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 끝의 온실
김초엽 지음 / 자이언트북스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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멸망의 위기에 처한 인류의 미래를 생생하게 구현해낸 소설!

아주 작아 보이는 것들이 일으키는 파동을, 여린 온기가 불어넣은 생명의 힘을 희망으로 엮어낸 놀라운 작품!

 

 

 

 

[헤데라 트리피두스Hedera trifidus, 일명 모스바나. 송악속의 상록성 덩굴식물로 흔히 키우는 관상용 담쟁이의 근연종이다. 다른 식물들에 피해를 입힐 정도로 강한 침투성 식물이고, 땅에서도 넓게 퍼져 잘 자라지만 주로 벽이나 나무를 타고 오른다. 독성이 있어 피부염이나 알레르기를 유발하고, 식물의 거의 모든 부위가 사람에게 위험하며 특히 잎과 열매는 더 강한 독성을 가진다.]

 

 

 

  때는 2129, 더스트생태연구센터에서 연구원으로 재직 중인 아영은 산림청으로부터 모스바나라 불리는 식물의 샘플을 분석해달라는 요청을 받는다. 겉은 평범해 보이지만 피부에 닿으면 매우 간지럽고 따끔해 일명 악마의 식물이라 불릴 정도로 위험한 이 식물이 최근 강원도 해월의 한 폐허를 중심으로 이상 증식하고 있다는 마을 주민들의 제보가 빗발치고 있었기 때문이다. 생태연구원인 아영에게도 독성을 지닌 덩굴식물이 한 야산을 다 뒤덮을 만큼 이상 증식을 하는 광경은 상당히 이례적이다. 그곳이 한때 한국의 최대 로봇 생산지였으나 기계들의 집단 오류로 이제는 도시 전체가 폐허로 변한 해월인 것도 의아한 일이다. 그도 그럴 것이 모스바나는 더스트 시대, 이른바 더스트 폴이라 불리는 먼지 폭풍이 지나간 자리에는 그 어떤 유기체도 살아남기 힘들었던 멸종의 시대에 독점종의 지위를 차지하다가 더스트가 종식되고 마침내 인류가 재건되기 시작하면서 서식지가 급격히 감소했고, 최근까지도 국내에선 거의 찾아볼 수 없었던 종이었기에 의문은 더욱 짙어진다.

 

 

 

  대체 왜? 끔찍한 바이러스나 세균 테러도 아니고, 생물 테러라기엔 단지 성가신 식물을 증식시켜 방제 담당 직원들을 괴롭히는 것 정도에 불과한 것을 굳이 왜? 해월 인근 지역 주민들에게 원한을 품거나, 농사를 방해할 목적이거나 그도 아니면 자연 생태계를 교란시키려는 목적으로? 대체 누가 그런 의도로 하필이면 모스바나를 이용한단 말인가. 그렇게 누가 봐도 선뜻 의미를 알 수 없는 기이한 광경과 마주한 아영은 문득, 과거에도 이와 유사한 장면을 어디선가 목격한 것 같은 기시감을 느낀다. 괴상한 탈것과 인간형 로봇들이 쌓여있는 창고, 잡초와 모스바나였던 것으로 추정되는 덩굴식물이 아무렇게나 방치되어 있던 정원, 그 가운데 놓인 안락의자에 앉아 종종 꾸벅꾸벅 낮잠을 자거나 허리를 굽혀 한참동안 식물들을 들여다보고, 이따금 재미있는 식물 이야기나 더스트 시대에 자신이 보았던 흥미로운 존재들에 대해 들려주곤 했던 한 노인. 더스트가 종식된 후 자취를 감추었던 모스바나가 다시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한 지금, 그동안 잊고 있었던 노인 이희수에 대한 기억을 건져 올리게 된 건 과연 우연일까. 아영은 물론 소설을 읽는 독자들은 이 미스터리한 현상 사이에서 어쩐지 이제껏 묻혀 있었던 혹은 보지 못했던 세상의 비밀과 마주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기묘한 예감에 빠져들게 된다.

 

 

 

그건 생존과 번식, 기생에 특화된 식물이지요. 더스트 시대의 정신을 집약해놓은 것 같다고 할까요. 악착같이 살아남고, 죽은 것들을 양분 삼아 자라나고, 한번 머물렀던 땅은 엉망으로 만들어버리고, 한자리에서 오래 사는 것이 아니라 최대한 멀리 뻗어 나가는 것이 삶의 목적인…… 그 자체로 더스트를 닮은 식물이지요.” / 106p

 

 

 

  이후 모스바나에 대한 아영의 의문은 에티오피아에서 랑가노의 마녀들이라 불리며 마녀이자 성인, 구원자로 통하는 아마라와 나오미 자매에게로 향하게 한다. 그들은 모스바나를 에티오피아 곳곳에 도입한 장본인이자, 그 누구보다도 모스바나에 대해 잘 알고 있을 뿐만 아니라, 그들이 이를 이용해 더스트로 고통 받던 사람들을 치료까지 했다는 정보를 입수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아영은 이 만남을 통해 한때 인류를 멸망 위기에 몰아넣은 더스트가 휩쓸고 간 풍경과 그곳에서 살아남기 위해 거대한 돔 시티와 소규모의 돔 마을을 구성한 사람들, 돔에서 밀려난 사람들을 대상으로 가해진 폭력, 더스트에 내성을 갖고 있던 이들이 내성종이라고 불리며 착취당했던 과거의 이야기들을 생생하게 전해듣는다. 그리고 마침내 이들이 당도한 프림 빌리지라 불리는 한 도피처에 관한 이야기도 듣게 된다. 한 식물 연구소를 중심으로 한 공동체와 그곳에서 개량된 더스트 저항종 식물들, 그 식물을 심으며 함께 살았던 사람들, 그들이 세상 밖으로 전한 것들까지. 아영은 그들에 관한 이야기 속에서 이제껏 알지 못했던, 세상 밖으로 드러나지 않았던, 멸망의 위기를 극복해낸 인류 재건의 또 다른 역사를 마주하게 된다.

 

 

 

더스트 시대에는 이타적인 사람들일수록 살아남기 어려웠어. 우리는 살아남은 사람들의 후손이니까, 우리 부모나 조부모 세대 중 선량하게만 살아온 사람들은 찾기 힘들겠지. 다들 조금씩은 다른 사람의 죽음을 딛고 살아남았어. 그런데 그중에서도 나서서 남들을 짓밟았던 이들이 공헌자로 존경을 받고 있다고, 그게 잘못되었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거든.” / 63p

 

 

세계 곳곳에 더스트를 피하기 위한 거대 돔이 세워졌을 때 사람들은 숲이나 들판의 생물들을 위한 돔은 만들지 않았다. 많은 종이 멸종을 향해 갔지만, 빠르게 더스트에 적응해 변이한 식물들도 있었다. 학자들은 더스트 자체가 유전자의 돌연변이를 유도해 빠른 변이를 촉진했을 것이라고 추정했다. () 더스트로 죽은 숲 위에 새로운 생물종이 숲을 꾸리는 덧생태계도 나타났다. 그렇게 생겨난 변형종들은 더스트가 사라진 이후에도 한동안 자연을 지배하면서 이전에는 존재하지 않았던 풍경을 만들어냈다. 그러다 21세기 후반부터는 더스트 적응종들이 더스트가 없는 환경에 맞추어 다시 변하며 생태계의 풍경을 바꾸고 있었다. / 83p

 

 

 




 

 

 

 

  이처럼 지구 끝의 온실은 모스바나라는 한 식물에 관한 이야기로부터 출발하여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영원히 잊힐 뻔했던 인류 구원의 한 역사를 생생하게 보여주는 SF소설이다. 멸망한 세계 속 유일한 도피처인 온실로부터 파생되어 온 인류 재건의 역사는, 어떤 위대한 발견과 뛰어난 능력을 가진 특정한 누군가에 의한 것이 아니라 끝끝내 살아남아 그저 내일을 믿고, 희망의 씨앗을 부지런히 실어 나르며 가꿔온 사람들의 노력에 의해 이루어진 것임을 보여준다. 무엇보다 멸망 속에서 새로이 일으킨 지구의 역사를 식물의 관점에서 재구성한 것은 우리가 왜 김초엽이라는 작가에 주목해야 하는지를 증명한다. 인간들이 부단히 자신들의 능력을 증명하느라 지워낸, 동식물들의 삶에 가득한 경쟁과 분투 그리고 그들의 끈질긴 생명력에 온기를 불어넣은 그녀의 작업은 소설이 우리 시대에 어떤 메시지를 줄 수 있어야 하는지를 끊임없이 고민한 노력이 있었기에 가능한 게 아니었을까.

 

 

 

아영에게는 모두 소중한 연구 대상인데, 왜 하필 연구비를 들여 그 식물들을 복원하고 보존해야 하냐는 질문 앞에서는 늘 할말이 없어지곤 했다. 가장 그럴싸한 건 생물자원으로서의 가능성, 즉 식용이나 화훼 작물로의 쓸모나 약리적 성분을 강조하는 거였지만 아무 식물에나 그런 코멘트를 붙일 수는 없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맛있거나 예쁘거나, 하다못해 약으로 쓸 수 있는 식물 외에는 더 이상 지구상에 존재하지 않아도 상관없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 30p

 

 

당신은 재건의 역사를 식물들의 관점에서 재구성해보겠다고 했습니다. 아직도 그 작업이 수행되지 않았다는 점이 놀라울 정도입니다. 인류는 그간 얼마나 인간 중심적인 역사만을 써온 것일까요. 식물 인지 편향은 동물로서의 인간이 가진 오래된 습성입니다. 우리는 동물을 과대평가하고 식물을 과소평가합니다. 동물들의 개별성에 비해 식물들의 집단적 고유성을 폄하합니다. 식물들의 삶에 가득한 경쟁과 분투를 보지 않습니다. 문질러 지운 듯 흐릿한 식물 풍경을 바라볼 뿐입니다. 우리는 피라미드형 생물관에 종속되어 있습니다. 식물과 미생물, 곤충들은 피라미드를 떠받치는 바닥일 뿐이고, 비인간 동물들이 그 위에 있고, 인간은 피라미드의 꼭대기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완전히 반대로 알고 있는 셈이지요. / 365p

 

 

 




 

 

 

 

  인류의 이기로 인해 초래된 지구 위기, 김초엽이 소설 속에서 보여준 미래가 낯설지 않은 것은 우리가 지금 마주하고 있는 현실이기 때문이다. 좀처럼 종식되지 않고 있는 코로나 시대 속에서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무엇이고, 전해주어야 할 것은 무엇일까. 이 소설로 하여금 독자들이 각자 그 해답을 얻을 수 있기를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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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발하고 괴상하고 웃긴 과학 사전! : 동물 기발하고 괴상하고 웃긴 과학 사전!
내셔널지오그래픽 키즈 지음, 신수진 옮김 / 비룡소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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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셔널지오그래픽에서 엄선한 신개념 동물 과학 사전!

세상에 이런 일이, 우리가 이제껏 몰랐던 신비한 동물의 세계를 만나보다!

 

 

 

  두 아이를 키우다보면 동물은 역시 아이들에게 가장 친근감 있는 언어라는 생각이 든다. 꽥꽥, 멍멍, 야옹, 엉금엉금, 깡충깡충아직 말을 틔우지 못한 아이들조차 먼저 반응을 보이고 따라하는 단어들을 살펴보면 대체로 동물과 관련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3살이 된 나의 아이도 동물도감만큼은 지루해하지 않고 마치 오늘 처음 읽은 것처럼 재미나게 본다. 하지만 기존에 가지고 있던 책만으로는 어쩐지 부족한 느낌이라 새로운 유형의 동물도감을 찾고 싶었는데, 마침 재미있는 제목의 책이 출간되어 눈길을 끌었다. 제목부터 심상치 않아 보이는 이 책 기발하고 괴상하고 웃긴 과학 사전! 1동물 편이다.

 

 

 

세상에! 내가 몰랐던 기상천외한 동물의 세계!

 

 

  이 책은 내셔널지오그래픽 키즈에서 새롭게 만든 신개념 과학 사전으로, 기존의 동물도감에서는 볼 수 없었던 독특한 구성이 눈에 띈다. 이제껏 우리가 잘 알지 못했던 동물에 관한 흥미로운 정보와 이슈를 한 데 모아 아이들의 호기심을 자극한다. 무엇보다 단숨에 시선을 사로잡는 생생한 동물 사진의 퀄리티와 독특한 서체는 읽는 재미를 더한다. 덕분에 아직 글을 읽지 못하는 3살 된 아이도 책의 선명하고 화려한 색감에 흠뻑 빠져들게 된다.

 

 

 




 

 

 

 

  책 속에는 세상에 이런 일이!’라고 놀랄 만한 정보들이 무려 300가지나 된다. 새처럼 짹짹 소리를 내는 치타, 자기의 침을 퉤퉤 뱉어서 둥지를 만드는 동굴칼새, 간이 몸무게의 4분의 1을 차지할 만큼 무거운 백상아리, 의사소통을 위해 적어도 24가지 소리를 낼 수 있는 닭, 한 시간에 최대 1200마리의 모기를 먹어 치운다는 박쥐까지. 이제껏 우리가 잘 모르고 있었던 동물들의 기상천외한 정보들을 알려준다. 어떤 종류의 물고기들은 자기가 눈 오줌으로 다른 물고기들과 이야기를 나누기도 하고, 굴은 수컷이었다가 자라면 암컷이 된다고 하니, 이 또한 참 신기한 일이다. 이처럼 책에는 동물의 독특한 습성뿐만 아니라 동물 고유의 특성을 연구해 인간의 삶을 이롭게 한 사례들도 소개한다. 일본의 어느 공학자는 오랜 기간 올빼미의 비행을 연구해 그 원리를 응용하여 신칸센 초고속 열차를 시속 300킬로미터 이상 빠르게 달릴 수 있는 방법을 발견했고, 어느 과학자는 벽에 찰싹 달라붙는 도마뱀붙이의 발을 연구해 초강력 테이프를 개발했다고 하니 새삼 동물과의 공생이 얼마나 인간에게 유익한지를 깨달을 수 있다.

 

 

 



 

 

 

 

  『기발하고 괴상하고 웃긴 과학 사전동물 편외에도 공룡 편’, ‘우리 몸 편도 함께 출간되었다고 하니 더욱 기대된다. 코로나19로 인해 아이와의 외출이나 동물원 구경도 마음처럼 하기 어려운 요즘, 이 책으로 하여금 재미있는 동물 탐험 여행을 떠나보시길 추천 드린다.

 

 

 

출판사로부터 도서 협찬을 받았지만, 본인의 주관적인 견해에 의하여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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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전한 행복
정유정 지음 / 은행나무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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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가스라이팅으로부터 자유롭다고 할 수 있을까!

한 나르시스트의 끔찍하고 추악한 범죄 행위 뒤에 어른거리는, 우리가 인지하지 못하는 사이에 누군가에게 쉽게 자행한 가스라이팅의 일면을 들여다보게 하는 소설!

 

 

 

   언제부턴가 우리 사회에 심심치 않게 등장하는 기묘한 현상 하나가 있다. 어떤 사람의 심리 상태에 조작을 가해 자신을 불신하고 가해자에 의존케하여 심리적 학대를 가하는 행위, 바로 가스라이팅 (Gas-lighting)이다. 주로 연인이나 자녀, 부부, 직장에서와 같이 아주 가깝고 친밀한 관계 속에서 애착의 형태를 띤 채로 나타나거나 비대칭적 권력으로 통제하고 억압하려 할 때 이뤄지게 된다. 대체로 가스라이팅을 가하는 가해자들은 나르시시즘을 기본적으로 지니고 있는 것으로 분석되며, 이들은 널 위해서’, ‘내가 널 잘 아는데’ ‘널 사랑해서와 같이 피해자를 위한다는 명목 하에 가스라이팅을 진행하기 때문에 피해자 대부분은 자신이 당하고 있는 사실을 인지하지 못한다고 한다. 전문가들에 따르면 가스라이팅을 벗어나기 위한 가장 최선의 방법은 단절이라고 말하지만 사실상 완전한 단절이 어려운 부모-자녀의 관계 속에서는 지속적인 피해가 더욱 불가피한 것으로 보인다.

 

 

 

  정유정의 소설 완전한 행복은 바로 이러한 가스라이팅, 심리 조작으로 인한 지배가 타인의 삶을 휘두르는 순간 발생되는 악에 주목한 이야기다. 행복은 덧셈이 아니라 뺄셈이며 완전해질 때까지, 불행의 가능성을 없애가는것이라는 신념을 가진 나르시스트 신유나를 중심으로 소설은 주변 사람들이 그녀로부터 어떻게 자신도 모르게 가스라이팅을 당하게 되는지를 생생하게 보여준다. 대표적으로 부모-자녀’, 유나-지유의 관계 속에서 이는 보다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지유는 평소 엄마인 유나의 사소한 눈빛과 말투, 행동이 보내는 신호에 유독 기민하게 반응한다. 그도 그럴 것이 지유는 상당히 오랜 시간 동안 엄마와 함께 지낼 때면 반드시 그녀가 제시한 규칙에 따르도록 주입 당해왔다. 그래야만 고아의 벌을 받지 않기 때문이다. 유나는 지유가 자신의 규칙에 따르지 않을 시 친정에 지유를 맡긴 채 일주일, 더 화가 났을 땐 한 달 이상 데리러 오거나 전화도 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유는 엄마가 자신에게 미소를 지어 보이는 그 귀한 순간을 사랑한다. 그러한 순간이 있기에 엄마의 통제조차도 사랑이라 믿는 것이다.

 

 

 

왜 그렇게 두리번거리니?”

엄마가 물었다. 지유는 움찔해서 엄마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눈이 마주치자 고개를 저었다.

고갯짓하지 말라고 했지?”

엄마의 목소리는 새가 지저귀는 것처럼 높고 가느다랗다. 귀를 기울여야 알아들을 수 있을 만큼 작다. 소리가 불안하게 떨리면서 끝이 올라갈 땐 눈치껏 행동해야 한다. ‘너 때문에 짜증이 난다는 신호니까. 바로 지금처럼. / 18p

 

 

안 돼.”

엄마가 안 된다면 안 되는 것이었다. ‘안 돼로 바꾼 적도 없었다. 그러니 1층으로 내려가서 자는 엄마를 깨운 다음 인형을 가지고 놀아도 좋은지 물을 필요는 없었다. 눈물이 쏙 빠지게 혼쭐나는 건 하루 한 번이면 충분했으므로. / 29p

 

 

 




 

 

 

 

  가스라이팅이 한 사람의 일생에 미치는 영향은 또 한 명의 주인공인 재인을 통해서도 분명하게 드러난다. 재인은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언니에게 빼앗겼다고 생각하는 동생 유나의 거친 폭력에 당하고만 살아온 이유가 무엇인지 돌이켜보며 아이러니하게도 스스로 당하고 싶었기 때문이라고 결론을 내린다. 적어도 아버지에게 유나와 똑같은 아이로 취급받고 싶지 않은 까닭이다. 어른스러우며, 지혜로운 맏딸이어야만 아버지의 착한 딸로 남을 수 있다는 강박은 아버지가 믿는 딸이 될 때 스스로를 가치 있는 사람이라 여기게 만들었다. 덕택에 상처와 공포는 온전히 그녀의 몫으로 남았고, 그녀는 망각으로 해결하려 했지만 이따금 삶의 곳곳에서 불쑥불쑥 아무 때나 기억이 튀어나와 그녀를 옥죄곤 했다. 그 결과, 자신의 동생인 유나로 벌어지는 일련의 끔찍한 사건들 앞에서 적극적으로 대처하지 못한다.

 

 

 

그녀는 많은 것들을 스스로 습득하고 깨우쳤다. 어머니 눈에 띄지 않고 소리 없이 움직이는 법, 눈치껏 처신하는 기술, 하고픈 말을 참는 힘, 무안을 당해도 울지 않는 요령, 어머니의 표정에서 기분을 읽어내는 독심술, 착하게 굴어야 집에서 살아남을 수 있다는 생존방식까지. / 154p

 

 

질문이 잘못됐다는 걸 지적하지 않는 어머니에 대한 서운함. 자신을 제 모든 것을 앗아간 도둑년으로 취급하는 유나에 대한 분노. 자신으로 인해 유나가 할머니네에서 살았다는 죄책감. 최종 승자는 죄책감이었다. 그녀가 일방적으로 참는 쪽이 된 이유 중 하나다.

이 권력 구도는 양친에게도 확대적용 됐다. 유나는 2년씩이나 버림받았다는 점을 밑천 삼아 양친을 제 뜻대로 휘둘렀다. 어머니는 맹목적으로 유나의 편에 섰다. 죄책감을 더는 방법 중 가장 즉각적이고 가장 차감액이 컸을 것이다. 무엇보다 쉬웠을 것이다. 유나는 그 점을 잘 알고 있었다. 어머니를 이용해 아버지를 조종한 걸 보면. / 191p

 

 

 

  가스라이팅은 부부관계인 유나와 은호 사이에서도 일어난다. 러시아에서 여행 중에 우연히 만난 유나에게 단숨에 빠져버린 은호는 행복한 결혼 생활을 위해, 두 번의 이혼은 불가하다는 생각에 유나의 일방적인 계획에 쉽사리 저항하지 못한다. 그의 표현대로라면 자발적 복종에 가까울 정도로, 그는 유나가 툭 하면 딸인 지유를 데리고 친정에 가버려도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못한다. 전처와의 사이에서 난 노아를 서둘러 데려오지 못하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그런데 하필이면 어머니의 집에서 노아를 자신의 집으로 데려오기로 한 날, 노아가 질식사로 인해 숨지는 사건이 발생하고 만다. 은호는 이 충격적인 사건을 계기로 이제껏 수면 아래에 잠재워두기만 했던 질문들을 꺼내 올리기 시작한다. 이른바 아내가 지적한 자신의 고약한 잠버릇이 아들 노아를 죽이게 할 만큼 치명적이었던가 하는 물음, 아내는 그간 정말로 친정을 간 게 맞는 것인가 하는 물음, 공교롭게도 아내의 주변 남자들에게서 일어난 비극적인 사건들에 아내가 연루된 것은 아닌가에 대한 물음까지. 그리고 마침내 그는 이제껏 그녀가 바랐던 완전한 행복의 의미가 무엇인지 섬뜩한 진실과 마주하게 된다.

 

 

 

행복한 순간을 하나씩 더해가면, 그 인생은 결국 행복한 거 아닌가.”

아니, 행복은 덧셈이 아니야.”

그녀는 베란다 유리문을 물끄러미 바라봤다. 마치 먼 지평선을 넘어다보는 듯한 시선이었다. 실제로 보이는 건 유리문에 반사된 실내풍경뿐일 텐데.

행복은 뺄셈이야. 완전해질 때까지, 불행의 가능성을 없애가는 거.”

동의할 수 없는 개념이었으나, 딱히 대꾸할 말이 없었다. 그는 잠자코 다음 말을 기다렸다.

나는 그러려고 노력하며 살아왔어.” / 112p

 

 

나는 그러려고 노력하며 살아왔어.”

신호등이 몇 번이나 바뀌도록, 그는 눈만 껌벅이며 서 있었다. 아내의 대학 시절 남자와 유학 시절 남자와 아버지와 전남편, 그리고 노아. 행복은 가족의 무결로부터 출발한다고 믿는 아내의 신념. 머릿속에서 딸깍, 소리가 났다. 어긋나 있던 톱니바퀴가 착, 맞물리는 느낌이었다.

서민영과 진우의 말을 조합해봤을 때, 남자 넷은 어떤 이유로든 아내를 불행하게 만든 사람들이었다. 변심, 해고, 이혼, 그 어떤 이유로든 간에. 노아는 다른 여자를 모태로 한다는 점에서 무결하지 않았다. 삶의 저류에 지속적인 위협으로 존재한다고 믿었을 것이다. 아니면 존재 자체를 용서할 수 없었거나. / 390p

 

 

 



 

 

 

 

  『7년의 밤이 보여준 압도적인 서사와 강렬한 서스펜스, 28이 보여준 사회적 공포, 종의 기원에서 보여준 섬세한 심리묘사와 이 작동되는 방식을 치밀하게 엮어가는 구성까지, 이 모든 것들을 한 데로 정교하게 엮은 듯한 완전한 행복은 작가 정유정이 지닌 이야기꾼으로서의 힘을 여실히 보여준다. 더욱이 7년의 밤의 세령호가 그러했듯, 반달늪이라는 공간을 통해 독자들을 고립시키고 극도의 불안과 공포를 조장하는 특유의 스타일은 확실히 더 능수능란해진 느낌이다. 무엇보다 한 나르시스트의 끔찍하고 추악한 범죄 행위 뒤에 어른거리는, 우리가 인지하지 못하는 사이에 누군가에게 쉽게 자행한 가스라이팅의 일면을 들여다보게 한다는 점에서 더욱 끔찍하다. 나는 여기에서 자유로울 수 있을까, 내가 아이에게 던지는 눈빛과 말에 담긴 어떠한 신호가 아이를 움직이게 하고 아이의 의지를 꺾게 했다면 이 역시 가스라이팅이 아니라고 할 수 있을까. 나는 착한 아이가 되어야 한다는 강박으로부터 과연 자유로운 적이 있었던가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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깜짝 놀랄 이유가 있어서 진화했습니다 - 충격 비교! 옛날에는 이런 모습이었다고?, 세상에서 가장 재미있는 진화 도감
이마이즈미 다다아키 지음, 전희정 옮김, 황보연 감수 / 북라이프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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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도, 어른도 함께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신비롭고 놀라운 진화 이야기!

생물의 진화가 주는 의미가 무엇인지, 이 경이롭고 위대한 자연을 지키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할지 깨달을 수 있는 시간!

 

 

 

 

  최근 바다 생물과 기후 환경 위기에 관한 책을 읽으면서, ‘자연이 품고 있는 경이롭고 위대한 힘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하늘, 바다, , 동식물, 공기, 세포 하나하나까지, 어느 하나 유기적으로 연결되지 않은 게 없었고 모든 생명에는 저마다의 존재 이유와 가치가 있음을 깨달았기 때문이지요. 무엇보다 대규모 화산 폭발이나 극심한 한파, 거대 운석 충돌과 같이 어마어마한 대멸종속에서도 살아남아 지금껏 진화에 진화를 거듭한 생명 현상을 들여다보고 있노라면 지금 우리가 누리고 있는 이 모든 것들에 새삼 감사함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멸종이라는 위기를 극복하고 끝끝내 살아남아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고 더 오랜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 진화를 선택한 이 땅의 모든 존재들, 생각만 해도 참 멋있고 감동적이지 않나요?

 

 

 

  그래서일까요, 저는 아이에게 이 동물에게는 눈이 몇 개가 있고, 다리가 몇 개가 있다는 기본적인 정보도 중요하겠지만 왜 이렇게 많은 다리가 필요해졌고, 주둥이가 길어져야 했으며 다른 동물에 비해 목이 긴 것인지를 설명해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모든 것은 그저 자연히 타고난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자신들의 존재에 유리하도록 선택하고 제거해 온 생명의 의지가 있었기에 가능한 것이었다는 사실을, 그 속에서 생명의 위대한 가치를 스스로 느낄 수 있도록 가르쳐주고 싶어졌습니다. 깜짝 놀랄 이유가 있어서 진화했습니다를 읽고 싶었던 것도 바로 그런 취지 때문이었습니다.

 

 

 

흥미진진 위험천만 서바이벌 진화 스토리!

 

 

  『깜짝 놀랄 이유가 있어서 진화했습니다는 코끼리, 고래, 거북, 기린과 같이 우리에게 친숙한 동물을 비롯해 실러캔스, 투구게 등 지금까지도 살아남아 생명을 유지하고 있는 원시생물에 이르기까지, 147종의 다양한 생물의 진화과정을 살펴볼 수 있습니다. 우리가 이미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한 생물에게 숨겨진 놀라운 특징은 물론, 충격적이리만큼 놀라운 진화 전의 모습까지. 다채롭고 신비한 진화의 속사정을 들여다보고 있노라면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읽게 됩니다. 무엇보다 이 책은 진화와 관련된 모든 정보를 한눈에 파악할 수 있도록 구성한 것이 장점입니다. 아이들의 눈에도 친근하게 느껴질 수 있는 그림을 통해 아주 먼 지구의 역사를 비롯해서 생물들의 진화과정을 생생하게 전달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생물들이 직접 자신들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방식으로 서술되어 있어 재미있게 읽히는 것 또한 이 책의 특징이라 할 수 있습니다.

 

 

 

  책 속에는 지금의 모습으로는 도무지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로 다른 모습을 한 진화 이전의 생물들을 만나볼 수 있어요. 흥미롭게도 5800만 년 전의 코끼리는 개만 한 크기에 겉모습은 하마를 닮았다고 해요. 그러다 드넓은 초원에서 살게 되면서 몸집이 크게 진화했고, 땅에 난 풀이나 물을 입으로 옮기기에 긴 코가 유리했기 때문에 코가 점점 길게 진화한 것이에요. 5200만년 전의 고래는 네 다리로 바닷가에서 육상 생활을 했다고 해요. 그러다 육지보다 물속 생활에 적합한 생김새로 진화했다고 하죠. 사모테리움이라 불리는 옛날 기린은 사실 목 길이가 말보다 조금 긴 정도에 불과했대요. 지금처럼 기다란 목은 먼저 목 위쪽 뼈가 자라고, 그다음 목 아래쪽 뼈가 자라는 2단계로 진화한 결과랍니다. 그동안 저는 기린이 다른 포유류에 비해 목뼈의 수가 많아서 긴 것이 아닐까 하고 생각했는데, 책에 따르면 포유류의 목뼈 개수는 모두 일곱 개로 동일하지만 기린은 목뼈 한 개 길이가 30나 될 만큼 길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덕분에 알게 되었네요.

 

 

 




 

 

 

 

  이 외에도 과거에 상어는 등에 날카로운 이빨 같은 가시가 잔뜩 나 있었다는 것, 먹장어는 천적에게 공격을 받으면 피부 구멍에서 점액이 나와 몸을 보호하는 특별한 능력을 가진 덕분에 생존에 유리했다는 것, 쥐는 자신을 도와준 상대를 기억했다가 훗날 은혜를 갚는다는 것, 코알라가 먹는 유칼립투스 잎은 섬유질이 많아 소화가 어렵고 영양가도 매우 적기 때문에 온종일 잠만 자며 보내다는 사실도 흥미롭습니다. 뿐만 아니라 황제 펭귄은 새끼 펭귄이 태어나고 부모가 물고기를 잡으러 나간 사이에 아직 자식을 낳지 않은 젊은 펭귄들이 육지에 남아 모든 새끼를 돌본다고 해요. 인간과 비교하자면, 공동 육아소인 어린이집과 매우 흡사하다고 할 수 있으니 참 재미있죠.

 

 

 

시아노박테리아는 가장 오래된 생명 중 하나로 여겨지는 세균의 친척입니다. 25억 년 전쯤에는 지구에 산소가 거의 없었어요. 대신 탄산 가스가 있어 이를 마시며 살아가는 미생물만이 존재했지요. 그런데 시아노박테리아가 등장해 광합성을 시작했고 그 덕분에 많은 양의 산소가 대기 중에 뿜어져 나와 지구 환경이 많이 변할 수 있었답니다. 이를 계기로 산소를 호흡하며 살아가는 생물이 생겨났기 때문이죠. 시간이 흘러 더 복잡한 구조를 가진 생물이 늘어나면서 현재처럼 다양한 생물로 진화해 갔습니다. / 97p

 

 

이런 점이 비슷해!

이틀 동안 다른 동물의 피를 먹지 않으면 굶어 죽는 흡혈박쥐는 배고픈 친구가 있으면 자기가 먹은 피를 토해 나눠 준다. 반대로 자기가 배고플 때는 친구의 피를 나눠 먹는다. 이처럼 생물이 서로 돕는 생동을 이타 행동이라 한다. 우리 인간이 다른 사람으로부터 얻은 물건을 어려운 처지의 사람과 함께 나누거나 도움 받는 사람에게 은혜를 갚는 것과 일맥상통하는 사회적인 행동이다. / 139p

 

 

 




 

 

 

 

  저마다 다른 생물들의 속사정을 들여다보는 시간은 참 재미있습니다. 또 동물들이 가진 특성들을 이해하다보면 그들이 어떤 환경에서 살아남기 위해 노력한 것인지 알게 되면서 자연스럽게 생물들을 사랑하게 되는 마음까지 얻게 되지요. 그래서인지 지구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는 환경 위기가 인간의 이기적인 행동으로 인해 벌어진 일이라고 생각을 하니 한없이 부끄러워집니다. 우리 아이들도 이 책을 통해 생물의 진화가 주는 의미가 무엇인지, 이 경이롭고 위대한 자연을 지키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할지 깨달을 수 있는 시간이 되길 바랍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 협찬을 받았지만, 본인의 주관적인 견해에 의하여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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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해지려는 관성 - 딱 그만큼의 긍정과 그만큼의 용기면 충분한 것
김지영 지음 / 필름(Feelm)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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벅찬 하루 끝에 그래도로 시작하는 문장 하나를 더할 수 있는 삶을 위해!

딱 필요한 만큼의 긍정과 딱 그만큼의 위로와 희망을 건네는 진솔한 이야기!

 

 

 

  『행복해지려는 관성20182월부터 현재까지 저자가 동아일보 <2030세상>에 연재해온 칼럼을 수정하여 엮은 책이다. 그녀는 3주에 한 번 꼬박꼬박 1,500자 원고를 기어코 완성해내는 성실한 마감 노동자로서, 무려 4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구독자와 호흡해왔다. 지극히 개인적인 경험을 통해 다수의 공감을 받고 나아가 각각의 글이 독자적인 메시지를 담고 있어야 하는 칼럼의 특성을 오랫동안 유지하리란 꽤나 힘든 일일 테도 불구하고 말이다. 그렇게 정해진 매체에 정해진 형식으로 일종의 ---긍정의 패턴을 유지하다보니, 세포 어딘가에 끝내 긍정으로 향하려는 관성 같은 게 새겨진 것 같다고 고백한다. 제아무리 벅찬 하루였대도 마지막에 그래도로 시작하는 문장을 하나 더하는 일. 딱 그만큼의 긍정과 딱 그만큼의 용기면 대체로 충분하다는 것을 칼럼 쓰기를 통해 배웠다고 한다. 그래서일까, 제목의 그것처럼 책을 읽다보면 행복에도 관성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행복은 성취에만 머물러 있는 게 아니라 연습을 통해 발견하고 단련을 통해 유지하는 것, 나에게 꾸준히 행복들이기를 선물하려는 습관에 있는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더 적극적으로 행복해지기로 했다

 

 

  7살 아들이 드라마 <슬기로운 의사생활 시즌 2>를 보면서 느닷없이 나는 의사가 될래.”라고 선언했다. 의사라니, 소방관이 되겠다고 했다가 건축가가 되겠다고 했다가 또 경찰이 되겠다고 말한 게 엊그제인데 이번에는 의사란다. 며칠 전에는 경찰이 되고 싶다고 하더니 이번에는 의사가 되고 싶으냐고 물으니, “아니, 나는 소방관이랑 건축가랑 경찰이랑 의사랑 다 할 건데?” 하고 대수롭지 않다는 듯 대답했다. 나는 웃으며 꿈이 참 많아서 참 좋겠다고 대꾸했다.

 

 

 

  돌이켜보면 나는 아이와 비슷한 또래일 때는 물론 자라면서도 이렇다 할 꿈이 없었다. 학교에 써 내는 장래 희망란에 늘 의사라고 쓰긴 했지만 내가 왜 의사이기를 희망하는지는 알지 못했다. 어쩌면 그 어린 나이에도 그럴 듯한 직업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던 게 아닐까. 그나마 책 읽기를 좋아하고 인터넷 소설을 쓰기 시작한 뒤로 문예창작학과라는 게 있다는 걸 알게 되었지만, 그마저도 아니었다면 나는 어느 학교에 무슨 전공으로 진학해야 할지조차 알 수 없었을 것이다. 나의 인생은 대체로 구체적인 목표 의식에 의한 것이었다기보다는 그저 그 순간에 나아가는 방향대로 흘러간 쪽에 가깝다는 생각이 든다. 이렇다 할 욕심도 없고, 뚜렷한 목적도 없는 그저 그런 지금이 쌓이고 쌓여 밀려온 느낌이다. 그래서일까, 이것도 해보고 싶고, 저것도 해보고 싶은 아이가 새삼 부럽기도 하다. 그런데 이런 내 마음을 읽기라도 한 듯 이 책의 글귀 하나가 마음을 붙든다. ‘꼭 무언가가 되지 않아도 괜찮다. 장래희망이 여전히 직업과 동의어일지언정 직업과 꿈은 동의어가 아니니까. 직업으로 정의되지 않는 꿈도 있다는 것을 이제는 아니까.’ 되고 싶은 것에 연연하기보다 지금 당장 하고 싶은 것에 집중하는 삶, 무언가가 되든 되지 않든 나의 꿈은 이렇게라도 실재한다는 것. 이렇게 생각하고 보니 내 삶은 결코 밋밋하기만 했던 건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 어쩐지 위로가 된다.

 

 

 

다수의 타인들에게 선택을 위임하지 않고 오롯이 주체가 될 수 있을까. 아니, 그 길을 따라 걷는다 한들 그 끝에 있는 것이 우리가 원한 것일까.

오늘 광경을 보고 새삼 다짐한다. 앞에 서 있는 많은 이들을 보고 이 길이 맞다 믿어버리지 말자. 고개를 내밀어 보고, 이탈해 걷기를 겁내지 말자. 길의 끝에 있기를 희망하는 것은 저마다 다르다. / 27p

 

 

누구에게나 벅찬 하루가 있다. 하지만 그것을 표현하기란 대개 쉽지 않은 일이다. 우울과 같은 부정적인 감정을 드러내는 것은 미성숙의 상징이므로, 성숙한 사회인이라면 응당 감출 줄 알아야 했다. 표현할 경우 어김없이 어리다는 딱지가 나붙었다. 반면 감동과 같은 긍정

적인 감정을 적극적으로 드러내는 사람은 종종 오그라드는별종으로 치부되곤 했다. 어느 방향으로든 넘치지도, 그렇다고 아주 모자라지도 않는 감정 표현, 어른들은 그것을 사회성이라 불렀다. 이것이 행복의 반의어처럼 들리는 것은 비단 나뿐일까. / 72p

 

 

 




 

 

 

 

  연애시절, 당시엔 남자친구였던 남편과 나는 갑자기 밥을 먹다 바다를 보러 가거나 안동찜닭을 먹으러 굳이 안동에 가는 수고를 하는 등 느닷없는 여행을 즐겼다. 이걸 보러 가자, 하고 꽂히면 불시에 출발해버리거나 특별한 장소가 정해지지 않으면 그냥 길을 따라 가보는 식이었다. 그러다보니 바다에 가서 회가 아닌 햄버거를 먹게 되고, 하필 그 날이 휴무이거나 이미 가게 문이 닫혀서 허탈해지기를 반복하곤 했지만 그건 그것 나름대로 참 재미있었다.

 

 

 

  그런데 아이를 낳고부터는 미리 검색을 해서 가볼 만한 곳을 일일이 찾아보는 여행을 해야만 했다. 아이들과 가볼 만한 곳, 아이들이 먹을 만한 음식이 나오는 곳, 아이들이 볼거리가 많고 지루하지 않을 만한 곳. 이런 검색의 조건들이 반드시 따라오는 곳이어야 아이들이 긴긴 자동차 안에서의 시간들을 버틸 수 있기 때문이다. 요즘 제일 핫하다는 맛집이나 카페, 인생 샷을 찍을 수 있는 포인트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것도 마찬가지다. 어쩌면 저자의 말대로 여행조차 잘해야 한다는 강박이 우리를 검증된 길로만 내모는게 아닐까. 덧붙여 그녀는 이렇게 말한다. ‘일상으로 돌아와 뇌리에 남는 것은 결국 미션 수행하듯 완벽하게 마무리한 정답 같은 여행이 아니라 마음이 이끌리는 대로 걸어간 흔적이다. “, 거길 가봤어야 했는데혹은 , 그걸 먹어봤어야 했는데가 아니라, “그 여행 참 좋았다, 단지 이 느낌이라고. 덕분에 이제부터는 그곳에 갔다 왔다에 방점을 찍는 여행이 아니라 여행을 한 데에서 느끼는 감정을 먼저 생각할 수 있는 여행이 되도록 해야겠다고 다짐해본다.

 

 

 

힙하지 않아도 괜찮아.” 사회라는 스테이지 위, 트렌드라는 줄거리에서의 주인공은 못 되더라도 우리, 각자가 그린 줄거리에서만큼은 언제든 주인공일 수 있을 테니. 그저 오늘 나의 할 일은 내 몫의 줄거리를 성실하고 줏대 있게 써 나가는 것이 아닐까. / 123p

 

 

미니멀리즘 열풍을 일으켰던 일본의 정리 컨설턴트 곤도 마리에는 말한다. 설레지 않으면 버리라고. “우리가 갖고 있는 물건은 우리를 행복하게 하려고 존재한다. 먼저 무엇에 둘러싸여 살고 싶은지 왜 그렇게 살고 싶은지 생각해야 한다.” 이는 비단 물건에 국한된 말은 아닐 것이다. 오늘의 생활 나아가 삶 전반에 대해 나만의 시선, 기준을 가지고 내 주변을 내게 소중한 물건과 나를 행복하게 하는 관계들로 채워 나가는 것. 행복은 결국 이 단순한 미션의 성취다. / 177p

 

 

마음 방학이라는 자체 제도를 가지고 있다. 말 그대로 마음에 방학을 주는 것인데, 어느 날 문득 마음에 빨간 불이 들어올 때 작전타임을 외치듯 스스로 부여한다. 원칙은 간단하다. 바로 지금 여기서 행복할 것. 최대한 하고 싶은 것만 하고 생각하고 싶은 것만 생각한다. 타인의 시선에 대한 염려도 미래에 대한 계획도 잠시 내려놓는다. 내일의 나에게 후일을 맡기고 오로지 지금 나의 기분만을 생각하는 철없는 이기주의자가 되어보는 것. 무엇을 하고 싶은지, 먹고 싶은지, 끊임없이 지금의 나를 기쁘게 하기 위한 방법들을 묻는다. / 231p

 

 

 



 

 

 

 

  지난 밤, 남편과 TV를 보다가 <무엇이든 물어보살>이라는 프로그램을 잠깐 시청했다. 나는 평소에 보지 않던 프로그램이지만 신랑은 종종 챙겨보는 프로그램인 모양이었다. 남편은 서장훈의 조언이 항상 마음에 와 닿는다고 말했다. 부러 좋은 말로 포장하거나 애써 위로하려들지 않고, 딱 필요한 만큼의 현실적인 조언을 해주기 때문이라고. 그러고 보면 한없이 따뜻하고 좋은 말들은 세상에 넘쳐나고, 그런 류의 말들로 위로를 건네는 책들도 넘쳐나지만 언제부턴가 지금 내가 처한 현실과 거리감이 느껴져서 내 것이 아닌 듯할 때가 있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딱 필요한 만큼의 긍정과 딱 그만큼의 위로와 희망을 건네기에 보다 진솔하게 다가온다. 벅찬 하루 끝에 그래도로 시작하는 문장 하나를 더할 수 있는 삶, 딱 그 정도만 살아도 행복할 수 있을 거라는 이 책의 메시지를 잊지 않아야겠다.

 

 

 

출판사로부터 도서 협찬을 받았지만, 본인의 주관적인 견해에 의하여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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