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 책으로 살고 있습니다 - 책과 함께하는 사람들의 이야기
이나이즈미 렌 지음, 최미혜 옮김 / 애플북스 / 2018년 1월
평점 :
절판


 

 

 

 

 

책을 사랑하는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읽어봤으면 하는 책

책 한 권이 독자에게 오기까지, 장인의 철학과 가치를 담은 놀라운 여정을 담아내다!

 

 

 

   나는 '이야기'를 사랑하는 사람 중에 하나이다. 오늘은 조선의 사대부가를 엿보았다가 내일은 유럽의 어느 한적한 뒷골목을 누비고, 세상 어디에도 없을 고약한 할머니의 눈총을 피해 달아나다가 어느 사이에 살인의 누명을 쓰고 달아나는 한 남자의 뒷모습을 추적하며 제멋대로 시공간을 누빌 수 있는 이 놀라운 판타지를 사랑하지 않을 수 없다. 때문에 책의 한 페이지와 한 페이지를 넘나드는 간극 속에 존재하는 페스티벌은 나를 늘 춤추게 한다. 조금은 과장스럽게 표현한 듯 하지만 이것이 내가 책을 사랑하는 이유이며, 나를 생동감 있는 사람으로 만들게 하는 원동력이 된다.

 

 

 

   유년시절의 내겐 장난감이라든지 요즘 아이들 방이라면 흔하게 있을 법한 것들이 없었다. 그래서 아빠의 책장에 꽂혀 있는 백과사전 혹은 위인전기집과 근처 외가에서 살고 있는 사촌언니 책을 훔쳐 읽는 게 유일한 놀이감이었다. 단발머리의 소녀가 되었을 때는 제법 먼 거리에 있는 도서관까지 걸어갈 수가 있어서 그곳에 틀어박혀 지내는 것이 유일한 낙이기도 했다. 책이 좋았던 나는 결국 내가 이야기를 만들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 결국 소설을 쓰기 시작했고, 훗날 책을 출간하기도 했으며, 지방의 작은 출판사이긴 했지만 취직을 하여 책을 만들고 이윽고 책을 판매하는 서점에서 근무하기도 했다. 지금껏 나의 일상을 채운 것은 결국 책이었다. 그래서일까, <이렇게 책으로 살고 있습니다>라는 제목의 책을 마주한 순간 마음을 덜컥 사로잡혔다. 책을 사랑하고, 책과 함께 하며, 책을 만드는 사람들의 이야기라니. 책을 쓰고 만들고 판매했던 나의 경험이 생각나기도 하고 어쩌면 책을 만드는 과정 속에 내가 몰랐던 또 다른 면들을 볼 수 있을 것만 같아 꼭 읽어보지 않을 수 없었다.

 

 

 

이야기를 쓴다는 것은 마법이며 책은 그 마법을 저 너머에 숨겨둔 수평선이다. / 39p

 

 

 

   <이렇게 책으로 살고 있습니다>는 일본에서 논픽션 작가로 활동 중인 이나이즈미 렌이 '책과 함께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은 책이다. 저자는 2011년 동일본 대지진으로 피해를 본 서점을 찾아다니며 취재하던 중 해일로 인해 서점과 책이 쓸려가고 망가져도 다시 서가의 책을 재정비하는 사람들의 감동적인 모습을 본 뒤로, 책을 만드는 사람들에 대한 글을 써보고 싶다는 생각을 한 끝에 탄생되었다. 사실 한 권의 책이 탄생하기까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손길과 기술이 요구되는지 우리는 다 알지 못한다. 때문에 이 책은 그러한 수고와 정교한 과정을 추적하면서 그 속에 묻어나오는 여러 사람들의 열정과 노력을 담은 소소하지만 매우 중요한 기록이라 할 수 있다.

 

 

 

   한 권의 책 뒤에 담겨진 수많은 사람들의 이야기 중 책의 가장 첫 페이지를 장식하는 이는 동화작가 가도노 에이코다. 저자는 특별히 책을 만드는 사람들을 주제로 한 이 책에서 아이를 위한 작품을 쓰는 사람을 제일 먼저 소개하고 싶었던 이유는 '아이가 제품으로서의 책을 처음으로 접하는 순간과 그런 제품을 만드는 것과 관련된 일을 하는 작가가 어떤 생각과 가치관을 책에 담고 있는지 알고 싶었기 때문'이라고 밝힌다. 나 역시 아이가 태어나 책과 이야기를 사랑하게 되는 그 첫 경험을 아름답게 밝혀주는 것은 부모와 이야기 작가 공동의 몫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자신이 좋아하는 책을 자신만의 것으로 만드는 기쁨을 선물하기 위한 동화작가로서의 사명감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깨닫게 된다. 한때 동화 쓰기를 주제로 한 수업에서 아이들이 읽을 책이니 대충 쉽고 재미있게 쓰면 되겠지 하고 안일하게 생각했던 순간이 부끄러워지기도 했다.

 

 

 

"우리 어렸을 땐 책이 귀해서 모두 활자에 굶주려 있었기 때문에 글자를 읽을 수 있게 되고부터는 이와나미문고였나 뭐였나, 뜻도 모르면서 한자 옆의 히라가나를 더듬어가며 읽곤 했지요. 하지만 요즘 아이들은 산더미 같은 활자와 정보에 배가 잔뜩 불러 있잖아요? 배가 부른 아이에게 이야기가 아름답다고 생각하게 하는 건 참 힘든 일이죠. 부모가 그림책을 읽어주던 아이가 처음으로 혼자 읽으려고 했는데 이야기가 재미없다면 책을 싫어하게 될지도 모르잖아요. 그래서 작가의 책임은 무거운 거예요." / 22p

 

 

 

   다음으로 번역서 저작권 중개자인 에이전트 다마오키 마니미를 소개한다. 그녀가 일하는 터틀모리 에이전시는 일본에서 판매되는 번역서 중 약 60퍼센트를 계약으로 연결시키며 일본에서 가장 규모가 크고 오래된 에이전시라고 한다. 이들은 일종의 저자의 대리인 역할을 하는데 우리나라의 경우 일반적으로 편집자의 역할이 크게 부각되는 한편, 유럽과 미국에서는 저작권 에이전트라 불리는 사람이 작가를 발굴하고 출판사에 기획된 원고를 판매하며 원고료 교섭까지 담당하면서 유망한 저자와는 두 번째 작품 이후의 경력 설계까지도 함께 도모하는 역할을 한다고 한다. 개인적으로 번역서 저작권 중개를 통해 세계의 지식을 이어주는 가교 역할자로서 활약하고 있는 그녀의 이야기가 꽤 흥미롭게 읽혔다.

 

 

 

"수없이 많은 목록 중에서 출판사나 편집자가 원하는 작품을 선택해 소개하는데, 중요한 건 그 작품을 국내 상황에 어떻게 접목시킬까 하는 거예요. 아무리 훌륭한 원고라도 당사자들에게는 매우 중요하지만, 우리에게는 별로 흥미롭지 않은 것도 많거든요. 그런 상황을 어떻게 인식하는가가 에이전트 한 사람 한 사람의 중요한 과제라고 생각해요." / 51p

 

 

 

 

 

 

   이어 책의 가치를 그늘에서 떠받쳐주는 주역이며, 평상시에는 독자가 의식하지 못하는 출판문화의 기반 역할을 하는 교정 교열자 야히코의 이야기가 등장한다. 교정 교열은 대단히 고독한 작업이다. 옆에 원본 원고를 놓고 다른 한쪽에는 교정쇄를 둔 뒤 일일이 대조하는 단순 작업에서 비롯하여 각종 사전이나 인명사전, 인터넷 등으로 오류를 정확하게 확인해야 하는 수준 높은 능력을 요구한다. 단순히 내용의 사실 여부를 확인하고 문장의 모순점과 구성상 어긋남이 없는지를 확인하는 데서부터 핵심이 되는 문장 속 고유 명사, 연대적인 기술, 계절적인 기술, 시간적인 기술 등을 살피는 꼼꼼함까지 요구되니 정말 만만치 않은 일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이 때문에 교정 교열이 점점 비생산적인 일로 분류되어 출판사에서 이를 축소하는 경향이 있어 안타까움을 산다. 하긴, 나만 하더라도 책을 읽는 도중 오탈자가 빈번하게 눈에 띄는 책은 일단 읽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는데, 전문 교정 교열자 개발을 축소하려는 지금의 현상은 우려할 만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교열부야말로 출판사의 양심이라고 생각합니다" 라고 말하는 야히코의 메시지를 깊게 새겨볼 일이다.

 

 

 

 

 

 

   다음으로 책을 하나의 작품으로 완성하게 만드는 서체 개발자 이토와 북디자이너 구사카 준이치의 이야기도 흥미롭다. 장정, 종이, 글자의 간격 등 책을 이루는 모든 요소가 조화를 이루어야 책은 비로소 하나의 작품으로 자립한다. 또한 "진열대나 서가의 풍경은 시대의 공기를 만들어 내는 일"이기도 하다는 그들의 사명감과 열정은 꽤 감동적이기까지 하다. 이 외에도 수많은 인프라의 결정체인 제지 공장과 활판인쇄공방을 운영하고 있는 다니야마 죠스케, 일본 최초의 제본 마이스터 아오키를 통해 한 권의 책에 생명을 불어넣기 위한 이들의 엄청난 노력과 묵묵히 자신의 자리를 지키고 있는 장인 정신에 감탄하게 된다.

 

 

 

"요즘에도 디자이너와 편집자, 그리고 저자가 계속 논의해가면서 책을 만드는 게 좋아요. 전자서적이 주류가 될 거라느니 이러니저러니 하지만 그것만이 종이책이 살아남을 수 있는 길이 아닐까요? 역시 책이라는 건 아름다워야 한다고 생각해요. 아름다움에는 여러 가지가 있을 테고 다양한 생각도 있어야 하겠지만 소세키의 책을 보다 보면 적어도 이렇게 생각하게 돼요. 아름답지 않으면 책이 아니라고요." / 142p

 

 

"적은 부수라도 누군가에게 특별한 한 권, 그 사람에게 무엇과도 대신할 수 없는 소중한 한 권을 만들려고 할 때 제본 기술이 잊혀진다면 책을 둘러싼 소중한 세계는 사라져버릴 겁니다. 거기에는 아직 심오하고 우리 마음에 호소하는 뭔가가 있다고 저는 믿고 싶습니다. " / 266p

 

 

 

   책 한 권에 실려 있는 묵직한 감동은 단순히 이야기 자체에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이 책을 통해 깨닫게 되었다. 덕분에 나의 서가에 숨 쉬고 있는 이 놀라운 공기의 무게감이 오늘따라 더욱 묵직하게 다가온다. 아름답지 않을 수는 있어도 세상에 나쁜 책은 없다고 생각한다. 앞으로도 쭉 책을 사랑하고 또 함께 살아가는 사람이 되어 늘 살아 숨 쉬는 이야기를 전하고자 하는 이들의 노고를 응원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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