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시대의 모든 서튼
어른들을 위한 공감 에세이!
어느새 어른이 된 우리의 버거운 일상을 위로하는 소소한
이야기들!
어느새, 벌써, 내 나이가 서른 중반이다. '고단하다', '팍팍하다'로 채우는 서른의 수식어가 더 이상 낯설지 않을
만큼 내 마음 같이 흘러가지 않는 세상살이에 늘 어지럼증을 느낀다. 돈을 벌고, 독립을 하고,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나면 뭔가 그럴 듯한
미래를 꾸려나가는 '어른'이 되어 있을 줄 알았는데, 그저 오늘 하루는 누군가가 내뱉은 한 마디에 상처받지 않기를, 일상이 뒤틀리는 변화가 아닌
예측 가능한 안정과 평안으로 채울 수 있기를 바랄 뿐이다. 이러다보니 언제부턴가 하루하루를 바삐 움직이며 살아가는 사람들이 다른 세상 사람처럼
느껴지고, 나만 제자리걸음인 것 같고 그래서 움츠러드는 내 모습이 초라하게만 느껴진다. 변화를 갈망하면서도 늘 문턱에서 주저하는 나, 완벽해
보이는 타인의 삶 앞에서 항상 작아 보이는 나, 계속 이렇게 지내도 괜찮은 걸까.
정답이 없는 현실을
살아가는 청춘들을 위해
<그러니까 오늘의 나로 충분합니다>는 정답 없는 현실 속에서 갈팡질팡하는 서툰 어른들을 위로하는
그림에세이다. 그녀의 책에는 아무 것도 모른 채 앞으로 달려가기만 하다가 어느새 어른이 되고만 우리들의 이야기, 여전히 누군가를 사랑하는 일이
어려운 사랑에 관한 이야기, 잘 나가는 남자 연예인에게 푹 빠져 내 안에서 소녀의 순수한 열정과 어른의 냉철한 이성이 충돌하는 경험들, 이제는
엄마의 삶과 어른의 삶을 조금씩 이해해가는 과정들이 소박하게 담겨있다. 때로는 피식피식 웃음도 나고, 때로는 내 이야기 같아서 마음이
뭉클해지기도 하는 각각의 에피소드들은 수식을 배제한 일상처럼 섬세하고 사려 깊은 그녀의 그림으로 한층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수많은 자기계발서와 다양한 인문학 강의들을 듣고 있으면 그 순간에는 나의 고민들이 더 이상 고민이 아니고,
마음먹기에 따라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을 것만 같다. 그런데 책을 덮고 강의가 끝나면 시궁창 같은 사회와 현실은 여전하고, 아무리 발버둥 쳐도
거기서 거기다. 그래서일까, '내 상황이 더러운 시궁창 똥물 같은데, 여기서 어떻게 마음을 먹으라는 거야!'라는 이 두 줄의 글에 덜컥 마음이
사로잡힌다. 어릴 때는 어른이 되면 뭐든 잘 할 수 있고, 뭐라도 되어 있을 줄 알았는데. 4살이 된 나의 아들에게 '조금만 더 크면 너도 할
수 있어.', '엄마처럼 어른이 되면 할 수 있는 거야' 라는 말을 곧잘 하곤 하는데, 정작 어른이 되어서도 할 수 없는 것들은 어떻게 설명해야
하는 건지 막막할 때가 있다. 아이에게 '어른이라고 다 할 수 있는 건 아니야', 라고 말하는 건 어쩐지 비겁한 것 같기도 하고.


어릴 때 나는 연애소설 쓰는 것을 좋아했다. 누군가와의 우연한 만남이 운명이 되고, 온갖 방해와 위기를 겪은 뒤에
맺어진 결실 즉, 결혼에 이르면 그게 해피엔딩인 줄로만 알았던 순수했던 시절. 결혼만 하면 사랑하는 사람과의 관계가 모두 완벽해지는 줄로만
알았는데 오히려 결혼한 후가 더 어렵기만 하다. 말하지 않아도 척하고 알아줬으면 좋겠는데, 한 아이의 엄마가 아니라 당신이란 남자의 여자로만
바라봐줬음 하는데, 오늘도 온몸으로 신호를 보내고 있음에도 이 남자는 꿈쩍도 하지 않는다. 흑… 흑….

심장이 점점 돌로 변해가는 것 같다. 아이를 낳고 온통 아이에게만 매달려 살고 있는 나는 언제부턴가 설렘이라는
감정이 사라지고 있음을 느끼고 있었다. 그러다 '프로듀스 101 시즌 2'를 보게 되면서 갑자기 덕통사고를 당한 저자처럼 나 역시 이 에너지가
넘치는 소년들에게 푹 빠져버렸다. 차마 남편 앞에서 대놓고 좋아할 수가 없어 몰래 동영상을 찾아보고 앨범이 나오면 무한반복으로 음악을 찾아
들었다. H.O.T가 내 소녀 시절의 전부였던 그 때 만큼에 비할 수는 없겠지만, 정말 오랜만에 바라는 것 없이 누군가를 좋아하는 기쁨을 느끼고
있달까. 그래서 '부끄러워하지 말기! 후회 말고 오늘을 충실히! 충실히 덕질하기!' 라고 외치던 저자의 글에 '그래, 또 언제 이렇게 뭔가에
흠뻑 빠져보겠어. 아낌없이 좋아하련다!' 하고 다짐해본다. 남편은 눈을 흘기겠지만.


아이를 낳은 엄마들은 모든 대화의 주제가 육아로 통한다. 또 아이 이야기냐고 할 법 하지만 어쩔 수 있는가. 현재
내 삶은 아이를 중심으로 돌아가고 있는 것을. 친구들과 만나 육아의 고충을 털어놓다보면 '다 그래. 우리 애는 안 그런 줄 알어.' 하고 서로를
위로하지만 돌아서면 또 이내 '나 정말 엄마 자격이 있는 사람일까. 잘 하고 있는 걸까.' 하는 불안이 스멀스멀 올라오곤 한다. 나도 엄마는
처음인데, 잘 할 수 있을 리가 없잖아 하면서도 나도 모르게 아이에게 상처를 주는 것은 아닌지, 내가 던진 모난 말 한 마디에 내가 더 놀라
상처를 받고 아이를 끌어안고 만다. 엄마도 나를 키우며 숱한 불안과 맞섰겠지. 그럼에도 한결같이 화 한번 내지 않고 늘 괜찮다고 말해준 엄마는
내 앞에서 강한 모습을 보이기 위해 본인 스스로 얼마나 마음을 다독였을지 이젠 짐작이 된다. 엄마가 되고 나니, 엄마의 삶이 유독 눈에 밟히는
요즘이다.
영국의 시인이자 비평가였던 매슈 아널드는 이런 말을 담겼다고 한다. “모든 미완성을 괴롭게 여기지 마라. 미완성에서
완성에 도달하려는 노력이 필요하기 때문에 신이 일부러 인간에게 수많은 미완성을 내려주신 것이다.”라고. 덕분에 삶의 소소한 에피소드 속에서
완벽한 어른은 없다고, 싫은 건 하지 않아도 괜찮다고 말해주는 저자의 말들 역시 조금은 위안이 된다. 한 발짝이라도 더 내디뎌보려고 어떻게든
버텨보려고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이 시대의 청춘들에게 ‘그러니까 오늘의 나로 충분하다’는 이 말이 의지가 될 수 있기를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