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당 평전 - 이탈리아 성당 기행
최의영.우광호 지음 / 시공사 / 202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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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고 난 후, 당장 이탈리아로 떠나고 싶어졌다!

성당을 중심으로 따라가는 아주 특별한 유럽 문화 기행!

 

 

 

 

  언젠가 이탈리아 여행 가이드북을 읽다가 나는 하나의 사진을 보고서 감탄을 금치 못한 적이 있다. 바로 밀라노를 대표하는 건축물, 밀라노 대성당 때문이었다. 135개의 첨탑과 3천 개가 넘는 조각상으로 화려함과 세련미를 갖춘 밀라노 대성당은 이제껏 본 성당 중에 단연 인상적이었다. 사진으로만 보았을 뿐인데도 나는 밀라노의 대성당이 갖춘 위용과 경이로움에 한동안 눈을 뗄 수 없었다. 평소 유럽 하면 미술관이나 박물관 중심의 여행을 생각하곤 했었는데, 이 사진 한 장으로 인해 성당이야말로 유럽 여행에 있어서 빼놓을 수 없는 장소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성당이 고결한 것은 건축물 그 자체 때문이라기보다,

위대한 티끌들이 수백 년 공들여 빚어낸 삶의 역사이기 때문이다” / 7p

 

 

 

   『성당 평전』에서는 이렇게 말한다. 성당이 위대한 이유는 소박함과 화려함, 고난과 영광, 혼돈과 질서로 가득한 유럽인의 역사가 고스란히 담겨 있는 아주 특별한 장소이기 때문이라고. 그런 의미에서 피렌체, 나폴리, 베네치아, 바리, 밀라노 등 이탈리아를 대표하는 성당 80곳을 따라가는 이 여정은 살아 숨 쉬는 유럽 문화를 온몸으로 느끼는 체험에 가깝다. 즉, 성당을 이해한다는 것은 다양한 건축 양식이나 기법뿐만이 아니라 각 성당의 유래와 그곳에 얽혀 있는 사연, 유럽인들의 신앙과 유럽사의 관계를 엿보는 일이다. 무엇보다 성당에는 탄생과 삶 그리고 죽음에 이르기까지 한 사람, 한 사람의 일생이 깃들어 있다. 유아세례는 인간이 공동체로 진입하는 의식이자 삶의 출발점이며 축제의 장이었고, 서민들은 일상의 대소사와 나라의 위기 극복을 위해 이곳에서 하나로 기도했으며, 죽은 이의 대한 마지막 예도 바로 이곳에서 함께 했다. 이처럼 성당에 깃든 옛 유럽인들의 삶과 이야기는 우리에게 잔잔한 감동을 준다.

 

 

 

유럽인들의 땀과 기도로 쌓아 올린 성당의 역사

 

 

 

   미술사가 에른스트 곰브리치는 『곰브리치 세계사』에서 이렇게 적었다고 한다. “중세가 별이 빛나는 아름다운 밤이라면, 이탈리아 피렌체에서 시작된 이 새로운 시대는 아침에 비유할 수 있다.” 14세기 초, 이탈리아 피렌체는 지금까지와 전혀 다른 새로운 시대를 맞이하게 되었다. 경건하며 풍부한 지식과 합리적인 교양을 갖춘, 돈 많은 신흥 엘리트 계급이 피렌체를 전혀 다른 모습으로 바꿔놓기 시작한 것이다. 이를 가리켜 우리는 ‘르네상스’라고 부른다. 이때 피렌체에서 지금까지 보지 못했던 르네상스 문화와 예술, 건축이 꽃피게 되었는데, 그 맨 앞에 피렌체 대성당인 산타 마리아 델 피오레 대성당이 있다. 당시 피렌체 사람들은 지금까지도 없었고 앞으로도 없을 이탈리아 최대 규모의 성전을 건축하기로 결심했고, 당대 최고의 건축가이자 예술가인 캄비오를 총지휘자에 맡기면서 시작은 활기차게 출발했다. 그러나 6년 후에 캄비오가 갑자기 세상을 떠나고, 흑사병이 창궐하는 바람에 무려 140년이라는 세월이 지나서야 ‘꽃의 성모 마리아’ 산타 마리아 델 피오레 대성당이 완공되었다. 비록 많은 시간이 소요되었지만, 그래서 수많은 사람들의 땀과 기도가 차곡차곡 쌓인 결과물이었기에 피렌체인들은 이 성당을 사랑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아담과 이브에서 시작해 구약성경 10대 명장면을 표현한 이 문은 청동 바탕에 금박을 입힌 것으로 초기 양식의 르네상스 한 획을 긋는 명작으로 평가받고 있다. 미켈란젤로가 이 작품을 보고 “천국으로 들어가는 문으로 사용해도 손색이 없다”며 감동한 이야기는 유명하다. 그래서 이 문은 지금까지 ‘천국의 문’으로 불리고 있다. 현재 세례당의 문은 복제품으로, 진품을 두오모 미술관에 가면 만날 수 있다.

세례당의 볼거리는 ‘천국의 문’ 하나가 아니다. 세례당 안으로 들어가면 천장과 둘레가 온통 황금빛 모자이크로 장식돼 있다. 그 황금빛 속에서 그리스도의 구원 역사, 그리고 수많은 성인 성녀들의 응답 역사가 쏟아진다. / 32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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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러 성당들 중에서도 인간의 절망과 희망, 좌절과 용기, 무기력과 삶에의 의지를 동시에 담고 있는 성당이 있어 눈길을 끈다. 바로 산타 마리아 델라 살루테 성당이다. 성당 이름에 좀처럼 붙지 않는 ‘살루테’라는 단어는 이탈리아어로 ‘건강’을 뜻한다고 한다. 도대체 왜 성당 이름에 건강이라는 의미를 붙인 것일까. 여기에는 이러한 사연이 있다. 최초의 흑사병이 1348년부터 1350년까지 전 유럽을 휩쓸었고, 전체 유럽 인구의 4분의 1이 사망했다. 베네치아에도 흑사병이 강타하면서 공포심이 극에 달한 사람들이 의지할 곳은 신앙뿐이었다. 하지만 전염병과 관련한 수호성인 성 로코를 모신 성당을 지었지만 효과가 없었고, 마지막으로 의지처를 삼은 이가 성모 마리아였다. 그렇게 해서 50년에 걸쳐서 완공된 산타 마리아 델라 살루테 성당에는 여기저기에서 성모 마리아를 볼 수 있다. 제단을 비롯해 곳곳에 성모 마리아와 관련된 성화와 석상들이 자리하고 있다. 그 면면에서 우리는 베네치아 사람들이 얼마나 흑사병의 고통에서 벗어나고 싶어 했는지 알 수 있다.

 

 

 

   성모 마리아의 전구 하나면 모든 것이 해결될 것이라는 희망을 품었던 과거 베네치아인들처럼 페스트가 휩쓸고 있었을 때 레체 사람들은 성 푸블리오 오론초에게 전구를 청했다. 성 푸블리오 오론초는 레체와 오스투니에 처음 그리스도교 신앙을 심어준 인물로 레체 사람들은 고난이 있을 때마다 그에게 간절히 기도했고 그때마다 위기를 넘길 수 있었다고 한다. 페스트가 창궐했을 때에도 1백 일 넘는 기도가 끝나갈 즈음, 기적적으로 페스트가 사라진 것이다. 때문에 레체 사람들은 이후 도시 곳곳에 성인의 동상과 기념물을 세우고 그를 통한 기적을 기억했다. 몬테로소 사람들 역시 삶이 지치고 힘들 때 카푸친 수도원 성당을 찾아가 영적 위안을 얻었다. 질병으로 고통 받을 때도, 먹을 게 없어 힘들 때도 그들은 수도원을 찾았다. 그렇게 되찾은 힘을 동력 삼아 몬테로소 사람들은 다시 세상으로 내려갔다.

 

 

 

나는 다른 곳들을 그 앞에 세우고자 한다. 두오모 오페라 박물관과 산 마르코 미술관을. 왜? 대성당과 피렌체 내 도미니코회 수도원을 장식했던 미술품들이 모두 이곳에 있기 때문이다. 피렌체의 그리스도교 신앙유산은 우피치가 아닌 이 두 박물관에 모조리 있다고 보면 된다. 그래서 우피치만 가고, 두오모 오페라 박물관과 산 마르코 미술관을 가지 않는 것은 주객이 전도된 것이다. 실제로 두오모 오페라 박물관과 산 마르코 미술관은 신앙의 도시 피렌체의 자부심이다. / 60p

 

 

 

  이 외에 서민 성당으로 낡은 겉옷을 입은 듯 겉은 소박하지만 마초가 그린 <낙원에서의 추방>, <성전세> 등 미술사 최고봉의 작품들로 내면은 탁월함을 품고 있는 산타 마리아 델 카르미네 성당, 한 도시에 두 개의 유력가문이 자존심 경쟁을 벌인 끝에 무려 1백여 개에 달하는 탑을 쌓아올림으로써 자신이 더 위대하다는 욕망을 증명하려 했던 산 지미냐노, 1천 년 전 척박한 환경에서 생존을 위해 몸부림쳐야 했던 베네치아 사람들에게 절실한 희망이었던 중재자 모세를 기억하며 광야의 고통을 버틸 수 있게 했던 산 모이세 성당 등 이탈리아 성당들은 아주 오랜 과거에서부터 지금까지 아름다운 생명력을 지닌 채 시민들과 함께 하고 있다.

 

 

 

안드레아 사도는 신앙을 굽히지 않았다. 그 어떤 육체적 고통도 영적인 황홀함을 굴복시키지 못했다. 안드레아는 고통의 신비 안에서 복음을 당당하게 증언했다. 영광의 신비, 빛의 신비만이 진정으로 도달해야 할 의미라고 설파했다.

(…) 안드레아 사도의 유해는 다른 의미로 다가왔다. 예수의 옷자락을 잡았을 손, 예수와 함께 식사를 나눴던 그 몸 아닌가. 안드레아 사도의 몸을 빌려 2천 년 전 예수를 바라볼 수 있었던 것은 큰 행복이었다.

《내셔널지오그래픽》 등 많은 언론이 아말피를 ‘죽기 전에 꼭 가 봐야 할 명소’로 선정했다는데, 뜬소문이 아니었다. / 183p

 

 

성 니콜라오가 산타클로스 할아버지로 둔갑한 사연은 다음과 같다. 성 니콜라오의 이야기가 전설로 이어져오면서, 이후 유럽에는 성 니콜라오 축일(12월 6일)에 자선을 실천하는 전통이 자리 잡는다. 이 풍습이 신대륙 발견 이후 네덜란드 개신교 신자들에 의해 미국으로 전파된다. 네덜란드인들은 가톨릭 주교인 성 니콜라오를 ‘산테 클라스’ 즉 ‘자비로운 요술쟁이’라고 불렀고, 이 말이 영어 ‘산타클로스’가 됐다. 또 산타나클로스의 복장은 가톨릭 주교 복장에서 유래하는데, 현재 우리가 아는 모습은 1931년 코카콜라 광고 그림이 시초라고 한다. / 308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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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당평전』을 통해 이탈리아 곳곳을 누비다보면 성당이라는 건축물이 유럽의 문화 그리고 역사와 얼마나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는지를 알 수 있다. 그간 성당이라고 하면 신에게 가 닿으려는 인간의 욕망과 화려함에만 주목했던 나로서는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보는 계기가 되었다. 그것은 곧 우리가 하나의 건축물을 어떠한 시각으로 바라보아야 하는지를 생각하게 하기도 한다. 이처럼 『성당평전』은 이탈리아의 성당을 따라가는 여정을 담은 책이지만, 다양한 상식과 유럽 역사에 관한 통찰력 그리고 신에게 소망함으로써 삶을 구원하고자 했던 시민들의 간절함을 읽을 수 있는 아주 특별한 책이다. 새로운 희망을 향한 염원이 그 어느 때보다 간절한 이 시점에서 우리는 무엇에, 얼마나 믿음과 의지를 쏟고 있을까. 이 책이 생각해볼 수 있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출판사로부터 도서 협찬을 받았지만, 본인의 주관적인 견해에 의하여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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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나로 살 뿐 1 - 원제 스님의 정면승부 세계 일주 다만 나로 살 뿐 1
원제 지음 / 수오서재 / 202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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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위에서 얻은 깨달음과 삶의 의미들,

그렇게 여행은 나를 정면으로 마주하는 시간이 된다!

 

 

 

   카투사 출신에 게임을 좋아하는 스님이라니. ‘카투사’와 ‘게임’ 중에 그 어느 쪽도 평소 생각해왔던 ‘스님’의 이미지와 어울리는 것 하나 없어 보이지만 그래서 뭔가 남다르다는 건 확실하다. 인연 따라 자연스럽게 살자, 최선을 다하지 말자, 적당히 건강하고 적당히 행복하자는 삶의 신조도 마찬가지다. 더욱이 두루마기에 삿갓을 쓰고 세계 일주를 다니는 모습 역시 예사롭지 않다. 바로 『다만 나로 살 뿐』의 저자, 원제 스님을 두고 하는 말이다. 묵은 경전 글귀가 아닌, 고요한 선원 좌복 위에서만이 아닌, 삶이라는 생생한 터전에서 자신을 내던져 보는 것. 그리하여 자신을 정면으로 마주해보는 것. 절 밖에서, 기왕이면 세계라는 큰 무대에서 많은 사람을 만나고 다양한 경험을 해봄으로써 자신의 마음이 어디로 움직이는지, 또 예측이 불가능한 상황에서 어떻게 대응해나가는지 스스로를 시험해보고자 한 결심도 보통의 것은 아니었을 테다. 때문에 『다만 나로 살 뿐』은 스님이 쓴 여행기 혹은 수행기라 했을 때 떠올릴 만한 느낌과는 사뭇 다른 데가 있다. 격을 낮추되 가볍지 않고, 거리낌이 없으나 흐트러지지 않는 스님의 모습과 꼭 닮아서 픽, 하고 웃음이 나다가도 어느 새 마음을 탁 치고 올라오는 깨달음이 그곳에 있다.

 

 

 

앎보다 삶이 훨씬 중요하고, 배움보다 익힘이 더 값지다는 깨달음

 

 

 

   스님에게 있어서 불교란 모든 만남과 소통의 시작이며 중심이다. 불교 신자나 불교에 관심 있는 사람들을 만나 그들이 생각하는 불교에 대한 의견을 나누고, 그들이 살아가는 삶의 방식과 자신의 경험을 공유하는 것이다. 그래서인지 그 어떤 자연 풍광이나 체험보다 사람과의 교류 속에서 얻은 깨달음을 기록한 글들이 유독 마음을 끈다. 특히 경비를 절약하기 위해 시도한 카우치서핑을 통해 만난 사람들, 우연히 여행지에서 대화를 나누다 닿은 인연들과의 이야기가 그러하다. 그중에서도 미국에서 검안사로 일하다 은퇴한 뒤 세계 일주 중인 피에르와의 만남이 인상 깊다. 미국인이지만 불교인이고 나름의 방식대로 선 수행을 하고 있었으며, 카우치서핑 멤버로 커피를 무척 사랑한다는 공통점이 있었지만 그보다 나이, 국적, 살아온 과정, 하는 일 모두 떠나 마음으로 가깝게 느끼고 각별한 정을 나눌 수 있는 사람을 만난다는 건 흔치 않은 일이기 때문이다. 훗날 위암 선고를 받았노라 자신의 근황을 전하는 피에르에게 애써 담담히 소중한 친구와의 이별을 준비하는 대목을 읽다보니, 삶과 죽음이라는 커다란 명제 앞에서 때로는 단순해질 필요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자신에게 남은 시간을 스스로 돌이켜보는 하나의 수행으로 받아들이겠다는 피에르와 몸뚱어리는 비록 죽음으로 인해 단절되었을지언정 끝없는 흐름으로 살아갈 우리에게 죽음은 곧 새로운 인연을 시작하는 출발점이 되기도 한다는 스님의 말씀은 죽음 앞에서 우리가 어떤 태도를 지닐 것인가 대해 얼마간 생각하게 만든다.

 

 

 

“스님, 중국 속담에 이런 말이 있어요. ‘내가 풍경 그리는 것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내가 풍경이 되기도 한다’라는 말이요.”

문득 놀랐습니다. 속담이지만 마치 수행의 과정이나 결과를 묘사한 말처럼 들리기도 했던 탓입니다. 내가 풍경을 그린다는 것은 별다른 설명이 필요 없을 정도로 자연스럽고 당연한 일입니다. 하지만 그 풍경을 그리는 나 자신마저도 풍경이 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내가 나를 보는 것이 아니라 허공이 나를 보아야만 가능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허공으로서의 안목을 얻는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것은 나에 대한 집착이 사라져야만 가능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 67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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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국 샹그릴라에서 만난 독일인과의 이야기는 더욱 긴 여운을 남긴다. 무슨 이유인지 모르겠으나 그 독일인은 사람들에게 세계 곳곳의 독일 대사관 위치를 알려주는 것을 참 좋아했는데, 애석하게도 그의 몸에서 나는 냄새 때문에 호스텔에 머무는 사람들은 그를 기피하고 있던 중이었다. 아무도 자신의 이야기를 들으려 하지 않는 것에 안타까워하던 그는 때마침 스님이 긴 시간 동안 대화에 응해주자 무척이나 행복한 모습이었다고 한다. 스님은 그때 그의 맑아 보이는 초롱초롱한 눈빛을 보며 어떻게 사람이 저리도 맑은 빛을 내보일 수 있을까 궁금했단다.

 

 

 

   그런데 다음 날, 누군가가 그 독일인이 새벽에 돌아갔다는 소식을 전해왔다. 그러면서 “페이라이쓰까지 와서 메이리설산의 일출도 보지 않고 돌아간 바보”라고, 그런 바보가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여행을 하는지 모르겠다며 고개를 저었다고 한다. 이를 바라보며 스님은 일반 상식 수준에서 그 독일인은 제대로 여행을 계획할 줄도 모르고, 여행의 묘미를 즐기지도 못하는 바보로 비쳐졌을지 모르겠으나 ‘인간이 불행한 것은 정상이라고 규정하는 그런 관념과 기준이 있어서’가 아닐까 하고 넌지시 생각한다. 체면이라는 상식이 없기에, 효용이라는 분별이 없기에 설혹 메이리설산의 일출을 보지 않고 다시 고된 길을 돌아간다고 하더라도 아쉬울 게 없는 게 아닐까 하고 말이다. 어쩌면 정작 바보는 이 분별심을 그토록 소중하게 껴안고 살아가는 우리일지도 모른다고. 덕분에 나는 내가 정해놓은 관념과 기준에 따라 타인을 구분하고 성격을 지은 것은 아닌지 스님의 말씀을 통해 반성해보게 된다.

 

 

 

끓는 데 필요한 열량보다 공기 중으로 완전히 녹아들어가는 데에 더 많은 열량이 필요하듯, 새로운 앎을 얻는 것보다도 그 앎이 삶으로 자연스럽게 녹아들어 가는 데에 더 많은 노력이 필요합니다.

이것이 학습, 곧 배움과 익힘입니다. 배움의 결과는 앎이지만, 익힘의 결과는 삶입니다. 그 앎이 삶으로서 온전해지기까지는 배움보다 훨씬 많은 익힘의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일입니다. 그래서 저는 이렇게 말하는 것입니다. 앎보다 삶이 훨씬 중요한 것이고, 그렇기에 배움보다 익힘이 더 값지고도 긴요한 노력이라고 말입니다. / 180p

 

 

삶이 자신의 책임이듯 그 사람을 바라보는 안목도 온전히 자신의 책임입니다. 서른이란 그러한 나이입니다. 자신의 안목을 다시금 돌이켜보아야 하는 것이지, 더 이상 남 탓만을 할 수는 없는 나이입니다. 자신이 살아가는 삶과 사람을 보는 안목에 스스로 책임을 져야만 하는 나이라는 것입니다. / 183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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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외에도 유럽 여행 중에 가방과 지갑을 도둑맞은 일화, 세계 일주 중에 찾아온 여행 매너리즘, 그라나다에서 피자 주인 가게가 내민 신문에 실린 스님의 모습(이것이 스님 플렉스) 같은 흥미로운 에피소드들도 수록되어 있다. 스님이 쓴 여행기라 하면 고루한 이야기만 있는 게 아니냐는 편견이 있을 수도 있는데, 여행에세이처럼 가볍게 접근하기에도 충분히 좋을 만한 책이다. 코로나19로 인해 여행을 가기 쉽지 않은 요즘, 나에게 있어 여행은 어떤 의미인지 이 기회에 생각해볼 시간을 가져보는 것도 좋을 듯하다.

 

 

 

다음 2권에서는 또 어떤 여행기와 깨달음이 담겨 있을까. 편안하게 따라가는 마음으로 2권으로 이어가보려 한다.

 

 

 

이 도서는 ‘수오서재’로부터 협찬을 받았으나 본인의 주관에 의해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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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도시 SG컬렉션 1
정명섭 지음 / Storehouse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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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절대 사고가 일어나면 안 되는 곳, 개성 공단에서 살인 사건이 벌어지다!

남한과 북한의 경계, 제3의 도시에서 벌어지는 긴장감 넘치는 추리소설!

 

 

  “우리 회사 직원으로 채용할 테니까 개성 공단에 가서 범인을 좀 찾아줘.”

  헌병 부사관 출신으로 민간 사업자(흥신소)를 운영하고 강민규는 어느 날, 큰 삼촌 원종대로부터 뜻밖의 부탁을 받는다. 원종대는 개성 공단에 입주해 있는 자신의 속옷 공장의 원자재와 완성품이 자꾸 없어지는 것에 대해 이렇다 할 손을 쓸 수 없어 막막한 상태였다. 개성 공단은 입주 업체의 사장이라 하더라도 함부로 CCTV를 달거나 북한 사람들에게 지시를 내릴 수 없는 곳이기 때문이었다. 설상가상으로 북한으로부터 개성 공단에서 만든 물건을 조직적으로 빼돌려서 암시장에 유통시킨다고 의심을 받고 있었으니, 이를 해결할 방법을 찾기 위해 강민규를 찾아 온 것이다.

 

 

 

   그날 이후, 강민규는 개성 공단 관리 과장이라는 직책을 달고 개성 공단으로 향한다. 간단한 사전 교육과 통관 절차를 걸친 후에 차로 한 시간이면 도착할 수 있는 바로 그 곳. 칙칙한 회사 점퍼나 등산복 차림의 대한민국 사람들과 작업복 차림의 북한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섞여서 걸어가는, 대한민국의 여느 중소도시와 다를 바가 없는 개성 공단. 2미터 높이의 이중 펜스가 쳐진 개성 공단의 출입문은 활짝 열려 있었다. 강민규는 개성 공단으로 진입하면서 묘한 기분에 사로잡힌다. 그도 그럴 것이 어린 시절은 물론, 입대 후에 부사관으로 지원해서 전역할 때까지 북한은 무섭고 두려운 적이었으며, 상종도 하지 말아야 할 존재였다. 그런데 이렇게 북한 땅에 지어진 개성 공단에 들어와서 일을 하게 될 줄을 누가 알았을까. 두 눈으로 보고 직접 두 발을 딛고 있으면서도 남북한이라는 특수한 관계의 괴리감 사이에서 강민규는 어렴풋이 현기증을 느낀다.

 

 

 

“개성 공단 증후군이라고 알아?”

“그게 뭡니까?”

“거기 들어가면 멀쩡하던 사람도 혈압이 높아지고 불면증에 시달려. 혈압ㅇㄹ 재면 여기보다 10에서 20 정도 올라가거든. 베개에 머리만 대면 3초 지난 다음부터 코를 골면서 자던 사람도, 거기서는 수면제가 없이는 잠을 못 자지.” / 17p

 

 

“너무 가깝지?”

“생각보다 훨씬 가깝네요.”

“사실 개성 공단의 최고 장점은 낮은 인건비가 아니라 서울과 엄청 가깝다는 거야. 차로 한 시간이면 도착하거든.”

“이렇게 가까울 줄은 몰랐습니다.”

“그런데 말이야. 이곳에서 지내다 보면 엄청 멀리 떨어져 있다는 걸 느끼게 될 거야.” / 23p

 

 

 

 

 

 

   강민규는 곧바로 누가, 어떤 목적으로 원자재와 완성품을 빼돌리고 있는지 범인을 색출하기 위한 조사에 착수한다. 장부는 눈가림으로 만들어놨을 뿐, 입·출고 날짜랑 수량이 엉터리로 적혀 있으며 원자재와 완성품 수량도 교묘하게 맞추어져 있다는 것을 눈치 채는 일은 그리 어려운 것이 아니었다. 다만 생각보다 많은 인원이 조직적이고 지속적으로 움직이고 있다는 것, 느닷없이 나타나 공장 내를 들쑤시고 다니는 강민규를 공장의 직원들이 곱게 볼 리가 없다는 것이 문제였다. 심지어 강민규는 건드리면 좋을 게 없다는 협박에 가까운 소리를 듣기도 한다. 때문에 강민규가 국정원이라는 헛소문을 퍼트리고 다니던 유순태 법인장과 강민규 사이에 다툼이 일어나고, 바로 그 날 밤 의문의 살인 사건이 발생한다. 유순태 법인장이 자신의 숙소에서 살해를 당한 것이다. 일말의 주저함이나 두려움 없이 정교하게 계산된 듯한 살인 그리고 면식범인 듯한 자의 소행. 결국 범인은 여기 공장 내에 있는 사람들 중에 하나. 그렇게 강민규는 사건 현장의 특이성을 눈으로 훑으며 날카로운 감각으로 추리를 시작하려는데, 사회 안전원들이 들이닥치며 강민규를 범인으로 지목하고 그를 체포한다.

 

 

“기묘한 곳이네요.”

“가끔은 이곳에 있다 보면 유령이 되는 기분이야. 북한 사람들은 우리가 눈에 안 보이는 것처럼 대하고 있으니까 말이야. 북한 사람들과 함께 일하지만, 한편으로 그들 입장에서 우리는 없어야 되는 존재지.” / 40p

 

 

  “여긴 사고가 나면 안 되는 동네야.” 원종대 사장의 대사가 암시하듯 대한민국도 북한도 아닌 제3의 도시, 개성 공단에서는 그 어떤 사고도 일어나서는 안 되는 곳이었다. 그런데 대한민국 사람이, 그것도 공장장인 유순태 법인장이 살해되었다. 이렇듯 『제3도시』는 남과 북이 유일하게 공존하는 공간이자, 아슬아슬한 외줄과도 같은 개성 공단이라는 무대에서 일어난 의문의 살인 사건을 쫓는 추리소설이다. 공장의 물건이 조직적이고 지속적으로 외부로 유출되는 원인을 찾으러 개성 공단에 온 강민규가 뜻밖의 살인범으로 내몰리면서, 스스로 살인 혐의를 벗기 위해 사건의 진상을 추적해가는 내용이다. 개성 공단이라는 폐쇄적인 공간의 특수성, 그 배후에 짙게 깔려 있는 남북한의 정치적 관계, 난제에 가까운 살인 사건이라는 삼박자가 교묘하게 어우러져 극적 긴장감을 높인다.

 

 

 

뜻밖의 죽음 앞에서 그는 할 말을 잊었다. 어떤 죽음은 낯설고 뜻하지 않게 찾아온다. 하지만 그가 눈앞에서 직면한 죽음은 특히 더 낯설었다. 북한 속의 대한민국이라고 할 수 있는 개성 공단은 그 어떤 일도 일어나서는 안 되는 곳이었다. 죽음은 더더욱 그러했다. / 83p

 

충동적으로 벌인 것이 아닌 이상 살인은 거미줄처럼 얽혀 버린 감정 때문에 벌어진다. 개성 공단에서 살인을 저지른 이유는 분명 이 폐쇄된 지역과 연관이 있다고 그는 굳게 믿었다. / 135p

 

 

 

 

  추리 소설을 좋아하는 이들이라면 위기에 몰린 강민규가 추리를 통해 자신의 혐의를 벗어가는 과정에서 오는 스릴과 호위총국 오재민 소좌와의 수사 공조, 엎치락뒤치락하는 이야기의 반전들이 흥미롭게 느껴질 것이다. 특히, 개성 공단이라는 장소의 특수성을 비교적 현실감 있고 설득력 있게 담아낸 작가의 내공이 그럴 듯하다. 역사, 추리, 종말, 좀비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장르와 소재를 넘나들며 다수의 발표하고 있는 작가의 이력이 고스란히 느껴지는 작품이다. 이제 막 그의 작품 하나를 읽었을 뿐이지만, K-스릴러라는 장르를 이끌어갈 작가로 그의 이름을 자주 마주하게 될 것 같은 예감이 든다. 그의 활약이 기대된다.

 

 

 

이 도서는 ‘스토어하우스’로부터 협찬을 받았으나 본인의 주관에 의해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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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미호 식당 2 : 저세상 오디션 (청소년판) 특서 청소년문학 18
박현숙 지음 / 특별한서재 / 202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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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 죽음을 선택한 자들에게 주어진 아주 특별한 오디션!

우리는 주어진 시간을 어떻게 쓰고 있는가, 삶에 대한 자세를 일깨워주는 청소년 소설!

 

 

  전작 『구미호 식당』이 그러했듯, 『저세상 오디션: 구미호 식당2』에서도 삶과 죽음이라는 무거운 주제를 판타지라는 소재를 통해 기발한 상상력으로 이끌어낸 점이 돋보인다. 전작의 경우, 죽음을 앞둔 두 주인공이 이승에서 지낼 수 있는 마지막 사십구일의 시간을 얻음으로써 삶과 사랑하는 사람들과의 관계에 대해 소중함을 깨달았다면, 이번 작품은 ‘스스로 죽음을 선택한 자들’이 아주 특별한 ‘저세상 오디션’을 치름으로써 자신에게 주어진 시간의 소중함을 깨닫는다는 내용이다. 세상에 이런저런 오디션은 들어봤지만, 저세상을 가기 위해서도 오디션이 필요하다니. 자신에게 주어진 시간을 버리고 스스로 죽음을 선택한 이들에게는 완전한 죽음조차도 쉽게 허락되지 않는 법, 박현숙 작가는 영원히 구천을 떠돌아야 하는 신세가 된 이들에게 주어지는 마지막 기회를 저세상 오디션이라는 독특한 발상을 통해 흥미진진하게 풀어나간다.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은 모두 살아야 할 이유가 있는 시간들이다

 

 

 

   인간으로서의 삶이 허락된 세상과 죽은 자의 세상 사이의 경계에 있는 곳. 그곳으로 얼마의 시간을 걸어왔는지, 어느 정도의 거리를 걸었는지 가늠하기조차 힘들만큼 지친 모습을 한 열세 명의 일행이 도착한다. 저 멀리 산 중턱으로 구름이 유유히 흐르고 가끔 무지개가 떠오르는 모습이 평화로워 보이는 곳이 그들의 목적지임을 믿어 의심치 않으면서. 그런데 갑자기 누군가가 그들 앞에 나타나 길을 지나갈 수 없다고 막아선다. 심지어 ‘6월 12일 광오시에서 스스로 죽음을 선택한 이 열세 명의 일행’들은 저세상에 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오디션에 합격해야 한다는 불호령이 떨어진다.

 

 

 

“무슨 말이기는, 말 그대로지. 당신들은 당신들에게 주어진 그 귀하디귀한 시간을 헌신짝 내팽개치듯 버린 사람들이란 말이야. 그런데 시간 타령을 하다니. 당신들은 ‘시간’이라는 말을 입게 올릴 자격 없어.” / 10p

 

 

“세상에서 주어진 시간을 어떻게 살았는지에 대해 심판을 하지. 그것은 정해진 시간을 모두 살고 온 사람이나 그 시간을 채우지 못하고 스스로 죽음을 선택해서 오게 된 사람이나 모두 똑같다. 시간을 꽉 채우고 돌아오는 사람들은 이 길 대신 이 세상과 저세상의 중간에 놓인 강을 건너지. 하지만 자신에게 주어진 시간을 차버리고 배신한 사람들은 이 길로 오게 된다. 이 길로 온 사람들은 무조건 저곳으로 갈 수는 없다. 심판을 받는 곳까지도 쉽게 갈 수 없다는 말이다.” / 13p   

 

 

 

  자신에게 주어진 시간을 차버리고 배신한 사람들은 저세상에 마음대로 갈 수 없다는 말을 듣게 된 일행은 술렁인다. 그 중에서도 나일호는 억울하기 짝이 없다. 자신은 단 한 번도 죽음에 대해 생각해본 적이 없을뿐더러, 그저 하루하루 별일 없이 지나가기만을 바랐다. 그런데 딱 한 번, 낡은 건물 옥상에서 뛰어내리려는 친구 나도희를 구하려다 엉겁결에 함께 죽게 된 것이다. 뭔가 잘못된 거라고, 저는 억울하다고 하소연도 해보지만 단칼에 거절당한다. 그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10차에 걸친 오디션을 통과하는 것. 개인별로 지정된 심사위원을 울려야만 오디션에 합격할 수 있다.

 

 

 

 

 

 

   그렇게 혼돈의 오디션은 시작되고, 반신반의하는 마음으로 누군가는 노래를 부르고 또 누군가는 춤을 추기도 하며 심사위원을 울려야 하는 이 황당한 오디션에 참가한다. 하지만 갖은 노력을 다해 봐도 통과는커녕 점점 매서워지는 추위와 마른천둥의 공포에 견딜 수 없던 일행들은 빠른 속도로 지쳐간다. 그나마 서로 이야기를 나누며 이 끔찍한 곳에 영원히 남게 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을 잠시나마 떨쳐보는 것만이 작은 위안이 될 뿐이다. 1차, 2차, 3차… 계속 이어질 것 같던 오디션은 어느 새 마지막 오디션을 향해 속절없이 흘러가고, 모두들 더 이상은 희망이 없을 것 같다며 자포자기하려던 찰나에 이야기는 뜻밖의 국면을 맞이한다. 나일호가 이곳에 오게 된 것이 오류였다는 게 밝혀지면서 다시 살아 돌아갈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실낱같은 희망을 발견하게 된 것이다.

 

 

 

“‘오죽하면’이라는 말을 함부로 쓰지 마라. 세상에 나가는 선별에서 탈락한 수많은 영혼은 언제 올지 모를 기회를 기다리며 한 번씩 통곡하기도 하지. 그런 날이면 통곡 소리로 세상이 흔들리고 나는 아무 일도 할 수 없어 손 놓고 있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지. 하지만 그들을 말리지는 않는다. 통곡을 멈추라는 말을 못 한다. 오죽하면, 오죽하면 저리 슬프게 통곡을 할까, 이해하고 미안해한다. 생명을 얻어 세상에 나가지 못하면 그들은 형체도 없이 수천 년, 수억 년을 떠돌며 살아야 한다.” / 36p

 

 

“너희들은 착각을 했다. 너희들이 살던 세상을 떠나면 문제가 해결되고 안락하고 편안한 세상으로 단숨에 갈 수 있다고 생각했겠지. 그 착각으로 멍청한 선택을 한 거고 말이다. 너희들이 얼마나 멍청하고 무서운 선택을 했는지는 길을 통과하지 못하고 여기에 남게 되면 절실히 느낄 거다.” / 59p

 

 

 

   이제 나일호가 살아 돌아갈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희망에 일행들은 저마다 생전에 남기고 온 것들에 대해 그에게 부탁하기 시작한다. 비록 자신의 목숨을 스스로 끊은 사람들이지만 어느 누구하나 자신이 아닌, 타인으로 인해 목숨을 끊어야만 했던 이들이었기에 나일호는 집으로 돌아가야 할 이유가 보다 더 절실해지는 것을 느낀다. 자신만이 아니라 이들을 위해서라도. 과연 이 구구절절한 사연과 부탁들을 나일호는 들어줄 수 있을까? 그는 정말로 살던 세상으로 다시 돌아갈 수 있을까? 이야기는 마지막까지 흥미롭게 펼쳐진다.

 

 

 

“참 답답한 소리를 하는구나. 너희들이 살았던 그 세상에서 사정 없는 사람이 몇이나 되겠니?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들 참아내며 견디며 자신들에게 주어진 시간을 살아가고 있다. 살아가며 그 시간 안에서 좌절할 때도 있고, 절망할 때도 있지만 또 다른 희망과 행복을 찾기도 한다. 나는 세상에 나가는 영혼들에게 살다 올 시간을 부여할 때 어둠과 같은 막막한 시간만을 넣지는 않았다. 견뎠어야지. 참아야 했다. 여기에 온 사람들 중에 딱 한 시간만 더 참았어도 기쁨을 맞이할 사람도 있었다.” / 135p

 

 

“지금 이런 말씀 드리기는 참 그렇습니다만, 애초부터 불쌍하다, 가엾다, 이런 측은지심을 가져서는 안 되었습니다. 마천님께서 오디션이라는 절차를 만들어내느라고 얼마나 힘들었습니까? 그런데 그 노고를 아무도 몰라주고 있지 않습니까? 이 기회를 귀한 줄도 모르고, 죽을 둥 살 둥 매달려도 모자랄 판에 되니 안 되니, 스스로 포기하고 좌절하고……. 보기 참 딱합니다. 게다가 약점을 잡아 협박까지 하고 말입니다. 그저 주어진 시간을 차버린 대가를 치르게 두어야 했습니다.” / 159p

 

 

 

 

 

 

   “부디 너에게 남아 있는 그 시간을 행복하게 보내라. 오늘이 힘들다고 해서 내일도 힘들지는 않다. 오늘이 불행하다고 해서 내일까지 불행하지는 않다.” 저세상 오디션이라는 황당하고 발칙한 소재로 주목을 끌지만, 사실 이 소설에는 저마다의 이유로 벼랑 끝에 내몰려 죽음을 택할 수밖에 없었던 이들을 붙잡아주고 싶은 간절한 목소리가 담겨 있다. 불어오는 바람에 쓰러지지 않고 지지 않으며 살다보면 다시 웃는 날도 오는 법이라고, 그 안에도 또 다른 희망과 행복을 발견하는 법이라고 위로와 희망을 건넨다. 그래서 더 쉽게 상처받고 좌절하기 쉬운 여린 청소년들의 마음이 이 책으로 하여금 단단해질 수 있다면 좋겠다. 또한 나에게 주어진 시간에는 다 이유가 있다, 그 시간을 나는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고민해볼 수 있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출판사로부터 도서 협찬을 받았지만, 본인의 주관적인 견해에 의하여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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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러구트 꿈 백화점 - 주문하신 꿈은 매진입니다 달러구트 꿈 백화점
이미예 지음 / 팩토리나인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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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을 꿀 수 있다는 건 행복한 거야!

따뜻하고 감동적이고 신비한 마법의 묘약을 삼킨 것 같은 아름다운 동화! 

 

 

 

“손님, ‘옛 친구를 만나는 꿈’은 어떠세요? 2층 추억코너에 딱 하나 남았어요! 네? 어떤 친구가 나오냐고요? 그건 저도 모른답니다. 아마도 손님 기억 속에 있는 어릴 적 친구 중 1명이 나올 거예요.”

“몰디브에서 3박 4일 휴가 보내는 꿈‘은 들어오자마자 다 팔렸어요.”

(…) “전 층 전량 매진 임박. 매진 임박입니다!” / 41p

 

 

 

   이곳은 먼 옛날부터 사람들에게 수면에 관련된 상품을 판매하면서 발달해온 도시다. 잠옷 차림으로 돌아다니는 사람들, 숙면을 취하는 데 도움을 주는 요리를 판매하고 있는 뒷골목의 푸드트럭, 잠든 손님들이 옷을 훌렁훌렁 벗고 다니지 않도록 100벌이 넘는 수면용 가운을 짊어지고 손님들을 쫓아다니며 옷을 입히는 녹틸루카들. 그 중에서도 화려하고 고풍스러운 건물로 사람들의 시선을 끄는 ‘달러구트의 꿈 백화점’은 이 도시의 랜드마크다. 이름에서 알 수 있듯 꿈 백화점은 손님들에게 꿈을 판매하는 곳이다. 자세히 들여다보자면 1층에서는 아주 고가의 인기상품, 한정판, 예약상품들만을 소량 취급하고, 2층에서는 소소한 여행이나 친구를 만나는 꿈 또는 맛있는 음식을 먹는 꿈 등 평범한 일상에 가까운 꿈들을 판매한다. 3층은 하늘을 나는 꿈과 같이 액티비티한 꿈을, 4층은 잠을 많이 자는 동물들과 온종일 잠만 자는 아기 손님들이 많기로 유명하다. 마지막 5층에서는 유효기간이 임박하거나 예약해놓고 가져가지 않은 꿈을 할인 판매하고 있는데, 여기저기 한꺼번에 쏟아놓은 꿈 박스 속에서 운이 좋으면 저렴한 가격에 상당히 좋은 꿈을 건질 수도 있다.

 

 

 

   페니는 젊은이들에게 아주 인기가 좋은, 바로 이 달러구트 꿈 백화점에서 일을 할 수 있게 된 것을 아주 영광스럽게 생각한다. 그도 그럴 것이 높은 수준의 연봉, 각종 인센티브 제도, 기념일에는 고가의 꿈을 무료로 제공하는 세심한 직원 복지까지. 일자리로서의 장점이 셀 수 없이 많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어떤 것도, 달러구트와 함께 일할 수 있는 영광에는 비할 수 없을 것이다. 이곳 사람들은 모두 달러구트의 혈통과 도시의 기원이기도 한 그의 먼 조상에 대해 알고 있다. 무엇보다 자극적인 꿈을 파는 상점들이 우후죽순처럼 늘어나고 있는 가운데, 달러구트는 딱 필요한 만큼만 꿈꾸게 하고 늘 현실을 중요시 여기며 꿈 그 자체보다 그것을 꾼 사람의 가치를 소중히 여긴다는 점에서 페니는 그와 함께 일하는 상상을 하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벅차오른다.

 

 

 

“이 층에 있는 모든 꿈은 내가 하나하나 직접 검수해서 들여온 최상의 작품들이야. 난 이렇게 좋은 꿈들을 손님들이 멋대로 사가서는, ‘에이 개꿈이네’ 하고 불평하는 소리가 제일 듣기 싫어. 반드시 기억해둬. 아무한테나 팔면 꿈값을 못 받아.” / 45p

 

 

“얼마나 기다려야 하죠?”

“그건 확답 드리기가 어렵습니다만, 주문한 꿈을 제대로 수령하시기 위해서는 여러분이 지켜주셔야 할 일이 딱 하나 있습니다.”

“그게 뭐죠?”

“매일 밤 꼬박꼬박 최대한 깊은 잠을 주무세요. 그게 전부랍니다.” / 69p  

 

 

  달러구트와 웨더 아주머니를 도와 1층에서 일하게 된 페니는 ‘좋아하는 사람이 나오는 꿈’을 사러오는 그녀, ‘자신이 죽은 후 가족들에게 보내지는 꿈’을 주문제작하러 온 손님, 악몽을 꾸며 트라우마에 시달리는 사람들, 원하는 꿈(vision)에 다가가고 싶지만 여전히 자신에게 재능이 있는지 없는지를 알 수 없어 괴로워하는 한 남자 등 저마다 다른 이유로 자신들이 원하는 꿈을 찾아 꿈 백화점을 찾은 손님들을 만난다. 그러는 동안에 꿈이 누군가에게는 현실을 극복하는 길을 열어 보이고, 트라우마를 극복하는 계기가 되며, 닫혀 있던 관계를 열어 보이는 문이 되기도 한다는 것을 점차 알아가게 된다.

 

 

 

“좋아하는 걸 깨닫는 순간부터 사랑이 시작되는 거란다. 그 끝이 짝사랑이든, 두 사람의 사랑이든, 우리의 역할은 그걸로 충분하단다.”

“짝사랑이 아니면 좋겠어요. 너무 슬프잖아요.”

“네 말대로 꿈은 꿈일 뿐이잖니? 현실의 그녀를 믿어보자꾸나.” / 87p

 

 

“내 판매 방식이 이상한 것 같니?”

“사겠다는 손님에게는 팔지 않고, 안 사겠다는 손님에게는 굳이 손에 쥐어서 보내시니까요.”

“아가냅이 만든 예지몽은 미래를 보고 싶어 하는 손님에게는 실망스러운 상품이지만, 전혀 기대하지 않던 손님에게는 뜻밖의 작은 선물이 되거든.” / 115p

 

 

“정말 싫은 기억이기만 할까요?”

손님들이 일제히 달러구트를 바라봤다. 또 무슨 얘기를 하나 어디 한 번 두고 보자는 표정이었다.

“가장 힘들었던 시절은, 거꾸로 생각하면 온 힘을 다해 어려움을 헤쳐 나가던 때일지도 모르죠. 이미 지나온 이상, 어떻게 생각하느냐에 따라 달라지는 법이랍니다. 그런 시간을 지나 이렇게 건재하게 살고 있다는 것이야말로 손님들께서 강하다는 증거 아니겠습니까?” / 144p

 

 

 

 

 

 

   이렇듯 『달러구트 꿈 백화점』은 꿈의 직장인 달러구트의 백화점에서 일을 하게 된 신입사원 페니가 꿈을 판매하면서 벌어지는 여러 에피소드들을 중심으로 전개되지만, 이 소설을 사랑스럽게 만드는 것은 곳곳에 배치된 판타지 요소들이다. 각 층마다 손님들의 기호에 맞게 다양한 장르의 꿈을 판매하는 달러구트의 백화점을 중심으로, 후미진 골목의 음침한 곳에서 악몽을 만드는 막심, 태몽과 예지몽을 만드는 전설의 꿈 제작자 아가냅 코코, 12월에만 한정 판매하는 꿈 제작자 니콜라스, 하늘을 나는 꿈을 만드는 레프라혼 요정들, 손님들이 올 시간을 미리 알기 위해서 특수 제작된 단골손님들의 눈꺼풀 저울 등 비밀스럽고 신비한 판타지의 요소들이 이 꿈의 도시를 정교하게 이끌어간다. 덕분에 ‘꿈’이라는 공간이 얼마나 많은 상상력을 담아내고 있는지, 늘 아슴푸레하게 매만져지지 않았던 꿈이 얼마나 유쾌하고 따뜻한 온기를 품고 있는 것인지 깨달을 수 있어서 읽는 내내 행복하고 설레었다.

 

 

 

“항상 꿈의 가치는 손님에게 달려 있다고 하셨는데…. 아하, 그렇군요. 손님이 직접 깨닫느냐 마느냐의 차이예요. 직접 알려주는 것보다 손님 스스로 깨닫는 것이 중요하죠. 그런 꿈이 좋은 꿈이에요.”

“그렇지. 과거의 어렵고 힘든 일 뒤에는, 그걸 이겨냈던 자신의 모습도 함께 존재한다는 사실. 우린 그걸 스스로 상기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단다.”

“네, 저희가 꿈을 파는 이유가 거기 있죠. 결국 모든 건 손님들에게 달린 거니까요. 제 말 맞죠?” / 154p

 

 

“그 꿈은 이미 다 손님 머릿속에 있던 겁니다.”

“정말요?”

“영감이라는 말은 참 편리하지요. 아무것도 없는 상태에서 뭔가 대단한 게 툭하고 튀어나오는 것 같잖아요? 하지만 결국 고민의 시간이 차이를 만드는 거랍니다. 답이 나올 때까지 고민하는지, 하지 않는지. 결국 그 차이죠. 손님은 답이 나올 때까지 고민했을 뿐이에요.” / 231p

 

 

 

 

 

 

   이 겨울, 『달러구트 꿈 백화점』이 전하는 따뜻하고 감동적이며 신비한 마법의 설렘 한 병을 마셔보시길 추천 드린다. 그리고 늘 품고 품어도 아깝지 않을 사랑하는 사람을 꿈에서 만나시기를. 현실의 괴로움을 잊고 또 한 발 나아갈 수 있는 용기를 얻으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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