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델라이언 데드맨 시리즈
가와이 간지 지음, 신유희 옮김 / 작가정신 / 201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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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년의 시간을 거슬러 오르는 전대미문의 시신이 발견되다!

정교한 트릭과 신비한 민담이 어우러진 반전 미스터리!

 

 

 

   성경에 민들레와 얽힌 이야기 하나가 있다. 옛날 노아의 홍수 때 삽시간에 온 천지에 물이 차오르자 온통 달아났는데 민들레만은 뿌리가 빠지지 않아 도망을 못 갔다고 한다. 두려움에 떨다가 그만 머리가 하얗게 다 세어 버린 민들레의 마지막 구원 기도를 하나님이 가엾게 여겨 씨앗을 바람에 날려 멀리 산 중턱 양지바른 곳에 피어나게 해 주었다는 이야기다. 굳이 성경의 이야기를 언급하지 않더라도 민들레를 향한 우리의 정서는 소박하면서 서정적인 향수를 불러일으키며 어쩐지 애잔한 마음까지 들 때가 있다. 이른바 민초라고 불릴 만큼 끈질긴 생명력으로 그 자리에서 굳건히 견뎌내다가 마침내 자신의 영토를 넓히기 위해 바람을 타고 멀리 날아가 번식을 하는 그 과정 때문인지 모르겠다.

 

 

 

   이런 민들레가 지닌 특유의 감수성 탓인지 이것이 미스터리 소설의 모티브가 된 소설의 표지를 마주하는 순간, 마음을 덜컥 사로잡히고 말았다. ‘단델라이언’, 어쩐지 민들레라는 우리말이 지닌 어감과는 또 다른 느낌이다. 무엇보다 그간 알고 있었던 ‘감사’, ‘행복’과 같은 꽃말이 아닌,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라는 꽃말이 지닌 이중성이 미스터리 장르와 절묘하게 결합되어 눈길을 끈다.

 

 

 

하늘을 나는 소녀, 시신이 되어 나타나다

 

 

   소설은 에미와 유메라는 쌍둥이 소녀가 엄마를 통해 알게 된 옛 민담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는 데에서 시작한다. 그 민담이란, 하늘을 날 수 있는 불가사의한 소녀가 깊은 산속의 ‘행복한 마을’에 찾아오지만, 하마터면 큰 뱀의 산 제물이 될 뻔하고, 결국 ‘행복한 마을’은 큰비로 인한 홍수에 흔적도 없이 쓸려 가버린다는 내용의 이야기다. 이 ‘하늘을 나는 소녀’의 이야기를 유난히 좋아하는 쌍둥이 소녀는 이때부터 ‘하늘을 난다’는 것을 동경하고, 행복한 마을처럼 돈이 없어도 행복하게 살 수 있는 곳에 대한 이상을 품게 된다. 이렇듯 소설 초반에 소개되는 민담과 쌍둥이 소녀의 천진난만한 대화들은 어쩐지 슬프고도 끔찍한 결말에 가 닿을 것만 같은 기막힌 복선과 암시가 되어 시간을 훌쩍 뛰어넘는다.

 

 

 

시신이 공중을 날고 있다.

 

 

 

   시신이 공중을 날 턱이 없고 만약 살아 있다 하더라도 인간이 공중을 날 수 없기 때문에 표현이 마땅하지 않겠으나 이렇게 밖에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그것도 우아하게 날아오르는 형상의 아름다운 시신이 나타난다. 수사 1과의 가부라기와 히메노 히로미는 폐목장이 있는 히노하라 촌에서 이 기막힌 형태의 시신을 발견한다. 곡식이나 사료를 모아두는 큰 탑 모양의 사일로 내부에서 발견된 시신은 두 개의 작은 창구멍에 걸린 쇠파이프에 명치 부근이 꿰여 허공에 고정된 채였다. 더욱 놀라운 것은 무려 16년 동안 미라화되어 시신의 형태가 온전히 유지되어 있었음은 물론, 안쪽에는 빗장이 질리고 바깥문은 자물쇠로 채워졌으며 천창은 바깥쪽에서 판자로 막아버려 완벽한 밀실 살인의 조건을 갖추고 있었다는 점이다. 더욱 기이한 것은 사일로 주변에 헤아릴 수 없이 많은 하얀 민들레 솜털이 가득하다는 것이었고, 이는 하늘을 나는 소녀의 이야기를 떠올리게 한다. 아니나 다를까 시신은 바로 하늘을 나는 소녀가 되고 싶었던 소녀, 바로 쌍둥이 소녀 중 하나인 에미였다.

 

 

 

산 사람이 차별받아서는 안 되는 것과 마찬가지로 죽은 자 또한 차별받아서는 안 된다. 시신이 제아무리 아름다운 모습이건, 눈을 돌리고 싶어질 만큼 비참한 상태건, 살해당한 사람의 원통함은 다를 바 없다. 그리고 사람을 죽인 범인의 죄의 무게 또한 한 톨만큼의 차이도 없다.

하지만 마사키 말마따나, 빛의 띠를 받으며 하늘을 날고 있는 것으로밖에 보이지 않는 그 시신은 아름답다고 형용하고 싶어질 만큼 환상적인 모습이었다. / 68p

 

 

 

불에 타고 있는 시신, 감쪽같이 사라져버린 범인

 

 

   히노하라 촌의 사일로 사건에 대한 수사가 난항을 겪고 있는 가운데, 경시청 앞으로 시오도메에 있는 호텔 콩코드 도쿄 옥상으로부터 누군가가 날 죽이려 한다는 전화 한 통이 걸려온다. 신고 전화를 받자마자 출동한 경찰들로 모든 엘리베이터와 비상계단으로 향하는 출입구가 차단되었으나 호텔 옥상에는 범인의 흔적이란 온데간데없고 오직 불타고 있는 시신과 휴대전화만이 있을 뿐이다. 하늘을 날아 사라진 것이 아니라면 사라진 범인에 대한 설명이 불가능한, 이른바 개방형 밀실 사건. 깊은 산 중의 폐목장과 해안가의 고층 빌딩가라는 전혀 다른 지리적 환경과 사건이지만, 발생한 시간에도 무려 16년이라는 간극이 존재하지만 이상하게도 이 두 사건이 긴밀하게 엮여있을 것만 같은 생각이 가부라기를 사로잡는다. 황당무계하다고 밖에 달리 표현할 길이 없지만 ‘인간이 하늘을 날았을지도 모른다’라는 점 때문이다. 거기에 좌익 과격파 담당 사건을 맡는 것으로 알려진 경시청 공안부 수사관이 이 두 사건을 지휘하려들면서 이들 사건 뒤에 정치적인 계략과 음모가 도사리고 있음을 직감하게 된다.

 

 

 

   히노하라 촌의 사일로에서 죽음을 맞은 히나타 에미와 시오도메에서 죽음을 맞은 가와호리 데쓰지의 접점은 무엇인가. 허공에 떠 있는 시신과 개방형 밀실이라는 이 도무지 풀리지 않는 기묘한 살인사건의 해답을 찾기 위해서는 시신 사이의 공통점을 찾아 좁혀나가는 과정이 우선시 되지 않을 수 없다. 더군다나 어떠한 정보도 공유하려 들지 않는 공안부의 틈을 비집고 들어가기란 더더욱 쉽지 않아 보이지만, 가부라기 형사는 특유의 강단과 신뢰를 바탕으로 마침내 피해자들이 ‘민들레 모임’이라는 대학 환경 동아리 회원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회장 노부세와 아마노, 부회장 가와호리와 히나타 에미로 구성된 이 모임은 ‘종이 팩 운동’과 ‘라이프 백 운동’, ‘해피 캡 운동’과 같이 아름다운 자연이 지속되기를 바라는 대학 내 환경 보호 단체의 일원이었다.

 

 

 

   사실 히나타 에미는 건강하고 활발한 쌍둥이 유메와 달리 항상 몸이 허약해 학교를 다닐 수 없었으나, 그토록 바라던 대학교에 입학함으로써 어릴 적부터 사로잡혀 있었던 민담, 즉 민속학에 대한 연구를 본격적으로 해보고 싶다는 열망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러던 중 고에이 대학에서 만난 민들레 모임의 회장 노부세에게 사랑의 감정을 느끼고 그의 권유와 자연을 지키고자 하는 순수한 목적에서 모임에 가입을 하게 된다. 그러나 폐목장이 된 히노하라 촌을 그들만의 유토피아, 즉 ‘민들레 나라’의 거점으로 사용하여 그들이 원하는 이상향을 실천하고자 했던 순수한 꿈은 이뤄지지 못하고 결국, 두 명의 일원이 16년이라는 간극을 두고 죽음을 맞게 되는 비극에 이르고 만다. 저자는 어쩌면 애초부터 유토피아란 허울만 좋은 나라일지 모른다며, 민담에서 나오는 행복한 마을 역시 누군가의 희생 위에 얻어진 행복이었으므로 이를 과연 유토피아라 할 수 있을지 현실에 냉소적인 문제를 제기한다.

 

 

 

“허울만 좋은 나라…….”

중얼거리는 가부라기를 보며 히메노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습니다. 그러니까 유토피아는 오히려 반이상향 작품의 고전이라 일컬어지는 카렐 차페크의 희곡 「로봇 R.U.R」이나, 프리츠 랑의 영화 <메트로폴리스>에서 묘사된 비인간적인 관리사회의, 지배계급의 생활에 도 가깝지 않을까요. 다시 말해 디스토피아야말로 본래의 유토피아라는 거죠.”

유토피아란, 사실은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 나라. 이상향이 아니라, 사실은 비인간적인 반이상향, 더구나 지배계급을 위한 나라……. 그 말을 듣는 순간, 가부라기는 유토피아라는 단어에서 무언가 불길한 울림을 느끼게 되었다. / 194p

 

 

“‘행복한 마을’에는 온갖 것들이 갖춰져 있고, 게다가 공짜로 얻을 수 있어. 그야말로 행복한 상태지. 하지만 그건 일 년에 한 번 누군가가 큰 뱀의 먹이가 되어야 한다는 공포스러운 조건 아래 성립된 행복이야. 누군가의 희생 위에 성립된 행복을 과연 참다운 행복이라 부를 수 있는가, 그리고 현실 사회도 마찬가지가 아닌가, 라는 대단히 냉소적인 문제 제기를 하고 있어.” / 274p

 

 

 

   도대체 누가 이들을 죽음으로 내몰았단 말인가. 단순히 개인적인 원한이나 복수극에서 그치지 않고, 일본 사회 내의 정치적 음모와 사회 구조의 모순까지 아우르며 마지막 결말로 나아가는 저자의 탄탄한 복선과 전개력에 몇 번이고 감탄하게 된다. 더욱이 신비로운 민담과 기이한 형태의 시신, 도무지 해결할 수 없을 것만 같은 뛰어난 과학적 상상력이 돋보이는 살인 사건의 전개 등으로 시선을 압도한다는 점에서 이 책은 충분히 미스터리 추리 장르의 요소를 잘 갖추었다 할 수 있겠다.

 

 

 

   사실 읽으면서 여타의 추리 소설들이 ‘형사 시리즈’를 앞세워 특정 형사의 돋보이는 캐릭터나 그의 활약상에 집중한다는 점을 비추었을 때, 『단델라이언』의 가부라기 형사는 캐릭터가 주는 인상이 미비하다는 점이 약간의 아쉬움으로 남았다. 그러면서 한편으로는 가부라기 형사의 일방적인 활약이 아니라 그를 중심으로 팀원들이 의기투합하여 사건을 해결해나가는 과정에서 오히려 진정성을 느끼기도 했다. 최근 들어 몇몇 작품들에서 작가들이 저마다 해결할 수 없는 난제를 앞세워 독자들에게 어디에서도 본 적 없는 사건을 내던지는 데에만 사로잡혀있거나, 엽기적인 살인 행각으로 강렬한 인상을 주려는 데 급급한 모습을 보이곤 했는데, 꽤 오랜만에 탄탄한 추리 요소와 문제 제기와 시사점을 함께 제시할 수 있는 작가를 만나 내심 기쁘기도 했다. 무더운 여름, 시간가는 줄도 모르고 읽을 수 있는 추리 소설 한 편 어떨까. 이 책을 추천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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