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의 독서 - 완벽히 홀로 서는 시간
김진애 지음 / 다산북스 / 201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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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로서의 자존감을 깨우는, 여자를 위한 책!

온전한 ‘나’를 위한 시간, 여자를 위한 독서관을 정립하다!

 

 

   나에게 있어서 책이 주는 의미는 각별하다. 한창 자존감이 바닥에 떨어져있을 무렵에 그것을 극복하는 계기로 선택한 것이 책이어서 일지도 모르겠다. 나의 모든 에너지를 아이를 보는 데에만 쏟아 붓고 난 뒤에는 꼭 뭔가 알 수 없는 공허함과 외로움이 물밀 듯이 밀려오곤 하던 나날들이 반복되고 있던 와중이었다. 출산 직후부터 도무지 진득하게 책을 마주할 시간을 마련하지 못했던 까닭에 간간이 출판사에서 게시한 신간 정보들을 눈으로 훔쳐보는 것으로나마 아쉬운 마음을 달래던 도중, 서평단에 참여할 기회를 가지게 되었다. 책을 읽고 서평을 쓰는 과정은 잠시나마 엄마로서의 나로부터 벗어나 온전한 ‘나’를 마주할 수 있는 시간이 되었고 책을 읽고 이에 대한 감상을 공유할 수 있는 몇몇 사람들과의 대화가 독서의 또 다른 즐거움을 가져다주었다. 이때부터 나는 마치 문자중독증에 걸린 사람처럼 한 달에 평균 8권에 이르는 다독을 하기 시작했다.

 

 

 

여자에게 책이란 도피 공간이자 또 현실의 공간이다…… 의미 있는 도피를 한 후에는 새로운 나로 변모하여 자신이 처한 현실을 새롭게 정의한다. / 6p

 

 

 

   도시건축가이자 18대 국회의원으로 익히 알려진 김진애 저자는 『여자의 독서』 서두에서 책이란, ‘도피공간이자 또 현실의 공간’이라고 정의한다. 나에게 있어서도 책은 무형의 도피처이자 유형의 현실을 직시할 수 있는 공간과 다름없다. 누군가가 나에게 책을 그렇게 짧은 시간에 많이 읽으면 기억에 다 남기는 하느냐고 물은 적이 있다. 사실 나는 좋은 문장을 기억하고, 그 책을 암기하듯 읽으려고 책을 읽는 게 아니다. 책이 제공하는 무형의 도피처에서 온전한 나를 발견하고, 설득하고 이해하여 끊임없이 나 자신을 재정립하는 것-그리하여 나 자신에게 집중하려는 것, 그 뿐이다. 그런 이유로 ‘완벽히 홀로 서는 시간’이라는 부제의 『여자의 독서』가 유독 마음을 끈다. 책이 지니고 있는 다양한 함의를 함께 공유하고 자신이 읽었던 여러 책을 통해서 여성들이 스스로 자존감을 찾도록 응원하는 저자의 메시지가 남다르게 다가온다.

 

 

 

나를 흔들고 매혹시켰던 여성 작가들

 

 

   책의 저자는 1남 6녀 딸부잣집이라는 환경에서 ‘여자라는 존재’에 깊은 회의를 느끼고 살아왔다. 일생의 화두를 ‘자존감’으로 꼽을 만큼 자신의 정체성과 자존감에 누구보다도 예민했던 그녀는 여성의 시각과 감성, 여성의 현실과 이상, 여성의 심리와 행동, 여성의 상처와 고통 등 여성의 삶과 꿈을 섬세하게 다루는 이들 작가들의 책에 유독 집중한다. 굳이 ‘여성’으로 한정을 짓는 것은 여성 독자와 여성 작가가 만날 때의 역학, 그 독특하고 섬세하고 에너지 가득한 만남을 기대하는 까닭이다. 그리하여 박경리, 한나 아렌트, 버지니아 울프, 제인 제이콥스, 정유정 등 자신을 흔들고 매혹시켰던 여성 작가들의 작품을 통해서 자신의 삶과 길을 찾는 여성들에게 스스로 완벽하게 홀로 설 수 있는 시간을 독려한다.

 

 

 

  『여자의 독서』는 자존감을 일깨워주는 책, 성장 스토리를 통해 자기 이미지를 찾아나갈 수 있도록 하는 책, 섹스와 에로스의 세계를 열어주는 책, 연대감을 느끼게 해주는 책, 사회 속에서 ‘여성’이 지닌 동력에 집중하는 책,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세상을 위해 장벽을 깬 여성들에 관한 책, ‘여신’이라는 원형을 찾는 책, 여성성과 남성성을 넘나드는 책들을 소개하면서 그녀가 제시하는 ‘책 지도’를 통해 여성들이 책과 함께 성장할 것을 제안한다. 여성 작가들의 삶을 통해, 그들이 보여주는 작품 속 캐릭터들을 통해, 그들이 제시하는 현실의 문제점과 비전을 통해 나 자신을 새롭게 정의하고 발전시켜보고 노력하기를 응원하는 것이다.

 

 

 

 

 

 

   개인적으로 ‘어떤 캐릭터로 살아갈까’ 편에서 <빨강머리 앤>을 통해 앤의 열등감과 고독감, 불안에 공감할 수밖에 없는 세상의 많은 소녀들을 위로하며 우리는 콤플렉스를 이기는 것이 아니라 콤플렉스와 함께 살아가는 지혜가 늘어가는 것일 뿐이라고 다독였던 문장이 인상에 남는다. ‘디어걸즈와 연대감을 꿈꾸며’ 편에서는 그간 한 번도 접해보지 못한 아멜리 노통브의 작품을 접함으로써 차분한 일상을 공포로 만드는 그녀만의 화법에 매혹되어 꼭 읽어보리라는 다짐을 하기도 했다. ‘세상을 바꾸는 목소리가 있다’ 편에서 소개된 <콰이어트>는 세상은 내향적인 사람들의 내적인 힘에 의해서 진정 바뀐다는 깨달음을 얻을 수 있었고,이로 인해 나의 콤플렉스를 극복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이 외에 <서재 결혼 시키기>, <한 남자>, <이혼고백서> 등 미처 알지 못했던 흥미로운 작품을 발견한 것 또한 이 책의 묘미로 삼을 수 있겠다.

 

 

 

하지만 나는 나다. 나라는 캐릭터는 그 모든 캐릭터를 합한 것일 수도 있고 그 어느 캐릭터와도 다른 것일 수도 있다. 어딘지 비슷한 점이 있을 수도 있고 어쩐지 비슷한 느낌이 들 수도 있다. 하지만 나는 나 하나다. 이럴 때 참으로 생명체의 오묘함을 느낀다. 비슷하게 보이는 나무가 하나도 똑같지 않고 비슷하게 보이는 지문이 다 다른 것처럼, 사람은 하나하나 다 다르다는 것이 얼마나 오묘한가? 그렇게 단 하나밖에 없는 나이기 때문에 우리는 더욱 소중하게 나 자신을 정의하고 발전시켜보려고 노력하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닮은 척도 해보고, 닮아보려 하고, 또는 절대로 닮지 않겠다고 반면교사로 삼기도 하고, 그 사람이라면 어떤 선택을 할까 상상도 해보면서 사람은 자라는 것이다. / 147p

 

 

아멜리 노통브는 어느 세계에도 속하지 않은 인간이자 처음으로 이 세계를 살아보는 인간이라는 점은 분명한 것 같다. 오직 자신의 감수성과 감각, 자신의 투시력과 관찰력, 그리고 호기심 가득 찬 지능으로 인간 세계를 들여다본다. 그런데 우리 모두 그래야 하지 않나? 우리 모두 첫 번째 살아보는 인생이니 말이다. 나 역시 한없이 감각적이면서 한없이 무겁고 싶다. 나 자신을 냉정하게 들여다보고 싶다. 왜 내가 이 자리에 있는지 알고 싶다. 왜 세상은 잘 돌아가는 것 같은데, 나는 어리숙한 것 같고 당황해하고 있는 것 같을까? 그러면서도 왜 태연함을 가장하며 사는가? 그렇게 나를 들여다보고 싶다. 그 관찰의 결과가 아무리 잔인하더라도 그대로 받아들이고 싶다. 나를 가장 잘 아는 적은 바로 내 안에 있을 테니 말이다. / 219p

 

 

 

 

 

 

   이미 시중에는 ‘책 읽기’와 관련된 다양한 책들이 존재하지만, 이 책은 지식인의 해석이라는 이름으로 작품마다 온갖 이론적 잣대를 들이대지 않는다는 점이 인상적이다. 애초부터 저자는 작품에 관한 심층적인 연구나 사전적 지식을 제공하려는 의도로 이 책을 쓰지 않았다는 점을 언급한다. 책을 읽으면서 느꼈던 시시콜콜한 의문들, 책을 읽는 순간에 느꼈던 나름의 감정과 해석들을 어렵지 않게 말하듯이 써내려감으로써 읽어보지 않은 작품에 대해서도 독자들이 쉽게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도록 이끌어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각 작품에 대한 저자 본인만의 독특한 해석과 의미 있는 관철들이 조금 미흡하다는 점은 아쉬움으로 남는다.

 

 

 

모든 사람이 한 권의 책을 읽을 때 자신의 몸이 책을 통과할 것이다. 한 권의 책을 읽고 그 책을 읽기 전의 사람과 똑같은 사람이라면 무엇 때문에 책을 읽을까? 다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책의 세계를 통과하는 과정에 대해서 그렇게 예민하지 못하고, 그렇게 민감하지 못하고, 그렇게 성찰적이지 못하고, 그렇게 통찰력을 발동하지 못할 뿐이다. 정희진의 독후감 같지 않은 독후감을 통해 우리 안에 있는 예민함, 민감함, 성찰의 능력, 통찰력을 살려내보자. 책은 그렇게 우리의 생을 흔들 수 있다. / 228p

 

 

 

   요즘의 나는 오롯이 나만의 세계관을 차분히 완성해가는 기분으로 독서를 의미 있게 받아들이는 중이다. 그래서인지 ‘책 읽기란 나의 몸 전체가 책을 통과하는 과정’임을 상기시켜 준 이 책을 통해 나의 독서 활동에 훨씬 생기를 불어넣을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할 수 있었다. 수많은 책들을 통과한 나는 보다 건강하고 의연하면서, 유연한 사람이 될 수 있을 거라는 믿음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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