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이지유신을 설계한 최후의 사무라이들 - 그들은 왜 칼 대신 책을 들었나 서가명강 시리즈 14
박훈 지음 / 21세기북스 / 202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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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이지유신을 통해 들여다본 일본인들의 역사의식!

일본 역사를 바로 아는 것은 곧 우리 역사를 바로 이해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우리에게는 과거 일본의 식민지였던 뼈아픈 경험이 있다. 그로 인해 발생한 뿌리 깊은 반일감정과 경쟁의식은, 때로는 우리를 분발하게 했지만 때로는 눈을 가리기도 했다. 일본이 임나일본부설을 주장하는 근거와 이유는 무엇인지, 왜 독도를 끊임없이 자기네 땅이라 우기는 것인지. 우리가 그저 근거 없는 주장일 뿐이라고 일축하는 사이, 그들은 교과서를 비롯해 자신들에게 유리한 증거들을 제시하면서 압박해오고 있다. 『메이지유신을 설계한 최후의 사무라이들』의 저자 박훈 교수는 일본인들의 역사관과 의식에 이 같은 주장이 뿌리를 내리게 된 배경은 무엇이고, 이에 맞서 우리가 일본을 상대하고 경쟁하기 위해서는 우선 상대를 철저하게 알아야 한다고 말한다. 이제 우리에게는 보다 전략적이고도 냉철한 감각이 필요하다. 우리가 일본 역사를 알아야 하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근대 일본을 아는 첫걸음, 메이지유신

 

 

  프랑스인들은 자신의 정체성을 프랑스대혁명에서 찾고, 미국인들은 국가의 나아갈 방향을 물을 때 독립혁명의 아버지들을 소환한다고 한다. 같은 의미에서 일본은 근현대 일본이 어디서 왔고 어디로 가야 하는가를 생각할 때 메이지유신을 불러낸다. 때문에 우리가 현대 일본의 유래와 현재 일본인들의 사고방식을 깊게 이해하려면 메이지유신에 대한 식견이 필요하다. 이에 『메이지유신을 설계한 최후의 사무라이들』에서는 메이지유신이 일어나기 전의 시대적 상황과 메이지유신을 이끌었던 주역들의 삶을 통해 그 속에서 근대 일본이 탄생할 수 있었던 비결과 전략을 분석하고자 한다.

 

 

 

  18세기 전반, 조선은 대략 1000만 명의 인구가 살고 있었던 반면 일본은 3000만 명이 넘었으며 특히 수도인 에도는 인구 100만 명이 넘는 대도시였다. 도쿠가와 막부 치하에서 급속도록 발전한 일본은 상업과 화폐경제가 놀랄 정도로 발달했으며 문화적으로도 세련된 수준에 이르러 다도, 가부키, 기모노 등 우리가 알고 있는 일본의 전통문화가 대개 이때 형성되었다. 하지만 높은 생산력과 상업 발달은 빈부격차를 낳았고 경제성장의 혜택을 입지 못한 계층이 두드러지기 시작했다. 그 중에서도 봉록 수준이 낮은 하급 사무라이들은 물가가 상승하고 인플레이션이 발생하면서 경제적 곤궁에 빠지게 되었다. 더군다나 도쿠가와 시대는 사무라이 국가이면서도 1615년 오사카 전투 이후 250년간 이렇다 할 전쟁이 없었기에 이들은 출세할 일도 없고 주군이 맡긴 자잘한 사무나 보며 빈곤한 녹봉으로 근근이 생활해나가는 것이 전부였다. 때문에 사무라이들은 유학, 그중에서도 주자학을 익히며 아무리 기다려도 오지 않는 전투 대신 천하대사의 정치에 뛰어들기 시작했다. 그런 가운데 1853년 미국 동인도함대 사령관 페리가 증기선을 이끌고 에도만에 나타났다. 아울러 청나라에서 발생한 아편전쟁은 당시 쇄국 상태를 유지하고 있었던 일본에 대외 위기의식과 대내 위기의식을 크게 고조시켰다.

 

 

 

신식화기로 중무장한 영국의 증기선 앞에 대청제국은 맥을 못 추었다. 하지만 일본은 신속하게 반응했다. 청과 남경조약을 맺은 영국이 뱃머리를 일본으로 돌릴 것이라는 흉흉한 소문이 돌았다. 쇄국이 국시인데 청나라처럼 개항을 할 수는 없었다. 개항을 거부하면 전쟁은 당연했고 전쟁을 하면 필패였다. 사무라이 정권인 막부는 청 조정처럼 서양 오랑캐 따위는 이길 수 있다는 환상을 갖고 있지 않았다. 오직 무력으로 권력을 유지해온 막부이기에 전쟁에서 지면 끝장이었다. / 36p

 

 

해리스의 압력을 이기지 못하고 막부는 1858년 무역을 허용하는 조약을 체결했다(미일통상조약). 이어 영국, 러시아, 프랑스, 네덜란드와도 통상조약을 체결했다. 이제 일본은 본격적으로 서양과의 무역에 뛰어든 것이다. 조선이 일본과 강화도 조약을 맺은 것이 1876년이었으니 그보다 20년 가까이 빠른 것이었고, 서양 열강과 조약을 맺기 시작한 것이 1880년대 초였으니 약 25년 정도 전의 일이었다. / 38p

 

 

 

  이렇게 서양 열강의 침략 움직임과 급변하는 세계정세에 눈을 뜨기 시작한 사무라이들이 있었으니, 대표적인 인물이 요시다 쇼인이다. 당시 일본은 해군이 전무한 상태였는데, 페리가 일본 앞바다를 제 집처럼 휘젓고 다니고 에도만에 깊숙이 진입하며 위협을 가해도 해상에서는 속수무책이라는 것을 깨달은 쇼인은 해군 육성을 재촉했다. 뿐만 아니라 쇼인의 해외팽창론과 체제 혁신은 당시 그가 이끌던 송하촌숙의 젊은 사무라이들의 리더와 인재들에게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우리에게는 애석한 일이지만 “조선을 옛날과 마찬가지로 공납하도록 촉구”하고 해외팽창의 발판으로 울릉도를(당시에는 울릉도를 다케시마라 불렀다) 주목한 것은 ‘임나일본부설’을 비롯해 오랫동안 일본인의 조선의식에 큰 영향을 주었다.

 

 

 

쇼인의 양이론은 맹목적인 통상 반대는 아니었다. 그는 서양에 맞서려면 그만한 경제력이 필요하고 그것은 무역에서밖에 나올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것은 부국강병론과 가까운 것이었다. 아울러 서양과 싸우려면 강력한 국내 개혁을 통해 임전태세를 갖추지 않으면 안 되었다. 일본의 양이론은 대외강경론인 동시에 체제개혁론이었으며, 수구적인 입장과는 거리가 멀었다. 이런 점에서 나는 양이론이라기보다는 ‘양이개혁론’이 더 적절한 명칭이라고 생각한다. / 85p

 

도쿠가와 시대 사람들에게 ‘국가’는 일본 전체가 아니라 자기 번을 가리키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 국가의 틀을 넘어, 천하로 인식되던 일본을 ‘새로운, 유일한 국가’로 창출해가는 것, 그리고 번주에 대한 충성을 천황에 대한 충성(존왕주의)으로 전환해가는 것, 이것이 메이지유신의 과정이었다. / 111p

 

 



 

 

 

  요시다 쇼인이 해외팽창론을 제기하고 강렬한 일본정신을 강조했다면 사카모토 료마는 개국론의 선봉에 선 인물이다. 일본의 국민작가라 불리는 시바 료타로의 『료마가 간다』 외 각종 대하드라마를 통해 잘 알려진 그 사카모토 료마다. 현재 일본 사회가 국제적인 마인드를 중시하고 아시아와의 협력을 중시할 때는 료마가 곧잘 소환된다. 반대로 일본의 민족주의를 강조하고 아시아에 대해 날선 자세를 보이는 정치세력은 요시다 쇼인을 즐겨 소환한다. 아베 신조 전 총리가 대표적이다. 저자인 박훈 교수가 ‘쇼인은 강렬하고 어둡지만 료마는 명랑하고 밝다. 나는 일본 시민들이 쇼인보다는 료마를 더 주목해주길 희망’한다고 밝히는 데서 우리는 강렬할 일본우월주의를 낳은 메이지유신의 한계와 약점을 엿볼 수 있다.

 

 

 

  사카모토 료마 못지않게 일본 역사인물 중에서 최고의 인기를 누리고 있는 사이고 다카모리 역시 이 무렵에 등장한다. 톰 크루즈가 주연한 <라스트 사무라이>의 주인공이 바로 그다. 사이고는 ‘최후의 사무라이’이자 ‘근대 일본의 로망’으로 국가의 생존을 위해 급격한 서구화 변혁을 수행했지만, 그 과정에서 피치 못하게 발생하는 사무라이들의 상실감을 그는 이해한 인물이었다. 사이고는 서양과 근대를 배척하지 않으면서 동시에 일본과 전통을 함께 껴안고 그 사이에 끼어 죽었다. 때문에 메이지 정부에 반란을 일으켰지만 아무도 그를 반란의 수괴로 여기지 않았다. 나라의 생존을 위해서 열심히 서구화를 추구했지만 그 과정에서 피치 못하게 발생하는 민족적 상실감을 사이고를 통해서 만회하려고 했던 일본인들의 아이덴티티가 여기에서 드러난다. 반면 유신삼걸 중에 한 명인 오쿠보 도시미치는 살아생전에는 사무라이의 배신자이자 냉혈한 독재자로 비난을 받았지만 ‘서양을 배워 그보다 강한 일본’을 구축하고자 하는 메이지유신의 개혁과제를 수행하고 근대 일본 초석을 다지는 데 크게 기여하였기에 주목해볼 필요가 있다.

 

 

 

메이지유신은 존왕양이를 부르짖던 사무라이들이 주도했다. 천황을 숭상하고 서양 오랑캐를쫓아내자는 것이다. 그러나 메이지 정부는 집권 이후 곧바로 서구 열강과의 화친을 선언했다. 막부가 맺은 조약도 그대로 계승했다. 존왕은 실천했으나 양이의 약속은 배신한 것이다. 이에 대해 사무라이들의 분노는 들끓었다. 사무라이들은 서양과 전쟁을 하기는커녕 날로 서양화되어가는 일본의 현실에 반란을 일으킬 조짐마저 보였다. 그들이 숭배하는 사람은 사이고 다카모리였다. 서양과 결탁한 정부 지도자들과 달리 사이고는 일본 혼을 실현해줄 인물로 여겨졌다. / 226p

 

 

오쿠보 도시미치의 리더십은 무엇보다 현실주의적이었다. 무모한 양이운동에 동조하지 않아 대중에게는 인기가 없었다. 자신이 속한 사쓰마번의 권력을 이용해 막부타도 운동을 벌이고, 정한론을 시기상조라고 반대했으며, 독일을 모델로 한 행정부 중심의 국가 운영과 국가 주도의 경제개발 정책을 시행했다. / 281p

 

 

 

  정리하자면 메이지유신은 지배층인 사무라이층 내부의 다툼과 그 파장으로 일어난 것이고, 그 속에서 급진개혁파가 주도권을 잡아 이뤄낸 변혁이었다. 저자는 이런 메이지유신의 성격은 일본 사회에 보수성과 안정성을 동시에 가져다주었다고 평가한다. 보수성이라고 해서 변화를 거부하는 것이 아니라 커다란 변혁을 보수세력이 점진적인 방법을 통해 수행했다. 그러니 변혁이 진행되어도 사회질서가 총체적으로 붕괴되는 일 없이 안정성을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이런 특성 때문에 일본 대중은 정치참여에 관심이 덜한 듯하다. 정치란 어차피 특정 사람들이 사는 것이란 생각이 자연스레 형성되었기 때문이다. 또 그만큼 가만히 있어도 지배층이 점진적 개혁을 진행해주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어쩌면 지금 일본의 위기는 이 패턴이 작동하지 않는 데서 비롯된 측면이 큰 것은 아닌지 생각해볼 문제다.

 

 

 

일본의 신분은 법제적으로나 사회적으로 이미 정해져 있었다. 신분에 따라 거주지역도 구분되었다. 그러니 사무라이는 사무라이대로, 상인은 상인대로, 농민은 농민대로 서로 다른 세계에 살고 있었다. 그리고 그 신분은 대대로 물려주는 것이다. 농민이 굳이 사무라이가 되려 하거나 상인이 애써 농민이 되려 하는 일은 잘 없었다. 각자가 자기 신분에서 자기 집안에 주어진 일(가업)에만 충실하면 되었다. 우리가 일본에 가서 놀라는 것 중 하나가 몇 대째 가업을 잇는 경우가 아직도 많다는 것이다. 100년 된 스시집, 5대째 이어오는 포목상 등 그 연원은 이처럼 깊다. 도쿠가와 일본 사회는 가업이 기초가 되는 사회였다. / 139p

 

 

 





 

 

 

 

  서가명강 시리즈답게 『메이지유신을 설계한 최후의 사무라이들』은 일본의 근현대사와 그 속에 얽힌 일본인들의 의식을 이해할 수 있는 아주 쉽고 명쾌한 강의다. 여러 매체를 통해 우리에게도 익히 알려진 사카모토 료마, 사이고 다카모리를 비롯해 이토 히로부미가 일본 정치의 핵심인물로 자리 잡는 과정을 들여다보는 것도 흥미롭다. 무엇보다 이 책은 무조건적인 배척과 경쟁의식이 아니라 좀 더 유연한 사고와 통찰력을 통해 일본 역사를 바로 들여다보기를 독려한다는 점에서 의미 있다. 우리 역사 바로 알기의 중요성만큼 일본이나 중국과 같이 우리 역사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 주변국들의 역사까지 바로 아는 것 역시 중요한 일이다. 그런 의식을 가지는 데 이 책이 매우 긍정적인 역할을 할 수 있으리라 기대된다.

 

 

 

출판사로부터 도서 협찬을 받았지만, 본인의 주관적인 견해에 의하여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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면역의 힘 - 살면서 마주하는 모든 면역의 과학
제나 마치오키 지음, 오수원 옮김 / 윌북 / 202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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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에게나 면역의 힘이 필요한 시대, 우리가 꼭 알아야 할 면역에 관한 모든 것!

불필요하고 과장된 정보에 흔들리지 않고 면역을 지키는 가장 확실한 방법!

 

 

 

   면역은 이제 그 누구도 빗겨갈 수 있는 우리 시대의 핵심 화두다. 기껏해야 겨울철 감기로 극심한 고열이나 몸살에 시달린 후에야 부랴부랴 면역에 좋다는 영양제와 음식을 챙겨먹곤 했던 우리들에게 코로나19라는 팬데믹은 면역, 즉 미생물의 힘이 얼마나 큰지를 일깨워주는 대척도가 되었다. 다시 말해 우리의 생활 방식과 사회라는 생태계가 그동안 얼마나 면역에 취약해졌는지를 깨달을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이자 개개인은 물론 공동체 구성원들을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인식해야만 하는 중대한 기로에 놓였다는 뜻이기도 하다. 무엇보다 신종플루, 지카바이러스, 에볼라바이러스, 코로나19 등 지난 수십 년간 발생한 각종 질병과 감염병의 유행으로 미루어보았을 때 우리가 아무리 완벽하게 대응한다 해도 팬데믹은 계속될 것이다. 이는 곧, 우리가 면역력을 기르고 유지하는 데 있어 단기적인 계획이 아니라 장기적인 계획이 필요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20년간 면역을 연구해온 면역학자 제나 마치오키 박사는 말한다. 팬데믹이 강타할 때 벌어지는 일 가운데 많은 것은 너무도 압도적이라 우리의 통제 범위를 벗어나는 것 같지만 가능한 범위 내에서 개개인이 할 수 있는 일은 분명히 있다고. 정상 상태에 대한 감각을 보존하기 위해 노력하고, 매일과 매주 각자의 리듬과 일상을 창조하는 일은 어느 날 떨어지는 갑작스러운 행운보다 더 강하게 자신을 보호해주는 힘이 될 거라고 말이다. 우리가 면역을 바로 알고 그것을 일상에서 꾸준히 지키는 것, 그것이야말로 팬데믹이라는 위기 앞에서 나 자신과 공동체 전체를 지키는 일이라는 그녀의 메시지는 지금의 우리에게 무척이나 중요하다.

 

 

 

면역력을 높이는 우리 시대의 건강법

 

 

 

   『면역의 힘』에 따르면 감염원으로 가득 찬 세계에서 면역계만큼 우리를 보호해줄 수 있는 약은 없다고 한다. 병에 걸리는 문제는 면역계가 온전한지 아닌지에 따라 결정될 만큼 건강 유지에 있어서 면역은 우리의 가장 귀중한 자산이다. 뿐만 아니라 면역은 제2의 두뇌라고 불리기도 한다. 신체 내부와 주변에서 정보를 건져 뇌로 보내는 특화된 생체감지기 네트워크로, 이는 우리 몸이 특정한 방식으로 행동하도록 동기를 부여하고 조종할 수 있다. 몸을 웅크리거나 떨거나 잠이 드는 것-대개 질병이나 쇠약의 증상-처럼 간단한 행동도 사실은 감염에 대응하는 아주 구체적이고 이로운 반응일 수 있다. 또한 면역계는 수동성이나 공격성, 혹은 성적 매력처럼 질병과 전혀 관련 없는 행동에 영감을 주고, 우리의 행동 방식뿐 아니라 감정 방식, 심지어 내가 누구인가에 관해서도 꽤 깊이 관여할 정도로 우리에게 있어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한다.

 

 

 

   우리가 태어나서 죽는 순간까지 시시각각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은 잠재적 감염 위협으로부터 조용히 공격받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자각하지 못하고 있는 것은 우리 몸의 면역이 대부분 이러한 위협에 잘 대처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도 그럴 것이 면역계는 무력을 휘두르는 무자비한 방어 부대가 아니라 정교하고 섬세한 방어 부대에 가깝다. 이를 테면 끊임없이 유혈 낭자한 전투를 일으키기보다 안정되고 조화로운 상태를 지키려 애쓰는 평화유지군에 비유할 수 있다. 사악한 적을 물리치는 데 집중하면서 아군이 입는 피해, 즉 조직 손상을 최대한 피하면서 우리 몸을 보호하는 역할을 하는 것이다.

 

 

 

기억을 담당하는 후천면역세포는 발생한 감염원에 즉시 덤벼들어 싸우지 않는다. 대신 동일한 세균이 다시 나타날 미래를 대비하여 몸속을 순찰한다. 따라서 후천면역세포가 기억한다는 것은 몸속에서 똑같은 병원균을 만나면 증상을 겪기 전에 세균을 쳐부술 방법을 면역계가 미리 안다는 뜻이다. 천연두 같은 특정 질환에 여러 번 노출되어도 병을 한 번만 앓는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그러나 인플루엔자바이러스와 감기 바이러스(리노바이러스) 같은 더 교활한 바이러스는 면역 기억을 피할 수 있도록 분자 정보를 계속 바꾸는 엉큼한 방법을 진화시켰다. / 33p

 

 

심장병, 제2형 당뇨병, 자기면역질환, 알레르기, 일부 암, 심지어 알츠하이머병 같은 신경 퇴행성 질환까지 겉으로 보기에는 만성염증과 무관한 질환들이 사실은 면역과 근원적으로 연결되어 있다. 이유가 무엇일까? 우리 몸의 면역 반응은 ‘구조 작업’을 지속하게 되면 결국 해결하지 못한 채 몸 곳곳의 건강한 세포와 조직과 장기를 손상시키게 된다. 이는 결국 DNA 손상과 조직괴사, 내부 유착을 일으킨다. 만성염증은 최근에 부상한 현상이지만 관련된 질환 자체는 새로운 것이 아니다. 이 질환들은 노화로 인한 마모성 질환과 동일하지만 증가 속도가 가파르다. 게다가 오늘날 만성염증은 더 공격적인 양상을 띠고 있으며, 산업화된 선진국에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 더 일찍부터 나타나고 있다. / 68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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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면역의 힘』은 이처럼 미세하고 정교한 면역계의 메커니즘이 우리 몸 안에서 작동하는 방법을 비롯하여 면역을 교란시키는 여러 요인과 면역력을 높일 수 있는 다양한 방법들을 제시한다. 아무래도 아이를 키우고 있는 엄마의 입장이다 보니 생후 첫 5년이 남은 생애 면역의 상태를 결정할 만큼 매우 중요한 시기라는 점에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건강의 뿌리이자 섬세하고 연약한 면역 균형은 태어날 때의 상황과 태어난 후 첫 5년 동안 영양분을 공급받은 방식에 좌우되기 때문이다. 특히 유아기의 잦은 항생제 치료가 감기 및 다른 상기도감염 확률을 두 배 이상을 만들 뿐만 아니라 장기적으로도 염증성 장질환, 비만, 당뇨 천식, 알레르기 같은 면역계 질환의 위험이 증대될 수 있다는 말은 유념할 필요가 있겠다. 한 번의 항생제 치료만으로도 장내세균의 구성과 다양성에 해로운 영향을 초래할 수 있고, 생체 기능에 중요한 많은 종을 쓸어버리며 우리 몸을 둘러싼 생태계를 붕괴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구강에 해로운 미생물이 과다하게 서식할 경우 류머니즘성 관절염, 염증성 장질환, 심지어 심혈관질환 같은 염증성질환으로 번질 수 있다는 사실도 인상적이다. 이는 구강 건강을 먼저 살필 경우 말 그대로 질병의 진행이 멈춘다는 뜻으로, 저자는 어떤 식사를 하느냐는 구강건강 못지않게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충치를 초래하는 단 음료는 구강미생물총의 다양성을 감소시켜 문제를 유발할 수 있으며, 클로르헥시딘을 함유한 구강청결제도 입안의 미생물 다양성을 줄일 뿐 아니라 현대 건강의 많은 우려 요인을 촉진시킨다고 한다. 그러니 구강건강에 도움이 되려면 은나노 입자로 된 것, 혹은 약한 과산화수소를 함유한 구강청결제를 사용하는 것이 좋다고 하니 참고해보자. 이 외에도 현대인의 대표적인 문제인 수면 부족은 심각한 만성질환과 싸워 이를 퇴치할 때 악영향을 미친다고 한다. 잠을 충분히 자지 못해 염증 촉진 신호가 상승하면 알레르기와 자가면역질환 같은 기저질환이 악화될 뿐 아니라 그로 인한 위험이 증가하는 것이다. 깊은 잠을 충분히 자지 못할 경우에도 통증에 대처하는 능력이 저하되어 갖가지 통증, 두통 혹은 기저질환 통증이 악화될 확률이 있다고 한다. 평소 수면 부족으로 인한 두통을 달고 사는 나로서는 반드시 주의가 필요할 듯하다.

 

 

 

모체의 면역계는 자궁에 있는 태아, 절반은 자신이 아닌 이질적인 아기를 면역계가 거부하지 못하도록 임신 기간 내내 면역반응을 억제해야 한다. 애초에 여성의 임신 가능성을 높이기 위해 진화는 성적으로 왕성한 여성의 면역을 항상 어느 정도 억제하는 방식을 발전시켰다. 놀랍게도 이 면역역제 작용은 흥분과 성적 쾌락으로 유발되며, 여성의 성관계 빈도와 관련이 있다. 반면 남성은 성관계 횟수가 많을수록 면역 방어를 더욱 강화시킨다. / 89p

 

 

내장지방조직에 살고 있는 대식세포는 특정 상황에서 만성적으로 활성되어 염증성 사이토카인을 생성할 가능성이 더 높다. 이는 면역세포의 적응 반응으로서, 지방세포에 스트레스를 주는 과식에 대응하여 남는 에너지를 저장하려 애쓰는 중에 이루어진다. 과식이라는 ‘위험’은 염증 유발 면역세포를 더 많이 끌어모아 염증을 악화시킨다. 이 위험은 또한 지방세포 자체의 기능부전을 일으키도록 작용한다. 그렇게 지방세포들은 지방으로 가득 차 크기가 커지고 숫자도 늘어나며, 이는 그 자체로 스트레스 신호를 유발하여 염증 상태를 지속하게 만든다. 그러므로 꾸준히 지방세포가 커지는 상태는 몸이 늘 염증 상태에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 116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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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을 읽다보면 우리가 얼마나 많은 과장 광고와 출처가 불분명한 정보에 현혹되었는지를 새삼 느끼게 된다. 그 중에서도 면역계는 결코 켜고 끄는 스위치 같은 것이 아니기에 면역을 ‘증강’시킨다는 각종 보조제의 광고를 믿지 말라는 충고에 주목해볼 필요가 있다. 면역계는 제대로 작동시키기 위해 부단히 조절해야 하는 조절 스위치와 같아서, 너무도 상이한 미생물에 너무도 많은 방식으로 대응하는 면역세포의 어떤 것을, 그것도 얼마나 증강시켜야 할지에 대한 단일한 정답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최근 식물성 영양소를 강조한 보충제 광고들이 다수 보이는데, 저자는 규제도 없고 식사에서 섭취하는 식물성 영양소와 동일한 이점을 줄 확률도 없으며 오히려 정체형 보충제가 건강에 해로울 수도 있다고 설명한다. 식물성 영양소 보충제는 대개 항산화제로 광고되는데 식사를 통해 자연스레 섭취하는 것보다 지나치게 많은 용량을 함유하고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가령 당근에 들어 있는 베타카로틴이 암 위험을 낮추는 것과 정반대로 베타카로틴 알약은 암 위험을 높인다고 하니 주의해서 사용해보자. 참고로 모든 보충제가 나쁘다는 것은 아니다. 50세가 넘은 사람은 나이가 들면서 음식에서 흡수하기 어려워지기 때문에 비타민B12와 같은 미량영양소는 보충제를 통해 더 건강한 면역계를 유지하는 데 도움을 받을 수 있다고 하니, 우리 집에 있는 영양제나 보충제가 내 몸의 어떠한 기능을 하고 있고 반드시 필요한 것인지 꼭 따져볼 필요가 있겠다.

 

 

 

몸을 움직여라. 운동은 근육 손실과 면역력 약화, 이 둘과 한꺼번에 맞서 싸울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방안이다. 면역이 근육 강화를 도울 때 근육을 움직이면 면역 또한 활성화된다. 최근의 한 프로젝트는 55세에서 79세까지의 자전거 타는 남녀 125명을 조사했다. 성인기 대부분의 시간 동안 높은 강도로 자전거를 타온 사람들이었다. 운동하지 않은 노인들과 주로 앉아서 지내는 20대 젊은이들의 면역계를 활동적으로 자전거를 탄 노인들의 면역계와 비교해보았더니 운동을 했던 노인들의 면역력이 나머지를 멀찌감치 밀어냈다. / 276p

 

 

비타민C는 물론 면역에 중요하지만 비타민A와 D야말로 면역에 큰 역할을 한다. 비타민A는 시력을 유지하고 성장과 발달을 촉진시키는 데 중요한 미량영양소다. 비타민A는 면역계 조절을 돕고 피부와 구강 조직, 위, 장, 그리고 호흡기를 건강하게 유지해 감염으로부터 보호한다. / 324p

 

 

아연은 체내에 축적되지 않으므로 면역계의 온전함을 유지하려면 매일 규칙적으로 섭취해야 한다. 아연을 흡수하는 능력은 나이가 들면서 감소하는 듯하다. 따라서 노인들이 특히 위험하며, 아연 결핍은 감염에 대한 방어력을 손상시킨다고 알려졌다. 아연은 감기 바이러스가 자라거나 코의 점막에 붙는 능력을 감소시키고, 특수 면역세포가 감염과 싸우도록 힘을 강화한다. 감염예방을 위해 겨울철 몇 달 동안 아연을 보충하면 어느 정도 도움이 된다. 증상이 시작되자마자 아연을 보충하기 시작하면 감염의 심각성과 지속 기간을 줄이는 데 도움이 된다는 증거도 있다. / 325p

 

 

 

   서양의학의 창시자인 히포크라테스는 ‘병에 걸린 사람을 파악하는 것이 병을 파악하는 것보다 훨씬 더 중요하다.’고 했다. 윌리엄 오슬로 역시 ‘결핵 치료의 관건은 환자 몸에 있는 병보다 머릿속에 있는 것’이라 하여 감정 상태가 질병의 발발과 진행에 영향을 끼친다는 점을 시사했다. 이것은 곧, 코로나19가 유발한 팬데믹이라는 위기 앞에서 우리가 어떠한 자세와 마음가짐을 지녀야 할지를 생각하게 한다. 코로나19는 분명 위기가 아니라 기회가 될 것이다. 그간 현대인은 대부분 면역계가 원하는 것을 충분히 충족시키지 못하고 있다는 신호를 무시하고 살아왔다. 이제는 면역계가 보내는 신호에 귀를 기울이고 이에 따른 생활 습관을 개선해야만 한다. 그런 의미에서 『면역의 힘』은 우리가 주도적으로 면역을 이해하고 건강한 삶을 이끌어가는 데 꼭 필요한 정보들을 알려주는 탁월한 책이다. 이 책으로 하여금 나와 가족, 사회 구성원 전체의 안녕과 건강을 증진하는 데 도움을 얻어 보시기를 추천 드린다.

 

 

 

출판사로부터 도서 협찬을 받았지만, 본인의 주관적인 견해에 의하여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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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나로 살 뿐 2 - 원제 스님의 정면승부 세계 일주 다만 나로 살 뿐 2
원제 지음 / 수오서재 / 202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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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전한 ‘나’를 찾아가는 근원의 여정!

길이 나에게 물어오는 것들, 그 속에서 깨닫게 되는 삶의 진정한 의미들!

 

 

 

  묵은 경전 글귀가 아닌, 고요한 선원 좌복 위에서만이 아닌, 삶이라는 생생한 터전에서 수행하기 위해 나선 원제 스님의 세계 일주 기록은 2권에서도 계속된다. 일본의 지브리 뮤지엄을 시작으로 이스탄불, 탄자니아, 남미의 최남단 파타고니아, 볼리비아의 우유니 사막, 브라질, 콜롬비아, 워싱턴 D.C 등 5대륙 45개국의 일주를 이어나간다. 앞서 1권에서는 스님이 길 위에서 만난 인연과 소통하고 공유하면서 깨달은 것들에 보다 마음이 기울었다면, 2권에서는 경이로운 역사의 무대이자 삶의 생생한 터전이며 누군가에게는 소중한 영감이자 깨달음이 되기도 하는 여행지 그 자체에 대한 기록들이 유독 인상적이다.

 

 

 

   그 중에서도 일본 간사이 지방 제일 서편에 자리한 도시 히메지에서의 일화는 여행자라면 한 번쯤은 겪어봤거나 공감할 만한 내용이 아닐까 싶다. 스님은 한 마리의 백로를 연상시키며 우아하고 고결한 자태를 보여주는 히메지성에 대한 부푼 기대를 가지고 여행지에 도착했다고 한다. 그런데 기대했던 히메지성은 보이지 않고 웬 직육면체의 도시형 건물만이 그를 반길 뿐이었다. 알고 보니 당시 히메지성은 지붕 기와를 보수 중이었던 것이다. 히메지성을 보겠다는 단 하나의 일념으로 먼 거리까지 왔는데, 실망도 이런 실망이 또 없다. 이런 일이 허다한 나로서도 스님이 느꼈을 허탈함이 충분히 이해되고 남을 정도니까.

 

 

 

   그래도 추가 요금을 내면 보수 현장을 둘러볼 수 있다고 하니, 스님은 이렇게 발길을 돌리기에는 아쉬워서 가건물 안에 들어서 천천히 현장을 살펴보았다고 한다. 그러는 동안에 쌓여 있던 불만과 실망감은 점차 사그라졌다. 보수 과정에 있던 천수각 지붕은 아주 말끔하고 흐트러짐 없이 정리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히메지성이 어떤 과정을 통해 건축되었고 증축되었으며 보수되었는지를 설명해주는 안내도 충실히 이루어져 있었기 때문이다. 5년이라는 긴 시간을 투자하면서도 결코 서두르지 않는 인내와 완벽에 가까운 보수를 해낼 수 있다는 그들만의 자신감을 느껴서일까. 스님은 결과를 중요시하고 또 결과만을 생각해왔던 자신을 반성하게 되었다고 한다. 어쩌면 우리의 삶도 긴 보수 공사를 거쳐 오고 있는 것은 아닌지, 삶이라는 여정 속에서 결과에 얽매이지 않고 그 과정을 잘 인내하고 있는지, 또 그것을 거리낌 없이 남에게 드러낼 수 있을 만큼 자신을 믿고 있는지 돌이켜보게 된다.

 

 

 

내가 나를 속이는 것은 그 어떤 다른 사람이나 세상도 밝혀줄 수 없는 거대한 속임입니다. 오직 나만이 나 스스로의 속임을 밝혀낼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 속임을 밝혀내는 여러 과정을 우리는 보통 수행이라고 부릅니다. 이 수행을 통해서 그간 내가 나에게 해왔던 속임수가 한 꺼풀씩 벗겨지게 됩니다. 그렇기에 이 수행에는 용기가 필요합니다. 스스로 인정하고 벗겨지는 데에 필요한 용기입니다. / 34p

 

 

견고하지 못해서 자주 흔들리고, 남들에게 곧잘 상처도 받는 연약한 마음을 가졌음을 저는 처음부터 느꼈습니다. 하지만 그는 이런 연약한 마음을 그대로 수용하면서, 다른 이에게 봉사하는 삶을 살기로 결정한 사람이었습니다. 이 결정에는 그의 종교적 믿음이 견고하게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비록 저와는 다른 종교인일지언정 저는 리처드의 삶에 경외감을 느꼈습니다. 그는 믿음의 힘으로 그 모든 난관을 이겨내 가고 있었던 것입니다. 믿음의 힘이란 이토록 위대한 곳이었습니다. / 88p

 

 

사실상 고정된 문제란 없습니다. 문제란 문제시할 때에만 문제가 되는 법입니다. 잘못된 것으로 보이는 그 어떤 문제도 문제시하지 않는다면 단지 상황이 됩니다. 그리고 상황은 고정된 것이 아니라 흘러가는 것입니다. 문제로 고착되지 않고 상황으로 흘러갈 수만 있다면, 여유는 자연스럽게 스며 나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여유가 사람들의 성정을 만듭니다. / 111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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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행을 하다보면 간혹 내가 생각했던 것과 다른 여행지의 분위기에 당혹스러움을 느낄 때가 있다. 스님이 탄자니아 잔지바르섬의 한 카페에서 만난 여행자 역시 그랬나보다. 그는 광활한 아프리카 초원에서 사자를 창으로 잡는 용맹한 전사 부족을 상상하며 마사이족을 만나러 온 듯했다. 그런데 실제로 만난 마사이족은 관광객들에게 기념품이나 파는 장사꾼에, 신형 아이폰까지 대수롭지 않게 쓰고 있는 게 아닌가. 그는 적잖게 실망한 눈치였다. 하지만 스님은 책이나 다큐멘터리에서 보아왔던 대로, 그 사람들이 시대에 무관하게 그렇게 똑같은 모습으로 살아주기를 바라는 건 우리의 욕망일 뿐이라며 이를 겸허히 받아들인다. 기록이 사실이라 믿고 그것을 완전한 진실로 고착시키려 하는 것은 바로 우리의 욕심이자, 여행자의 오만이라고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여행은 내가 가진 앎의 ‘재확인’하는 것이 아닌 새로운 삶의 방식을 경험하고 ‘변화’ 속에서 ‘성찰’을 얻는 것이 아닐까 하는 스님의 말씀은 여행의 참의미를 다시 생각하게 한다.

 

 

 

이것은 마치 내 앞의 돌과도 같습니다. 처음부터 의미가 정해진 돌은 없습니다. 내가 삶을 살아가는 데 있어서 내 앞의 돌이 걸리면 걸림돌이 되고, 디디면 디딤돌이 됩니다. 일견 실패처럼 보이는 경험도 그 실패라는 의미에만 걸리지 않는다면, 오히려 삶으로 나아가기 위한 디딤돌로 삼을 수 있습니다. 실패처럼 보이는 그 경험도 받아들이는 사람이나 관점에 따라 기회도 되고, 자양분도 되며, 선물도 되는 것입니다. / 145p

 

 

수행에 편견을 가진 사람들은 수행이 ‘무거운 고통과 인내의 과정’이며, 그러한 모습과 삶만이 수행자의 삶이라고 믿는 경향이 강합니다. 물론 수행의 과정은 무거움이지만, 그 결과는 가벼움입니다. 무거운 번뇌를 줄여가면서 점차 지혜가 가볍게 나타나기 때문입니다. 삶의 무게감이나 실체감이 줄어들면서 가벼워진 마음으로 고정된 관념에서 벗어나 매사의 인연에 순조롭게 응하는 삶이 저는 진정한 수행이라 여기는 것입니다. / 227p

 

 

사실과 거짓이라는 분별 때문에 스스로의 삶을 무미건조하게 만드는 것보다는, 차라리 조금 더 나은 의미 부여를 해서라도 그 휘청거림과 환호 속으로 들어가 삶을 풍성하게 만드는 것이 훨씬 낫다고 여기는 것입니다. 사실과 거짓, 옳음과 그름으로 단순하게 갈라내기에 우리들의 삶은 너무 다채롭게 살아 있습니다. 이 살아 있음을 최대한 보듬으며 수용하는 것이 우리가 삶을 대하는 방식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입니다. / 266p

 

 

 

   스님이 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 한 행자님이 하신 말씀이 있다고 한다. “불교를 수십 년간 공부하고, 경전들의 가르침을 낱낱이 안다고 해도, 그 가르침이 하나로 회통되어 있지 않으면 그것들은 단지 흩어진 구슬들에 불과합니다. 구슬이 서 말이라고 꿰어야 보배란 말입니다.” 경전마다 주제와 내용이 따로따로이고, 수행과 일상의 삶이 별개로 분리되어서 나타난다면 그러한 수행의 삶과 경험은 마치 흩어진 구슬처럼 가치가 없다는 뜻이었다. 즉, 수행의 삶이 무엇으로든 일목요연하게 귀결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에 원제 스님은 오랫동안 수많은 경험을 치르며 삶을 치열하게 살아왔으되, 그 삶을 일관되게 통찰할 수 있는 뚜렷한 안목이나 관점이 없다면 어찌 보면 그러한 삶은 파편화된 경험과 분리된 기억으로 남을 가능성이 크다고 우리에게 말한다. 자신의 삶을 가치 있게 만들기 위해선 자기 삶의 뚜렷한 중심이나 안목을 마련하는 것이 그만큼 중요하다고 말이다.

 

 

 

   스님의 말씀에 비추어보면, 내가 책을 읽고 그 안에서 깨달음을 얻으며 나의 생각을 정리하는 이 과정 역시 내 삶의 뚜렷한 중심과 안목을 기르기 위한 하나의 수행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내가 알고 있고 눈으로 보는 것만이 전부가 아니라 열린 마음으로 세상과 사람을 새롭게 보는 안목을 길러가고 있는 중이라고, 그 안에서 내 삶의 중심과 온전한 나로 사는 법을 찾아나가기 위해 책이라는 여행을 하고 있는 중이라고. 언젠가부터 책을 읽는 이유에 대해, 이렇게 글을 쓰고 있는 것에 대해 의미를 잃어가고 있었던 나에게 스님의 말씀은 귀한 가르침이 되어주었다.

 

 

 

사람의 인연 따라 종국에 유익의 결과를 만들어내는 일이 필요하게 될 것입니다. 하지만 무익의 즐거움을 누리는 것도 사람이 가질 수 있는 특권 중 하나입니다. 아무런 이득이 없는 도전이고 경쟁이어도 됩니다. 반드시 이득과 실효가 있어야 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이득이나 실효는 우리가 원하든 원하지 않든, 시간이 흐르며 차츰차츰 익혀갈 기준이며 삶의 방향성이 될 것입니다. 사람에게는 무익의 즐거움을 누릴 자유가 있고, 또 그러한 자유가 보장되는 때가 바로 젊은 시절 아니던가요. / 294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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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행의 설렘과 인연의 정다움에 마음이 따뜻해졌던 1권과 달리, 2권에서는 길이 나에게 물어오는 것들과 그 속에서 깨닫게 되는 삶의 진정한 의미들에 대해 생각해볼 부분이 많았다. 새해가 다가온 시점에서 예전만큼 기대감으로 벅차지도 않고, 불안한 마음은 점점 깊어가지만 그럴수록 온전히 나에게 집중하는 법의 소중함을 얻을 수 있는 책이었다. 2021년의 첫 책으로 읽을 수 있었던 것에 감사하다.

 

 

 

출판사로부터 도서 협찬을 받았지만, 본인의 주관적인 견해에 의하여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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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차 산업혁명과 대안의 사회 1 - 의미로 읽는 인류사와 인공지능 4차 산업혁명과 대안의 사회 1
이도흠 지음 / 특별한서재 / 202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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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공지능이라는 장밋빛 미래를 향한 막연한 낙관주의에 경종을 울리는 책!

인류사에 있어서 4차 산업혁명의 의미와 방향성을 냉철하게 모색하다!

 

 

 

   “내 아들은 미래를 향해서 나가고, 난 내 현재를 지키기 위해 싸울 겁니다. 아마 그 사이 어디쯤에 혁신의 속도란 게 결정되겠죠.”

   드라마 <스타트 업>에 나오는 대사 중 하나다. 인공지능 기술을 이용한 인력감축시스템을 개발한 회사 측과 이로 인해 많은 인력이 일자리를 잃게 된 노사 측이 갈등을 빚는 대목이다. 디지털혁명, 인공지능, 자동화 기술 이른바 4차 산업혁명을 대표하는 각종 혁신들은 우리 사회를 빠르게 변화시키고 있지만 그 사이에서 생계를 잃고 속도에 적응하지 못해 도태되는 사람들이 생겨나는 현실을 반영한 것이다. 사람들이 혁신의 속도에 적응하고 같이 살아갈 수 있는 세상을 만들어가는 것, 기술개발과 혁신의 한계에 대해 냉철하게 고찰하고 합리적이면서 현실적인 대안을 세워야 할 것, 이는 4차 산업혁명이 반드시 안고 가야 할 숙제다.

 

 

 

   그렇다면 우리가 마주하고 있는 4차 산업혁명의 실제 현주소는 어떠한가. 아이러니하게도 한국에서의 4차 산업혁명은 ‘유령’ 상태다. 『4차 산업혁명과 대안의 사회』에 따르면, 대통령이 ‘AI강국’을 선언하고 4차 산업혁명위원회를 인공지능범국가위원회로 전환하여 추진한다고 하지만 정작 AI 인재는 터키와 이란에도 뒤처진 15위이고, ‘2019 AI 100대 스타트업’ 가운데 한국 기업은 단 한 곳도 없으며, 빅데이터 활용 비율은 OECD에서 꼴찌라고 한다. 반면 2016년에 AI에만 미국과 중국이 각각 461조 원과 520조 원을 투자하고 해마다 그 비용이 급속히 늘고 있는 가운데, 우리나라의 경우 4차 산업혁명에 매년 평균 0.44조원과 AI반도체에 0.1조 원씩 투자하여 2030년에 최대 455조 원의 경제효과를 창출하겠다는 것은 그야말로 사기에 가깝다고 지적한다. 현실이 이러한데 IT강국에서 AI강국으로 도약하겠다는 이 신기루 같은 비전에 대한 냉철한 판단도 시급해 보인다.

 

 

 

   이 외에도 4차 산업혁명이라는 과업 앞에는 수많은 숙제들이 산재해있다. 가상현실과 실제 현실의 경계가 무너지고 가상현실이 실제 현실을 대체하고 있고 텔레프레즌스는 기존의 어떤 매체가 형성하였던 리얼리티보다 더 실제 현실과 유사한 현실감을 겪게 한다. 롤플레잉 게임에 중독된 아이가 실제 현실에서 친구나 가족에게 폭력을 휘두르는 사례에서 잘 드러나듯, 가상현실이 현실을 대체하거나 전도하는 ‘재현의 위기’는 점점 일상이 되고 있다. 특히 우리에게 닥친 매우 실존적인 문제들, 즉 기후위기, 환경위기, 간헐적 팬데믹, 인류세/자본세와 같이 인류 사회가 종점에 도달했음을 알려주는 징후들은 절박하고도 시급한 4차 산업혁명의 당면 과제다.

 

 

 

열역학 제2법칙대로, 자연은 엔트로피가 낮은 상태에서 높은 상태로 변화하고, 변화의 과정에서 항상 엔트로피는 증가하고, 시간은 엔트로피가 최대가 될 때까지 한 방향으로 흘러간다. 그러므로 전 지구가 경쟁적으로 추구하는 경제성장이란 사용 가능한 자원을 사용 불가능한 쓰레기로 바꾸는 것에 지나지 않는, 결국 모든 것이 쓰레기가 되는 종말로 치닫는 질주일 따름이다. 이 우주 안에서 어느 곳에 질서와 발전이 이루어진다는 것은 다른 곳에 그보다 더 큰 무질서와 쓰레기가 생긴다는 것을 진리로 천명한다. / 142p

 

 

궁극적 진리를 해명하는 초월의 과학을 지향하되, 세속의 과학 차원에서는 진리에 부합하되 인간과 자연이 상생하고 약자들과 생명을 살리는 과학기술을 도모하는 것이다. 윤리로 규제하고 법적 통제도 해야 하지만, 근본적으로 세속의 과학은 자본주의 체제와 결별해야 한다. 자본주의를 해체하거나 최소한 자본과 과학기술의 유착의 고리를 끊지 않는 한, 과학기술이 자본과 권력의 이윤과 이해관계와 탐욕을 충족시키거나 확대하는 방향으로 이용되는 일은 계속될 것이다. / 159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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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본주의와 결합한 과학기술 역시 문제로 지적된다. 저자는 4차 산업혁명에 관련된 모든 기술들이 인류를 유토피아와 디스토피아 가운데 어디로 이끌 것인가를 결정하는 관건은 자본주의 체제에 있다고 지적한다. 아니, 이 체제와 결별하지 못한다면 그 끝은 디스토피아라고 냉정하게 말한다. 자본주의와 4차 산업혁명이 결합한다면, 4차 산업혁명의 과학기술은 이윤을 추구하는 방향으로 이용될 수밖에 없다. 그렇게 되면 자본과 국가의 공세와 조작에 의해 대중들은 파편화되고 지배층의 부패와 부조리 그리고 양극화 현상은 더욱 심화되며 개인의 행위는 물론 무의식마저 감시당하거나 조절될 수 있다. 과학기술을 자본의 탐욕으로부터 독립시키지 않는다면, 패러다임과 사회체제의 대전환이 없으면 그 끝은 인류 멸망과 다름없다. 이는 기술혁신의 장밋빛 미래만을 더듬고 있었던 우리 인류에게 전하는 뼈아픈 충고다.

 

 

 

신자유주의에 완전히 포획되었다고 생각한 그 지점에서 대중은 희망버스를 탔고 촛불을 들었다. 대중에게 선의 씨앗과 이타심도 있고 악의 씨앗과 이기심도 공존하며, 대중은 지배이데올리기에 휘둘리는 대상이자 지배층에 맞서서 저항을 실천하는 주체이다. 대중은 무지하고 대중매체에 쉽게 조작당하는 우중이자 텍스트와 담론들을 주체적이고 비판적으로 읽는 적극적 독자이기도 하다. 문제는 이들이 어떻게 저항하는 주체로 정립하고 연대하느냐에 있다. / 204p

 

 

“유령으로서 4차 산업혁명과 실상으로서 4차 산업혁명을 착각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이다. 대중들은 SF적 상상력과 과학적 사실을 잘 구분하지 못한다. 수많은 인공지능 영화를 보고 이것이 4차 산업혁명 시대에 현실로 나타날 것이라고 생각한다. 예를 들어, 딥러닝 기술로는 원칙적으로 강인공지능을 만들 수 없다. 그럼에도 대중들은 딥러닝으로 제작한 알파고가 이세돌을 이기는 것을 보고서는 딥러닝으로 작동하는 강인공지능이 머지않아 현실과할 것으로 착각한다. 무엇보다 먼저 현재의 과학적 성과를 냉철히 성찰하고 이를 바탕을 잠재적인 것과 현재적인 것, 가능한 것과 불가능한 것을 구분하고, 가능하더라도 그 기술적, 정책적, 윤리적 한계와 인간 사회와 자연에 대한 영향관계를 살펴야 한다. / 342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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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렇게 『4차 산업혁명과 대안의 사회』는 700만 년의 인류사에서 4차 산업혁명이 어떤 의미를 갖는지, 디스토피아를 최소화하고 유토피아를 최대화하는 길은 무엇인지 자연과학과 인문학, 동양과 서양을 융합해 통찰하는 것은 물론, 각종 난제들을 촘촘하게 분석하여 이에 따르는 대안들을 모색하고자 쓰인 책이다. 기술비관주의나 낙관주의 그 어느 쪽에도 치우치지 않고 인공지능의 실상과 허상을 분명하게 직시하게 함으로써 4차 산업혁명을 지혜롭게 대비하고자 한다. 책을 읽으면 읽을수록 이제 4차 산업혁명은 기술 혁신을 도모하는 특정 개발자와 자본가들 같은 일부 소수자들만이 아니라 반드시 우리 사회 전체가 의견을 나누고 올바른 선택으로 이끌기 위해 공유해야 할 시급한 문제라는 생각이 든다. 2020년을 마무리하는 시점에서 의미 있는 책이었다. 이 책에 담긴 시대적 과제를 우리 모두가 놓치지 않았으면 한다.

 

 

 

 

출판사로부터 도서 협찬을 받았지만, 본인의 주관적인 견해에 의하여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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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혼자 아파하지 마세요 - 국내 최초 단원고 스쿨 닥터 김은지 원장의 마음 토닥토닥
김은지 지음 / 마음의숲 / 202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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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여서 위로가 되는 이야기!

단원고 스쿨 닥터 김은지 원장이 세상에 전하는 연대의 가치와 힘!

 

 

 

   2주 전, 아이가 다니는 어린이집의 알림장을 읽고 심장이 덜컥 내려앉은 적이 있다. 한 원생의 아버지가 다니는 운동 동호회 모임에서 코로나 바이러스 확진자가 나왔다는 것이다. 결과는 다행히 음성으로 나왔지만 이제껏 막연하게만 느껴졌던 코로나 바이러스의 위협이 이토록 가깝게 느껴진 적은 처음이었다. 혹시나 양성으로 판정되면 당장 어린이집 운영이 중단되는 건 아닌지, 남편의 일에도 지장을 주는 건 아닌지, 코로나 바이러스 검사를 받아야 하는 번거로움은 또 어찌해야 하는지. 그 순간에 얼마나 많은 생각이 드는지, 지금 생각하면 참 부끄러운 일이지만 원생의 가족들 역시 피해자임에도 불구하고 약간의 원망 섞인 마음이 드는 것도 사실이었다. 만약 나의 부주의로 인해 양성 판정을 받게 된다면 그로 인해 많은 사람들에게 끼칠 피해와 미안함을 어떻게 감당할 수 있을까, 평소 그런 생각을 곧잘 해왔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그러고 보면 코로나 바이러스 이전에도 이 같은 국가적 재난은 종종 있어 왔다. 대구 지하철, 세월호, 포항 지진… 많은 사람들이 사랑하는 사람을 잃었고, 평범한 일상에 위협을 느꼈으며, 더 이상 나를 둘러싼 세상이 안전하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러는 가운데서도 재난이 우리를 망가뜨릴 수 없음을 증명하는 따뜻한 연대의 힘을 느끼기도 했다. 하지만 코로나 바이러스 확진자가 주변에서 나왔다는 이유로 그들을 잠시나마 원망하기도 했던 마음 때문인지 나는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피해자임도 불구하고 살아남았다는 이유로 누군가로부터 원망을 듣고 죄책감을 느껴야 했을지도 모를 그날, 그 고통 속에 있었던 사람들은 과연 어떤 마음이었을까. 지금은 모두 그 날의 상처를 극복했을까.

 

 

 

   이런 이유로 국내 최초 단원고 스쿨 닥터이자 마음 건강 센터의 센터장인 김은지 원장의 책에 마음이 이끌린 건 어쩌면 자연스러운 일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아니나 다를까 그녀 역시 단원고 스쿨 닥터로서의 소임을 다하고 난 뒤에 많은 이들로부터 이와 같은 질문을 받았다고 한다. “세월호 생존자 학생들은 이제 회복되었나요? 아니면 아직도 힘든가요?” 그녀는 말한다. 재난 피해자들이 회복된다는 것은 증상이 모두 없어지는 상태만을 이야기하는 게 아니라고. 어떤 사건이 트라우마로 남는 이상, 0으로 영원히 없어지는 게 아니라 다만 증상을 견디는 힘을 기르는 것이라고 말이다. 피해자라는 낙인, 살아남았다는 이유로 받아야 할 원망과 그로 인한 자책… 또 다시 맞은 코로나 바이러스라는 국가적 재난 앞에서 확진자를 비난하고, 특정 집단이나 지역에 대한 비난과 편 가르기로 우리는 지금 그들에게 더 큰 트라우마를 남기고 있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볼 문제다.

 

 

 

연대라는 놀라운 힘에 대하여

 

 

 

   『이제 혼자 아파하지 마세요』는 소아 청소년 정신과 전문의인 김은지 원장이 단원고 스쿨 닥터로 재직하면서 아이들의 트라우마를 치유하고 마음 건강을 돌보는 데 애써왔던 지난 과정과, 청소년을 비롯해 지금도 어딘가에서 저마다의 상처로 고통스러워하고 있을 이들을 위로하고 응원하고자 쓰인 책이다. 책에는 처참하고 잔인한 재난의 경험 속에서 만났던 보석 같은 순간과 연대라는 기적 같은 희망, 서로를 보듬으며 치유하고 성장하는 이들의 모습이 담겨 있다. 서로 부여잡고 울면서 힘을 북돋던 날들, 세월호 참사 이후 새롭게 단원고의 문을 열기 위해 모았던 마음들, 운동장 가득 빛나던 촛불들. 단원고 사람들과 사회 전체가 연대를 통해 서로를 얼마나 지지하고 함께했는지를 기억한다.

 

 

 

가끔 저는 제가 어느 위치에 서 있는지 생각하곤 합니다. 사실 단원고에서 의사는 중요한 존재가 아니었습니다. 구성원들의 정신 건강을 살피는 일을 했지만, 학교란 늘 교육이 최우선인 곳이니까요. 저는 단지 마음에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적절한 도움을 제공하는 역할이었습니다. 굉장히 수동적이고 한가로운 일처럼 보이지만 사실 그렇지는 않았지요. 의사는 항상 판단하고, 누군가에게 도움을 주며, 문제를 해결하는 데 익숙하기 때문에 원하는 만큼의 도움만 주며 지켜보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었습니다. 제가 맡은 ‘스쿨 닥터’ 역할의 가장 큰 비중은 기다림에 있었습니다. 늘 기다리고 또 기다려야 했어요. / 31p

 

 

재난 피해자들의 회복은 사회의 분열, 재난 피해자들을 향한 부정적인 인식에 많은 영향을 받습니다. 때문에 사회적 지지를 통해 그들이 사회 구성원으로서 이해와 존중을 받고 있다는 메시지를 주는 일은 환멸기에서 회복기로 넘어가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사회와 세상에 대한 신뢰는 재난을 겪은 사람들이 환멸기를 이겨내는 원동력이 되니까요. / 127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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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톡데일 패러독스라는 말이 있다. 현실을 냉철하게 받아들이되 포기하지 않는다면 마침내 승리하고 말 것이라는 신념의 합리적 낙관주의 이론이다. 여기서 스톡데일은 베트남 전쟁 당시 포로로 갇혀 있다가 살아남은 미군 장교의 이름이다. 당시 스톡데일은 갇혀 있는 포로들끼리 의사소통을 할 수 있도록 ‘탭 코드’라는 것을 만들었다고 한다. 베트남 군인들 모르게 포로들만 알고 소통할 수 있는 새로운 신호를 만들어 낸 것이다. 수용소의 포로들은 모두 독방에 갇혀 있었기 때문에 서로 직접적인 소통을 할 수 없었는데, 스톡데일이 탭 코드를 만든 후에는 옆 사람에게 자신의 상태와 어려움을 표출할 수 있었다고 한다. 이는 수용소에 갇혀 있던 사람들의 불안감을 덜어내는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그들은 함께 이곳에서 살아남을 수 있도록 서로를 격려하는 메시지도 끊임없이 보냈다. “The man next door(옆에 있는 사람 덕분이었습니다).” 훗날 수용소에서 어떻게 살아남을 수 있었느냐는 사람들의 질문에 스톡데일은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서로가 함께하고 있다는 믿음, 격려와 소통이 지옥 같은 수용소에서의 몇 년을 견딜 수 있게 했다는 것이다. 김은지 원장은 이 이야기를 통해 ‘함께하는 힘’의 중요성을 우리에게 일러준다. 동시대에 어려움을 함께 겪고 살아내는 이웃들이 곁에 있다는 것, 그것이 코로나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들의 탭 코드는 아닐까 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bless you”라는 따뜻한 말을 유산처럼 남겼습니다. 공포와 고통으로 온 사회가 마비된 순간에도 서로의 안녕과 평화를 빌어주는 말을 놓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 말이 아직도 우리 곁에 문화로 남아 따뜻한 위로를 건네고 있습니다. 단순한 재채기임에도 불구하고 신의 축복까지 빌어주면서 말이지요. 고난을 함께 겪고 이겨낸 온 ‘인류 동지’로서 할 수 있는 최선 아닐까요? / 63p

 

 

때로는 어려운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방향성을 지키는 것만으로도, 포기하지 않고 관심을 가진 채 목표에 집중하는 것만으로도 빛이 날 때가 있습니다. 어쩔 수 없다는 이유로, 해결하기 어렵다는 이유로 우리가 우리 사회의 아픈 부분을 외면하지 않기를 소망합니다. / 73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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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에서는 연대를 비롯해 트라우마로부터 자기를 지켜내고 이겨낼 수 있는 여러 방법들을 소개한다. 그 중에서도 ‘돌봄’을 통한 치료 극복은 매우 특별한 방법인 듯하다. 실제 단원고에서는 ‘단이’ ‘원이’라 이름을 지은 두 마리의 골든 리트리버를 1년 동안 길렀는데, 이는 동물들을 돌보는 행위를 통해 심리 치유를 시도한 한 방법이라고 한다. 김은지 원장은 동물을 기름으로써 책임을 분담하고 함께 견디는 시간을 통해 돌봄의 진정한 의미를 알게 되면, 스스로가 어떤 생명을 돌 수 있는 사람이라는 자신감이 생긴다고 말한다. 다시 말해 어떤 존재를 돌보기 위해서 스스로의 감정과 욕구를 조절하고 인내하며 난관을 헤쳐 나갈 때 우리 역시 성장한다는 것이다. 혼자라면 절대 하지 않을 일을 누군가를 돌보게 되면 흔쾌히 하게 되기 때문이다.

 

 

 

   김은지 원장은 과거의 어딘가에 계속 머무른 채 트라우마를 안고 사는 이들에게 현재를 자각하는 방법을 소개하기도 한다. 이는 오감에 신경을 집중하는 방법으로, 음식을 먹을 때는 그 맛과 색깔, 냄새를 더 잘 느껴보려고 하고 가방을 들 때면 뻗는 팔이 늘어나는 감각, 가방을 손에 쥐었을 때의 느낌, 가방의 무게에 집중해보는 것이다. 샤워를 할 때는 어제의 일, 오늘 할 일 등을 생각하기보다 물의 따스함, 물이 닿는 피부의 느낌, 샴푸 향기 등에 집중하려고 노력해보고,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할 때는 그 사람이 곁에 다가올 때 느껴지는 감정, 행복, 눈빛에 집중해보라고 말이다. 그렇게 현재를 살아가는 감각, 지금 이 순간을 선명하게 느끼는 연습을 하다보면 힘든 트라우마의 시간 속이 아니라 현실에 살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고 곳곳에 숨어 있던 지금의 행복에 보다 마음을 열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한다.

 

 

 

부모가 아이의 심리적인 충격을 잘 해결하지 못한 채 무엇이든 요구하는 대로 들어주거나, 지나치게 감시하고 제한하는 일들이 종종 벌어집니다. 어른들이 자신의 감정(트라우마에 대한 분노, 어른으로서 아이를 지켜주지 못했다는 죄책감, 아이에 대한 연민 등)에 몰두해 아이들의 발달 과정에 대한 고려 없이 물질적, 감정적 공세를 펼칠 때 아이들은 오히려 퇴행하게 됩니다. 지나친 걱정과 감시가 끝내 아이를 망치는 결과를 불러오는 것이지요.

아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따뜻한 공감과 끊임없는 지지, 그러면서도 한결같은 훈육입니다. 물질적 공세, 무조건적 허용이나 감시가 아닙니다. 트라우마로 요동치는 아이에게 끊임없는지지, 공감, 일관된 훈육을 제공하려면 부모가 안정되고 건강해야 합니다. / 99p

 

 

가끔씩 튀어나오는 자신의 당황스러운 모습을 떠올려 보세요. 그리고 그 모습을 ‘잘 살려고 애쓰는 모습’이라 여기고 너그러이 봐주세요.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비난과 자책이 아니라 스스로에 대한 수용과 이해입니다. 나름대로의 방법으로 잘 지내온 당신에게 말해주세요. 잘 견뎌주어서 고마웠다고. 지금도 이렇게 노력해줘서 고맙다고요. / 153p

 

 

 

   흥미롭게도 트라우마로부터 성장한 아이들은 믿을 수 없고 안전하지 않은 세상에서 스스로 안전기지 역할을 하려 했다고 한다. 세월호 생존 학생들은 트라우마를 겪은 후 많은 사람들의 도움을 통해 ‘도움을 받는 것이 이렇게 좋고, 또 중요하구나’라는 사실을 깨닫고는 사회복지학과, 간호학과, 물리치료학과 등 누군가를 돕는 일을 배우는 학과에 진학하는 경우가 많았다는 것이다. 그렇게 아이들은 불안정한 세상에서 다른 사람들을 돕는 방식으로 세상의 안정성을 회복하고, 세상을 바꿔나가는 모습으로 성장해나가려고 했다.

 

 

 

   어찌 보면 우리에게 있어 코로나라는 재난도 더 나은 나, 더 나은 사회로 나아가기 위한 계기가 되어주지 않을까. 감염병 재난이 만들어 낸 지치고 힘든 순간에 우리가 머무를 수 있는 자원을 만들기 위해 노력할 수 있지는 않을까. 김은지 원장은 아침마다 코로나 확진자의 숫자를 들여다보며 불안해하기보다 내 마음을 따뜻하게 해줄 플레이리스트를 확인하고, 엉망이 된 여행 계획에 분노하기보다 남은 여유와 자유로움에 관심을 둬보는 것은 어떨까하고 제안한다. 이렇게 작은 자원들에게로 극이동하면서 우리의 삶을 채워나가다 보면, 아름다운 모자이크로 채워진 지난 시간들을 발견할 수 있을 거라고 말이다. 무엇보다 표지의 그림처럼 내 곁에는 당신이 있고 당신 곁에는 내가 있다는 믿음으로 서로 포옹하면서 연대하는 사회, 이것이야말로 코로나 트라우마를 극복할 수 있는 중요한 열쇠가 아닐까.

 

 

 

출판사로부터 도서 협찬을 받았지만, 본인의 주관적인 견해에 의하여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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