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르카디아
로런 그로프 지음, 박찬원 옮김 / 문학동네 / 201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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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적인 언어로 쌓아올린 한 편의 위대한 서사!

탄생과 죽음의 순환, 인간의 광기와 이기 너머에 존재하는 변함없는 사랑을 담은 소설!

 

 

 

   한때 미국의 물질문명에 항거하는 반체제 자연찬미파, 이른바 '히피'라 불리던 세대들이 있었다. 기성세대의 통념과 가치관을 부정하고 자유와 일탈을 꿈꿨던 이들의 모습은 한때 젊은이들이 지향하는 하나의 문화로 상징되었지만, 한편에서는 집단적이고 광신주의에 가까운 모순을 낳기도 했다. 가장 대표적인 사례가 그 유명한 찰스 맨슨 사건이다. 그는 히피를 가장하여 추종자들을 끌어 모으고 그들과의 부정한 행위 및 약탈, 살인에 이르는 위험한 행동으로 사회에 큰 파장을 일으킨 인물이었다. 이런 히피 문화의 명암은 몇몇 소설이나 영화를 통해 자주 등장하곤 하는데, 우리가 진정으로 추구해야 할 자유정신과 삶의 이상향에 대한 진지한 물음을 그 주제로 삼는다.

 

 

 

   소설 <아르카디아> 역시 이러한 히피 문화를 반영하여 1970년대 미국 뉴욕주에 건설된 가상의 공동체 아르카디아에 관한 이야기다. 한낮의 태양을 품은 드넓은 대지와 장대한 숲을 누비며 자유롭게 뛰어다니는 아이들, 밤에는 모닥불을 피우고 앉아 노래를 부르고, 소박하지만 정겨운 음식을 나눠먹으며 살아가는 이곳은 또 다른 이름의 유토피아다. 자기가 되고자 하는 모습으로 살아가고자 하는 사람들, 평등과 사랑, 노동, 열린 마음을 토대로 쌓아올린 이 자유민 무리 속에서 드디어 최초의 아르카디아인 비트가 태어난다. 그는 비록 작고 가난하지만 자유와 정서적 풍요로움이 가득한 가족과 공동체 속에서 자연의 충만함과 따뜻한 에너지를 얻으며 자라난다.

 

 

 

 

 

 

   태양처럼 따뜻한 빛을 뿜어내는 어머니 해나, 실질적인 아르카디아의 지도자이자 한결같은 듬직함으로 가족을 품는 아버지 에이브, 모든 아르카디아인의 어머니 같은 자애로운 애스트리드, 거인 같은 풍채를 지닌 이 땅의 수호자 타이터스, 아르카디아의 구루이자 스승이지만 모두가 스스로의 지도자가 될 수 있다고 말하는 핸디 등 비트의 눈에는 이들 모두가 한 편의 동화이자 신화 같다. 그는 아르카디아에서 인간과 자연의 유기성, 탄생과 죽음의 순환을 온몸으로 체험한다.

 

 

 

사람들은 여기에서 자기가 되고자 하는 모습을 선택하게 돼. 그게 약속이기도 하고. 거의 모든 사람들이 스스로 지은 별명을 갖고 있어. 사람들은 자신이 되고 싶은 것이 되려고 여기 오는 거야. 타잔, 원더 빌, 야한 샐리. / 46p

 

 

시간이 아주 유연하다는 걸, 고무줄 같은 것이라는 걸. 시간은 길게 늘어날 수도 있고 단단히 뭉쳐질 수도 있고, 매듭이 지어지고 접힐 수도 있다. 그리고 그러는 내내 시간은 끝없이 순환하는 고리다. 밤이 있을 거고, 그러고 나면 낮이 있을 거고, 그러고 나면 다시 밤이 있을 것이다. 한 해가 끝나면 다른 해가 시작될 것이고, 또 끝날 것이다. 노인은 죽고, 아기는 태어난다. / 116p

 

 

 

 

 

 

   하지만 이미 사회 내부에서부터 생성된 아르카디아가 세상으로부터 완전히 벗어나기란 어렵듯, 다섯 살이 된 비트는 자신들이 지향하는 삶을 살기 위해 안간힘을 쓰며 살아가는 공동체 내부의 민낯을 보게 된다. 알고 있으나 모른 척 할 수밖에 없는 문명의 편리함과 삶을 지지하기 위해 반드시 외부로부터 구할 수밖에 없는 다양한 자본들 앞에서 그들은 늘 허우적댄다. 자유가 너무 많으면 공동체는 썩기 마련이라 했던가. 비트는 뭔가 불안한 것이 점차 자신들을 잠식하는 듯한 기분을 느낀다. 어머니인 해나는 이곳에서의 생활에 회의를 느끼고 핸디를 경멸하기에 이른다. 더러는 불쾌한 환각 체험 따위로 불안한 마음을 잠재우고 상처를 치유하려 한다. 심지어 아이들까지도. 각종 중독자들, 가출 청소년들, 범죄를 저지르고 이곳에 몸을 숨기려는 자들, 미디어에 등장하는 아르카디아의 환상에 빠진 사람들 등 출처를 알 수 없는 이들이 모여 점차 초기 아르카디아 사람들의 순수한 믿음을 흐린다.

 

 

 

핸디는 평등과 헤게모니의 전복을 떠들어대지만 아르카디아도 다른 데와 다르지 않아. 너희는 저 위 너희의 언덕에 있고, 우리는 여기 이 진창에 있어. 난 여기 일 년 반이나 있었어. 이런 게 계급이 아니라면, 이런 게 그 지랄 맞은 존중이라면, 난 차라리 뒈지고 말겠다. / 163p

 

 

스웨터나 뜨개질 조각에 비누칠을 해서 계속 비비다보면 실이 줄줄이 뒤섞이면서 도저히 풀 수 없는 하나의 덩어리가 되잖아. 그런데 지금 우리는 각자 자기 멋대로 뜨개질을 하는 수백만 명의 미친 사람들 같아. 이 남자는 벨트를 만들고, 이 여자는 자기가 냄비 장갑이나 뭐 그런 걸 만들고 있다고 생각해. 그래서 우리는 역사상 가장 크고 흉하고 거지 같은 담요를 갖게 되었는데, 그걸로는 우리를 다 덮을 수도 따뜻하게 할 수도 없는 거야. / 198p

 

 

 

   결국 '무릉도원 날'이라는 이름으로 그간 잠재되어 있었던 광기가 폭주하게 되고, 땅 속에서 시체가 나오면서 이내 경찰이 들이닥친다. 이후 아르카디아는 황폐해져 가고, 사람들은 흩어진다. 한 번도 아르카디아를 떠난 적이 없던 비트는 이곳을 떠날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지만, 점차 무너져가는 자신들의 세계를 지키지 못하고 끝내 떠나고야 만다. 시간이 흘러 사진학과 교수가 된 비트는 여전히 자신의 내부는 아르카디아에 존재하는 것을 느낀다. 비록 아르카디아가 지향하고자 한 세계는 무너졌지만, 죽음에 임박한 해나를 찾아오는 그때 그 시절의 아르카디아인들을 보며 비트는 아르카디아라는 땅은 '사람'이 없으면 그저 땅일 뿐이었음을 깨닫게 된다. 이곳에 모여 다시 이야기가 시작되고 자신의 딸 그레테를 보며 또 변함없이 삶이 지속되는 광경을, 새로운 희망을 얻는다.

 

 

 

그림 속 사람들은 모두 조용한 초록빛 자연의 기쁨으로 가득 차 있었다. 비트는 차분하게 스스로를 단속하고 호흡을 하면서 이 행복이 더 안전한 거리로 물러날 때까지 기다린다. 마침내 행복은 태양으로, 아이들로, 평온함으로, 아르카디아로 만들어진 담요가 되고, 비트는 다시 더 커다란 전체 안에서 하나의 날실이 된다. / 201p

 

 

우리가 자신에 대해 믿어왔던 이야기를 잃으면 우리는 이야기 이상의 것을 잃는다는 것을, 우리 자신을 잃는다는 것을 이해한다. / 318p

 

 

 

   <아르카디아>는 시적인 언어로 쌓아올린 한 편의 위대한 서사다. 마치 어딘가에 존재할 듯한 기시감을 느끼게 하는 걸작 중에 걸작이다. 참으로 오랜만에 날카로운 새벽빛을 지나 광휘의 빛을 뿜어내는 자연의 욕망이 세포 하나하나에 스미는 듯한 마법 같은 문장을 만났다. 하지만 우연히 하늘을 올려다보았을 때 마주하게 되는 낮달처럼 외롭고, 삶의 쇠락을 마주하는 쓸쓸함이 있다.

 

 

 

   그럼에도 서로와의 연결, 모두가 모두에게 의지했던 그 친밀함에 기댈 수 있게 하는 '사람' 냄새가 가득 진동하는 소설이다. 문명에 타락하지 않고 자유와 풍요 속에서 살고 싶었던 아르카디아인을 통해 탄생과 죽음의 순환을 목도하고, 인간의 광기와 이기 너머에 존재하는 변함없는 사랑과 믿음을 느끼게 해 준 잊지 못할 소설이 될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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