

 

 

 

 

 

   그러는 와중에도 자신의 재산 가치 600억 원에 달하는 돈을 수습하여 만주로 간 이회영 형제와 같은 대인배들이 보여준 용기는 마음을 뭉클하게 한다. 그들은 자신들의 안위보다 독립운동조직에게 자금을 대어 신흥무관학교와 같은 만주 항일투쟁의 불꽃을 지핀 운동 기지를 설치했다. 이곳에서 한국 독립운동 인물사, 한국독립운동 노선사가 갈라져 나간 것과 다름없음이다. 하지만 가난을 피해, 대의를 좇아 곳곳으로 흩어진 형제들은 고단하게 살고 고단하게 죽었다. 그 많던 재산을 나라의 독립을 위해 다 바쳤던 이들의 말로는 처참했다고 생각하니 내 목이 메인다. "당연히 그 당시에 독립운동 안 한 사람 있겠어요? 나라 찾기 위해서 누구든지, 말하자면, 나라를 찾는다는 가치는 지금이라도 마찬가지죠…(중략)…어쩌다 자기 개인 영달을 한 사람들도 있겠지만, 저는 그냥 그분들이 그 시대를 사시면서 당연히 그러셨을 것이라고 생각해요. 예를 들어서 어떤 조그마한 선행이다, 그런 것들 뭐, 그렇잖아요." 마찬가지로 독립자금을 대었던 조병순의 증손자 조동현의 말은 우리 모두를 숙연하게 만든다. 대인이 한 일을 어떤 조그마한 선행 같은 것으로 에두르는 그 마음이 얼마나 큰 가 말이다.

 

 

 

 

 

 

   이어 <땅의 역사> 2권에서는 사람이었으나 사람이 아니었던 민족의 배신자들, 사람이었으되 사람 취급을 받지 못했던 여인들, 빛나는 의협심을 보여준 사내들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또한 조선시대의 왕조 스캔들, 식민 시대의 흔적들, 민초들의 위대한 이야기도 함께 다룬다. 여기에서 눈에 띄는 사진 하나가 등장하는데, 바로 경성 주요 시설을 소개한 일제 강점기 관광엽서에 남겨진 '남산총독관저'다. 바로 이 자리, 이 총독 관저에서 1910년 8월 22일 대한제국 총리대신 이완용과 일본국 3대 조선통감 데라우치 마사타케가 조선을 일본에 넘기는 병탄 조약에 서명했다. 이른바 경술국치가 공식적으로 조인된 현장이다.

 

 

 

   이 와중에도 이권 다툼을 벌이는 친일파 사이의 대립은 가관이다. 특히 "러시아 전성시대에는 친러, 미국 전성시대에는 친미, 러일전쟁 후에는 친일을 한 지조 없이 교묘하게 처세하는 자"를 가리키는 이완용은 그 이름 석 자만 들어도 이가 갈릴 정도다. 삼다도라 불리는 제주에 여자가 많은 이유도 알고 보니 서글픈 역사가 녹아들어 있었다. 과거, 전복을 진상하라는 무리한 요구에 제주민은 백성이 아니라 그저 공물 생산 혹은 채집인에 불과했고, 그 결과 남자들은 떠나고 땅 살림과 바다 살림은 여자가 맡게 되어 그리되었다는 것이다. 오늘날 이를 아는 이가 과연 몇 있을까.

 

 

 

 

 

 

21세기 한개마을 방문객에 남인과 노론은 없다. 그냥 대한민국 사람이다. 그런데 오는 사람들 저마다 자기네 가문을 이야기한다. 그러면 북비 이석문과 응와 이원조가 살았던 그 집, 응와고택을 지키는 북비공 8대손 이수학(2018년 여든 살이다)이 이리 말하곤 한다. "머리에 든 지식 많다고 양반이 아니고 무식하다고 상놈이 아니다. 할아버지를 들먹이며 자기네가 양반이라고 하는데, 정치를 잘한다고 하여, 권력을 오래 잡았다고 하여 양반이 아니다. 염치와 도리를 지키고 할 바를 하면 그게 양반이다." 입 발린 수가를 신념이라 하고, 낡은 족보에 적힌 조상 덕을 자기 것인 양 떠드는 21세기 양반들은 고개 숙여 북쪽으로 난 싸리문을 들어가 볼 일이다. / <땅의 역사> 2권 143p

 

 

그래서 문득 삼척을 보았다. 솔섬 사라진 월천리에서, 507년 동안 정통성을 찾아 헤매다 11년 만에 망한 나라를 보았다. 월천리 농부가 내뱉은 배신감을 보았다. 경술국치 그날, 나라를 넘기는 데 간여한 내각서기관장 한창수는 순종으로부터 훈장을 받았다. 한창수는 일본 정부로부터 남작 작위와 은사채 2만 5000원을 받았다. 삼척 여행, 여기까지다. 흥망한 신라, 흥망한 고려, 흥망한 조선 왕조 흔적이 모두 한나절 거리에 흩어져 있다. / 189p

 

 

 

 

 

 

   박종인의<땅의 역사>는 땅에 남겨진 역사의 흔적을 통해 기록으로 증명할 수 없는 혹은 숨겨진 이야기들을 살펴볼 수 있는 좋은 역사서와 다름없다. 책의 마지막 페이지에는 각 장의 내용에 소개된 국내의 유적과 흔적 주소가 남겨져 있으니 이를 참고해 여행을 기획해보거나 자녀와 함께 다녀와 보는 것도 좋을 듯하다. 끝으로 관광 사업을 목적으로 각 시, 도청에서 제멋대로 각색하거나 만들어진 도시의 전설들을 경계했던 저자의 우려처럼 우리 모두 역사 앞에서는 보다 진정성 있는 접근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역사 앞에 지우개란 없다는 말을 깊게 생각해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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